만나 주석, 창세기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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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천지. ‘하늘과 땅’을 가리킨다. ‘하늘’(שָׁמַיִם 샤마임)은 문자적으로 ‘두 개의 하늘’을 가리키는 쌍수형(dual number)으로 인간의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창공’ 뿐 아니라 대기권 너머의 ‘우주’까지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그리고 ‘땅’(אֶרֶץ 에레츠)은 ‘견고하다’는 말에서 나온 단어로 협의적으로는 ‘토지’, ‘땅 자체’를 뜻하지만(4:12, 출 4:3) 광의적으로는 ‘온 세상’을 뜻한다(18:25, 수 23:14).

만물. ‘만물’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צָבָא 차바’는 본래 ‘무리’, ‘군대’(단 8:10)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가리키고 있다. 한편 이 단어가 왕상 22:19에선 ‘하늘의 만군’, 즉 ‘천사들’을, 그리고 느 9:6에선 ‘일월 성신’, 즉 ‘천체’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그것들의 수효가 많음을, 이차적으로는 그것들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지음받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다 이루어지니라. [כָּלָה 칼라] ‘끝나다’는 뜻과 함께 ‘완전케 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단순히 중단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온전히 완성시키셨음을 의미한다.

 

2:2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이 여섯째 날이었는지 일곱째 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70인역이나 사마리아 사본은 이를 여섯째 날로 번역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영역본(KJV, NIV, RSV)은 일곱째 날로 번역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점은 히브리어 ‘예칼’(마치니)의 시제 및 어법이 불투명한데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조화시킬 수 있다. (1)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에 대한 창조 사역을 마치신 날은 여섯째 날이다. (2) 그러나 그분의 창조 사역의 완성은 이를 기념하고 축복하여 안식하신 날인 일곱째 날에야 온전히 성취되었다.

우리는 “고대 유대인의 안식일”이라고 하는 표현을 자주 듣게 되지만, 유대인들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안식일이 존재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안식일의 기원은 창조 주일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창 2:2, 3에서는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시한 것은 출 16:26, 29에 처음 나온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창 2:2)는 말씀 속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다. “창세기 2:2, 3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이 안식일임을 분명히 확언하고 있다”(G. F. Waterman, The Zondervan Picto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vol. 5, p. 183).

안식하시니라. [שָׁבַת 샤바트] 노동이나 일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에 지쳐 나가 떨어진 것을 의미하지 않고, 잠시 중단한 채 취하는 ‘휴식’(출 31:17)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과 피조된 천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며 그것들을 보고 기뻐하고 계셨다는 것(1:31)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안식(安息)에 근거하여 주어진 것이 바로 제칠일 안식일 제도이다(출 16:29, 신 5:15).

‘안식하셨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인데, 명사형으로 ‘안식일’을 가리키는 샵바트(שַׁבָּת) 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창 2:2, 3은 모든 인류에게 축복의 날로 제정된 안식일의 거룩한 기원에 대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 막 2:27에는 예수께서 안식일이 문자 그대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안식일이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제정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왜 일곱째 날에 쉬셨는가? 어떤 주석가들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친 후에 육체적 쉼이 필요하셨다고 하지만, 그분께서 쉬신 진정한 목적은 인류에게 거룩한 본을 남겨 주시기 위함이었다(이것은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침례를 받으신 것과 유사하다). 사람들도 엿새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 안식일에 쉬어야 한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께서 창조 후에 쉬신 것은 ‘은혜의 언약’의 한 부분으로써, “그분과 함께 당신의 쉼에 동참하라는 그분의 초청”이라고 하였다(Church Dogmatics, vol. 3, p. 98).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 다음 날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자들과 쉼을 통해 교제하시고 친밀한 교감을 나누기 위해 그들을 부르셨다. 그 교제와 교감은 영원히 이어져야 할 것이었다. 인류의 타락 이후로 안식일은 사람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구속주와 함께하는 특권을 경험하는 날이 되었다.

 

2:3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본 구절은 인간에게 주어진 안식일 제도가 인간에게 불편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고(막2:27) 복된 것임을 증언해 주고 있다.

거룩하게 하셨으니. [קָדַשׁ 카다쉬] ‘성결하다고 선언하다’, ‘거룩한 것으로 간주하다’는 뜻이다. 일곱째 날 자체가 거룩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날로 간주하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이 거룩한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다’는 말은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칠일 안식일은 흔히 유대인 시대에 속한 제도로 간주되어 왔지만, 성경은 최초의 이스라엘 백성들(야곱-이스라엘의 자손)이 태어나기 2,000년도 훨씬 전에 제정되었다고 선언한다.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십계명 중 넷째 계명에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출 20:11)기 때문에 우리도 지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은 피조물이 그분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된다.

 

2:4 여호와 하나님. [יְהוָה אֱלֹהִים 야훼 엘로힘]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이 처음 소개 된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엘로힘’(1:1)과는 달리 그분이 ‘능동적이고 스스로 계시는 분’(출 3:14)이라는 점과 ‘이스라엘의 구속자’(출 6:6)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칭호이다. 성경에선 이 단어가 무려 6,800여 회나 나오는데 이는 단어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한편 ‘여호와’의 비교적 정확한 히브리어 음역은 ‘야웨’ 또는 ‘야훼’이다(공동번역에선 ‘야훼’로 음역하였음).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는 것을 금기시하던 히브리인들이 4글자로 된 자음(‘יהוה YHWH’, 이것을 ‘Tetragrammaton’이라고 함)에 ‘אֲדֹנָי 아도나이’(‘주’[主]란 뜻)라는 단어의 모음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때에. 창 1:5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히브리어 ‘יוֹם 욤’(날)이 사용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날’(day)이 아니라 특정한 ‘때’(time)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내력이니. ‘내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תֹולְדֹות 톨레도트’는 ‘계보’, ‘출생’, ‘역사’, ‘가족’ 등과 같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본 절에서의 정확한 의미는 ‘역사’(歷史)이다. 즉 이는 본 절 이하의 내용이 1:1-2:3에 언급된 사건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묘사하는 실제 역사임을 나타내고 있다.

 

2:5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비는 죄가 시작되기 전에는 내리지 않았다. 창세기에서 비는 노아 홍수 이전에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홍수 전에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히브리서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히 11:7)였다고 하였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는 비도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엘렌 지 화잇은 홍수 전에는 “비가 내린 적은 결코 없었으며, 땅은 안개나 이슬로 물 공급을 받았다.”(부조와 선지자, 96-97)고 기록하였다.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이 구절은 창세기 1장의 내용과 모순되어 보이는데, 그것은 1장에서 여섯째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의 중요한 수식 어구인 “땅을 갈”이라는 말을 유의해야 한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후 사람에게 땅을 가는(경작하는) 일을 맡기지 않으셨다. 땅을 가는 일은 타락 후에 나타난다. 타락 후에 사람은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창 3:17)을 수 있었고, 죽을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창 3:19)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즉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땅을 경작해야 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은 다음 장인 3장에서 일어날 일(죄의 시작)에 대한 기초를 놓고 있는 것이다.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들’(שָׂדֶה 사데)은 다음 어구에서 ‘밭’으로 번역된 말과 히브리어로 같은 말로써 ‘밭, 들, 토지’ 등을 뜻하며, 드넓은 벌판이라기 보다는 경작하기 적당한 땅을 의미한다. ‘들의 초목’은 히브리어로 ‘שִׂיחַ הַשָּׂדֶה 시아흐 핫사데’이다. ‘초목’(שִׂיחַ 시아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네 번 나오는데, ‘들의 초목’은 본 절에만 나오는 독특한 것이다. ‘시아흐’가 나오는 창 21:15, 욥 30:4, 7에는 이 말을 “떨기나무”로 번역하였는데, 건조한 곳이나 사막 같은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가시가 많은 선인장과 비슷한 식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시아흐’는 범죄 후에 나타난 “가시덤불과 엉겅퀴”(창 3:18)와 상응(相應)한다. 이런 가시 있는 식물들은 농사일에 방해가 되는 것이며 범죄 후에 생겨난 것이므로 범죄 이전을 언급하는 본 절에서 없었다고 한 것이다.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밭’(שָׂדֶה 사데)은 바로 앞에 ‘들’로 번역된 말과 히브리어로 같은 말이다. 여기서 ‘채소’는 히브리어로 ‘עֶשֶׂב 에세브’인데 ‘식물(植物)’을 뜻한다. ‘밭의 채소’는 히브리어로 ‘עֵשֶׂב הַשָּׂדֶה 에세브 핫사데’인데, 본 절과 창 3:18에만 나온다. ‘채소’라는 말은 범죄 전인 창 1:12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창 3:18-19을 보면 ‘밭의 채소’는 범죄 전의 ‘채소’와 다른 것이다. 창 3:19에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겠다고 하였는데, 여기의 ‘먹을 것’은 ‘빵’(לֶחֶם 레헴)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빵을 만들 수 있는 곡류 곧 밀과 보리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절의 ‘밭의 채소’는 범죄 후에 밭에서 땀을 흘리며 경작해야 먹을 수 있는 곡류였고, 범죄 전에는 없던 것이었다.

 

2:6 안개. [אֵד 에드] 이 말은 다소 모호한 뜻을 지니고 있으나, ‘안개’는 가장 훌륭한 번역으로 보이며, 이 경우 ‘안개’를 ‘이슬’과 비슷한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엘렌 지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홍수 이전 세상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자연 법칙은 변한 적이 없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계절의 순환은 그 순서대로 이르러 왔었다. 지금까지 비가 내린 적은 결코 없었으며, 땅은 안개이슬로 물 공급을 받았다”(부조와 선지자, 96-97).

 

2:7 땅의 흙으로. 인간의 전인격적인 창조에 관해 기술한 1:26, 27과는 달리 본 절은 특별히 인간 육신의 창조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땅의 흙”(עָפָר מִן־הָאֲדָמָה 아파르 민 하아다마)은 ‘땅의 티끌’, 즉 ‘먼지’란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데 그 이유가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시 103:14)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땅에서 유래한 물질들, 곧 땅의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과학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죽은 다음에 일어나는 인체의 분해는 동일한 사실을 증명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들은 산소, 탄소, 수소 그리고 질소이다. 사람은 땅에서 왔다가 “땅으로 돌아”(전 12:7)간다.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중요한 사항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하나님의 손이 창조의 신비한 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으시고”에 해당하는 단어 ‘יָצַר 야차르’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고안(考案)과 모습에 일치하도록 형체를 빚어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말은 토기장이(사 29:16, 49:5 등), 우상을 만드는 금장색(사 44:9, 합 2:18) 그리고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생기. [נִשְׁמַת חַיִּים 니쉐마트 하임] 이 말은 ‘영혼’(잠 20:27), ‘호흡’(사 2:22), ‘기운’(욥 33:4)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생명을 주는 원리, 즉 생명의 불꽃이 그의 육체로 전가되도록 해준 매개체를 하나님의 ‘생기’라고 할 수 있다. 사망 시에는 ‘숨’(נְשָׁמָה 네샤마)이 끊어진다(왕상 17:17).

생령. [נֶפֶשׁ חַיָּה 네페쉬 하야] ‘네페쉬’는 ‘숨’(욥 41:21), ‘호흡’, ‘생명’(왕상 17:21, 삼하 18:13)을 뜻한다. ‘하야’는 ‘생존’, ‘존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령”은 ‘살아 있는 존재’(living being, NASB)란 뜻이다.

 

2:8 동산. [גַּן 간] ‘울타리를 치다’(גָּנַן 가난)에서 파생된 단어로 본래는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한 장소’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 동산을 ‘공원’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말인 ‘낙원’(paradise)이라고 부른다. 70인역은 이를 ‘낙원’(파라데이소스)으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세계 여러 민족의 설화를 살펴보면 인간의 최초 거주지가 낙원이었다는 것이 의외로 많은데 이는 인류의 원조가 살던 에덴 동산에 대한 변형된 전승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에덴 동산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홍수가 본래의 지구의 물리적인 특징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홍수 전에 있었던 에덴의 위치를 홍수 후에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창 2:10의 주석을 참조하라).

 

2:9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허락하셨던 최초의 양식은 동물이 아닌 식물이었는데(1:29), 그 식물은 보기에도 아름다웠고, 먹기에도 좋았다. 이것은 사람의 행복에 아름다움과 음식의 맛이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생명 나무. [עֵץ הַחַיִּים 에츠 하하임] 일차적으로 이 나무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전제로 인간 생명을 영속시키며 늘 강건한 힘을 공급해 주는 과일 나무이다(3:22). 칼뱅(Calvin)은 주장하기를, 이 나무는 아담과 하와가 그 과실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토록 해주는 성례전적(聖禮典的) 의미를 지닌 나무라고 하였다.

“영원히 생존하려면 사람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계속 먹어야 하였다. 이것을 박탈당하면 그의 활력은 점차로 사라져 마침내 생명이 소멸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60).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의 열매는 초자연적인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어 있었다. 그 열매는 죽음의 해독제였다”(교회증언 8권, 288).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 말을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선과 악의 그 지식의 나무”이다. ‘지식’이라는 말 앞에 붙은 정관사 ‘그’는 그 나무가 어떤 종류의 지식이나 모든 종류의 지식을 다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과 대조된 악에 대한 슬픈 지식만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나무의 존재 가치는 인간이 신의 보호를 받는 애완 동물로서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소유한 인격체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었다.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창 2:10-14에는 에덴에서 흘러 나온 네 강의 이름들(비손, 기혼, 힛데겔, 유프라테스)이 나온다. 그럼 이 강들의 이름을 근거로 에덴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강들의 이름으로 에덴의 위치를 알아내는데는 다음의 문제점들이 있다. (1) 오늘날의 티그리스[힛데겔] 강과 유프라테스[유프라테스] 강의 근원은 같지 않고, 아르메니아 산지의 다른 수원(水源)에서 시작한다. (2) 노아 홍수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의하면 홍수 때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창 7:11) 지각에 큰 변동이 생겨 현재의 지형은 홍수 전 세상의 지형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에덴 동산의 위치를 추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엘렌 지 화잇은 홍수 후의 땅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드러난 땅의 모습은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어지럽고 황폐하였다. … 여러 곳에서 언덕과 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평지였던 곳에 산맥이 생겼다. 어떤 곳은 다른 곳보다 이런 변화가 더 심하였다. … 이때에 광대한 삼림들이 땅에 매장되었다. 이것들은 그 때부터 석탄으로 변하였는데, 지금 있는 광대한 석탄층을 형성하였고 또 다량의 기름을 산출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08).

오늘날의 두 강의 이름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는 사랑받던 옛 강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던 관습을 반영한 것이다. 즉 현재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이름이 홍수 이전의 강들을 이름을 따라 지어진 것이다.

성경은 에덴 동산과 생명나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생명나무는 하늘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계 22:2), 구속받은 사람들에게 식물(食物)을 제공하기 위해 준비돼 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과 생명나무는 홍수 전에 하늘로 옮겨졌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죄악의 조수가 온 세상을 휩쓸었고, 사람들의 악행이 홍수로 말미암아 그들의 멸망을 결정지었을 때, 에덴을 창설하신 손이 그것을 지상에서 철수시키셨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계 2:7, 21:1, 22:14)이 있게 될 최후의 회복의 때에 에덴은 태초 때보다 더 영광스럽게 단장되어 회복될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62).

 

2:11 비손. 이 강은 성경이나 성경 외의 자료에서 알 수 없는 강이다. 그러므로 이 강의 위치나 현대의 어떤 강과 연결시키는 것은 근거 없는 것이다.

하윌라. 이 지명도 알 수 없는 이름이다.

 

2:12 베델리엄. 향료로 쓰인 ‘방향성 수지’(芳香性樹脂)로 주로 인도 북서 지방 및 아프카니스탄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지만, 그것이 홍수 전 시대의 것과 같은 것인지 알 수 없다.

호마노. [שֹׁהַם 쇼함] ‘희게 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 희미한 녹색을 띤 ‘녹주석’을 가리키기도 하고, 여러 색을 띤 ‘얼룩마노’(onyx)를 가리키기도 한다. 공동번역은 이를 ‘홍옥수’로 번역하였다.

 

2:13 없음.

 

2:14 없음.

 

2:15 그 사람. [הָאָדָם 하아담] ‘아담’(사람)이란 말 앞에 정관사 ‘하’가 결합된 형태로 하나님께서 친히 육과 영을 접목시켜 만드신 바로 ‘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되어 있다.

이끌어. [יִּקַּח 이카흐] ‘לָקחַ 라카흐’(취하다, 데리고 오다, 지정해 두다)에서 기원한 말로써 정신적인 지도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단순히 육체만을 인도하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전인격을 붙잡으시고 당신이 지정해 두신 곳으로 친히 이끄셨음을 의미한다. 이는 강압이나 억지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랐다는 점에서 신인(神人)협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두어. [יַּנִּחֵהוּ 야니헤후] ‘쉬다’, ‘머물러두다’, ‘위안하다’의 ‘יָנחַ 야나흐’에서 유래된 말로써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근심이 전혀 없이 절대 평안을 유지하는 가운데 살도록 거처를 마련해 둔다는 뜻이다.

경작하며. [לְעָבְדָהּ 레아베다흐] ‘עָבַד 아바드’(일하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단순 부정사로 아담의 평생 업이 땅을 중심한 노동이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노동은 단지 생계가 아니라 자연과 세계를 관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담에게는 그 동산을 돌보는 일을 맡기셨다. 창조주께서는 일하지 않으면 아담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다. 동산의 아름다운 것들이 그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으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는 완벽하게 창조된 자신의 몸의 각 기관을 운동시키기 위하여 일을 가져야 하였다. 만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무죄한 상태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두셨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창조주께서는 아담이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셨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자마자 그에게 할 일을 지정해 주셨다. 장래의 영광에 대한 약속과 그의 매일의 양식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명령은 모두 동일한 하늘 보좌로부터 선포된 것이다”(Ellen White, Our High Calling, p. 223).

지키게 하시고. ‘지키다’의 히브리어 동사 ‘שָׁמַר 샤마르’의 뜻은 ‘울타리를 치다’, ‘보호하다’, ‘주의를 기울이다’, ‘방비하다’를 뜻한다. 이 동사의 사용은 아담과 하와가 그 동산을 지키고 보호하면서 경계해야 했음을 암시한다. 그것은 원수가 와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었을 가능성을 함축한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성격에 대해 그들에게 말씀하신 게 분명하다. 이 동사를 그렇게 풀이하는 게 타당한 이유는 3장 24절에서 같은 동사가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타락 이후 그 동산의 보호 특히 생명나무의 보호는 그룹천사의 손에 놓여졌다.

본 절에 함축된 위험은 창세기 3장에서 분명하게 규명되었다. 하나님의 원수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했고, 그분이 의도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발전을 제한하고 있다고 고소했다(3:4).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함으로 그들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5절)라고 그는 말했다. 이 원수가 대화에서 소개한 것은 타락한 그룹천사 자신이 원했던 것이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사 14:14). 이제 우리는 이 원수의 진정한 정체를 안다. 신약성경은 그를 “마귀, 사탄”(계 12:9)으로 확정한다. 이러한 세세한 사항들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그를 알고 있었으며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정보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이 뱀에게 속았다고 주장함으로 하와는 애써 변명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와는 속았다(고후11:3, 딤전 2:14). 그러나 속았다고 해서 그녀의 불순종이 합당하다고 간주되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원수가 유혹하러 온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든 원수가 활동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며 그는 그녀를 놀라게 하고 속였다. 뱀과 대화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안전했을 것이다.

“우리의 최초의 조상은 그들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한 경고 없이 버려 둔바 되지 않았다. 하늘의 사자들은 그들에게 사탄이 타락하게 된 역사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그의 음모를 미리 알려 주었으며 악의 임금이 전복시키려고 하는 하나님의 정부의 본질을 충분히 설명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2).

본 절은 1:28에서 주어진 것과 동일한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기도 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권한을 위임하시고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관할토록 위탁하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서 세상을 정복하고 문화를 꽃피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낼 책임이 있다.

 

2:16 명하여. [יְצַו 예차우] ‘צָוָה 차와’(명령하다, 지정하다, 맡기다)의 미래 강조형. 본 절에 제시된 명령이 당시를 기점으로 해서 적용되는 것으로 도무지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될 지상 명령임을 보여 준다.

임의로 먹되. 문자적으로는 ‘먹고 싶은 대로 먹되’, ‘자유롭게 섭취하되’란 뜻이다. 이 말 속에는 ‘생명나무’(9절)의 실과까지도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완전한 특권을 부여했음을 보여 준다. 즉 인간에게 필요로 하는 모든 음식물이 주어졌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다음 절의 금지 조항과 조화되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모두 제공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을 때에 인간이 도무지 핑계치 못할 것, 곧 책임의 소지가 분명히 당사자에게 주어질 것을 포함하는 ‘자유에의 허락’이다.

 

2:17 먹지 말라. [לֹא תֹאכַל 로 토칼] 이는 단순 부정으로써 결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바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그 열매 자체에 있지 않고 그것을 먹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순종과 불순종은 인간의 영원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다(렘 7:23-28).

네가 먹는 날에는. 이 어구는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열매를 먹었던 바로 그날 죽지 않았기 때문에 논란이 되어 왔다. 어떤 이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벧후 3:8)다고 하였으므로 아담이 1000년 가까이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하루 안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설명은 그들이 범죄 후 즉시 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창 3:15에서 구주를 약속했기 때문에 사형이 면제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절의 히브리어 표현들을 바로 이해한다면 보다 적절한 해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 하는 날에”라는 표현은 창세기에 여기 외에 다섯 번 더 나온다(2:4, 3:5, 5:1, 2, 21:8). 이 성경절들에 대한 서로 다른 번역들을 비교해 보면, “ … 하는 날에”, “ … 할 때”, “ … 하자마자”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 … 하는 날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브욤 + 부정사)이 흔히 정확한 시점이나 기간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간, 하루, 또는 명시하지 않은 기간 등을 가리킬 수 있다. 비슷한 용례가 창 30:33에 나오는데 개역개정판에는 “후일에”로 번역되어 있다. 이는 특정한 날이 아니라 미래의 명시되지 않은 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신 말은 죽는 때를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고 미래의 어느 때에 죽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반드시 죽으리라. 히브리어로 “반드시”(מוּת 무트)에 해당하는 말은 “죽으리라”의 절대 부정사(infinitive absolute)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확실성의 개념을 강화하는 표현이다. 본 절에서 이 말의 기능은 죽는 시점이 아니라 죽음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본 절의 표현들은 아담의 죽음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그날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먹는 순간 그의 죽음이 확실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다음과 갈이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먹자마자 너는 확실히 죽을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죽음은 “죄의 삯은 사망이”(롬 6:23)라는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한다.

 

2:18 좋지 아니하니. ‘토브’(좋다)는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하신 뜻을 좇아 지으신 피조물 중에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은 본래 하나도 없었다(1:31). 따라서 이 말은 다만 아담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하와와 함께 거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이다.

돕는 배필. ‘조력자’, 반려자’란 뜻이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마땅한 역할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해 준다(고전 11:9, 엡 5:24). 그러나 이 말이 남성 우월론의 근거로 오용(誤用)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남녀의 차이는 신체적, 기능적 문제이지 인격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다 그분의 성품을 함께 나눠 받은 동등한 인격체일 뿐이다(고전 11:11).

 

2:19 흙으로 … 지으시고. 일견 1:20-25과 모순되는 듯한 구절이나 그렇지 않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말씀으로 각종 짐승을 지으시되 그 몸의 구성 성분은 흙으로 이루어지끔 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짐승들에게는 하나님의 생기 곧 영혼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간과는 다르다(7절).

 

2:20 이름을 주니라. ‘이름을 짓다’, ‘이름을 부르다’, ‘이름을 공포하다’라는 뜻이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이나 종주권(宗主權)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그 권한을 아담에게 위임한 것은 만물보다 뛰어난 인간의 우월성(시 8:6)을 인정해 주셨다는 의미를 지닌다.

 

2:21 깊이 잠들게. 황홀경에 빠지거나 환상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잠에 든 것을 뜻한다(욥 4:13). 이는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에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 사역에 의해 초자연적인 깊은 잠에 들었음을 증언해 준다.

갈빗대. [צֵלָע 첼라] ‘차라’(구부리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갈빗대’란 뜻과 함께 ‘한쪽 편’이란 뜻도 지닌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에 근거해 아담은 본래 남녀 양성을 지녔었는데 하나님께서 여성을 따로 떼어내셨을 것으로 추정한다(Obbink). 그러나 그 같은 견해는 딤전 2:13과 상충되어 맞지 않는 이론이다.

 

2:22 만드시고. [בָּנָה 바나] ‘수선하다’, ‘세우다’, ‘짓다’는 뜻이다. 이는 마치 미완성된 건물을 마침내 완공한 것 같이 여자 피조 사건은 아담만으로는 미흡했던(18절) 인간 창조 사역을 충족시켰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처럼 흙으로 짓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1) 아담과 하와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합일체이다. 이러한 관계는 서로 정당한 부부의 연을 맺은 모든 자들에겐 영속(永續)되는 것이다(마 19:3-6). (2)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마땅히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자(엡 5:25-33) 서로가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 동등체이다(고전 11:11, 12). (3) 따라서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룬 부부는 서로간의 부족한 점을 사랑과 신뢰로 메꾸어 나가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고전 10:31).

 

2:23 여자라 부르리라. 아담이 자신의 아내를 가리켜 ‘여자’라 지칭한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20절을 참조하라.

여자. [אִשָּׁה 잇샤] ‘남자’를 뜻하는 ‘אִישׁ 이쉬’(24절, 민 5:6)에서 파생된 말이다. 여자란 남자와 구별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נְקֵבָה 네케바’(1:27)와는 달리 여자란 남자에게서 유래(由來)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단어이다.

 

2:24 떠나 … 합하여 … 한 몸을. 본 절에 나타난 바 최초 결혼에 나타난 3대 원리는 (1) 책임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떠나는 ‘독립성’ (2) 동등한 두 인격체가 만나는 ‘연합성’ (3) 두 몸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합일성’이다. 이러한 연합과 합일의 원리는 장차 신랑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되는 그의 교회와의 완전한 ‘연합’을 예표한다(엡 5:31, 32).

 

2:25 부끄러워. 몰상식한 일을 당하여 수치심에 빠지거나 비상식적인 것에 접하여 당혹스러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1) 그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의해 성화되어 있었으며 (2) 그들의 전인격이 하나님께로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수치심도 틈탈 겨를이 없었음을 나타내 준다. (3) 그러나 이후 그들이 범죄하자 곧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3:7) 이는 그들이 감각적 충동과 욕망에 끌려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16, 17절)을 파괴한 결과 그들의 정상적인 영육도 파괴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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