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요한계시록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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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 성전에서 나는 큰 음성은 사 66:6과 유사하다. 이 '큰 음성'에 대해 혹자는 3인칭으로 언급된 것을 이유로 일종의 천둥이라고 주장하나(Farrer) 하나님의 음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Morris, Ladd, Mounce). 왜냐하면 15:8에서 일곱 천사의 재앙이 마치기까지 아무도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 '헌 데'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코스'(* )는 출 9:8-11에 나오는 여섯번째 재앙인 '독종'이나 욥의 몸에 난 악창(욥 2:7)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첫번째 대접 재앙은 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려간 여섯번째 재앙과 같은 종류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던 애굽 사람들에게 독종이 발생했던 것과 같이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도 이런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재앙은 이미 욥이 고백한 바와 같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가져다 준다(욥 2:7, 8, 13).
 
=====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 바다를 피로 변하게 하는 두번째 재앙은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해 하수의 고기들이 죽고 물에서 악취가 나는 재앙과 유사하며 둘째 나팔 재앙(출 7:20, 21)과도 유사하다(8:8, 9). 그러나 둘째 나팔의 재앙은 바다 피조물 가운데 삼분의 일만 당하는 제한적인 것인 반면에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 가운데 거하는 모든 생물에게 미치는 것이다. 바다가 죽은 자의 피와 같이 응고되고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상태로 변하게 되면 그 가운데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게 된다.
 
=====16:4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 둘째 대접 재앙은 강과 물 근원에 떨어진다. 이 재앙은 셋째 나팔 재앙과 병행을 이룬다(8:10, 11). 또한 이것은 모세를 통해 나일 강과 애굽의 모든 물의 근원을 피로 변화 시켰던 첫째 재앙과도 유사하다(출 7:17-21;시 78:44). 물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다. 이러한 물의 근원과 강을 피로 변하게 하는 셋째 재앙은 인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것임을 시사한다(Johnson).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 '물을 차지한 천사'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유대인들이 모든 자연적인 힘 즉 바람, 해, 비, 물 등에 그것을 다스리는 천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을 근거로(에녹 1서 66:2) 물을 주관하는 천사라고 해석한다(7:1, Ladd). (2) 혹자는 앞절에 언급된 대접을 쏟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두 가지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는 어렵다. 한편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우심을 선포한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은 1:4과 병행된다. 이 호칭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며 감정닿은 것에 의해서 좌우되는 분이 아니심을 시사한다. 또한 '거룩하신 이'에서 '거룩'은 본절과 15:4에서만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셔서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대한 주권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Morris, Mounce)

=====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 본절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내리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심판(4, 5절)이 의로운 이유이다. 이것은 사 49:26을 반영한다. 여기서 '마시게 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도카스 페인'(* )은 완료형으로 '마시도록 주어진'이란 의미이다. 이 완료형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초래된 결과가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하나님은 대적자들이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고 핍박하여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한 대가로 저희들의 피를 흘리게 하는 엄중한 심판을 행하신다.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 제단의 말하는 음성은 하나님의 심판 행위가 정당함을 다시한번 확언한다. 여기서 '제단'은 핍박을 받아 순교당한 영혼의 기도(6:9, 10)와 성도들의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8:3-5). 이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핍박받는 성도들이나 순교한 자들의 신원에 부응하는 응답임을 시사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단순한 분노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당성과 정당성을 지닌 것이다(Ladd).

=====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넷째 나팔 재앙에서는 해가 빛을 잃고 천계의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 반면(8:12), 넷째 대접 재앙은 해가 오히려 뜨거워져서 사람들을 불로 태운다. 이것은 구속받은 성도들이 해가 어떤 뜨거운 기운에 상함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조를 이룬다(7:16). '불'은 성경에서 흔히 심판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고전 3:13;벧후 3:7). 본절에서 해로 하여금 불을 내어 태우는 심판을 할 수 있도록 권세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자연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시사한다(Ladd, Mounce).

=====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원진지라 이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 하더라 - 본절은 해가 뜨거워서 태움을 당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 반응은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영광을 돌리지 않는 완악하고 교만한 태도 뿐이다. 이 사실은 혹자의 지적대로 그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짐승의 본성을 그대로 닮았음을 시사한다(Caird). 이들은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죄악된 행위를 회개하고 창조주를 받아들여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계속해서 하나님을 모독, 훼방한다(사 52:5;롬 1:25;2:24).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는 짐승의 표를 받고 경배하는 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회개치 않고 오히려 거스려 훼방함을 암시한다. 하나님을 향해 고의적으로 대적한 짐승을 추종하는 무리들의 최후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14:10, 11;롬 1:21-23).

=====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 여기서 '짐승의 보좌'는 사도 요한 당시 세상 권력이 중심이 되어 우상 숭배를 강요하였던 로마 제국을 언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Plummer). 그러난 그 보좌는 단순히 로마제국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보좌'는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세상 권세를 숭배케 한 모든 곳을 가리킨다(Johnson). 왜냐하면 본절의 '보좌'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로논'(* )이 버가모 교회의 '사단의 위'(* , 호 드로노스 투사타나)에도 나타나기 때문이다(2:13). 한편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는 애굽이 당했던 아홉번째 재앙을 상기시켜 준다(출 10:21-29). 이 어둠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9:2을 근거로 하여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연기로 인해 어두워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Charles). (2) 혹자는 국가적인 내전(內戰)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Kiddle). (3) 혹자는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 황제의 파멸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Caird). (4) 혹자는 어두움이 가시적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이며 도덕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Johnson). 네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21:25;22:5;요 8:12;12:35, 36, 46;요일 1;5-7;2:8-10;솔로몬의 지혜서 17:21). 이러한 어두움 속에서 짐승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혀를 깨물며 고통을 참아야할 만큼 혹심한 고나난을 겪게 된다.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 본절은 다섯째 대접 재앙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나타낸다. '하늘의 하나님'이란 칭호는 단 2:44에 나타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강조하는 표현이다(Morris).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은 지상의 모든 나라를 멸하시고 영원히 망하지 않는 새로운 한 나라를 세우시는 분으로 묘사되었다. 다섯째 대접 재앙을 받은 자들은 온세상의 주권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만하게 행한다.

=====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 여섯번째 재앙은 유브라데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어 온 천하의 임금들이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려고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모이는 것이다(14절). 이 여섯째 대접 재앙과 여섯째 나팔의 재앙(9:14)은 유브라데 강을 중심으로 벌어질 전쟁에 대해서 언급한다는 점에서 서로 유사하다. 그러나 두 재앙 사이에 차이를 보이는 면이 있는데 그것은 여섯째 나팔 재앙에서는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던 네 명의 천사가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 위하여 놓여지는 반면(9:14)여기에서는 동방의 왕들, 즉 지상의 통치자들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을 하기 위해 모여든다는 점이다. 동방의 왕들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다는 말은 사도 요한 당시 크게 유행하던 소문, 즉 죽은 네로 황제가 다시 살아 파르티아 군대를 거느리고 윱라데 강을 건너 로마로 침공해 올 것이라는 네로 재생설을 그 배경으로하고 있다(Morris). 유브라데 강 동쪽 에는 우수한 유목 민족인 파르티아인(Parthinans)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기원 1세기 어간에 이들이 로마를 침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항상 있었다. 이러한 우려는 네로의 재생 신화에 의해 더욱 증폭되었는데, 즉 자살했던 네로가 다시 살아나 파르티아 유목민들의 수장이 되어 로마 제국을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그 당시에 널리퍼져 있었다(Sibylline Oracles 4:115-139). 그러나 본절에서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실제적인 그 당시 정치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Johnson, Minear). 이것은 오히려 세상의 종말론적인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 동방의 왕들, 즉 악의 세력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마지막 최후의 결전에 임할 태세가 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요한은 세 더러운 영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환상을 본다. 여기서 '더러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다르타'(* )는 '불결한'이란 의미로 신약성경에서 마귀를 '더러운 귀신'으로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었다(막 1:23;3:11;5:2). '더러운 영'을 내놓는 '용'은 머리를 일곱 개 지닌 사단을 가리키며(12:3, 9) '짐승'은 13:1-10에 등장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나타내고 거짓 선지자는 13:11-17에 언급된 '땅에서 나온 짐승'을 의미한다(Mounce, Ladd). 한편 '개구리'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부정한 동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레 11:10, 41)모세를 통해 애굽에 내린 재앙 중 하나이고 구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재앙을 가져오는 동물로 묘사되어 있다(출 8:5-11;시 105:30). 이방 세계에서는 개구리가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에서 개구리는 '아리안'(Ahriman)으로 불리어 졌는데 주정적으로 평가되어 재앙을 가져오는 자인 동시에 흑암 권세의 대리자로서 빛의 사자인 오르무드(Ormud)와 싸우는 존재로 생각 되었다(Moffatt). 반면에 애굽인들은 개구리를 긍정적으로 이해하여 풍요하나 다산의 여신인 헥트(Heqt)로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은 이런 신들을 '귀신' 즉 사단의 사자 또는 우상 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로 생각하였다(9:20;19:2;고전 10:20, 21). 본문에서 '용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입으로 토해놓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은 14절에서 '귀신의 영'으로 진술되는 것으로 보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용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말과 미혹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이다. 즉 '귀신의 영'은 땅의 왕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거짓 예언자들처럼 이적을 행할 뿐만 아니라 온갖 거짓말과 유혹하는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결합시키려고 한다.

=====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 본절은 13절의 '더러운 영'의 속성을 나타낸다. 그들은 귀신의 영으로 이적을 행하여 세상 임금들을 현혹한다. 구약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을 찾아볼 수 있다. 즉 거짓말하는 영이 선지자의 입에 들어가 아합 왕을 꾀어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다(왕상 22:19-23). 예수께서도 종말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할 것을 예언하셨다(마 24:24). 또한 바울은 악한자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임하게 될 것을 예고하였다(살후 2:8-10). 한편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은 생소한 표현이다. 이와 동등한 표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8), '그리스도의 날'(빌 1:10), '주의 날'(살전 5:2) 등이다. 이것은 종말론적인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Morris, Ladd). 이 날에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귀신의 영'은 세상의 임금들을 미혹한다.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 본절은 마 24:42-44과 병행된다. 계속적으로 귀신의 영이 미혹하여 전쟁 준비를 시키는 과정에 본절이 삽입되어 있는 것은 마지막 대전쟁이 임박할 때 성도들이 극적인 위기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에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다. 결국 이 경고이 의미는 어린양을 따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만 함을 권면하는 것이다(마 24:43;살전 5:2).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적 같이'오신다는 경고는 사데 교회(3:2-4)와 라오디게아 교회에도(3:18) 주어졌던 것이다. 이 경고는 두 교회의 우상 숭배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함을 강조한다(Johnson). 한편 본절에서의 '복'은 본서 전체에서 나타나는 일곱 가지 복가운데 세번째 복에 해당된다(1:3;14:13;19:9;20:6;22:7, 14). 본절은 성도들이 마지막 때에 있을 사단의 기만과 핍박 가운데서도 넘어지지 아니하고 늘 깨어 있어 충성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 주실 것을 시사한다.

=====16: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 '아마겟돈'의 보다 정확한 음역은 '하르 므깃도'(* )인데 '하르'(* )는 '작은 산'을 의미하며 '하르므깃도'는 '므깃도 산'을 가리킨다. 이 '므깃도 산'에 대한 견해는 여섯 가지이다. (1) 혹자는 갈릴리의 고대 도시 므깃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indsay, Seiss, J.B. Smith, Walvoord). (2) 혹자는 갈멜 산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ohmeyer, Farrer). (3) 혹자는 '집회의 산'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사 14:13, Bruce, Torrey, Rissi). 이것은 14:12-15의 기록에서 바벨론 왕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보좌로 상징되는 북극 집회의 산에 오르려고 하는 것과 본절의 '아마겟돈'이 관계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견해는 사본의 증거가 부족하며 전후 문맥과 서로 모순되고 있다. (4) 혹자는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슥 14:2;욜 3:2, Charles). (5) 혹자는 '약탈의 산'이나 '멸망의 산'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ird, Kiddle). (6) 혹자는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ounce, Johnson). 이 견해에 따르면 '므긷도'는 군대를 소집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가다드'(* )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를 명사형으로 고치면 접두어 '마'(* )가 붙어 '마게드'(* )가 되며 이는 '군대를 소집하는 곳'을 의미하게 된다. 여기에서 접미어 '오'(* )가 붙어 '마게돈'(* )이 되면 '군대를 소집하는 장소'가 된다. 이는 곧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14절)와 같은 말로 그리스도의 재림때 있을 심판을 위하여 열방을 한 곳에 모으는 예언적인 성취를 암시한다(욜 3;12)는 것이다. 여섯 가지 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이라는 이름은 상징적인 것으로 어떤 지리적인 실재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 그들을 패배시킬 종말론적인 전쟁 또는 그 장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9:11-21).

=====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 '공기 가운데'는 용과 짐승의 권세를 잡고 있는(엡 2:2) '공중'을 의미한다(Morris). 따라서 사단의 권세를 잡고 있는 공중에 대접을 쏟는 것은 짐승과 그를 경배하는 자들에게 결정적인 타격(打擊)이 가해짐을 시사한다(벧후 3:10). 한편 '되었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고넨'(* )은 '성취하다' 또는 '완성하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진노를 나타내는 말이며 인간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다.

=====16: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 본절의 대천재지변과 유사한 현상은 일곱번째 나팔 재앙 후에도 동반되었었다(11:19). 이러한 현상은 대개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Moffatt) 하나님의 심판으로 행해진 재난이 그 절정에 달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Hughes). 요한은 일곱번째 대접 재앙으로 인해 생긴 번개와 뇌성과 지진이 지금까지 있었던 어떤 재앙보다도 심하고 극렬한 것이라고 진술함으로 결정적인 재앙임을 암시한다.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 '큰 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에 대하여 네 가지 주장이 있다. (1)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11:8). (2) 혹자는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18:10, 16, 18, 21, Mounce). (3) 혹자는 지리적인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하게 무신론적 사고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Morris, Kiddle, Bruce). (4) 혹자는 뒤에 언급되는 바벨론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dd). 문맥상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한편 '만국의 성들'은 짐승을 따르던 지상의 모든 국가들을 나타내는 말로서(17:12-14), 그것들이 무너졌다는 말은 전세계에 걸쳐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멸망함을 시사한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 바벨론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더러운 영'과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으며(18:2), 땅의 왕들이 그와 함께 음행 토록 했으며, 상인들도 그의 세력을 인해 치부하게 하였다(18:3). 이러한 바벨론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하나님께서 잊지 않고 그에 따른 응분의 진노를 부으신다.

=====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 여섯째 인이 떼어졌을 때에도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 옮겨졌다(6:14). 이러한 표현에 대해 혹자는 엄청난 지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하나(Mounce), 혹자는 최후 심판에 일어나는 대격변을 인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Beasley-Murray). 여하튼 이것은 마지막 일곱째 대접 재앙으로 인하여 지상의 피조 세계가 파국을 맞게 됨을 시사한다.

=====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 '달란트'(* , 탈란티아이아)는 시대에 따라서 그 무게가 같지 않았으나 대략 60파운드 에서 100파운드 정도 되었다. 이러한 엄청난 무게의 우박이 재앙으로 주어진다. 구약성경에서도 우박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적들을 심판하신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수 10:11). 그러나 이러한 극심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짐승을 경배하는 불신자들은 우박의 재앙으로 더욱 마음이 강퍅해진 애굽 왕 바로와 같이(출 9:35) 회개치 아니하고 그 재앙으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한다.

 

 

 

 이제 우리는 천사들에게 땅에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으라는 명령을 함을 본다. 드디어 역사속에서 햐나님의 막을수 없는 진노는 일어난다.
(계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제 5막 제 1장:첫째 대접-땅을 침
(계16: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첫번깨 천사가 진노의 대접을 땅에 쏟았다. 땅을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첫째 나팔과 같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르다. 이제 막바로 사람들에제 그 진노가 임하제 된다. 악하고 독한 헌데가 나는 것은 애굽에 내린 여섯번째 재앙과 사무엘상 5장의 언약궤가 블레셋 지방의 가는 곳곳마다 전염병을 일으킨 속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두가지 내용이 다 본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①애굽에 내린 재앙의 모습은 그로 인하여 바로가 더욱 강팍하게 되어서 결국은 파멸로 가게되는 것과 같이 대접의 재앙에서 점점 더 강팍해지는 악인들의 모습을 보게된다.
②블레셋에 내린 재앙이 하나님의 언약궤와 연결이 되어서 언약백성의 원수들을 향한 진노라는 점에서 연결이 된다. 대접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지만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제 5막 제 2장:둘째 대접-바다를 침
(계16: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둘째가 바다를 대상으로 하는 점에서 둘째 나팔과 같다. 그러나 그 상황은 점점 더 악화 되어서 1/3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죽게 된다. 상태는 최악의 사태이다.

제 5막 제 3장:셋째 대접-강을 침
(계16:4)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계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계16: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계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셋째가 강과 물 근원과 연결되는 점에서 역시 세째 나팔과 연결된다. 그러나 세째 대접재앙에서는 이 사실을 사건보다는 그 재앙의 당위성에 강조를 더 두고 있다. 그것은 두가지 대화의 형식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①5절은 15:3,4과 연결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다는 것이다.
②7절은 6:9,10과 연결이 되고 있다. 순교자들은 제단아래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제단에서 세번째 대접의 사건에서 그 기도의 응답을 보고 하나님의 참되시고 의로우신 심판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미 역사 속에서 계속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의인의 피에 대하여서 종말론적인 심판 이전에도 계속적으로 임하고 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단순히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가?

제 5막 제 4장-넷째 대접:하늘을 침
(계16:8)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계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네째가 대접을 해에 쏟은 것은 네째 나팔과 비슷하나 나타난 현상은 그 반대이다. 그러나 중요한 관심은 현상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나타내려는 의도이다. 네째 나팔에서는 낮과 밤의 1/3의 빛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목적은 9:20,21에 등장하는 대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 일으켜 회개케 하려는 목적이다.
 여기서는 그 목적이 진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침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상상은 오히려 전체적인 의미를 흐려놓을 뿐이다.
 이 진노가운데 재앙속에서 저들은 신의 진노임을 알고 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완악하여겨 가고 있다. 이는 출애굽기에서 에굽에 재앙이 내릴수록 더욱 강팍해 지는 바로의 모습과 연결이 되며, 그로인하여 하나님의 더 큰 진노와 파멸로 접어들게 됨을 보게된다.

제 5막 제 5장:다섯째 대접-짐승의 보좌를 침
(계16: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계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다섯째 대접은 직접적으로 짐승의 보좌에 쏟아졌다. 여기의 짐승은 13장 전반부에 나오는 바다에서 나오는 검승이다(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연결이 되어 있다).
 짐승의 보좌는 사단이 이 땅에서 역사하는 가장 큰 규모이며,가장 하나님 나라의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대적의 규모이며 악의 제도이다. 그러나 그 악의 제도들이 결코 마음대로 활동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다스리는 분은 역시 하나님이시다(단4:17, 25,32).
 여기서 중요한 해석적 단서는 짐승의 보좌와 나라라는 말이 동일한 의미로 연결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특별히 나라의 어떤 제도가 정권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세상의 어떤 나라이든지 그들이 시행하는 제도들 속에서 사단은 교회를 파멸시킬 방법을 동원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그 방법들은 교회를 파멸시키고 성공할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저들이 하는 일은 자기들의 일을 반대하는 성도들의 몸을 죽임으로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순교자의 숫자를 채울 뿐이며(계6:9-l1), 오히려 하나님은 그 제도를 가진 권력을 향하여 진노의 대접을 부으시는 것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어두워지고 아파서 고통하며 종기가나는 표현들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진 결과로 보좌(나라)가 점점 어두워지고 쇠퇴하여 가는 모습으로 보는 것이 가장 본문의 의미와 일치하며, 도덕적 영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역사에서 사단에 의하여 움직이는 짐승의 보좌들은 사라져 간다. 그러나 이 말이 13장에 나오는 짐승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니 사단은 다시 다른 나라와 권력속에 자신의 제도를 심어 놓는 것이다. 다니엘서에 나온대로 바벨론 제국속에서 짐승으로 할동하던 제도들이, 역시 메데 바사시대의 다리오 왕 때에도 역사하지 않았던가(단2-6장 참조)? 그러므로 어느 한 나라가 진노 속에 사라진다고 그 속에 도사리는 사단의 악의 제도가 사라졌다고 방심하지 말 것이다.

제 5막 제 6장:여섯째 대접-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아마겟돈
(계16: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계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16: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마도 종말론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겟돈"이라는 말을 듣지 않고 지나온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르는 그 내용은 아마도 많은 공포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 같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에 강조점을 두어서 이 본문을 해석하여야 하는가하는 문제이다. 그 가장 대별되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생각하여 보자.

1.이 사건을 실제적인 역사속에서의 전쟁으로 보려는 입장.
 여기서 유브라데강, 동방에서 오는 왕, 아마겟돈을 문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들은 대개가 요한계시록을 묵시적인 방법이 아닌 문자적인 예언으로 보려는 입장이며 주로 미래주의와 역사주의에서 나타난다.
 거기에서 나오는 내용은 주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설명이 되어지는데 그 싸움의 장소가 아마겟돈(일반적으로 이스라엘 하이파 남동쪽 수마일 떨어진 곳인 므깃도로 본다)이며 거기서 유브라데 강이 말라서 동방으로부터 온 군대들과 이스라엘이 싸운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동방으로부터 온 군대는 중국의 군대(50여가지 다른 해석이 있다)로 보며, 여기에다가 구약의 여러 부분들(에스겔38,39장 다니엘11장 등)을 여결시켜서 유럽 공동체와 소련과 미국까지 등장시키는 기발한 해석들이 등장한다(그러나 사실상 이런 해석들은 지나친 상상력의 공상소설은 되어도 건전한 성경해석은 결코 아니다).

2.묵시문학적인 방법에서 보려는 입장
 그러면 본질적으로 본문이 강조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역시 그 내용들 전체가 구약의 표상을 가지고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내용들을 우선 설명함으로 전체의 의미를 밝혀야 할 것이다.

1]"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14)
 이 표현은 분명히 구약의 표현이다. 그 대표적인 구절들을 먼저 살펴보자.
(욜2:11)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욜3:14)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여호와의 큰날은 바로 그리스도의 날,주의 날(고전5:5,2,빌l:6,고후114...)로 심판의 날이다. 이 여호와의 날에 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사단이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2]유브라데 강이 마르고 동방에서부터 왕들을 모음
 유브라데강이 구약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등장을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이미 개막에서 살폈듯이 언약의 측면이며, 언약에 근거하여서 유브라데강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던 동쪽 경계선이다(창15:18,신l:7,11:24,수1:4).
 그러면 그 강이 마르고 왕들을 소집하여 공격을 하면 어디를 공격한다는 말인가? 바로 언약의 백성을 공격한다는 표현임에 틀림이 없다.

3]실재적인 공격의 방법이 무엇인가?
 위에서 언약의 백성을 공격한다는 해석이 의미함이 무엇인지를 13,14절이 밝히고 있다.
(계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계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이는 땅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다.
①이 싸움은 누가 하는가?-귀신의 영이라고 한다. 13절은 그 귀신의 영의 근원을 밝히고 있다. 이는 동시에 증요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13장에 등장하는 두 짐승은 실제적으로 사단의 도구이며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는 귀신들이기 때문이다. 이 귀신들의 영이 전쟁을 한다.
②방법은 무엇인가?-이적을 행함이다. 사람들을 미혹하고 현혹하여 자기에게로 끌어 모은다.
③목적은 무엇인가?-전능하신 이의 큰 날, 즉 재림하시는 그날에 구원받을 자들을 파멸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4]이 전쟁에 대응하는 방법
 그러면 실재로 이 싸움은 세계의 어떤 장소에서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주의 재림을 앞두고 싸워야하는 영적인 전쟁인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싸워야 하겠는가?
(계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①주의 강림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②강림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이 말들이 시사하는 바는 귀신들이 우리 성도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큰 날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미혹하는 것임을 알수 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영적인 준비를 하여야 한다.
a.이유-주의 강림은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이다.
b.방법-깨어서 자신을 지켜야 현다.
 그러므로 여기서 등장하는 내용도 전쟁이 무엇인지를 가리키려는 것이 아니리 성도로 하여금 늘 준비하면서 살게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5]"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
 그 전쟁의 장소를 아마겟돈이라고 한다.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란 어렵다.  "아"는 히브리어 "하르"나 "아르"로 산[성]을 의미한다. 문제는 마겟돈이라는 말이다. 이 의미에 대하여서도 이 말이 장소를 가리키는지(의미는 상징적이라도),아니면 상징적 의미인지로 나누어 진다.

①상징적으로 보는 견해
 여기에 심지어 이스프세피(두개의 상이한 단어가 동일한 수치를 가질때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해석 방법)까지 등장시키나 히브리음으로 표현한 말이기에 히브리 말로 풀어야 한다. 마겟돈이란 마(명사를 만들기 위한 접두사)+가다드(①약탈하다,②군대,무리
를 모으다)+오(접미사)로 "군대를 모아들이는 그의 장소"라는 의미가 되며, 그렇다면 14-16절의 표현인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진쟁을 위하여 왕들을 모으더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심판을 위하여 열방을 모으는 예언적 기대와 연결이 된다(욜3:2,12). 그렇다면 아마겟돈이란 전혀 지리적인 의미가 없는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과 대결하여서 그들을 패배케 하실 종말론적인 대결을 표현한 것이다.

②지명으로 보는 견해(물론 그 지명의 의미는 상징적으로 풀더라도)
 마겟돈이라는 말을 이스르엘 평원에 있는 요새지인 므깃도(돈)라는 말로 보고 설명하는 것이다. 정말로 므깃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이미 위에서 이 전쟁이 영적인 전쟁임을 살폈다.
 그러면 므깃도가 상징적인 의미로 등장한 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구약에서 므깃도의 사건들 때문이다. 므깃도는 200회 이상의 전투가 일어난 곳으로 사사기 4장의 바락과 가나안인의 전쟁이나, 6장의 미다안에 대한 기드온의 승리등이 있은 곳이다. 그렇다면 그 전쟁을 아마겟돈으로 표현 한 것은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교회를 극심하게 핍박을 하는 그 어려운 역경의 순간에 하나님의 개입으로[사사시대에 사사를 보대듯이] 주의 강림으로(15절) 저들이 패배하고 언약의 백성들이 승리할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여섯째 대접은 사단의 세력의 멸망에 관한 진노이다. 대접의 성격이 세상을 향한 진노이지 성도를 향한 공포나 핍박이 주제가 아님을 기억할 때 아마겟돈이라는 말로 공상소설처럼 공포를 주는 내용에 미혹될 필요는 없다. 오해려 세상은 멸망의 자리로 나아가고 성도들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 5막 제 7장:일곱째 대접-간데 없는 세상
(계16: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계16: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계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마지막 일곱째 번 대접은 마지막 심판차체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이 악인에 대한 진노의 절정이기에 멸망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1.일반적인 마지막 대접의 서술
1]진노의 영역-공기가운데라고 함은 더 이상 설명이 없으나 마지막 영역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2]진노의 성격- "되었다(다 마쳤다)!"
 이 말자체가 이 진노로 하나님의 대적들이 끝나게 됨을 보게된다. 특별히 이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진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은 물론, 그 진노로 제단에서 드려지던 언약 백성의 호소가 그 언약의 하나님에 의하여 완성이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공의는 언약백성들의 대적들에게 이루어지고 만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들에게는 바로 복된 구원의 완성의 시간이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다.

2]마지막 진노의 상술
1]종말론적인 진동
(계16: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여기에서 특별히 지진이 강조됨은 종말론격인 배반자들을 향한 심판을 나타대고 있다(히12:25-27).

2]큰 성 바벨론의 멸망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특별히 여기서는 마지막 진노의 대상으로 큰 성 바벨론이 등장을 한다. 큰 성 바벨론의 문제는 17장 이하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는 서론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저들이 진노의 포도주를 받음이 마지막 멸망의 모습임을 복음이 증거하였고(14:10) 섬과 산이 없어짐은 마지막 날의 사건이다(6:14).

3]여전히 강팍한 성품
(계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한 달란트(50Kg)되는 큰 우박은 하나님의 심히 큰 진노임을 설명하며, 그 진노에서 저들은 하나님을 더욱 훼방하고 있다. 저들은 지옥에서도 완악하고 강팍함으로 하나님을 훼방 할 것이다.
 마지막 진노의 모습을 통하여 악인의 심판을 보게 된다. 마지막 승리는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제 5막을 끝내면서 관심을 끄는 한 마디가 있었다.
(계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계16: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여기서 관심을 끄는 말이 바로 바벨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그 앞에서도 외치는 복음의 내용이 있었다.
(계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여기서 관심을 끄는 말이 바로 큰 성 바벨론이라는 말이다. 세상을 향한 진노를 설명하는 중에 그 결론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큰 성 바벨론의 멸망으로 등장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올수 밖에 없는 질문인 "도대체 큰 성 바벨론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사실에 대하여서 다시 다루고있는 부분이 제6막의 내용이다. 즉 제6막의 내용에서 어떤 새로운 내용을 정하게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에서 다룬 큰 성 바벨론이라는 것에 대하여 상술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여야 한다. 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더욱 자세하여지고 앞에서 나오지 않았던 내용이 등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이야기는 이미 나타난 14,16장의 문맥에서 동시에 이해가 되어져야 할 부분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앞에서 나온 일곱 대접 재앙 뒤에 큰 성 바벨론이 등장을 하고 있지만 논리적인 순서로도 이 내용은 앞의 내용과 동시에 이해가 되어야 하기에 대접 재앙이 마지막 진노라고 함이 모순이 아니다.

 그러면 큰 성 바벨론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