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 '민간에'의 헬라어 '엔 토 라오'(* )는 문자적으로 '사람들 사이에'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롬 15:11;유 1:5). 한편 '거짓 선지자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과는 달리(1:21),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지 않고 자신들의 말을 하는자들로서(신 18:20;렘 14:14;23:21,32;겔 13:2-7) 하나님의 계시적인 뜻보다는 백성들의 기대에 맞게 거짓 예언을 일삼는 자들을 시사한다(렘 4:10;6:14;14:13,15;23:17;27:9,16-8;겔 13:10,Bauckham). 베드로는 수신자들 사이에 '거짓교사'들이있음을 논증하기 위해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거짓 교사'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일어났었나니'의 헬라어 '에게논토'(* )는 부정과거로 거짓 선지자들이 생겨난 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나타내고 있다(Lenski).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 '선생'은 '교육자'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지도자'를 가리킨다. 베드로는 '거짓 선생들'이 백성들을 미혹케 하는 역할을한다는 점에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과 비교함으로 백성들을 미혹하는 그들의 특성을 밝히며 경계시키고 있다(Bauckham, Green). 한편 '있으리라'의 헬라어 '에손타이'(* )는 미래 시제로 '거짓 교사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계승하여 분명히 일어날 것임을 암시한다(Lenski, Robertson, Cranfield, Green).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 '이단'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멸망케 할 이단'이라는 말은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사람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들어서게 함을 나타낸다. '가만히 끌어들여'는 함께 들여와 비밀리에 퍼뜨린다는 의미로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이 직접 미혹하는 것과는 달리 거짓 교사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미혹할 것을 시사한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 중 하나이다(고후 11:13-15;갈 2:4;유 1:4, Blum, Lenski, Green, Reicke).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 '사신'의 헬라어 '아고라산타'(* )는 '아고라조'(* , '구속하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권적인 인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출된 것과 관련이 있는 단어로(삼하 7:23), '거짓 교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하나님을 부인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구속 사역을 행하셨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意圖的)으로 부인하려는 자세를 가리킨다(3:5;막 10:45;딤전 2:6;계 5:9, Blum,Green, Alford).
=====2: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 '호색하는 것'은 온갖 종류의 반복되는 성적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방 종교들이 갖는 특성을 잘 나타내 준다. 거짓 교사들은 이방 종교에서 우상 숭배를 하며 성적 방탕에 빠지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미혹하여 집단적으로 타락한다.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 '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호도스'(* )는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 말로(행 9:2;19:9,23;24:14,22) '진리의 도'는 교리가 아니라 윤리적인 삶의 양태를 나타낸다(Grundmann, Bauckhan, Blum). 거짓 교사들의 부도덕하고성적으로 방탕한 생활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롬3:23,24;딤전 6:1).
=====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 '지은'의 헬라어'플라스토이스'(* )는 신약성경에서 본문에서만 언급되는 표현으로'목적 성취를 위해 조작한다'는 의미이다(Bigg, Mayor).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그릇된 교리나 논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미혹된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욕구와 이익을 채우려 한다(딛 1:11;딤전 6:6;유 1:16)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 '심판'과 '멸망'은 하나님을 거스리고 자신의 배만 위해서 사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내려질 심판의 명확성을 시사한다(Lenski). 또한 '지체하지 아니하며'와 '자지 아니하느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깨어 계시사 거짓 교사들의 죄악을 간과하지 않으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거짓 교사들의 죄악된 행위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키실 것이다.
=====2:4
본절부터 10절까지는 의롭고 공평한 심판에 대한 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수신자들을 미혹하고 있는 거짓 교사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 호 데오스...우크 에페이사토'(* ... )는 가정문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확실히 시행되었음을 뜻한다. '범죄한 천사'는 아담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 반역한 천사들을 가리킨다(창 6:1-4;유 1:6;계 12:7;20:1-3).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 '지옥'의 헬라어 '타르타로사스'(* )는 헬라 신화에서는 반역하는 신들이 형벌을 받는 곳이었으나 베드로는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특정한 장소로 언급한다(유 1:6;에녹서 10:4;54:4,5). 한편 '어두운 구덩이'에 해당하는헬라어 '조푸(* )는 문자적으로 '흑암의 쇠사슬' 혹은 '어두움의 결박'(유1:6)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결박당한 모습을 나타낸다(Green,Cranfield, Lensk, Gibson). 악한 천사들이 마지막 최후 심판을 기다리면서 고통 중에 기다린다는 종말 사상은 구약성경과(사 24:21, 22) 다른 사도들에 의해 이미 언급되었다(요 16:13;고전6:3;계 20:7-10).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지옥에 결박하여 두시고 마지막 심판 때가 되면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2:5
헬라어 본문에는 본절은 물론 6,7절에도 '카이'(* ,'그리고')가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실례가 계속됨을 나타낸다(유 1:5-7, Cranfield,Lenski).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는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심판을 의미하나(Bauckham), 문맥상 노아 시대의 악인에 대한 심판을시사한다. 베드로는 노아시대의 홍수를 언급함으로 하나님께서 현재나 미래의 악한 것들을 남김없이 심판하실 것임을 강조한다.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 '의를 전파하는'은 바울이 말하는 법정적 개념에서의 의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나타낸다(1:1). 한편 '노아와 그 일곱식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오그도온 노에'(* )이다. '오그도온'은 문자적으로 '여덟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노아가 여덟번째라는 의미가 아니라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과며느리를 포함한 여덟 식구를 나타낸다. 실제로 노아는 여덟번째가 아닌 첫번째로 방주에 들어갔다(창 6:9;8:18, Bauckham, Lenski). 베드로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구원받은 수가 적음과 심판의 명확성을 나타내고자 한다(Gibson, Bauckham, Reicke).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해당하는 헬라어 '코스모 아세본'(* )은 무관사 여격으로 노아 식구를 제외한 당시의 모든 세상이 죄로 가득 차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노아당시 죄악의 보편성(普遍性)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확실성을 나타낸다(Green).
=====2: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 베드로는 계속해서 창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성의 예를 들어 불심판에 대해 언급한다(3:6,7;유 1:7). '성'에해당하는 헬라어 '폴레이스'(* , '도시들')는 단지 '성'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유황과 불로 심판하셨음을 나타낸다(창 19:24-28;유 1:7). 한편 '멸망하기로 정하여'라는 어구는 오직 70인역에만 언급되는 것으로(LXX 창 19:29) 후세에 불의한 자들을 위해 미리 보여주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Blum). 소돔과 고모라 성은 마치화산이 폭발하여 주변이 온통 재로 덮인 것과 같이 실제로 온 성이 재로 덮였다.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 '경건치 아니할 자들'은 '경건치 않는 일을 행하는 자들' 곧 '배도자나 거짓 교사들'과 같은 자들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패역한 거짓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본이었다. '본'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 대한 그의 진노가 모든 세대에 알려지기를원하셨음을 암시한다.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무법한자'의 헬라어 '아데스몬'(* )은 부정 접두어 '아'(* )와 '본성' 혹은'자연적 양심의 법'을 의미하는 '데스모스'(* )의 합성어로 인간의 본성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음란한 행실'은 변태적 성욕으로 인한 반복되는 호색적 행위를 가리킨다(2절;창 19:4-11;벧전 4:3, Lenski,Robertson). 한편 구약성경에서 '롯'은 세상적인 죄악에 빠져 있었던 인물로 언급된다(창 13:10-14;19:6,8,16,33-35).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롯을 '의로운 자'로 언급하는 것은 외경의 전승을 따른 것으로(지혜서 10:6, Blum, Green, Bauckhan) 아브라함에 비해(창 13:1-13) 의롭다는 것이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에 비해 의로웠음을 의미한다. 또한 롯을 의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의 호색적이고 변태적인 성욕의 죄악에 빠져들지 않고 심령에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 구원을 받았다. 베드로는 롯의 구원을 언급함으로 하나님의 무조건적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며 수신자들로 하여금 낙심치않고 이단들에 대해 인내할 것을 격려하고 있다(Green, Reicke).
=====2:8
헬라어 본문에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 '왜냐하면')가 있어 롯이 불심판에서 구원받은 원인을 상술한다.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 '상하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사니젠'(* )은 '바사니조'(* , '괴롭히다', '고통을 당하다')의 미완료 능동태로 지속적으로 내적 고통을 당함을 나타낸다(마 8:6,29;계 9:5, Robertson, Gibson,Bauckhan, Calvin). 롯은 날마다 죄악된 생활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의 백성들을 대하면서 스스로의 내적 고민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Bigg). 이것은 롯의의로움을 나타내며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께서는 불법한 자들 가운데 거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여 고통하는롯의 모습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하신 것이다(창 19:4-11;전 7:20).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 본절은 4절에서시작된 심판과 구원의 실례에 대한 결론이다. '시험'의 헬라어 '페이라스무'(* )는 죄악의 상태에 빠지는 유혹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서 의로운 자가 당하는 시련을 의미한다(눅8:13;행 20:19;벧전 1:6, Chaine, Kuhn). 당시의 사람들이 죄의 유혹과 대항해 싸웠으니(Bauckham)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혹에 대항하여 싸우는 경건한 자를 시련속에서연단하시며 보존하신다(고전 3:13;10:13, Green, Clark).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 '형벌 아래 두어'의 헬라어'콜라조메누스'(* )는 '콜라조'(* , '형벌을 내리다')의 현재 수동태 분사로 (행 4:21) 형벌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다(Bigg,Green, Lenski, Robertson). 이것은 사악한 자들이 현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비적심판을 받고 있으며 최종적(最終的)인 심판이 아직 남아 있음을 암시한다(계20:11-15, Bauckham, Calvin, Blum, Spitta, Mayer, Kelly, Boobyer). 베드로는 본절에서 구원과 심판을 분명하게 대조하여 의인에 대한 구원과 사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다(Cranfield, Bauckham).
=====2:10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 '육체를 따라'의 헬라어 '오피소 사르코스'(* )는 관사가 붙지 않았으므로 '육체가 갖는 속성'을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신령한 속성을 따르지 않고 윤리적 죄악을 행하는 것을 나타낸다(Lenski, Blum).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 - '주관하는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혹자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Meyer, Bigg, Weiss, Wiesinger, Lensi). (2)혹자는 악한 천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engel, Schott). (3)혹자는 제도화된 교회의 장로들이 갖는 권위 즉 '교권'을나타낸다고 주장한다(Zahn). (4)혹자는 '정치 권력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lvin,Clark,Hofmann). 이러한 견해 중 첫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관하는 이'의 헬라어 '퀴리오테토스'(* )는 무관사로서 '주권의속성'을 나타내어(골 1:16;엡 21) 온 주주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멸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키신다.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 - '담대하고'는'당돌함'을 의미하며(Lenski, Robertson) '고집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다데이스'( )는 '아우토스'(* , '스스로')와 '헤도마이'(* , '즐겁게 하다')의 합성어로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거만한 행동을 가리킨다.한편 '영광있는 자'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제국적이고 행정적인 세력이라고 주장한다(Calvin). (2)혹자는 교회 통치자들이라고 주장한다(Bigg). (3)혹자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주장한다(Spitta, Kuhl, Alford, Blum, Green). 이 세 가지견해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유 1:8). 거짓 교사들은 당돌하고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수종을 드는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무시하고 업신여겼다.
=====2:11
개역성경에는 비교 접속사 '호푸'(* , '이에 반하여')가 생략되어 있다.'호푸'는 앞절의 거짓 선생들의 행위와 천사들의 행위를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함을 드러내고 있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이라고 주 앞에서 저희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하지 아니하느니라 - 본문은 더 큰 힘과 능력을 소유하였으나 송사하지 않은 천사들과힘과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적하고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을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 교만을 강하게 드러낸다(유 1:9;계 12:9, Alford, Chase, Gibson). 한편 본문의'천사들'은 '미가엘'을 가리킨다(Cranfield, Bauckham). 이들은 다른 천사들과 악한천사들보다 강하다(계 12:9). 이렇게 강한 미가엘조차도 자신이 직접 훼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모든 심판권을 하나님께 돌린다(유 1:9).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 베드로는거짓 교사들의 필연적인 멸망을, 잡혀서 도살(屠殺)당할 짐승에 비유한다(계12:11-13). 거짓 선생들의 무례하고 거역하는 행위는 천사의 행동에 비하면(유 1:10)아무런 생각이 없는 동물과 같은 것이다. 거짓 교사들을 비롯한 죄인들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적 진리를 잊은 채 다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간다(롬1:24,25).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 거짓 교사들의행동은 동물과 같이 근본적으로 이성 없는 무지의 소치이다. 사도 바울도 믿기 전에행한 자신의 행동을 무지의 탓이라고 밝혔다(딤전 1:13). 이렇게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불법을 행하며 대적하여 멸망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딤전 1:7, Clarke).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의 헬라어 '엔 테 프도라 아우톤 카이 프다레손타이'(* )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멸망 안에서 그들은 파괴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여기서 '저희 멸망 가운데서'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교사들을유혹하는 사악한 부패로'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Reicke). (2)혹자는 문자 그대로 저들의 멸망을 의미하여 멸망의 확실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lumptre,Lenski). (3)혹자는 '저들 자신의 부패스런 행위로 말미암아'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Wand). 세 가지 견해 중 두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하면 '멸망 가운데서'가'카이'(* , '그리고')라는 접속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거짓교사들은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결과 반드시 멸망할 것임을 시사한다.
=====2: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남들에게 불의하게 행한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도 속임을 당하고 보응을 받음을 의미한다(Cranfield, Green,Blum, Mayer). 이러한 예는 불의하게 예언하려다 멸망한 발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민24:11).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 '낮에'에 대해서 혹자는 '날마다'(Meyer,Alford, Auther)로 이해하고, 혹자는 '매일'(Oecumenius)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나'낮 시간에'(Zahn, Bigg, Strachan, Blum)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연락'의헬라어 '트뤼펜'(* )은 사치스럽고 자유 분방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눅7:25, Gibson). 취하고 방탕한 생활은 일반적으로 밤에 이루어지나 거짓 교사들은 이들보다 더 악한 자들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한다.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 '점과 흠'은어떤 모양을 손상시키는 오점을 말하는 것으로(엡 5:27;벧전 1:19) 거짓 선생들의 불의한 행동을 가리킨다. 또한 '간사'는 '어리석음' 혹은 '속임'을 뜻한다(Robertson,G-reen, Lenski).본절은 거짓교사들이 낮에도 밤처럼 향락(享樂)에 빠진 생활을 즐길 뿐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모임에서도 역시 자신들의 술 취하고 음행하는 방탕한행위로써 불의를 드러냄을 시사한다.
=====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마음속에 있는 음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묘사한다. '음심'의 헬라어 '모이칼리도스'(* )는 문자적으로 '음녀' 혹은 '간음하는 여인'을 의미한다(마12:39;16:4;롬 7:3;약 4:4). 본문은 음탕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거짓교사들의 방탕한 생활은 전혀 만족이 없으며 그들은 지칠줄 모르는 육적인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악된 삶에 빠져 지내게 된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 '굳세지 못한 영혼들'은 본서의 수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3:16) 베드로 자신의 연약했던 과거를 암시한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네가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눅 22:32)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의 미혹 가운데 있는 수신자들과 자신을 비교했음이 틀림없다(Green, Gibson). '유혹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델레아조'(* , '꾀다', '미끼를 달다')에서 유래된 말로 (18절, 약 1:4) 거짓 교사들의 전형적인 속성을 시사한다(Gibson,Green, Lenski, Blum). 거짓 교사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의 거짓된 가르침으로 꾀어 그들의 방탕한 생활에 동참하게 한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 '연단된'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귐나스메넨'(* )은 완료형 분사로 '체육으로 몸을 단련하다'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탐욕적인 생활이 이미 습성화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저주의 자식이라'는 것은 전형적인 히브리식 표현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있도다'라는 의미이다(눅 10:6;엡 2:8; 5:8;살후 2:3;벧전 1:14, Blum,Lenski, Clark). 이것은 그들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탐욕을 '발람'의 예를 들어 책망한다. '바른 길'은 구약에서 흔히 사용되는 비유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진리의 도'(2절)를 가리킨다. 그리고 '발람의 길'이란돈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민 22:5-24:25) 부도덕한 것을교훈한 역사적 사실(민 31:16;계 2:14)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베드로가 거짓 교사들의탐욕과 불의에 대해 발람의 교훈을 예로 언급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을 함과동시에 거짓 교사들에게 멸망의 경고를 하기 위함이다(Blum, Reicke).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미스돈 아디키아스 에가페센'(* )은 문자적으로 '불의의행위로 말미암는 삯을 사랑한 사람'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민22:22-24)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도덕한 행동을 하도록 미혹하였던 구약의 발람의 예를 통해서(민 31:16;유 1:11) 불의한 삯으로 거짓된 모든 욕망을 소유하려는 거짓 교사들의모습을 지적한다(Calvin, Reicke, Green, Lenski).
=====2: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 발람에게 있어서 '자기의 불법'은 발락이 주는 불의의 삯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거짓으로저주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어긴 사실이다. 베드로는 발람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나 거짓으로 책망한 위선자였음을 나타내어 발람이 표리 부동한 거짓교훈을 전하는 죄를 범했음을 시사하고 있다(민 25:1-3;31:16;신 23:4;수 24:9;느13:1,2;계 2:14). 거짓 교사들의 죄는 이처럼 발람이 책망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책망을 받을 것이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본문은 발람이 책망받는 사건을 나타낸다. 본래 선지자의 직무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람이 자신의 소욕(所欲)으로 인해 거짓예언을 함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외면하였고 그 결과 짐승 곧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다. 베드로는 나귀에게 책망받는 발람의 예를 거짓 교사의 경우와 비교하여 거짓 교사들의교훈과 행위가 짐승에게 책망받을 만큼 사악한 행위이며 '미친자의 행위'와 다를 바없는 어리석은 행동임을 강조한다(Gibson, Clark).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 '물 없는 샘'은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무익함을 시사한다. 실제로 이스라엘 땅에는 물 없는 샘이 많았다. 그런데이렇게 '물 없는 샘'(창 37:24;렘 14:3)은 물이 갈한자들에게 실망만 가져다 줄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생들의 교훈이 샘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만족을 줄 수 없는 물 없는 샘에 불과하다(마 12:43;눅 11:24;요 4:13,14). 한편 베드로는거짓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상적 교훈을 '안개'로 표현한다(Green, Lenski). '안개'는마치 세상을 소유한 것처럼 세상을 자욱하게 덮고 있지만 광풍이 불면 한 순간에 걷힌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영적인 생명력을 주지 못하고(Bauckham) 일시적이며 견고치 못하다(막 4:37;눅 8:23;유 1:12, Blum, Green, Lenski).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 '캄캄한 어두움'의 헬라어'호조포스 투 스코투스'(* )는 '지옥'이나(Blum)사악한 자들의 종말적 운명을(Calvin, Green)나타낸다. 왜냐하면 '조포스'(*)는 특별히 '땅 속의 어두움'을 말하기 때문이다(Bag, Bauckham). 한편 '예비되어있나니'의 헬라어 '테테레타이'(* )는 '테레오'(* ,'유지하다')의 완료 수동태 분사로 이미 준비가 끝난 상태를 나타낸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영원한 심판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계획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테테레타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기업이 하늘에 예비되었음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마22:13;벧전 1:7,Gibson, Robertson).
=====2:18
개역 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의 이유임을 시사한다.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 '허탄한 자랑의 말'이란 허풍으로 부풀린 헛된 말을 의미하는 것으로(엡 4:17) 거짓 교사들의 사상적 속임수의 속성을 잘 나타낸다(Kelly, Gibson, Green). 그들은 사람들을 교묘하게 유혹하여 범죄하도록 유도한다.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이란 거짓 교사들은 물론 그들에 의해 미혹당한 이교도들을 가리킨다(Gibson). 이들은이성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들이다(12절). 한편 '겨우 피한 자들'의 헬라어 '투스 올리고스 아포퓨곤타스'(* )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서 겨우 벗어난 자들로서 초보 단계의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Bauckam, Green, Blum). 거짓 교사들의 계략은 집요하여서 신앙의 뿌리가 깊지 않아 굳게 서지 못한자들을 여지없이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Calvin,Reicke).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 '음란으로써'의 헬라어 '아셀게이아이스'(* )는 수단을 나타내는 복수 여격으로 '음란한 행위들로'를 의미한다. 이는 곧 '음란'이 이방인과 거짓 교사들의 대표적 속성일 뿐만 아니라 신자들을 넘어뜨리는 수단임을 뜻한다. 또한 '아셀게이아이스'가 복수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단순한 음란의 범위를 벗어나 육체를 이용한 온갖 종류의 음탕한 행위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Lenski, Robertson, Gibson, Reicke). 한편 '정욕 중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엔 에피뒤미아이스'(* )에서 전치사 '엔'( , '안에')은 '습성'이나 '환경'을 나타내는 것으로 (Gibson) 거짓 교사들과 저들의 유혹에 빠져 있는이방인들의 삶이 정욕의 노예가 된 상태임을 시사한다(2절, 고전 6:12-20,Reicke).
=====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나 이들에게 미혹당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영광의 자유(롬 8:21) 혹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고전 8:9;10:23;고후 3:17)를 오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갈 5:1;요 8:32) 자신들이 허탄한 가운데서 행하는 방종을 혼돈한다(3:15,16)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하면 온갖 율법과 육체에서 해방되어 윤리 생활에 구속받지 않는 자유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신앙이 깊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였다(18절).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 '종들이니'의 헬라어 '둘로이휘파르콘테스'(* )는 분사 구문으로 거짓 교사들이나 배교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를 처음부터 오해하여 멸망의 종의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비록거짓 교사들이 입으로 자유를 준다고 떠벌려 미혹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율법하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할수 밖에 없다(Gibson, Bauckham, Green, Blum).
누구든지 진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됨이니라 - 본문은 당시 흔히 있었던 상황을 묘사하여 거짓 교사들의 종말을 암시한다. 당시 전쟁에서 패한 국가의 백성들은 무조건승리한 국가의 종으로 끌려 갔었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해 죄의 정복을 당하여 죄의 노예가 되었다(요 8:34). '종이 됨이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둘로타이'(* )는 '둘로오'(* , '노예로삼다')의 완료 수동태로 이미 '종이 되어온 자'를 의미한다(롬 6:16;8:21).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자유'를 준다고 말하기 이전부터 범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된 상태였음을시사한다.
=====2:20
만일 저희가 - '저희'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혹자는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Bengel, Muller, Strachan).(2) 혹자는 본서의 수신자들로서 일반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Zahn). (3)혹자는 거짓 교사들이라고 주장한다(Cranfield, Meyer, Alford). 이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와 마지막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즉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배교자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 '주 되신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언급하는 것은(1:1-3,8)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지식의 원천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Lenski). 한편 '피한'의 헬라어 '아포퓌곤테스'(* )는 부정과거 능동태 분사로 과거에 이미 완전히 피하였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것은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정한 지식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방인 시절에 즐겨했던 죄악에서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 '다시...얽매이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팔린 엠플라켄테스'(* )는수동태 분사로 또다시 더러움에 속박되어 죄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14,18,Gibson, Robertson, Lenski). 이방인이었다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된 그리스도인이 거짓 교사의 미혹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면 그리스도를 믿지않던 이방인이었을 때보다 훨씬 더 악하여진다(마 12:45;눅 11:26;히 10:26)
=====2: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저희에게 나으니라 - '의의 도'는 '진리의 도'(2절) 혹은 '바른 길'과 같은 개념으로'기독교의 복음'을 의미하며(마 21:32) '거룩한 명령'은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를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윤리적 규범이다(2절;막 5:1-7:29, Blum, Green,Lenski). 한편 '저버리는 것'의 헬라어 '휘포스트렙사이'(* )는 '되돌아 오다'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의 도를 받아들인 자가 그 도에서 돌이켜 배도한 것을시사하며 '알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도를 접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베드로는 본절에서 배교자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을 내세워 더욱 패역(悖逆)해지며 고집스러워져 다시금 회개할 소망조차 잃어버리게 됨을 나타내고 있다(2:20;3:18;히3:12-14;4:6;10:26,38,39, Cranfield, Blum, Green).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 베드로는 거짓 교사와 배교자에 대한 경고를 하나의 속담으로 결론짓고 있다. '참 속담'은 '진실한 속담'이란 뜻으로 속담의 내용이 저들에게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 이는 잠 26:11의 인용이다. 또한사 56:10에도 유사한 비유가 언급되어 있다. 본절은 개가 자신이 토하여 놓은 것을 조금 후에 다시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이 다시금 원래의 본성대로 즉 죄악의 길로 되돌아감으로 스스로 멸망의 길을 택했음을 가리킨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 거짓 교사를 돼지에 비유하는 두번째 비유는 헬라의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오는 격언으로(Bauckham) '개'의 격언에서와 같이 과거로 되돌아 간 배교자들을 강조한다. 돼지가 씻어서 깨끗하여졌으나 곧 다시 더러운 구덩이에 가서 뒹굴어서 더러워지는 것과 같이 본문은 거짓 교사들이 한번 옛 생활을 잠시 떠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과거를 잊지 못하여 결국은 죄악의 쾌락으로 빠지게 됨을 시사한다. 한편 '개와 돼지'는 유대인들에게 부정한 동물로 간주되었고, 주님도 진리의 말씀에 대적하는 자들을 비유할 때 사용하셨다(마 7:6). 베드로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가 배교하는 자들이 얼마나 죄악에 탐닉하기 쉬운가를 드러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경계토록 권면한다.
앞장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베드로는 믿음 안에 있는 성도들을 혼란케 한 거짓된 가르침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초대 교회 안에는 거짓된 교훈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의 잘못된 가르침은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켰다. 그중에 하나가 윤리 의식(倫理意識)의 결여였다. 그래서 베드로는 성도들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1:10)할 것을 권면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욕(情欲)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역설한다.
이제 본장에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장에서 우리는 신약성경의 전형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참과 거짓 사이에서 분별없는 행동을 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깨어 있어 바른 길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영들은 때때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성도들에게 다가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르침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미혹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실상은 사단의 사자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면서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구별해야 한다. 이에 베드로는 본장에서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아울러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반드시 임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1) 주제의 진행 과정. 1장에서 베드로는 성도들의 윤리적 삶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포괄적인 일련의 덕성으로 나타내야 하며(1:5-7),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1:10)해야 한다. 성도들이 이렇게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게 된다(1:11).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로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였다.
베드로가 이렇게 신자들의 윤리적인 삶에 대하여 강조한 것은 거짓 교사들과 선지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기인하였다. 그들은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가볍게 생각했으며, 성경의 권위조차도 인정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이러한 점을 바로잡고자 본장에서 거짓 교사들의 실상을 폭로하고(1-3절),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서 구약의 전례(前例)를 들어 경고하고 있다(4-9절). 그리고 거짓 선생들의 특징들(10-19절)과 그들의 받을 심판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함으로써(20-22절)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바로 알아 미혹되지 말 것을 가르친다.
(2) 중심 주제. 본장의 중심 주제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이다. 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로 부각된다.
첫째는, 윤리 의식의 결여이다. 그들에게는 교만(10,11절), 음란(2, 10-16,18,19절;
3:3), 탐심(3,14,15절)이 가득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된 삶의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았지만, 그것은 성경을 억지로 푼 것에 지나지 않았다(3:16절). 특별히 그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바울이 말한 자유는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라 죄를 안 짓는 자유였다. 그것은 육신을 노예화하는 폭정(暴政)으로부터의 자유였으며, 봉사를 포함하는 자유였다"(J. Gresham Machen).
둘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부정이었다(3:3,4).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생각은 성도들이 윤리적 삶을 사는 데 강한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만일 심판의 종말이 없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성도의 삶의 의미는 약화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육체가 즐거워하는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3) 내용 분석. 본장은 크게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단락(1-3절)은
거짓 교사들의 출현과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두번째 단락(4-10a)은 그들이 받을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세번째 단락(10b-19절)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네번째 단락(20-22절)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운명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을 도표화하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
+--------------------+------------------------+---------------+----------------+
| 거짓 교사의 출현과 | 불의한 자의 심판과 | | |
| 특징 | 경건한 자의 구원 | | |
| ( 1-3 절 ) | ( 4 - 10a 절 ) | 거짓 교사들의 | 거짓 교사들의 |
+--------+-----------+---+---+-----+----------+ | |
| 1 절 | 2,3절 |4절|5절|6-8절| 9,10a절 | 불의 | 운명 |
+--------+-----------+---+---+-----+----------+ | |
|거짓교사|거짓 교사의|범 |노 | | 심판과 | (10b-19절) | ( 20-22 절 ) |
|의 출현 |특성 |죄 | | | | | |
| | |한 | | 롯 | 구원 | | |
| | | |아 | | | | |
| | |천 | | | | | |
| | |사 | | | | | |
+--------+-----------+---+---+-----+----------+---------------+----------------+
1. 거짓 교사의 출현과 특징(2:1-3)
베드로는 앞장에서 바른 교훈의 권위가 사도성과 성경에 있다고 언급하였다. 아마도 그것은 본장에서 다룰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근거가 사도성과 성경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거짓 교사의 출현과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자.
(1) 거짓 교사의 출현(1절). '거짓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명하지 아니한 말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며(신 18:20; 렘
14:14; 겔 13:2-7) 둘째는, 참선지자들에 의하여 지직된 미래의 심판에 대한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평안과 안전을 외친다(렘 4:10; 6:14; 14:13; 겔 13:10; 미 3:5,11). 이러한 자들은 예로부터 항상 있었으며(신 13:1-5; 왕상 22:5-28; 렘 5:31) 지금도 교회 안에 있어서 성도들로 하여금 바른 교훈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짓 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
첫째, 그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인'자들이다. 본문에 쓰여진 '끌어들여'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교회내에 있던 자들로 성경 밖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끌어온 자들이다. 베드로는 이들이 가지고 들어온 이론(異論)을 '멸망케 할 이단'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한다.
둘째. 이들은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본문에 쓰여진 '자기들을
사신'(톤 아고라산타 아우투스)이란 단어는 베드로전서 1:18이하에 기록된 '구속하다'(뤼트로오)와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셋째, 이들은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본문에 쓰여진 '임박한'( 타키넨)은 '곧 다가오는', '절박한'의 의미이다. 거짓 교사들은 주의 심판이 더디 온다고 가르치지만 주님은 곧 다시 오시고, 그들은 주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2) 거짓 교사들의 특징(2,3절). 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까) '호색함'(2절). '호색'( ,아셀게이아이스)은 문자적으로 '고삐가 풀린 정욕적 무절제함'을 뜻하며 이는 감각적 탐욕을 추구하는 성적 부도덕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베드로전서 4:3에는 '음란'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성도들의 부도덕한 삶은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실재(實在)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 주위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한다. 문제는 성도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그러한 이웃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때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첫번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다) '탐심'(3절).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의 동기는 탐심이다. 거짓 교사들은 탐심을 가지고 복음을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의 도구로 삼으려고 한다. 그들이 '지은 말'( ,플라스토이스)이란 '능란(能爛)하고 부드럽고 쉬운 말'을 뜻한다.
거짓 교사들은 언제나 부드러운 마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즉 '복음'이 빠져 있다. 그리스도가 교훈의 중심이 아니라 밖에서 끌어들인 어떤 것이 중심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자신의 이(利)를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다. 미가는 거짓 선지자의 이러한 속성에 대해서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친다"(미 3:11).
2. 불의한 자의 심판과 경건한 자의 구원(2:4-10a)
4절부터 10절 전반부까지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 일곱 구절들은 '만일...한다면'이라는 조건절에 걸려 있는데 세 개의 사건들(범죄한 천사, 노아, 소돔과 고모라)이 연결되어 서술되다가 9,10절의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고 경건한 자를 구원하시는'것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조건절에 걸려 있는 세 개의 예들은 9,10절의 결론을 도출하기 이해서 제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만일...한다면'이라는 조건절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편지를 읽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는 지금고 불의한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고 경건한 자에게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베드로가 그 증거로서 제시한 세 가지 예들을 살펴보자.
(1) 첫번째 예 : 범죄한 천사들(4절). 천사(天使)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적 존
재들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개자(仲介者) 역할을 한다. 성경은 천사들이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기는 하였지만 전능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준다. 천사들은 이사야 6:2에서 '스랍들'로 나타난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사람의 모습으로 나나탄다. 이러한 천사들은 원래 거룩한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루시퍼라고 하는 천사와 그에 속한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쫓겨나서 범죄한 천사들, 즉 마귀와 귀신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가두셨다(유 1:6).
(2) 두번째 예 : 노아(5절). 베드로가 두번째로 사용한 예는 홍수 심판과 노아의 구원이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에서 옛 세상은 홍수 이전에 노아가 살았던 시대, 죄악이 관영하고 사람의 마음과 계획이 너무 악해서(창 6:5) 하나님의 신(神)이 더이상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없는(창 6:3) 시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아니한 이들을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과 다르게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노아였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의(義)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기로 작정하셨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베드로가 노아에 대해서 설명할 때 '의를 전파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였다는 점이다. 노아는 타락한 그 시대를 향하여 의를 전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를 통하여 경고를 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노아는 120년간 방주(方舟)를 예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창 6:3)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심판을 120년 유보(留保)하셨고 그 기간 동안 노아는 힘써 의를 전파하였다. 그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것에 대하여 몹시 통분하였으며 그들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한 것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그 누웠던 자리에 다시 눕는 것'(2:22)처럼 이전의 삶을 버리지 못하고 물속에 수장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아와 그 일곱 식구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서운 홍수의 심판 가운데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
(3) 세번째 예 : 롯(6-9절). 베드로가 든 세번째 예는 소돔과 고모라 성(城)의 멸망과 롯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베드로는 이러한 예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후세에 경건치 아니한 자에게 본을 보이기 위하여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재앙을 내리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심판이 갖는 의의(意義)는 불의는 결국 파멸로 끝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소돔과 고모라의 성이 받았던 심판을 언급한다. 예컨대 모세는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의 멸망(신 29:23)을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할 경우 이스라엘에게 행해질 참화의 본으로 이것을 내린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외에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역식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본보기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예로 들었다(사 1:9; 렘 50:40; 겔 16:49; 암 4:11).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도 심판을 말씀하실 때 소돔과 고모라를 언급하셨고(마 10:15; 11:23,24) 유다서도 이 두 성을 예로 들었다(유 1:7).
소돔성에는 롯이 살고 있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창
13:13)임을 알면서도 롯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한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요단으로 가기를 원했고(창 13:10,11) 후에 소돔성에까지 그의 장막을 옮기기는 하였지만(창 13:12), 그의 잘못된 선택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였다'(7절)라고 말한다. 창세기 18,19장을 보면, 소돔성은 특별히 성적 타락이 아주 심한 곳이었다. 롯은 그런 곳에서 살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심판을 저지시켜 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그 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인 열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게 될 정도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롯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유지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롯의 고통에 대해서 베드로는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8절)고 말하였다. 롯이 날마다 보고 들었던 것은 불법한 행실이었다. 날마다 그에게 보이고 들리는 이야기들은 그의 심령을 상하게 하였다. 비록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 성 가운데 거하게 되었지만, 그는 그 성 사람들의 삶에 동화되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건지심을 받았다.
(4) 결론 : 심판과 구원(9,10절). 거짓 교사들은 마땅히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심판은 거짓 교사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순결함을 유지하려고 힘을 쓰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격려와 소망의 메시지가 된다. 베드로는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을 조정하신다는 것과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지키신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했다.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당신의 일들을 이루어 가신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9절). 이것이 베드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천사들과 악한 세상과 타락한 성읍들을 멸하셨던 것처럼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한 패역한 세대에 살고 있던 노아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음란한 행실로 인하여 고통을 받았던 롯을 구원하신 것처럼 지금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그의 백성들을 건지실 것이다.
3. 거짓 교사의 불의(2:10b-19)
본문은 거짓 교사들의 불의(不義)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1) 그들은 담대하고 고집스러웠다(10절). '담대함'은 자기 만족과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뻔뻔스러움을 의미하며, '고집스럽다'는 것은 '자기를 즐겁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며, 자기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뻔뻔스럽게 행하였다.
(2) 그들은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하였다. 거짓 교사들이 이처럼 영광 있는 자를 훼방한 것과는 달리 천사들은 거짓 교사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 앞에서 저희를 훼방하는 송사를 하지 않았다(10,11절). 그것은 아무리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께서 처리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한 배경에는 천사들도 자신이 마땅히 서야 할 위치를 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거짓 교사들이 자신이 서야 할 위치에 서 있지 못하고 오히려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느냐는 개탄의 마음이 깔려 있다. 베드로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하여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12절)고 말하였다. '이성 없는 짐승'은 거짓 교사들이 아무리 타고난 재질을 발휘한다고 할지라도 본능에 의해서 살아가는 동물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들과 달라 본능에 의해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살아간다. 거짓 교사들이 영적 무지로 인해 파멸되는 것에 반(反)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인하여 구원의 반열에 들어간다.
(3) 그들은 낮의 연락을 기쁘게 여겼다(13절). 거짓 교사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
(14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으며 범죄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신앙이 견고하지 못한 여성들을 꾀어서 자신들의 정욕을 채웠으며 탐욕에 연단되어 있었다. 베드로는 이러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저주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예로서 브올의 아들 발람을 든다(15절). 발람은 바른 길을 떠난 거짓된 예언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면 많은 물질을 제공하겠다는 발락의 말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가 그가 타고 가던 나귀에게 책망을 받았다(민 22-26장).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을 발람에 비유하면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교훈한다.
17절은 거짓 교사들의 장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물 없는 샘'이란 그들의 거짓된 교훈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처음 들을 때는 마치 사막에서 샘을 발견한 것과 같이 삶을 흥분시키지만 실상은 물이 없는 샘과 같아서 사람들에게 실망만 끼친다는 의미이다. 또한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란 아무리 안개가 땅을 적시려 해도 광풍이 오면 밀려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교훈은 가치 있는 그 어떤 것도 제공하지 못함을 뜻한다. 따라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행위는 헛된 일이다. 그들을 위하여는 오직 '캄캄한 어둠만이 예비되어'있을 뿐이다. 이것이 거짓 교사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교사들은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고 멸망의 탑을 점점 더 높이 쌓아가며, '허탄한 자랑'과 '음란'을 가지고 이제 막 미혹에서 겨우 피한 자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다.
본문에 나오는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은 과거에 이방신(이방신)을 섬기다가 이제 막 신앙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이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준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란 방종이었다. 이러한 자유는 원래 성도들에게 약속된 자유와는 다른 종류의 자유, 곧 육체의 정욕에 유혹당할 사람에게 약속된 자유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유함을 곡해하여 잘못된 교훈들을 따르고 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벧전 2:16)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4. 거짓 교사들의 운명(2:20-22)
거짓 교사들은 비록 입으로 신앙 고백을 한다고 할지라도 성경에서 말하는 의미의 믿음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준비된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모든 신앙 고백이 다 구원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도 믿음을 가졌노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변화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은 마치 '개가 그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그 누웠던 자리에 다시 누운 것'(22절)과 같아서 변화되었다고 말하면서도 이전에 정욕을 따라 살던 것을 버리지 못하고 더러운 길로 행한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가 된다. 예수를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 고백하고 나의 삶을 그분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지만 버려야 할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이전에 행하던 것을 다시 행하며, 그러면서도 자신의 신자됨에 한치의 의혹도 품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자가 당착이다. 한 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모습들은 그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숨겨진 의미이다. 바른 신앙 고백은 바른 삶으로 나타나며 거짓된 신앙 고백은 그의 삶을 통해 증명된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