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히브리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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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8:3-5, 23-26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 저자는 본문에서 `율법'과 '장차오는 좋은 일'의 대조를 통해 율법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 '율법'은모세의 율법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제사 제도를 포함한 모든 구약성경을 의미한다(Morris). 저자는 본절에서 율법을 두가지로 정의한다. (1) 그림자. '그림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키안'(* )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서 유래하는 '비실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의 종말론적 특성을 반영한다. 율법은 미래의 실체를 증언하는 과거의 증거이다(Williamson,Lane). (2)참 형상이 아님. '참형상'의 헬라어 '에이코나 톤 프라그마톤'(*  )은 문자적으로 `그러한 실체들의 형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슷하거나닮은 것이 아니라 초월적인 실체를 완전히 구현한 화신을 가리킨다(Bruce). 율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림자에 불과하며 초월적인 실체 자체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한편율법의 대조 개념인 '장차 오는 좋은 일'은 `톤 프라그마톤'(*  , '그러한 실체들')과 동일한 의미로 새 언약으로 이루어진 새 시대의 축복을 가리킨다(Peterson).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오는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서(9:11)이루신 구속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Michel,Cody).곧 영원한 구원과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의미하며 동시에 불완전한 옛언약이 성취할 수 없는 완전함을 뜻한다(5:9, Bruce, Hewitt).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 본문은 참 형상의 그림자인 율법의 한계에 대한 진술이다. `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 )의 어순에 대한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해마다'를 수식한다(NIV). (2)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를수식한다(NEB). 이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의어순도 '에이스토 디에네케스'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를 수식하고 있으며 본문이옛 언약인 율법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Morris, Montefiore). 이와 같이 옛 언약인 율법은 해마다 속죄일에 동물을 희생 제물로 드리는 재사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였지만 그 효력은 일시적이며 불완전한 것으로 죄를 제거하는 데에 아무런 효력이 없다(Peterson).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본절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논증이다. 본절의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이데신 하마르티온'(*  )은 문자적으로 '양심의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율법이 정결케 할 수 없었던 내적인 죄를 가리킨다. 율법에 의해서 행해진 희생 제사만으로는 외적인 죄만을 정결케 할 뿐 내적인 죄인 양심의 죄는 단번에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없었다(9:9). '정결케 되어'의 헬라어 `케카다리스메누스'(* )는완료 분사로서 최종적인 정결을 성취할 수 없었다. 만약 율법이 완전하여서 온전히 정결케 할 수 있었다면 매년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반복적으로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매년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율법의 불완전성을 나타내며 한계성을 시사한다.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음을 시사한다(Lane). 백성들은 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죄를 인식하게 되었으며(민 5:11-15)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나 징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저자는옛 언약하에서의 제사의 역할이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새 언약에서 약속을(8:12) 대조시켜서 반복적인 제사와 그리스도를 통해서 단번에 드린 제사 사이의차이점을 강조하고 있다(Bruce). 한편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나니'의 헬라어 '아남네시스'(* )는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 당신을'기념하라'하실 때에도 사용되었다(눅 22:19;고전 11;24, 25). 두 언약에 사용된 `아남네시스'는 옛 언약의 제사가 죄를 기억하고 그것을 용서받기 위해 매년 드려져야 하는 반면에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더 이상 죄를 기억지 아니하심을(렘31:34)비교하여 옛 언약의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다(Morris, Hewitt).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죄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황소와 염소의 피'는죄를 제거함에 있어서 '피'를 전제로 해야 함을 나타낸다(9:22). 이처럼 속죄일에 드려진 동물의 희생 제사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제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죄를깨끗이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나 양심의 죄까지 깨끗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황소와 염소의 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형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Hewitt, Berkhof, Bruce). 저자는 본절에서 희생 제물의피를 통해서는 죄를 제거하는 것이 불충분한 것임을 드러냄으로 죄를 완전히 제거해주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피를 강조하고 있다(Johnsson).

=====10:5,6,7
 본문은 시 40:6-8(시 39:6-9, LXX)의 인용이다. 시편은 본래 다윗의 시였으나 저자는 본문을 인용하면서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다윗에 관한 내용이 아닌 그의 자손 즉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인용을 통해서 옛 언약하에서 드렸던 희생제물보다 새 언약하에서 드려진 그리스도가 더 탁월함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성육신의 이유를 제시한다(Hewitt, Morris).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 '세상에 임하실 때'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 즉 성육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다음에 언급되는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와 연관된다(Hewitt, Lane). 저자는 이런 표현을 통해서 다음 인용문들의 화자(話者)가 다윗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임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 저자는 본문에서 옛 언약을 나타내는 네 가지 종류의 제사를 언급하고있다. 네 가지 제사 중 `올라'(* , '번제')와 '해타트'(* ,`속죄제')는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다섯 종류의 제사-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에속하며, '제사'(* , 제바흐)는 종류에 상관없이 동물 희생 제사를 가리키는것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화목제와 연관되며 '예물'(* , 민하) 역시 일반적으로 제사를 가리키나 레위기에서는 곡물 제사 즉 소제와 연관되어 사용된다.이러한네 가지의 제사는 레위기에 묘사된 주요한 종류의 제사들을 모두 내포하는 것으로 옛언약을 대표한다(Spicq, Hughes).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를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불만족은 제사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단순히 의식적인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결과 하나님의 불만족은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리는 새 언약을 맺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삼상 15:22;시40:6;50:8-10;51:16-17;사 1:10-13;66:2-4;렘 7:21-24;호 6:6;암 5:21-27). 하나님께서 만족해 하시고 열납하시는 제사는 자발적으로 드리는 마음에서 비롯된 제사이다(Taylor, Manson).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본문은 앞서 언급된 `세상에 들어올 때'와 연관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능동적인 순종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드린 제사가 율법에 의해서 드려진 동물 희생 제사보다 질적으로 우월함을 시사한다(8-10절, Lane). 한편 헬라어 본문은 70인역의 영향을 받아서 맛소라 본문과는 약간 상이하다. 맛소라 본문(MT)의 '귀'(시 40:7)가 70인역이나(시 39:7) 본문에서 `몸'으로 변화된 것에 대해서 혹자는 잘못 번역된 것이라고 주장하나(A. Kuyper, F. Bleek, G. Lunemann) 70인역자들이 일부러 '귀'를 '몸'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Bruce, Delitzsch). 70인역자들이 위와 같이 해석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1) 혹자는 구약 시대에 종이 귀를 뚫어 주인에게 평생토록 종노릇하겠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Hewitt). (2) 혹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귀로 들어 몸으로 행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Westcott). (3) 혹자는 신체의 일부인 귀가 신체전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Bruce). 이러한 세 가지 견해 중 첫번째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두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Morris).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 '두루마리 책'에 해당하는 헬라어'케팔리디 비블리우'(* )는 문자적으로 두루마리의 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토라 즉 모세 오경을 포함한 모든 구약성경을 의미한다(Bruce, Hewitt, Morris). 저자는 율법에 기록된 사실을 언급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성경 전체의 내용을 성취함은 물론 율법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음을 시사한다(막 14:49). 한편 본문은 70인역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헬라어 본문에는 70인역에 언급되어 있는 두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무'(* ,'나의')와 '에불레덴'(* , '내가 원하옵건데')이다. 저자는 70인역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내용을 생략시킴으로 인용문 전체를 보다 더 자연스럽게 기독론적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을성취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세상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한다(Lane, Kistemaker).

=====10:8,9
 본문은 5-7절의 인용문에 대한 설명으로 저자가 그 본문을 본서에 인용한 강조점을나타낸다.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 앞서 언급된 인용문(5-7절)에서는 '제사와 예물'의 헬라어 `뒤시안 카이프로스포란'(*  )은 단수로(5절), '번제함과 속죄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홀로카우토마타카이 페리 하마르티아스'(* )는 복수로 나타난다.반면에 본절에 언급된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 뒤시아스카이 프로스포라스 카이 홀로카우토마타 카이페리 하마르티아스)는 모두 복수이다. 본절에서 사용된 복수는 총체적인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네 종류의 제사가 구약성경에 언급된 모든 종류의 제사를 대표하는 것임을 나타낸다(Morris). 저자는 단수에서 복수로의 변화와 반복을 통해 율법속에 나타난 희생 제사들이 근본적으로 부적당함을 나타내고 있다(Lane). 즉 율법에 나타난 희생 제사들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뜻과죄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결책은 아니었으며 단지 방향만을 제시하는 부분적인 것에불과했다(Morris).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7절의 '말하기를'의 헬라어 `에이폰'(* )은 부정 과거인 반면에 '말씀하시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레켄'(* )은 완료 시상이다. 이러한 시제의 변화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의 지속성을 시사한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인용문 즉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는 시편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대한 본질적인 언급임을 의미함과 동시에 자신을 희생시킨 그리스도의 제사가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희생 제사임을 시사한다(Johnsson, Davidson, Lane).
 그 첫것을 폐하심은 둘째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아나이레이 토 프로톤 히나 토 듀테론 스테세) - 헬라어 본문은 구조적으로 교차 대구법으로 되어있다.  *  폐하심 그 첫 것 하심이라 그 둘째 것 세우려저자는 본문 자체를 교차 대구법으로 기록하면서 앞서 언급된 시편 인용의 목적을 기술하고 있다. (1) 첫 것: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첫 것'은 8절에서 묘사된 율법과 희생 제사를 가리킨다. 희생 제사는 율법에 의해서 규정된 제사로서 부분적인 것이며 불완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첫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적인 행위에불과했기 때문이다. (2) 둘째 것: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현된 하나님의 뜻이라 하겠다(Bruce). 둘째 언약 즉 새 언약이 효력이 있고 유용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리신 희생 제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언약 즉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세우신 새 언약은 옛 언약인 첫 것의 폐지를요구한다.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얻었노라 -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목적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한방법과 결과를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 '방법'은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는 것이다. `드리심으로'의 헬라어 `프로스포라스'(*  )는 70인역에서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된 용어이다(LXX, 시 39:7;단 3:38). 저자는 '프로스포라스'를 사용하여 효력이 없는 동물 희생 제사와 온전하고효력있는 희생 제사 즉 긋리스도의 몸을 드리는 인격적인 제사를 비교하고 있다(Taylor, Manson).그리스도께서 몸을 드리신 것은 완전한 것으로 더이상 반복될 필요가 없는'단번에' 드린 제사이다. `단번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파팍스'(* )는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의 절정인 십자가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대한 완전한 순종을 시사함과 동시에 구속 사역의 완전성을 암시한다(7:27;13:12, Bruce, Lane). 한편 그 '결과'는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거룩함을 얻었노라'는 말은 하나님께로 성별됨을 나타낸다.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본절은 1절과 비슷한 방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날마다 성소에 서서 자신의 직무를 행하였다. 지상의 제사장들이 '서서' 직무를 감당한다는 사실은 그 직무가 완성되지 않았으며 동물 희생 제사로는 죄가 온전히 제거되지 않아 양심을 온전히 깨끗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적으로반복되었음을 시사한다(Bruce, Lane, Morris).

=====10:12,13
 본문은 시 110:1의 인용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영원성을 나타낸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본문은 앞절에서 언급된 지상의 제사장들의 직무와 비교되는 예수의 대제사장 직무에대한 진술이다. '앉으사'는 지상의 제사장들이 '서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과 대조되는것으로(11절)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옛 연약의 속죄 사역과는 달리 온전히 성취되어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것임을 암시한다(Lane, Hewitt). '영원한'에 해당하는헬라어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 )는 부사구로 문법적으로 '드리시고'를 수식할 수도 있고 '앉으사'를 수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드리시고'를 수식한다고 보는 것이 본절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Morris, Westcott).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단번에' 드리신 희생 제사로 그 죄를 제거하는 효력은 더이상 반복할 이유가 없는 영원한 것이다. 한편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는 시편 110:1의 인용으로 등극(登極)하신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중보사역을 행하신다(8:1-6).
 그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 본문은 시110:1의 인용으로 시 8:6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이 굴복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등극한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고전 15:24-28)중보 사역을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나타낸다(Bruce).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중보로서(8:6) 모든 원수가 멸망할 때까지 중보 사역을 행하신다. 저자는 이런 진술을 통해서 이미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에 대해 승리하셨음을 암시하며 수신자들에게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당하는원수들의 자리에 동참하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다(3:14, Morris, Hewitt).

=====10:14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 '가르'는 본절이 10,12절과 연관됨을 시사한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 '한 제물로'의 헬라어 `미아 프로스포라'(* )는 10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 프로스포라스)와 12절의'한 제사를 드리시고'(* ,미안 프로세넹카스 뒤시안)와의 연관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본절의 강조점은 `미아프로스포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에있다(Lane).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제물로 드린 제사의영원한 결과를 시사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게 된 자들'로 만드셨으며 완전케 하셨다(Peterson). 그 결과 그리스도인은 단지 외적인 면만이 깨끗게 된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양심까지 깨끗하여졌으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Bruce).

=====10: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 '증거하시되'의 헬라어 `마르튀레이'(*  )는 현재 시상으로 성령께서 다음에 언급되는 렘 31:33,34의 예언 신탁을현재 말씀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사실은 성령께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새 언약을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서 실현시키셨으며, 새 언약의 약속이 현재의 그리스도인들과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10:16,17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하셨으니 -렘 31:31-34이 본문 외에 이미 8:8-12에서 인용되었으나 8장의 인용은 옛 언약의 희생제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반면에 본문의 인용은 그리스도인에게 미친새 언약의 완전성을 강조한다(Bruce, Lane). 그래서 저자는 본문에서 렘 31:31-34의내용 중 31:33,34만 선별하여 인용하고 있다. 저자는 이 선별된 본문의 인용을 통해서새 언약의 두 가지 약속에 대해 언급한다.
 (1)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 이것은 새 언약 하에 있는하나님의 백성이 더이상 외적인 율법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며 율법을 이마나 팔에 기록할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출 13:16;신 6:8).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결단과의지를 나타내며 내적인 생활을 가리키는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기 때문이다(Behm, Lane).
 (2)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 옛 언약 하에 있던희생제사는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어서 반복해서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지만(3절) 새 언약 하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더이상기억지 아니하시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하나님께서 더이상 그리스도인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희생이 더이상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제사임을 시사한다(Bruce, Lane).

=====10: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 앞서 인용된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는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인해 초래된 새로운 상황과 연결된다.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다시 기억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더이상 속죄제사가 필요하지 않음을 시사하며 동시에 십자가상에서그리스도에 의해 드려진 희생제사의 영원한 효력을 나타낸다(Peterson). 그 결과 새언약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19-22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 '그러므로'의 헬라어 `운'(* )은 본절이 속해 있는19-25절 단락이 9:1-10:18까지 전개된 논의의 결과적인 권면임을 시사한다(Michel,Morris) 한편 `형제들아'는 저자가 수신자들에게 간절한 권면을 하기에 앞서 애정어린호칭을 사용하여 수신자들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지상의 성소에 속한자들 중에서 오직 한사람 즉 대제사장만이, 오직 제한된 즉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담력'에 해당하는 헬라어`파르레시안'(* )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권리로(Lane)양심을 깨끗게 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 예수 그리스도의구속 사역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속죄 사역의 확실성을 시사한다(22절;9:9, 14, Bruce). 한편 '예수의 피를 힘입어'는 새 언약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저자는본서에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나타내는 `예수의 피'를 강조하여 진술하고 있다(29절;9:12,14;13:12,20). 이는희생 제사적 측면에서(9:1-10;18) 예수의 대속적인 죽음을 강조하는 것이다(Lane).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길은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Lane). (1) 새로운 길이다. 이 `새로운 길'은 두 가지차원 즉 시간상으로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길이 그리스도의 희생 결과로 그리스도인공동체에게 현재 주어진 것임을 나타내며, 질적으로 옛 언약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새 언약에서는 변할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시사한다. (2) 산 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길이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여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임을 시사한다. 또한 이 길은 '휘장' 가운데 열어놓은 길이다. '휘장'은 성소와지성소를 분리하는 것으로서(Bruce, Hewitt)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없게 하는 장애물로 인식되었다(Hofius). 이렇게 장애물로 인식되었던 휘장은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 찢어졌으며(마 27:51;막 15:38;눅 23:45)그결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열려진 길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본문의 '휘장'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길'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NEB, Westcott). (2) 혹자는 '육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uce, Morris, Hofius, Johnsson, Hewitt, Moffatt). 이 두가지 견해 중(10절)과 '예수의 피'(19절)가 본문의 '저의 육체'와 연결되며 동시에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찢겨졌을 때 휘장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10:21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 본절은 4:14절과 병행을 이룬다. 큰 제사장'은 히브리어 '해헨 하가돌'(* , '대제사장')을 직역한 것으로(레 21:10;민 35:25, 28;슥 6:11)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우편에 앉으신 대제사장으로서(12-14절) '하나님의 집' 즉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공동체인 교회를 다스리시며 중재사역을 행하신다(Bruce, Michel, Hewitt).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 '마음에 뿌림을 받아'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피를 뿌림으로 깨끗하여진 것을 연상케 한다(출 29:21;레 8:30).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마찬가지로 새 언약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옛 언약하에서 깨끗게 할 수 없었던 양심이 온전히깨끗게 되어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맑은 물'의 헬라어'휘다티 카다로'(* )는 70인역에서 정결 의식에 사용되는물을 가리킨다(민 5:17;겔 36:25). 그러나 본절의 '휘다티 카다로'는 육체의 외적인더러움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적 정결을 통해서 깨끗게 된 양심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나타내는 것이다(Bruce). 따라서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성취된 내적 정결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징으로 '세례'를의미한다(Windisch, Bruce, Morris, Spicq, Dahl).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내적인 정결을 경험하고 세례를 통해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고백을 한 그리스도인은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에게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것을 권면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1) 참마음.이것은 하나님께서 새 언약하에서 자기 백성에게 '새 마음'을 창조하시겠다는 약속을상기시킨다(렘 31:33). 이러한 약속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에게 성취되었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더럽혀진 양심은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정결케 되었다(18절;9:13,14).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진 양심 곧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Bruce, Morris, Hewitt). (2) 온전한 믿음.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서창조된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성과 확실성을 가리킨다(Morris, Lane). 그리스도인들은 대제사장이시며 자신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신뢰해야만 한다.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믿는 도리의 소망'의 헬라어 '텐 호몰로기안테스 엘피도스'(* )는 문자적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소망'이라는 의미이다. 이 '소망'은 예수의제사장적인 행위와 연관된 것으로 그 내용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이다(Lane).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행위에 의해 약속하신 종말론적 구원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의심치 말고 확신 가운데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소망 즉 종말론적 구원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굳게 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서신들이 흔히 교리편과 실천편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본 서신도 동일한 구조
를 지닌다. 더욱이 본장은 그러한 구분의 가교(架橋)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이제까지
저자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구속 사역에 초점을 두었거니와, 본장에 이르러서는 그
와 같은 교리적 내용을 마감지음과 동시에 독자들에게 실천적인 권면을 주고 있다.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하여 본장의 기록 동기와 본장 전체에 걸쳐 부각되는  중
심 주제 및 구조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기록 동기. 본장의 기록 동기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까) 유대교도의 복귀를 경고. 1세기말 경 유대계 그리스도인 중에서 유대교로 후
퇴, 복귀하려는 경향이 일어났다. 그들에게 유대교의 옛 제사 제도는 계속적인 매력과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기독교 내에서의 정교한 제사 제도의 부족함 등은 유대교로 돌
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부추겼다. 이러한 보수적인 복고주의(復古主義)가 대두된 데 대
해서 본장은 통렬한 경고를 주고 있다.
    (다) 고난과 박해의 상황. 임한 종말론에 대한 좌절감을 맛보고 있던 당시,  많
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즉 육체적인 고통과 재산의 약탈,  옥에
갇힘, 대중들의 조롱 등이 빈번했다(32-34절). 이 같은 고난에 직면한 유대계  그리스
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역경을 기쁘게 감수했으나 어떤 사람들은 박해를 견디지  못
하고 믿음을 저버릴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저자는 시종 일관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
게는 격려와 위로를 주고 배교할 위험에 놓인 자들에게는 경고를 주기 위해 본장을 기
록하였다.
  (2) 중심 주제. 본서는 '선포'(               ,케뤼그마)와 '교훈'(             ,
디다케)이 교차적(교차적)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교 형태를 보여준다. '선포와 교훈'
이라는 주제하에 본서 전체의 내용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       선    포    부    분         |         교    훈     부    분           |
+----------+-------------------------+------------+----------------------------+
|  본  문  |     내         용       |   본  문   |     내             용      |
+----------+-------------------------+------------+----------------------------+
| 1:1-3:6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 |  3:7-4:13  |믿음으로 얻은 안식          |
|          |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            |                            |
+----------+-------------------------+------------+----------------------------+
| 4:14-5:10|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  5:11-6:20 |영적 성장의 필요성          |
|          |사역                     |            |                            |
+----------+-------------------------+------------+----------------------------+
| 7:1-10:18|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  10:19-39  |변함없는 신앙               |
+----------+-------------------------+------------+----------------------------+
|? 11:1-12:2|믿음의 선구자요 완성자이 |  12:3-17   |그리스도를 바라는 소망      |
|          |신 그리스도              |            |                            |
+----------+-------------------------+------------+----------------------------+
| 12:18-29 |진노의 날의 심판         |  13:1-25   |마지막 당부와 축도          |
+----------+-------------------------+------------+----------------------------+
  여기서 선포는 교훈을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저자는  신앙
적 위기에 처한 당시의 독자들에게 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주요한 교훈으로  제시하기
위해 그와 같은 신앙적 논증을 취하고 있다.
  세번째 선포(7:1-10:28)는 예수의 대제사장직이 다른 대제사장직보다  더  뛰어남을
역설한다. 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7:1-28)이기 때문이다. 다른 제사
장은 레위 자손이며 레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으므로(창 14:17-20) 멜기세덱은 더 위대하다. 다른 제사장은 날마다 해마다 제사
를 드리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는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셨다.
  세번째 교훈(19-39절)은 예수 자신이 우리를 위해 휘장을 꿰뚫어 새롭고도 산  길을
열어주셨으므로(20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야함을 권고한다.
  요약컨대 본장의 중심 주제는 예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구속 사역에 그 강조점을 둔
전장과는 달리, 단번에 드린 예수 자신의 희생 제물을 통한 새 언약의 충족성(1-18절)
과, 공동체간의 신앙의 실천 및 사랑의 연합(19-39절)이라고 할 수 있다.
  (3) 구조적 특징. 본문은 크게 두 가지의 구조적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교차  대칭
구조이며 다른 하나는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 및 본서의 전후장들과의  상관성을  지닌
구조이다.
    (까) 교차 대칭구조(chiasm). 본장의 전반부(1-18절)는 두 개의 내용이 같은 짝을
이루는 대칭 구조를 갖는다. 이것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         1 - 4 절            |                |           11  - 14 절         |
+-----------------------------+                +-------------------------------+
|반복적인 구약 희생젱 나타난  +----+    +------+구약의 레위 제사장들은 그리스도|
|율법의 부적합성              |    |    |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으로  |
|                             |    |    |      |그 지위를 상실함               |
+-----------------------------+    |    |      +-------------------------------+
                                   |    |
+-----------------------------+    |    |      +-------------------------------+
|        5 - 10 절            |    |    |      |         15 - 18 절            |
+-----------------------------+    |    |      +-------------------------------+
|구약의 레뤼 제사장들의 반복적|    +----+------+반복적인 구약 희생제의 불필요와|
|인 희생제는 그리스도의 일회적+---------+      |새언약의 적합성                |
|희생으로 중지됨              |                |                               |
+-----------------------------+                +-------------------------------+
  위의 도식은 반복적인 구약 제사 자체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속죄를 희미하게 비춰줄
뿐 어떠한 사죄의 능력도 없음을 드러내며, 그리스도의 영원한 희생이 단번에  드려짐
으로 그 지위를 상실했음을 밝히고 있다.
    (다)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 및 본서의 전후장들과의 연관성. 본장의 후반부(19-39
절)는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들 및 본서의 전후장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연관성 아래 본장의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격려와 경고(19-39절; 5:11-6:12). 사랑의 격려와 동시에 수반된 엄중한 경
고의 패턴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자주 사용된 설교 형태(midrash)였다. 즉 본서는 헬라
문화권의 유대인 회당에서 사용된 설교들의 표현 양식과 연관된다. 그 유사성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동체의 특권적 신분과 실제적인 행동 양식 강조(19-25절/5:11-6:3).
  둘째, 배교의 위험에 대한 경고와 배교시에 따르는 처벌 강조(26-31절/6:4-8).
  셋째, 과거의 경험을 회상, 미래의 소망을 강조하는 목회자적인 격려와 간절한 호소
(32-39절/6:9-12).
  위에서 살펴보듯 저자는 당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지난 날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영적 성숙은 커녕 오히려 배교의 위험에 처한 자들에게 좀더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보
증하신다는 목회자적 권면을 하고 있다.
      (b) 믿음, 소망, 사랑. 본문 22-25절은 11-13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22-25절은 11-13장을 풀 수 있는 묘맥(苗脈)을 제공해 준다. 그 내용은  믿음,  소
망, 사랑이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      +---------------------+
|                    |      |                     |      |                     |
|   +------------+   |      |   +-------------+   |      |   +-------------+   |
|   |    22 절   |   |      |   |    23 절    |   |      |   |   24,25 절  |   |
|   +------------+   |      |   +-------------+   |      |   +-------------+   |
|   |    믿 음   |   |      |   |    소 망    |   |      |   |    사  랑   |   |
|   +------------+   |      |   +-------------+   |      |   +-------------+   |
|     (11;1-40)      |      |      (12:1-13)      |      |     (12:1-13:21)    |
+--------------------+      +---------------------+      +---------------------+
  그렇다면 왜 10-13장에서 신앙의 삼중주가 강조되었을까 ?  그 이유는 당시의  독자
들에게 믿음에 대한 무감각성과 고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성도로서 칭찬받을  만
한 과거(32절ff, ; 6:10)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에는 사랑과 신뢰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c) 고난과 박해. 32-35절은 '박해의 정황을 근거로 한 목회자적 권면'이다. 이
것은 초대 교회에서 사용한 박해에 관한 전통적인 설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
다. 혹자는 32-35절은 박해와 관련된 신약성경의 다른 본문(마 5:11,12; 눅  6:22,23;
벧전 4:13-17)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Nauck).
  저자는 독자들의 가혹한 현실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박해의 상황을 극
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첫째 단락(1-18절)은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유일한 참제사라는 논증적 선포요, 둘째 단락(19-30절)은 고난과 박해에 대한 성
도의 올바른 자세를 설명한다.

  1.유일한 참제사(10:1-18)
  앞에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해온 저자는 본문에서  율법을  좇아
드렸던 옛 제사의 불완전성과 그리스도의 일회적 희생의 온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제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자와 형상의 대조,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회성,
구약성경의 인용, 유일한 참제사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그림자'(         ,스키아)와 '형상'(           ,에이콘). 저자는 구약성경의
인물이나 관습들을 신약성경에 나와 있는 그것들과 대조시킴으로써  구약에  상응하는
신약의 성취를 발견해가고 있다. '그림자'와 '형상'의 대조는 그 한 예이다.
  본문의 초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첫째,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 참형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째, 율법을 좇아 해마다 드리는 제사로는 인간의  양
심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점이다.
+--------+------------------------------------------+--------------------------+
| 구  분 |          그     림     자                |      형        상        |
+--------+------------------------------------------+--------------------------+
| 언  약 | 옛 언약                                  | 새 언약                  |
+--------+------------------------------------------+--------------------------+
| 내  용 | 짐승의 피                                | 그리스도의 피            |
+--------+------------------------------------------+--------------------------+
| 특  징 | 불완전성, 반복성                         | 완전성, 단회성           |
+--------+------------------------------------------+--------------------------+
| 효  력 | 죄를 깨닫게 하나, 죄를 속할 유효성이 없음| 죄인된 인간을 온전케 함  |
+--------+------------------------------------------+--------------------------+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희미한 그림자밖에 볼 수 없다.  제사를  되풀이함은
사람의 범죄한 영혼을 정결케 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지 못한다. 제사는 사람들의 죄를 생각나게 해줄 뿐, 죄를 깨끗게할 유효성은 없다.
  (2) 그리스도의 희생의 단회성. '단번에'(2,10절) 드려진 그리스도의 희생은 율법에
의한 희생의 철폐요 율법의 완성이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은 완전한  희생(犧牲)이다.
구약의 제사는 매일 드리는데 반해 그리스도는 영원히 하나님의 우편에서  중보  기도
하신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제거하지 못하나 그리스도는 죄뿐만 아니라 대적자까지도
정복하셨다. 완전한 구원은 그리스도 단 한 분에 의해 이루어졌다.
  (3) 구약성경의 인용. 오직 유효한 제사는 예수의 희생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저자
는 예언자적 열정으로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까)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5절). 본문은 시편 40:6-9을 인용한 것인 바,  히브
리어 원문은 '나에게 열린 귀를 주셨도다'이다. 그러나 저자는 히브리어 원문을  인용
하지 않고, 헬라어 역문(70인역)을 인용하였다. 약 270년 경부터 알렉산드리아에서 히
브리어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그후 헬라어와 기타 역본들이 많이 사용되
었다.
  그러나 본문의 히브리어 원문과 헬라어 역본의 뜻은 같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 열
린 귀를 주셨도다'는 '당신이 나를 만지셔서, 내가 듣는 것을 다 순종하나이다'의  뜻
이다.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는 '당신이 나를 만드사 내 몸으로  당신의
뜻을 행케 하셨나이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논지는 무엇인가 ? 저자는  시편
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않으시고, 당신의 뜻을 '순종'하기를  원하
심을 피력한다.
  순종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유일한 제사이다. 하나님은 동물의 피로 드리
는 제사보다는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롬 12:1,2). 구약의  선지자들
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사보다 순종을 강조하였다(삼상 15:22; 시 50:14; 51:16,17; 사
1:10-20; 미 6:6-8).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셔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드리셨다. 그의 온전한  희생으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얻게 되었다(Barclay). 과연 우리는 수많은  군중들
틈에서 진정으로 순종하는 자를 찾고 계시는 그분의 음성에 어느 만큼 화답하고  있는
가 ?
    (다)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16절). 본문은  예레미
야 31:33,34의 인용이다.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첫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드려
새 언약을 세우셨으므로 우리는 다시금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 둘째, 새 언약
은 영적이며 내적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리신 희생으로 인해  하나님
과 인간 사이의 장벽은 허물어졌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 유일한 참 제사. 8-10절은 5-7절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7절)을 두 단계로 나누어 행하려고 오셨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형식적인 제사장 체제를 폐하는 단계이다. 즉 의식적 규례의 옛 제사장  체제를  그의
십자가에 못 박는 단계이다. 둘째는, 그 자신의 제사장 체제와 은혜의 언약이라는  가
장 순수하고 완전한 체제인 영원한 복음을 확립하는 단계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에
집중되고 완결된다. 왜냐하면 바로 이 뜻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이 단번에 드려지고 성
도는 거룩함을 얻기 때문이다.
    (까) 옛 제사의 반복성. 옛 제사의 실패는 그 반복이 분명한 증거이다. 만일 소기
의 효과를 냈다면 날마다 해마다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을 좇아 드렸다
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뜻에 거슬린다거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그 본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진정으로 참회하는 마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각종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
  둘째, 제사보다 순종을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과 구약 제사 제도가 상호 병존할
수 없음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새 언약이 세워진 이후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는  완전
히 폐기되어 버렸다.
    (다) 죄를 위한 '드려짐'. 예수의 드려짐(offering)은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더불
어 '드려짐'은 '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12,18절). 즉 '드려짐'과 '죄'는 한
문장 내에 있어야 할 연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리
고 우리의 거룩함을 위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신앙에서 '청결해졌다'(                    , 헤기아스메노이)는  뜻은
그들이 깨끗해 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 깨끗해졌다',  '그
분의 사역을 위해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성화(聖化)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의해 성취 되어진다. 또한 성화는 계속되는 과정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
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되어가는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NIV).  우리들은
날마다 계속해서 거룩해져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염소와 수소의 피를 제물로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리셨
다. 전자는 부분적인 정결만 해결해 주었지만, 후자는 인간의 더럽혀지고 죄던 양심을
온전히 정결케 하였다. 인간은 죄인이므로 유일한 구속 희생인  그리스도가  절실하였
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드려짐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역을 짊어질  자로  성별시켰
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이상 우리 자신의 육적인 성품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으며,  하
나님께 순종할 따름이다.

  * '하나님 우편'에 관하여.  우리를 위해 영원한 속죄제를 드리신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12절). 여기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의  의미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항복들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해당 구절. '하나님 우편'에 관련된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 구약성경에서의 예언 : 시 16:11; 110:1
    . 본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에서의 언급 : 막 16:19; 벧전 3:22
    . 본서에 나타난 언급 : 12절 ; 1:3,13; 8:1; 12:2
  이와 같이 '하나님 우편'에 관한 언급은 구약성경에서는 시편에  제한되어  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다른 본문들에 비해 본서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본서에서  희
미하게나마 '하나님 우편'의 개념이 중요함을 지적해 준다.
  (2) 기초와 활동 영역. 구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에  있다(시  11:4;
103:19). 하나님의 처소가 하늘에 있다는 생각은 솔로몬 이전부터 있어왔던  이스라엘
의 오랜 신앙이었다(창 11:5; 18:21; 28:12; 출 19:11;  신  4;36;  26:15;  시  2:4;
14:2). 하나님 보좌의 기초는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정이 아니라 '의와  공의'이다(시
97:2).
  성도의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참마
음으로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 데에 있다(요 4:24). 하나님은 보이는 화려한 건물을 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공의로 다스려지는 땅을 원하신다. 또한 성도들과 그들의 공
동체가 하나님의 전(殿)일진대,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서 살아 역사하신다.
  (3) '우편'의 속성.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장차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
이 되게 하실 때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 우편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의 완전한 희생으로 인한 최후의 승리(勝利)이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보
잘것없는 약자 같았다. 그러나 그의 약함은 곧 하나님의 승리를 의미한다. 우리는  늘
상 삶의 대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거대 세력 앞에 노출된 연약한 우리에게  그
리스도의 승리는 그 무엇보다도 풍성한 안위를 준다.
  둘째,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榮光)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종은 영광으로의 길
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은 하나님의  영
광에 이르는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2. 신앙의 실천적 자세(10:19-39)
  앞 단락에서 확고하고도 논증적인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에 대해 언급한 저자는 본
문에서는 논리적인 이론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전향하고 있다. 19
절이 '그러므로 형제들아'라고 시작되는 것을 볼 때 본문은 더욱더  신앙의  공동체를
향한 교훈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을 상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항목들에 초점을  맞추
어 보기로 하자.
  (1) 새생명의 길.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위해 열어주신 길은 휘장  가
운데로 열려진 생명의 길이다. 이 길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역할을 가능케 하는 터
전이 된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자마다 담력(膽力)을  얻었으므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로 나아갈 수 있게 된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 같은  하나님과의  긴말한
관계성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의 양태로 확산되어지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역할은 첫째,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22절). 둘째,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
게 잡는 것이다(23절). 셋째,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날이 가까울수
록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다(24,25절).
  그리스도인은 상호간의 영적 상태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지체 의식은 '생명의 길'의 의미를 체험한 자에게 나타나는 당연한 외적 증거이다. 당
시 본서의 수신자들은 신앙의 배교와 박해가 공존하는 상황아래서, 단순한 연합이  아
닌 진정한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짊어져야 할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더욱더 하나로  뜨
겁게 엮어져야 했다.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사실은 인간과 함께 하는 인간이다"라
고 말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깨어진 세계'에서 찢기고 또 자기도  찢으면
서, 분열되어 가고 있다. 이 시대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사랑과 겸손의 띠로 하나가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에게 요청된다.
  (2) 배교(背敎)에 대한 경고. '믿는 도리의 소망'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배교와  핍
박이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교란시키고 있었음을 밝혀준다. 그것은 모이기를  폐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는 공동체의 와해 현상이다. 본서의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
스도의 대속을 알면서도 믿음을 떠나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와 힐책을 하고 있다(26-31절). 배교와 관련하여 죄와 공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
자.
    (까) 죄의 정의. 배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악에 해당하는 바(26절),  이  죄는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것이다(29절). 이는 하나님의 도를 배척하며  모욕한
다는 의미를 지닌다(마 27:29,30,39-44).
      . 자기를 거룩하게 한 그리스도의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29
절). '부정한 것'(             ,코이논)은 '속된 것', '불결한  것'이란  뜻  외에도
'일반적인 것', '하찮은 것'이란 뜻을 지닌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하찮은 것으
로 여기는 동시에, 다른 인간의 일반거 죽음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이다.
      .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29절). '욕되게 한다'(                 ,
에뉘브리사스)라는 말은 성령을 '모독한다'는 뜻일 뿐 아니라, 성령의 사역을 '훼방한
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죄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성경은  누차  강조한다(마
12:32; 막 3:29; 눅 12:10).
    (다) 공의(公義)의 원칙. 이제 배교한 자들에게는 다시 속죄할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게  된다
(26,27절). 기독교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도 계속 고의적인 죄를 범하는  자는  다시
죄사함 받을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뿐이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는
(30절) 구약성경의 인용(신 32:35,36)은 비록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범죄한다면
공의의 원칙대로 처벌하심을 강조한다(욥 34:10-12). 우리는 한번쯤이야 하는  어리석
은 생각으로 죄를 범하며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는가 ?
  (3) 고난에 대한 자세. 본문에서 배교에 관해 언급한 것은 단순한 경고를  위해서만
이 아니라 고난에 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기 위함이다. 우리에게는  신앙적
으로 퇴보하여 멸망할 가능성과 전진하여 구원에 이를 가능성이 공존(共存)하고 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떠한 삶의 자세를 요청하시는가 ?
  모팻(Moffatt)은 '인내가 필요함'(36절)을 "강인한 인내가 바로 너희에게 필요하다"
라고 번역하고 있다. 앞으로 닥칠 박해라는 '미래의 불확실성'속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인내'였다. 극심한 생의 폭풍우 속에서 인내가 없다면  틀림없이
난파를 당하게 되듯, 저자는 독자들을 향하여 인내를 촉구하고 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소망을 기대하며 기도해 왔다.  그러나  재림의
지연(遲延)은 좌절감만을 낳았을 것이다. 이러한 때 저자는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합
2:4)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준다.
  하박국은 B.C. 7세기 경 불신앙과 불순종이 범람하던 사회에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
께 유다의 불의에 대해 탄원했던 선지자였다. 하박국의 이러한 정황은 1세기의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신앙을 기억케  했다(38
절).
  믿음을 소유한 자는 배교나 불신앙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
을 지키고 생명에 이르는 승리를 얻을 뿐이다(Bruce).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역경은
결코 해로운 적이 아니라 아주 귀중한 친구가 될 수 있다.

  * 성소 휘장(揮帳)에 관하여. 본장 2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소의 휘장을 열어
놓으셨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본 주제 강해를 통해서 '성소 휘장'의  종류와  위
치, 재료 및 그 의의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1) 종류. 성소 휘장은 본장 20절과 6:19; 9:3에 근거해 볼 때, 성전의 내부 곧  성
막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다. 이 내부의 휘장에 관하여는 출애굽
기 26:31-33; 36:35; 역대하 3:14 등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들에 의하면 성소 휘장
은 외부의 다른 휘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전문 용어이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은  성막
문에 치는 휘장과 구별하기 위해 때때로 '휘장 간막이'(출 39:34)라고  불렸다.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된 사람은 대제사장 단 한 사람뿐이었으며, 그것도  1년
에 한번 속죄일 하루뿐이었다(9:7; 레16:2ff.; 민 18:7).
  (2) 위치. 출애굽기 25-31, 35-40장에 기록된 성막의 자세한 구조는 매우  복잡하지
만 그 기본 골격은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즉 뜰(court), 성소(holy place),  지성소
(holy of holies)로 구성되어 있다.
    +--------------------------------------------------------------------------+
    |                                                                휘장      |
    |                                         +-----------------------+-----+  |
    |                                         |  0 등잔대      성소         |  |
    |       +-----+                           |                       |     |  |
 ---+---    |     |                           |           +--+           지 |  |
  입 구     |     |                          -+-          |  |        |     |  |
            |     |              O                        |  |           성 |  |
 ---+---    |     |            물두멍        -+- 제사상   +--+        |     |  |
    |       |     |                           |  +-----+  분향단         소 |  |
    |       +-----+                           |  +-----+              |     |  |
    |       번제단                            +-----------------------+-----+  |
    |                                                                          |
    +--------------------------------------------------------------------------+
  위 그림에서와 같이 성전의 입구는 동쪽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입구를 들어서면
뜰에는 아카시아로 만든 번제단(alter of burnt offering)이 있고, 이 번제단과  만남
의 회막(會幕) 사이에는 제사장들이 손과 발을 씻는 물두멍(놋대야,  laver)이  있다.
그 다음 서편으로는 '성소'가 있고 성소 안쪽으로는 '지성소'가 있다. 바로 이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揮帳)이 드리워져 있고(출 26:33) 그 휘장 안 지성소에는  아
카시아 나무로 만든 증거궤(법궤)가 있으며, 증거궤 위에는 양쪽 귀퉁이를 늘여서  만
든 그룹 형상이 서로 마주 대하여 보고 있는 모양의 속죄판이 덮여져 있다. 그리고 휘
장 밖 성소에는 입구 가까이의 오른편(북쪽)에 제사상(table of shewbread)이 놓여 있
으며 그 제사상 맞은편에는 등잔대(candelabrum)가 놓여 있으며 휘장 바로 앞에는  분
향단이 놓여 있다.
  (3) 재료. 휘장은 청색과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여져 있으며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놓아 만들어졌다(출  26:31-37;  36:35).  이에  관해  요세푸스
(Josephus)는 "휘장이 신비하게 조성되었다"고 말했다(War, V. v2).
  한편 휘장은 네 기둥에 의해 고정되었는데, 그 기둥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졌고
금으로 입혀졌으며, 기둥에는 금으로 된 갈고리가 있었다. 그리고 네 기중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각각의 받침이 있었다. 휘장은 기둥의 크기에 어울릴 정도로 상당히  두꺼웠
던 것 같다. 이 '두꺼운'휘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휘장은 브두인 천막보다 훨
씬 무겁다. 브두인의 천막은 함난한 사막 생활에도 견딜만큼 강하게 만들어졌다. 찌는
듯한 태양 열과 사정없이 몰아치는 사막의 모래 바람, 대낮의 회오리 바람에도 견뎌낼
만큼 탄탄하게 짜여져 있다. 이는 곧 브두인의 생활을 말해준다. 그 천막은 무겁고 견
고하며 확실해야 한다. 방수(防水), 방열(防熱), 방습(防濕)이 될 뿐  아니라  적들의
공격도 막아낼 정도가 되어야 한다. 휘장은 이같은 브두인의 천막보다 더 무겁고 견고
하였다. 브두인 천막이 브두인 생활의 중심이었듯이, 휘장은 유대 민족의 생활과 예배
의 중심이었다. 더욱이 휘장은 외부인들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메시야적 비밀'을  간
직하고 있었다.
  (4) 찢어짐의 의의. 예수의 죽음과 함께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
이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위로부터 임한다는 사실과 일맥  상통하며,  더불어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찢어진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휘장의 찢어짐에 관한 기록은 공관복음서에 등장한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
록하기 전에 이 휘장이 찢어진 사건을 언급하였다(눅 23:45). 마태와 마가는 그리스도
께서 운명하신 직후에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마 27:51;  막  15:38).
이러한 사건의 실제적, 상징적 의미는 본문에 잘 나타난다(19,20절).
    (까) 하나님과의 화해. 휘장은 예수 자신의 몸을 암시한다. 대제사장이 성막 가운
데 쳐져 있는 휘장을 젖히고서야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 나아갈 수  있었듯이,  예수
자신의 몸이 찢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비로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
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며, 관계의 회복, 곧 하나님과의 적극적인  교통
을 의미한다. 한편 '위에서부터 아래로'는 하나님과의 화해됨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달
려 있음을 뜻하며, 그리스도의 독특한 대제사장적 기능을 상징한다.
    (다) 모든 이들의 하나님. 이제껏 휘장은 불경스런 자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될  것
이었다. 또한 이교도들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두껍고 무거워야  했다.
지성소에서는 대제사장이, 성소에서는 제사장들과 신앙 깊은 자들이 메시야적  비밀을
엄호하면서 외부에 있는 여인, 어린자, 특히 이방인들로부터 철저히 구별하였다.
  하지만 찢어진 휘장은 하나님이 모든 이들의 하나님되심을 나타내는 사건이었다. 오
랫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방인의 하나님을 갈라놓았던 장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성전 밖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기다려온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찢어진 휘장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성전 안의 휘장이 찢기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하나님의 현존으로 충만하리라 믿고 있었던 그 거룩한  성
소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곳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
은 그곳을 떠나 참혹한 십자가가 서 있는 해골의 언덕에 계셨다.
  십자가상의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으신다. 휘장을 두 쪽으로 가르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 이방인과 이교도에게도 동일하게  공개되신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