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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 멜기세덱은...복을 빈 자라 - 본절은 창 14:17-20에 대한 언급으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살렘 왕이요 - '살렘'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estcott). (2) 혹자는 세겜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XX 창 33:18, Kirland). (3) 혹자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시 76:2, Morris, Lane, Vincent, Winter).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제정(祭政)이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에 왕이 제사장 직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최고의 하나님'이란 의미로(Hewitt) 하나님의 초월적인 신성을 암시한다(Lane, Hanlon, Philo).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이에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을 제사장으로 인식하여 십일조를 그에게 바친다(창 14:19,20).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 창 14:17-20(LXX)에서는 '아브람'으로 되어 있으나 본절에서는 '아브라함'('A )으로 되어 있다. 이런 변화가 있다 할지라도 저자는 본절의 내용을 70인역에서 인용한 듯하다(Lane). 한편 저자는 인용 과정에서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연합한 왕들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아브라함을 영접한 부분은 삭제하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사건과 아브라함이 얻은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준 사건(2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변개를 통해서 저자는 4-10절에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탁월함을 강조한다(Lane, Williamson).

=====7:2
 저자는 본절에서 멜기세덱의 두 가지 칭호를 제시한다.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 '멜기세덱'은 '나의 왕'을 의미하는 '말키'(* )와 '의'(義)를 의미하는 '체뎌'(* )이 결합된 형태로 문자적인 의미는 '나의 왕은 의롭도다'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미래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여호와 우리의 의'(렘 23:6)로 부른 것과 연결된다.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살렘'이라는 지명(地名)은 '평강'을 의미하는 '샬롬'(* )과 동일한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 '평화'로 번역될 수 있다(Morris). 장차 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왕'(사 9:6)이라 칭한 것과 연결된다. 저자는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의 의미를 통하여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참된 평강을 주러 오셨으며(마 11:28), 자신의 의를 통하여 공의가 넘치는 나라를 완성하며 다스리신다(사 9:7;11:1-5).

=====7: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파토르 아메토르'(* )는 사생아나 천한 신분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으며 경우에 따라 성적(性的)인 것을 초월하여 태어난 신적인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Morris). 이것은 저자가 멜기세덱을 천사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경에 멜기세덱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족보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나타낸다(Lane). 멜기세덱의 부모와 족보가 없다는 사실은 그의 탄생이 기적적으로 되어졌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제사장적인특질을 설명하려는 것으로서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탄생이나 족보와 같은 외적인 조건에 의해서 확립된 것이거나 레위M 통의 제사장직의 승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5:5, 6, Lane, Horton)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 저자는 멜기세덱의탄생과 죽음에 관한 언급이 창세기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에 착안하여 그의 제사장직이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임을 나타낸다. 저자는 이러한 예표와 강조를 통해서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다른 제사장임을 진술한다(Spicq). '방불하여'의 헬라어 '아포모이오메노스'(*   )는 '유사하여'라는 의미로 멜기세덱과 하나님의 아들이 외형적인 형태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 본문은 창 14:18-20의 내용에 대한 해석인 시110:5(LLX)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저자는 시110:5(LLX)의 '영원한'(* ,에이스 톤 아이오나)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항상'(* ,에이스 토 디에네케스)으로 변형시켰다. 이런 변형은 저자가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멜기세덱의 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7:4
 4-10절까지는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함을 논증한 진술이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 '어떻게 높은 것을'에 해당하는 헬라어 '펠리코스'(*  )는 영탄법(詠嘆法)으로 멜기세덱의 위대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일체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기술되고 있다. '노략물 중 좋은 것'의 헬라어 '아크로디니온'(* )은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아크로스'(* )와 '무더기'를 뜻하는 '디스'(* )의 합성어로 문자적으로 '쌓인 것들 중에 가장높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것을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주었다는 표현으로 전리품 중 가장 좋은 것을 받은 멜기세덱의 권위를 시사한다.아브라함은 단순한 개인이아니라 그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존재이다.이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주었다는 사실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멜기세덱에게 조상 아브라함을 통하여 십일조를 드렸음을 나타내며,멜기세덱이 레위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위대하고 우월함을 암시한다(Cockerill).

=====7: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 저자는 본절과 6절에서 십일조에 관한 문제를 놓고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비교하여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논증한다. 율법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인들에게십일조를 바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민 18:21, 24), 레위인들은 다시 그들의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도록 의무화하고 있었다(민 18:26). 이런 제도는 바벨론 유수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느 10:38,39). 이와 같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모두가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받아 기업으로 삼았다. 한편 '허리에서 난 자'에서 '허리'의 헬라어 '오스퓌오스'(* )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활동을 위한 준비 태세'나(왕상18:46) '힘의 근원'(나 2:1)을 의미하기도 하나 본절에서는 잉태와 출산에 관련된 생식 기능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라 할지라도 제사장들은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일조를 취했음을 나타낸다. 즉 제사장들이 백성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형제로서 본질적으로 동등한 존재이며 그들이 십일조를 걷을 수있는 것은 단지 율법이 그렇게 명시하고 있기 때문임을 나타낸다(Morris).

=====7: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취하고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율법에 의해 십일조를 거두었으나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았다(2절; 창 14:18-20).저자는 앞절과 본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 멜기세덱을 십일조를 받는 문제로 비교교하여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멜기세덱이 훨씬 우월한 존재임을 진술하고 있다.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 '그 약속 얻은 자'는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복을 빌어 주었다(1절;창 14:19,20). 고대 사회에서 축복의 행위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신분상(身分上)으로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Morris).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준 사실은 멜기세덱이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7: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빎을 받느니라 - '폐일언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리스 데 파세스 안틸로기아스'(* )는 파피리(Papyri)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관용구로서 저자가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바의 확실성을 강조할 때 사용된 표현이다. 한편 '높은'의 헬라어 '크레이트토노스'(* )는 비교급으로서 '더 나은', '더욱 탁월한' 혹은 '더욱위대한'이란 의미로 본서에 자주 사용된 용어이다(19,22절;8:6;9;23;11;40).본절의 이런 '비교급' 표현은 창 14:18-20의 내용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1절)이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보다 더욱 위대한 존재였음을 암시한다(Cockerill).

=====7: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 6,7절에서 멜기세덱을 아브라함과 비교하여 멜기세덱이 더 위대함을 논증한저자는 본절에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여기는'(* ,호데)과 멜기세덱을 가리키는 '저기는'(* ,에케이)을 통해서 표현된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십일조를 백성에게서 받았으나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로서 십일조를 받았다. 여기서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는 저자가 3절에서 언급한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성경은 멜기세덱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멜기세덱과 죽을 수 밖에 없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을 비교하여 멜기세덱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있나니 -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받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는 아브라함을 통해 십일조를 바쳤다. '할 수 있나니'의 할라어 '호스 에포스 에이페인'(* )은 신약성경에서 본서에만 등장하는 저자 특유의표현이다. 본서의 저자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길게 다루지 않고 주위를 환기시켜 간결하게 끝맺고자 할 때 이런 표현을 주로 사용하였다(Lane, Westcott, Morris).

=====7:10
 개역성경에는 '가르'(*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절에서 언급된 '레위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는 진술에대한 이유임을 시사한다.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을 때 레위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다. 그러기에 레위가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할 수는 없으나 레위를 대표하는조상인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으므로 그것은 곧 레위가 바친 것과 같은 행위라고할 수 있다(Lane).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는 레위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동시에 아브람함의 후손(後孫)임을 암시한다. 비록 레위는 태어나지 않았고 직접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 할지라도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조상을 말할때 그의 후손까지 포함하였기 때문에(창 25:23; 고전 15:22)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것은 레위가 바친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저자는 그리스도의 모형인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결국에는 레위계통의 제사장들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시사하고 있다(Morris).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 본절은 '에이'(* , '만약')로시작하는 가정법으로 율법과 연관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불완전함을 나타낸다.'온전함'의 헬라어 '텔레이오시스'(* )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온전한 행위를 뜻한다(Lane, Robertson). 레위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Moffatt). 왜냐하면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9:9;10:1)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율법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해줄 뿐 그것을 완전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롬5:20). 그래서 아론을 좇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대신에 멜기세덱을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별다른'의 헬라어 '헤테론'(* )은 '전혀 다른종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 제사장이 과거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할 수 없었던 '온전케 함'을 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 '그 아래서'(* ,에프 아우테스)에서 '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우테스'(* )는 본절 상반절의 '레위계통의 제사 직분'을 가리키는 말이며 '아래서'의 헬라어 '에프'(* )는 '...을 근거로 하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을근거로 하여 율법을 받았으니'라는 의미로 제사장직과 율법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Morris).

=====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 제사장 직분과 율법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를 맺고 있다(11절).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하여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 즉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제사장직과 관련된 율법도 불완전하여 바뀌어야 함을 시사한다.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본절은 12절에서 언급된 '율법의 변역'에 대한 내용이다. 율법은 오직 레위 지파만 제사장직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새로운 제사장은 율법에 규정된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제사장이었다(Morris).이 유다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아닌 왕족 지파였기에 저자는 이 지파 사람 중 어느 한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유다 지파에 속했던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이 나타난다(삼하 6:13,17,18:24:25; 왕상 3:4;8:62). 이러한 경우 다윗과 솔로몬이 직접 제사 의식을 집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장이 제사를 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Morris).

=====7:14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본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다른 지파의 제사장임을 나타낸다(Morris, Bruce, Hewitt).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음을 계속 증거하고 있다(마 1:2,3;2:6;눅 3;33;행 2:29-36;롬 1:3;딤후 2;8;계 5;5;22:16). 예수께서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의 대제사장직이 혈통적인 것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秩序)에 의해서 결정되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좇아 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테탈켄'(*  )은 70인역이나 헬라 고전에서도 어떤 가문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 '아나테탈겐'은 70인역에서 새로운 별이 나타나거나 가지에서 새로운싹이 돋아나옴을 의미하는 말도 아마도 저자는 메시야를 예언한 구약의 예언들을 상기하면서 본 단어를 사용한 듯하다(민 24:17;렘 23:5, Schlier, Buchanan, Cockerill).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 오직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에 속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심을 암시한다.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은 시 110:4의 인용으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11절). '더욱 분명하도다' 에서 그 분명한 내용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11절에서 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그 효능을 상실하게 된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는의미라고 주장한다(Westscott). (2) 혹자는 모세 율법이 폐지되었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이러한 세 가지 견해는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를 지닌다.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본문은 11절의 부정적인 표현 곧'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와 동일한 의미로 11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Lane).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포괄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것으로 레위 계통의 합법적인 후손, 혹은 어떤 신체적 자격 요건 등을 가리킨다(Michel).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되신 것은 율법에 나타난 바대로 레위 자손의 혈통이나 외적 조건에 의해서 된 것이아니다.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본문은 11절의 '멜기세덱의 반차를좇는'과 연관된다. 저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과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썩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의 계명 즉 율법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된 것임을 강조한다(시 110:4,Lane).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거하는대로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만세의왕'으로서(딤전 1:17)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생명를 부여하는 영원한 것이다.

=====7:17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 본절은 시110:4의 인용으로서 16절에서 저자가 말한 것 곧 그리스도가 무궁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이다. 저자가 본절에서 '증거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레이타이'(* )를 사용한 것은 저자 자신이 시 110:4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무관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좇은 제사장직임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완전함을 암시한다.

=====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 본절과 다음절은 저자가 11절부터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다. '계명'은 문맥상 제사장직에 관련된 율법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있느나(Lane), 1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타당하다(Morris). 한편 '연약하며'의 헬라어 '아스데네스'(* )는 율법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Lane). 또한 '무익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노펠레스'(* )는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것만을 정결케할 뿐 그 내적인 양심(良心)을 깨끗게 할수 있는 능력은 없음을 시사한다(9:9,10,14,23;10:14, Hewitt).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 '온전케'로 번역된 헬라어 '에델레이오센'은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11절).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것만 깨끗하게 하고 내적인 양심은 깨끗게 할 수 없어서(9:9,14)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즉 사람들은 제사장직이나 성결 의식과 같은 율법적인 제도에 의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Riggenbach , Michel).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 - '더 좋은'(* ,크레이트토노스)이란 표현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표현이다(19, 22절;8:6;9:23). '더 좋은 소망'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레위적인 율법 제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Lane).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본절과 다음절은 새로운제사장이신 예수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사이의 비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없이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부여받았다(28절). '맹세없이 된 것이 아니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 코리스 호르코모시아스'(* )는 시 110:4의 추론으로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됨으로 신자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의 닻을 드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6:18-20,Schneider, Thompson).

=====7:21
 (저희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는 시110:4의 인용이다(17절). 그리스도의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의 신실성으로 인해(Cockerill) 보증된 것이다. 반면에 율법하에서 이루어진 레위인의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혹은 보증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만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16절)을 좇아 이루어진 직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제사장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완전할 뿐만 아니라더 나은 언약에 대한 보증임을 암시한다(22절).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저자는 '언약'의 헬라어'디아데케스'(* )를 본서에서 17회나 사용하여 중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나타난다. '디아데케',는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로 70인역(LXX)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Lane). 동시에 그 단어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Morris). 문맥상 본절의 언약은 제의적(祭儀的)인 것으로(Lane) 옛 언약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으나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하고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다(18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시고(8:8-10;9:15-20), 새 언약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온전히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25절;9;14,15).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한편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에 대한'보증'은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9절;13:20).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오스'(* )는 '보증인'이라는 의미로 이 보증인은 '중재자'의 뜻인헬라어 '메시테스'(* )와는 달리(8:6;9:15;12:24)보증인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보증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Michel).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되신다.

=====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저자는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예수 한분뿐인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음에 주목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멸망에 이르기까지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취임했었다고 한다(Antiq. 20,227).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제의가 불완전함을 반영한다(1:1;10:1-4, Michel, Thompson).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아파라바톤'(*  )은 70인역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의미이다(Josephus). 예수의 영원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最終的)인 것임을 시사한다(Lane).

=====7:25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덴'(* )은 본절이 23,24절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낸다.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온전히'에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판텔레스'(* )는 '완전히','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한다. 한편 '구원하실'의 헬라어 '소제인'(* )은 현재시상이다. 본서에 나타나는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을 가리키는 반면(1:14;5:9;9:28) 본절의 '소제인'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시사한다(2:3,4;6:4,5,9, Lane).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신다.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간구하심이니라'의 헬라어 '엔튕카네인'(* )은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킨다(Lane, Snell, Morris).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과 온전한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원하시며(24절),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25절),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에 합당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이다. 저자는 영원한 구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묘사한다. 이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지녀야 할 성품과 지위를 나타낸다(Hauck).
 거룩하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시오스'(* )는 70인역에서 '충실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 12:1).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서 보여준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5:7,8).
 악이 없고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코스'(* )는 '교활하지 않은','순수한'이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하셨으며 어떠한 악과도접촉하지 않으셨음을 시사한다(Moffatt, Grundmann, Bruce).
 더러움이 없고 - 이의 헬라어 '아마안토스'(* )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낸다(마카비 2서 15:34).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의 의식을 통해서 외적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온전한 도덕적 순결성을 소유하셨다(Morris).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 이것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인류와는 다른 존재이시다(Buchanan, Peterson).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하늘보다 높이'의 헬라어 '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 )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Lane). 예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달리 승천하셔서(4:14)곧바로 하나님존전에 나아가신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중재자가 되신다(Morris).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린다(5:3;레 4;3-12;16:6-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자신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렸으나 저자는 본절에서 '날마다'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속죄일에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표현한 이유는(9:7,25;10;1) 대제사장이 제사를 매일 드렸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부주의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4:15)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실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자신의 몸을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저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그의 대제사장직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제사한다(Zimmermann). 죄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완전한 자신을 제물로 드린그의 속죄사역은 일시적인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속제 사역과는 달리 한 번으로 영구화(永久化)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본절을 통해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불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저자는 본장을 결론지으면서 사람인 제사장과 온전하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1) 율법과 맹세의 말씀. 옛 언약에 속한 레위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맹세의 약속을 성취하였으며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2) 사람과 아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반복적이고 일시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살아계셔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행하셨다. (3) 약점을 가진 자와 온전케 되신 자.
 옛언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져서 불완전한 사역을 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셔서 지상 생활의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의구원의 근거가 되셨다(2:10;5:8,9).

 

 

  본장은 5:1-10의 연속으로, 6장에서 신앙의 원리에 근거한 성도의 마땅한 행동 원리
를 말하는 부분에서 다시금 신앙의 건전한 교리를 확립하기 위하여 본 서신의  본론으
로 돌아온 부분이다.
  본장은 예수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5:10)의
제사장직을 이은 제사장임을 천명하면서 멜기세덱 제사장직의 신비와 특성을 설명하고
(1-10절) 이를 계승한 예수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필요성과 우월성을 증명함으로써  거
듭 예수는 구약을 계승하면서도 구약의 제사장보다 우월하신 신앙 대상임을  입증한다
(11-28절).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에 규정된 레의 제사장직만을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
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 제사장들인 그들과 달리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은 이미 완전한 제사장의 모형을  주셨으니  그가  곧  멜기세덱이었다(창
14:8). 그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그 한 사람만 신비한 섭리로  세
우셨다는 점에서 레위 제사장직보다 우월한 제사장으로서 대제사장 예수의 훌륭한  모
형이었다. 이에 저자는 이런 멜기세덱을 예수와 접맥시킴으로써 예수는  율법과  인간
제사장직을 초월한 참구원자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저자의 의도, 신학적 전환점, 본장의  개요
등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1) 저자의 의도. 앞에서 (6:20) 그리스도를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으로 잠깐 언
급한 저자는 이제 내용을 발전시켜, 멜기세덱의 인격과 사역을 보여줌으로써 유대인이
최고의 제사장으로 생각했던 레위 계통의 제사장보다 그리스도는 더 위대한  제사장이
심을 논증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본서의 구조에 유의해야 한다. 우선 시편 110:4을 인용한 내용 즉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는 말
씀은 먼저 5:6-10에서 소개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곧이어 5:11에서 '멜기세덱에 관하
여는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고  안타까와하
고 있다. 이 안타까움은 그대로 연결되어 저자는 교회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영적 미숙
의 위험을 경고하면서(5:11-14) 다른 한편으로는 성숙한  신앙을  권고하였다(6:1-8).
이렇게 성숙한 신앙 소유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저자는 6:9-20에서는 그들의 구원이 멀
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본 서신의 독자들에게 소망 중에 인내할 것을 당부하는데  이
때 비로소 그 동안 미루어두었던 본 주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해 앞서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궁극적 소망으로  제시하였
다(6:20).
  본장은 5장에서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의 난해함과 심오함, 그리고 수신자들의  영적
미숙함 때문에 유예되었다가, 6장에서 독자들의 궁극적 소망으로 제시된 마지막  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삼아 한 설교나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즉 저자는 5장에서 말한  단단
한 음식과 질긴 고기를 이제 독자들 앞에 내어놓는 것이다. 5장과 6장의 경고와  권면
의 진지함으로 보건대 본장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는 본 서신의 수신자들이 더욱  노력
함으로 이 단단한 음식, 질긴 고기도 소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볼 수 있다.
  (2) 신학적 전환. 본서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다. 제 1부는 1:1-4:13로서  그리스
도의 품성의 우월성을 역설하며, 제2부는 4:14-10:18로서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을
논증하고 있으며 마지막 3부는 10:19-13:25로서 그리스도인 신앙의  우월성을  재확인
시키고 있다.
  특별히 2부에서 논증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에는 두 가지 방면이 있다.
첫번째 방면은 아론에 의해 예표된 땅에서의 제사장 직분이며, 두번째 방면은  하늘에
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 직분이다. 이때 첫번째 방면의 사역은 주로 죄사
함을 위한 것이며, 두번째 방면의 사역은 주로 죄를 이기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번째 방면의 사역은 우리를 애굽에서 탈출히키며, 두번째 방면의 사역은 우리를  가
나안으로 인도한다.
  본서는 7:1에서 신학적 전환을 맞는다. 그것은 땅에서 하늘로의  전환이다.  그것은
또한 땅에 있는 바깥 마당에서 하늘에 있는 지성소로의(8:2;  9:11,12,24)  전환이다.
즉 바깥 마당의 죄를 위한  제단으로부터  지성소의  은혜를  위한  속죄소로의(4:16;
10:12; 13:10)전환과, 땅에 있는 그리스도로부터 하늘에 있는 그리스도에로의 전환(26
절),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서 고난받는 그리스도로부터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영광을
얻으신 그리스도에로의 전환이다(8:1; 12:2; 13:12).
  이 신학적 전환을 통해서 우리는 땅에 속한 사역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화목을 이루신 것과(2:17) 우리를 정결케  하신  것
(1:3)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늘에 속한 사역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해 우리안에 생명과 능력이 들어오고 우리의 생활이 거룩케 됨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
게 된다.
  (3) 본장의 개요. 본서의 저자는 이미 5장에서 멜기세덱에 관해 언급하면서  예수를
멜기세덱과 같은 대제사장으로 소개했었으나(5:6-10), 이는 지극히 간략한 진술에  지
나지 않았다. 이제 본장에서 저자는 그 내용을 확대시키고 있다(1-10절). 그리고 그리
스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심을  증거하고  있다(11-25절).  그러면서
7:1-10:18에서는 본서의 핵심 주제인 '위대한 제사장과 그의 위대한 사역'이 다루어진
다.
  특별히 이 핵심 주제의 신학적 기초로서 본장은 우월한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다
음과 같은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까) 멜기세덱의 위대함. 먼저 저자는 구약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멜기세덱의 위대
함을 소개한다. 그리스도의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멜기세덱은  왕이요,  제사장이었다.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  멜기
세덱의 이름과 칭호도 메시야적 의미를 지니며 유형론적으로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
들과 방불하다.
    (다) 옛 것을 폐기시키는 새로운 제사장직. 아브라함과의 비교뿐 아니라 레위인과
의 비교를 통해서 볼 때 멜기세덱의 우월성은 확고해 진다. 하지만 정통적인 유대인들
에게 있어서는 레위 계열을 좇지 않는 다른 계통의 제사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본문을 통해 율법과 제사장직의  변역의
필요성, 즉 왜 새로운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있다.
    (따) 새 제사장의 우월성. 멜기세덱이 레위보다 위대하고, 새로운 제사장직이  옛
것을 폐기시킨다고 하면 그때 새 제사장은 레위 계열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우월함이
틀림없다. 저자는 이 우월성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은 맹세로 시작되었으므로 레위인보다 우월하다(20-22절). 둘째,  예수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므로 우월하다(23,24절). 셋째, 그분은 우리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키시기에
합당하므로 어느 제사장보다 우월하다(25절).

  1. 멜기세덱의 위대함(7:1-10)
  이제 우리가 살펴보게 될 본문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약간  난해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저자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친숙하지 못한 상징적 수법이나  매우
이상스럽게 생각되는 논리 전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잘  이
해하기 위해 먼저 본문의 신학적 해석 방법을 살펴본 후 멜기세덱의 위대함과 그 신학
적 의미 및 교훈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본문의 신학적 해석 방법. 본문에서 저자는 하나님께로의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대제사장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 제사장은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
인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사상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구약성
경의 두 구절 즉, 5장에서 인용한 시편 110:4과 본문의 참고 구절인 창세기  14:17-20
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유대인들의 성경 해석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본서의  저자
는 유대의 랍비(Rabbi)가 사용하던 성경 해석 방법을 아주 노련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
문이다.
  랍비들이 사용하던 방법 중에서 다음 두 가지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까) 유대의 율법학자들은 성경 구절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페샤트(Peshat)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말하며 둘째는, 레마즈(Remaz)로 암시적인 의
미를 뜻하는 것이며 셋째는, 장기간에 걸쳐 신중히 검토한 후에 알아낸 의미로서 데러
쉬(Derush)라 부르고 넷째는, 쏘드(Sod)라 부르는 비유적이고 내면적인 의미이다.  본
서의 기자는 본문에서 특별히 이 네번째, 즉 성경 구절의 내면적이고 비유적이며 신비
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다) 유대인의 성경 해석법 중에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명시적  내용뿐  아니라
말하지 않음으로 암시된 내용, 즉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을 토대로 성경 구절을  해
석한 법이 있다. 저자는 구약성경을 근거로 멜기세덱에 관해 말하면서 구약성경에  나
오는 내용뿐 아니라 구약성경에서 침묵되고 있는 내용에서도 그의 이론의 근거를 찾아
내고 있다.
  저자는 위의 첫번째 방법에 의해 우리에게 이 멜기세덱의 기사가  역사적  중요성과
영적 메시지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음을 주의깊게 보여준다. 멜기세덱이  여러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예고없이 만나 축복하는 창세기 14장의 장면은  신비하고
도 중요한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소개하며 저자가 4절 이하에 내리고 있
는 분명한 결론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고 경의를 표한  이  만남은
바로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자와의 대면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런 방법의 도움을  받게
될 때 우리는 본서의 저자가 이 기사를 인용한 중요한 의도는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그
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위에서 말했던 두번째 해석 방법 즉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 내용을
통해서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의 우월성을 설명하고 있다.  멜기세덱에게는
족보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의 관례에 반대되는 현상으로서  여
기에서 저자는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이 세습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격에 근거한 것
임을 깨닫게 해주며, 구약성경에 그의 시작과 끝이 소개되지 않은 점에서 그의 제사장
직분의 영원성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성경 해석법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본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고
있다.
  (2) 멜기세덱의 위대함. 본문에서 저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연관된 개념틀(frame of
concept)로 멜기세덱의 위대함, 즉 아론의 반차보다 우월함을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
의 제사장 사역의 영원성과 유일성을 예표적으로 묘사하였다.
    (까) 멜기세덱의 신분(1절). 멜기세덱은 제사장이며 왕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렇
다.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이란 개념이 생소하기는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도처에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사역을 암시하고 있다.
    (다)  멜기세덱의  이름(2절).  '멜기'(          )의  뜻은  '왕'이요,  '세덱'(       
)의 뜻은 '의'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의의 왕'혹은 '나의 왕은 의롭도다'란  뜻을
지닌다.  또한 살렘 왕의 '살렘'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며  그 뜻은 멜기세덱이 '평강'
(        , 샬롬)이며 지극히 높으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보여준다. 따라
서 멜기세덱은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란 뜻을 갖는다. 이렇듯 멜기세덱은 그 이
름에 있어서도 참제사장인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의 의가 되셨고(사 11:4; 호  9:9;  고전
1:30)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고(사 9:6; 마 5:4) 또한 왕으로서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통치하시고 인도하시며 그 나라를 이뤄가시기 때문이다.
    (따) 멜기세덱의 권위(3절). 멜기세덱은 아브라함 시대에 살고 있었던 실제적  인
물이었지만 그의 이름이나 왕과 제사장됨에 있어서는 예수께 대한 예언적인 예표가 되
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이때 '방불하다'(                         ,
아포모이오메노스)란 뜻은 '비슷하다', '유사하다'이다. 또한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
있다가 그의 생애를 마쳤지만 그의 영광스런 직책만은 살아있다는 점에서 그의 권위가
입증된다.
    (마) 멜기세덱의 유일성(3절). 본서의 저자는 특별히 창세기의 많은 족보들  가운
데 멜기세덱과 관련된 족보가 하나도 없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가 멜기세덱의  육
적 부모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멜기세덱이 부모가 없는 자였다고 말하는 것은  아
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왕이며 제사
장인 멜기세덱은 무시간적,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이 된다.  하지
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예수가 멜기세덱을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이 예수를 닮았다는 점이다.
    (바) 멜기세덱의 우월성(4-10절). 먼저, 조상 아브라함에 비해  멜기세덱이  훨씬
우월하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에게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주었다'고 하는 증언으로
묘사된다(4절). 다음으로 비록 멜기세덱이 레위의 제직 계열에 들어 있지  않으면서도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고 또한 그를 축복하였다'(6절)는 것도 멜기세덱의  우
월성을 입증한다. 더구나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받긴 하였지만 결국에는 죽는  반면에,
멜기세덱은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8절)이므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는 물론이고
다른 모든 레위계 제사장보다 우월하고, 나아가 어떤 의미에서는 레위인조차 아브라함
을 통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고 볼 수 있다(9절). 왜냐하면 그 당시에  레
위인은 현실적으로는 아직 존재치 않았고 다만 그 조상 아브라함 안에 잠재적  존재로
있었기 때문이다(10절). 이렇게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의 기록으로부터 그 위대성을  증
언받고 있다.
  (3) 본문의 신학적, 영적 교훈. 본문은 멜기세덱을 통하여 예수에 대한 신학적,  영
적 교훈이 예언적으로 성취된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까) 본문은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었듯이  그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께서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심을 가르쳐  준
다.
    (다) 본문은 멜기세덱이 왕이었듯이 그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께서
도 왕 같은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따) 본문은 멜기세덱이 의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었듯이 그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
장이 되신 예수께서도 의로운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마) 본문은 멜기세덱이 평강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었듯이 그의 반차를 좇아  대제
사장이 되신 예수께서도 평강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심을 알려주고 있다.
    (바) 본문은 멜기세덱의 시작과 끝이 신비에 쌓인 것처럼 그의 반차를 좇은  예수
의 시작과 끝 역식 신비로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빠)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은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본서에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신 대제사장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항상 살아계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2. 그리스도 제사장직의 필요성과 우월성(7:11-28)
  본문은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가 왜 바뀌어져야 했는가를 보여준다(11-25절).  동시
에 본문은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와 제사장직에 대하여  '변역'하기고  그
직분을 예수께 맡긴 배경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줌으로써(11-25절) 우리에게 합당한 대
제사장의 우월성과 영원성(26-28절)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항목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변역(變易)의 필요성.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와 제사장직은 죽을 육체의 생명과
육적인 죄악에 관계된 법에 의존하여 이루어졌다(16절). 그래서 저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가 연약하고 무익한 계명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18절).
  또한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레위 계통의 사람들 중에서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
이 되었는데(11절) 이들은 죽음 때문에 자주 갈리어(23절), 수효가  많았고  예수처럼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으며, 한번 죽으면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으로  제사장직이  끝나
그들을 통해서는 예수와 같이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구약 시대의 제사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었고(11절) 따라서 구약 시대의  제
사 직분은 바뀌어져야만 했다(12절). 레위인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인
간의 죄악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율법은  사
람들의 죄를 깨닫게 해줄 뿐, 그것을 온전히 지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줄 수 있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롬 5:20).
  (2) 변역의 내용. 앞에서 살핀 대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
게 주신 율법(출 28, 29장)에 근거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사장  직분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곧 율법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제사  직분이
'변역되면'(                            , 메타티데메네스) 율법도 자연히  변역되어
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의 변역'은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로부터 한  제사
장이 좇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
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세웠다(28절).  여기서
사람들이 가진 '약점'(                 , 아스데네이아)이란 '모든 인간이  타고나는
육체적 한계, 연약성, 폐단'을 의미하며, 예수께서 '영원히  온전케  되셨다'는  말은
5:8,9의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신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폐하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셨으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13,14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실제로 레위 지파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로부터 출
현함으로써 폐기되었으며, 15-19절에서 증언하는 대로 '무궁한' 생명을  지닌  새로운
제사장으로 대체되었다.
  (3) 변역의 결과. 23-28절은 본문에 나타난 변역의 결과로서 그리스도의 세 가지 모
습을 묘사한다. 즉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새로운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현재 보증이 되시고,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가장 완전한 희생
제물이시다.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이 그리스도 이전의 그  어
떤 제사장들의 사역보다 훨씬 탁월함을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은 영원히 성취된다(23,24절). 수세기에 걸쳐 유대  민
족은 수많은 제사장들을 통하여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그 제사장들이 아무리  거룩한
일에 특별한 부름을 받았다 하여도 죽음이 그들의 사역을 번번이 가로막았다.  하지만
예수는 영원히 계신 고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
역은 '어느 때이고' 영원히 가능한 것이다.
    (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끝없는 영향력과 무한한 능력을 지닌다. 25절에  나
타나는 '온전히'(                               , 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충만히'
또는 '철저히'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
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승리의 사역으로 인간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어  놓으셨
기 때문이다.
    (따) 본 서신은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십자가 상에서 '단번에 온전히' 이루신
사실에 대해 무척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주요 강조점은 자기  백성들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고, 이제는 중재 사역을 통하여 우리를 보전하시고  도우시는
것이다(25b절).
    (마) 예수께서는 유일무이한 가장 위대한 대제사장이셨을 뿐만  아니라  완전하게
흠이 없는 제물이셨다(27,28절). 율법 아래 있는 백성들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연약하고 실수하기 쉬운 그런 제사장들의 제사에 만족하여야 했다. 그들이 약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요, 그들이 불완전한 것은 그들도 불가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순결하고 흠이 없으시며
영원히 온전하시기 때문에 완전히 효력이 있는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4) 합당한 대제사장 그리스도와 그 영적 교훈. 예수는 대제사장으로서 율법을 완성
하셨다(12,18절). 또한 그분은 우리로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해  주셨다
(19절). 나아가 그분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어 주시며(22절) 믿음의 사람들을 구
원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신다(25절).
  한편 이런 사역을 온전하게 이루신 예수는 우리에게 합당하신 대제사장으로서  다음
과 같이 그 영원성을 증거하고 있다.
  첫째로, 예수는 거룩하시다. 이때 '거룩하신'(           ,호시오스)은 하나님에 대
한 자신의 할 바를 충실하고 정확하게 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사람
앞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다.
  둘째로, 예수는 악이 없으시다. '악이 없다'(            , 아카코스)는 것은  악이
전혀 없고 선만을 지닌 것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특별히 남에게 주는 영향이  고려되어
있다. 바클레이(W.Barclay)에 의하면, '아카코스'를 지닌 사람은 청순하기 때문에  그
의 존재 자체가 해독제의 역할을 하며, 그러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님의 사랑과 친절이라고 한다.
 셋째로,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는 더러움이 전혀 없다.  이때의  '더러움이 없다' (
                , 아미안토스)는 말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방해하는 흠이나 더러
움이 완전히 없는 상태를 뜻한다. 흠이 있는 제물은 하나님께 바칠 수 없듯이  불결한
사람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다. 오직 흠없고 정결한 자만이 하나님 면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넷째로, 예수는 죄인과는 구별된다. 이는 예수가 참다운 인간이시되 모든 죄의 유혹
을 이겨냈음을 말한다.
  다섯째로, 예수는 하늘보다 높으시다. 즉 승천하셔서 최고의 지위에서 영광을  누리
신다. 이 말은 예수의 완전한 신성을 나타냄과 아울러 궁극적인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됨을 나타낸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예수는 확실히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시다. 본 서신의  저자
는 본장의 3절,17절,21절에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영원하고 합당한 제
사장은 우리들에게 '새 언약'(22절)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세운 '영원히  온전
케 된 예수'는 이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기  때
문이다(5:9).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12:2)인 예수를 바
라보면서 그 어떠한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는 신앙 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  본서는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변증서라 할 수  있다.
즉 본서는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신약의 기독교에 영입, 흡수되어야 할 유대교가 인본
주의적 관점에 따라 계속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의 부당성에 대한 신학적  반박이라  할
수 있다.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었던 유대인 공동체의 종
교 생활 전부를 가리킨다. 따라서 유대교의 교훈은 구약성경에서만 기인된 것이  아니
고, 어느 특정한 시대에 일시적으로 형성된 것도 아니며, 오랜 세월에 걸쳐  점차적으
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유대교는 구약의 종교,  기독교는  신약의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기독교는 구약의 완성이자
성취인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종교로서 신구약성경을 유기적 총체로 생각하여  모두
정경 속에 포함시킨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은 신약성경과 더불어 구약성경에서도 많
은 영적 교훈과 생활 지침을 교훈받는다.
  반면 유대교는 구약성경의 내용 중 일부만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취하여 종교 제도화한 것으로서 인간적인 유전이나 전통 및 규례를 더 중요시 하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구약의 종교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의 민족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구약성경은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신약으로 발전, 연합된 것으로서 기독교는 이와 같은 계시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으나 유대교는 구약성경만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와 유대교는 전혀 별개의 종교 체제이며 기독교의 모체는 유대교가 아니라 구약성경이라 하겠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내용과 신학적 틀을 도표를 통하여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
|구  분|       유     대     교           |         기     독     교           |
+------+----------------------------------+------------------------------------+
|신  론|일원론적 신관(단일 신관)          |삼위일체 신관                       |
+------+----------------------------------+------------------------------------+
|      |하나님의 계시는 구약성경에만 국한 |하나님의 계시는 신,구약성경으로 완결|
|      |되는 것이 아니라 후기 시대의 유대 |되었으며 더 이상의 특별 계시는 없다 |
|성경관|문학에도 나타나며, 구약성경은 하나|                                    |
|      |님의 영감 아래 기록되었으나 구절마|                                    |
|      |다 영감된 것은 아니다             |                                    |
+------+----------------------------------+------------------------------------+
|      |인간의 타락은 극히 부분적인 것으로|인간의 타락은 치명적이며 오직 믿음으|
|인간관|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다          |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야 의롭게  |
|      |                                  |된다                                |
+------+----------------------------------+------------------------------------+
|      |인본주의 속죄관으로 중보자가 필요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속죄관|없으며 자력(自力)과 선행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
|      |의롭게 된다                       |                                    |
+------+----------------------------------+------------------------------------+
|      |메시야는 아직 오시지 않았으며 그가|메시야는 예수 그리스도로 그분은 성육|
|메시야|오시면 이 땅 위에 이상향을 건설하 |신과 부활로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원하|
|  관  |고 이스라엘 민족은 종교적, 정치적 |셨을 뿐만 아니라 장치 재림하셔서 세 |
|      |인류를 지도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상을 심판하신다                     |
+------+----------------------------------+------------------------------------+
|      |악을 행한 자는 게헨나에서 고난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여부로 구원이|
|      |당하고 선을 행한 자는 천국에서 복 |결정되며 주만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
|내세관|된 생활을 누린다. 특히 이스라엘   |심판하실 권한이 있다                |
|      |민족은 선민이기 때문에 사후에 아브|                                    |
|      |라함의 품에 안기는 축복을 누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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