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복음 전파에 힘쓰라고 명령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앞에서'라는 표현은 그 명령의 중대성과 엄숙함을 암시한다.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를'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자'로 소개한다. '산 자와 죽은 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시 살아서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사람과 죽었다가 부활하게 될 사람을 가리킨다(Lenski). 본문은 아마도 초대 교회에서 세례받을 때 고백한 신조였을 것이다(Lock).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명하노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마르튀로마이'(* )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1)'증언하다'를 의미한다(Lenski, Robertson). (2) '명령하다'를 의미한다(NIV, KJV).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봄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다음 절의 내용이 바울 자신의 증언이 아니라 디모데에 대한 명령이기 때문이다(Hendriksen).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의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명령한다. '나타나심'은 심판 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재림을 의미하며(딤전 6:14;딛 2:13), '그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시며 통치하시는 나라로서 그리스도인의 유업이다(2:12;마 25:34;계 3:21;22:5). 이것은 디모데가바울의 명령을 잘 수행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과 그의 나라에 참여함을 시사한다(살전 4:13-18).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이 명령은 본절의 다른 명령들을 다 포괄한다. '전파하라'의 헬라어 '케뤽손'(* )은 '대중 앞에서 선포하라'는 의미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모든 사람에게 담대히 전할 것을 명령한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의 헬라어 '유카이로스 아카이로스'(* )는 '네가 말씀을 전하고 싶든지 그렇지 않든지'라는 의미로 군인이 언제, 어떠한 상황 아래서도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수행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다(Scott). 또한 '힘쓰라'의 헬라어 '에피스테디'(* )도 '끈질기게 권고하라'는 의미로 군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준비를 갖추고 심한 반대에 부딪힐지라도 항상 끊임없이 말씀을전해야 함을 시사한다.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 본문은 다음에 언급되는 세 가지 명령과 연결된다. '오래 참음'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속성과 태도로서(롬 2:4;9:22;고후2:5-11;딤전 1:16), 죄인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을지라도 인내함으로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나타내며, '가르침'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복음 선포 사역에서 병행되어야 한다.
경책하며 - 이 말은 '증거를 대다', '유죄로 판결하다', '질책하다'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증거를 제시하여 죄를 뼈저리게 각성시킴을 뜻한다(요 16:8) 경계하며 - 앞의 '경책하며'와 비슷한 말로써 '비난하다' 혹 '벌하다'의 뜻을 갖는다. 이는 죄인을 경책하는 과정에서 호되게 책망함을 뜻한다(고후 2:6).
권하라 - 이것은 '용기를 북돋우다', '위로하다' 라는 뜻으로 그릇된 길로 가는 자를 책망할 때 사랑으로 해야 함을 나타낸다(고전 5:1-8,13).
=====4:3
때가 이르리니 - '때'는 2절의 '아카이로스'(* , '때를 얻지 못하고')중의 '한 시기'를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언급한 것이나 동시에 미래에있을 시기도 바라본다(Scott, Guthrie). 그래서 혹자는 이 '때'가 역사의 모든 시대에존재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 악화된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 '바른 교훈'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어지는구원의 소식'을 의미한다(딤전 1:10;6:3;딛 1:9). 한편 '받지'의 헬라어 '아넥손타이'(* )는 '아네코'(* , '견디다')의 미래 중간태로 '...을스스로 견디다'라는 의미이다.따라서 본절은 이때에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의도적(意圖的)으로 거부하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 '가려워서'의 헬라어 '크네도메노이(* )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 만족감을 얻으려는 것으로(L-enski) 자신들의 본성을 충족시켜 주는 솔깃한 이야기만을 좋아하는 그릇된 자세를 가리킨다(렘 5:31;겔 33:32). 또한 '많이 두고'의 헬라어 '에피소류수신'(* )은 '쌓아올리다'라는 의미로 만족을 모르는 욕망을 시사한다(Calvin).따라서 이 때에 사람들은 복음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색다르며 감각적인 것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그릇된 욕심을 충족시켜줄 거짓 교사들을 열망하게 된다는 말이다.
=====4:4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 '진리'는 사람들의 죄를 드러낸다(행 2:37,38). 그래서사람들은 복음을 들을 경우 자연히 복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딤후 3:15-17). 이에사람들은 복음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Hendriksen). 스데반이 설교할 때사람들이 귀를 막고 그에게 돌을 던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행 7:57,58).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 '허탄한 이야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뮈두스'(* )는 '신화'로서(myths, NIV)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딤전 1:4,7;4:7;딛 1:14)를 가리킨다. 한편 '좇으리라'의 헬라어 '에크트라페손타이(* )는 바른 길에서 이탈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Guthrie) 복음 듣기를 거부하여 진리의 길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허탄한 신화에 집착(執着)하여 멸망의 길을 내달음을 시사한다.
=====4:5
그러나 너는 - '그러나 너는'은 디모데가, 복음을 거부하고 신화를 좇는 사람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야 함을 암시하는 강조적 표현이다(3:9,14).
모든 일에 근신하여 - '근신하여'의 헬라어 '네페'(* )는 문자적으로 '술을삼가하다'는 뜻으로 '침착하라'(keep your head, NIV)는 의미이다. 이것은 말이나 행위를 자제하라는 것을 나타낸다(살전 5:6-8;벧전 4:7).
고난을 받으며 - '고난을 받으며'의 헬라어 '카코카데손'(* )은 '고난을 견디다'라는 의미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길에 고난이 뒤따름을 시사한다. 주의 종들은 예수께서 친히 모본을 보이신 것처럼(3:12;마 7:13,14;16:24)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에 동참하여 잘 견디어야 한다.
전도인의 일을 하며 - '전도인'(* , '유앙겔리스투')은 특별한 임무를 지닌 자로서(행 21:8, Scott)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2절).
네 직무를 다하라 - '직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안'(* )은 목회 사역(ministry, NIV)을 포함한 '여러 가지 봉사'를(Guthrie)의미한다. 바울은본절에서 디모데에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주께서 주신 설교와 교육을 포함한 봉사의 직무를 다하라고 권고한다.
=====4:6
개역성경에는 '가르'(* , '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앞서 언급한 명령을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바울은 이제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에 자신의 직무를 계승할 디모데에게 주어진 사역에 충실한 것을 간곡히 권면하고자하였다(Lenski, Guthrie).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 '관제'(drink offering, NIV)는 제단 위에올려진 제물위에 붓는 일종의 제주(祭酒)를 의미한다(민 15:1-10). '제주'를 붓는 행위는 '희생 제사'의 마지막 의식으로서 바울 자신의 희생적 순교를 상징한다(빌 2:17,Scott). 따라서 본절은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을 예견하고 남은 생명을 그리스도와 온 교회를 위하여 산 제물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민 15:5;28:7;롬 12:1).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 '떠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날뤼세오스'(* )의 문자적인 의미는 '풀어놓는', '걷어치우는'으로서, 선원이 배를 바다로 출항시키기 위하여 정박해 놓았던 배의 로우프를 푼다는 의미나 혹은, 나그네가다음날 새로운 행진을 하기 위하여 자신이 거처하던 장막을 걷는다는 의미이다. 본절은 바울자신의 생명이 이땅에서 끝나는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죽음이 시간적으로 멀지않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이제 순교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빌 1:23).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 본문의 표현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것이다(골 1:29).여기에서 '선한 싸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고나'(* )가 무엇을 뜻하는 가에 대해 두가지 견해가 있다. (1) 전장에서 병사들이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Simpson).(2) 레슬링이나 권투와 같은 운동 경기를 말한다(Hendriksen, Lenski). 그런데 운동경기는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풍물이었으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전 9:24,25;빌 3:12,14;히 12:1-3).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 '달려갈 길'에 해당하는 헬라어 '드로몬'(* )은 마라톤 경기에서 정해진 '경주 코오스'를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맡기신 사명'을 비유한 말로서 바울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전생애를 상징한다(행 20:24;갈 2:2). 한편 '마치고'는 바울이 경주에서 승리하였다는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는 것을 의미한다(Guthrie).
믿음을 지켰으니 - '지켰으니'에 대하여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 달리기 선수들이 경기 규칙을 지켰다는 의미이다(Easton). (2)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을 지켰다는 의미, 혹은 올바른 교의(敎義)를 지켰다는 의미이다(Calvin). (3) 청지기로서 악조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Scott). 세 가지 견해 중두번째와 세번째 견해가 타당하다. 본절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실에대한 확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후대에 넘겨주었음을 의미한다.
=====4:8
이제 후로는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이폰'(* )은 문자적으로 '나머지에 대하여'를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끝마쳤고 오직 남은 것이란'면류관'을 기다리는 일뿐임을 시사한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 '면류관'(* , 스테파노스)은 당시 운동 경기의 승리자에게 수여하던 것으로 월계수나무, 상수리나무 등의잎을 엮어 만들었다. 이것은 그 당시 왕들이 쓰던 '왕관'(* , 디아데마)과는 다르다. 그래서 혹자는 '왕관'이 그리스도에게 합당한 것이라면 본 구절의 '면류관'은 성도들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한다(Trench). 그러나 면류관을 받은 그리스도인은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며 다스리는 특권을 얻는다(계 3:21).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단순히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의의 면류관'이라고 한다. '의의 면류관'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스 스테파노스'(* )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 '의라는 면류관'이다(Robertson). (2) 믿음으로 의롭게된 자에게 수여되는 '면류관'이다. (1)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의 '의'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면류관'과 같다는 의미가 되어 바울 신학의 '이신 득의'(以信得義)와 일치하지 않는다.따라서 (2) 의 견해가 타당하다(White, Guthrie). 본절에서 바울은 '의의 면류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급하지 않으나 다른 성경에서는 '영생'(딤전 6:12;계 2:10)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본절의 '예비 되었으므로'에 해당하는헬라어 '아포케이타이'(* )는 '따로 남겨두다', '보존하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장래에 준비될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되었던 것으로 이 면류관을 받는다는 소망이 바울에게 늘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Lenski).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것이니 - '의로우신 재판장'은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약 4:12) 오류를 범치 않는재판자임을 시사한다. 혹자는 이것이 조만간에 바울 자신을 재판하여 처형시킬 그릇된재판자인 네로 황제와의 대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Easton).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 '주의 나타나심'은'주의 재림'을 일컫는 말이며(딤전 6:14). '사모하는'의 헬라어 '에가페코시'(* )은 '사랑하다'라는 의미로 재림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나타낸다.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에게 주어질 '의의 면류관'이 자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고대하는 자 모두에게 주어질 것임을 밝히고 있다.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본절은 본서 결론 부분의 서두에 해당된다. 이것은두사람 사이의 강한 친밀감을 보여준다. 바울이 디모데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이 다른 동역자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고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Hendriksen)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앞둔 바울이 사랑하는 동역자인 디모데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그에게 복음 사역의 중요성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한 부탁과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Calvin).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 '데마'는 초기에 바울의 동역자였으나(골 4:14;몬 24) 후에 세상을 사랑하여 실패한 자였다. '이 세상'의헬라어 '톤뉜 아이오나'(* )는 '현재시대'를 뜻한다. 이것은 데마가 현재의 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시사한다. 본절에서 현재의 세상을 사랑한 데마와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기다리는 그리스도인(8절)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나를 버리고'에 대하여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자신의 안전(安全)을 도모하기 위해서 바울을 저버렸다(Calvin). (2)데마가 곤경에 처한 바울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신앙마저도 버린것이다(Hendriksen, Lenski).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데마'는 '그리스도' 보다 '세상'을 사랑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 왜냐하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마 7:22,23;딤전 6:17).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데살로니가'로 갔다. 데마가 왜 '데살로니가'에 갔는 가에 대해 혹자는 데살로니가가데마의 고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나(Lightfoot) 분명하게 알 길은 없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 '그레스게'는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언급되는 인물로 더이상 알려진 바가 없다. 한편 '갈라디아'라는 지명에 대해 혹자는 '고올'(Gaul)이라고주장한다(Theodoret).그러나 바울이 '갈라디아'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고올'을 '갈라디아'로 잘못 표기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Scott). 따라서 아시아의 '갈라디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Lenski, Hendriksen, Guthrie).아마도 '그레스게'는 복음 전파사역을 위해 '갈라디아'로 보냄을 받았던 것 같다(Lenski, Hendriksen).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 '달마디아'는 아드리아 연안 동쪽에 있는 일루리곤(Ill-yricum)에 속해 있는 한 지역으로서 바울이 이미 개척해 두었던 곳이었다(롬 15:19).아마도 디도가 '달마디아'로 파송된 것은 그곳에서의 바울의 사역과 연관된 것 같다(Scott).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이며 의사(골4:14)이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때부터(행 16:10) 바울과 더불어 활동하였으며 아시아(행 20:6), 예루살렘(행 21:25) 등지에서도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로서 함께복음을 전파했었다. 특별히 그는 바울이 가이사랴 및 로마에서 옥중생활을 했을 때 바울의 주치의요, 대필자로서 봉사하였다(행 24:23;28:16 주석 참조). 그래서 혹자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누가를 통해서 바깥 세계를 접촉할 수 있었으며 또한 누가는 본 서신의 전달자였다고 주장한다(Lenski).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 때 동행(同行)하다가 중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런 연유로 바울은 2차 전도여행에 마가를 데려가기 싫어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으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행 15:36-41). 그러나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마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다(골 4:10;몬 24). 더욱이 후에 베드로와 같이 로마에 있었기 때문에(벧전 5:13) 아마도 마가는당시 로마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가를 불러오라고 명령하며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한다(Lenski). 여기서 '나의 일'이란 바울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복음 사역으로서 바울은 로마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마가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하려고 한듯하다.
=====4: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 두기고는 바울 서신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행20:4;엡 6:21,22;골 4:7;딛 3:12)바울의 충실한 동역자였다. 두기고는 디모데가 로마로 오기로 되어 있으므로 디모데를 대신하여 에베소로 파송되었다(딛 3:12, Guthrie,Scott).
=====4: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 '가보'(Carpus)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단지 본절에 언급된 것으로 보아 드로아 지방의 신실한 신자였던 것 같다. 바울이 언제 드로아를 방문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바울의 1차 투옥 이후로 추측된다(Lenski). 한편 '겉옷'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일로넨'(* )은 '외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책의 커버' 혹은 '책을 담는것'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혹자는 '책을 담는 것'이라고 해석하나(Calvin) '외투'가더 타당하다(Lenski, Guthrie, Scott). 왜냐하면 바로 이어서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있으며, 겨울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2절).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맞을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한 것이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 '책'은 일반적으로 '파피루스 두루마리'(papyrus rolls)를 가리킨다(Scott, Hendriksen, Lenski). 그러나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책 '가죽 종이에 쓴 것'이다. '가죽 종이'는 고가 품으로 특별한 책에만 사용하였다. 이 가죽 종이에 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혹자는 바울의 로마 시민권 증명서를 포함한 공문서라고 보며(Moffatt, Scott),혹자는 구약성경이라고도 보며(Alford, Bengel, White), 혹자는 바울 자신의 가르침이 유대교 경건에 근거한 합법적인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재판의 자료로 제시하기 위한 칠십인역이라고 주장한다(Lenski).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Guthrie).
=====4:14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당시 매우 흔한 이름이므로 바울은 '구리 장색'이라는 그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구리 장색'은 처음에 '구리 세공'(coppersmith, KJV)을 의미하였으나 후에 '대장 장이'를 가리키게 되었다(Earle).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딤전 1:20에 나타나는 '알렉산더'와 동일인물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다가 배교한 이단자로서 바울이 재판받을 때에 불리한증언(證言)을 하였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 이것은 시 62:12의 인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알렉산더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고 모든 심판을 그리스도께 맡겼다(잠 24:12;마 25:21-46;롬 2:6;고후 11:15;계 2:23;20:13).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공의로우심을 믿는 바울의 신앙 예언이다(Earle).
=====4:15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 '말'(* ,로고이스)은 바울의 설교는 물론 재판받을 때 그가 한 변호로서 알렉산더가 바울의 선포사역을 반대하고 재판 때 바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였음을 시사한다(Earle, Lenski, Guthrie). 한편 '주의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퓔랏수'(* )는중간태로서 디모데가 자신을 그런 대적자로부터 지킬 것을 바울은 권면한다.
=====4: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 '변명'의 헬라어 '아폴로기아'(* )는 고소를 당하여 법정에서 변호하는 것을 가리키는 법정 용어이다. 바울이 '처음 변명'한것은 바울의 1차 투옥 때이다(Guthrie, Lenski, Hendriksen). 왜냐하면 17절에서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말함으로 감옥에서 풀려나게 되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원하노라 - '함께 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게네토'(* )는'옆에 있다'는 뜻으로 법정에서 변호인이나 동료가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로마에는 죄수가 재판을 받게 될 때 그의 동료들이 함께 동반하는 것이 관례였다. 본 구절은 바울이 재판받을 때에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음을 말한다. 비록 바울이 재판받을 때에 아무도 바울을 도와주지않았다 할지라도 바울은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이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보이신 것으로(눅 23:34) 바울이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음을 시사한다.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 '곁에 서서'의 헬라어 '파레스테'(* )는 '돕기 위하여 옆에 서 계셨다'의 뜻으로 이것은 앞절에서 바울과 함께 한 동료가 하나도 없었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한편 '강건케 하심'의 헬라어 '에네뒤나모센'(* )은 '능력을 부어 주시다'의 뜻으로 단순히 바울이 로마의 재판에 맞섰다는 의미보다는 그의 변론이 성공적(成功的)이었음을 나타낸다(Scott).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본절은 헬라어 '히나'(* , '...하기 위하여')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바울의 재판과정에서 힘을 주시고 함께 하신 목적이 무엇이었나를 알게 한다. '전도의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케뤼그마(* )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메시지를 가리킨다(고전 15:3,4). 바울은 하나님께서 1차 재판에서 풀려나게하신 것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본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 몇가지 견해가 있다. (1)로마 감옥에 1차 투옥(행 28:30)후 다시 석방되어 로마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는 말이다(Hendriksen).(2) 로마의 법정에서 바울에게 자신의 신앙을 역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의미이다(Bernard, Guthrie,Lenski). 두 가지 견해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바울은 당시 이방 나라의 중심지였던 로마 법정에서 '케뤼그마'를 선포했을 뿐만 아니라 1차 투옥에서 풀려나 다시 전도를 하였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 본절은 시 22:22(LXX)에서 인용한 것으로 단순히 '극적인 위험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의미의 관용구(단 6:20)일 뿐 여기서의 '사자'(* , 레온토스)를 '사단'(벧전 5:8)이나 '네로' 혹은 '원형 극장의 사자'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레온토스'에 관사가 없기 때문이다(Earle). 본절은 바울이 1차 투옥과 재판 이후 풀려났음을 시사한다.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 본절에 대해 혹자는 바울이 주기도문을 연상한 것이라고도 하며(Guthrie, Earle), 혹자는 바울 자신이 범할 수 있는 악한행위를 못하도록 막아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White). 그러나 이것은 바울을위해(危害)하려는 모든 사악한 인간들의 계획으로부터 보호해 주셨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Scott). 따라서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바울이 재판받을 때 그의곁에서 도와 주셔서 풀려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17절), 그의 생애의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를 구원하여 주셨음을 시사한다(행 18:9,10;23:11;27:23,24).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건져내 주셨을 뿐만아니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을 확신한다.본절의 '천국'은 '미래의 영원한 왕국'을 의미한다(Earle). 이 '천국'은 로마 제국이나 지상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상태와 대조를 이룬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본절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으로 서신의 마감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이에 혹자는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추신(追伸)의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Scott).
=====4:19
브리스가와 아굴라 -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본도(Pontus) 출신으로 로마에 살았으나 글라우디오 황제의 반(反) 유대주의 정책으로 거기서 쫓겨나 고린도에 머물게 되었다. 이들은 장막 제조업자로 바울과 동업하였으며(행 18:1-3),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다(행 18:18).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로서 활동하였을 뿐만아니라 생명을 바칠만큼 헌신적으로 바울을 도왔다(롬 16:3,4). 한편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이름이 신약성경에 여섯 번 나타난다(본절;행 18:2,18,26;롬 16:3;고전 16:19). 이 중 네번이 '브리스가'가 먼저 나온다(본절;행 18:18,26;롬 16:3). 이에 대해 아내 브리스가가 남편보다 월등하게 복음 선교를 위해 봉사하였기 때문이라든지, 혹은 브리스가가 로마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라는 등의 추측이 가능하나 확실한것은 아니다(행 18:23-28, 주제 강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참조).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특별히 바울을 도왔으며 에베소에서도 바울을 섬겼었다(1:16-18).
=====4: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 '에라스도'라는 인물은 신약성경에서 세 번 나타난다(본절;행 19:22;롬 16:23). 행 19:22에서 에라스도는 디모데와 함께 마게도냐로파송받는다. 이 에라스도는 본절의 에라스도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측된다(Guthrie,Lenski, Hendriksen). 왜냐하면 디모데가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롬 16:23에 나타난 '에라스도'에 대해 혹자는 본절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한다(Lenski). 왜냐하면 롬 16:23의 '이성의 재무'는 '고린도 성의 재무'로서 고린도성의 유력한 인물로 추정한다면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자로 마게도냐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롬 16:23의 '에라스도'가 고린도 성의 재무였다는 사실과 본절의 '고린도에 머물렀고'가 일치하며, 마게도냐 파송시는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모았을 때이기에 재무였던 '에라스도'가 가는 것은 자연스럽다(H. J. Cadbury). 따라서 롬 16:23의 '에라스도'는 본절과 동일 인물일 것이다(Lock, Guthrie).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 '드로비모'는 에베소 출신으로 에베소교인들이 한 헌금을 예루살렘까지 운반한 자이다(행 20:4;21:29). 이 일은 최근에 되어진 것으로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 서바나를 거쳐 로마로 오는 도중에 그가 병들어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그 중의 한 경유지(經由地)인 밀레도에 남겨 두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4:21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 바울이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오라'고 재촉하는 이유는 지중해 전역에서 겨울철(10월부터 4월 사이)에는 파도가 높아 항해하기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며(행 27장, Scott, Hendriksen) 또한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알고 있었기 때문이다(6절).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 여기에언급된 네명의 사람들과 모든 형제들은 로마 교회의 교인들이었다. 본절이 11절의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와 모순되는 것 같으나 11절에서는 '동역자'를 언급한 것이며 여기서는 단순한 교우로서 언급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Scott). '리노'는 로마 교회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의 뒤를 이은 로마 교회의 최초의 감독이었다(Lock, Hendriksen). 이러한 사실은 이레니우스(Irenaeus)와 유세비우스(Eusebius)에 의해증명된 것으로 거의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Scott).'으불로', '부데', '글라우디아'에대해서는 본절 외에 알려진 바 없다.
=====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 본절은 편지의 종결 부분에서 일상적으로 쓰여지는 축복문이다. '너희'는 디모데에게소속된 교회 공동체를 말한다(Scott). 바울은 본절에서 '네 심령'이라는 디모데 개인에 대한 축복에서 '너희'라는 디모데가 속한 교회에 대한 축복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것은 바울이 이 편지를 디모데 한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쓰고 있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