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두 세 증인 - 이 표현은 특별히 어떤 인물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율법이 정한 바 범죄자에 대한 재판 시 두 세 증인의 증거가 필요한 것처럼(신 19:15), 바울이 전통적인 율법에 따라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엄격하게 시행하겼다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바울이 이런 경고를 할 때 그의 심중에 이미 처벌에 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고 본문의 경고도 그것을 위한 절차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구런데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런 처벌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이 미리 각성하여 회개함으로써 서로 웃는 낯으로 대면하게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그의 바람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이제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하나님의 능력으로 - 약함이 곧 강함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역설적 진술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하나님 이시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약함을 나타내셨다. 정확하게 표현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타나게 하기 위해 스스로 약함을 선택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약함이 결코 육체적 정선적 나약함이나 무기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약함은 자신을 낮추어서 분노하지 않고 복수하지 않는 약함이며 하나님께 복종하여 자신을 포기하는 약함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약함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부활의 승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도...약하나...살리라 - 그리스도가 약함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으로 능력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바울도 그리스도의 약함과 강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강함'을 '살아남'의 개념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약함을 통해 가장 강한 부활의 ;그리스도를 따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약한 가운데서 나타나는 능력의 최절정은 부활 생명인 것이다.
=====13:8
진리를...위할 뿐이니 - 여기서 '진리'(* , 알레데이아)는 일반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복음'을 뜻한다고 본다(Harris). 그리고 불트만(Bultmann)의 해석대로 '다른 복음'에 반대되는 참된 교의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 바울은 사실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끝내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리'가 자신의 명예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甘受)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격없는 사도라는 혹평을 받고 버림받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가 바울이었다.
=====13:11
형제들아 -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부를 때에 이런 칭호를 사용한다(1:8;8:1). 바울에게 있어 고린도 교인들은 여전히 '형제들'이며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기뻐하라 - 이 말은 헬라어법에 따른 일반적인 인사말로 '안녕히 계십시오' 정도로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체험하라'는 온전한 신앙에로의 초대로 볼 수도 있다. 공동번역은 전자로 해석하고 있으나 뒤에 이어서 나오는 다른 명령어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타당하다.
온전케 되며 - 고린도 교인들은 정말 온전케 되어야 한다. 환자의 몸이 건강하게 회복되듯이 그들은 무질서와 방탕함에서 벗어나서 다시금 영성(靈性)을 회복하여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위로 받으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이스데'(* )는 '격려하다', '위로하다', '탄원하다', '권면하다' 등의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공동번역은 '내 권고를 귀답아 들으십시오'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가능한 해석이다. 한편 좀 다른 차원에서 이 말은 '서로 서로 격려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다툼'과 '분냄', '당짓는 것', '중상'등과 같은 요소들을 모두 갖춘 그들로서는 사랑을 회복하여 더욱 '서로 격려함'의 미덕이 필요한 것이다(12:20).
마음을 같이 하여 - 이는 '동일한 생각과 사상을 지니라'는 의미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의 복음', '하나의 그리스도', '하나의 하나님'이 라는 사상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화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동일한 신앙고백 위에 있음으로써 거짓 사도들의 미혹에 속지 않으며 분열하지 않을 것이다.
평안할지어 - 칼빈(Calvin)은 이 말을 '갈은 마음'을 가진 결과라고 보고 있다(롬 12:18;살전 5:13).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표현은 바울이 대부분의 서신서를 끝맺으면서 평강(평안)을 비는 인사말에 쓰는 상투적인 끝맺음에도 해당된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 - 평강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신약성경에서 많이 발견된다(롬 15:33;16:20;빌 4:9;살전 5:23;살후 3:16;히 13:20). 그리고 바레트(Barrett)에 의하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 중에서 본 서신에만 유일하게 언급된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만이 고린도 교인들을 하나로 화목하게 하고 온전하게 할 것이다.
거룩하게 입맞춤 - 입맞춤은 원래 고대 근동에서 행해지던 인사의 한 형식이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서는 여기에다 성(聖)스런 의미를 부여했다(롬 16:16;벧전 5:14). 다시 말해서 초대 교회에서는 '입맞춤'이 제의적 의미까지 지녔다는 것이다(Barrett). 입맞춤은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교제하고 한 가족으로 연합함을 뜻한다. 그뿐 아니라 주의 만찬이 있기 전에 상호간의 용서와 화해의 표시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Har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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