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고린도후서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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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말해온 바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주장(3:1;5:12;10:12)에 모순되게도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려 한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전제 하에 고린도 교인들의 용납(容納)을요청하고 있다. 본문의 '용납하라'(* , 아네이케스데)에 대해서는 직설법으로 보는 견해와(Lietzmann, Martin) 명령법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Barrett) 직설법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이 동사가 실현 불가능한소원을 나타내는 동사 '오펠론'(* ) 다음에 사용되어 부정사적 용법을나타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번역하면 '용납하기를 바란다'란 의미이다. 아무튼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일을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사실 이것은 그의 표현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억지로 시킨 일이었다(12:11). 왜냐하면 유감스럽게도 고린도 교인들의수준이 턱없이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현혹되는 정도였으므로(10:7) 그들에게 바른것을 보여주고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바울 자신이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청컨대 나를 용납하라 - 반복되는 요청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적 업적과 권위를 예증하는 일을 결코 쉽게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게 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1:2
 하나님의 열심으로...열심내노니 - '열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젤로'(* )는 '열심'이라는 말보다는 '시기'나 '질투'라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Farrar, Martin, Barrett).그리고 영역 성경 중 RSV, NIV 등도 '시기'나 '질투'로번역하고 있다. 왜냐하면 본 구절시 내용이 하나님의 질투하심과 동일한 질투를 가지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침입해 들어온 적대자들을 대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구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혼인 관계의 유비(사50:1-2;54:1-8;62:5;호 1-3장)를 고린도 교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관계의 유비로사용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그의 적대자들에 대한 질투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바울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그에게 해롭게 행동하는데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오직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질투는 바울 자신이 애써 전도했던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에게 유혹된 것에 대한 질투였다.
 정결한 처녀로 중매함이로다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 질투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의 기쁨과 고린도 교인들의 행복을 그들이 훼방했기 때문이며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에게 중매시킨 장본인으로서의 바울은 그 사실을 과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 구절의 '중매함이로다' 는 '약혼시켰다'(betrothed,RSV)또는 '정혼시켰다'(공동번역)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바울은 순결한 처녀인 고린도 교인들을 오직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약혼시켰다(엡 5:27;요일 3:2, 3). 혹자는여기서의 '약혼'이 실질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개종', '회심'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Farrar, Barrett), 엡 5:25-27을 참조할 때 어느 정도 타당한 해석이다. 그리스도와 약혼한 당사자로서 고린도 교인들은 순결을 계속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치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이스라엘이 이방의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되며 오직 남편인 하나님에게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불신의 상태에서그리스도에게로 회심한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에게만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 바울은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행했던 행위를 뱀이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행위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창3:13). 사단의 대리인인 뱀에 해당하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그곳의 교인들을 미혹하려 한다. 특히 여기서 '미혹한다'(* ,엑세파테센)란 표현은 '완전히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을 바울의 가르침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한다. 너희 마음이...
두려워하노라 - 사단의 대리인으로서의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감쪽같이 속여 그리스도를 저버리도록 유도하려 하기에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로서(12:14;고전 4:15)그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면(4절)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의불행을 뜻할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에 쏟아부은 바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과아울러 고린도 교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어리석은 일을 해야 했다(1절).

=====11:4
 누가 - 이들은 가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 즉바울의 적대자임에 틀림없다. 본절만으로 이들이 정체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적어도이들이 팔레스틴에서 온 자들로서 유대주의를 고수하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라 볼 수있다. 그 이유는 (1) 이들이 유대인 이었다는 사실(11:22), (2) 열두 사도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른 예수 -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열 두 제자를 거느렸던 예수를 부인하고 또 다른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본질에 관해 달리 해석하는 것을 가리키다. 가령 예수의 인성(人性)을 인정하지 않는 영지주의적 기독론, 즉 예수는 순수한 인간이아니라 영적 인간(pneumatiker)또는 신적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Goudge). 다른 영...
다른 복음 - 이것은 '다른 예수'에서 파생되어 나온 말이다. '다른'이란말이 게속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은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이 진리가 아님을 강조하기위함이다.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갈 1:6-9 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어떤 내용을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대속의 도를 부정하는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갈 1:4). 그리고 '다른 영'이 평강과 자유의 영(3:17;롬 14:17)에 반대되는 두려움과 종의 영( 롬 8:15;딤후 1:7)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Harris).
 잘 용납하는구나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실망스러운 행위에 대한 풍자적 비난일 수도 있고(Robertson), 고린도 교인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한자들의 말에 대해 잘 들어주는 관용을 보였던 만큼 바울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의 관용을 보여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다(Barrett, Harris).

=====11:5
 지극히 큰 사도...생각하노라 - 여기서 바울은 자신을 다른 사도와 비교하려는 의도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다만 굳이 비교해서 말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조금도 뒤지지 않기에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확실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어리석음을 용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Harris). 한편 본문의'지극히 큰 사도들'이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학자들간에 두 가지 견해로 나뉘어진다. (1) 그것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 사도들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을지칭한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Bruce, Hering, Harris) (3) 13,15절에 나오는 거짓 사도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Lowery, Robertson,Farrar). '지극히 큰 사도'가 거짓 사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바울은 그들과 자신을비교하는 것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 볼트만(Bultmann)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하기 위하여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보며 그 근거로 6절의 '말과 지식'에 관한 바울의 진술을 인용했다. 그러나 캐제만(Kasemann)은 바울이 거짓 사도들과 자신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인데 반해 거짓 사도들은 사단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바울이 이미 첫번째 서신에서 자신과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비교한 적이 있으며(고전9:1;15:5-8, 10) 또한 갈 2:9에서 예루살렘의 기둥 같은 세 신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있으므로 첫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11:6
 말에는 졸하나 - '졸하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이디오테스'(* )는'평범한'의 뜻으로 특별한 재주를 갖지 못하고 특별히 훈련받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비해 보잘것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그래서 공동번역은 본문을 "나는 말재주는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으로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말을 잘하는것' 즉 수사학적 웅변술(雄辯術)이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이 적대자들의 기준이냐 아니면 고린도 교인들의 기준이냐 하는 점이다. 혹자는 바울이 바로 앞절에서 자신의 '부족하지 않음'을 말해놓고 금방 하나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 고린도 교인들이 웅변술에 따라 사도들의 권위를 평가했던 것으로 본다(Harris, Barrett). 그런데 10:10을 참고할 때 자기가 지극히 큰 사도들에 비해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외형적인 것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음이분명하다. 따라서 바울은 본 구절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도들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고주장한 것이 외형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상기시켰다. 한편 본 구절은 지나친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며 사실과 관계없이 적대자들이 내린 결론을 단지 인정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바울 자신이 말로 사람을 사로잡으려 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고전 1:17;2:4) 사실상 달변(達辯)으로 청중을 사로잡으려하는 거짓 사도들에 비해 뛰어난 언변을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 바울은 자신이 능숙한 말솜씨를 가지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의 사도됨에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이란 외적인 것이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사도됨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그가참다운 지식을 소유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식'은 박학 다식(博學多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 지식'을 가리킨다. 거짓사도들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박학 다식을 소유했으나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로부터계시받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들의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지식을소유한 것이다. 우리가...나타내었노라- 바울이 참다운 자식을 소유했다는 사실은 단지 자기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 교회들에게 이미 나타내 보인 바 되었음을 의미한다. 다만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이 외적인 기준에 집착했기때문에 바울이 지닌 지식의 본질 및 능력을 보지못한 데 있었다(10:7).

=====11:7
 나를 낮추어 - 이 표현은 포괄적인 의미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일반적인태도, 즉 헌신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자세를(4:12) 나타내는 것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바울 자신이 복음 전파를 위해 사례비를 받지않은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복음을 값 없이 -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복음을 전하되 그 교회로부터 아무런 물질적 지원을 받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듣는 자들로부터 물질적인 생활을 위한 보조(補助)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어쩌면 권리일 수도 있다(신 25:4;눅 10:7).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물질적지원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지않고 스스로장막 만드는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했다(행 18:1-3;살전 2:9;살후 3:8). 바울은 첫번째 서신에서 밝힌 바대로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서 생활을 위한 보조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다(고전 9:4-18).그것은 순전히 고린도 교인들의 유익을 위해 바울이 내린 목회자적 판단이었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은 바울의 이런 자세를 공격의 소재로 삼았던 것 같다. 본절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이 바울을 공격한 논리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즉 사도라면 그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로 생활비를 받아야 한다. 자신들이그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데 비해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곧 그가 참다운 귄리를 지닌 사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선생들은돈을 받고 가르침을 베풀었고 그런 문화에 익숙해 있던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논리에쉽게 현혹(眩惑)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의 본질,즉 자기를 낮춰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알아야 했다. 바울은 철저하게 이 복음을따라 살았다. 그가 복음을 전하며 값을 받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대신 고린도 교인들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 자신은 육신적으로 빈곤하게 살더라도 고린도 교인들은 영적으로 부유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바울의 목회자적 관심이었다(4:12).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이러한 행위에서 드러나는 사도적 삶과 메서지의본질을 정확하게 구별했어야 한다.
 죄를 지었느냐 -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11:8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탈취한 것 - 본절은 "나는 다른 교회들이 주는 삯을 받아 가지고 여러분에게 봉사했습니다. 말하자면 다른 교회들의 것을 빼앗아 여러분을도운 셈입니다"(공동번역)의 뜻이다. 본문에서 요(料)는 헬라어 '와소니온'(* )의 번역인데 이는 '보수' 또는 '급료'를 뜻하는 말이다(고전 9:7). 그러나바울이 '여러 교회들' 즉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9절)로부터 일정한 급료를 받았다고보기는 어려우며 아마 비정기적으로 그 교회들로 부터 후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그가 이 후원금 받은 것을 '탈취한 것'이라고 한 표현이 좀 이상하게 보인다. 그렇지만 마게도냐 교회들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할 때(8:2), 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것이아마 그에게 마치 '탈취'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요를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자들에 대해 암시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했을것이다.

=====11:9
 부족하되...폐를 끼치기 않기 위하여 - 바울은 나름대로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행 18:3). 그러나 그는 복음 전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장막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했으므로 생활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생활비 보조를 요구하지 않은 것은 그의 수입이 넉넉하였기 때문도 아니요 그가 권리를 요구할 만한 사도가 아니어서도 아니다. 오직 그에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돕고자하는 마게도냐의 성도들이 지원해 준 후원금(後援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바울이 사도적 권위와 권리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사실 끝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너무도 비본질적인 것에 현혹되어 왜곡된 시각으로 바울의 사도됨을 평가하므로 불가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1절).

=====11:10
 그리스도의 진리...막히지 아니하리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려 하지 않은 자신의 처신이 오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것임을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살 것임을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서의 마땅한 권리인 생활비 보조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바울이 자신의 청렴함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오직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복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며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위함이다. 아마 그는 물질의 부요가 복음 전도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약화시키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진리'에서 멀어질 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연약함에 처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 속에서 온전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12:9).

=====11:11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애정의 결핍을 증명하는 결과가 된다는 오해가 생겼음이 분명하다.

=====11:12
 내가 하는 것을 또 하리니...함이로라 - 바울이 오해를 받아가면서까지 대가를 거부한 것은 거짓 사도들과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바울처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도라고 주장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본절은 거짓 사도들이 내심으로 바울도 자신들처럼 복음의 삯을 받기를 바랐고 또한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도 바울처럼 복음과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전심 전력(全心全力)하는 사도로 인정되리라고 믿었음을 암시해준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그렇거니와(10절 주석 참조), 거짓 사도들에게 그들 스스로 합리화시킬 기회를 주지않기 위해서도 고린도 교인들의 재정 지원을 사양할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11:13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 - '거짓 사도'라는 말은 당시에 어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적대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본다(Robertson). 바울의 적대자들이 '거짓 사도'인 까닭은 그들이 복음과 그리스도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희생보다는 보수를 탐하는 자들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바울과 같은 참사도를 가짜라고 매도하는 거짓된 행위를 서슴지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속여서 참사도인 바울의 사도성과 그의 능력을 의심하게 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 - 거짓 사도들은 자칭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지만 사실그들은 바울이 전한 것과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해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하는 사단과 다름이 없다(3, 4, 14절). 바울이 이토록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한 자신을 거짓 사도들이 부정했기에 그들이 바울 자신과 동일한 복음과 성령을 받지 않은것으로 간단했기 때문이다.

=====11:14
 사단도...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 사람들이 보기에 뛰어난 웅변술로 인해 참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양의 탈을 쓴 이리인 경우는 초대 교회 당시뿐아니라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여러 번 있었기에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울이거짓 사도들을 공격함에 있어서 '사단과 광명의 천사'란 단어를 등장시킨 것은 뱀과하와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사단이 천사로 가장하는 것은 당시에 널리알려진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다. 묵시 문학 작품 중 모세의 묵시록 17:1에는 하와의회상이 나오는데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올라갔을 때 사단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천사처럼 찬송을 불렀다.'고 되어있다. 또한 다른 작품 중 아담과 하와의 생애 9:1에는 '사단은 분노해서 빛의 천사로 변장했다. 그리고 티그리스강의 하와에게로 갔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암시된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거짓 사도를 단순히 그의 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시키는 자로 규정하고 있음과 동시에 거짓 사도들의 기원이 사단에게 있다는것이다.

=====11:15
 사단의 일꾼...의의 일꾼 - 사단이 천사로 변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사단의 일꾼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짓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도'(13절)로 가장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도로 행세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과 메시지는 그것이 거짓임을 드러낸다. 그들은 복음 자체보다는 복음의 삯, 즉 보수를 탐하는 자들이며 믿음의 의가 아닌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며 또한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왜곡시키는 자들이다(4절).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바울은 자신이 어떠한 사심도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파했으며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종이 되는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신실(信實)한 행위를 한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4:5). 즉 그는 하나님의 심판대에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이 고린도 교회를 위해 사역했던 것이다. 반면 거짓 사도들은 그들이 선포한 메시지뿐만 아니라 행실에 있어서도 사단의 종이라는 사실이 결국에는 폭로될 것이었다.

=====11:16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 바울은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고 있다(10:12;11:1).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사도직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도 자신의 정당한 업적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을 자랑하고 있다. 본절은 앞에서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진술(1-6절)한 이후 잠시 다른 주제를 다루다가(7-15절) 다시 본절의 주제로 되돌아왔다. 이로써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일을 결코 쉽게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바울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납하라고 말한 1절과 모순되게도 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고 설득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1)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자랑은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사도들의 거짓된 자기 자랑을 폭로하여 결과적으로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적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2)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했을지라도 그 자랑은 자신의 지혜와 권위를 스스로 과시(誇示)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고린도 교회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만일 그러하더라도...
받으라 - 바울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지만 선한 목적을 위해 불가불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 차원에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1:17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 바울은 불가피하게 자신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서 자랑을 하지만 그것은 주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도적인 것도 아님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 거짓 사도들의 자기 자랑이 어리석으며 그것에 현혹되는 고린도 교인들이 어리석은 것처럼 바울도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신을 자랑한다. 그래야만 이야기가 서로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어리석은 자와 동일하게 자랑을 하자면 바울은 거짓 사도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업적이 있다(22-33절).

=====11:18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 본절은 혈통(22절),업적(10:13-16), 외적인 권위의 표징(3:1)과 같은 것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결국 자기를 과시하고 인정받기 위한 것들이다.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어서 그동안 고린도 교회 앞에서 자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도가 취할 행동이 아니며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러나 이제 바울은 상황의 요청에 따라서 자신의 업적을 과장됨 없이 자랑하겠다고 선언한다.

=====11:19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 어떤 주석학자도 본절의 '지혜로운 자'라는 표현이 사실적인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풍자적 표현으로 사실상 고린도 교인들의 어리석음을 간접적으로 꼬집는 것이다. 이로 보아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지혜있는 자로 생각했던 것 같다.

=====11:20
 종을 삼거나 - 이 표현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의 상전으로 행세하며 그들을 노예나 종으로 부렸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갈 2:4;5:1의 내용과 같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자유를 빼앗아 율법의 종 노릇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않다.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를 다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잡아 먹거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스디에이'(* )는'삼키다'(막 12:40)란 의미가 있는데 이는 마치 기생(寄生)하는 동물처럼 자기는 노력하지 않고 남의 피와 땀의 결과를 착취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거짓 사도들은 실제로바울이 씨를 뿌려놓은 곳에 와서 그 결실을 가로채는 자들이었다.
 사로잡거나 - 이 말은 미끼를 던져 함정에 빠뜨리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은 수사학적 달변(6절)으로 교인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만들려고 하였다(3절).
 자고하다 하거나 - 이 말은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했음을 나타내는표현이다. 그런데 거짓 사도들이 고린도 교인들을 무시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넓은 의미에서 가짜 복음을 가지고(4절)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행세하며 고린도 교인들을 현혹시킨 것이 무시하는 행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며좁은 의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에 이의(異議)를 제기할 때 무시당한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빰을 칠지라도...
용납하는도다 - 이것이 은유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빰을 친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어리석게도 거짓 사도들을 용납한 결과로써 그들에게 당한 무시와 수모의 극치를 보여준다. 플루머(Plummer)의 표현대로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을 짓밟고 착취하는 자들에게는 관대하고 인내와 동정심을 가지고 바울에게는 완고하게 하는 아이러니(irony)를보여주었다.

=====11:21
 우리가 약한 것같이...말하노라 -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하는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주장하며 비록 허위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자신감 넘치는 행위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한 자였다. 그는 이 약함을 스스로시인한다. 그러나 이 인간적 약함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약함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12:9-10).이런 의미에서 볼 때 바울은 오히려 강한 자이다. 또한 누가 정말 강한 사도인가 하는 것은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언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23-27절).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나도 담대하리라 -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어리석은자의 수준에서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한편 본문의 '누가'로 표현된 인물들이 누구를가리키는가에 대해서 혹자는 이들을 단지 고린도 교회의 거짓 사도들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지않고 이들의 배후에서 이들에게 권위를 부여해준 사람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고 보거나(Barrett),더 구체적으로 '지극히 큰 사도들' 즉 예루살렘의 열 두 사도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본다(Lowery). 그러나 여기서는 거짓 사도들을 가리키는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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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인이냐...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 본문의 '히브리인'이 뜻하는 바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히브리인'이라는 말이 유대인으로서의 혈통(血統)의 순수성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 즉 바울은 자신이 혈통상으로 완전한 유대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Barrett). (2) 언어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모국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아니라 모국어인 아람어를 할 줄 아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이다(Bruce, Martin, Harris). 그런데 본절 전체가 혈통상의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 자신의 유대인됨을 강조하므로 첫번째 견해가 더 타당하다. 한편 '히브리인'이 인종적인 측면에서 진술한 것이라면 '이스라엘인'은 종교적인 맥락에서 기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Barrett).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서, 보호의 대상으로,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특별히 택하신 백성을 의미한다(롬 9:4).
 아브라함의 씨 - 바울은 태어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빌 3:5). 하나님의 백성이나 종이 되는 것이 더 이상 육의 혈통으로 나는 것은 아니지만(롬 9:6-13) 유대인 거짓 사도들이 주장하는 기준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바울이 그들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즉 그는 혈통상으로 순수한 언약의 백성으로 태어났으며 또한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이 자신의 유대인됨을 강조적으로 반복한 것은 바울의 대적자들 즉 거짓 사도들이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었음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