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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이 약속 -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겠다는 약속(6:16-18)이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당신이 거하는 성전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 여기서의 '두려움'(* , 포보)은 더러움과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두려움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두려움, 즉 경외심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경외심은 성도들이 성결(聖潔)한 삶을 살도록 해주는 기본적인 바탕이 된다. 바울의 경우 하나님께 대한두려움은 그의 모든 사역의 동기가 되었으며 이것은 아울러 사도로서의 그의 가르침에대한 순수성을 변호해준다. 한편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은 유대 지혜 문학에서 발견되는 삶의 원리이다(시 2:11;5:7;잠 1:7, 29;8:13;전 12:13).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성도에게 요청되는 것은 거룩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기 때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할 성전도 마땅히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레 19:2). 본문의 '거룩함'(* , 하기오쉬넨)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형용사 '하기오스'(* , '거룩함')는 신약성경전체에서 무려 229회나 나오고, 동사 '하기아조'(* , '거룩하게 하다')는29번, 명사 '하기아스모스'(* , '거룩')는 10번 나온다는 분석(Robertson)은 '거룩'이라는 덕목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말해준다. 그런데 이 '거룩'은 일회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향한 노력을끊임없이 함으로써 얻어진다. 이것은 '온전히 이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텔룬테스'(* )가 계속 반복되는 과정을 의미하는 현재 분사형이라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 여기서 '육과 영'이란 그리스도인의 전인격적 자아를 의미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및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고전 7:34, Plummer). 따라서 어느 한쪽이 더러워지면 그것은 다른 쪽도 더러워짐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온갖 더러운것'은 무엇이었을까 ? 혹자는 본절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미 더럽혀졌음을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본다(Harris). 이 경우'더러운 것'(* , 몰뤼스무)은 우상의 신전에서 음식을 함께 나누는것, 이방인들의 사원에서 열리는 축제나 의식에 참여하는 것, 어떤 특정한 이교에 가입하여 회원이 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전 8:10;10:14-22 주석 참조). 이와 더불어갈 5:19-21에서 언급되고 있는 '음행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이 본절의 '더러운 것'에 해당될 것이다. 성도들은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성결하게 해야하며 그것이 곧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다. 결국 본절은 성도의 성결을 다음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1) 성결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요구받는 것이며 (2) 단순히 윤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생겨나고 또한 (3) 성결은 영과 육, 즉 성도의 전인격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으로 가령 영적 성결만을 중요시할 때는 쾌락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고 육체적 성결만을강조할 때는 율법적 금욕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7: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 바울은 매우 솔직하게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고 있다.이말은 6:13과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으로 거듭 화해와 일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1절의 '온갖 더러운 것'이 '분쟁', '시기', '분냄', '분리' 등이 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영접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레사테'(* )는 장소를 나타내는 '코로스'(* )에서 파생된 말로 '...을 위해 장소를 마련하다'의 뜻이다. 그렇다면 본문은 '마음속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를만들라'로 직역할 수 있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바 '영접하는' 것은 상대를 위해 마음에 장소를 만드는 것 즉 상대를 자기 실존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Strachan).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요구할 때 그 자신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다(6:11-13).
 아무에게도 불의를 하지 않고 - 본절에서 바울은 다시 그의 사역의 동기가 순수하고 그에 대한 중상(中傷)은 잘못된 것이라고 변호하고 있다(4:2;5:12, 13;6:3). 그러나 본문에서는 앞에서 제기된 문제들, 가령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한다든가 스스로를 천거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에 비해 윤리적 차원의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을 보면서 바울이 사람들에게 불의를 행하고 해롭게 하며 속여 빼앗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었다고 추론한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해진 그러한 비난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오해는 복음의 진리에 눈먼 거짓 교사들에 의해 야기된 것이었다(2:17;4:3). 사실 바울은 언제나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영적 아버지로서의 따뜻한애정을 가지고 있었고(6:13) 모든 일을 그들을 위하여 행했다(1:24;4:15). 그럼에도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허황된 거짓 가르침에 현혹(眩惑)되고 바울을 불신했을 때그의 심정은 큰 애통으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2:4). 그러나 바울은 넘치는 사랑과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스스로 회개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목회자적 모범을 보였다(2:7-10;7:9).

=====7:3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에게 대하여오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바울의 사랑에 상응하는 행위를 하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식은 것을 지적하는 것은(2절;6:12) 그들을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울과 그들이 공동의 운명으로 묶여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바울이고린도 교인들을 정죄하거나 책망하려는 의사가 없다는 것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그는 이미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나 그 문제에 동조한 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용서 하였다(2:7-10).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케하고 구원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권면을 할 때 그것이 정죄의 차원이 아니라 다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잘못을뉘우칠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 노력하였다(고전4:14;6:5;15:34)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 본문이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6:11 내용이다(Bruce,Martin). 혹자는 본문에서 바울의 화제가 급작스럽게 전환된 것을 보고 다시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사랑의 권면을 하기 위해 6:11-13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만일 이러한견해가 옳다면 그것은 6:14-7:1 부분이 다른 서신에서 가져온 삽입부라고 주장하는 견해(Gnilka)를 반박하는 것이 된다.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 바울이 자기가 돌봐야 할 성도들과 운명을같이 하며 그들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희생할 수도 있다고 한 그 자세는 그의 전생애를 통해 일관하는 목회자적 신념이었다(살전 2:8). 한편 본절은 권면의 목적과 바른자세에 관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하며 선을 지향하는것이다. 본절 외에도 성경에는 다양한 권면이 나오는데 그 권면들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회개에의 인도(눅 3:17, 18). (2) 믿음을 유지하게 함(행14:22). (3) 순종할 것을 권고함(딛 3:1). (4) 거룩한 생활의 독려(살전 4:1-6).

=====7:4
 담대한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아'(* )는 '모든 것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어떤 비밀도 없이 다 말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 바울은 14절에서 디도를 고린도 교인들에게보내기 전에 디도에게 교인들을 자랑하였었다. 바울이 이렇게 고린도 교인들을 자랑하는 것은 그들에 대해 좋은소식을 들었으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이길 것이라는그의 확신(13:8)에 근거한 것이었다. 물론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재회한 디도를 통해고린도 교회에 대한 좋은 소식을 들은(5-16절) 후에 더욱더 그들에 대한 자신의 자랑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 본절에서 표현되는 바울의 기쁨은 디도가 가지고 온 기쁜소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Harris,Lowery). 즉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신뢰가 배반당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것에서 바울은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이렇게 기쁨을 누리는 것은 고난이 끝났기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은 계속해서 고난을 당할 것이었다. 그리고바울은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 위로와 넘치는 기쁨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었다.

=====7:5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겪은일들을 회고하면서 앞절에서 언급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이유를 계속 설명하고있다. 본절의 '육체'(* , 사륵스)는 신학적인 의미가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사용되었다(Bruce). 바울은 12:7에서 '육체에 가시'를 언급했던 바, 여기서 자신의 신체적 연약함을 나타내고 있다.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 바울은 마게도냐에 도착한 후 그들이 신자든 불신자든간에 많은 적대자들로부터 줄곧 박해를 받는 역경에 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울은 심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분쟁에 말린 고린도 교인들을치유(治癒)하기 위해 디도를 파견했던 바, 고린도 교인들이 디도에 대해 어떤 반응을보일 것인가에 대한 염려요, 부차적으로는 예정된 시점에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야기 되었던 염려에서 비롯되었다(Plummer, Martin).

=====7:6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 바울은 그가 디도를 통해서 전달한 편지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반응하는 상태의 여부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이렇게 볼 때 디도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있어 심적으로 커다른 근심의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Harris). '비천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페이누스'(*   )는 본래 '지면상 낮은 위치'를 가리켯다(겔 17:6). 그런데 후대에와서 '상태의 낮음'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롬 12:16;빌 3:21;약 1:9). 이 말의좀더 깊은 신학적 의미는 세상에서 지위가 낮고 천한자들로서 의지할 만한 그 어떤 인간적인 것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철저하게 당신만을 의지하는 자들을 위로하신다. 한편본절의 '위로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1:3,4에서 강조된 바이며, 이는 사 49:13의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 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는말씀을 상기케 한다. 본절과 사 49:13 말씀과의 연관성은 바울이 6:2에서 역시 같은장(章)인 사 49:8을 인용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 심장하다.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 디도가 바울에게 돌아온 것이 바울에게 위로가 된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1) 디도가 돌아옴으로써 바울은그의 조력(助力)을 받을 수가 있었다. (2) 디도에게 준엄한 편지를 주어 고린도에 보낼 때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 바울과 디도 두 사람 모두 불안해 했었다(13-15절).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이 의외로 디도를 환대했기 때문에 디도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3) 디도를 통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태도가 매우 고무적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 그를 보고 싶어하고 그와 화목하기를 사모하는 마음, 그를 실망시켰던 행위들에 대해 회개하는 마음,그리고 다시금 그를 따르고자 하는 열심 등에 관한 소식은 바울에게 더할 나위 없는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다(7절).

=====7:7
 사모함 - 바울이 고린도에 소위 '가슴 아픈 방문'을 한 후 양자 사이는 심각하게냉각되어갔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때 서로가 더 어렵게 되는 상황이야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문을 피해야 했었다(2:1).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달라졌다.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몹시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에서 단적으로드러난다.
 애통함 -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슬픈 방문 때 보여준 그들의 행동, 즉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할 때 바울을 옹호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통회(痛悔)하는 마음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바울과 함께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Barrett).
 열심 있는 것 - 고린도 교인들은 놀랍게도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바울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는 열심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변화된 고린도 교인들의 소식이 바울에게전해졌을 때 그가 느꼈을 위로와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에 대해서는 다음의 견해를 고려하면 능히 짐작이 된다. 즉 바울은 가슴 아픈 방문 이후 디도를 통해 준엄한 편지를보내면서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자신의 장래가 그 편지의 권위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반응 여하에 달려있다고 보았다(Harris). 그리하여 그는 디도를 만나기까지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5절). 바울의 기쁨은 잃었던 고린도 교인들을 다시 찾은기쁨에 더하여 자기의 사도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기쁨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6절).

=====7:8
 편지로 - 이 편지에 대해서 혹자는 '고린도 전서'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나(Farr-ar) '고린도전서'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편지를 소위 '눈물의 편지'또는 '준엄한 편지'로 본다(Barrett, Harris, Robertson). 이 편지는 바울이 A.D.55년경 고린도 교회에 대한 '가슴 아픈 방문'을 끝내고 돌아온 후 A.D.56년 봄 디도 편으로 보낸 것으로보이며 지금은 분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쓸 때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을 정죄하려 하거나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은아니었다(3절). 도리어 그는 자식을 생각하듯 사랑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2:4;6:13). 그러나 이러한 의도와는 달리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를 받고는 마음의고통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잠시나마 그 편지에 대해 후회를 하였었다. 아마그는 너무나 강한 어조로 편지를 쓴 것에 대해 후회했을 것이다.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 다행스럽게도 고린도 교인들의 고통과 근심은지속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더 이상 '준엄한 편지'를 써 보낸 것에 대해서 근심하지않았다. 만일 편지를 보낸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이었더라면 그때 바울은 그 편지를 쓴것을 계속 후회하였을 것이다.

=====7:9
 기뻐함은...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 바울의 준엄한 편지는 잠시 동안고린도 교인들에게는 근심을, 바울에게는 후회를 가져다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바울에게 기쁨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낙담하거나좌절하지 않고 회개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바, 근심에서 회개로 후회에서 기쁨으로의 반전(反轉)은 바울이 쓴 편지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개입 때문이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여러분이 마음 아파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일이니 결국 여러분이 우리로 해서 손해 본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공동번역)의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근심이 회개로 이어졌을 때 그것을 단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아니라 그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러기에 때로 하나님께서는 근심을 통하여 회개에 이르게 하신다.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세상 근심 - 바울은 두 종류의 근심과 그 각각의 결과들을 극명하게 대조시켜 설명하면서 앞절 내용과 연결하여 계속 '하나님의 뜻대로하는 근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체적으로무엇을 가리키는가 ? 그것은 자기의 행위가 하나님의 판단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하여 자기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근심이다. 그리하여혹자는 이 근심을 죄에 대한 근심이요,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린 행위에 대한 근심이라고 하여 '신령한 근심'이라고 정의하였다(M. Henry). 이에 비해 '세상근심'은 분노하고 원한을 품으며 자기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근심이다. 이 근심의 결과는 낙담하고 좌절에 빠져 자기 파괴적인 상황으로 발전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두종류의 근심에 대한 성경의 전형적인 실례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에서와 다윗이다(Hughes). 그 이후에도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는 없었다(히 12:16,17). 그러나 자기의신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은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였기에 하나님으로부터죄사함을 받았다(시 51:1-19). 둘째는, 가룟 유다와 베드로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기 전에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끝까지 타락하였던(마 26:24) 반면,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후 통곡하며 회개하였다(마 26:75). 고린도 교인들은 후자의 경우에속한다. 그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였으며 거짓 사도들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향하였다. 이렇게 바울의 사랑('준엄한 편지')에 응답한 그들은 결과적으로 '영적 사망'을 낳는 죄의 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Martin).

=====7:11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겪은 근심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것임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증명해 보이고 있다. 구체적 증거들은 다음의 7가지로 정리된다.
 간절하게 하며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진지하게 의식하고 그것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심을 갖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변명하게 하며 - 이에 대해서는 대개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입장에 대해 탄원(歎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분하게 하며 - 이것은 바울을 공격하여 그의 명예를 실추시킨 적대자들에 대해 고린도 교인들이 의분을 느끼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과거에 고린도 교인들은 이들에게동조하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들의 행위를 방임하였었다.
 두렵게 하며 - 이것은 바울을 다시 볼 면목이 없는 것, 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낸다.
 사모하게 하여 - 7절에서처럼, 복음을 심어준 바울을 진정한 사도로 받아들이며 예전처럼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회복 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것을 나타낸다.
 열심있게 하며 - 이는 회개와 성결의 실천을 위한 열심 그리고 바울을 섬기려는 열심을 의미한다.
 벌하게 하였는가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공격한 자들을 공의에 입각하며처벌하였음을 말해준다.
 깨끗함을 나타내었으니라 - 본문의 의미가 고린도 교인들의 본래적인 무죄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있던 잘못이 용서된 것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혹자는 본문의 '나타내었느니라'(* , 쉬네스테사테)가 '입중하였느니라'를 뜻한다고 본다(Barrett).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들의 무죄함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한 것(9, 10절)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 이에 대해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범한 잘못을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잘못을 범할 때 무관심했던 것을 회개한 것이라고 한다. 칼빈(Calvin)도이와 유사한 견해를 보여주는 바, 그는 '고린도 교인들이 편한대로 행동했기 때문에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 있었겠지만, 결코 그들 자신이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으며 이에대해 그들은 분명하고도 진심에서 우러난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는'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게 되었고'로 번역하고 있는 공동번역과도 일치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Harris, Lowery)은 '고린도 교인들은 전에 실제적인 잘못을 했으나 지금은회개하고 용서받았기 때문에 깨끗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본절을 해석한다. 바울이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고린도를 향한 '가슴아픈 방문'이었다. 그런데그 방문이 가슴 아픈 방문이 되었던 것은,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할 때 고린도 교인들이 보여준 태도와 관련이 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했는지 아니면방관자적 태도를 취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어떤 경우이든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바울에게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 보여준 행동에 대해 회개를 하였기에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 자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의 두견해는 다 참조할 수 있으며 굳이 어느 하나 선택할 필요는 없다.

=====7:12
 불의 행한 자...불의 당한 자 - 여기서 논점이 되는 것은 바울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 가해자의 구체적인 범죄 행위가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불의를 행한 자와그가 저지른 불의는 고전 5:1이하에 기록된 고린도 교회 내의 음행 사건, 즉 아비의아내를 취한 패륜아 사건이었다고 보는 견해이다(Farrar). 이럴 경우 불의를 당한 자는 아들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비가 될 것이다. (2) 불의를 행한 자는 고린도 교회에들어온 거짓교사이며 이들이 저지른 불의한 행위는 바울의 사도직에 도전하고 그의 명예를 훼손시킨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Fallon, Martin). 이 경우 피해자는 바울이다.전자의 견해는 2:5을 볼 때 다소 타당성이 적어진다. 왜냐하면 2:5에 의하면 피해자가바울과 고린도 교인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자의 견해가 전개되는 상황에더 잘 부합된다. 문제는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외부에서 온 거짓 교사들이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며(3:1) 바울의 권위를 무시하는 언동을 하고 그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를 했을때 생겼을 것이고, 그때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기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그의 편을 들지도 않고 그 적대자들을 제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불의를 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회개해야하고 해명해야했던 이유가 된다(9-11절). 또한 바울이 적대자들로부터 무시당한 것은 곧 적대자들이 고린도 교인들을무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수 방관했던 그들의 행동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11절). 오직 우리를 위한 너희의 간절함이...
나타나게 하려 함이로라 -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준엄한 편지'를 보낸 목적이 드러나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잘못을일깨워주기 위하여 '준엄한 편지'를 보냈던 것이고 혹시나 고린도 교인들이 그 편지에대하여 오해하거나 근심하지 않을까 걱정하였었다(8절).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곧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자기들의 잘못을 뉘우쳤다.이런 의미에서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쓴 것은 불의한 자들이나 직접적 피해자인 바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서서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성도들간의 교제를회복토록하기 위함이며, 아울러 바울에 대한 고린도 교인들의 열정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7:13
 우리가 위로를 받았고 - 바울이 편지보낼 때 목적했던 바 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했으므로 바울은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디도의 기쁨으로 우리가 더욱 많이 기뻐함은 - 어떤 이유에서인지 분명치는 않지만디도가 바울이 건네준 '눈물의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로 향할 때 다소 두려운 마음을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 디도가 그렇게 유쾌하지 못한 마음으로 고린도를방문했을까'에 대해서는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과거에 고린도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했거나 아니면 바울이 당한 쓰라림을 자기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디도는 전혀 예상 밖의 환대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그의 마음은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동역자인 디도의 이런 모습은 바울의 기쁨을 더욱 배가(倍加)시켰던 것이다.

=====7:14
 자랑한 것이...참되게 되었도다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에 대한 신뢰를 굳게 가지고 있었고 비통한 심정으로 편지를 써 보내면서도(2:4) 디도에게 고린도 교인들은 믿을만 하고 사랑이 풍부하다고자랑을 했다. 참다운 목회자로서 바울의 넓은 마음과 신실함이 탁월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디도가 환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은 자신의 확신을 배반하지 않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진실만을말했다(1:17-20). 그리고 지금은 디도에게 한 말이 진실임이 증명된 것이다.

=====7:15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 바울 자신이 편지를 보낸 후 상당한 심적 조바심을 내었던만큼 디도 역시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와 자기가 가져온 편지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나타낸 반응은 바울과 디도의 염려가 기우(杞憂)였음을 보여주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디도를 영접하였고 더 나아가 순종하기까지 하였다. '두려위함', '떪' 그리고'순종' 같은 단어들은 고린도 교인들이 여전히 바울의 권위를 존중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바울의 대리인인 디도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로 예우해 주었음을 말해준다.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 '심정'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나'(*  )에는 '애정', '사랑', '긍휼'의 뜻이 담겨 있다.고린도 교인들이 디도를 겸손하게 대접하고 그가 하는 말들에 대해 순종하였을 때 그는 대단히 큰 감동을 받았을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선하고 훌륭한 신앙인들이라고 한 바울의 말(14절)이사실이었음을 확인한 것도 물론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디도의 마음속에는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을 실망시킨 것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가 사라지고 대신 그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깊어진 것이다.

=====7:16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조금도 거리낌없이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 표현되는 바울의 신뢰와 기쁨은 자신이 애써 수고한모든 사역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확인한 데서 느끼는 목회자로서의 신뢰와 기쁨이며,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현재 상태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 이어진다. 바울은이 모든 위로와 기쁨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겸손한 자에게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실패하지않는 목회자가 되게 한 중요한 이유였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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