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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너의 중에...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 바울의 논지는 형제들 가운데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그 문제는 형제들 가운데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 랍비들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문제는 이방 신에게 소송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Hodge). 그러나고린도 교회는 복음의 역사속에서 새 이스라엘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아직도 율법 아래있는 유대인들보다도 못한 수준에 머물러 었었다. 당시 이방 종교들이나 사회 단체들조차도 스스로 분쟁을 해결하는 관행(慣行)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가 세상 법정에 송사한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Morris,Barrett). 또한 그 송사는 부끄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세상 법정의 판결에 따라 형제를 멸시(蔑視)하고 괴롭히는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Calvin). 위에서 '불의한 자들'(* , 톤 아디콘)은 그들의 재판 자체가완전히 거짓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인하는 '세상의 재판관'들을 일괄적으로지칭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적인 의와 세상적인 의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볼수 있는데 세상적인 의는 인간의 행위나 공로에 그 기반을 두는 반면, 그리스도인의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다(롬 1 : 17). 따라서 본절은(1) 세상 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의 우월성과 (2) 성도간의 문제는 법 이전에 신앙적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것임을 교훈해 준다. 한편 칼빈(Calvin)은 본 구절을 성도는세상 법정에 절대로 설 수 없다는 견해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도들 역시불가피한 상황에 따라서는 세상 법정에 송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모체한 이후에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 사용하는 차선의 방법이다. 또한 성도는 세상 법정으로부터 출두 명령을 받았을 때 마땅히 법정의 순서상절차를 따라 출두하여 해명(解明)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도역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일반 국가 시민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할 뿐만아니라 때로는 법의 정당한 보호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Lenski).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판단할'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크리누신'(' )은 미래 능동태로서 세상 끝날에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마지막 심판에 성도들이 참여한다는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다(마19:28;눅22:30).이러한 사상은 구약성경에도 등장하는데 단 7:22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성도들의 원한을 들어주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다고 미래 사건을 예언한다. 바울은 미래의 심판 날에 성도가 참여할 재판의 권위와 자랑스러움을 강조함으로써 불의한 이방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고린도 교인의 행위를 책망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미래에 누리게 될 세상에 대한 왕권 행사(벧전 2:9)를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그 사소한일들조차도 심판할 능력이 없겠느냐고 반문한 것이다. '판단 한다'(* ,크리노)라는 말은 히브리적 사고에서 '통치한다'라는 의미로서 (1) 현재적으로는 성도들이 빛된 생활로 세상을 교훈하고 복음을 통해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게 되는 것이며(요 3:18-20) (2) 종말론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주와 함께세상을 심판하고 왕 노릇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계 20:4, Morris).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 하나의 논지를 향한 그의 수사학적(修辭學的) 질문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는 앞절에서 사용한 수사적 표현보다더 강조된 부정 의문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논지가 필연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성도는 세상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우리를 보좌하는 천사들까지도 심판할 수 있는 신분임을 기억해야 한다(사 24:21;벧후 2:4; 유 1:6). 여기서'천사'(' , 앙겔루스)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유 1:6) 곧 범죄한 천사들(벧후 2 : 4)을 가리킨다(히 2:14). 그리고 '하물며'(*  , 메티게)는 장차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게 될 위치에 있는 성도들이 일상 생활의 사소한 일들로 인하여 세상 법정에 송사하며 그 권위에 굴복하겠느냐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세상 일'로 번역된 헬라어 '비오티카'(' )는 법정 용어가 아니라 '일반 생활 습관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일' 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은평소에 사소한 마찰 정도도 해결하지 못해 세상 법정에 소송한 것으로 추추된다(Farrar).

=====6:4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 본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이다.(1) '경히 여김을 받는 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하는 것이며 (2) '세우느냐'로 번역된'카디제테'(' )를 직설법으로 쓰인 수사 의문문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풍자적 어조를 띤 명령문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카디제테'는 '카디조'(*  , '임명하다')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이나 문맥상 그 의미는 의문문과 관계된 직설법 동사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명령형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본절을 다음과 같은 풍자적 의미로 해석한다. 즉 '만일 너희가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위치에 있는데도 이러한 세상 사건으로 논쟁해야 한다면 차라리 교회에서 교인들중에 가장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워 이런 작은 일을 처리하도록 하라 ! '는 의미로이해한다(KJV, NIV, Godet, Calvin, Mare, Bengel). 이처럼 명령법으로 받을 경우 '경히 여김을 받는 자'는 교인들 중에 '믿음이 약한 자'로서 '무시 당하는 자' 또는 '어리석은 자'로 해석한다. 그래야만 풍자적 의미가 강하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카디제테'를 직설법 동사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너희에게 세상사건으로 인한 논쟁이 있다면 왜 너희는 그 사건을 교회로부터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에게 맡기느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RSV, C.K. Barrett). 이 경우 '경히 여김을받는 자'는 성도들의 송사를 주관하는 '세상 법관'들을 시사 한다. 세상 법관들이 아무리 높은 지식과 천성적인 미덕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지못한 어리석은 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Barrett). 우리는 여기서 전자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4 : 8에서 고린도 교회를 풍자적으로평가하고 있는 사실과 전자의 해석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본문의 문맥과도 자연스럽게어울리기 때문이다(Mare, Harris). 후자의 해석을 취할 경우 이 문맥에서는 고린도 교인들이 당시의 재판관들을 경멸히 여겼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본절의 의미를 어느 것으로 취하든 간에 이 말을 한 바울의 근본 의미는 손상되지 않는다.왜냐하면 바울이 이 말을 한 목적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려한 데 있었으니명령적인 어조든 의문문적 어조든 이 말은 교인들간의 사적 문제를 법정으로까지 끌고간 것에 대하여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교훈하는바는 경히 여김을 받는

=====6:5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 고린도 교회의 소송 문제에 대한 바울의 솔직한 심정이 토로되어 있는 본절의 뜻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교인 중에 경히 여김을 받는 자를 세우라'고 말한 것은 실제로 이와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희가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E.B. Allo).그것은 본 서신의 전반부에서 자기의 지식을 자랑했던 고린도 교인들의 자만심에 비해현재 그들의 초라한 상태를 지적하려는 것으로서 '정말 너희 중에 그 분쟁을 해결하거나 중재할 만한 지혜자 하나 없느냐'라는 풍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L.Morris). 한편 바울이 4 : 14에서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으나 본절에서 그 의도를 바꾼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듯한 심한 풍자를 사용해서라도 법관들에게 양도되어 판단받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다. 사도가 그들을 향한 지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깨닫게 하고 반성하도록하기 위해 사용한 이 면박(面駁)은 결국 그들을 명예롭게 할 것이다(J. Calvin).
 판단할 만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크리나이'(' )는 부정 과거부정사로서 재판에 대한 판결이나 결정이라는 의미보다는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여 해결한다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Morris). 형제와 형제 사이에 발생한 분쟁은 재판의 판결이라는 것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의지와 조정자의 중재에 의하여 원만하게 해결되는 것이 보다 더 바람직하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런 지혜자한 사람 찾지 못했다.

=====6:6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 바울은 접속사 '카이'(' ,'그리고')를 사용하여 논리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의 잘못은(2)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있을 수 없는 분쟁이 발생했다는 것이며 (2) 그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송사하였다는 것이고 (3) 결정적인 잘못은 그 분쟁을 제소한 법정이 불신자의 법정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분쟁이라는 잘못된 행위로부터 출발하여 형제를 이방의 법정에까지 고소하고 이교도로 하여금 성도를 판단하게끔 하는 더 큰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마치 적은 누룩이 온 떡 덩어리를부풀게 하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 발생한 작은 악은 점진적(漸進的)으로 성장하여 개인과 이웃과 교회 공동체 전체를 멍들게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지금이라도 악의 연결 고리를 끊는다는 의미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의 분쟁을 서로간에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다시 말해 분쟁 문제를 꼭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이런 일을 충분히 처리할 만한 지혜를 가진 교인을 찾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렇게하는 것이 세상의 소송을 통하여 서로 다투고 판단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이다(Mare).

=====6:7
 송사함으로...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 이들의 송사에 대한 판결은 소송을 제기하기이전에 이미 승패가 결정되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속한 두 형제는 세상 법정에제소하는 그 순간 모두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허물'이라는 헬라어 '헥테마'(*  )는 초대 교부들 가운데서 '패배'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는데(Morris) 본절에서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도덕적 패배이며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공동체 의식, 즉 한몸 의식(지체 의식)의 패배이기 때문이다(롬 12:5;엡 4:4). 그들은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의 원리를 저버리고 세상의법정을 선택함으로써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영적 패배를 선택하였던 것이다(Harris). 한편 '헥테마'를 '패배'가 아닌 '허물'이나 '결점'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경우 그 의미는 송사한 사건이 이미 그들의 약점이 되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허물이든지 패배이든지 간에 사랑과 용서를 저버린 그들의 행위가(골 3 :13) 그리스도인의 삶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는 의미를 전하는 데는 별다른차이가 없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 여기에서 바울의 주장은 절정에 달한다. 교인들 사이의 문제를 법적 소송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악한 일이며 나아가서 완연한 허물이라고 지적한 사도는 이제 교인들이 이런 싸움에 휩쓸려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를 주거나속이기 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어려운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Mare). 그들은 분쟁의 승리를 위해 송사하기 이전에 또다른 방법을 선택했어야만 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이다(마 5:39-42). 그희생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손해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신이 불의한 자가 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는 양보이다. '불의를 당하는 것'(' , 아디케이스데)과 '속는 것'(' , 아포스테레이스데)에 해당하는 두헬라어 동사는 모두 현재 중간태로 사용되었으나 본절에서는 허용적 의미를 띠는 수동태에 가깝게 해석되어야 한다. '아디케이스데'는 '부당함을 입는', 또는 '불공평한상태나 모욕을 당하는'을 뜻하는 단어로서 공평하고 평등한 해결이 아니라 할지라도그 불공평을 감수하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아포스테레이스데'는 '강도를 당하다', '빼앗기다'를 뜻하는 단어로서 형제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치 강도에게 약탈당하는 것과 같은 불이익(不利益)을 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양보하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지혜와 의를 자랑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원리를 기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자들에게는 결코 어려운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이기적인 추구보다는 희생적인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삶의 원리와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 '저는 너희 형제로다'라는말은 교인들 상호간에 불의를 행하거나 속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 그런데 고린도교인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태도로 형제를 해치고모욕하는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약탈과 보복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결국 그들이 한 형제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되었다. '불의를 행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디케이테'(' )와 '속이다, 빼앗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테레이테'(' )는 모두 능동태 동사로서 단지 그들의 소송이 '방어적 소송' 이상임을 시사한다. 소송을 제기하는 자나 소송으로 말미암아 고발된 자나이들은 모두 서로를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형제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이교도와같은 삶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특히 바울이 '서로를 형제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의 교회 공동체 속에서 '형제'(' , 아델포스)라는단어가 양보와 희생으로 하나된 공동체의 일원(一員)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반증한다.

=====6:9
 불의한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남색하는자나 - 관사없이 사용된 '아디코이'(' , '불의한 자')는 '악을 행하는 집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성', 곧 '악의 성격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대적 관계에 놓여진 자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교회공동체와 같은 또 하나의 집단적 공동체를 형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스스로 행하는 악의 성질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동지가 된 자들이다. 그들은 악의 동지 의식에 의해 더욱 하나님의 나라와 강한 대조를 이루는 세력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 나라로부터 철저하게 배척 되었다. 본절에 기록된 다섯 가지의 악의 형태는 모두 불의한 자들에게 속한 것으로서 성적 타락과 관계된 것들이라고 할수 있다. (1) '음란'(* ,포르네이아)은 모든 형태의 성적 타락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으며 자세한내용은 5:1 주석을 참고하라. (2) '우상 숭배'는 당시 이방 신전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로서 특히 성적 타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이방 신전들은 성적 타락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3) '간음'은 특별히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성적 타락을 지칭한다. (4) '탐색'(* , 말라코스)은 원래 '유약한', '여자같은'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이 단어의 수동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남자들과 더불어 음행하는 자들 중에서 수동적 위치에 있는 상대자를 뜻하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Barrett). 여기서 특별히 주색(酒色)에 빠진 것을 뜻하는 말로서 동성 연애자들을 지칭하는 '남색하는 자'(* , 아르세노코이테스)와 같은 부류의 사람, 곧 자기의 몸을 동성 연애자에게 내어 맡기는 부끄러운 악을 행하는 자들을 뜻한다.
 미혹을 받지 말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플라나스데'(' )는 갈 6:7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러한 표현은 당시의 논쟁 가운데서 자주 사용되었다(15:33;눅 21:8;약 1:16). 이것은 '외부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의미보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유혹을 극복하라는 뜻이 더 강하다. 당시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만한 지혜로 도덕적 수준을 규정하였으며, 하나님은 거룩한 삶의 수준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과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였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자신을 속이면서 이러한 것들이 악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던것이다.

=====6:10
 도적이나...하나님의 나라를...받지 못하리라 - 본절에 기록된 악들은 앞절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들이다. 앞절의 행악은 주로 자기의 몸을 더럽히는 특성을 가지고있으나 여기서는 주로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종류의 악들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이들 역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제외되었음을 강조한다.
 (1) 도적(*  , 클레프타이) - 전문적인 강도라기 보다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2) 탐람하는 자(*   , 플레오네크타이) - '자기 욕심에 의하여이웃의 것을 탐하는자'를 의미한다.
 (3) 술 취하는 자(*  , 메뒤소이) - '술로 인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자들'을 의미한다.
 (4) 후욕하는 자(*  , 로이도로이) - '남을 비방하는 자'를 뜻한다.
 (5) 토색하는 자(*  , 하르파게스) - 탐람하는 것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완력뿐만 아니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남의 재산을 강탈하는 자'(extortioner)를 의미한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에 만연하던 죄상(罪狀)을 지적하여 그들의 수치를 자각시키고 성도 본연의 사랑과 순결의 중요성을 깨우치며 죄악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선포하고 있다.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바울은 고리도 교인들의 옛 생활을 회상하고있다. 본절은 두 가지 의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있더니'(' , 에테)를 어떤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1) 미완료 과거로서 지난 날을 회상하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지난 날에 너희는 이방인과 같은 죄악에 빠져 있었으나'를 뜻한다. (2)미완료의 반복적 의미라면 그 뜻은 '지난 날에 너희가 죄악 가운데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러한 죄악 가운데 있다'라는 의미가 된다. 후자는 '티네스'(* ,'너희 중에')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 가운데 있는 '몇 사람' 또는'일부'(개역성경은 번역하지 않았음)가 죄악을 범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본절은전체 문맥 속에서 의미를 재고해 볼 때 전자의 의미가 강한 것 같다. 바울은 지금 죄악들을 나열하며 지난날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인 가운데서 살 때의 죄악과 예수 안에서 얻게 된 새로운 삶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너희 중에 이러한 죄에 빠져 있던 자들이 있었으나'라는 뜻에 더 가까운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 이는 그리스도의 모든 인격과 사역을 포함한다(Morris). 그리스도의 피는 성도들을 정결케 하였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성화(聖火)의 소망을 갖게 하였다. 특별히 본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이 영위하는 성화의 삶의 원동력임을 시사한다(롬 8 : 4, 14, 17).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이제는 더 이상 죄악 가운데 묻혀 있지 않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헬라어 원문은 접속사 '알라'(* , '그러나')를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뜻하는 세 동사 앞에각각 하나씩 기록함으로써 주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때 일어난 세 가지 사실을 열거한다. 먼저, '씻음'에 해당하는 동사 '아펠루사스데'(' )는 부정 과거중간태로서 죄로부터 씻음을 받은 것을 뜻한다(행 22:16;계 1:5). 보통 신약성경에서는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를 '세례를 받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에밥티스데산'(*   , '그들이 세례를 받았다')을 사용하여(행 19: 5) 그 의미를전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아펠루사스데'가 세례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함께 기록된 '예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때문이다. 바울은세례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성령의 사역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으로해석하고 있다(행 2:4;롬 6:3). 혹자는 '아펠루사스데' 를 중간태로 기록한 것은 세례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세례는 세례받는 자의 선택과 고백에 의하여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두 동사와 구분하였다고 한다('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은 모두 부정 과거 수동태로 기록 하고 있다, Bachmann).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보다근본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동적 사역을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Morris, Barrett). 그러므로 '아펠루사스데'는 중간태로쓰였으나 본절의 문맥상 그 의미는 수동적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것이다(Lenski). 다음으로, '헤기아스데테'(' ,'거룩함')와 '에디카이오데테'(' ,'의롭다 하심')는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그들이 의롭게 된것과 거룩하게 된 것은 이미 과거의 시점에서 하나님의 주도적(主導的)인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한편 본 구절에서 주의할 점은 바울이 세 동사를 사용하여 그들의현재적 신분을 설명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세 단어는 모두 동일한'의'의 개념 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Calvin). 즉, '죄 씻음'과 '거룩'과 '의'는 그들의 죄가 아무리 컸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들이 새로운 의의 삶을 지향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법정적 선언의 개념을 가진다.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 바울은 이 구문을 주로 1인칭으로 사용하며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자유를 표현할 때 사용하였다(7:17;9:19;10:23).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이 격언에 대하여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방종을 정당화시키는 방편으로 삼게 되었다. 그들이 이러한 격언을 알게 된 것에 대하여 학자들은 두 가지의 견해를 주장한다. (1) 바울이 이 서신을 쓰기 전에 보냈던 어떤 그들을 통하여알게 되었다는 것이다(다른 서신에 대한 것은 5:9 주석 참조). 모리스(Morris)는 바울이 고린도에 일차로 방문하였을 때 이와 같은 사상을 가르쳤던 것으로 추적하며, 허드(J.C. Hurd)는 이전 편지의 내용 가운데서 특히 유대주의의 율법적 규제와 대조적으로 표현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 이러한 격언이고린도의 영지주의자들 속에서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물질과 육체를 경시함으로써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격언을 육체의 방종과 잘못된 결혼생활에 적용하였던 것이다(Barrett, A. Schlatter). 한편 바레트는 바울이 이미 언급한 자유를 영지주의자들이 도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 개연성(蓋然性)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이 격언을 어떤 방편으로 알게 되였든지 간에 그들은 격언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잘못된 곳에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1) 그 일이 과연 내게유익한가? (2) 일에 이끌려 참여함으로써 다른 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3) 그일이 교회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가?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가 곧 무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율법은 '칭의'의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으나 여전히 존재하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규범을 따라 살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범죄한 자들을 내버려둘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새로운 진리를 가지게된다. 율법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지만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덕을 세워야 하며(8:1) 자유를 통하여 진실과 사랑을 실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방종을 다스리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6:13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 이것 역시 12절의 격언과 같이 고린도교인들이 이미 알고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먹는 것은 육체의 본능이기때문에 앞의 구절과 같이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다시 말해서 우상에게 바친 음식이라 할지라도 몸을 위하여 또는 식욕의 본능을 채우기 위하여 믿음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8:8;10:25). 그런데 당시 고린도 교인들중에는 이 격언을 엉뚱한 곳에 적용시키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식물을 먹는 것이 육체적 본능이듯이 성적 욕구를 채우는 것도 육체적 본능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성적인 타락과 방종을 정당화시키려 하였다(Barrett).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태도와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 왜냐하면 먹는 것과 성적인 욕구는 잠깐 있다가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모두 폐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새롭게 태어난 몸은 오직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행하며 거룩한 생활 가운데서 주를 영화롭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의 몸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도구임을 자각해야 하며, 또한 그 헌신뿐만 아니라 모든 육체적 생활조차도 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14
 주를 다시 살리셨고...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바울은 성도의 육체가 그리스도의부활을 따라 함께 부활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육체를 경시하여 성적인 방종에 빠진 자들을 경고한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 과거 시상으로 기록함으로써(*  ,에게이렌, '살리셨고') 부활이 역사적 사건으로서 이미 단회적으로 성취되었음을 시사한 반면 성도의 부활사건은 미래 시상으로 기록하여(*  , 엑세게레이, '살리시리라')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이미 그리스도의부활 사상이 교리화되었으며 고린도 교인들도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믿고 있음을시사한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동사(*  , 에게이로)로 기록한 반면 성도의 부활은 합성 동사(*  , 엑세게이로)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부활의 질적인 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부패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몸과, 흙으로 돌아가서 무덤 속에서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육신(肉身)을 구별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Lenski). 여기서 전치사인 '에크'(* , '...부터', '...밖으로')는 죽음의 무덤으로부터 우리를 부활시켜 구원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암시한다.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 몸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지체'(* , 멜레)라는 말은 손, 발 등과 같은 신체의 일부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로서다른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연합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 되었다(12:12;엡 5:23). 본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일부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창기와 더불어 음란한 육체적 방종에 빠져 스스로 그리스도의 지체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 이는 13절에서 언급한 '주와 몸'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으로서 지체된 몸의 일부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라 주를 위하여 사용되고 움직여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이는 강조 어구(*  , 메 게노이토)로서 신약성경에서 주로 바울이 사용하였으나 본서에서는 여기에서만 등장한다. 고린도 교인들중에는 창기와 더불어 방탕(放蕩)한 생활을 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지체로부터 제거되기를 거부한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주인을 섬기려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태도는 너무나 단호하다. 결코 그리스도와 창기를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6:16
 창기와 합하는 자는...둘이 한 육체가 된다 - 바울은 창 2 :24에 기록된 부부의 성적 결합에 대한 표현을 인용함으로써 창기와 더불어 음란한 방종에 빠진 자들이 그들과 한 몸이 되어 창기와 같은 신분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합한다'(* ,콜로메노스)와 '한 몸'(* , 헨 소마)이라는 표현은 그들이 성적 행위를 통하여 '하나의 신분', 또는 '같은 범죄', '더 나아가 동일한 멸망'에 처하게 되었다는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타락한 육체와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분리되어 더 이상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지 않는 죄악의 종이 되어 버렸다.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주제는 '몸의 연합'에서 '영의 연합'으로 옮겨진다. 즉 창기와 합한자는 창기와 한몸이지만 주님과 합한 자는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가된 자라는 것이다. 이는 성적 타락으로 더럽혀진 죄악의 상태와 성도의 거룩한 신분을선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성적 부도덕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고 성도들의 참된 지향점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 여기서 바울은 주와 '합한다'는 것도 앞절과 같은 분사 '콜로메노스'(*  )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영'의 연합을 몸의 연합과 같은 선명한 표현으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사역 때문이다. 성령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해주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몸과 영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신비적 연합을 이룸으로써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을 닮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엡 4:13). 그리고 신비적 연합을통하여 '한 영이 된다'는 것은 성도의 영이 그리스도에게 흡수된다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영과 성도의 영이 혼합 내지는 융화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양자(兩者)의 영이어느 하나의 특성을 무시하지 않는 인격적 연합을 이룸을 의미한다(Lenski).

=====6:18
 음행을 피하라 - 바울은 몇 가지의 비유적인 표현을 마무리하면서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명령형을 사용한다.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  )는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한순간의 도피나 연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음행의 유혹으로부터 철저하게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음행으로가득찬 고린도 도시 속에서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한 순간에 거부했던 것만으로 안심할 수 없으며 미래의 생활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음행을 피하라' 는 것은 그 유혹이 있을때마다 강하게 거부할 수 있는 현재적(現在的)인 행동을 요구한다.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 바울은 여기서 '몸'(* , 소마)이라는 말과 '죄'(* , 하마르테마)라는 단어를 특이하게 사용하고 있다.여기서 '몸'은 단순한 육체를 뜻하지 않는다. 그는 '썩어 없어질 육체' 를 의미하는'사륵스'(* ) 대신 '소마'를 사용하고 있다(Lenski). 이는 음행이 단순히 육체에 행하는 자해적인 것 이상으로 인간의 전인격을 손상시키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죄'는 '하마르티아'(*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본절에서 바울은 '하마르테마'를 사용하여 죄의 행위 자체보다는 그 죄로 인하여 초래될 결과, 즉 인간의 생명 작용까지도 악화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Morris).

=====6:19
 너희 몸은...성령의...알지 못하느냐 - 바울은 본장의 논쟁에서 여섯번째 질문을던지고 있다. 그는 3:16에서 복수('너희')를 사용하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과 그 공동체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몸'을 단수로 사용함으로써 성도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과 개인의 인격 속에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으로서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거룩한 하나님의 전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들을 삼가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음행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행동은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도포함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모든 인격을 포함해서 자신의 몸을 성령이거하시는 거룩한 처소(處所)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Mare).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 이는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19절)고 말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타락시키거나 함부로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산 것이 되었다'(*  , 에고라스데테)는 것은 일반적으로 부장에서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그에 맞는 '값(* , 티메스)을 지불했다'는 뜻이나 본절에서는 (1) 수동태로서 누군가에 의하여 '저희가 산 바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2) 부정 과거로서 그 행위가 과거의 단회적(單回的)인 사건에 의하여 성취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바울은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고귀한 값을 치르고 죄인들에게 자유를허락 하셨다. 따라서 구속받은 백성은 이제 그리스도의 소유물로서 그속에서 자유를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한편 '티메스'라는 표현은 본절에서 두 가지를 강조한다. (1) 그 가치가 비싸다는 것과 (2) 값이 공정한 거래의 대가로서 정당하게 주어졌기 때문에 또 다른 값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이는 18절의 부정적인 명령형과는 달리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성도의 행위를 요구하는 명령이다. 성도는 죄악을 피해다니며 죄를 안 짓는 소극적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이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긴장된삶을 통하여 죄악의 세력으로부터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몸'이라는 단어를 육체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인격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전인격인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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