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
닷새 후에 - 이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출발 때부터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Meyer), 그보다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후부터 닷새 후라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Haenchen, Bruce,Holtzmann). 아나니아가...변사 더둘로와 함께 -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잔인한 성격에 대해서는이미 23:2에서 밝힌 바 있는데, 여기서도 그의 집요한 악함이 드러난다. 아나니아는바울이 전통적인 유대교 신앙을 떠났다는 종교적 이유 외에도 바울에게 저주를 당한것에 대한(23:3) 개인적 증오심 때문에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바울을 끝까지 해치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로마 법정에서 바울에게 불리한 판결을 확실히 하기 위해한 변사(辯士)까지 동원하였다. '변사'(* , 레토로스)유대교의 법과 로마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서 뛰어난 언변을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변사를 데리고 온 것은, (1) 바울을 고소하여 재판을 받게 하려면 로마법의절차를 잘 알아야 했기 때문이며, (2) 변사의 뛰어난 언변으로 재판을 받게 하려면 로마법의 절차를 잘 알아야 했기 때문이며, (2) 변사의 뛰어난 언변으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변사의 이름 더둘로(Tertullus)는 당시 로마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이름이다. 아마 그는 헬라계 유대인이었을 것이다(Bruce).한편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몇 명의 장로들이 산헤드린 전체를 대표해서 온 것인지 아니면 바울에 대해 특별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특히 사두개인들, 23:6-9)이사적(私的)으로 온 것인지 분명치 않으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격렬한 논쟁 후에 쉽사리 화해할 수 없으리라고 볼 때 후자일 가능성이 많다.
=====24:2
바울을 부르매...송사하여 -아나니아 일행의 고소가 접수되었고, 바울이 법정에 불려나옴으로써 원고와 피고가 한자리에 모였고 재판장 벧릭스가 자리에 앉음으로써 재판은 시작되었다. 먼저 더둘로의바울에 대한 고발 논고가 시작된다.
=====24:3
벧릭스 각하여...감사 무지하옵나이다 - 더둘로의 논고는 의례적으로 재판장을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낯간지러운 아첨으로시작되고 있다. 그의 아첨의 요지는 벧릭스의 뛰어난 통치력으로 민족이 개혁되었고평화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이며 이에 대해서 언제 어디서나 환영하며 감사하여 마지않는다(공동번역)는 것이다. 더둘로의 이 말은 아첨 이상의 어떤 진실성도 갖고 있지않았으며 이 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총독 벧릭스의 상습적 잔혹 행위는 그 당시에 널리 알려졌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역사가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벧릭스는 총독으로서의 특권을 이용하여 뇌물과 여색을탐하는 등 온갖 악행을 도모하였으며, 특히 자신의 비위를 거스리는 자들은 암살자를동원하여 살해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또한 타키투스(Tacitus)에 의하면 당시에 많이일어났던 소요를 진압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강도떼들을 부추겨 약탈하도록 하여그 약탈물을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나중에 벧릭스가 총독에서 물러나 로마로 소환되었을때,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앞의 일들에 대해 유대인들이 탄원하였기 때문이었다(Tacitus Ann, XII, 54).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무니없는 찬사를 늘어놓는 더들로의 의도는 (1) 당시에 벧릭스가 가지고 있던 반유대 감정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이며, (2) 벧릭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거짓 찬사를 통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려는 것임이 명백하다.
=====24:4
괴롭게 아니라려 하여 - 이는 실질적으로 할 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총독 벧릭스를 불편하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간단하게 중심 내용만 말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나 그 보다는 당시관례적으로 법정에서 재판장에 대한 예의로서 한 언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더둘로의 변사로서의 노련한 언변을 엿보게 한다. '괴롭히다'를 뜻하는 '엥콰토'(*)는 '방해하다'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당신의 통치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위해'로 번역될 수 있다(Preuschen). 대강 - '쉰토모스'(* ) '간단히'(공동번역)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짧게 베다'의 뜻인 동사 '쉰템노'(* )에서 온 말이다. 이 말은 필요한 부분만을 베어내는 것, 또는 필요한 부분 외의 것을 베어내 짧게 한다는 뜻이다.
=====24:5
염병 - '염병'(* , 로이모스)은 흑사병과 같이 전염성이 강하고 일단 감염이되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염병을 가리키며, 형편없는 사람에 대한 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더둘로는 바울이 전한 도(道)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그것이 마치 흑사병과 같이 사람들에게 해가 된다고 잘라말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흑색선전이었을 뿐이다. 여하튼 바울을 염병(染病)이라고까지 부른 것은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나갔음을 말해준다.
소요케 하는 자 - 아나니아 일행이 상당히 치밀한 준비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문제가 벧릭스의 분노를 유발시킬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고소 내용의 제일 첫번째 항목으로 그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울이정치적 혁명 세력과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벧릭스는 유대를 통치하는 동안 여러 가지 소요 사건들에 직면하여 그 주동자들은 물론 추종자들까지도 십자가에 처형시키는방식으로 강경하게 진압했다(Jos, Wars II). 그리고 그는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떤 소요에 대해서도 즉시 잔인하게 진압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나사렛 이단의 괴수 - 이단(* , 하에레시스)은 '선택하다', '더 좋아하다'를 뜻하는 '하이레오'(* )에서 파생되어 어떤 '파'나 '당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며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것을 택한 자'혹은 '파당'을 가리킨다. 더둘로가 이 표현을 썼을 때 종교적 견해 차이에 중점을 두는 의미에서 '이단'(개역 성경)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로마에 저항하는 집단으로서의 '도당'(공동번역)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종교적 교리에 대한 차이를 가지고는 로마 법정에서 시비를 걸수 없음을 더둘로 일행이 잘 알고 있었을 터인즉, 벧릭스가 그 말을 받아들일 때 후자의 의미로 생각하기 바라는 뜻에서 사용했을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한편 예수를 따른 자들을 가리켜 '나사렛당'(Nazarenes)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곳이 유일한 경우이다. 이는 본래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었기 때문에예수 이름 앞에 '나사렛'을 덧붙여 부른데서 시작되었다. '괴수'(*, 프로토스타테스)는 '첫째'를 뜻하는 '프로토스'(* )와 '서다'를 뜻하는'히스테미'(* )의 합성어로 '무리 중에 첫번째 서 있는 자' 즉 '지도자'나'주모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더둘로가 바울을 정치범으로 몰고 가려는 장면을보게 되는데, 이는 예수께서 당하신 모함(謀陷)과 상당히 유사하다(눅 23:2). 아마 누가는 주께서 당하신 고난을 제자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인식하기 바랬을것이다.
=====24:6
성전을 더럽게 - 성전 즉 종교에 관한 것은 로마 법정에서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자료가 되지 못함을 저들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간략하게만 끝으로 언급하고 있다. 만약 여기가 유대교 법정이었다면 가장 먼저 중요하게 고발해야 할 제목이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고반로마적인 행위에 관한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예수를 죽이기로 결심하게 만든 것이 성전 정화 사건이었고(막11:15-19) 바울이 결정적으로 음모에 걸려든 것도 성전에서였다는 점은(21:27-30) 주님과 제자의 고난에 있어서 또 다른 공통점을 보여준다. 한편 어떤 사본에는 '유대인들이 바울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려고 했으나 천부장이 바울을 빼앗아갔다'고 더둘로가말한 내용이 들어 있지만 별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24:7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 만약 앞절에서 언급한 사본의 내용을 인정한다면 여기서의 '그'는 '루시아'일 수도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으로 보아 그렇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벧릭스가더둘로의 말대로 심문한 사람은 바울이었고 루시아를 부르도록 조치하거나 재판을 연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4:8
우리가 송사하는...아실 수 있나이다 - 총독 벧리스가 직접 심문하면 고발한 모든 내용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You will be able to learn from him about everything of shich we accuse him,RSV). 더둘로가 이렇게 자신있게 말한데 대해서는 의구심이 생긴다. 바울이 그의 고발내용을 시인하리라고 보았는가? 만일 그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이는 판단 착오일 뿐이다. 아니면 동료들을 동원하여 압력을 가할 셈이었는가?(눅 23:13-25) 어쨌든 분명한것은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궤변적, 허위적 자신감이나타나 있다는 사실이다.
=====24:9
유대인들도 - 본문은 아나니아 일행이 예루살렘을 떠나올 때 장로들 외에 다른 유대인들도 데리고 왔음을 시사한다. 아마 자기들의 위세를 과시하고 많은 증인이 있음을 보영줌으로써 자기들의 의도대로 판결을 끌고가려는 속셈이 있었을 것이다.
=====24:10
머리로 표시하여 - '누오'(* )는 '고개를 끄떡이다', '고갯짓으로 암호하다'는 뜻이다. 벧릭스는 재판장으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려는 듯 말로 하지 아니하고 고갯짓으로 바울에게 변호를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 민족의 재판장 - '이 백성의 재판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 민족'이라고표현한 것은 로마 총독 벧릭스와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다름을 시사하는 듯하다. 바울은 벧릭스가 '재판장'됨을 말하는데 이는 더둘로가 벧릭스의 '통치자' 됨을 집중적으로 말한 것과(3절) 대조를 이룬다. 현재의 상황은 재판정에서, 벧릭스를 총독으로보다는 재판장으로서 대하고 있는 자리이므로 바울의 인사말이 상황에 더 적절하다고할 수 있다. 바울 역시 벧릭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재판장에 대한 정중한 예의를 표시하고 있으나 더둘로의 비굴한 아첨에 비해절제되고 점잖은 인사이다.
=====24:11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 이 표현은 8절에서 더둘로가 자신에게 했던 말고 동일하다. 두 사람 모두 벧릭스의증언이 확인될 수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증언이 서로 다르므로 한 사람은 진실을 말한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거짓을 말한 것이며 이는 구체적인증거로써 밝혀질 것이었다. 예배하러 올라간 지 - 바울은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종교적인 것임을 먼저 밝히고 있다. 이것은 더둘로가 바울을 정치범으로 고발한 것에대한 반대 논증인 셈이다(5절). 한편 1절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가이사랴에 온 것을'내려와서'라고 표현했으며 본절에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올라간'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예루살렘을 종교적 중심지로 보는 유대적 배경에 따른 관용적 표현이다. 열 이틀밖에 -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이 정치적 소요(騷擾)를 일으키기에는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음을 밝힘으로써 더둘로의 고발이 근거없는 억지임을 증거하고 있다. 더구나 열 이틀 가운데서도 나흘 동안 붙들려 있었다는 점과 칠일간은성결례(聖潔禮)를 행하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더욱 명백해진다. 혹자는 본문의 '열이틀'이 7일 간의 결례 기간(21:27)과 가이사랴에서의 닷새(1절)를 합한 것이라고 보기도 하나(* ) 이렇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본문의 의미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날부터 예루살렘에 머문 기간을 계산한 것이므로 위의 견해대로 볼 경우 예루살렘에 머문 며칠의 기간이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21:17, 18;22:30;23:12, 32). 쉴라터(Schlatter)의 견해대로 다음과 같이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제1일 : 예루살렘에도착(21:17), 제2일 :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과의 회합(21:18), 제3일-제9일 : 7일간의 정결례(21:27) 및 성전에서의 누명(21:28), 제10일 : 공회에서의 증언(22:30), 제11일 : 바울을 살해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23:12), 제12일 : 가이사랴로의 이송(23:32).
=====24:12
변론하는 것이나...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 바울의 자기 변호는 매우 논리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더둘로의 웅변가적이고 선동적인 주장과 뚜렷이 대조된다. 앞절에서는 자신의 예루살렘 체류 기간이 짧았다는것을 이야기했는데, 여기서는 더 나아가 대중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갖지 않았음을 말함으로써 정치적 반란자로 고발된 것이 터무니 없음을 밝히고 있다. 바울은성전에서 사람들로 더불어 토론을 벌인 적도 없고 회당과 성 안에서 사람들을 선동한일도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천부장 루시아가 그의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을리가 없을 것이다. 한때 소란 사태가 있긴 있었지만 그것은 바울에 의해서가 아니라바울을 해치려는 유대인들에 의한 선동의 결과였고(21:27, 28), 그나마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기에 바울에게는 아무런 흠잡을 일이없었다.
=====24:13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 바울의 변론은 논리적이고 치밀하였다. 그는 더둘로의 고발이 터무니없는 것임을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증명한 후 이제는 결정적으로 더둘로의 고발이 거짓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로써 바울은 소요 죄에 대하여 무죄함을 증명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절에 의하면 바울은 구금(拘禁) 상태에서 풀려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 바울에게 밝혀지지 않은 죄상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2) 바울이 공적(公的)으로 위험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라도 반란의가능성이 보이면 그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로마 행정관의 임무였던 것이다(HowardMarshall).
=====24:14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하나님을 섬기고 - 바울은 앞의 정치적인 문제에 이어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변론하기 시작한다. 먼저바울은 더둘로가 '이단'이라고 규정한 것을 '도'(* , 호도스)라고 정정하고 있으며 유대교와 이 '도'(道)가 동일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연속성에 대한 강조는 이 '도'가 유대교와 동일하게 로마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은근히 시사한다. 그리고 더둘로가 '나사렛 이단'이라고 표현할 때 정치적 집단이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이도록 사용한 것에 대해(5절 주석 참조), 결코 반로마적인 정치 문제가 아니라 종교적인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4:15
하나님게 향한 소망...의인과 악인의 부활 - 여기서는 하나님께 향한 소망과 부활이 동일시되고 있고 그것은 곧 유대인들의 신앙과 동일시된다. 물론 이 자리에는 사두개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부활을 부정했지만 전통적 유대교 신앙과 기독교의 관계성을 논의하는 이 자리에서 사두개인의 신앙을 표준으로 놓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사두개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부활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진 것이다.(마22:23-33 주제 강해, '부활에 대한 구약 성경의 증거' 참조). 한편 바울이 부활을 언급함에 있어서 의인과 악인의 동시적 부활을 언급함에 있어서 의인과 악인의 동시적부활을 말한 것이 여기가 유일한 곳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가 있다. 즉본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만이 구원을 이야기하는 바울의 부활 사상을 누가가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Gardner). 그러나 예수께서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말씀하신 바 있고(요 5:28, 29), 바울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활과 다른 부활을 이야기했다고 볼 수 없으며, 바울이 주로 의인의 부활에 대해 언급한 것이(고전 15:12-58);살전 4:13-5:11)곧 영원한 심판으로 이어지는 악인의 부활을 배제한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의 서신들은 기존의 그리스도교인들을 향한 목회적인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자연히 악인에 대한 관심보다는 의인의 부활에 대한 관심이 집중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24:16
이것을 인하여...힘쓰노라 - '이것'이란 앞절의 부활, 즉 의인과 악인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되는 것을 뜻한다. '거리낌이 없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프로스코폰'(*)은 부정 접두어 '아'(* )와 '치다', '실족하다'를 뜻하는 '프로스콰토'(*)의 합성어로 '범(犯)함이 없는'(Page) 또는 '...에 넘어지지 않는'의 의미이다. '힘쓰노라'(* , 아스코)는 '부단히 연습하고 노력한다'는 뜻으로 바울은 늘 이렇게 살려고 애썼다(고전 9:27;15:31). 본문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기본적인 의무를반영하고 있으며 (잠 3:4;눅 18:2, 4),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율법을 요약하신 예수의 말씀과 결부된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가 강조되어야 한다.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인들은 사람 앞에서의 의를 위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상실하거나,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위하여 사람 앞에서의 의를 무시해 버리는 형태를 보였었다(눅 20:46, 47).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 동시적(同時的)으로 의롭게 행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바울의 겸손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말할 뿐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단언하지 않았다. 이는 허위적 자신감에 가득 찬 더둘로의 태도와는 전혀 대조적이다.
=====24:17
여러 해 만에...제물을 - '여러 해 만에'는 그의 제2차 전도 여행 끝에 예루살렘을 잠시 방문한 것(18:22)을기점으로 계산하면 4-5년의 기간이 된다. 바울이 민족의 구제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언급은 누가의 기록에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들에는 구제헌금에 대한 기록이 여러 군데 있다(롬 15:25, 26;고전 16:1-4;갈 2:10). 그런데 바울이 구제금에 대한 언급을 할 때 그것이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한 것은 역사적사실성을 넘어서는 누가의 확대 해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Haenchen). 왜냐하면 본래 바울의 구제금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함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기독교의 복음을전파하고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염려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대 민족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자기 민족이 복음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있기를 원했다(롬 11:13, 14).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가 구제금의 힘을 입어더욱 열심으로 유대인들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국은 유대 민족을 위해 유익하다고볼 때 바울의 구제금이 직접적으로는 유대 기독교 공동체의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과의 사랑의 연대성을 굳건히 하는 것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한편 '제물'에 대한 언급은 네 명의 서원자(誓願者)를 위하여 바친 제물을 바울의 방문 목적에 소급하여 적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21:23, 24, 26). 왜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제물에 대해서 말한 적이 없었고 또 예루살렘에서 서원자들을 위해 제물을 바칠 것을 예견했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Holtzmann). 그러나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 중에는 오순절 예배에 참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고(20:16), 또 그는 늘 율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므로(14절) 전례대로 당연히 제물을 드리려 했을 수도 있다.
=====24:18
결례를 행하였고 - 21:26-28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압축한 내용이다. 바울은 네 사람의 서원자와 함께있었을 뿐 그밖의 사람들과의 모임은 물론 소동은 더더욱 없었다. 이를 목격한 증인도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시아에서 올라온 몇몇의 유대인들에 읫해 발생했다. 사실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했던 사실은 성전 관계자들로부터 쉽게 확인될 수 있었으며,이와같은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자가 성전을 모독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은명백하다 하겠다.
=====24:19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 성전에서 바울을 해치려 했던 유대인들(21:27, 28)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당연히 그들은 지금 이 재판정에 나와 증언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자리에 나와 있지 않다. 이는 그들이 아무런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말해주며 바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시사한다. 아시아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허위의 사실로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여론 재판식으로 바울을 죽이려 하였으나 그것이 실패하자 슬그머지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24:20
공회 앞에 섰을 때에...말하라 하소서 - 바울은 더둘로의 고발에 대해 조목조목 반격을 가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마지막 사건에 대해서 자기의 결백을 객관적으로 증거한다. 공회에 섰을 때(22:30) 바울이 취한 행동 가운데 조금이라도 죄를 정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아나니아 일행이 증언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나니아 일행이바울에 대하여 고발한 모든 것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으며 바울에 대한 고소는 무효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24:21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 바울은 자신의 공회에서 했언 유일한 발언이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다(23:6). 죽은자의 부활에 관한 바울의 주장은 로마 법정에서도 산헤드린 법정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마 법정에서는 그것이 종교적인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소송의 건(件)이 될 수 없었으며 산헤드린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유대교의 정통적 신앙과 일치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24:22
벧릭스가...더 자세히 아는 고로 - 벧릭스가 바울의 도에 대해서 어떤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가이사랴에 살았던 전도자 빌립의 영향과(8:40;21:8), 그의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에 의해견문을 갖게 되었으니라고 추측할 뿐이다(Bruce, Robertson, 24절 주석 참조). 아니면유대 지역을 총괄하는 총독으로서 유대의 종교적 상황에 대해서 그런 정도의 정보는입수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편 여기서 벧릭스가 '더 자세히' 안다고 했을 때 그의미는 산헤드린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벧릭스가 바울의 도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연기하여 - 헬라어 '아나발로'(* )는 법정 전문 용어로 '휴회하다', '휴정하다'는 의미이다. 이 시점에서 재판장 벧릭스가 판결을 연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진행된 더둘로의 고소와 그에 대한 바울의 반대 변호속에서 사실을 충분히 규명할 수 있음 만큼 증언의 진위(眞僞)가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리고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판결을 내리겠다는 것도판결 연기의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천부장 루시아가 그의 편지를 통해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보고했고 거기에서도 바울을 형사 처벌할 아무런 혐의점이 없었기 때문이다(23:26-30). 벧릭스가 바울을 계속 구금시켰던 이유에 대해서는 13절 주석에 밝힌 바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아마 벧릭스는 바울의무죄를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유대의 최고 종교 지도자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의 분노를 고려함과 동시에 바울에게 뇌물을 받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다(26절).
=====24:23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 판결을 연기하고 난 후의 바울에 대한 벧릭스의 처우는 그가 바울의 무죄됨을 상당부분 인정하였음을 말해준다. 형식적으로 아직 판결이 내려진 상태가 아니므로 바울은여전히 구금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훨씬 많은 자유와 후한 대우가 주어졌다. 여기서 '자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시스'(* )는 '풀어놓다', '쉬게 하다'는 뜻의 '아니에미'(* )에서 파생된 말로 느슨한 구금 상태에서쉬거나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했음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들어와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수종도 들 수 있었다. 가이사랴에 있던 전도자 빌립(21:8),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들(20:4;21:17), 바울의 조카(23:16)등이바울을 방문하여 위로도 하고 수종도 들었으리라 추측된다.
=====24:24
드루실라 - 판결이 연기된 후 루시아를 가이사랴로 불러내렸는지, 혹은 그 동안에 아나니아 일행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언급이 없이 벧릭스가 바울에게 와서 예수 믿는 도를 듣는 이야기가 연결되고 있다. 드루실라는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자아그립바 2세의 누이이고 버니게의 자매였다. 그녀는 A.D. 37년경에 태어났고 처음에는 코마겐(Commagene)의 왕자 에피파네스(Epiphanes)와 약혼하였으나 그가 할례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파혼하게 되었고 후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수락했던 에메사(Emesa)의 왕 아지주스(Azizus)와 결혼하였다. 그때가 불과 15세였다. 그후 절세의 미녀인 드루실라에게 매혹된 벧릭스가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 마술사 아토모스(Atomos)를동원하여 자신과 결혼하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그의 세번째 아내로 삼았다. 드루실라와 벧릭스 사이에는 아그립바(Agrippa)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A.D.70년 베스비오(Vesvius)화산 폭발 때 죽었다고 한다. 드루실라는 유대인으로서 당시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도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서방 사본들에 의하면두루실라가 더욱 바울을 만나고자 했다고 한다(Bruce, Haenchen). 이렇게 볼 때 벧릿그가 바울의 도를 잘 알았던 것도 아내인 드루실라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24:25
의와 절제와 장치 오는 심판 - 본문은 놀라울 만큼 강직한 바울의 모습과 대상에 따라 복음을 적절하게 적용하는능력을 보여준다. 먼저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들이 벧릭스 부부의 감정을 상하게할 수도 있음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과 자기의 안전한 석방을 위하여 그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벧릭스 부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의 말을 서슴지 않고 말하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벧릭스는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할 만큼 불의한 사람이었고(3절 주석참조), 이들 부부는 불륜의 관계로 맺어진 만큼(24절 주석 참조) 절제와는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장차 올 심판에서 분명한 응보를 받을 것이었다. 한편 본문은그리스도 예수의 도를 듣고자 하는 벧릭스 부부의 관심사와는 다소 관계가 회박한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지만 사실상 바울은 복음을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바울은 단순히 복음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가 복음을 들음으로 해서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따라서 불의와 방종한 삶을 사는 이들 부부의잘못을 지적하고 장차 올 심판을 확인시킴으로써 회개로 나아가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거룩한 의(義)를 믿음으로써 받아들이게끔 인내하였던 것이다(롬 1:17). 두려워하여 - 벧릭스는 바울의 강론을 들은 후 마음의 두려움을 느꼈으나 그 이상더 진전하지는 못하였다. 이것은 마치 세례 요한의 의로운 선포를 인정하여 두려워하였으나 그 이상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결단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결국에는 요한의목을 베는 죄악을 저질렀던 헤롯왕의 경우와 유사하다. 헤롯도 불륜의 결혼 관계를 맺었었다(마 6:17-29). 아마 벧릭스 부부는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으리라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다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의 도를 들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24:26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 벧릭스의 두려움은 잠깐뿐이었고 그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한 바울에게까지 돈을 기대하는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아마 바울이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에게 상당한 기금이 있으리라 추측했던 것같다. 그리하여 벧릭스는 바울을 자주 불러 돈을 요구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했거나협박과 회유를 하면서 돈을 주면 석방해 줄 수도 있음을 직접 암시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율리아(Julia)법에 의하면 돈을 받고 죄수를 풀어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를 위반하는 경우 관직에서 쫓겨나 추방당하고 재산을 몰수 당하도록 되어 있었다(Robertson). 그러나 타락한 관리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불의한 재산을 축적했다.
=====24:27
이태를 지내서 - 바울의 판결을 연기하겠다고 결정한 후 2년이 경과하였음을 뜻한다.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면 판결을 하겠다고 해놓고 2년이 지나도록 재판을 속개(續開)하지 않았다는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벧릭스는 바울을 석방하면 유대인들의 비난과반감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판단하고서 계속 바울을 억류시켜 두었으리라 짐작된다. 대중들에게 별 인기도 없는 한 개인에게 부당한 처사를 행하더라도 자신의 기반만은 안전하게 유지하고자 했던 밸릭스에게서 권력가의 비열한 일면을 볼 수 있다. 보르기오 베스도가...소임을 대신하니 - 보르기오 베스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전임자나 후임자에 비해 성실하고 유능했으며 비교적선량한 총독으로서 공정한 통치를 하려고 애썼다는 것과 벧릭스에 비해 자기 구역의강도들을 제거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정도가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Josephus, Antiq, XX 8:9). 한편 보르기오 베스도가 벧릭스의 직무를 이어받았다는것은 벧릭스가 소환(召還)되었음을 뜻하는데 그의 소환 이유에 대해서는 가이사랴에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내전과 관련이 있다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당시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는 가이사랴에 있었던 유대인과 헬라인들 사이에는 가이사랴에 주도권 장악을 놓고 분쟁이 있었는데 이 분쟁에 벧릭스가 개입하는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희생되고 투옥당하였으며 재산을 약탈당했다. 여기에는 벧릭스의 사리 사욕과 잔인성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표를 파견하여 강력한 항의를 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끝내는 소환되기에 이르른 것이다.그는 소환되어 엄한 형벌을 받아야 했으나 그의 형 팔라스(Pallas)의 중재로 형벌을면하였다(Josephus, Wars II;Antiq.XX).
벧릭스가...구류하여 두니라 - 벧릭스가 물러나면서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구금된채로 두도록 조치한 것은 조금이라도 유대인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에서였다. 아무튼 바울로서는 전후 사정을 모르는 보르기오 베스도에 의해 다시 재판을 받는것이 결코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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