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복음에 대해 정확히 가르침을 받은 후 아가야 지방의 수도 고린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18:26, 27). 따라서 바울이 에베소에 당도할 즈음에는 아볼로는 그곳에 있지 않으므로 두 사람이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동일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세계에 활발히 전파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전 1:12).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 18:23에서 끊겼던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여기서 '윗지방'이란 일반적으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Zahn, Bauernfeind). 그래서 람세이(Ramsay)는 바울이 브루기아의 '구릉지대'를 통해서 에베소에 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브루기아의 내륙 지방을 통해서 에베소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Wendt, Lake, Holtzmann). 그런데 본절에서 누가는 바울이 어떤 경로를 통해 에베소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에베소 -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서 코레소스(Koressos) 산맥과 에게해 사이의 카이스터(Cayster) 강 어귀에 위치하였다. 이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울 만큼 번창하였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다. 당시 에베소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데미 여신을 더욱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 하나였다. 제자들 - 누가에 있어서 제자란 대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6:1;9:10, 26).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는 것(3절)은 이상한 일이다. 이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도(18:26) 무관한 사람들인 것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 부부와 관련이 있다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볼로 역시 이미 고린도에 가고 없는 터여서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시된다. 추측건대 이들은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기 전 성경을 가르칠 때 그에게 영향을 받아 믿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바울이 어떻게 해서 이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진술되지는 않았으나 아마 바울이 그들의 신앙 상태를 통찰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 이들의 대답에 바울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진정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이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다는 것은 '요한의 세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반증한다. 즉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께서 오시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쳤기 때문이다(눅 3:16).
=====19:3
요한의 세례 - 본장 1-7절의 주제 강해 '물세례 연구'를 참조하라.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예수라 하거늘 - 바울은 요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한 정확한 의미와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을 올바로 가르쳐 주었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마음의 변화와 근본적 전환을 위해 베푼 회개의 세례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 회개의 세례는 요한 뒤에 오실 이, 곧 예수를 믿게 하기위한 것이다. 때때로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계시의 절정으로 보며 심지어는 메시야와 동일시 하기도 했다(눅 3:15). 그러나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 따름이었다(마 3:3). 따라서 요한은 예수께서 베푸실 '성령과 불 세례'를 위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는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또 근본적으로 회개케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기(Lenski) 때문이다.
=====19:5
저희가...세례를 받으니 - 바울의 가르침으로 자신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은 제자들은 자진(自進)해서 세례를 받았다. 여기서 제자들이 세례를 다시 받은 것은 아볼로의 경우(18:26)와 차이가 있다. 즉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다시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아볼로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세례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달리 다시 세례를 받았다. 이 두 경우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절대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례를 다시 받고자 하는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본다(Meyer). 물세례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세례를 받은 표라는 사실에 궁극적 의미가 있다는 점, 그리고 세례 요한의 물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서 세례받은 자들이 이들 외에도 있었으나 일일이다 물세레를 재차 받지는 않았으리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보건대 이 견해는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한편 여기서 이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아굴라였다는 주장도 있지만(Zahn)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
=====19:6
안수하매 성령이...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여기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은 안수 행위이다. 즉 안수가 능력을 임하게 하거나 성령이 임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8:5-25 주제 강해 '안수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한편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표적들은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와(2:4, 6, 8), 고넬료의 집에 모인 유대인과 이방인들(10:44-46)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나타났던 표적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곳에서 나타난 방언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막 16:17)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였다(고전 12:4-10). 여기서 성령 세례를 받은 열 두사람들은 후에 에베소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되어 이방 선교에 전심 전력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 사건을 두고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 여기서 12라는 숫자를 두고 학자들(Weizacker, Wendt)은 비유적 해석을 시도한다. 즉 숫자를 예수의 열 두 제자나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와 연결시켜서 생각하려고 하나 저자 누가에게 그 같은 의도가 있었다는 근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만약 그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의도와 연관된 부연 설명을 했을 것이다.
=====19:8
회당에 들어가...강론하며 권면하되 - 이미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이 회당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18:19, 21)고 약속 했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회당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로 석 달 동안이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석달이란 기간은 이제까지 바울이 회당에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중 가장 긴 기간이었다. 여기서 '담대히...강론하며'의 헬라어 '에파르레시아제토'(* )는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바울이 회당에서 석 달 동안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전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권면했다'는 뜻의 '페이도' (* )란 말은 원어적으로 바울이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설득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동원했다는 뜻을 나타낸다. '에파르레시아제토'와 '페이도'란 두 단어를 통해서 누가는 바울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심 전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
마음이 굳어( , 에스클레뤼논토) - 미완료 과거 중간태로서 바울이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려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 문을 굳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두고 이 갖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굳어질대로 굳어 진 마음들은 부서지거나 깨지기 쉽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그 굳어진 마음들이 부서져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의 적대감(敵對感)이 매우 심했던 까닭에 바울은 더이상 회당을 복음증거 장소로 이용할 수 없다고 느끼고,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 이 제자들은 바울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동안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이었다.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떠나면서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여기서 '따로 세우고'의 헬라어 '아포리조' (* )는 '한계를 분명히하다', '구별하다', '떼어놓다'는 뜻으로서 바울이 복음을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새로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구분하여새로운 교회를 형성케 했다는 의미이다. 두란노 서원에서...강론하여 - '두란노'가 이곳에서 가르쳤던 선생의 이름인지(Zahn) 아니면 이 서원의 소유주의 이름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 서원 자체의 이름인지는 정확지가 않다. 한편 서방 본문(Western Text) 몇몇 사본에 따르면 5시부터 10시까지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 사건은 보통 당시의 오후 휴식 시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본들에 따르면 바울은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 시간을 피하여 이 휴식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일하는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다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서원에서 집회를 가진 후에 청중들과 함께다시 일과를 시작하여 오전에 하던 일을 끝마쳤을 것이다(Haenchen, Longenecker). 이곳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러한 노력은 에베소에서 큰 결실을 이루어 많은 교회가 생겨나게 했다.
=====19:10
아시아에 사는 자는...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2년 동안 바울 열심있는 사역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교회를 탄생시켰다. 루커스 계곡(the Lycus Valley)에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었다.
=====19:11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기 시작하셨는데 그 기적들은 제자들에게조차도 익숙지 않은 특별한 것들이었다. 홀츠만(Holtzmann)은 바울의 이러한 기적들이 베드로가 그의 그림자를 통해서 일으킨 기적들과(5:15, 16) 유사하기 때문에 역사적 신뢰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기적이나 바울의 기적이 그들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뿐만 아니라 더 큰 기적도 행하실 수 있는 분이다. 미신과 주술이 범람(氾濫)하는 도시에서 바울의 선교 사역은 이러한 특별한 기적 행사가 필요했을 것이다(Whitelaw).
=====19:12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 학자들 간에는 이러한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또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본절에 언급된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바울은 마술과 미신의 본거지에서 사역했으며 무당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손수건이나 앞치마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받아들인 믿음을 통해서 기적들이 일어난 것이다. 그 기적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수건'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땀을 닦기 위해 머리에 두루고 있던 헝겊 조각이며 '앞치마'는 장막 짓는 작업을 위해 허리에 둘렀던 것이다(F.F. Bruce).
=====19:13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예수를 빙자하여 - 고대 세계에서 악령을 내쫓기 위해주문을 외울 때 주술적(呪術的)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었고, 특히 이러한 관습은 에베소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 그런데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또는 성도들 외에 비기독교인들도 귀신 축출을 위해 예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했다(14-16절 ; 막 9:38, 39). 그리고 실제로 파리의 마술 문서인 574번 파피루스 3018행에서는 무당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실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 본문에서도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 주술사들도 바울의 행동을 모방해 예수의 이름을 그들의 주술에 이용하려고 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라고 굳이 바울의 이름까지 언급한 것은 바울이 행하는 능력이 압도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술사들이 악령을 쫓아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마술적 주문과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Haenchen, Longenecker). =====19:14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행하더니 - 헬라어 본문에는 스게와가 대제사장이었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KJV, RSV, NASB, MB, NIV). 대제사장이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업 수단으로 고객 유치를 위해 자신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을 빙자하였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면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 이방 도시에서 귀신 쫓는 일이나 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몰락한 가정형편을 보여 주는 것이고 아울러 에베소의 유대교는 그곳의 미신과 혼합, 변질되어 그곳 사람들로부터 형편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 학설은 몇몇 학자들이 지지하지만(Mastin, Marshall) 별로 타당성이 없다. 만약 이들이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하고 있다면 그들은 대제사장의 권위와 명성을 빌어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고자 하는 간교한 술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문헌에는 스게와라는 대제사장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 누가는 그 사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아마도 여기서 그들이 충분히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할 수 있는 인물들임을 암시하려고 했는 듯하다. 이전 맥락에서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 앞에서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다고까지 증언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런 교활한 행동은 마치 사마리아인 시몬의 태도와도 유사하다(8:9-24). 이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하던 사악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자 했던 것이다.
=====19:15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 유대의 주술사들은 영적인 세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귀신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믿음과 능력들을 먼저 파악한다. 그들 자신들이 하는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를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막 1:24, 34;5:7;눅 4:41;히 2:14;요일 3:8) 나아가 바울이 그 예수의 사도이며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한 것은 곧 이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함을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전혀 없이 또 사악한 동기에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단의 세력이 징벌(懲罰)의 도구가 될 것이다.
=====19:16
악귀 들린 사람이...도망하는 지라 - 사기성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과 또한 귀신들을 동시에 시험해 보려고 한 사악한 유대인 주술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력 앞에서 봉변을 당하고 쫓겨가야만 했다. 그들이 마귀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감으로써 이들의 신의와 위엄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며 반면에 바울의 권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한편 개역 성경에서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을 '그 두 사람에게'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암포테론'( )으로 '양쪽'(both)이라는 의미 외에 '모두'(all)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파피루스에서는 이 단어를 둘이상의 경우에 많이 사용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암포테론'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Haenchen, Lenski, Robertson, Longenecker, G.A. Buttrick).
=====19:17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 미신과 주술이 난무하는 에베소의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일곱 주술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난 파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그 주술사들처럼 미신과 주술이라는 악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귀신의 봉변이 자신들에게 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곤경을 치르게 될까 염려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귀신이 쫓겨나고 주술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주술사들이 오히려 귀신에게 쫓기는 그 원인을 몰랐다. 단지 그들은 예수의 이름이 모든 귀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름을 높이게 되었을 것이다.
=====19:18
믿은 사람들이...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 이 일은 에베소 주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예수의 이름이 지닌 신비한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범하던 잘못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에베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활 습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미신과 주술을 쫓거나 그 같은 일들을 직접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의 능력을 확실히 목격하고 체험하게 되자 자신들의 은밀한 범죄를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기독교가 비기독교 지역에 전파되면 문화적 혼합(混合) 현상이 나타나 자칫 잘못된 악습으로 인해 교회가 부패될 위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 '마술'을 뜻하는 헬라어 '페리에르가'(* ) 는 문자적으로 '주변 일' 이라는 의미로서 주된 일을 제외한 '쓸데없는 일'을 가리키거나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누가가 '마술'을 '쓸데없는 일'로 표현한 것은 공허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에베소에 많았다고 하는 것은 그 도시 자체가 영적인 기갈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며 또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베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책을...불사르니 -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동을 회개하고,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마술에 관계된 모든 서적들을 불살랐다. 이 책들은 주문이나 부적 등 미신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파피루스나 양피지(parchment)에 기록된 것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에베소의 책들'(Ephesia Grammata)로 추정된다(Zahn). 한편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것은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렘 36:23). 따라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은 오만 - 에베소에는 대부분 헬라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은 오만'에 대한 화폐 단위는 아마도 '드라크마'(Drachma)이었거나 아니면 로마의 화폐 단위인 '데나리온'(Denarius)이었을 것이다. 이 두 화폐의 가치는 거의 같은 것으로서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이를 오늘날 액수로 환산(換算)한다면 약 8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본다 하더라도 당시 에베소에 미신이나 마술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알 수 있다.
=====19:20
주의 말씀이...세력을 얻으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 본 구절의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주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지속적으로 흥왕하여 모든 거짓되고 미신적인 마술들을 물리치며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음을 나타낸다.
=====19:21
이 일이 다 된 후 -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총체적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Haenchen) 또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10절에서 언급한 2년의 기간에 있었던 사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Wendt, Loisy, Lenski, Bruce, Neil). 이 견해대로라면 본 구절 '에베소에서 머물기로 작정된 날이 다 된 후'라는 의미를 지닌다. 문맥상 이 해석이 더 무난하리라 본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 본문에서 전혀 언급이 없지만 당시 팔레스틴은 기근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1:27-30).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러 연보를 모아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했을 것이다(롬 15:31;갈 2:8-10). 여기서 '경영하여'라는 뜻의 헬라어 '에데토 엔 토 프뉴마티'(* )는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결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바울이 그러한 지방으로 가고자 한 것은 성령의 지시에 의해서 결정된 것임을 시사한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결심한 것은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유럽을 복음화하기 위해 로마를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할 만큼 번성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 선교 효과가 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한 곳에는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롬 15:20). 그래서 그는 이미 다른 전도자들이 교회를 세우지 않은 유럽으로 시선을 돌려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얼마 후 아가야와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에게 전달한 후(롬 15:26) 죄수의 몸으로서 로마를 방문해 그가 계획했던 바를 이루게 된다(28:16).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마게도냐로 보내고 - 저자 누가는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돌아와 고린도에서 합류한 이후(18:5) 디모데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라는 언급을 보면 그는 분명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 디모데를 고린도로 파송하여 봉사하게 하였다(고전 4:17;16:10, 11). 한편 '에라스도'라는 이름은 본서에서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딤후 4:20에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둔 바울의 친숙한 동료로서 소개된다. 아마도 그는 롬 16 :23에 언급된 고린도의 재무 담당자인 에라스도와 동일인일 것이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디모데와 함께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 벤트(Wendt)는 여기서 바울이 에베소가 아닌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 얼마간 더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쟈안(Zahn)은 26절을 근거로 바울이 그의 조력자들을 마게도냐에 보낸 후 에베소에서 가까운 다른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23절을 근거로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체류했다고 반박했다(Haenchen). 그러나 본절에서 누가는 바울이 어떤 지역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낸 후 좀더 아시아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어느 견해가 옳은지 결정하기 힘들다. 다만 데메드리오가 사람들을 선동할 때 '에베소'란 말을 게속 강조적으로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소동이 있었으니 - 여기서 '그 때쯤'이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에 대해 다음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21절의 '이 일이 다 된 후'와 거의 비슷한 시점. 이는 바울이 유럽으로 떠날 계획을 실행에 옮길 시점을 의미한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낼 시점.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게 된 것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있었던 때문인 듯하다. 즉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와 함께 유럽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려고 작정했다가 데메드리오의 소동으로 인해 두 사람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그 소동을 잠재운 후 떠나게 된 것이다(20:1). 따라서 의 추측이 더 타당하다. 한편 '이 도'란 뜻의 헬라어 '테스 호두'(* )에 대해 로이지(Loisy)는 '호두' 대신에 원래는 이 곳에 '데우'( ) 즉 아데미를 나타내는 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소동'은 '이 도로 인하여'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일어난 소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24
데메드리오...아데미 - 에베소의 아데미(Artemis) 여신은 근동 지역에서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이었다. 사람들은 이 아데미의 신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이 신상은 여러개의 유방을 지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신상은 원래 운석(隕石)이었는데 그 모습이 유방을 많이 가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데미의 신전은 에베소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었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0m, 60m나 되어 고대 세계의 7대 블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원근 각처에서 몰려들었다. 신전 주변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팔거나 숙소를 제공하며 아울러 제물과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 중 가장 수입이 좋은 장사는 데메드리오 같은 자들이 취급했던 아데미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해서 여행자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조 은신상을 기념품이나 서원의 헌물 또는 호신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로 많은 사람들, 심지어 마술사들까지 개종함으로 자연히 우상 숭배의 악습이 점차 폐지되어 은장색(은세공사)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는 기독교를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소동을 통해 그들은 사람을 선동하여 바울의 기독교 선교를 저지함과 동시에 아데미 여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더불러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다.
=====19:25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 데메드리오는 단순히 은장색들만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아데미 여신상과 관련을 맺고 생계를 유지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그들은 은장색들 외에 적갈색 진흙으로 작은 신상을 만드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은장색들과 함께 여행자들을 상대로 대단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6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신이 아니라 하니 -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라는 말은 바울이 아시아 전 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에베소를 중심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시아 전역에 소문으로 번져갔거나 바울을 통하여 믿는 신자들이 아시아 각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로 추측된다. 그리고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17:29). 대체로 에베소에서는 5월 무렵에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대축제가 벌어졌는데 이 축제는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축제로서 이 축제에 인근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본문에서는 은장색들이 이 축제가 곧 임박했는데 바울의 선교 활동은 갈수록 확장되어만 가니 매상이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 것같다(Lenski).
=====19:27
영업만...떨어질까 하노라 -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부추기고 선동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합리적 이유들을 제시한다. 데메드리오의 주장과 관심은 아데미의 위엄과 권위에 있는 것 같지만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의 이익에 있었다. 한편 아데미 숭배가 세계적이라는 데메드리오의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같다. 왜냐하면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모두 32개소에서 아데미 숭배의 흔적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Wernicke).
=====19:28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 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 신을 찬양하기 위해 쓰이는 상투적(常套的)인 말이다.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함께 몇몇 사본에서는 본구절 바로 앞에 '거리로 뛰어나가'라는 말을 삽입시키고 있다. 만일 이러한 사본을 따른다면 이길은 에베소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는 아카디안대로(Arcadian Way)일 것이다. 이 대로는 에베소의 항구로부터 피온(Pion) 산의 기슭에 있는 대극장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외치며 종교적 열정을 구실로 삼아 에베소 성읍을 소동 가운데 몰아넣으려고 했을 것이다.
=====19:29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연극장으로 - 가이오는 더베 출신이고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과 함께 여행한 동료들이었다. 소동을 일으킨 무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두 사람을 붙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두 명을 붙잡아 노천 극장으로 끌고 갔는데 이 노천 극장은 에베소 동편에 있는 것으로서 약 2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건축물이었다.
=====19:30
바울이...들어가고자 하나 - 바울이 살벌한 기운이 넘치는 현장 속으로 달려들어가고자 한데 대해 혹자는 바울의 신앙적 의리와 용기에 초점을 맞춘다. 즉 바울이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속수 무책으로 가만히 있는 것을 비겁한 도피라 여기고 폭도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 동료들에게 자신이 신뢰할 만한 형제임을 입증하려고 했다는 것이다(Bauernfeind). 이러한 측면 외에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이 여러 로마 관리들에게서 호의를 받았기 때문에 폭도들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R.N. Longenecker, Zahn).
=====19:31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 - 아시아의 관원들은 대체적으로 고귀하고 부요한 가문 출신이었다. 동맹을 결성하여 황제와 로마의 여신(女神)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이들의 주임무였다. 해마다 아시아 관원이 그 관할 지역을 위하여 선임되었고 그 인원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 아시아 관원들의 동맹은 정치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종교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관원들 중에 몇몇이 바울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울을 염려하여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정책이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F.F. Bruce).
=====19:32
태반이나...알지 못하더라 - 이 집회는 불법 집회(40절)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는 채 모여있었다. 소요를 선동한 데메드리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렸고 그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도 특별히 나서지 않는다. 군중들은 분노 가운데 하나로 뭉쳤으며 아데미에 대해 불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켰지만 일의 자초 지종을 알지 못해 혼선을 빚고 있었다. 분노에 찬 사람들 대부분이 영문을 몰라한다는 본 구절의 표현은 저자 누가가 지니고 있는 헬라의 풍자적인 유우머 감각을 잘 반영해 준다(Bruce).
=====19:33
알렉산더를 권하여...발명하려 하나 -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유대인 사회나 헬라인 사회에서 흔했다. 본 구절의 알렉산더가 딤전 1:19, 20이나 딤후 4:14의 알렉산더와 동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군중들은 유대인의 신분인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는 유대인들을 대표해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해서 변명하려고 온 사람이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배척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 양자는 모두 우상 숭배를 배격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가 자신들에게까지 파급될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알렉산더를 보냈던 것이다(Bruce, Longenecker).
=====19:34
유대인인줄 알고...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 군중들은 알렉산더가 자신들 앞에서 변명을 시작하려 하자 큰 소리로 외쳐됨로써 그를 저지하였다. 군중들은 그가 유대인로서 자신들을 변명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서 알렉산더가 군중들의 외침 때문에 유대교의 입장을 변론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에베소 사회 내에서 유대교가 얼마나 무력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이다(Haenchen). 한편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군중들의 외침은 한번 시작되면 거침없이 휩쓸려 버리는 전형적인 군중 심리를 보여줌과(Lenski) 아울러 이러한 광신성은 아데미 신전의 제사장 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즉 아데미 신전의 대제사장이나 그 밑의 제사장들은 모두 환관(宦官)이어야 했다.
=====19:35
서기장 - 로마의 임명을 받은 관리는 아니었지만 자유 도시 의회롤 통해 선출된 의회의 최고 서기이며 최고 행정 관리였다. 이 서기장은 본토 출신의 관리이기 때문에 담당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래서 본문의 서기장은 이번 소요 사태가 앞으로 에베소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여 일단 진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아...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 '전각지기'란 뜻의 헬라어 '네오코로스'(* )는 '신전 청소부'라는 뜻을 지니나 '신전과 신을 섬기는 의식을 담당하는 수호자'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당시 에베소 사람들에게 매우 명예와 자부심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서기장은 무리를 안정시키고자 군중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들의 자부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서기장의 이 말 가운데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아데미 여신상으로 섬기는 에베소 사람들의 몽매한 신관(神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9:36
너희가...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 에베소인들이 그 도시가 아데미와 쓰스의 전각지기라는 사실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서기장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에베소는 이미 아시아 전역에 아데미의 도시로 정평이 나있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아데미를 숭배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군중들의 행동은 근거없는 경솔한 행동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서기관이 기독교에 대한 변호자로 나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단지 로마범과 질서의 수호를 위해 개입하였다고 이해된다. 그는 에베소가 무질서하고 불법 행동이 난무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행여나 생겨날까봐 우려하였다(Howard Marshall).
=====19:37
도적질하지도...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 - 이 사람들은 곧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가리킨다(29절). 서기장은 이들이 잡혀온 데 대한 구체적 혐의가 없음을 지적함으로써 논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성전에서의 도적질이나 신성 모독은 당시 이방 사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제일 많은 고발 사유였다고 한다. 한편 롬 2:22에서 바울은 이방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19:38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 당시 재판은 회기(session)에 따라 열리든지 기타 정규적인 개시일에 열렸다. 그리고 아시아는 당시에 총독의 주재 하에 있었으며 간혹 총독이 주재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때때로 로마 총독이 출장하여 재판을 주재하거나 기타 사무 일체를 보고받곤 하였다. 따라서 서기장의 주장은, 사적인 문제로 소송건이 생길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편 '총독들' ( , 안뒤파토이)이라는 복수형은 예외적이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관할 지역의 총독은 1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혹자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총독 유니우스 실라우스(Junius Silaus)를 암살한 두 사람(Helius, Celer)이 아시아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실과 연결시킨다(G.S. Duncan). 하지만 이 복수형의 표현은 단지 '총독들같은 사람'이라는 정도의 일반화된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Howard Marshall).
=====19:39
그 외에 무엇을...민회에서 결단할지라 - 당시 이 민회는 시의원들과 평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시민들에게는 합법적으로 민회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이 민회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세 번 열렸으며 모일 때마다 도시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그 도시의 행정 사무 일체를 논하였다.
=====19:40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 서기장은 본토 출신의 관리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소요에 대한 책임을 누구보다 엄하게 져야했다. 따라서 그는 이런 식의 이유없는 불법 집회로 인하여 집회에 참석치 않은 사람들과 로마 당국의 미움을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실 이 소요와 집회는 개인적인 이기심과 음모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서 구체적 이유나 근거도 없는 충동적인 소요 사태였으며 군중 심리에 의해서 모이게 된 불법 집회였다. 결론적으로 데메드리오의 음모와 요구는 거부되었으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41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 서기장의 논리적이고 합당한 연설은 군중들을 자진 해산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위기적인 상황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무사히 끝났다. 바울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서도 다급한 상황은 진정되었다. 한편 저자 누가는 이방 세계 가운데서 기독교의 호교적(護敎的)인 요소를 매우 비중있게 다루는데 여기서도 그는 서기장의 연설을 심도있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누가의 집필 태도는 다섯 차례에 걸친 바울의 호교적 변론에 대한 기록에서도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장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에베소 활동기를 그리고
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를 잠시 들렀으며, 거기
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바 있다(18:21). 이제 평소부터 염원
했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3차 전도 여행 중에 이루었거니와, 에베소에서 이루어진 전
도 사역은 바울의 3차 선교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울은 무려 3년간
(A.D.53-56년경)에 걸쳐 에베소 지방의 목회에 심혈을 기울였던 바, 이는 다른 지역에
서 찾아볼 수 없는 수고와 헌신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내용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장 전체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두 가지 사항
에 초점을 모으기로 하자.
(1) 우상의 도시 에베소.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쪽 카이스터 계곡의 입구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관문(關門)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에베소는 한때 '아
시아의 보고(寶庫)'라 불리울 정도로 번창하였다. 로마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당시 동
양과 서양이 함께 교차하는 소아시아에는 수많은 소도시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부
(富)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통용되는 주화(鑄貨)를 주조할
정도로 독립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들 중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에베소라 하겠다.
상업과 교통의 요지인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및 아가야의 제도시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우상과 미신 숭배였다. 18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거니와
고린도의 엄청난 부는 아프로디테 신전의 우상 숭배 및 여기서 파생되는 도덕적 타락
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듯이, 에베소의 상업적 번영은 다산(多産)의 모신(母神)인
아데미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데미 숭배의 음란함은 이 여신상의 형상을 볼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아데미 여신상은 많은 수의 유방을 가지고 있고, 사자, 황
소, 수양들이 그 어깨와 다리 위에 양각되었으며 발 위에는 한 마리의 꿀벌 모양이 새
겨져 있었다. 인간과 짐승과 식물의 다산을 보증하는 의미를 갖는 아데미 숭배에는 고
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와 같이 수많은 고급 매춘부들이 사제(司祭)로 봉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에베소의 아데미 숭배가 도덕적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에베소가 고린도와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의 우상 숭배가 도덕적 문란함과 직결된다고 하면 에베소의 우상 숭배는 상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에베소는 이방 미신 숭배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바
(19절), 원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매우 빈번하게 방문하는 순례지였으며 이들은 갖가지
부적과 우상적인 공예품들을 기념으로 사갔다. 소위'에베소 주문(呪文)'을 몸에 지니
고 다니면 만사 형통한다는 신념이 그와 같은 구매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에
베소에는 아데미 우상과 각종 부적들은 만드는 은장색(銀匠色)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
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커다란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에베소 사람들이 아
데미 신전에 의존하여 생활의 근거를 세우게 된 것은 로마의 속국이 된 후부터였다.
로마 제국의 필요에 의해 엄청난 벌목과 목탄 연료의 사용 및 방목(放牧)의 결과로 에
베소 항구가 침적토(沈積土)로 막히면서 그 주민들은 그들의 부와 계속적인 번영을 위
해 더욱 아데미 신전과 각종 미신으로 인한 상업에 크게 의존하는 도시였다 하겠다.
(2) 바울의 담대한 복음 증거.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24절)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
년간에 걸쳐 에베소에 머무르며 교회를 굳건히 성숙,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아데니 신전의 우상 숭배자들은 바울을 결사적으로 공격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로 인해 우상 숭배의 지반(地盤)이 흔들리자 그들의 수입
에 커다란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
로 세례를 주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어느 때보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치유와 축귀(逐鬼)의 능력을 행함
으로써 왕성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모든 사건으로 인해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 예수
의 이름을 높이며, 바울이 더욱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시
시때때로 교묘한 사단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이를 이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
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7절)은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증거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8-20절)은 에베소에서 성행
한 미신과 주술을 타파한 내용이다. 셋째 단락(21-22절)은 바울의 방대한 전도 계획을
밝힌 삽입 부분이다. 그리고 넷째 단락(23-41절)은 에베소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 속에
서 바울 일행이 어떻게 위험을 모면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 에베소 교회의 성령 강림(19:1-7)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18:24,25). 아볼로는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후 고린도 지방으로 갔지만, 그에게 가르
침을 받은 자들은 여전히 에베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세례 요한의
금욕주의적 신앙 자세와 회개의 교리를 붙잡고 있었고, 성령의 현존 의식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아볼로의 미성숙한 목회의 흔적을 감지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하였다. 물론 바울이 궁극적
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성령 세례를 처음부터 성령 세례를 강조하면 충격을 줄 것
을 고려하여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준 후 성령 세례까지 연결시켰던 것이
다. '성령 세례'에 관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서 1:1-5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사도 바울의 이러한 선교 방법은 피선교지에 가서 처음부터 너무나 이질적인 일을
시작하여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방법론상 현명한 것이었
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행하고자 하는 사업의 목적이 선하다고 하여 무조건 감행
할 것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문제에도 현명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 물 세례 연구. 흔히 요한이 베푼 세례를 가리켜 '물 세례'라고 한다(1:5;마 3:11;
막 1:8;눅 3:16). 본 주제 강해를 통해 물 세례의 역사적 배경, 의미, 효율성에 대하
여 간략히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역사적 배경. 세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약 시대의 3대 사건은 노아 홍수(벧
전 3:20,22)와 홍해 사건(고전 10:2) 및 할례 의식(골 2:11,12)이다. 물론 고대 동방
세계와 유대교의 일부 종파 사이에서도 세례 의식을 통하여 신생(新生), 단체에의 가
입 서약,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상징하였으나 역시 그 직접적 배경은 구약의 3대 사건
이라 하겠다.
(2) 세례의 의미. '세례'는 죄의 씻음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 즉 이전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증인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공증하고 서약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물 세례가 주로 인간의 서원을
강조한 형식적 행위라면, 성령 세례와 불세례(9:17)는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내적 연
합을 강조하는 실질적 세례라고 할 수 있다(1:1-5 주제 강해 '성령 세례' 참조). 요약
하면 세례의 의미는 과거의 몸을 씻고 새 생활, 새 단체, 새 신조에 연합, 가입되는
것이며 성경적으로 이 말은 과거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을 하여 영적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6:3-6).
(3) 효율성. 물 세례는 물론 우리의 내적 신앙 고백을 형상화한 상징적 행동이다.
따라서 적극적 측면에서 보면, 물 세례는 이웃과 자신에게 자기의 신앙을 공표함으로
써 스스로 결단과 근신을 주는 것인 반면 소극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히 상징
적 행위이지 그 자체가 구원의 필수 조건이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할례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과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에게 그 순종과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며(창 17:9-14), 오늘날의 세례 또한 예수 그
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롬
4:9-13).
2. 에베소의 전도 성공(19:8-20)
에베소에서 바울은 일찍이 그를 호의적으로 영접하했던 자들 덕택에(18:19,20) 유대
인 회당을 이용하여 3개월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방하는 무리들이 늘
어나자,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장소를 옮겨 무려 2년간 사역을 계속했다(9절). 두란노
서원에 대해 확연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순회 강연자들에게 제공한 강연 장소였거나,
혹은 두란노라는 저명한 철학자 내지는 수사학자와 철학을 강론한 강의장이었던 것으
로 추측된다.
서방 사본(Western Text)에 의하면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서원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간은 대개 무더위를 피해 쉬는 때였다. 서방 본문의 기록
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쉬
는 여가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했던 것이 된다. 여하튼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
마다' 주의 말씀을 강론했는데, 이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에베소는 물론 그 주변의 성읍에까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가는 풍성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골 1:7;2:1;4:16;계 2,3장).
한편 본문에는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성령의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8:9-24)과 구브로의 유
대인 거짓 선지자요 박수인 엘루마(13:4-12)와 일맥 상통하는 바, 불순한 동기와 이기
심으로 치병(治病)과 축귀(逐鬼)를 하려다가 불상사를 당하였다. 현대인은 자연 과학
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좀처럼 마술을 신뢰하지 않지만, 고대와 신약
시대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에베소는 미신과 주술이 성행했던 대표적인 지역으
로서 여러 질병들 특히 정신병을 귀신의 침입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마술은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직업에 속했다. 즉 마술사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 있는
귀신보다 더 강한 귀신을 부르게 되면, 먼저 들어 있던 약한 귀신이 쫓겨난다고 사람
들은 믿었다. 이러한 전이해(前理解)를 바탕으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전혀 모르는 이들의 행위
는 도리어 화를 부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큰 봉변
을 당한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예수'의 이름이 큰 위엄과 영광을 얻는 데 그리고 복
음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에 일조(一助)를 하였다.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는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무리들이 무수히 많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힘입기보다는 인간의 완력(腕力)에 의하여 강제로 축귀나 치병
을 하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이들은 마술적 방법으로 하다가 안 되면 구타
를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며 절식(絶食)을 시켜서 고귀한 인간의 인격 훼손을
물론 생명까지도 잃게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무리들에게 속지 않도록 자신의 눈과 귀
와 입과 발걸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시 119:105;요일
4:6).
3. 바울 선교의 비전(19:21-22)
본문은 본서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서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에베소의 마술사
들이 회개하고 그들이 모든 책들을 불사르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바울은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메가도냐로 보내고 본인은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
문하고 계속해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로 갈 결심을 한 것은
서바나로 전도 여행을 떠나기 앞서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 했기 대
문이다(롬 15:23,24).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에는 다른 복음 전도자들이 세운 교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유럽 전도의 거점으로 로마를 삼
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미 다른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한 곳에 가서는 전
도하지 않겠다는 그의 목회관과 일치한다(롬 15:20). 결국 바울이 계획했던 서바나 전
도 여행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죄인된 신분으
로 로마 여행을 하게 되었다(28:16).
한편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한 데에는 한 가지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이방 교회를 두루
돌면서 구제금을 거두었던 바(고전 16:1-4) 이제 그것을 형제들의 사랑과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롬 15:26). 이렇듯 사도 바울은 세상 도처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
을 무릅쓰는 와중에서도 전 교회의 하나됨과 교제를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고전
10:17).
4. 에베소의 소요(19:23-41)
본문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이권 단체(利權團體)와 충돌하게 된 사건을 수록하였다.
에베소의 이권 단체란 에베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고 있던 아데미 숭배
자들의 조합을 말한다. 당시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가는 에베소의 북동쪽에 위
치했던 아데미 신전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족히 이해할 수 있다. 아데미 전각(27절)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주 하나로서 한 면의 길이가 120m이고 다른 면의 길이는 60m로 솔
로몬 성전의 34배가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는 이방 종교의 총본산이요 수많은 순례자
가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에베소 사람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경제 생활을 이루었
던 바, 이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은장색(銀匠色) 조합의 영향력은 에베소에서 가장 지
대하였다 하겠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문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데메드리오의 선동 동기. 데메드리오는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 격인 듯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크고 국가보다는 작은 사회 기구들을 많이 형성하고 있었
다고 하는데(S.Dill) 그 기구는 은행가, 염색업자, 건축업자, 이발사, 수송업자, 의
사, 설계사, 철공, 석공, 도제공 등 각종 상업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들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결합한 단합체였음을 물론 사회적 협력 기구의 역할을 하였
다.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종사하는 은장색 조합은 그과 같은 기구의 일종으로
서 아데미 여신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하는 일을 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서 복음 전도에 성공을 거두자 이 은장색 조합은 경제적 타격을 입음은 물론 그 기반
까지 흔들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지반을 옹호하고
이득을 지키기 위해 은장색들로 하여금 소동을 일으켜 바울을 대적하게 하였다.
표면상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공격한 동기가 '아데미'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성에서
기인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돈벌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이 은장색들은 순례자들
에게 아데미 신상이나 신전의 작은 모형을 기념품으로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자들이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전파는 당장 그들의 생업(生業)을 위협하는 것으로 파
악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소위 군중 심리(群衆心理)를 격발시켜(32절) 아예 바울
을 여지없이 파쇄시켰다. 후대에 아데미 신전이 로마 황제 차스티니안에 의해 성소피
아 성당의 건축 재료로 사용된 사실(F.Torey, M.Machaby)은 육체적 안녕과 재물을 위
해 복음을 거부한 진리 배척자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역설적으로말해주며 죽은 우상과
달리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복음의 초월적 능력을 깨닫게 해준다(삼상 5:1-5).
(2) 죽음도 불사한 바울의 신앙 의리.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움직인 은장색들은
지방색과 종교색이 짙은 우매한 군중들과 합세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연극장은 에베소의
동맥 구실을 하는 아카디안 대로(Arcadian Way)의 동쪽에 위치한, 이만 오천 명 가량
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노천 극장(露天劇場)이었다. 바울은 자기 대신 동행자가 고
초를 겪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연극장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였다. 동료를 구하든
못구하든 새사 고락을 함께 하려는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따라
가지 못하는 오늘날의 세대에 훌륭한 귀감이 된다.
(3) 이교도에 대한 바울의 태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복음을 전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의 토속 종교를 향해 공격을 가하지는
아니하였다. 예컨대,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숭배하는 아데미 여신에 대해 비난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소요가 일어났을 때 이 소요를 진정시킨 서기장의 발언을
살피면 잘 알 수 있다. 즉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
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37절)이란 서기장의 말을 감안할 때 바울이 3년간 에베소
전도에 종사하면서 우상에 대하여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
는 여기서 복음 전도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깨닫게 된다. 복음을 전하기 앞서 우상
을 비난하거나 파괴한다면 군중들의 반감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는 전도의 열매를 거
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일인고로, 외부에서 강압
하기보다는 먼저 참된 신관과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神). 본서에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신인 물론, 즉
몰렉(레 18:21;왕하 23:20) 외에도 쓰스와 허메, 아데미, 레판과 같은 이방 신이 언급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주제 강해는 이것들이 어떤 신인지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쓰스(Zeus). '쓰스'는 우리가 흔히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그리이스의
최고 신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이 신을 '쥬피터'(Jupiter)라는 이름을 불렀다. 이
신은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주관하는 신인 동시에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러므
로 호머(Homer)는 그의 서사시(敍事詩)에서 제우스를 '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간과 각
양 '신들의 아버지'로 묘사하였다. 한편 본서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적을 행하는 것
을 본 루스드라인들이 바나바를 가리켜 '쓰스'라고 칭한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14:12).
(2) 허메(Hermes). '허메'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로서 로마인들이
'머큐리'(Mercury)와 동일한 신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의하면 이 신은 '제우스'의 아
들로서 신들의 전령자요 제우스의 대변인으로 말에 능했을 뿐 아니라 말의 창시자였
다. 따라서 루스드라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고 했던 것은 바울이 훌륭한 설교
가였기 때문인 듯하다(14:8-12).
(3) 아데미(Artemis). 보통 '아르테미스'로 불리는 이 여신은 '제우스'의 딸이다.
이 여신은 처녀의 수호신이자 출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서 특히 에베소인들에 의
해 열렬히 숭배되었다(34절). 에베소 사람들이 이 여신을 숭배한 것은 다산(多産)과
풍작을 기원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던 가나안
농경 문화의 우상 숭배와 궤를 같이 한다(삿 2:11;삼상 7:4;왕상 16:31,32;왕하
10:18;렘 2:8).
(4) 레판(Rephan). 분명치는 않으나 고대 애굽인들이 섬기던 목성신(木星神) '레파'
(Repa)이거나 근동인들이 섬기던 토성신(土星神) '렘판'(Remphan)인 것 같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스데반의 언급(7:42,43)에 의하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도 이 신을 숭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 아볼로는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복음에 대해 정확히 가르침을 받은 후 아가야 지방의 수도 고린도로 건너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다(18:26, 27). 따라서 바울이 에베소에 당도할 즈음에는 아볼로는 그곳에 있지 않으므로 두 사람이 대면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동일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세계에 활발히 전파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볼로는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오랫동안 사역하면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전 1:12).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 18:23에서 끊겼던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이야기가 다시 이어진다. 여기서 '윗지방'이란 일반적으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Zahn, Bauernfeind). 그래서 람세이(Ramsay)는 바울이 브루기아의 '구릉지대'를 통해서 에베소에 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브루기아의 내륙 지방을 통해서 에베소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Wendt, Lake, Holtzmann). 그런데 본절에서 누가는 바울이 어떤 경로를 통해 에베소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에베소 - 소아시아 서해안에 있는 도시로서 코레소스(Koressos) 산맥과 에게해 사이의 카이스터(Cayster) 강 어귀에 위치하였다. 이는 항구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울 만큼 번창하였다. 그러나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과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다. 당시 에베소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점점 잃어가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전부터 섬겨오던 아데미 여신을 더욱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이 여신의 신전은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 중 하나였다. 제자들 - 누가에 있어서 제자란 대개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6:1;9:10, 26).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는 것(3절)은 이상한 일이다. 이들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도(18:26) 무관한 사람들인 것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그 부부와 관련이 있다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볼로 역시 이미 고린도에 가고 없는 터여서 이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 문제시된다. 추측건대 이들은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기 전 성경을 가르칠 때 그에게 영향을 받아 믿게 된 사람들일 것이다.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 바울이 어떻게 해서 이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진술되지는 않았으나 아마 바울이 그들의 신앙 상태를 통찰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 이들의 대답에 바울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진정 믿는 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들이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다는 것은 '요한의 세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반증한다. 즉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께서 오시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쳤기 때문이다(눅 3:16).
=====19:3
요한의 세례 - 본장 1-7절의 주제 강해 '물세례 연구'를 참조하라.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예수라 하거늘 - 바울은 요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요한의 세례에 관한 정확한 의미와 그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을 올바로 가르쳐 주었다. 요한이 베푼 세례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 단계로서 마음의 변화와 근본적 전환을 위해 베푼 회개의 세례였다는 것이다. 결국 이 회개의 세례는 요한 뒤에 오실 이, 곧 예수를 믿게 하기위한 것이다. 때때로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계시의 절정으로 보며 심지어는 메시야와 동일시 하기도 했다(눅 3:15). 그러나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일 따름이었다(마 3:3). 따라서 요한은 예수께서 베푸실 '성령과 불 세례'를 위해 먼저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왜냐하면 회개 없이는 성령을 받을 수 없으며 또 근본적으로 회개케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기(Lenski) 때문이다.
=====19:5
저희가...세례를 받으니 - 바울의 가르침으로 자신들이 모두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은 제자들은 자진(自進)해서 세례를 받았다. 여기서 제자들이 세례를 다시 받은 것은 아볼로의 경우(18:26)와 차이가 있다. 즉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는데 그는 다시 세례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자들은 아볼로와 마찬가지로 요한의 세례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달리 다시 세례를 받았다. 이 두 경우의 차이점에 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이 세례를 받은 것은 절대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세례를 다시 받고자 하는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본다(Meyer). 물세례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세례를 받은 표라는 사실에 궁극적 의미가 있다는 점, 그리고 세례 요한의 물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서 세례받은 자들이 이들 외에도 있었으나 일일이다 물세레를 재차 받지는 않았으리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보건대 이 견해는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한편 여기서 이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의 아굴라였다는 주장도 있지만(Zahn)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확한 자료가 없다.
=====19:6
안수하매 성령이...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 여기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은 안수 행위이다. 즉 안수가 능력을 임하게 하거나 성령이 임하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서 8:5-25 주제 강해 '안수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한편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표적들은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와(2:4, 6, 8), 고넬료의 집에 모인 유대인과 이방인들(10:44-46)에게 성령께서 임하셨을 때 나타났던 표적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특별히 이곳에서 나타난 방언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막 16:17)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였다(고전 12:4-10). 여기서 성령 세례를 받은 열 두사람들은 후에 에베소 교회의 핵심 인물들이 되어 이방 선교에 전심 전력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 사건을 두고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9:7
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 - 여기서 12라는 숫자를 두고 학자들(Weizacker, Wendt)은 비유적 해석을 시도한다. 즉 숫자를 예수의 열 두 제자나 이스라엘 민족의 열 두 지파와 연결시켜서 생각하려고 하나 저자 누가에게 그 같은 의도가 있었다는 근거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만약 그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의도와 연관된 부연 설명을 했을 것이다.
=====19:8
회당에 들어가...강론하며 권면하되 - 이미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이 회당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18:19, 21)고 약속 했었다. 그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는 회당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로 석 달 동안이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석달이란 기간은 이제까지 바울이 회당에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중 가장 긴 기간이었다. 여기서 '담대히...강론하며'의 헬라어 '에파르레시아제토'(* )는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바울이 회당에서 석 달 동안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담대히 말씀을 전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권면했다'는 뜻의 '페이도' (* )란 말은 원어적으로 바울이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설득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 동원했다는 뜻을 나타낸다. '에파르레시아제토'와 '페이도'란 두 단어를 통해서 누가는 바울이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심 전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9:9
마음이 굳어( , 에스클레뤼논토) - 미완료 과거 중간태로서 바울이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전파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 문을 열려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 문을 굳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두고 이 갖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굳어질대로 굳어 진 마음들은 부서지거나 깨지기 쉽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때 그 굳어진 마음들이 부서져 영원한 형벌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바울을 비방하는 자들의 적대감(敵對感)이 매우 심했던 까닭에 바울은 더이상 회당을 복음증거 장소로 이용할 수 없다고 느끼고,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 이 제자들은 바울이 회당에서 가르치는 동안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이었다.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떠나면서 그곳에서 얻은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다. 여기서 '따로 세우고'의 헬라어 '아포리조' (* )는 '한계를 분명히하다', '구별하다', '떼어놓다'는 뜻으로서 바울이 복음을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로부터 새로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따로 구분하여새로운 교회를 형성케 했다는 의미이다. 두란노 서원에서...강론하여 - '두란노'가 이곳에서 가르쳤던 선생의 이름인지(Zahn) 아니면 이 서원의 소유주의 이름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 서원 자체의 이름인지는 정확지가 않다. 한편 서방 본문(Western Text) 몇몇 사본에 따르면 5시부터 10시까지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이 사건은 보통 당시의 오후 휴식 시간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본들에 따르면 바울은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 시간을 피하여 이 휴식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일하는 시간에 말씀을 가르쳤다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서원에서 집회를 가진 후에 청중들과 함께다시 일과를 시작하여 오전에 하던 일을 끝마쳤을 것이다(Haenchen, Longenecker). 이곳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2년 동안 계속되었고 그러한 노력은 에베소에서 큰 결실을 이루어 많은 교회가 생겨나게 했다.
=====19:10
아시아에 사는 자는...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2년 동안 바울 열심있는 사역은 에베소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많은 교회를 탄생시켰다. 루커스 계곡(the Lycus Valley)에 골로새, 히에라볼리, 라오디게아 교회들이 세워졌고, 소아시아 지역에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등 여러 교회들이 속속 세워지게 되었다.
=====19:11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기 시작하셨는데 그 기적들은 제자들에게조차도 익숙지 않은 특별한 것들이었다. 홀츠만(Holtzmann)은 바울의 이러한 기적들이 베드로가 그의 그림자를 통해서 일으킨 기적들과(5:15, 16) 유사하기 때문에 역사적 신뢰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기적이나 바울의 기적이 그들 스스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기적뿐만 아니라 더 큰 기적도 행하실 수 있는 분이다. 미신과 주술이 범람(氾濫)하는 도시에서 바울의 선교 사역은 이러한 특별한 기적 행사가 필요했을 것이다(Whitelaw).
=====19:12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 학자들 간에는 이러한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또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본절에 언급된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바울은 마술과 미신의 본거지에서 사역했으며 무당들 가운데서 말씀을 전파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손수건이나 앞치마 자체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그 능력을 받아들인 믿음을 통해서 기적들이 일어난 것이다. 그 기적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수건'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땀을 닦기 위해 머리에 두루고 있던 헝겊 조각이며 '앞치마'는 장막 짓는 작업을 위해 허리에 둘렀던 것이다(F.F. Bruce).
=====19:13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예수를 빙자하여 - 고대 세계에서 악령을 내쫓기 위해주문을 외울 때 주술적(呪術的)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경향이었고, 특히 이러한 관습은 에베소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었다. 그런데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또는 성도들 외에 비기독교인들도 귀신 축출을 위해 예수 이름을 마술적으로 사용했다(14-16절 ; 막 9:38, 39). 그리고 실제로 파리의 마술 문서인 574번 파피루스 3018행에서는 무당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실례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내가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네게 엄히 명하노니." 본문에서도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 주술사들도 바울의 행동을 모방해 예수의 이름을 그들의 주술에 이용하려고 했다.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라고 굳이 바울의 이름까지 언급한 것은 바울이 행하는 능력이 압도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주술사들이 악령을 쫓아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마술적 주문과 정확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Haenchen, Longenecker). =====19:14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행하더니 - 헬라어 본문에는 스게와가 대제사장이었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KJV, RSV, NASB, MB, NIV). 대제사장이 이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사실은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영업 수단으로 고객 유치를 위해 자신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해 있다는 것을 빙자하였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들이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이라면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 이방 도시에서 귀신 쫓는 일이나 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몰락한 가정형편을 보여 주는 것이고 아울러 에베소의 유대교는 그곳의 미신과 혼합, 변질되어 그곳 사람들로부터 형편없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 학설은 몇몇 학자들이 지지하지만(Mastin, Marshall) 별로 타당성이 없다. 만약 이들이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하고 있다면 그들은 대제사장의 권위와 명성을 빌어 자신들의 야심을 채우고자 하는 간교한 술책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문헌에는 스게와라는 대제사장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다. 누가는 그 사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아마도 여기서 그들이 충분히 대제사장의 가문을 빙자할 수 있는 인물들임을 암시하려고 했는 듯하다. 이전 맥락에서 그들은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 앞에서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다고까지 증언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이런 교활한 행동은 마치 사마리아인 시몬의 태도와도 유사하다(8:9-24). 이들은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들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하던 사악한 일들을 계속해서 하고자 했던 것이다.
=====19:15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 유대의 주술사들은 영적인 세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귀신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믿음과 능력들을 먼저 파악한다. 그들 자신들이 하는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를 이미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막 1:24, 34;5:7;눅 4:41;히 2:14;요일 3:8) 나아가 바울이 그 예수의 사도이며 믿음과 능력의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너희는 누구냐'라고 한 것은 곧 이 귀신들이 스게와의 아들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함을 먼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전혀 없이 또 사악한 동기에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려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단의 세력이 징벌(懲罰)의 도구가 될 것이다.
=====19:16
악귀 들린 사람이...도망하는 지라 - 사기성을 가지고 예수의 이름과 또한 귀신들을 동시에 시험해 보려고 한 사악한 유대인 주술사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세력 앞에서 봉변을 당하고 쫓겨가야만 했다. 그들이 마귀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감으로써 이들의 신의와 위엄은 땅에 떨어졌을 것이며 반면에 바울의 권위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다. 한편 개역 성경에서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을 '그 두 사람에게'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암포테론'( )으로 '양쪽'(both)이라는 의미 외에 '모두'(all)를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파피루스에서는 이 단어를 둘이상의 경우에 많이 사용했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 '암포테론'은 스게와의 '일곱 아들'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다(Haenchen, Lenski, Robertson, Longenecker, G.A. Buttrick).
=====19:17
유대인과 헬라인들이...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 미신과 주술이 난무하는 에베소의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일곱 주술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난 파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그 주술사들처럼 미신과 주술이라는 악습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귀신의 봉변이 자신들에게 임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곤경을 치르게 될까 염려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귀신이 쫓겨나고 주술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때는 주술사들이 오히려 귀신에게 쫓기는 그 원인을 몰랐다. 단지 그들은 예수의 이름이 모든 귀신을 압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름을 높이게 되었을 것이다.
=====19:18
믿은 사람들이...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 이 일은 에베소 주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예수의 이름이 지닌 신비한 능력 앞에서 자신들이 지금까지 은밀하게 범하던 잘못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에베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예수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생활 습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은밀한 가운데 미신과 주술을 쫓거나 그 같은 일들을 직접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의 능력을 확실히 목격하고 체험하게 되자 자신들의 은밀한 범죄를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기독교가 비기독교 지역에 전파되면 문화적 혼합(混合) 현상이 나타나 자칫 잘못된 악습으로 인해 교회가 부패될 위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19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 '마술'을 뜻하는 헬라어 '페리에르가'(* ) 는 문자적으로 '주변 일' 이라는 의미로서 주된 일을 제외한 '쓸데없는 일'을 가리키거나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누가가 '마술'을 '쓸데없는 일'로 표현한 것은 공허한 것을 섬기는 우상 숭배와 같은 차원에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에베소에 많았다고 하는 것은 그 도시 자체가 영적인 기갈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며 또 이들 중 많은 사람이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베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책을...불사르니 -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행동을 회개하고, 자신들의 변화된 삶을 공개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마술에 관계된 모든 서적들을 불살랐다. 이 책들은 주문이나 부적 등 미신적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서 파피루스나 양피지(parchment)에 기록된 것들이 많았는데 이러한 책들은 '에베소의 책들'(Ephesia Grammata)로 추정된다(Zahn). 한편 공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책을 불태우는 것은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배격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렘 36:23). 따라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공중 앞에서 공식적으로 과거 자신들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은 오만 - 에베소에는 대부분 헬라인들이 살았기 때문에 '은 오만'에 대한 화폐 단위는 아마도 '드라크마'(Drachma)이었거나 아니면 로마의 화폐 단위인 '데나리온'(Denarius)이었을 것이다. 이 두 화폐의 가치는 거의 같은 것으로서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품삯 정도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이를 오늘날 액수로 환산(換算)한다면 약 800만원 정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실 하나만 본다 하더라도 당시 에베소에 미신이나 마술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알 수 있다.
=====19:20
주의 말씀이...세력을 얻으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 본 구절의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주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지속적으로 흥왕하여 모든 거짓되고 미신적인 마술들을 물리치며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음을 나타낸다.
=====19:21
이 일이 다 된 후 - 바울이 에베소에서 행한 총체적 일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Haenchen) 또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이 10절에서 언급한 2년의 기간에 있었던 사역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Wendt, Loisy, Lenski, Bruce, Neil). 이 견해대로라면 본 구절 '에베소에서 머물기로 작정된 날이 다 된 후'라는 의미를 지닌다. 문맥상 이 해석이 더 무난하리라 본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 본문에서 전혀 언급이 없지만 당시 팔레스틴은 기근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1:27-30). 그래서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들러 연보를 모아 기근으로 고생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했을 것이다(롬 15:31;갈 2:8-10). 여기서 '경영하여'라는 뜻의 헬라어 '에데토 엔 토 프뉴마티'(* )는 직역하면 '성령 안에서 결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바울이 그러한 지방으로 가고자 한 것은 성령의 지시에 의해서 결정된 것임을 시사한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 결심한 것은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하는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아직까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유럽을 복음화하기 위해 로마를 전초 기지로 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는 세상의 중심이라고 할 만큼 번성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기에 선교 효과가 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한 곳에는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롬 15:20). 그래서 그는 이미 다른 전도자들이 교회를 세우지 않은 유럽으로 시선을 돌려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얼마 후 아가야와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에게 전달한 후(롬 15:26) 죄수의 몸으로서 로마를 방문해 그가 계획했던 바를 이루게 된다(28:16).
=====19: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마게도냐로 보내고 - 저자 누가는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돌아와 고린도에서 합류한 이후(18:5) 디모데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라는 언급을 보면 그는 분명 에베소에서 바울과 함께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고 있는 동안 디모데를 고린도로 파송하여 봉사하게 하였다(고전 4:17;16:10, 11). 한편 '에라스도'라는 이름은 본서에서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딤후 4:20에서 그는 고린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둔 바울의 친숙한 동료로서 소개된다. 아마도 그는 롬 16 :23에 언급된 고린도의 재무 담당자인 에라스도와 동일인일 것이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에서 사역했던 디모데와 함께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 벤트(Wendt)는 여기서 바울이 에베소가 아닌 아시아의 다른 곳에서 얼마간 더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쟈안(Zahn)은 26절을 근거로 바울이 그의 조력자들을 마게도냐에 보낸 후 에베소에서 가까운 다른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23절을 근거로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체류했다고 반박했다(Haenchen). 그러나 본절에서 누가는 바울이 어떤 지역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낸 후 좀더 아시아 지역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의 어느 견해가 옳은지 결정하기 힘들다. 다만 데메드리오가 사람들을 선동할 때 '에베소'란 말을 게속 강조적으로 사용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이 에베소에 계속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19: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소동이 있었으니 - 여기서 '그 때쯤'이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것에 대해 다음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21절의 '이 일이 다 된 후'와 거의 비슷한 시점. 이는 바울이 유럽으로 떠날 계획을 실행에 옮길 시점을 의미한다.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보낼 시점.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마게도냐로 먼저 보내게 된 것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이 있었던 때문인 듯하다. 즉 바울은 디모데와 에라스도와 함께 유럽으로 전도 여행을 떠나려고 작정했다가 데메드리오의 소동으로 인해 두 사람만 먼저 보내고 자신은 그 소동을 잠재운 후 떠나게 된 것이다(20:1). 따라서 의 추측이 더 타당하다. 한편 '이 도'란 뜻의 헬라어 '테스 호두'(* )에 대해 로이지(Loisy)는 '호두' 대신에 원래는 이 곳에 '데우'( ) 즉 아데미를 나타내는 말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도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소동'은 '이 도로 인하여'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일어난 소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24
데메드리오...아데미 - 에베소의 아데미(Artemis) 여신은 근동 지역에서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모신(母神)이었다. 사람들은 이 아데미의 신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했다. 이 신상은 여러개의 유방을 지닌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신상은 원래 운석(隕石)이었는데 그 모습이 유방을 많이 가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데미의 신전은 에베소 북동쪽 약 2.4km지점에 있었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0m, 60m나 되어 고대 세계의 7대 블가사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당시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신전을 방문하려고 원근 각처에서 몰려들었다. 신전 주변에는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팔거나 숙소를 제공하며 아울러 제물과 기념품을 파는 장사꾼들로 성시를 이루었다. 그 중 가장 수입이 좋은 장사는 데메드리오 같은 자들이 취급했던 아데미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해서 여행자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모조 은신상을 기념품이나 서원의 헌물 또는 호신품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로 많은 사람들, 심지어 마술사들까지 개종함으로 자연히 우상 숭배의 악습이 점차 폐지되어 은장색(은세공사)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는 기독교를 대항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소동을 통해 그들은 사람을 선동하여 바울의 기독교 선교를 저지함과 동시에 아데미 여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더불러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다.
=====19:25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 데메드리오는 단순히 은장색들만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아데미 여신상과 관련을 맺고 생계를 유지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그들은 은장색들 외에 적갈색 진흙으로 작은 신상을 만드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은장색들과 함께 여행자들을 상대로 대단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6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신이 아니라 하니 -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라는 말은 바울이 아시아 전 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아마도 에베소를 중심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이 아시아 전역에 소문으로 번져갔거나 바울을 통하여 믿는 신자들이 아시아 각지역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로 추측된다. 그리고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미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17:29). 대체로 에베소에서는 5월 무렵에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대축제가 벌어졌는데 이 축제는 아시아 전역에서 가장 큰 축제로서 이 축제에 인근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본문에서는 은장색들이 이 축제가 곧 임박했는데 바울의 선교 활동은 갈수록 확장되어만 가니 매상이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 것같다(Lenski).
=====19:27
영업만...떨어질까 하노라 - 데메드리오는 사람들을 부추기고 선동하기 위하여 몇 가지 합리적 이유들을 제시한다. 데메드리오의 주장과 관심은 아데미의 위엄과 권위에 있는 것 같지만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신의 이익에 있었다. 한편 아데미 숭배가 세계적이라는 데메드리오의 말은 과장된 표현이지만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같다. 왜냐하면 고고학적 발굴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모두 32개소에서 아데미 숭배의 흔적이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Wernicke).
=====19:28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 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의식을 거행할 때 신을 찬양하기 위해 쓰이는 상투적(常套的)인 말이다.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함께 몇몇 사본에서는 본구절 바로 앞에 '거리로 뛰어나가'라는 말을 삽입시키고 있다. 만일 이러한 사본을 따른다면 이길은 에베소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는 아카디안대로(Arcadian Way)일 것이다. 이 대로는 에베소의 항구로부터 피온(Pion) 산의 기슭에 있는 대극장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외치며 종교적 열정을 구실로 삼아 에베소 성읍을 소동 가운데 몰아넣으려고 했을 것이다.
=====19:29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연극장으로 - 가이오는 더베 출신이고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바울과 함께 여행한 동료들이었다. 소동을 일으킨 무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두 사람을 붙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소동을 일으킨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두 명을 붙잡아 노천 극장으로 끌고 갔는데 이 노천 극장은 에베소 동편에 있는 것으로서 약 2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건축물이었다.
=====19:30
바울이...들어가고자 하나 - 바울이 살벌한 기운이 넘치는 현장 속으로 달려들어가고자 한데 대해 혹자는 바울의 신앙적 의리와 용기에 초점을 맞춘다. 즉 바울이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속수 무책으로 가만히 있는 것을 비겁한 도피라 여기고 폭도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 동료들에게 자신이 신뢰할 만한 형제임을 입증하려고 했다는 것이다(Bauernfeind). 이러한 측면 외에도,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이 여러 로마 관리들에게서 호의를 받았기 때문에 폭도들을 진정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R.N. Longenecker, Zahn).
=====19:31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 - 아시아의 관원들은 대체적으로 고귀하고 부요한 가문 출신이었다. 동맹을 결성하여 황제와 로마의 여신(女神)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는 것이 이들의 주임무였다. 해마다 아시아 관원이 그 관할 지역을 위하여 선임되었고 그 인원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 아시아 관원들의 동맹은 정치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종교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관원들 중에 몇몇이 바울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바울을 염려하여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정책이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적이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F.F. Bruce).
=====19:32
태반이나...알지 못하더라 - 이 집회는 불법 집회(40절)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는 채 모여있었다. 소요를 선동한 데메드리오는 결정적인 순간에 슬그머니 뒤로 빠져버렸고 그와 함께 행동하던 동료들도 특별히 나서지 않는다. 군중들은 분노 가운데 하나로 뭉쳤으며 아데미에 대해 불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켰지만 일의 자초 지종을 알지 못해 혼선을 빚고 있었다. 분노에 찬 사람들 대부분이 영문을 몰라한다는 본 구절의 표현은 저자 누가가 지니고 있는 헬라의 풍자적인 유우머 감각을 잘 반영해 준다(Bruce).
=====19:33
알렉산더를 권하여...발명하려 하나 -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유대인 사회나 헬라인 사회에서 흔했다. 본 구절의 알렉산더가 딤전 1:19, 20이나 딤후 4:14의 알렉산더와 동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군중들은 유대인의 신분인 알렉산더를 앞으로 밀어냈다. 그는 유대인들을 대표해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해서 변명하려고 온 사람이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배척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 양자는 모두 우상 숭배를 배격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적대가 자신들에게까지 파급될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알렉산더를 보냈던 것이다(Bruce, Longenecker).
=====19:34
유대인인줄 알고...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 군중들은 알렉산더가 자신들 앞에서 변명을 시작하려 하자 큰 소리로 외쳐됨로써 그를 저지하였다. 군중들은 그가 유대인로서 자신들을 변명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서 알렉산더가 군중들의 외침 때문에 유대교의 입장을 변론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에베소 사회 내에서 유대교가 얼마나 무력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이다(Haenchen). 한편 두 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군중들의 외침은 한번 시작되면 거침없이 휩쓸려 버리는 전형적인 군중 심리를 보여줌과(Lenski) 아울러 이러한 광신성은 아데미 신전의 제사장 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즉 아데미 신전의 대제사장이나 그 밑의 제사장들은 모두 환관(宦官)이어야 했다.
=====19:35
서기장 - 로마의 임명을 받은 관리는 아니었지만 자유 도시 의회롤 통해 선출된 의회의 최고 서기이며 최고 행정 관리였다. 이 서기장은 본토 출신의 관리이기 때문에 담당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졌다. 그래서 본문의 서기장은 이번 소요 사태가 앞으로 에베소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여 일단 진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아...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 '전각지기'란 뜻의 헬라어 '네오코로스'(* )는 '신전 청소부'라는 뜻을 지니나 '신전과 신을 섬기는 의식을 담당하는 수호자'라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당시 에베소 사람들에게 매우 명예와 자부심을 반영하는 말이었다. 서기장은 무리를 안정시키고자 군중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그들의 자부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서기장의 이 말 가운데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을 아데미 여신상으로 섬기는 에베소 사람들의 몽매한 신관(神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9:36
너희가...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 에베소인들이 그 도시가 아데미와 쓰스의 전각지기라는 사실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서기장의 말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에베소는 이미 아시아 전역에 아데미의 도시로 정평이 나있었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아데미를 숭배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군중들의 행동은 근거없는 경솔한 행동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서기관이 기독교에 대한 변호자로 나선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단지 로마범과 질서의 수호를 위해 개입하였다고 이해된다. 그는 에베소가 무질서하고 불법 행동이 난무하는 곳이라는 소문이 행여나 생겨날까봐 우려하였다(Howard Marshall).
=====19:37
도적질하지도...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 - 이 사람들은 곧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가리킨다(29절). 서기장은 이들이 잡혀온 데 대한 구체적 혐의가 없음을 지적함으로써 논지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성전에서의 도적질이나 신성 모독은 당시 이방 사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제일 많은 고발 사유였다고 한다. 한편 롬 2:22에서 바울은 이방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19:38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 당시 재판은 회기(session)에 따라 열리든지 기타 정규적인 개시일에 열렸다. 그리고 아시아는 당시에 총독의 주재 하에 있었으며 간혹 총독이 주재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때때로 로마 총독이 출장하여 재판을 주재하거나 기타 사무 일체를 보고받곤 하였다. 따라서 서기장의 주장은, 사적인 문제로 소송건이 생길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편 '총독들' ( , 안뒤파토이)이라는 복수형은 예외적이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관할 지역의 총독은 1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혹자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총독 유니우스 실라우스(Junius Silaus)를 암살한 두 사람(Helius, Celer)이 아시아에서 권력을 행사한 사실과 연결시킨다(G.S. Duncan). 하지만 이 복수형의 표현은 단지 '총독들같은 사람'이라는 정도의 일반화된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다(Howard Marshall).
=====19:39
그 외에 무엇을...민회에서 결단할지라 - 당시 이 민회는 시의원들과 평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시민들에게는 합법적으로 민회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 이 민회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세 번 열렸으며 모일 때마다 도시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그 도시의 행정 사무 일체를 논하였다.
=====19:40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 서기장은 본토 출신의 관리였기 때문에 그 지역의 소요에 대한 책임을 누구보다 엄하게 져야했다. 따라서 그는 이런 식의 이유없는 불법 집회로 인하여 집회에 참석치 않은 사람들과 로마 당국의 미움을 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실 이 소요와 집회는 개인적인 이기심과 음모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서 구체적 이유나 근거도 없는 충동적인 소요 사태였으며 군중 심리에 의해서 모이게 된 불법 집회였다. 결론적으로 데메드리오의 음모와 요구는 거부되었으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41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 서기장의 논리적이고 합당한 연설은 군중들을 자진 해산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위기적인 상황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무사히 끝났다. 바울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았으면서도 다급한 상황은 진정되었다. 한편 저자 누가는 이방 세계 가운데서 기독교의 호교적(護敎的)인 요소를 매우 비중있게 다루는데 여기서도 그는 서기장의 연설을 심도있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누가의 집필 태도는 다섯 차례에 걸친 바울의 호교적 변론에 대한 기록에서도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장은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했던 에베소 활동기를 그리고
있다.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마감하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를 잠시 들렀으며, 거기
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 바 있다(18:21). 이제 평소부터 염원
했던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3차 전도 여행 중에 이루었거니와, 에베소에서 이루어진 전
도 사역은 바울의 3차 선교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울은 무려 3년간
(A.D.53-56년경)에 걸쳐 에베소 지방의 목회에 심혈을 기울였던 바, 이는 다른 지역에
서 찾아볼 수 없는 수고와 헌신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구체적 내용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장 전체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두 가지 사항
에 초점을 모으기로 하자.
(1) 우상의 도시 에베소.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쪽 카이스터 계곡의 입구에 자리잡은
항구 도시로서, 교통과 무역의 관문(關門)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에베소는 한때 '아
시아의 보고(寶庫)'라 불리울 정도로 번창하였다. 로마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당시 동
양과 서양이 함께 교차하는 소아시아에는 수많은 소도시들이 각기 독특한 문화와 부
(富)를 자랑하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자기 지역에서 통용되는 주화(鑄貨)를 주조할
정도로 독립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들 중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에베소라 하겠다.
상업과 교통의 요지인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및 아가야의 제도시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우상과 미신 숭배였다. 18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거니와
고린도의 엄청난 부는 아프로디테 신전의 우상 숭배 및 여기서 파생되는 도덕적 타락
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듯이, 에베소의 상업적 번영은 다산(多産)의 모신(母神)인
아데미 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아데미 숭배의 음란함은 이 여신상의 형상을 볼
때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아데미 여신상은 많은 수의 유방을 가지고 있고, 사자, 황
소, 수양들이 그 어깨와 다리 위에 양각되었으며 발 위에는 한 마리의 꿀벌 모양이 새
겨져 있었다. 인간과 짐승과 식물의 다산을 보증하는 의미를 갖는 아데미 숭배에는 고
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와 같이 수많은 고급 매춘부들이 사제(司祭)로 봉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에베소의 아데미 숭배가 도덕적 부패와 타락의 온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에베소가 고린도와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고린도의 우상 숭배가 도덕적 문란함과 직결된다고 하면 에베소의 우상 숭배는 상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에베소는 이방 미신 숭배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바
(19절), 원근 각처에서 사람들이 매우 빈번하게 방문하는 순례지였으며 이들은 갖가지
부적과 우상적인 공예품들을 기념으로 사갔다. 소위'에베소 주문(呪文)'을 몸에 지니
고 다니면 만사 형통한다는 신념이 그와 같은 구매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에
베소에는 아데미 우상과 각종 부적들은 만드는 은장색(銀匠色)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
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커다란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에베소 사람들이 아
데미 신전에 의존하여 생활의 근거를 세우게 된 것은 로마의 속국이 된 후부터였다.
로마 제국의 필요에 의해 엄청난 벌목과 목탄 연료의 사용 및 방목(放牧)의 결과로 에
베소 항구가 침적토(沈積土)로 막히면서 그 주민들은 그들의 부와 계속적인 번영을 위
해 더욱 아데미 신전과 각종 미신으로 인한 상업에 크게 의존하는 도시였다 하겠다.
(2) 바울의 담대한 복음 증거.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24절)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
년간에 걸쳐 에베소에 머무르며 교회를 굳건히 성숙, 확장시켜 나갔다. 이렇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동안에 아데니 신전의 우상 숭배자들은 바울을 결사적으로 공격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로 인해 우상 숭배의 지반(地盤)이 흔들리자 그들의 수입
에 커다란 타격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
로 세례를 주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하며 권면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어느 때보다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치유와 축귀(逐鬼)의 능력을 행함
으로써 왕성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모든 사건으로 인해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 예수
의 이름을 높이며, 바울이 더욱 확신을 가지고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시
시때때로 교묘한 사단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이를 이길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
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7절)은 바울이 에베소에
이르러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증거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8-20절)은 에베소에서 성행
한 미신과 주술을 타파한 내용이다. 셋째 단락(21-22절)은 바울의 방대한 전도 계획을
밝힌 삽입 부분이다. 그리고 넷째 단락(23-41절)은 에베소 은장색들의 소요 사건 속에
서 바울 일행이 어떻게 위험을 모면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1. 에베소 교회의 성령 강림(19:1-7)
에베소에는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요한의 세례만 아는 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다
(18:24,25). 아볼로는 복음을 확실히 깨달은 후 고린도 지방으로 갔지만, 그에게 가르
침을 받은 자들은 여전히 에베소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세례 요한의
금욕주의적 신앙 자세와 회개의 교리를 붙잡고 있었고, 성령의 현존 의식에 관해서는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아볼로의 미성숙한 목회의 흔적을 감지한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세례를 주는 것으로 에베소 사역을 시작하였다. 물론 바울이 궁극적
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은 성령 세례를 처음부터 성령 세례를 강조하면 충격을 줄 것
을 고려하여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준 후 성령 세례까지 연결시켰던 것이
다. '성령 세례'에 관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서 1:1-5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사도 바울의 이러한 선교 방법은 피선교지에 가서 처음부터 너무나 이질적인 일을
시작하여 거부감이나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방법론상 현명한 것이었
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행하고자 하는 사업의 목적이 선하다고 하여 무조건 감행
할 것이 아니라 방법론적인 문제에도 현명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 물 세례 연구. 흔히 요한이 베푼 세례를 가리켜 '물 세례'라고 한다(1:5;마 3:11;
막 1:8;눅 3:16). 본 주제 강해를 통해 물 세례의 역사적 배경, 의미, 효율성에 대하
여 간략히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역사적 배경. 세례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구약 시대의 3대 사건은 노아 홍수(벧
전 3:20,22)와 홍해 사건(고전 10:2) 및 할례 의식(골 2:11,12)이다. 물론 고대 동방
세계와 유대교의 일부 종파 사이에서도 세례 의식을 통하여 신생(新生), 단체에의 가
입 서약,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상징하였으나 역시 그 직접적 배경은 구약의 3대 사건
이라 하겠다.
(2) 세례의 의미. '세례'는 죄의 씻음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 즉 이전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증인의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를
공증하고 서약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행하는 물 세례가 주로 인간의 서원을
강조한 형식적 행위라면, 성령 세례와 불세례(9:17)는 그리스도와 성도 간의 내적 연
합을 강조하는 실질적 세례라고 할 수 있다(1:1-5 주제 강해 '성령 세례' 참조). 요약
하면 세례의 의미는 과거의 몸을 씻고 새 생활, 새 단체, 새 신조에 연합, 가입되는
것이며 성경적으로 이 말은 과거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을 하여 영적
공동 운명체가 되는 것을 상징한다(롬 6:3-6).
(3) 효율성. 물 세례는 물론 우리의 내적 신앙 고백을 형상화한 상징적 행동이다.
따라서 적극적 측면에서 보면, 물 세례는 이웃과 자신에게 자기의 신앙을 공표함으로
써 스스로 결단과 근신을 주는 것인 반면 소극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히 상징
적 행위이지 그 자체가 구원의 필수 조건이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할례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과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
에게 그 순종과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며(창 17:9-14), 오늘날의 세례 또한 예수 그
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있어 믿음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롬
4:9-13).
2. 에베소의 전도 성공(19:8-20)
에베소에서 바울은 일찍이 그를 호의적으로 영접하했던 자들 덕택에(18:19,20) 유대
인 회당을 이용하여 3개월간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방하는 무리들이 늘
어나자, 바울은 두란노 서원을 장소를 옮겨 무려 2년간 사역을 계속했다(9절). 두란노
서원에 대해 확연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순회 강연자들에게 제공한 강연 장소였거나,
혹은 두란노라는 저명한 철학자 내지는 수사학자와 철학을 강론한 강의장이었던 것으
로 추측된다.
서방 사본(Western Text)에 의하면 바울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그 서원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이 시간은 대개 무더위를 피해 쉬는 때였다. 서방 본문의 기록
이 사실이라면,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자신의 생계를 해결함과 동시에 쉬
는 여가를 이용하여 복음을 증거했던 것이 된다. 여하튼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날
마다' 주의 말씀을 강론했는데, 이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사역으로 말미암아
에베소는 물론 그 주변의 성읍에까지 복음이 확장되어 나가는 풍성한 결과를 거둘 수
있었다(골 1:7;2:1;4:16;계 2,3장).
한편 본문에는 유대의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이들은 성령의 돈을 주고 사려고 했던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8:9-24)과 구브로의 유
대인 거짓 선지자요 박수인 엘루마(13:4-12)와 일맥 상통하는 바, 불순한 동기와 이기
심으로 치병(治病)과 축귀(逐鬼)를 하려다가 불상사를 당하였다. 현대인은 자연 과학
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좀처럼 마술을 신뢰하지 않지만, 고대와 신약
시대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에베소는 미신과 주술이 성행했던 대표적인 지역으
로서 여러 질병들 특히 정신병을 귀신의 침입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마술은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직업에 속했다. 즉 마술사가 어떤 사람에게 들어 있는
귀신보다 더 강한 귀신을 부르게 되면, 먼저 들어 있던 약한 귀신이 쫓겨난다고 사람
들은 믿었다. 이러한 전이해(前理解)를 바탕으로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을 전혀 모르는 이들의 행위
는 도리어 화를 부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했다가 큰 봉변
을 당한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예수'의 이름이 큰 위엄과 영광을 얻는 데 그리고 복
음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데에 일조(一助)를 하였다.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는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무리들이 무수히 많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에 힘입기보다는 인간의 완력(腕力)에 의하여 강제로 축귀나 치병
을 하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 이들은 마술적 방법으로 하다가 안 되면 구타
를 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며 절식(絶食)을 시켜서 고귀한 인간의 인격 훼손을
물론 생명까지도 잃게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무리들에게 속지 않도록 자신의 눈과 귀
와 입과 발걸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시 119:105;요일
4:6).
3. 바울 선교의 비전(19:21-22)
본문은 본서의 나머지 부분들에 대한 서론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에베소의 마술사
들이 회개하고 그들이 모든 책들을 불사르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바울은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메가도냐로 보내고 본인은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을 방
문하고 계속해서 로마로 갈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바울이 로마로 갈 결심을 한 것은
서바나로 전도 여행을 떠나기 앞서 로마 교회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고자 했기 대
문이다(롬 15:23,24).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에는 다른 복음 전도자들이 세운 교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유럽 전도의 거점으로 로마를 삼
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이미 다른 전도자가 복음을 전파한 곳에 가서는 전
도하지 않겠다는 그의 목회관과 일치한다(롬 15:20). 결국 바울이 계획했던 서바나 전
도 여행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죄인된 신분으
로 로마 여행을 하게 되었다(28:16).
한편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려고 한 데에는 한 가지 큰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
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이방 교회를 두루
돌면서 구제금을 거두었던 바(고전 16:1-4) 이제 그것을 형제들의 사랑과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이었다(롬 15:26). 이렇듯 사도 바울은 세상 도처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위험
을 무릅쓰는 와중에서도 전 교회의 하나됨과 교제를 항상 의식하고 있었다(고전
10:17).
4. 에베소의 소요(19:23-41)
본문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이권 단체(利權團體)와 충돌하게 된 사건을 수록하였다.
에베소의 이권 단체란 에베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주도하고 있던 아데미 숭배
자들의 조합을 말한다. 당시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가는 에베소의 북동쪽에 위
치했던 아데미 신전의 크기를 생각해 보면 족히 이해할 수 있다. 아데미 전각(27절)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주 하나로서 한 면의 길이가 120m이고 다른 면의 길이는 60m로 솔
로몬 성전의 34배가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는 이방 종교의 총본산이요 수많은 순례자
가 끊임없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에베소 사람들은 신전을 중심으로 경제 생활을 이루었
던 바, 이들의 근간을 형성하는 은장색(銀匠色) 조합의 영향력은 에베소에서 가장 지
대하였다 하겠다.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문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데메드리오의 선동 동기. 데메드리오는 은장색 조합의 우두머리 격인 듯하다.
당시의 사람들은 가정보다는 크고 국가보다는 작은 사회 기구들을 많이 형성하고 있었
다고 하는데(S.Dill) 그 기구는 은행가, 염색업자, 건축업자, 이발사, 수송업자, 의
사, 설계사, 철공, 석공, 도제공 등 각종 상업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들의 이익을 위하여 함께 결합한 단합체였음을 물론 사회적 협력 기구의 역할을 하였
다.
본문에 등장하는 데메드리오가 종사하는 은장색 조합은 그과 같은 기구의 일종으로
서 아데미 여신의 은감실, 즉 모조 은신상을 제조하는 일을 하였다. 바울이 에베소에
서 복음 전도에 성공을 거두자 이 은장색 조합은 경제적 타격을 입음은 물론 그 기반
까지 흔들리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데메드리오는 자신의 지반을 옹호하고
이득을 지키기 위해 은장색들로 하여금 소동을 일으켜 바울을 대적하게 하였다.
표면상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공격한 동기가 '아데미'여신에 대한 종교적 열성에서
기인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돈벌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즉 이 은장색들은 순례자들
에게 아데미 신상이나 신전의 작은 모형을 기념품으로 팔아서 수입을 올리는 자들이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전파는 당장 그들의 생업(生業)을 위협하는 것으로 파
악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들은 소위 군중 심리(群衆心理)를 격발시켜(32절) 아예 바울
을 여지없이 파쇄시켰다. 후대에 아데미 신전이 로마 황제 차스티니안에 의해 성소피
아 성당의 건축 재료로 사용된 사실(F.Torey, M.Machaby)은 육체적 안녕과 재물을 위
해 복음을 거부한 진리 배척자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역설적으로말해주며 죽은 우상과
달리 역동적으로 역사하는 복음의 초월적 능력을 깨닫게 해준다(삼상 5:1-5).
(2) 죽음도 불사한 바울의 신앙 의리.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움직인 은장색들은
지방색과 종교색이 짙은 우매한 군중들과 합세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 연극장은 에베소의
동맥 구실을 하는 아카디안 대로(Arcadian Way)의 동쪽에 위치한, 이만 오천 명 가량
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노천 극장(露天劇場)이었다. 바울은 자기 대신 동행자가 고
초를 겪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연극장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하였다. 동료를 구하든
못구하든 새사 고락을 함께 하려는 바울의 이러한 행동은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따라
가지 못하는 오늘날의 세대에 훌륭한 귀감이 된다.
(3) 이교도에 대한 바울의 태도. 바울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복음을 전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방의 토속 종교를 향해 공격을 가하지는
아니하였다. 예컨대,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이 숭배하는 아데미 여신에 대해 비난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그들에게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데메드리오의 선동에 의해 소요가 일어났을 때 이 소요를 진정시킨 서기장의 발언을
살피면 잘 알 수 있다. 즉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
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37절)이란 서기장의 말을 감안할 때 바울이 3년간 에베소
전도에 종사하면서 우상에 대하여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
는 여기서 복음 전도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을 깨닫게 된다. 복음을 전하기 앞서 우상
을 비난하거나 파괴한다면 군중들의 반감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는 전도의 열매를 거
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앙은 인간의 중심에서 이루어지는 일인고로, 외부에서 강압
하기보다는 먼저 참된 신관과 신앙의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 사도행전에 나오는 각종 신(神). 본서에는 구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신인 물론, 즉
몰렉(레 18:21;왕하 23:20) 외에도 쓰스와 허메, 아데미, 레판과 같은 이방 신이 언급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 주제 강해는 이것들이 어떤 신인지에 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1)쓰스(Zeus). '쓰스'는 우리가 흔히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그리이스의
최고 신이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이 신을 '쥬피터'(Jupiter)라는 이름을 불렀다. 이
신은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주관하는 신인 동시에 날씨를 주관하는 신이었다. 그러므
로 호머(Homer)는 그의 서사시(敍事詩)에서 제우스를 '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간과 각
양 '신들의 아버지'로 묘사하였다. 한편 본서에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적을 행하는 것
을 본 루스드라인들이 바나바를 가리켜 '쓰스'라고 칭한 사건이 언급되어 있다
(14:12).
(2) 허메(Hermes). '허메'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로서 로마인들이
'머큐리'(Mercury)와 동일한 신이다. 그리이스 신화에 의하면 이 신은 '제우스'의 아
들로서 신들의 전령자요 제우스의 대변인으로 말에 능했을 뿐 아니라 말의 창시자였
다. 따라서 루스드라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허메'라고 했던 것은 바울이 훌륭한 설교
가였기 때문인 듯하다(14:8-12).
(3) 아데미(Artemis). 보통 '아르테미스'로 불리는 이 여신은 '제우스'의 딸이다.
이 여신은 처녀의 수호신이자 출산과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서 특히 에베소인들에 의
해 열렬히 숭배되었다(34절). 에베소 사람들이 이 여신을 숭배한 것은 다산(多産)과
풍작을 기원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 '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던 가나안
농경 문화의 우상 숭배와 궤를 같이 한다(삿 2:11;삼상 7:4;왕상 16:31,32;왕하
10:18;렘 2:8).
(4) 레판(Rephan). 분명치는 않으나 고대 애굽인들이 섬기던 목성신(木星神) '레파'
(Repa)이거나 근동인들이 섬기던 토성신(土星神) '렘판'(Remphan)인 것 같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스데반의 언급(7:42,43)에 의하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인도 이 신을 숭배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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