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사도행전 1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7:1
 저희 - 바울과 실라를 말한다. 디모데와 누가는 빌립보에 체류중이었다(16:12,40)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 '암비볼리'(Amphipolis)는 빌립보 남서쪽 약 53km 지점에 있는 도시로서 B.C167-146년 무렵에는 마게도냐 북부지방의 수도였다. 이곳은 빌립보 지방보다 크고 요충지(要衝地)였으나 바울일행은 단지 지나가는 정도로 그친다. '아볼로니아'(Apollonia)는 암비볼리에서 약 43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곳은 갈라디아에 있는 '아볼로니아'와는 다른 곳이다. 데살로니가 -이곳은 아볼로니아 남서쪽 64km지점이며 데르마이크만(Thermaic Gulf)에 위치해 전략적 요충지였고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다.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마게도냐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동쪽에 있는 육로와 해로에 연결시켜 주었다. 그래서 키케로(Cicero, B.C.106-43)는 이곳을 '우리 영토의 심장부'라고 했다. 이 도시는 B.C.42년 빌립보 부근의 싸움에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에게 가담했기 때문에 자유시(Civitaslibera)의 특권이 주어졌다. 또 데살로니가는 인구 약 20만의 도시로 정치, 경제의 중심지여서 자연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으며 유대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살전2:14-16).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발칸 반도 전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다(살전1:7,8). 그러므로 그들은 빌립보에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빌립보에서 160여km나 떨어져 있는 이 도시에 사력을 다하여 들어왔던 것이다(R.N.Longenecker).
 유대인의 회당 - 렌스키(Lenski)에 따르면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로 오기 전 다른 두 도시, 곧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에 머물지 않은 부분적인 이유는 그곳에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데살로니가에는 유대 공도체와 회당이 있었으므로 바울과 실라는 효과적으로 또 곧바로 전도를 시작할 수 있는 그곳을 선교지로 택했을 것이다.

=====17:2
 자기의 규례대로(* , 카타 토 에이오도스) - '규례'의 헬라어 '에이오도스'는 '에도'(* )의 완료 부사로서 '습관', '익숙한 일' 등의 뜻이다. 이는 이미 바울이 새로운 도시에서 회당을 찾아 복음 전하는 일을 습관처럼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살라미(13:5), 비시디아 안디옥(13:14), 이고니온(14:1) 등에서 바울은 이미 그의 습관대로 안식일에 회당을 찾아 복음을 전파했다. 바울이 회당을 다른 곳보다 먼저 찾은 이유는 회당에는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물론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그 복음이 유대인들에게서 거부당한 후에야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식의 기계적인 수준을 밟아 증거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음을 확고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동족 유대인의 구원을 항상 우선적(優先的)인 일로 유념하고 있었던 것이다(롬1:16;2:9,10). 세 안식일에 - 이 구절만 가지고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단지 3주 동안만 머물렀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3주 이상 그곳에서 체류하며 회당에서 가르쳤고, 회당에서 가르치지 않을 때는 거리나 그밖의 장소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다(Furneaux).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으면서 적어도 한번 이상 빌립보 교회로부터 '쓸 것'을 공급받았고(빌4:16) 또 자신의 생계를 위해 친히 노동했다는 점(살전2:9)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성경을 가지고 - 구약성경을 토대로 한 가르침을 의미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함에 있어 단 한번도 성경을 떠나서 가르친 적이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복음의 주체인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강론하며(* , 디엘려사토) - 원형 '디알레고마이'(* )의 제1부정과거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담론하다', '문답하다', '연설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17:3
 뜻을 풀어...증명하고 - 여기서 바울의 설교 형태가 잘 드러난다. 바울 설교의 중심은 대개가 '증거와 선포'의 형태였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과 부활을 해석하여 선포하였으며 그 예언이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거하였다. 이러한 증거와 선포는 13:16이하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가 메시야의 고난과 부활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 구약성경 구절은 신21:23;시2,16,110편;사53장 등이었을 것이다.

=====17:4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 바울의 설교 끝에는 늘 권고가 뒤따른다. 여기서 바울의 권고로 많은 회심자들이 생긴다. '경건한 헬라인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20:4에 언급된 '아리스다고'와 '세군도'가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귀부인들'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부인들로서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들로 짐작된다. 마게도냐 지방에서는 다른 지방에서보다도 여성들이 많은 자유를 누렸다. 한편 호르트(Hort)는 이 '귀부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의 유대인 아내들'이라고 주장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한편 여기서 헨헨(Haenchen)은 사회 지도급 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그들이 바울 일행에 대한 박해를 막지 못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있어 핍박의 주동세력은 시당국자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문은 쉽게 해소될 수 있다(I.H. Marshall).

=====17:5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처럼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복음을 훼방하기 위해 소동을 일으켰다. 살전 3:3-10에 의하면 이 유대인들의 시기는 단순한 시기가 아니라 갖가지 중상모략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 -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쫓게 되자 유대인들은 이를 와해할 목적으로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 중 하나가 시장이나 광장 등의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소란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매도(罵倒)하는 것이었다. 야손 - 이는 '여호수아' 또는 '예수'에 대한 헬라어 번역 이름이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이 사람이 유대인(Lenski, Longenecker)이 아니면 이방인 출신(Robertson)이라고 각기 다르게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이다. 바울과 그의 전도단 일행이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집에서 머물렀던 것처럼(16:14) 여기서는 '야손'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런데 본 구절의 '야손'이 롬16:21에 언급된 바울 친척인 '야손'과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17:6
 발견치 못하매 - 불량배들의 소동을 접한 집 주인 야손은 바울과 전도단 일행을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을 것이다. 야손과 및 형제를 - '형제'(* , 아델포이)란 야손의 형제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여기서는 예수 안에서 함께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Howard Marshall). 불량배들은 바울을 찾지 못하자 그들의 눈에 띄는 야손과 다른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끌고가 가당치 않은 누명을 씌워 행정당국에 넘겼다. 읍장들 - '폴리타르카스'(* )라는 칭호는 B.C.2세기부터 A.D.3세기에 걸친 시대의 비문에서 발견되었고 마게도냐의 도시들에만 적용되었다고 한다. 이 칭호는 로마 영토 내의 자치 도시를 책임지는 행정 장관을 가리킨다. 로마는 데살로니가를 식민지가 아닌 자유 도시로서 인정하여, A.D.1세기에는 다섯 명의 읍장들이 이 도시를 다스리게 했고 그후 2세기에는 읍장이 6명이 되도록 늘렸다. 천하를 어지럽게 - 당시 '천하'라고 하는 말은 곧 로마 제국 전체를 가리켰다(눅2:1). 따라서 본문은 로마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로마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야손이나 바울은 정치적인 죄목으로 고소를 당한 셈이다.

=====17:7
 들였도다 - 헬라어 '휘포데데크타이'는 원형 '휘포데코마이'(* )의 현재 완료형으로서 '손님으로 영접하다'는 뜻이다. 이는 야손이 로마제국을 어지럽게 하는 범죄자들과 하나가 되어 죄를 지었으며, 또 야손의 음모로 그의 집에서 작당(作黨)하여 범죄했다는 암시를 내포한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 여기서 가이사의 명은 가이사 율리우스(Julius Caesar)의 '황제의 법령'을 뜻한다. 여기에는 황제에 대한 반역과 로마제국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에 대한 처벌이 명시되어 있고 제국 내 모든곳에 적용되었다.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반역이었다. 유대인들은 모의 끝에 가장 큰 죄인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 중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한 것을 빌미로 로마에 반역하여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임금을 세웠다고 모함했을지도 모른다(14:22;19:8;20:25;28:23,31). 그리고 이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그의 서신들에서 사람들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왕국'이라든가 '임금'이란 말을 가능한 회피했을 수도 있다(R.N.Longenecker). 그렇지만 예수께서 로마제국을 초월하여 메시야로서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통치자가 되심은 분명한 사실이다.

=====17:8
 무리와 읍장들이...소동하여 - 그리스도인들이 가이사에게 반역했다는 소리가 다른 무리에게 전해지고 읍장들에게 고해지자 이 소란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억울한 누명에 대해서 야손과 그 일행은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으며 그들을 위해 증언해 줄 바울과 실라도 그곳에 없어서 읍장들의 처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읍장들은 이러한 고소에 대해 성의없는 반을을 보이면 그들 역시 반역 공모죄를 범하는 결과를 낳게 됨으로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만 했다.

=====17:9
 보(保)를 받고 놓으니라 - 법정 용어로서 판결이 명한 보석금을 받고 석방했다는 말이다. 야손과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이의를 제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다시 들어가지 아니하였다는 것과 유대인들이 야손의 집에서 바울 일행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야손 일행은 이후로 바울의 일행을 도시내에 다시 들이지 않겠으며 접촉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보석금을 지불하는 정도로 충분히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면서 겪는 어려움이지 야손과 그의 일행의 보석금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D.E.Haenchen). 한편 살전 2:18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가고자 하나 '사단이 막음'으로 해서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한 말이며 특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야손과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의 안전을 염려한 사랑의 배려 때문이다(J.W.Packer).

=====17:10
 밤에 형제들이 - 읍장들이 보석금을 받고 조건부적으로 야손의 일행을 석방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바울일행의 데살로니가 체류는 양측 모두에게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야손이 읍장들에게 끌려갔을 때 아마 바울일행은 데살로니가의 어느 비밀장소에 숨어 있었을 것이고 낮보다는 다소 안전한 밤이 되서야 소수의 새로운 개심자들의 길 안내로 데살로니가를 떠날수 있었을 것이다. 베뢰아 - 데살로니가 남서쪽 약 80km 지점, 마게도냐 평원 남쪽 올림푸스 산맥 기슭의 조그마한 언덕에 위치했다. 당시 이 도시에는 많은 인구가 살고 있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17:11
 더 신사적이어서 - '더 신사적'의 헬라어 '유게네스'(* )는 비교급의 형태로서 '가문이 좋은', '출신이 좋은', '고귀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베뢰아 사람들이 모두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귀족 출신이라는 말이 아니라 진리 앞에서 편견 없이 객관적 자세를 나타내 보였고 또 깨끗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 파세스 프로뒤미아스) - '프로뒤미아스'는 '열심히', '자신해서', '준비된' 등의 뜻이며 '파세스'는 '모든'이란 뜻으로 베뢰아 사람들은 모든 준비된 마음과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열심을 다하여 말씀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말씀은 준비된 마음 밭에 떨어졌을 때 좋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마13:3-8).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상고하다'의 헬라어 '아나크리노'(* )는 '자세하게 골라내다', '체를 쳐서 가려내다', '탐색하다', '조사하다'는 등의 뜻을 내포한다. 이는 종종 사법적 심문(審問)과 관계되어 사용되었으나 여기서는 베뢰아 사람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열심을 다해 구약성경을 자세히 읽고 살펴 그 본의를 다시금 잘 새겼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구약성경을 통하여 얻은 지식과 헬라의 철학사상, 그리고 그들의 생활체험 등을 바탕으로 바울의 설교를 깊이 비고 검토하여 복음을 진리로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17:12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 - 상류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미쳤던 헬라인들을 가리킨다. 그 중에는 유대교로 개종했던 이방인들과 이교도를 믿던 사람들도 다소 있었을 것이다. 복음은 헬라인과 유대인의 구별없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보여주는 구절이다(롬1:16). 한편 바울의 아시아 여행에 동반했던 부로의 아들 '소바더'도(20:4) 이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소동케 하거늘 - 베뢰아에서 선교활동의 소식이 데살로니가의 사악한 유대인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베뢰아까지 달려왔다. 이들은 똑같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이 소동의 무리에 베뢰아 사람들이 가담하였다는 언급이 없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는 바울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않은 베뢰아의 유대인들이 적어도 바울 일행에 대해 적의(適意)를 나타내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17:14
 바울을...바다까지 가게 하되...거기 유하더라 - 데살로니가에서 온 유대인들의 소동으로 인하여 베뢰아 도시 안에 안전하게 거할 곳이 없어진 바울은 그곳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으로 신속하게 베뢰아를 떠난다. 바울이 바다로 나가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 밝혀져 있지 않으나 아마도 메돈(Methone)이나 디움(Dium)이나 피드나(Pydna)로 갔을 것이다(Longenecker, Lenski). 그리고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보다는 다소 위험이 적다고 판단되었던지 베뢰아에 계속 체류하여 아직은 성장이 미약한 그곳 교회를 보살폈던 것 같다.

=====17:15
 바울을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 바울이 다른 곳을 두고 하필 아덴으로 갔던 이유는 이곳에 언급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아덴이 베뢰아에서 가장 가까운 선교 장소여서인지(Haenchen), 아니면 마게도냐가 안전해지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선교활동을 계속하려고 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마게도냐의 대부분을 여행했기 때문에 새로운 선교장소를 택해야 했고 그래서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아덴을 선택해 그곳을 찾아갔던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가장 좋을 듯하다(Lenski). 실라와 디모데를...속히 오게 하라 - 바울이 아덴으로 갔을 때 디모데가 베뢰아에 남아 어떤 일들을 했는지 구체적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의 행적을 서신서와 비교해 보면 다소 윤곽이 잡힌다. 바울은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난다(살전3:1). 그러나 바울은 다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송하고(살전3:2), 실라는 마게도냐(추측컨대 빌립보일 것이다)로 파송한다. 이 사이에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갔으며(18:1), 그곳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다시 만난다(18:5;살전3:6).

=====17:16
 아덴 - 아덴(Athens)은 에게해의 지류 샤론만에 위치하였으며 피라에우스(Piraeus)항구에서 약 8km 떨어진 내륙도시이다. 북쪽으로는 파르네스 산, 동쪽으로는 펜텔리쿠스 산, 남동쪽으로는 히멧투 산이 둘러싸고 있는 좁은 평지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아티카의 영웅 데세우스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아테네(Athene) 여신을 기념하기 위해 '아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페리클레스(B.C.495-239)에 의해 이 도시는 전성기를 맞아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사원과 건축물들이 건축되었다. 아울러 문학, 철학, 과학, 수사학 등이 꽃을 피웠으며 민주주의의 기초가 내려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펠로폰네수스 전쟁(B.C.431-404)으로 인하여 아덴은 빛을 잃었다. 그렇지만 그 문학적, 역사적 명성은 그대로 남아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바울이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는 찬란했던 옛 영광이 사그라든 뒤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명성만은 계속 지속되고 있던 터라 그 도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17:17헬라어
 원문에 나오는 '멘 운'(* )이란 말은 '따라서'라는 뜻으로 새로운 장면을 이끌어 내며 본 단락의 도입부분(16절)과 본론부분을 연결시켜 준다(17절 이하). 회당에서는 - 바울은 그의 규례대로 먼저 회당을 찾았다. 어떤 학자는 바울은 먼저 회당을 방문했다는 본문의 기록은 누가의 독특한 서술 양식에 따라 일부러 첨가된 것이라고 본다(Conzelmann). 그러나 바울의 습관을 고려하면 이는 오히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봄이 나을 것이다. 저자에서 - 아덴에는 다른 그리이스 도시들처럼 오직 하나의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상업과 웅변과 철학적 담론의 중심지였음은 물론 한가한 사람들이 소일(消日)을 위해 북적대는 곳이기도 하였다(Meyer). 한편 헨헨(Haenchen)은 이 시장이 아크로폴리스 북서쪽에 있는 옹기시장(* , 케라메이코스)으로서 아덴의 생활중심지였다고 설명한다. 변론하니(* , 디엘레게토) - 2절의 '강론하며'와 같은 뜻으로 바울이 회당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세히 증거하고 시장과 길거리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설파한 것을 나타낸다.

=====17:18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 - '에비구레오'는 '에피큐로스 학파'를 뜻하며, '스도이고'는 '스토아 학파'를 뜻한다. 쟁론할새 - 바울이 직업적인 철학자들과 함께 논쟁에 참여한 것을 나타낸다. 당시 아덴에는 직업적인 철학자들이 준비를 갖추고 논쟁에 참여할 목적으로 광장이나 거리에 나타나곤 하였다. 말장이(* , 스페르몰로고스) - 원래 곡식을 쪼아먹는 새를 뜻하였으나 후에 쓰레기를 주워모으는 사람을 가리켰으며, 점차 다른 사람들의 사상을 얻어 듣고 그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것인 양 도용(盜用)하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그리고는 이 말이 결국 변변치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게 되었다. 결국 여기서 이 말은 극단적인 조롱과 멸시의 의미로서 그 철학자들이 바울을 사기꾼이나 떠벌이 같은 인물로 보았다는 뜻이다.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 - 철학자들은 바울을 새로운 신들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같다. 당시 아덴에는 수많은 이방신들이 숭배되었고 또 그 신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철학자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를 한 이방신으로 생각했으며 '부활'(* , 아나타시스)이란 말을 예수란 신의 배우자인 여신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I.H.Marshall, Longenecker, Haenchen). 참고로 그리이스의 열 두 신을 도표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차례      헬라이름      로마이름          맡은일        성구
     1      제우스      쥬피터      천지창조      행14:12
     2      헤라      쥬노      생산.결혼    
     3      포세이돈      넵춘      바다    
     4      하데스      풀루토      음부    
     5      아레스      마즈      전쟁    
     6      헤르메즈      머큐리      상업      행14:12
     7      헤파이스      볼칸      대장간    
     8      아포로 대테      비너스      연애    
     9      아폴로      졸      음악.문예    
    10      아데미스      피아나      사냥      행19:27
    11      세레스          농업    
    12      미네르바          지식    
 

=====17:19
 아레오바고 - 이는 문자적으로 '법정' 또는 '아레스의 평의회'라는 뜻으로 주로 종교와 교육, 도덕적인 문제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하던 일종의 권력 기구였다. 바울 당시 시의 모든 행정관들은 이 평의회의 구성원이었으며 면책(勉責) 특권을 누렸다. 한편 바울이 끌려간 아레오바고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아덴인들의 비공식적 집회를 가리킨다고 본다(Barnes). 이 견해는 바울의 연설투가 법정상의 변호와 거리가 멀고 또 재판 진행에 관한 어떤 암시도 없다는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반면에 이를, 바울의 가르침 내용을 심문하기 위해 열린 공식 법정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Hemer). 이 견해는 디오누시오라는 아레오바고 관원에 대한 언급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34절). 걸론적으로 이것이 반드시 법적 재판의 형식을 띤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적 집회의 성격임에는 분명하다고 봄이 무난할 듯하다.

=====17:20
 무슨 이상한 것을...알고자 하노라 - 표면적으로는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말로 보이지만 조롱 섞인 태도도 배제되지 않았다. 아울러 그들에게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헬라의 종교적 배경과 철학적 사고 체계에서는 바울의 가르침이 새롭고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따라서 바울에게서 더욱 자세한 내용과 그 배경 등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헬레니즘의 철학적 사고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려고 한 철학자들의 노력 자체가 무모했다.

=====17:21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 이는 아덴 사람들의 호기심 많고도 경박한 생활 태도를 말해준다. 아덴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녔고, 새로운 것이라고 찾았을 때는 또 이내 식상(食傷)해 버렸다. 이에대해 B.C.5세기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클레온은 아덴 사람들을 소위 새로운 것이라고만 하면 가장 잘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었다(Thucydides, History). 이러한 피상적인 기질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은 새로운 면을 보고서 복음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내 낡은 것으로 여겨 내던져 버렸을 것이다.

=====17:22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 바울이 이 곳에 선 것은 죄인으로서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서나 혹은 철학자들 앞에서 철학을 강의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다만 바울은 주어진 모든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선포자로서 그곳에 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순간도 복음 증거자로서의 사명을 잃어버린 적이 없는 증 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 영역 성경 KJV는 이 부분을 '너무 미신적이다'(too sup-erstitious)라고 번역하고, NIV는 '매우 종교적이다'(very religious)라고 옮긴다.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종교성이 많다'고 한 것은 그들의 도시에 신전과 신상들이 많았던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바울의 이 말은 그들의 경건함이나 종교적인 성향에 대한 칭찬(Chrysostom)으로 이해되기 보다는 그들의 무분별한 미신적인 태도에 대한 비난으로 이해됨이 더 합당하다(Calvin, Luther).

=====17:23
 알지 못하는 신에게(* , 아그노스토 데오) - 이러한 유형의 비문을 증거하는 것들이 있는데, 2세기의 지리학자였던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팔레룸에서 아덴으로 가는 길에 '이름은 있고 알지 못하는 신들의 제단'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버가모에 있는 한 비문에도 '알지 못하는 신'이 새겨져 있다(Bruce, Longenecker, Blaiklock, Marshall, Meyer). 그러나 이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비문의 내용이나 비문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Longenecker, Haenchen). 이는 아덴 사람이 가진 신관의 한 유형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신들이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아직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들이 존재하리라는 생각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글을 새긴 단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하여 그 도시를 '알지 못하는 신'들의 저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종교심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Blaiklock). 바울은 이러한 헬라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즉 여느 때와 같이 유대의 역사를 언급하거나 구약성경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설교를 시작하지 않고 아덴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기초로 하여 그와 아덴사람들과의 접촉점을 마련하였다.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알게 하리라 -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접촉점으로서, '알지 못하는 신'을 언급하는데, 아덴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절대자를 표현하기 위한 것 같다. 바울은 이러한 '막연한 신관'을 가진 아덴 사람들에게 성경을 계시하고 있는 창조(24절), 구속(25-30절), 부활(31절)의 신관을 도입하여 제시하고 있다.

=====17:24
 우주와...만유를 지으신 신께서 - 하나님은 헬라의 많은 신들 중에 주신인 제우스처럼 여러 신 가운데 있는 신이 아니라 유일하신 분이시다. 아덴에는 약 30,000이 넘는 신들이 있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러한 신들 중에 하나로 포함하지 않도록 그분은 유일하신 분이시며 우주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명백히 했다. 이 세상에는 그 어느것도 스스로 존재하거나 다른 것들을 존재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또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과 관계없이 생겨난 것도 없고 그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분은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분으로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관여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신다.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 '손으로 지은 전'은 바울이 처해 있던 상황과 비교하여 본다면 쉽게 '파르테논 신전'이라고 떠올릴 수 있다. 파르테논 신전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하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지은 것이 틀림없다.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에 봉헌할 때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한 바 있다(왕상8:27).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국한될 수가 없으시다. 그분은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다. 아덴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국가와 또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과 사원 안에 수많은 신들을 소유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소유될 수 있는 분도 아니며 그러한 신들과 같은 부류와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 아덴 사람들은 신들의 항구한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는 인간들의 희생 제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신상에 음식을 갖다놓고 옷을 입히고 또 좋은 장소에 그 신상들을 안치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없는 분이심으로 인간의 희생 제사를 원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헌금과 헌물을 드린다 하여 더 많이 응답하거나 기뻐하시지도 않는다. 그분은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 우리의 도움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얻으실 수 있는 분이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하고 충만하사 자신 안에서 모든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을만큼 충족하신, 이른바 유복적 속성(有福的 屬性)을 지닌 분이기 때문이다(딤전1:11;6:15).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인간의 호흡을 한치도 연장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명과 호흡'의 주인이시다.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 아덴 사람들은 그들이 아티카(Attic)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반대하여 인류는 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한 혈통과 한 조상을 가진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다(Bruce, Longenecker). '한 혈통으로'(한글개역, KJV)라는 번역은 '여스 헤노스 하이마토스'(* )라고 되어 있는 후대의 사본들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 , A, B등)에서는 '하이마토스'(* )가 생략되어 있고 단지 '여스 헤노스'(* , 피)라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번역본들이 이를 따르는데(현대인의 성경, NASB, RSV, NIV 등), '한 사람으로부터'(from on 또는 from one man)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한 사람'은 아담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한데, 아담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인류의 하나됨이라는 사상은 바울 신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롬5:12-21;갈3:28). 이러한 하나됨은 죄로 인해 훼손되었지만, 구속으로 인해 회복되었다(Bruce).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아덴 사람들에게 성경적인 인간관을 피력하고 있다.
 연대를 정하시며...경계를 한하셨으니 - '연대를 정하셨다'는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정해주셨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또한 14:17에 근거하여 볼 때 계절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D.E.Haenchen). 본절은 24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알지 못하는 신'은 곧 하나님으로 창조주이시며, 그는 시간을 만드사, 사람을 시간의 흐름속에서 살게 하셨고 나아가 모든 민족들이 살 수 있는 공간적인 경계까지 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시편 기자와 모세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땅의 모든 경계를 정하셨으며 여름과 겨울을 이루셨나이다'라고 노래했다(시74:17). 또한 모세도 모든 민족들의 경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졌음을 교훈하고 있다(신32:8).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약성경에서 유래하는 사상에 근거하여 아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각 학파의 주장비교>
    에피큐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
     주창자    에피큐로스(EPICURUS)B.C341-2    제논(Zenon.B.C340-265)
70        
    이름의유래    주창자인 에피큐로스의 이름땅    제논이 아덴의 아고라 관장에
서늘 가르치던 장소가 장식회
랑(Paintedstos)이었던 데서
유래.
      주장    쾌락이 인생의 주된목표라고 주장.    우주속에 내재하며 인간삶의
이쾌락은 육욕적인 것이아니라 고    지침이 되는 원칙으로서의 이
통.육정.공포 죽음등에대한 염려에    성의 중요성을 강조함.엄격한
서 벗어난 마음의 평정 즉.아타락    금욕주의와 만물을 통찰한다
시아(ataraxia)를 뜻함       는 로고스론.최선을 다하는자
는 지위계급을 막론하고 칭송
을 받을것이라는 만민 동등주
의 .만인 형제사상을 주장함
      종교관    신들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으나    범신론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그신들이인간의 삶과는 전혀 관련    하나님을 세계정신이라고 생
성을 맺지않고.있다고하는 자연신    각함.    
교의 입장을 취함.     


=====17:27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 '더듬어 찾다'는 뜻의 헬라어 '프셀라파오'(* )는 '만지다', '느끼다'는 뜻으로 '소경이 무엇인가 열심히 더듬어 찾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영적으로 어두움의 상태에 놓여있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방황하는 것을 묘사한다. 아덴 사람들은 수많은 신들을 쫓아 다녔지만 그들로부터 영혼의 갈급함이나 구원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했다. 이들이 믿고 따르던 신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몰아 넣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범신론적 사상, 불가지론 또는 회의론 등은 오히려 하나님을 올바로 만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17:28
 그를 힘입어...기동하며 - 이 구절은 크레타(Creta)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i- des, B.C.6세기)의 4행시 '크레티카'(Cretica)에도 나온다.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 (Minos)가 그의 부친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당시 아덴인들에게 익숙했던 이야기를 통해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참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소생 - 이런 표현은 길리기아 시인 아라투스(Aratus, B.C.315-240)의 시 '패노메나'(Phaenomena)에 나온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클레안데스(Cleanthes, B.C.331- 233)의 시 '제우스에게 드리는 찬송'(Hymn to Zeus)에도 나타난다. 바울이 이곳 외에도 희랍의 시를 정확하게 몇 차례 인용한 사실로 미루어(고전15:33;딛1:12) 그는 희랍의 학문이나 문학에도 능숙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렇듯 바울은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與件)을 이미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희랍적인 지식들을 복음을 증거하는 도구로 사용했으며, 희랍 세계의 시를 인용하여 복음을 증거했지만 그의 메시지는 철저히 복음적이며 성경적이었다. 한편 24-28절의 바울의 설교는 다음과 같이 희랍의 철학적 사고와 비교된다+----+---------------------------+---------------------------------------------+
|     |                 바울의 설교 |                             헬라의 철학적 사고 |
+----+---------------------------+---------------------------------------------+
|     | (1)하나님은 한 분이다.       | (1)스토아 철학 : 범신론                         |
|     +---------------------------+---------------------------------------------+
|     | (2)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 (2)에피큐로스 철학 : 세상 만물은 영원전부터    |
|     |                            | 존재해 온 원자들의 우연한 집합.                |
|     +---------------------------+---------------------------------------------+
|     | (3)인류는 한 하나님에서      | (3)아덴 사람들은 아티카(Attica) 본토의           |
|     | 창조되었고 같은 조상을      | 흙에서 생겨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
|     | 가진 후손이다.               | 자부함.                                        |
|     +---------------------------+---------------------------------------------+
|     | (4)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 (4)에피큐로스 자연신론(deism) : 신은 인간의     |
|     | 삶을 섭리하신다.            | 일에 절대 관여하지 않음.                       |
|     +---------------------------+---------------------------------------------+
|     | (5)천지의 주재시다.          | (5)인간이 드리는 희생제사를 통하여 신들은       |
|     |                             |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또 한사람의       |
|     |                             | 손으로 신들을 새겨 만질 수 있다고 여김.         |
+----+---------------------------+---------------------------------------------+

=====17:29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여길 것이 아니니라 - 바울의 이 말은 스토아 철학(Stoicism)의 범신론적인 의미에서 한 것이 아니다. 스토아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에 의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고,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본성'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 그대로의 운명을 아는 사람이 현자(賢者)이고, 현자는 또한 신과 같은 자라고 한다. 이는 자연 그 자체를 신으로 보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성경적 신관, 인간관과는 배치된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용어인 '신의 소생'이라는 싯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셩경적인 인간론의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다(창1:26,27). 따라서 자연물(금, 은, 돌 따위)로 만들어 놓은 신들은 인간을 창조한 것도 아니고, 인간보다 뛰어난 신적인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논증의 독특함을 알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 말을 적절하게 인용하여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 바울의 설교는 하나님의 구속의 점진적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의 절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그의 설교는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선포와 절단에의 촉구로 옮겨가고 있다. '알지 못하던 시대'란 바울이 이미 루스드라에서 '지나간 세데'(14:16)라고 표현한 말로서 하나님의 계시가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 이전에 가리킨다.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의 헬라어 '휘페리돈'(* )은 '보지않다', '간과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생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며 또 심판보다는 가급적 회개의 때를 기다리는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우상 숭배 행위마저 참고 견디시며 자신을 자연을 통해 계속적으로 계시하셨다(14:16;롬3:25).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 복음의 메시지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신'이 아니다. '알지 못하는 신'은 그 정체가 드러났고 아울러 '알지 못하 던 시대'도 끝이 났다. 회개하라( ,메타노에인) - 이는 '메타노에오'(* )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서 계속적인 명령의 뜻을 내포한다. 이 회개는 삶의 태도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데 여기서는 아덴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그치고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혹자는 이 구절이 하나님의 용서와 이신득의(以信得義)를 가르치는 바울 사상에 걸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복음에도 회개에 대한 강조점이 여전히 나타난다(살전1:9,10).

=====17:31
 정하신 사람 -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자신을 '인자'로서 언급하신 것 같이(막14:41;눅17:24)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면서 아울러 온전한 인성(人性)을 지니고 세상에 오셨고 인류를 위해 죽고 부활하셨다. 본절에서 심판주를 '사람'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이 다소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심판주란 의례히 초월적 위엄과 권세를 지닌 분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계18:8). 그러나 이 표현은 후반절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이란 구절과 연결되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즉 본절은 인자의(죽으심과) 부활이 엄연히 역사적 사실이며 이는 곧 예수께서 심판주이심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바울의 설교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이 설교를 두고 한낱 철학적 강변 또는 자신의 지식과 언변에 대한 자랑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리거나 그의 아덴 사역이 실패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사실 바울이 아덴에서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거나 함께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바울은 아덴에서 분명한 성과를 보았다(34절). 바울은 자신의 화려한 사역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최고로 여기며(빌3:8)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모든 노력을 기운인다. 결국 바울의 아덴 사역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아울러 그의 이 설교는 결코 철학적 강변이 아니다. 이 설교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가 샛별같이 빛나고 있다.

======17:32
 저희가...기롱도 하고...다시 듣겠다 하니 - 부활이란 주제는 역시 아덴 사람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었으나, 몸의 부활에 관한 사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그들은 육체를 속되고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졌다(고전1:18). 시인 에스킬루스(Aeschy- lus, B.C.525-456)가 '사람이 일단 죽으면 티끌이 인간의 피를 빨아들이며 결코 부활은 없으리라'고 노래한 바 있듯이 본문의 아덴인들은 바울의 설교를 조롱과 비웃음으로 일축(一蹴)해 버리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단의 사람들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더욱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듣기를 요청했고 그들 중 몇몇은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17:33
 바울이...떠나매 - 바울의 설교는 대부분의 청중들에게는 거부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하지만 바울은 더이상 아레오바고 광장에 머무르기를 거절하였던 것 같다. 아마 바울은 공공장소에서 연설할 수 있는 자유나 권한이 있지 않았던 듯하며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그랬더라도 다행히 그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Haenchen).

=====17:34
 몇 사람이...믿으니 - 여기서는 세례를 주었다거나 예배를 드렸다거나, 또는 장로를 세원다는 등의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소수의 믿는 자들이 생겨났다고 하는 이 간략한 언급에는 이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결코 신자의 수가 많고 적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근거하고 있는가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아덴 선교의 복음의 씨를 심은 것이다. 디오누시오 - 이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후기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아덴의 첫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첫 개종자가 대개 그 지역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던 사실과(고전16:15,16) 조화를 이룬다.



  본장은 16장에 이어 소아시아와 유럽을 향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이  절정에  이른
시점에서 발생한 내용을 다루었다. 우리는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전에 바울의  세차
례에 걸친 전도 여행 가운데 2차 전도 여행이 중심을 이루며 그중에서도 본장에  수록
된 전도 내용이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고자 하는 '세계 선교'는 당시 세계의 중심인 남부  유럽
지방(그리이스, 로마 등)을 기독교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16:6-10) 이 지역으로의  복
음 진출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본장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바울의 전도 여행을 선교 지역에 따라 개략하면, 제1차 전도 여행(13:1-14:28)
은 소아시아 남부 지역을, 2차 전도 여행(15:36-18:22)은 소아시아 지역과 남부  유럽
지역을, 그리고 3차 전도 여행(18:23-21:16)은 1,2차 전도 여행시 복음이 씨앗을 뿌린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거니와 예루살렘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바울의 선교  지역을
본장에 기록된 바울 선교의 지역을 총괄하는 유럽이었다. 16장 강해에서 언급한  바거
니와 '유럽 선교'는 오늘날 유럽의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
을 한 바, 역사상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본장이 지니는 의의
를 깨닫게 해준다.
  한편 본장 자체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서는 본장의 문맥적 흐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본장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각기 상반된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이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이는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에 일어났던 일이기도 하거니
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성도들과, 복음을 대적한 결과 정죄받을 육에 속한  사
람들로 분리되는 것이다(고전 1:18). 이에 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복음을 대적하는 무리들. 본장에는 복음을 배척한 두 부류의  무리들이  등장한
다.
    (가) 유대인들이다. 바울은 그의 동족을 사랑하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도 항상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다. 본장에 열거된 바울의 사역지는 데살로니가
(1-9절), 베뢰아(10-15절), 그리고 아덴(16-34절)이었거니와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을
중심으로 이 지역들에 대한 선교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주변 지역들에 두루 흩어
져 살고 있었다. 예루살렘과 유대에 거주하는 히브리계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당한 바울
(9:19-30)은 이방인 선교의 와중에서도 흩어진 유대인들에게라도 복음을 증거하며  그
의 동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바울의 이 같은 의도는 항상 좌절당하고 말았
으니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오히려 바울의 복음 사역을 훼방하였다.  빌립
보에서 태형(笞刑)과 투옥(投獄)을 경험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그를 시기했던 유대
인들에게 핍박을 당하였고 베뢰아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 좇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괴로
움을 당했다(5,13절). 이렇게 소아시아와 유럽에서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바울은
후에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죄
목으로 고소당하기에 이른다(24:5). 결국 바울은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고난의 삶을 살으셨던 것처럼 핍박과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한편 우리는 유대인들의 핍박이 바울에게만 아니요 지역 교회에 대하여서도  지속적
으로 가해졌음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2:15,16;3:3을 보면 그곳의 교회는 유대
인들로부터 부단한 핍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이방인 중에도 있었다. 요컨대,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였을 때(16-34절) 스
토아 학파(Stoicism)와 에피큐로스주의(Epicurianism) 철학자들은 대부분이 복음에 대
해 기롱(譏弄)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인 편견과 나약한 결단력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유보하였다(32절).
  우리는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중 상당수가 지역 교회를 핍박한
사실을 데살로니가전서 2:14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사실상 인간은  하나님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중간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같으나 이 선택마저도 복음에 대한  불신
이요 궁극적으로는 적대적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다. 더러운 귀신이 역사하여 그  사람
의 마음을 점령하고 만다는 예수의 교훈(눅 11:24-26)은 그와 같은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
  결론적으로 복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중간이 없는 바, '긍정'이냐 아니면  '부정'
이냐 하는 두 개의 상반된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으며, '부정'의 반응을  나타
낸 무리들을 염두에 둘 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려는 사단의  간교
한 역사가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2)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 결실을 맺지 못하는 세 부류의
땅이 있는 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등 풍성한 열매를 맺는 좋은  땅도  있다(마
13:18-22).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 좋은 열매를 맺는 후자의 경우를 목격하는 것은  대
단한 위로와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대한 충심의 감사를 하게 된다.
  수많은 핍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소개하였고 믿음의 자
손들이 탄생하는 것을 보아 왔으니 그때마다 그가 가슴에 안은 상처와 수고는  한없는
기쁨으로 상쇄되었던 것이다. 본장에서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핍박과 본토 사람들의 반
대를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복음을 환영하는 사람들을 목격하였다. 예컨대,  데살로
니가에서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않은 귀부인이, 베뢰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詳考)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아덴에서 관원 디오
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복음이  선
포될 때에는 대적들로부터 온갖 훼방과 핍박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는 계속 확장되어가게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고 쫓
길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핍박자들의
살기 등등한 위세 앞에서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당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일관되
게 완수해 나가신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은 대적들의 위협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온  세
계를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했으니(마 28:18-20) 그들의 생사(生死)는 인간이  아
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까닭이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데살로니가 전도(1-9절),  베뢰아  전도(10-15절),  아덴  전도
(16-34절) 등 세 부분으로 나뉘거니와 여기 나오는 지명(地名)들의 지리적 위치에  대
해서는 16장 강해에 나오는 지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경로'를 참조하기로 하자.

  1. 데살로니가 전도(17:1-19)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서 마게도냐에서 가장 크고 번성한  도시였다.
특히 그곳은 내륙의 풍요로운 농경지를 동쪽으로 육로와 해로에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키케로(B.C.106-43)에 의해 '우리 영토의 심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따라서 바울과 실라는 이곳을 발칸 반도 전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보았던 것 같다.
  그들은 조금 전에 빌립보에 고초를 당하고서도 무려 160km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데
살로니가로 결사적으로 들어갔다(살전 2:2). 데살로니가에서도 부울은 "첫째는 유대인
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는 전도 규례대로(13:46;롬 1:16) 유대인의 회당을  방문
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핵심은 역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심판'이었
다(3절;살전 1:10). 본문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본서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는 주
로 '선포'와 '증거'의 형태를 띠었다.
  즉 사도 바울은 복음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절대적으로 진리로 선포함으로써  '귀있
는 자는 들으라'(마 11:15)는 식의 권위있는 태도를 보였으며, 결코 끝없는  변론으로
몰아가거나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히 깨닫고 겸손해마지 않은 인물이었다(딤전 1:15). 하지만 진리를
선포하고 지키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있는 능력을 나타
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메시지의 선포가 있은 후 바울의  의구심(疑懼心)을
품거나 논박하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변증을 하였고(18:19), 더욱 자세한  가르
침을   요하는   자들에게는   권고와   강론을   통해   진리를   설명해     나갔다
(13:43;19:8-10;24:25).
  한편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체재한 기간은 비교적 길어 보이는데(람세이는  A.D.50
년 12월경부터 51년 5월경까지로 봄), 체재하는 동안 그는 성도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
기 위해 직접 생업(生業)에 종사하였다(살전 2:8).

  * 신약성경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들. 성경은 물론 과거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가  아
니라 태초부터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영원한 구원 진리를 보여준 계시(啓示)의 말씀이
다. 하지만 그 계시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식으로 주어진 것은 아
니다.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역사의 전개와 함께 점점 더 명료하고  분명하게  전해진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역사를 반영한다. 이제 아래 제시되어 있는 고고학  자
료들과 성경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성경은 역사를 통하여 주어진 계시임을 발견하는 동
시에 성경은 과연 역사적 사실과도 정확히 부합(附合)하는 진리의 말씀임을 깨닫게 된
다. 이하 제시된 것 외에도 성경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는 무궁 무진하다는 사실과  아
울러 본서에서는 구약성경의 경우 주로 문서 자료를, 신약성경의 경우 주로 유적 자료
를 제시하였음을 밝혀둔다.

+------+--------------------------+--------------------------+-----------------+
| 지역 |       발 굴 물           |       발 굴 장 소        |  관 련 성 구    |
+------+--------------------------+--------------------------+-----------------+
|      | 헤롯 성전                | 예루살렘                 | 눅 1:9          |
|  이  | 헬롯의 겨울 궁전         | 여리고                   | 마 2:4          |
|      | 헤로디움(헤롯의 무덤)    | 베들레헴 근처            | 마 2:19         |
|      | 마사다                   | 사해의 남서쪽            | 눅 21:20        |
|  스  | 회당                     | 가버나움                 | 막 1:21         |
|      | 실로암 연못              | 예루살렘                 | 요 9:7          |
|      | 벱새다 연못              | 예루살렘                 | 요 5:2          |
|  라  | 빌라도 비문              | 가이사랴                 | 눅 3:1          |
|      | 비문:이방인의 성전 출입  | 예루살렘                 | 행 21:27-29     |
|      | 십자가에 못박힌 자의 유해| 예루살렘                 | 눅 23:33        |
|  엘  | 베드로의 집              | 가버나움                 | 마 8:14         |
|      | 야곱의 우물              | 나불루스                 | 요 4:5,6        |
+------+--------------------------+--------------------------+-----------------+
|      | 더베 비문                | 케르티 후익              | 행 14:20        |
|  소  | 서기오 바울의 비문       | 비시디아 안디옥          | 행 13:6,7       |
|      | 제우스 제단(사단의 위?)  | 버가모                   | 계 2:13         |
|  아  | B.C.4세기의 성벽         | 앗소                     | 행 20:13,14     |
|      | 아데미 신전과 제단       | 에베소                   | 행 19:27,28     |
|  시  | 에베소 극장              | 에베소                   | 행 19:29        |
|      | 은장색 가게              | 에베소                   | 행 19:24        |
|  아  | 아데미 신상              | 에베소                   | 행 19:35        |
+------+--------------------------+--------------------------+-----------------+
|      | 에라스도 비문            | 고린도                   | 롬 16:23        |
|      | 회당 비문                | 고린도                   | 행 18:4         |
|  그  | 고기 시장 비문           | 고린도                   | 고전 10:25      |
|      | 우상의 식당(아스클레피   | 고린도                   | 고전 8:10       |
|  리  | 우스와 데메테로 신전)    |                          |                 |
|      | 법정(베마)               | 고린도                   | 행 18:12        |
|  이  | 시장(베마)               | 빌립보                   | 행 16:19        |
|      | 경기용 출발문            | 이스드미아               | 고전 9:24,26    |
|  스  | 갈리오 비문              | 델피                     | 행 18:12        |
|      | 에그나티안 가도          | 카빌라(네압볼리), 빌립보,| 행 16:11,12;    |
|      |                          | 아볼로니아, 데살로니가   |    17:1         |
|      | 플라드크 비문            | 데살로니가               | 행 17:6         |
+------+--------------------------+--------------------------+-----------------+
|      | 아우구스투스 묘지        | 로마                     | 눅 2:1          |
|  이  | 마메티메 감옥            | 로마                     |딤후 1:16,17;2:9:|
|  탈  | 아비안 가도              | 브디올                   |4;6-8;행 28:13-16|
|  리  | 네로의 황금집            | 로마                     |행 25:10;벧전2:13|
|  아  | 디도의 아치문            | 로마                     | 눅 19:43,44;21:6|
|      |                          |                          | ,20             |
+------+--------------------------+--------------------------+-----------------+

  2. 베뢰아 전도(17:10-15)
  베뢰아는 마게도냐 평원 남쪽의 조그마한 언덕에 위치한 도시로서, 많은 인구가  거
주하고 있었지만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볼 때 그다지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다.  하
지만 베뢰인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신사적(紳士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커다란 전도의 열매를 맺었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는 커녕 복음을 전하는 사도를 극렬하게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대적  행위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본문에 부각된 양자(兩者)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유대인들의 극렬한 핍박 양상.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
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 그곳으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데
살로니가에서와 똑같은 소동을 일으켰다(13절). 이것은 마치 1차 전도 여행 때 비시디
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약 70km를 좇아와서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돌로 쳐 거의 죽게 하였던 사건을 재현(再現)한 듯하다(14:19).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의 거리는 약 80km로서 이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았지만,
그들은 바울의 복슴을 전한다는, 즉 나사렛 이단을 증거한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자신들의 생계 활동을 내버려두고 달려왔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디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여러 성읍들을 좇아다녔던  과
거 바울의 모습(9:1,2)이나 바울을 죽이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약 12km나 떨어진  가이
사랴까지 좇아간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모습(24:1)과 다를 바 없다. 복음에 대한  훼방
자요, 핍박자요, 폭행자로서 그들의 이 같은 그릇된 열정은 진리(眞理)에 대해 무지한
영적 암매 상태에 그 원인이 있다(딤전 1:13-16).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경계하고
먼저 척결(剔抉)해야 할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영적 무지일 것이다(엡 4:18).
  둘째, 베뢰아 교인들의 탁월한 신앙 자세. 같은 이방인 교인들이가 하더라도 베뢰아
교인들은 다른 교인들로부터 우수한 신앙 자세를 가졌고 그들의 복음에  대한  태도는
'신사적'이었다. 즉 그들은 마음이 숭고하고 고결하였다. 왜냐하면  베뢰아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진가(眞價)를 정치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기 보다는 성경
을 표준으로 알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시기나 알력으로  무조건
복음을 배격하지 않고 유수한 마음으로 복음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신앙을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확립하려고 했다.
  일찍이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은 메시야에 관해 예언을 하였고(마 1:18-25 주제 강해
'메시야 예언과 그 성취'참조) 이 예언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을 통해 구
체적으로 성취되었으니 베뢰아 교인들은 바울을 통해 들은 복음이 성경 말씀과 부합한
가의 여부를 실제적으로 비교, 연구하였던 것이다(11절).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
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만 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벧후
3:16).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초자연적 지혜로 기록되었으니(고전 2:6-16) 인간의
학설이나 지식 위에 신앙이 세워진다면 그것은 사상 누각(砂上樓閣)과 같이 위험할 것
이다.

  3. 아덴 전도(17:16-34)
  아덴은 B.C.5세기경 정치, 경제, 철학, 문학, 예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천란한  업
적을 이룩한 바 있는 도시이다. 바울이 아덴에 도착했을 때는 한때  찬란했던  영광이
사라진 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덴인들은 여전히 학문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
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특히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당시의  철
학 사조(哲學思潮)를 대표하였다고 볼 수 있다(18절).
  바울은 상황에 따라 유효 적절한 방법을 착안해 내어 아무쪼록 선교에 유익하게  한
다는 원칙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고전 9:22), 이러한 원칙은 본문의  설교에서도
나타난다. 즉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심과 철학에 대한 열정을 감안하여  거기서부
터 주제를 끌어내었다. 특히 그는 청중들 가운데 에피큐로스 철학자들과 스토아  철학
자들이 더러 있는 것을 알고서, 스토아 학파 시인인  아라투스(Aratus,B.C.315-240)의
'페노메나'(Phainomena)와 크레타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B.C.6C)의 4행 시
(詩) '크레티카'(Cretica) 등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진행시
켰다(28절). 아마 바울은 쾌락주의인 에피큐로스 철학보다는 다분히 윤리적이고  종교
적인 스토아 철학을 통해 청중들에게 접근해 가려고 생각한 듯하다. 본문에 기록된 바
울의 설교는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올바른 신관(神觀)을 정립한 부분이다(22-26절). 대개 아덴 사람들은  자신
들을 아티카(Attia) 본토의 흙에서 생겨났다고 여겼으며, 또한 이 사실을 그들만의 특
권인 양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에피큐로스 철학자들에 의하면, 세상  만물은  영원
전부터 존재해 왔던 원자(原子)들의 우연한 집합에 의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같
은 견해는 유물론 내지는 진화론과 다를 바 없으며 성경의 창조론과 정면으로  배치된
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을 세상 만물의 창조주요(창 14:19,22) 보존자(히 1:3)로 선
포함과 동시에 모든 인류를 한 아버지 안의 한 혈통으로 묘사함으로써(말 2:10)  아덴
인들의 자만심을 꺾어 버렸다.
  저속한 종교를 숭배하는 자들은, 신(神)에게도 거주할 집과 먹을 양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성전을 짓고 제물을 바친다. 그 당시 아덴에는 온갖 잡신들을 위한  신상(神
像)이나 신전들이 처처에 즐비해 있었으며, 아덴인들은 순전히 자신들의 종교심을  만
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신들을 섬긴 예가 허다하였던 것이다. 이를 감지한 바울은 하
나님의 독립성, 완전성, 자기 충족성, 무한성 등을 논함으로써, 인간의  패역한  생각
속에 자기 나름대로의 신들을 두려는 시도들을 묵살하고자 하였다.
  둘째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밝힌 부분이다(27,28절). 원래 하나님께서는  만
물과 인간을 지으실 때에 저마다의 위치한 존재 의의를 부여해 주셨다.  특히  인간은
생령(生靈)을 받은 존재로서(창 2:7)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섬기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바울의 논지는 비록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
에 놓여 있지만(엡 4: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재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연 계시를 통해
당신의 존재와 위엄을 계속적으로 선포하고 계시다는 것이다(롬 1:19,20).
  셋째는, 회개를 촉구한 부분이다(29-31절). 결론적으로 바울은 우상 숭배의  허탄함
을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구속주요 재림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
다.
  한편 본문에 수록된 설교는 아덴의 중심에 위치한 '아레오바고'(19절) 광장에서  행
하였기 때문에 일명 '아레오바고 설교'(22-31절)라고 불린다. 바울은  철학과  지식의
도시인 아덴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건지고자 이 섦를 행할 때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의 구속사적 계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아덴 사람들에게 친숙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바, '신의 존재에 대한 우주론적 증명'(comological argument of  the  existence  of
God)의 방식으로 설교를 진행하였다. 예컨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
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年代)를 정하시며 거주(居住)의  경계(境界)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26,27
절)라는 내용은 세계의 사물 가운데 나타나는 여러 특징들로부터 하나님을 유추해  나
가는 하나님 존재 증명의 방식과 궤를 같이 한다.
  아무튼 바울의 설교가 끝나자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데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이 일단 죽으면 티끌이 인간의 피를 빨아들이며 결코  부
활은 없으리라'고 노래한 시인 에스킬루스(Aeschylus,B.C.525-456)의  불신앙  사상이
에덴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덴에서의 이러한 체험을  통해
바울은 철학적 지식주의가 지니는 냉량함과 그 교만성을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골
2:8). 기독교는 궤상 공론(机上空論)을 위한 이론에 그치는 종교가 아니라  전언적(全
言的)이며 구체적인 삶의 체험을 중시하는 생명력 있는 종교이다. '신  존재  증명'에
관한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욥기 38장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 그릇된 신(神) 개념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유일 무이(唯一無二)하신 절대 주
권자이시며, 인격적이시며,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다(마 1:23;롬 9:19). 이러한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도 종교심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역사 이래로  사
람들은 다양한 '신 관념'(神觀念)들을 형성시켜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  네  가지를
간략히 소개하기로 하자.
  (1) 정령 신앙(精靈信仰,animism). 인간의 육체를 떠난 망령(亡靈)들이  떠돌아다니
며 인간 생활에 좋고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그 영혼들을 달래거나 숭배하는 신
앙을 가리키며, 샤며니즘(shamanism)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다신론(多神論,polytheism). 여러 신들의 존재를 신봉하는 것으로 그리이스  신
화에서 이에 관한 대표적인 예를 볼 수 있다. 대개 여러 신들은 영웅들이나 자연의 대
상들(행성이나 호수, 산 등)과 밀접한 관련되어 있다.
  (3) 범신론(汎神論,pantheism). 신(神)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종교적.철학적 혹은 예
술적인 사상체계이다. 대표자로는 스피노자(1932-1977)로서 그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 하나의 실체가 있다고 정의하면서, 하나님과 자연은 각각 독립 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실체에 대한 두 명칭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4) 이신론(理神論, deism). 17,18세기에 걸쳐 주로 영국 자유 사상가나 과학자들에
의해 제차된 바 있는 합리주의적 유신론(有神論)으로서 역사 속의 초자연적인 것들 일체를 배격하는 신(神)사상이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추월적 존재로서만  파악하며, 내재하셔서 인간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은 강력히 부인한다.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