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사도행전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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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사도들과 형제들이 - 이방인 선교에 대한 초대 교회의 논쟁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사도들과 형제들이 언급되는 것은 당시 교회 내에서 이방인 선교에 관한 논쟁이 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음을 반증해 준다. 여기서 언급된 `사도들'은 12사도를 가리키는 말이며, `형제들'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을 뜻하는 누가의 다양한 표현법 중 하나이다. 누가는 이 형제들을 `도를 좇는 사람'(9:2), `주의 성도'(9:13) `성도'(9:32,41)라고 다양하게 묘사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 `말씀을 받았다'란 말은 로넬료의 성령 체험 사건(10:44-46)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당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며칠 머물렀다는 점에서(10:48)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고넬료에 관한 소문이 예루살렘까지 퍼졌던 것으로 보인다. 본절은 이방인 선교에 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설명하기 위하여 시작되는 이야기의 발단이 된다.

=====11:2
할례자들이 - 이방인 선교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로서 `할례자'들이 언급되는데 이는 `할례받은 사람들'(* , 호이 에크 페리토메스)로서 유대인을 가리키는 일반적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할례자들은 개종한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무할례에 대하여 상당한 우월 의식을 갖고 있음은 무할례자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 편견에서 잘 입증된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으로서 모두 할례자였다는 점에서 볼 때 여기서는 막연하게 유대 기독교인을 지칭했다기 보다는 특별히 할례를 강조하거나 유대적 전통을 자랑하는 자들로서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던 자들(15:5)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이는 초기 기독교에서는 유대교의 우월감이 잔존하여 공동체 안에서 갈등적 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힐난하여 -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방인들과 함께 하였던 베드로의 행위에 대해, 할례자들은 단순히 문제점을 제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그것을 단죄(斷罪)하여 비난하는 차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는 `힐난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디아크리노'(* )가 단순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집요하게 따지는 것을 의미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11:3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 할례자들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이방인으로 언급되는 무할례자와의 식사에 관한 것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머무는 동안의 행적이 10장에서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베드로가 실제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함께 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할례자들의 힐란에 대해 직접 베드로가 변명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고넬료의 집에 며칠 머물면서 함께 식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할례자들이 무할례자들과 함께 식사한 것만을 이유로 베드로를 힐난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본절 이후 계속된 베드로의 변론 내용은 이방인에 대한 전도의 타당성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의 표현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사실에 대한 것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11:4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 비난하여 문제를 제기해 오는 할례자들을 대하는 베드로의 자세는 매우 장중(莊重)하고 권위있는 분위기를 풍겨주고 있다(Haenchen). 특히 본 구절에서 사용된 `설명하여'라는 단어 `여세티데토'(* )는 `선포하다'라는 뜻을 지닌 `에크티데미'(* )의 미완료 과거형으로서 어떤 변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목조목 분명하게 밝혀 선언하고자 하는 베드로의 의지가 암시되어 있다(A.T.Robertson).

=====11:5
내 앞까지 드리우거늘 - 10:11에서는 `땅에 드리웠더라'로 묘사되어 있다. 두 표현 다 내용물을 베드로가 볼 수 있게 광주리가 드리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두 가지 표현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11:6
들짐승 - `네 발 가진 것'에 대한 더 구체적인 묘사인 것 같다.

=====11:7
내게 이르되 - 10:13에서 이 구절은 생략되었다. 그 이유는 본 구절이 베드로의 직접적인 진술인 반면 10:13은 누가의 간접적인 묘사이기 때문이다.

=====11:8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 10:14에서는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니다'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표현상의 차이일 뿐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11:9
하늘로부터 내게 대답하되 - 10:15에서 이 표현은 생략되어 있다. 이는 베드로 자신에게 주어진 응답을 보다 구체적으로 성명해 주며 동시에 그 응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11:11
세 사람이 - 10:19에서 고넬료가 욥 바로 보낸 사람이 두명으로 진술되어 있으므로 본절과 숫자상의 모순이 발생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계수(計數)할 때 여자나 어린아이, 시종(노예 포함)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두 구절을 종합해 볼 때 두 사람을 수행하기 위해 시종도 함께 왔음을 알 수 있다(10:7).

=====11:12
이 여섯 형제 - 10:23에 베드로와 동행한 욥바의 형제는 두어 명이었다. 고넬료가 보낸 세 사람과, 베드로와 동행한 욥바의 두어 형제를 합치면 모두 여섯 명 정도 된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1절) 자기와 동행했던 사람 모두 데리고 갔던 것이 분명하다.

=====11:14
그가 너와 온 집의 네게 이르리라 - 10장에서 이 표현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본 구절은 천사에 의해 고넬료에게 주어진 내용을 요약하여 보다 강조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10장 가운데서는 생략되었으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도착하여 고넬료로부터 들은 보다 자세한 이야기 중에 본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11: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 - 베드로의 증언에 의하면 고넬료의 일가와 친구들에게 성령이 임재한 때가 베드로 자신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된다. 그러나 10:34-44에 따르면 베드로의 설교가 한참 진행된 뒤거나 아니면 설교가 끝났을 때쯤이라고 언급된다(10:44 주석 참조). 여기서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이 임한 시점에 차이가 생긴다. 이에 대해서 다음 두 가지의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 (1) 혹자는 본문의 강조점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나타난 성령 강림 현상을 보여주는데 있다고 주장한다(Haenchen). 따라서 본문에서는 성령이 임한 시점이 언제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2)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할 때 이미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해서 설교가 끝날쯤에 오순절에 임했던 것과 같은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고넬료의 집에 있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이는 베드로의 설교 전체를 성령이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듣는 모든 사람들의 심령도 시종일관 주장하셨음을 가리킨다.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 10:47에서 베드로가 언급했던 말이 다시 반복되지만 여기서는 베드로가 `처음'(* , 엔 아르케)이라는 단어를 첨가시키고 있다. 즉 베드로와 사도들이 오순절(五旬節) 성령 강림을 체험했을 때를 가리키고 있다.

=====11:16
주의 말씀에 세례 받으리라 - 이 말은 10:47,48에서 베드로가 자신있게 이방인에 대한 세례 선언을 하게 된 숨겨진 배경을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가 기억해낸 주의 말씀은 1:5에 나오는 부활한 예수의 말씀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베드로는 자기 및 다른 형제들과 이방인의 성령 체험을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성령 체험을 예수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으로 언급함으로써 이방인의 구원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로써 베드로 자신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한 사실도 정당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10:47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바 있듯이 성령 세례가 기독교인 됨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권위있는 보증임을 말해주고 있다.

=====11:17
하나님이 주신 것과 같은 선물 - 베드로는 성령의 임재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로 이해하면서 이방인들도 사도된 자신들이 받았던 것과 동등한 선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됨을 선언하고 있다. 이는 예수가 체포되시기 전 하셨던 기도의 성취로도 이해된다(요 17:22).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 본문은 10:47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말과 비슷한 내용으로서 이방인을 기독교인으로 용납하고 세례를 베풀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형제됨을 인정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못박고 있다. 그리고 또한 베드로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만을 따름을 암시한다(5:29). 이러한 베드로의 선교 자세는 바울과 일치한다(갈 1:10).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 이 표현은 베드로에게 비난섞인 공격을 하였던 자들이 베드로의 설명에 아무런 이의(異意)를 제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베드로의 설명이 그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간접 묘사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 베드로에게 도전해 왔던 할례자들이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표현은 베드로가 계속하여 강조해 왔듯이 이방인에 대한 성령의 임재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행위이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동사 `돝사조'(* )는 일반적으로 `영광을 돌리다'로 번역되지만 `찬양하다'란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새로운 감격으로 다가왔기에 기쁨으로 그 뜻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 베드로가 언급했을 법한 결론적 이야기를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이 먼저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주신 구원의 의미에 대해 극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즉 이방인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음이 반대자들이었던 할례자들에 의해 선언됨으로써 초대 교회 안에 있어온 이견들이 통합되어 이방인 선교가 확실한 권위와 보증을 받게 되었다.

=====11:19
때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멘 운'(* )을 `때에'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때'로 번역될 경우 어떤 사건의 시점을 의미하므로 18절에서 언급된 사건과 시간적 연관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장을 접속하거나 이야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멘'(* )은 반의적(反意的) 의미를 연결하는 상관 접속사로서 `그러나' 또는 `한편' 등의 뜻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운'(* )은 앞에서 언급된 내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의미나 사건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그래서' 또는 `결국'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또 때에 따라서 `그러나'와 같은 반의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본절의 접속사는 앞의 사건과 시간적 연결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접속사로 이해하여야 한다. 여기서는 `한편'이라는 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 - 본 구절은 독자로 하여금 과거의 일을 회상하도록 촉구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배경을 설정하고 있다. 이는 스데반의 순교 후(7:54, 60) 교회에 닥친 박해(8:1-4)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9장에서는 박해의 손길이 유대땅이 아닌 다메섹까지 미쳤음이 나타나 있다. 박해의 범위가 타 지역(이방 지역)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가리킨다. 아마 이 같은 일련의 박해로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던 성도들은 이방나라로까지 이주했을 것이며 그곳에서 전도를 하다가 박해의 손길이 그곳까지 미치게 되자 또 다시 점점 더 멀리 흩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주의자들의 박해가 복음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역사한다. 베니게 -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서 갈멜산과 레바논산 사이에 위치했으며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는 두로와 시돈이라는 도시가 속해 있는데 이미 예수는 갈릴리 선교 당시 이 두 곳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그곳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준 바 있다(막 7:24-30). 따라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생소한 지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구브로 - 지중해 동북부에 위치하여 안디옥과 다소, 그리고 길리기아 지역과 마주하고 있는 섬으로 구약 시대에는 `깃딤'(민 24:24)이라고 불리어졌으며 오늘에는 `키프러스'(Cyprus)로 알려져 있다. 바나바는 이 섬 출신이며(4:36) 그곳에는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고 바울도 바나바가 함께 그곳에서
에 달하는 큰 도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지역의 위치상 안디옥은 동 서 문화가 혼합되어 상존했으며 전체 인구 중 1/7정도가 유대인들로 구성되었다. A.D.37-41년에는 갈리굴라(Caligula) 통치 아래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무서운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신약성경에서 안디옥은 외국 선교의 전진기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13:1-3)처음으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던 곳이며(11:26) 이방인 개종자의 할례 문제에 관한 논쟁이 처음있었던 곳이다(15:1,2;갈 2:11-21). 이와 같이 이방 지역 선교를 위한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던 안디옥 교회는 초기에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베드로에 의해 지도되었고 2세기에는 이그나타우스와 데오빌로, 3,4세기에는 루시안, 데오도르, 크리소스톰 등의 유명한 지도자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로마와 함께 중요한 신학적 본산(本産)이 되었다.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다는 본문의 의도는 1-3절에서 언급된 바처럼 유대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지금까지 이방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11:20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 구브로에 대해서는 19절 주석을 참조하라.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의 중심 도시로서 B.C.7세기경 설립되었으며 헬라 문화권에 속한 지역이다. 또한 이곳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시몬의 출신지이기도 하다(눅 23:26). 여기서 언급된 구레네 몇 사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선교 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의 배타적(排他的) 우월 의식을 버렸기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헬라인에게도 - 이 말은 19절에서 언급된 `유대인에게만'이라는 단어와 대립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즉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헬라인'을 뜻하는 헬라어 `헬레나스' 대신 `헬라파'라는 의미의 `헬레니스타스'(* )로 표현된 사본들이 있어(B, E, H, L, P)논란이 되고 있다. 즉 `헬레니스타스'라고 할 경우에는 `헬라화된 유대인' 또는 `헬라 지역에 사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기 때문에(6:1)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어느 사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헬레나스'(* )를 본문으로 인정한다(Alford, Chrysostom, Knowling, Bruce, Vincent).왜냐하면 헬라파 유대인은 19절의 `유대인'이라는 말 속에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을 굳이 `헬라인'이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헬라파로 구분할 때에는 `히브리파'와 대립하여 사용되는데(6:1) 여기서는 `유대인'과 (19절) 대립되어 사용된 점으로 보아 `이방인'을 지칭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에 `헬라인'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헬레니스타스'라고 언급한 사본들은 19절과의 대립적 묘사를 피하고, 뿐만 아니라 이방 선교가 바울의 활동 이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이방 선교에 대한 바울의 공로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수정했을 가능성이 높다(Haenchen). 주 예수를 전파하니 - 그들의 선교활동의 중심 내용은 예수가 `주님'임을 전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좀더 구체적으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다는 의미다.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 누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한다는 구약적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삼하 3:12). 누가는 이같은 구약적 표현을 통하여 그들의 이방 선교 활동이 구약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여 이방 전도의 정당성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본서의 일관된 내용이기도 하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 기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음을 표현하는 이 어투는 누가의 독특한 수사법이다(Haenchen). 이방인들이 `예수를 주로 믿고 돌아왔다'는 표현은 곧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지만 세례를 베풀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아직 교회가 조직되지 못한 상태이므로 세례는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1:22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8:14과 비슷한 이야기로 지방 교회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문을 듣고 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중앙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대표를 파견하게 된다. 사마리아에 파견되었던 대표는 요한과 베드로였으나 여기서는 바나바가 파견된다. 바나바는 구브로섬 출신으로서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으나 설교를 잘하여 바나바라는 이름이 주어졌다(4:36). 그는 자기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쳤으며(4:37) 회심한 바울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소개했던 장본인으로 안디옥 교회의 교사이기도 하다(13:1). 또한 아디옥 교회가 확장되자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 교회로 데리고 와 가르치게 하였으며(11:26) 바울의 선교 여행의 동역자로서 바울을 돕기도 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여 바울을 능가하는 능력을 인정받은 흔적이 있다(13:2;15:12)에서는 바울 이름보다 바나바 이름이 먼저 언급됨). 그는 마가를 선교 여행에 동행시킬 것인가에 관하여 바울이 반대하므로 바울과 결별을 하게 된다(15:36-39). 이처럼 그는 초기 기독교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했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안디옥에 바나바가 파송된 것에 대해 혹자는 당시 모든 사도들이 베드로처럼 선교 활동에 여념이 없어 예루살렘에 부재(不在)중이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Lenski). 그러나 헨헨(Hasnchen)은 바나바가 예루살렘에서 상당한 권한을 부여받아 안디옥 교회의 선교 활동을 합법화할 수 있는 전권을 행사했다고 본다.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했다면 그를 파송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부재중이었을 거라는 전자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가까운 구브로 사람이고, 고향 사람들이 안디옥에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을 할 때 그곳에 파송받는 데는 적격자였을 것이다. 아무튼 예루살렘 교회는 지방 교회를 공인하고 합법화하는 권한을 지닌 교회임을 여기서는 암시해 주고 있다(8:14 주석 참조).

=====11:23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는 21절에서 언급된 이방인의 개종 사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21절에서 많은 이방 사람들이 기독교인으로 들어오는 것이 `주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묘사했듯이 바나바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은혜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바나바가 `기뻐했다'는 말은 안디옥 교회의 선교 활동을 공인(公認)한다는 표현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 기독교인들을 기독교 공동체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굳은 마음으로 - 이 마음은 한 목적을 향해 흔들림이 없음을 뜻한다. `굳은'으로 번역된 `프로데세이'(* )는 본래 여러 사람 앞에 차려놓고 진열하는 것을 뜻하며(마 12:4;막 2:26;눅 6:4;히 9:2) 또한 `계획, 결의, 의지'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따라서 여러 사람 앞에서 맹세하듯 또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 주를 따르라는 말이다. 주께 붙어 있으라 - 이 말은 초기 기독교의 메시지로 예수를 삶의 중심이 되게 하라는 의미이다. 즉 예수가 모든 삶의 원리이며 기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모든 종교적 율법과 유대교적 전통들로부터 자유하여 예수에게로 돌아오고 오직 예수만을 규범으로 삼고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11:24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 - 바나바에 대한 누가의 평가라고 할 수 있는 본문은 바나바가 선언한 23절의 내용을 정당화하고 보증(保證)하기 위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즉 바나바가 안디옥에 있는 이방 기독교인을 인정한 것이 정당한 것임을 보증하고 나아가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한 것임을 암시하기 위한 누가의 의도이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 바나바의 안디옥 방문은 이방인들을 포함한 쇼회의 확장을 가속화시켰는데, 그 이유가 바나바의 착함과 성령이 충만한 믿음 때문임을 누가는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이에'라는 말은 헬라어 접속사 `호티'(* )를 번역한 말인데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원문에서 이 접속사는 본래 본절의 처음에 나와서 큰 무리가 주께 더 나오는 까닭을 말해주는 문장을 이끌고 있다. 따라서 본절 전체를 직역하면, `바나바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가 된다.

=====11:25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 9:30에서 사울이 다소로 보내진 사실이 언급된 후 처음으로 사울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가게 된 것은 환상 중에 받은 명령에 따른 것으로 사울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이유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2:17-21). 사울이 다소로 가서 머문 기간이 얼마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보인다(Haenchen, Ramsay). 왜냐하면 예루살렘 2차 방문이 14년만에 이루어졌다고 사울 스스로 밝히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갈 2:1) 안디옥에서의 1년을 빼면(26절), 약 13년 정도의 시간이 남기 때문이다. 바나바가 찾아간 다소는 안디옥에서 북서쪽으로 약 12.9Km의 거리에 위치한 길리기아의 중요한 도시로 무역이 성행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중계(中繼) 무역을 했으므로 헬라 철학을 비롯한 헬라 문화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곳은 사울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간 뚜렷한 이유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지만 안디옥 교회를 바나바 혼자 이끌 수 없었고, 대상이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이방인을 위해 부름받은(갈 1:16) 사울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바나바의 모습은 9:27의 내용과 함께 사울을 초대 교회의 중요한 사역자로 등장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인물로 묘사되었던 것이다.

=====11:26

일 년간 모여 있어 - 바나바와 사울이 협력하여 안디옥 교회에 사역하는 기간이 일 년으로 언급되는데 그 시기가 A.D. 43-44년경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Lenski),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여기서 `일 년간' 이란 표현은 아마 바울과 바나바가 부근의 일로 예루살렘을 향해 떠난 때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
제자들이 - 여기서 언급된 제자들이란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누가의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이며 이방 기독교인들과 유대 기독교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로 이해된다. 혹자는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과 그 성격은 비유대적인 것으로서 유대적 기독교와는 구별되는 이방적 기독교 공동체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Bickermann). 왜냐하면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안디옥에서 처음 붙여졌다는 점에서 유대 기도교와는 구준되는 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안디옥의 50만 인구 중 약 1/7 정도가 유대인이었으므로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 중에 유대인들이 포함되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 - 이 단어는 기독교인들에게 붙여진 고유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수치스럽고 간교한 것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라고 말한다. 에릭 피터슨(Erik Peterson)은 로마 당국에 의해 명명된 것으로서 유대교 안의 반정부적인 정치 집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가가 당시 친로마적이고 로마 정부에 호의적인 방식으로 본서를 기록했다는 개론적(槪論的) 이해와 모순되기 때문에 피터슨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Haenchen). 신약에서 세 번 언급되는(26:28;벧전 4:16) 이 말은 비기독교인에 의해 붙여졌다는 의미에서 경멸적인 별명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문에서 누가가 소개하는 어투를 보면 그렇기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사울과 같은 쟁쟁한 사람이 이끄는 기독교인에 대해 수치스러운 단어를 소개한다는 것은 문맥상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공동체로서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는 집단을 표현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 안디옥 교회는 타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음으로써 참으로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임을 인정받게 되고 그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교회의 설립에 대한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보즌받게 될 수 있었다. 당시 추종하는 대상의 이름을 따서 따르는 무리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에서(`헤롯당', 막 3:6)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에게 붙여진 지극히 당연한 칭호였다(11:19-26 주제 강해 `그리스도인'참조).따라서 이제 기독교는 안디옥에서 유대교와 전혀 구별되는 새롭고 독특한 종파로서 부각되었다. 한편 기독교가 유대교와 완전히 구분된 종파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는 다음 두 가지로 고려된다.(1) 로마 제국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박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유대교와 같은 합법적 종교가 아니라 신흥 종교(新興宗敎)로 구분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2) 구약성경과의 관계성에 관한 문제다. 즉 구약 시대의 구원사를 이해하는 데 유대교와 무관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이다. 사실 바울은 이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였고 유대교적 전통과 기독교를 조화있게 연결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Haenchen). 이런 점에서 당시 로마 당국자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sect)로 이해했다.

=====11:27
그 때에 - 앞에서 언급한 바나바와 사울의 활동 기간을(일 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황제는 글라우지오로 그는 A.D.41-54년까지 로마를 통치했다. 그의 통치에 대한 전승(傳承)에 의하면 그 기간 동안 로마 제국 내에 심한 기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의 고린도 전도 여행시에도 글라우디오가 아직 황제로 있었으며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한 것은 A.D.50-52년 사이에 이루어졌다(18:1,2). 그리고 12장에 언급된 헤롯이 죽은 시기는 A.D.44년 경이다. 만약 본서가 연대적인 순서를 철저히 따른 기록이라면 본 구절의 `그 때'는 A.D.44년을 넘지 않는다. 특히 12:25에서 언급된 대로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扶助)의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시점과 헤롯의 사망 시기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절은 A.D.44년경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흉년 이전의 어느 때를 가리킨다. 선지자들(* , 프로페타이) - 본서와 바울 서신에만 언급되고 있는(13:1;15:32;21:9,10;롬 12:6;고전 12:10;13:2,8;14:6;살전 5:20) 이들은 초대 기독교에서 영감있는 교사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성경에 관해 가르치고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을 하기도 하며(롬 12:6;고전 12:10) 사도 다음으로 중요한 직분으로 인정받았다(고전 12:28;엡 2:20;4:11). 예루살렘 이르니 -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오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28절에서 예언이 언급된 점으로 보아 흉년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흉년을 대비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이 안디옥을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당시에 있었던 헤롯의 박해(12:1)를 피해 이 곳을 찾았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11:28
아가보 -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아가보는 유대 출신 기독교인으로 보인다. 그는 두 가지를 예언한 것으로 본서에서 언급되는데 본문 외에 21:10, 11에서 사울의 투옥에 관하여 예언하였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성취되었다. 성령으로 말하되 - `말하되'로 번역된 `세마이노'(* )는 `표시하다',`지시하다',`알리다'의 뜻을 갖고 있는데 신탁(信託)을 전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Haenchen). 특히 이 동사의 명사형 `세메이온'(* )은 요한복음에서 `표적'으로 번역되었다. 이는 `세마이노'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을 나타냄을 암시한다.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 당시 개별 지역에 흉년이 들었다는 전승은 있으나 세계 전역은 아니었다. 특히 46-48년 사이에는 팔레스틴에 큰 기근이 있었지만 역시 세계적인 것은 아니었다(Haenchen). 누가는 당시 로마 제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지역을 `천하'라고 했다. 특히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 헌금한 점으로 비추어 보아 아가보가 예언한 흉년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극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본절의 흉년은 A.D.46-48년 사이에 있었던 팔레스틴 지역의 큰 흉년을 지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절의 흉년은 A.D.46년 이전과 관련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27절 주석을 참조하라. 글라우디오(Claudius) - 그는 헤롯 아그립바 1세(12:1)의 정치적 세력을 배경으로 등극하였다. 그는 초기에는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폈으나 말년에 가서는 유대인들의 종교 집회를 금지아였을뿐 아니라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시키기도 했다(18:2). 그리고 그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의 고소를 기각(棄却)시켰다(18:12). 또한 그는 황제 예배를 강요한 대표적인 로마 황제로 알려졌다. 그는 조모를 여신으로, 조부를 신으로 모시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 두게 하여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11:29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 유대에 사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기근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부조(扶助)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 )는 본래 `봉사'의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구제 헌금'의 의미로 예루살렘에서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기독교인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예루살렘을 위해 헌금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갈 2:10), 고린도 교회(고전 16:1),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롬 15:26)로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 즉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했다는 사실을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시사해 주는 것이다(F.F.Bruce). 이방 교회 역시 독립된 교회로서의 위치가 확인될 뿐만 아니라 유대 교회와 동일한 기독교 공동체로서 인정된 것이다. 이제는 유대와 이방인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와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짓는 배타적 분리주의도 없어졌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유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11:30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 안디옥 교회가 헌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대표로 사울과 바나바가 언급된다. `손으로'라는 말은 `통해'라는 단순한 의미로 70인역에 자주 사용되었다(Haenchen). 그러나 여기서 누가는 단순히 전달된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전달자인 바나바와 사울을 강조하여 안디옥 교회의 대표성을 바나바와 사울에 두었다. 이는 이방 교회의 대표로서 바나바와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가 받아들인다면 곧 이방 쇼회가 실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공인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안디옥 교회에서 보내는 헌금의 수령자(受領者)가 장로로 언급됨으로써 처음으로 신약적인 의미의 장로라는 직분이 나타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로란 생소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장로와 신약 시대의 장로는 차이점이 있다. 구약 시대의 `장로'는 성읍의 정신적, 행정적 지도자로서 백성들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재판관 노릇을 하여 공의를 확립하였다. 이 외에도 장로는 사회 기강을 확립하는 제반 업무 및 중요한 정치, 종교, 사법적인 일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간혹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수 8:10;삼상 4:3).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신 21:1-6 주제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을 참조하라. 신약 시대에는 `장로'가 목회 임무를 수행하며(벧전 5:1-4;약 5:14) 가르치며 권면하는 일도 행했다. 일반적으로 사도들은 교회를 개척한 후 그 교회의 대표자로 `장로'를 세웠다. 그런데 `장로'란 말이 간혹 사도들에게도 적용되기도 했다(벧전 5:1;요이 1절; 요삼 1절). 그리고 이 직분은 초대 교회 당시 `감독'의 직분과 별 구분이 없었으나 후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에 의해 장로직과 감독직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장로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6:1-6 주제 강해 `교회의 직분'을 참조하라. 아무튼 본절에 언급된 `장로'가 사도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6장에서 언급된 일곱 집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누가는 본서에서 사도들을 장로로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장로와 사도가 동일시 될 수 없다. 누가는 구제를 위해 선출된 집사에게 장로라는 직함을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본장은 전장(前章)에 수록된 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 사건의 결과적 내용이자 13장에
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하는 바울의 이방 선교의 서론적 내용이라 하겠다. 즉 고넬료
의 회심 사건은 이방 선교라는 획기적 사건의 시작인 동시에 유대인 성도와 이방 성도
간의 불협화음이 대두되게 하였고(1-18절), 바나바와 합세한 바울의 사역에 의하여 견
고한 터를 잡게 된 안디옥 교회의 건립은 장차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주역으
로 활동할 사도 바울의 입지(立地)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19-30절).
전반적으로 본장의 내용은 이방 선교를 향한 새로운 선교의 방향이 점차 구체화되어
가는 일련의 전초적 과정들을 담고 있다. 장차 이방 선교의 전진 기지로 중요한 일익
을 담당할 안디옥 교회의 설립은 물론,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확인
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계 신자들의 사상적 전환 역시 이방 선교 사역이라는 구심점
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
을 맞추어 보자.
(1) 이방 선교에 착수한 예루살렘 교회. 고넬료가 회개하며 성령을 받은 사건(10장)
은 복음이 로마 제국으로 침투하는 진보적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
사건은 유대인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방인에게까지 복음
사역의 영역을 확장시키셨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방인에 대한 전도를 정당화시키고 있
다. 베드로의 보고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계 신자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와
관계 없이 직접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자가 되었음을 인식하였다.
이 과정에는 민족주의적이며 배타적인 유대인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주권자 하나님
의 강력하신 구원 섭리에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고넬료의 성령받음을 보고받은 예루
살렘 교회가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 신자들을 위하여 선교사로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이방인이라는 새로운 선교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주께서 명령하신 복음의 확장
을 실천하는 초대 교회의 순종하는 신앙을 보여준다 하겠다.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감정을 극복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복음의 진보를
위한 인간의 수고와 노력의 배후에 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작용함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온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십자가의 희생
양이 되게 하셨고 당신의 자녀들을 일꾼삼으사 부족한 자들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
신다.
(2) 선교 사역의 주역 이양(移讓). 본장 전체에 부각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
방 선교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사실 이외에 바울이 선교 사역의 현장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본장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서, 이
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 최초로 선교 활동을 편 바울에게로 선교 사역의 중심이 이
양(移讓)되는 모습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여는 데 쓰임받은
도구는 베드로였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적극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한 이는
바울이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은 13장에서부터 전개되고 있거니와, 본장은 바울
이 안디옥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함과 동시에 안디옥 교회의 부조
금(扶助金)을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에게 전하는 전달자가 됨으로써 장차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되는 명실 상부한 선교사가 되는 여건이 조성됨을 부각시키고 있다. 바
야흐로 바울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활동할 이방 선교의 때가 도래한 것이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1-18절)은 10장에 기록된 이방
인 고넬료의 회심 사건에 대하여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한 내용이며, 둘째 부
분(19-26절)은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되는 내용이다. 그리고 셋째 부
분(27-30절)에서는 안디옥 교회가 구호금을 모금하여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장면이 수록되어 있다.

1. 베드로의 보고(11:1-8)
본문에는 아직도 복음을 유대교적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힐난
(詰難)과 이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이 전개되어 있다. 본서에 고넬료의 회심 기사가 거
듭 강조하여 기록된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여기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누가는 고넬료의 회심을 '복음의 확장' 뿐만 아니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반응' 때
문에도 중요한 사건으로 지목하였던 것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거의가 유대인이었고 더구나 그 중에는 본문에 나오는 바와 같
이 율법에 엄격한 자도 많았다. 따라서 자칫하면 기독교를 유대교의 연장 정도로만 여
기고 이방인들을 배격해 버릴 우려가 다분히 잠재해 있었다. 할례자들의 힐난에 대해
베드로는 실제로 발생했던 사실만을 순서적으로 그리고 확신있게 설명해 줌으로써 유
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오해를 불식(拂拭)시켰거니와, 여기서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편견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 보고자 한다.
본문에 드러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편견은 베드로의 변론으로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다시 15장에 이르러 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본 단락에서 예루살
렘 교회의 성도들을 설득하는 입장에 있던 베드로 역시 상당 기간 동안 유대주의적 사
고 방식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베드로는 이방인 형제들과 함
께 식사하던 일을 두려워하다가 면박을 당하기까지 했다(갈 2:11-14). 그리고 이방인
의 사도로 불림을 받았던 바나바와 초대 교회의 정신적 기둥인 야고보까지도 유대주의
적 편견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갈 2:11-14).
이로써 우리는 본 단락이 10장의 내용을 재차 반복하는 이유와 예루살렘 교회의 유
대주의적 전통에 집착하는 비복음적 경향으로 인한 잠재적 갈등을 확인할 수 있다. 하
나님께서는 이같은 폐쇄적 사고 방식의 껍질을 깨기 위해서 특별한 방법들을 동원하셨
거니와 10장에 나타난 베드로의 환상과 본문에 부각된 그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고넬
료 회심 사건에 대한 승복(承服)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련의 이러한 과정들은 갈등과
갈등의 극복이라는 구조로 도식화할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갈등의 구조.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의 수납 과정에서 예수의 복
음과 모세의 율법과의 형식적인 조화를 꾀하는 유대주의적 기독교를 추구하고자 하였
다(15장). 이들은 비록 복음을 영접하더라도 모세의 명한 바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구
원을 받을 수 없는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와 같은 유대계 기독교인의 비복음적 주장들
은 초기 이방 선교를 집요하게 방해하는 암적 요소로 작용하였다. 본문에 제기되는 갈
등도 이 유대주의적 기독교의 맥락에서 파악된다. 즉 할례자인 베드로가 무할례자인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함께 나눈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2절). 이런 기적들은
그 당시 몇몇 소수의 보수주의자의 의견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전반적 경향이었음
을 보여준다(1절).
(2) 갈등의 극복. 유대교 기독교인들의 편협함과 보수적 성격은 하루 아침에 변화될
수 없었다. 그들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遺傳的) 습
성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족함 때문에 당신의 역사
를 포기하시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할 뿐, 그
들의 편협한 생각으로 원대한 선교의 계획이 좌절될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의 회심 사건을 통해 그들에게 새로운 선교의 비전을 제시하셨
고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베드로의 변론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크
신 경륜(經綸)에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직접.간접적으로 개입하심으로
유대계 기독교인들의 갈등은 극복되고 복음에 대한 그들의 소극적 자세는 새로운 일꾼
의 적극적 자세로 바뀌어 새로운 선교사의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

*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성. 교회사를 통틀어 초대 예루살렘 교회만큼 교회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예는 드물 것이다. 친교와 예배 그리고 상부 상조의 정신은 지금도 추구
해야만 하는 참 교회의 역사적 전형이다. 성도들간의 교제와 부재와 공동체적 의식의
박약(薄弱)으로 인한 현대 교회의 척박한 토양을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대 교회의
역사적인 실례를 회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담고 있을 정도로 모범적이었다. 사도 바울이 평생에 걸친 선교 여행이
끝날 때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던 사실도 이런 점에 기인한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경과함에 따라, 예루살렘 교회의 교인들은 점차 보수적인 경향
을 띠게 된다. 이 경직된 보수성이 진리 수호를 위한 것이라면 권장할 만한 것이지만,
이것인 인습과 전통에 기인한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일 때는 문제가 다르다. 이들의
보수성은 유대교적 전통에 관련되는 것이며, 그 여파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혐오감 내
지는 소극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가령 그들의 유대교적 전통에 의하면 이방인 선교는 모든 유대인의 영접 이후에나
있음직한 일이었다. 또한 이방인들과 상면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이런 편견들은
그들이 예수를 영접했지만, 아직도 유대교의 잔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더구
나 복음을 유대교의 일부로서 이해하려는 그들의 경향은 점차 농후해졌다. 물론 회당
이 기독교 선교의 거점이 되기는 했지만, 예루살렘 교인들의 회당에서 자주 모였다는
사실도 그들의 유대적 전통에 대한 보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예루살렘 교인들의 보수성은 바울의 이방 선교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이들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큰 호감을 가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바울이 할례와 모세의 율법의 명한 바를 폐기 처분한 데 대해 반감을 갖고 있
었다. 이에 그들은 바울이 개척한 이방 교회에 내려가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모세의
율법 준수와 할례 실시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15장;갈
3:1-3;4:9,10).
이상과 같은 사실들에서 보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보수성은 유대교적 전통에 대한 집
착으로써, 바울은 이런 경향을 '다른 복음'으로 지칭하면서 저주를 퍼붓고 있다(갈
1:7,8). 교회의 보수성은 진리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교회의 생명은 인습과 전통 그
리고 편견에서의 탈피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개방에 있다고 하겠다. 이런 모습을 견
지할 때 교회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선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안디옥 교회의 설립(11:19-26)
12장에 나오는 야고보의 순교 및 베드로의 투옥 사건은 본장 18절에 계속 이어지는
부분이다. 이 사이에 누가가 본문을 삽입한 것은 나름대로 크게 의도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예루살렘 내부에서도 중요한 사건들의 전개되고 있었지만, 이방 세계에
서도 본격적 이방 전도의 때가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여 무르익어 있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히 박해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8:4) 안디옥에 이르러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사실은 독특한 의미가 있다. 빌립에 의해 전도받은 사마리아인들은 반(半)유
대, 반(半)이방에 속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베드로에 의해서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 고
넬료 또한 이방인이었으나 유대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던 자였다(10:2).
반면 안디옥에서 전도받은 자들은 소위 '순수한 이방인들'로서 최초로 복음과 접촉
한 자들이라 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바울의 활약이 안디옥 교회를 거점으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우리는 안디옥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의도를 짐
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를 설립케 하심으로써 유대적 요소와 전혀 무
관한 순수 기독 교회를 통하여 이방 선교가 용이하게 이루어지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선교 역사상 최초의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중요성을 알 수 있
거니와, 본문에 나오는 이 교회의 세부적 설립 과정을 고찰하는 것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발단. 안디옥 교회 설립의 직접적인 발단은 본서 8장의 언급대로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본격화된 '핍박'에서 그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이 핍박은 주로 헬라파 유대
인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보이며,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익명의 전도자
역시 핍박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들인 것으로 사료된다(19,20절). 이처럼 핍박의 일차
적 대성이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까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그 중에서
두 가지 주요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아직까지 기독교가 유대교의 종파로 간주되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헬라파
신자들의 신앙이 히브리파 신자들의 신앙에 비해 반유대교적 경향을 짙게 띠었다는 점
이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스데반의 변증적 설교(6:8-7:60)에는 성전과 모세의 율법
을 과감히 거부하는 내용이 설파되고 있거니와 이런 스데반의 반유대교적 신앙은 당시
히브리파 기독교인의 율법관과(15:5)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때문에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은 대체로 율법을 준수했던 히브리파 기독교인들보다 헬라파 기독교인들에게 더욱
집중적으로 가해졌던 것이다.
둘째는, 이방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경륜이라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대
로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죄악시했
을 정도이다.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를 만난 사건을 두고 히브리파 교인들이 비난
한 사실(1-3절)은 그와 같은 예를 보여준다. 이런 차제에 가령 핍박이 히브리파 기독
교인들에게 가해졌다 하더라도 필경 그들은 이방인 지역에 가서도 복음 전도에 소홀했
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개방적인 헬라파 기독교인들에게 이방 선교의 책임을
맡겼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쨋든 일들 헬라파 기독교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
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 설립의 계기가 되었고, 이 교회
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선교 진출의 근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2) 전개. 이방인들이 집단적으로 복음을 영접했다는 소식은 예루살렘 교회로서는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비록 그들은 이방인 고넬료의 회심을 통해서
이방인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유대인의 우선적인 구원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디옥에서 들려오는 소문을 확인할 필요를 느꼈고, 이
임무를 위해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의 파견으로
인해 오히려 새로운 국면을 돌입했던 바, 그것은 다름아닌 영적.물적 부흥의 도래였
다. 바나바로 인해 안디옥 교회는 괄목할만한 부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바울과의 협동
목회로 인해 영적으로 든든히 서게 되었다(26절).
(3) 결과. 오늘날 성도들을 지칭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안디옥 교인들에게
서 유래된다. 바나바와 바울의 협동 목회는 안디옥 교회의 물적 부흥과 영적 부흥을
동시에 일으켰거니와 그들이 세인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영적 부흥의 증거가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을
지니며, 이 말은 유대인이나 성도들에게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서
로를 '형제'(15:32;고전 15:6)나 '성도들'(고전 1:2;살전 3:13)이라고 불렀고, 유대인
들은 주로 '나사렛 이단'(24:5). '도를 좇는 자'(9:2) 등으로 불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안디옥의 기독교 신자들에게서 유래되었으며, 이
것은 안디옥의 성도들이 열심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했음을 말해준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본문 주제 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한편 본문에 나타난 안디옥 교회의 성립 과정을 통해서 역사적인 아이러니(irony)를
발견하게 되는 바, 그것은 바울의 역할 전환이다.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역시
같은 헬라파 유대인인 스데반을 처형하는데 일조를 하였고(7:58), 그 결과 많은 헬라
파 유대인들이 핍박을 피하여 베니게와 구브로를 지나 안디옥에까지 흩어지게 되었다
(19절). 여기서 이방인들의 집단적인 개종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에 헬라파 교회는 헬
라파 유대인인 바나바(4:36)를 파견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안디옥 사람들의 개종이 하
나님의 역사임을 확인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을 초빙하여 함께 공동 목회를
하였다.
이 같은 사실에서 바울의 역할 전환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회심 전의 그는 교인
들을 핍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었고,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무명의 전도자들은 사울의 핍박을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
울은 비록 자신의 의도에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안디옥 교회 설립에 있어 간접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디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이후 안디
옥 교회의 목회에 바나바와 더불어 전적으로 가담함으로써 안디옥 교회가 진실한 성장
을 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결론적으로 디메섹 도상의 회심 전후에서 확인되는 사도 바울의 극단의 열심은 안디
옥 교회 설립에 있어서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하나님
의 경륜과 지혜가 인간의 예측과 지혜를 능가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같은 하나님의 경
륜이 역사의 아이러니로 나타났음을 보게 된다.

* 그리스도인.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스티아노스'(* )는
원래 라틴어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에서 유래되었다. '크리스티아누스'의 어
미 '아누스'(-anus)는 경멸어가 아니라 단지 서술적인 평범한 라틴어이다. 오히려 이
는 어느 한 집단에 속한 충성스런 무리들을 명명할 때 사용되었다. 예컨대, '헤롯당'
으로 번역된 '헤로디안'(Herodian)은 헤롯 가(家)의 추종자들을 가리키며 '가에사리아
니'(Caesariani)는 가이사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이란 명칭
은 기독교가 단순한 유대교의 변형이나 그 아류(亞流)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그리스
도를 좇는 무리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와서도 '그리스도인'은 성도들을 일컫는 대표적 명칭으로 남게 되었다
(26:28;벧전 4:16). 또한 이사야 62:2의 '새 이름'이란 곧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고
도 볼 수 있다. 26절에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도 이러한 새 이름으로 불리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안디옥의 성도들은 이처럼 새 이름으로 명명됨으로써, 두 가지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첫째,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여겨지는 동안은 로마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실 공히 유대교와 분리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제재(制裁)를 받게 되는 입장에 놓였다. 둘째,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와는 결별하였다고 할지라도, 구약성경 내의 여러 약속들과 자
신들간의 연계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신학적 연구가 미비하였던 당시 상황
에서 이러한 문제는 혼란을 야기시킬 충분한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초대 교회 선교가 바야흐로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 안디옥 교회는 정치
적.종교적 이방 교회의 원형으로서 기독교 초기 선교와 신학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사도 바울이 이 교회를 기점으로 여러 차례 선교 여행을 한 사실과 2세기 익
나티우스(Ignaitus)와 데오빌로, 3,4세기의 루시안, 데오도르, 크리소스톰 등의 뛰어
난 신학자들이 이 교회를 통해서 배출된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3. 안디옥 교회의 부조(11:27-30)
팔레스틴의 기근 때 안디옥 교회는 고통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움으로써 교회의
일체감과 연대 의식을 발휘하였다. 앞서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 지도자를 파
송하여 영적 부흥에 일조하였고(22절) 여기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금
을 보낸 사실은 성도들간에 '서로 사랑하는'(요 13:34,35) 모범적 예를 보여준다. 특
히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으로서 자기들을 쉽사리 용인하지 않으려 했던 예루
살렘의 유대인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어려움을 돌아본 것은 그들이 민족이
나 지역에 구애되는 편협한 자들이 아니라 교회의 일치성과 지체 의식을 깨달을 줄 아
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음을 상기케 한다(고전 12:12-17).
교회에 맡겨진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구제이다(6:1). 구제는 먼 이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믿는 형제들에게 우선적으로 베풀어져야 할 것이다(갈 6:10). 하지
만 성돋의 사랑은 자기의 형제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마 5:44) 무차
별.무조건의 범주에 속한다.
한편 본 단락의 주요한 내용인 안디옥 교회의 부조는 안디옥 교회의 성숙된 일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로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마 20:16)는 말씀의 직접적인 성취
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의 헌금이 주는 중요성을 살펴보기 위해서, 이
사건과 관련된 다른 서신서들의 해당 본문을 비교 검토해 본 후 헌금의 의미를 상고해
보기로 하자.
(1) 다른 서신서들과의 관계.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에 동참하는 안디옥 교회의 헌
금과 관련되는 타서신서의 본문은 갈라디아서 2장과 로마서 15장이다.
(가) 갈라디아서 2:8-10. 여기서는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들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로 임명된 것처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불림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
것은 하나님께서 지명해 주신 사실(9:15)일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
도자들도 합의한 사항이었다(갈 2:9). 둘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사도 바울의
헌금을 수납하면서, 더욱 이 일에 힘써 줄 것을 부탁한 내용이다(갈 2:10). 따라서 갈
라디아서 2장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항은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의 헌
금을 수납했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사명을 인정하였다는 점이
다.
(나) 로마서 15:31. 이 본문이 구체적으로 안디옥 교회의 헌금을 염두에 둔 것인
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가지고 간다는 사실에 관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헌금을 가지고 가기 전 로마 교회 성
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두 가지 기도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첫째는, 자신을 죽이
려고 하는 열혈 유대인들로부터의 보호이며, 둘째는, 이 헌금이 예루살렘 교회에 잘
수납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내용이다.
바울은 이방 선교에 주력하면 할수록 많은 대적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적들은 유대
계 기독교인들을 비롯하여 유대교에 열심인 열혈과 유대인에 거쳐 넓게 분포되어 있었
다. 본문에서 전자(前者)의 기도 내용은 열혈파 유대인을, 후자(後者)는 유대계 기독
교인들을 생각하며 한 것이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인 히브리파 기독교인들이 공히 바
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뿌리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반영해 준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바울이 헌금을 단지 부조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자신과 바나바가 가지고 간 안디옥
교회의 헌금을 수령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이방 선교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해 주길
바랬다. 곧 이방 교회의 헌금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되는 것은 그들이 이방 교회를
한 형제 교회로 인정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바울의 사도성까지 공인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바울은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가지고 가기 전 로마서 15:31의 기도
를 부탁하였고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그 일이 성취되었음을 공포하고 있다. 이로 인하
여 안디옥 교회를 비롯한 이방 교회 역시 하나님의 교회이며, 동시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과 동일한 사도임을 추인(追認)받게 된 것이다.
(2) 헌금의 의미.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헌금에 대해 좀더 고찰해 보
자.
(가) 구제 목적. 본문에 언급된 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의 헌금은 예루살렘 지방에
계속되는 흉년에 대비해서 모금되었다. 특별히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구제 목적의 헌
금을 계속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을 정도다(갈 2:10).
(나) 교제 목적. 이 헌금을 통해서 교회의 하나됨을 확인할 수 있다. 예루살렘 교
회가 이방 교회로부터 온 헌금을 수령한 것은 자신들의 교회처럼 이방 교회 역시 하나
님께 기인했음을 공헌하는 것이 된다.
(다) 이방인의 종말론적인 순례. 구약성경의 예언에 의하면 종말에 하나님의 영광
이 시온에 나타날 때,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며 이때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우상
을 버리고 보화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모여든다고 한다. 이러한 비전(vision)을 가리켜
'이방인의 종말론적인 순례'라고 부른다(사 49:1-21).
초대 교회 당시 이방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헌금은 옛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디옥 교회를 비롯한 여러 이방 교회의 헌금
은 모교회인 예루살렘에 집중되었거니와, 이는 이방인들의 개종은 하나님의 계획의 성
취이며 궁극적으로 종말에 성취될 모습의 예시로서 더 이상 기독교가 유대교의 언저리에 머물 수 없는 범우주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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