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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사울이...마땅히 여기더라 -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사울의 책임성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울은 스데반의 처형을 직접 지휘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교의 현장에서 그것을 목격하고 마땅히 여김으로써 죄악에 동참했다. '마땅히 여기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유도콘'(*)은 동의하다', '합의하다', '승인하다'의 뜻을 지닌 '쉰유도케오'(*)의 미완료 과거 완곡 어법으로서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찬동하고 있음을 나타낸다(22:20). 그 날에 -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던 날을 가리킨다. 스데반의 순교는 기독교에대한 핍박의 서곡임과 아울러 기독교 확장의 제1보(步)이기도 했다. 큰 핍박이 나서 - 3절의 언급으로 보아 로마의 박해라기보다는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로부터의 박해를 의미하는 듯하다. 로마 당국이 직접 기독교 탄압을 시작한 것은, 사울의 회심 이후 기독교가 확장되어 로마에 전파되고 황제 숭배에 대해 배타적일수밖에 없는 기독교의 특성이 로마 당국자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게 된 때문이다. 사도 외에는 다...흩어지니라 - 박해의 결과 사도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도처로 흩어지게 되었다. 성도들이 각처로 흩어진 것은 핍박을 피해 도망하기 위함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복음의 세계적 확산을 도모하고자 한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였다. 당시 초대 교회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1:8) 주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자, 하나님은 외부로부터의 핍박이라는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세계 선교에의 전기(轉機)를 마련코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중심 공동체임을 확인하고 이방 지역에의 선교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속적이고 확장된 선교 활동임을 암시한다.

=====8:2
경건한 사람들 - '경건한'(* , 율라베이스)이라는 형용사는 오순절 예루살렘에 모였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도 붙여졌으며(2:5)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도 붙여졌다(22:12). 여기서는 아마도 복음의 진리에 대해 깊은 호의를 보였던 신실한 유대인들을가리키는 듯하며, 예수를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인물을 연상케 한다(눅23:50). 위하여 크게 울더라 - 유대의 장례식에서는 큰소리로 애곡하는 것이 관습이었다(막5:38 주석 참조). 그러나 산헤드린의 재판을 받고 돌에 맞아 죽거나 불에 타 죽거나참수형을 당하거나 혹은 교살당한 사람을 위해 공개적으로 통곡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중하게 스데반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은 '경건한 사람들'이 당시 영향력있는 유대 지도자 계층에 속했기 때문일 가능성이높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사실 스데반의 거룩한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일만큼 감격적이었음을 암시한다.

=====8: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세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데반의 처형 장면을 관망하던 사울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을핍박하는 데에 주동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잔멸할' 해당하는 헬라어 '엘퓌마이네토'(* )는 '모욕을 주다', '더럽히다', '파괴하다'의 뜻을지닌 '뤼마이노'(* )의 미완료 중간태인데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사용된 단어이다. 시 80:13에서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아 황폐화시킨 것을 나타낸 70인역의 표현 중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사울의 이러한 잔인한 행위는 자신의 입을통해서 여러 차례 확인한 바이다(22:4;26:10;고전 15:9;갈 1:13;빌 3:6;딤전 1:13).한편 여기서 '교회'(* , 여클레시아)는 건물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뜻한다.

=====8:4
두루 다니며...전할새 - 원문에서 '멘운'(* , '그러나')으로 시작되는 본문은 13절에서 언급된교회에 대한 박해와는 대조적인 새로운 사건의 전개를 지시한다. 박해로 인해 흩어진자들은 사마리아는 물론이고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주의 복음을 증거했다(11:19). 교회사를 통해서 볼때 박해와 순교는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었다.

=====8:5

빌립 - 흩어진 기독교인의 활동에 대한 첫번째 언급으로서 빌립이 소개되는데 사도들중의한 사람인 빌립(막 3:18)과 같은 이름이다. 그래서 혹자는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Welhausen). 그러나 여기서 빌립은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으로 보인다(6:5). 왜냐하면 그가 12사도 중 한 사람이었다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된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굳이 그곳을 방문해 성령 받기를 간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성 - 이는 사본에 따라 두 가지고 해석될 수 있다. (1) 사마리아의 한 성: 대부분의 후기 사본은 이렇게 읽고 있다. 이는 사마리아의 어떤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 막연한 어떤 성을 이야기할 뿐이다. (2) 사마리아의 그 성 : 이는 '사마리아라 불리는 그 성' 이란 의미로 구약 시대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킨다.이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는 * ,A, B사본 및 영역 성경중 KJV가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을 반대하는 학자는 '사마리아'가 신약에서 도시의 이름으로보다 오히려 지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G.A.Buttrick). 그래서 (1)의 사본의 독법을 지지하면서 어떤 학자들은 그 장소를 시몬 마구스(9절)의 고향인 깃타(Gitta)로 추정한다(LakeCadbury, Neil). 혹은 세겜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Zahn, Welhausen,Olshausen). 그런데 만약 이 성이 세겜이었다면 이 유명한 도시를 누가가 언급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사마리아 성'으로는 읽혀질 수 없는 이유는 당시 그 성은 헤롯에 의해 개축되어 '세바스테'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9절에서 시몬 마구스가 갑자기 등장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성은 '깃타'일 가능성이 크다.

=====8:6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 이 표현은 빌립의 말에 권위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동시에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에예수 당시와 같이 표적(sign)이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6:8). 빌립을 통해서 나타나는 표적은 그가 전파하는 말에 권위를 부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로 하여금그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나타냈다.

=====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 이 구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가르'(*)로 시작하지만 개역성경은 구체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이는 본절을 6절의 '좇더라'라는 말에 대한 이유가 아니라 8절의 이유로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편 개역성경은 본문에서의 주어를 사람들에게 붙어있는 귀신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헬라어 사본들은 주어를 '많은 사람들'(* , 폴로이)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크게 소리지르며 나간 것은 귀신이 아니라 귀신들린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표현은 귀신 축출 기적과 관련해서 사용되지 않으므로 벧하우젠(Welhausen)은 막 1:34를 근거하여 귀신이 쫓겨나 병자가 치유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사람들에게서더러운 귀신들이 울부짖으며 나갔다'고 번역하기도 한다(Meyer, Bengel).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 - 빌립에 의해 치유받은 사람들이 영적인 불구자 뿐만아니라 육신적인 불구자까지 포함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중풍병자'로 번역된 '파랄렐뤼메노스'(* )는 중풍(中風)으로 인해 부분적인 기능이마비된 '파랄뤼티코스'(* )와는 달리 전신의 기능이 거의 마비된 병자를 가리킨다. 의사였던 누가의 예리한 관찰에 의해 병자의 병명이 정확하게 묘사된 듯하다.

=====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 이 말은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시사해 주며 또한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가 매우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앞절에서 언급된 소외된 불구자들의 쾌유와 악령으로부터의해방, 그리고 온 성의 기쁨은 복음이 수용된 곳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결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짤막한 본문은 빌립의 선교활동의 결과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후에 있을기독교 선교 활동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8:9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 5-8절에서 언급되었던 빌립의 활동 내용과 그 결과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기위해 '시몬'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화제를 바꾸었다. 여기서 언급된 시몬은 본장 외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초대 교회의 몇몇 자료에만 그의 신분과 활동이 언급돼 있다. 순교자 저스틴(Justin)에 따르면 시몬은 사마리아의 깃타(Gitta) 출신으로서 애굽에 건너가 철학과 마술을 배웠던 사람이다. 그래서 시몬에게 '마술사'를 의미하는 '마구스'(Magus)라는 별명을 붙여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이레니우스'(Irenaeus)의 주장에 따르면 시몬은 '영지주의'(Gnostic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또 외경 '베드로행전'에서는 시몬이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거짓된 가르침으로 타락시킨 자로 묘사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고증될 수 없지만 시몬이초대 교회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자칭 큰 자 - 시몬이 자신을 가리켜 '큰 자'라고 언급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붙여준 별명인 '하나님의 능력'(10절)이라는 말로 미루어보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마술을 행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킨 것 같다. 그런데 그가 행한 마술이 어떤 형태인지는알길이 없다. 아마도 그는 마술을 통해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내어 쫓기도 했으며점성술을 통해 예언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Lenski).

=====8: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 마술사 시몬은 모든 계층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빌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시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여 시몬과 그의 추종자들을 압도함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다(12, 13절).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 - 사마리아인들이 시몬에게 붙여준 별명은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시몬은 마술을 행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속였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예수를 믿었을지라도 자신의 마술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면 그를 통해서 영지주의가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후에 진행된 이야기로 보아 그는 사도들의 능력을자신의 마술을 능가하는 마술 정도로 생각했으며, 뿐만 아니라 전수될 수 있는 것으로여겼다. 즉 그는 사도들을 굉장한 마술의 전수자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영지'(靈智)가 전수될 수 있다는 영지주의자의 일반적인 생각을 시몬 역시 비치고 있다.

=====8:11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 청중들이 시몬을 따르게 된 큰 동기가 시몬이 행한 마술 때문이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술의 영향은 하루 이틀 정도의 영향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빌립의 선교 현장이 시몬의 마술 행위로 모든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말해줌으로써 시몬까지 예수를 믿게 한 빌립의 전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보여준다.

=====8:12
하나님 나라 - 본서에서는 이 주제가 부각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전파되었는지 자세하게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혹자는 이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와 동일시된다고주장한다(Lake, Cadbury). 그러나 복음서의 저자인 누가가 예수에 의해 전파된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와 동일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서 가운데 하나님 나라란 용어가 몇번 언급된 점으로 보아 사도들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던 내용을 전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막 1:14-20 주제 강해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참조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 이는 본서의 핵심 주제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특히 예수의 이름은 마술사인 시몬의 가르침과 구별된 의미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 빌립의 선교는 시몬의 막강한 영향력을 누름으로써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결과 청중들은 빌립의 설교를 듣고 세레를 받음으로써 시몬의 영향에서 벗어나 기독교인이 되기로 결단했다.

=====8:13
시몬도 믿고 - 사마리아 성의 변화가 파격적임을 묘사하는 이 한 마디는 빌립의 선교 활동이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시몬의 추종자들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되고 최종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행사하던 시몬이 기독교인으로 변화된것은 그곳이 거의 기독교화도었다는 암시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빌립에 대한 시몬의 반응을 묘사하는 본문은 11절에서 묘사된 시몬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과 대비되고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시몬의 마술에 놀라는 장면과 시몬이 빌립의 능력을 보고 놀라는 모습은 서로대조되어 빌립의 능력과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시몬이 빌립을추종하여 따라다닌 주된 목적은, 자신보다 더 큰 능력의 소유자임을 인정하여 그 능력을 마술처럼 배워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표적과 능력 행사의 내용은 7절에 언급된 내용과 동일한 것이며 당시 선교 활동의 중심 내용이 설교였지만 사실 많은사람들을 기독교화시킨 큰 요인은 역시 기적을 행한 신비한 능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 1절에서 언급된 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도들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 활동의성공적 보고를 듣고 두 사도를 파송하기에 이른다. 사도들 중에서 기둥같이 쓰임받던두 사도가 빌립의 전도지를 방문한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내포되고 있다. (1) 빌립의 선교 활동에 대한 확인이다. 즉 빌립의 선교 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2) 복음은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것을 증명해 보여준 것이다. 즉 사도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유대인들에 의해 경멸받는 이방인과 특히 사마리아인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의 기쁨을 위해(8절) 사마리아를 찾아감으로 전정한 복음의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8:15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 이로 보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은 빌립의 선교 활동으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이들에게는 유대와 사마리아간의 벽이(마 10:5;눅 9:51-53) 없어졌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한 예수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

=====8:16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 빌립의 선교 활동에 의해 그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성령을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유대인에 대해 나쁜감정을 지닌 사마리아인들에게 두 사도가 와서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게 됨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인들을 한데 묶어주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2) 사도들에 의해 성령이 임함으로써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3) 빌립이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기에 바빴으므로 안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정확한 추정인지는 알 수 없다.

=====8:17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이구절은 성령을 받기위한 안수의 필연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안수를 통해 성령을 체험하기도 하였지만(9:17)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우도 있고 (10:44) 여럿이 모인 곳에 임하기도 한다(2:1-4). 그러므로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서 안수를 통해서만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또한 사도에게만 성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도에 의해 성령이 강림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의의를 지닌다. 첫째는, 지방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됨을 암시한다. 둘째는, 사도권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이 기독교인임이 최종적으로확인되고 선포됨을 강조한다.

=====8:18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 본절에는 시몬이 어떻게 성령받는 것을 보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방언이나(Wendt) 예언을 통해 성령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성령 강림으로 인해 외적 현상이 나타났음이 분명하며 이 현상을 시몬이 목격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시몬이 그 체험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확실한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어느 정도 시사해 준다. 이러한 암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성령받는 것을 목격한 시몬은 두 사도에게 돈을 건네주고그 권능을 팔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도 성령받은 사람에게서 어떤 신비한 현상을 시몬이 발견하고 마술을 전수(傳授)하듯이 성령도 전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13절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시몬이 빌립을 추종한 것이 표적과 권능을 보게된 때문이라는 점과 시몬이 마술사였다는 점에서 아마도 성령을 주는 능력을 갖는다면무엇이나 자신의 마술 능력을 능가하는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도 성령을 모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원천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이다(Bauernfeind). 즉 그는 자신이 돈을 주고 마술을 전수받은 것처럼 성령을강림케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자 했을 것이다.

=====8:19
이 표현도 18절에서와 같이 사마리아인들이 두 사도의 안수를 받으면서 성령 체험을 하는 그 장소에 시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여수시아'(* )로 1:8에서 '권능'으로 번역된 '뒤나미스'(* )와 의미상 차이가 있다. 즉 '뒤나미스'는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외적 현상을 강조하는 반면 '여수시아'는 내적 현상을 강조하는 용어다. 여기서 시몬이 외적 현상을 의미하는 '뒤나미스'를 나타낼 수 있는 '권세'를 요구했음을 암시한다.

=====8:20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는 선물이다. 따라서 선물이 한쪽에서 다른 한쪽에게 무상(無償)으로 주어지듯이 성령 역시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다. 또한 받은 선물에대해 돈을 지불하는 것도 선물을 준 자에 대한 모독 행위가 된다. 따라서 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는 곧 신성 모독이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해 베드로는 가차없는 저주 선언으로 대용하고 있다. '망할지어다'에서 전치사 '에이스'(* , '안으로')가 목적격의 명사를 동반해서 서술적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용법은 70인역의 일반적인 예라는 점에서 본문이 70인역에 영향받았을 가능성을생각해 볼 수 있다. 한편 베드로의 저주에는 재물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여 종교 타락의 원인이 되는 재물을 멀리 할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종교는 돈이 개입된 흥정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멸망의 저주를 연상하게 한다(5:1-10). 따라서 본문은 성령 은혜가 돈이나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8:21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 이 말을 혹자는 시몬에게 베드로가 출교(黜敎)를 선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Haenchen, Neil). 그러나 이는 시몬이 기독교인이 된 사실(13절)을 부정하고 내어쫓으려는 것이 아니라 첫째, 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와(22절) 둘째, 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두 사도의 행위는 17절에서와같이 온전한 기독교인을 인정하고 보증하며 거짓된 기독교인을 구별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사도의 권위를 강화하고 있다.

=====8:22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이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냉혹한 책망이 단순한 공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이었음을보여주고 있다. 시몬의 불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마음을 '악하다'고 다시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카키아'(* )는 부패된 심적 상태뿐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시몬의 부패된 심적 상태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입증되었다.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 이는 시몬이 행동으로보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지닌 사악함을 회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시몬은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을지라도 불순한 동기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듯하다. 한편 '혹'으로 번역된 '에이 아라'(* )는 조건절을 강조적으로 이끄는 표현으로 회개하고 기도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역성경은 그 강조적 의미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의미를 불명확하게 번역했다.

=====8:23
악독이 가득하며 - 이 말은 헬라어로 '에이스 콜렌 피크리아스'(* )인데 직역하면 '쓰디쓴 쓸개를 향하여'란 의미를 지닌다. 이에 혹자는 시몬이 미신과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F.F. Bruce). 이와 유사하게 마샬(I.H. Marshall)은 시몬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불의에 매인 바 -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존(實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 이구절은 사 58:6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이다.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8:24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 베드로의 신랄한 비판에 대한 시몬의 반응은 자신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베자 사본은 '울음을 멈추지 않고 통곡하였다'라는 구절을 삽입시켜 시몬이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깊이 회개했음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베자사본의 첨가를 따라 시몬의 회개를 기정 사실화했다(Blass, Wendt). 그러나 시몬은 베드로의 저주가 자신에게 내려질 것을 두려워했을뿐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Meyer, Bengel, Alford, Knowling, Lenski). 22절에서 베드로가그에게 회개하고 기도하라는 권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를 요청한 것은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불신앙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구절을 시몬의 회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8:25
두 사도가...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 이 표현은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라는 점을 암시하는 말이다. 즉 모든 지방교회는 교회의 중심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확인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의 정통성과 관계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바울에 의해 이방 지역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퇴색해졌다.

=====8:26
주의 사자 - 사마리아 선교 이야기는 일단락되고 새로운 선교 활동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초자연적 능력이 가시적으로 개입되었다. 여기서 언급된 '주의 사자'란 표현은 '하나님의 사자' 또는 간략히 '천사'와 동일한 의미이며 하나님의 임재와 직접적인 개입을강조할때 사용되는 용어로서 누가가 즐겨 사용했다(7:30, 35, 38;10:7,22;11:13;12:7, 11, 23;27:23;눅 1:11;2:9).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시사하는 이표현을 통해 누가는 이방지역에 대한 선교 활동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이루어진것임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남으로 향하여 - 이 말은 빌립이 당시 사마리아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 볼 때 빌립은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했던 장본인임을 알 수 있다. 가사로 -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명령했지만 정확한 지점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가사를 향해 가라고 방향만 지시했다. 가사는예루살렘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70여km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창 10:19에 따르면가나안의 도시였던 것으로 보이며, 유다 지파가 그곳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여 그이후 계속 블레셋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또 이곳은 삼손이 성문짝을 메었던 곳이었다.(삿 16:1-5). 이 도시는 B.C. 96년경 마카비 가(家) 출신인 알렉산더 얀네우스(Alexander Jannaeus)에 의해 멸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그 후 B.C. 약57년경 폼페이의 칙령으로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A.D. 66년경에 멸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Josephus). 그런데 가사로 가는 길은 아스칼론(Ascalon)을 통해 가는 길과 서쪽 헤브론을 통해 갈수 있는 두 길이 있는데 여기서는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다.

=====8:27
에디오피아 사람...내시 - 빌립의 선교대상으로 언급된 이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름이 아니라 출신지와직책이다. '검은 피부'라는 의미를 지닌 '에디오피아'는 애굽의 남쪽 지역으로서,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구스 족속(사 11:11)의 후예로 구성되어 있다. 에디오피아에서는 당시 모계(母系) 왕통을 갖고 있었으며 '간다게'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왕조를 나타내는 명칭으로서 로마의 '가이사' 또는 애굽의 '바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국고'(* , 가자)라는 말은 본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왕실의 보물또는 국가의 재산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내시는 왕실 또는 국가의 재무 관리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성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는 고자(鼓子, 신 23:1)이면서 이방인인 그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었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될 수 없다.아마 그는 유대인의 총회에 들 수는 없었으나 유대교를 독실하게 믿었으므로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한 절기 기간을 택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예루살렘방문이 총회는 상관없이 단지 성지 순례만이 주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고자됨을감추고 절기 중 거행되는 성회에 참석하려는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한편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먼길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그가 유대교를 신실하게 믿고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8:28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 32, 33절에 인용된 구절이 70인역(LXX)의 사 53:7, 8과 같다. 그래서 혹자는 그 사람이 70인역을 읽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F.F. Bruce).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누가가 그 구절을 인용할 때 70인역을 사용했을 가능성도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8:29
빌립에게 지시하는 자가 '주의 사자'에서(26절) '성령'으로 바뀌어 언급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26절은 빌립에게 가시적으로 천사가 나타났으나 본절은 음성이나 영감을 통해 명령이 주어졌기에 누가가 '성령'이란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2)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顯現)을 '주의 사자'가나타난 것으로 표현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는다는 유대인들의 사상에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빌립에게 '내려가라' 지시한 사자나 본문의 성령은 동일한 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7:30-33 주석을 참조하라.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 빌립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가 매우 구체적이고세밀하게 언급되어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묘사는 이방인 선교에 대한 당위성 및 필연성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8:30
달려가서...말하된 읽는 것을 깨닫느뇨 - 빌립은 내시의 읽는 소리를 통해 성경의 내용이 자신이 전하려 하는 복음의 내용과어떻게 일치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큰 소리를내어 성경을 읽었다. 그리고 이 내시도 유대인들의 습관을 따라 마차 속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읽었을 것이며 이를 빌립은 들었을 것이다.

=====8:31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 '지도하는' 이란 표현이 미래형으로 사용되었다. 직역하면 '지도해 주게 될' 이란의미를 나타내므로 내시의 소망을 담고 있다. 즉 지금까지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자신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미래형 동사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그 내시가 성경을 깨닫는 것에 매우 관심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빌립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다. 빌립을 청하여 - 갑자기 나타난 빌립으로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받은 내시는 의외로빌립에게 자신의 마차에 오를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처럼 내시가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호의적으로 빌립을 맞아들였다는 사실은 두 가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1) 내시가 자신의 체면에 관계없이 성경을 깨닫지 못한다고 대답함으로써 자신의 겸손과 주의 말씀을 깨달아 알고자 하는 열망이 높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 선교자를 맞아들이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하고 있는데 영접하는 자의 구원을 암시하고있다(막 6:11 주석참조).

=====8:32
양...어린 양 - 사 53:7의 인용구로 그곳에서 표현은 메시야의 수난과 관련된 예언이다. 메시야의수난에서 비유적으로 '양'을 언급한 것은 메시야가 순종의 제물임과 동시에 희생 제물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자세한 것은 사 53:7 주석을 참조하라.

=====8:33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 이 말은 메시야가 이 땅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 사역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자기 백성들로부터 받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으며 또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의 재판 과정에서 공의로운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 의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사53:8 주석을 참조하라.

=====8:34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 예언서에 예언된 고난의 종이 누군지를 묻는 내시의 질문에는 매우 진지하고 정중한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 즉 '청컨대'(* , 데오마이 수)라는 말을부탁을 하기 전 붙이는 '죄송하지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Haenchen). 한편 내시는 예언된 고난의 종이 이사야 선지자일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이사야는 므낫세 왕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었다는 전설 때문에 그러한 추측이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또는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고난의 종으로 상징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여기에서 선지자에 대해 내시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당시에 두 세 가지의 해석들이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8:35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켜 - 아마도 빌립은 이사야의 예언을 예수의 고난과 결부시켜 가르쳤던 것 같다. 다시말해 빌립은 사 53:7, 8이 메시야의 고난임을 설명하고 그 메시야가 예수임도 밝혔다.그리고 예수의 가르치심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게 그 내시에게 가르쳤을것이다.

=====8:36
물 있는 곳...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 많은 학자들은 '물 있는 곳'이라는 말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즉 그 장소가 예루살렘 남쪽 헤브론에서 3km정도의 거리에 이쓴 '벧술'이라는 샘(수 15:58;느 3:16)을 가리킨다고 주장하기도 하고(Jerome, Eusebius, Alford), 가사로 가는 길에 위치한 '텔엘 하시'(Tell-el-Hasy)라 이름하는 샘을 말한다는 주장(Robinson, Hervey)도 있으며,가사 부근에 있는 어떤 샘으로 추정하기도 한다(Smith).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설득력있는 주장이라고 볼 수 없다. 즉 저자는 그곳이 어느 지역인가 하는 장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음을 말하려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이 두 갈래였으므로 어느 길을 택했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수 있으며 빌립이 내시를 어느 지점에서 만났느냐에 따라서도세례 장소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내시가 '무슨 거리낌이라도 있는가?'라고 반문한것으로 보아 그가 이미 세례에 관해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빌립이 예수에 대한 설명을하던 중 세례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빌립은 내시로 하여금 예수를 구주로영접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제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내시는자신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대신 세례받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음을강조하기 위해 반문 형식의 의문문을 사용했다.

=====8:38
둘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 이는 두 사람 모두 물에 들어가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浸禮)를 베풀었음을 암시한다. 당시에는 오늘날 행하는 약식 세례와는 달리 침례를 행했으므로 물이 넉넉히 있는장소가 필요했다. 이로 보아서 내시가 세례를 받은 장소는 단순히 오아시스의 샘이 아니라 흐르는 시내였을 것이다.

=====8:3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 빌립을 이끌어 주는 자가 '주의 사자'에 이어(26절) '성령'으로 언급된 후(29절)여기서는 또 다른 표현인 '주의 영'으로 언급되고 있다. 누가는 서로 같은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29절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이끌어 간지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르파센'(* )은 재빨리 어떤 것을 채어가는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빌립을 내시의 눈 앞에서 금방 사라지도록 하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이 기적이 실제로 시공간(視空間)에서 발생했음을강조한다. 그리고 누가는 이 기적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빌립의 전도가 오직 하나님의주권적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강조해 주며 또한 이방인 전도의 정당성을 부각시켜준다. 내시는 흔연(欣然)히 길을 가므로 - 혹자는 기쁨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 누가의독특한 표현법이라고 주장한다(Harmack, Haenchen). 그러나 이 기쁨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지 누가의 독특한 표현법이 아니다. 내시에 관한 언급은 여기서 끝나고 있지만 내시가 기뻐하며 걷는 모습은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 복음을 증거하며 이방인의 선교사가 되었으리라는 추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한다.

=====8: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 빌립이 세번째로 찾아간 선교지 아소도는 가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40km, 지중해 연안 4.8km 대륙 지방으로서, 삼상 6:17에서는 블레셋 성읍인 '아스돗'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도시는 처음에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암 1:8에 예언된 바대로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빌립의 선교 활동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두루 포함한다는본절의 진술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들이 빌립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이는 베드로가 룻다와 욥바를 방문하였을 때(9:32, 36) 그곳에 이미 기독교인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본장에는 핍박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를 흩어지게 하시고 흩어진 제자들로 하여금 이
방 선교를 수행케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지가 역력히 부각되어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은 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동기에서 비
롯된 것이지만, 거시적으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현상태에 안주하는 교회의 소극적 신앙 자세에 기인한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 섭리로 말미암아 흩어진 제자들은 이방 지역으로 나아가 그곳
에서 복음을 전파하거니와, 본장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세계로 진출해가는 중간 과정
을 기록하고 있다.
본서의 내용을 1:8의 내용에 따라 지리 중심으로 구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 전도
(1-7장), 사마리아 선교(8-12장), 세계 전고(13-28장) 등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거니
와 본장은 바로 사마리아 선교가 시작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본장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 전후 문맥적 흐름에 유의하기로 하자.
(1) 문맥상의 유의점. 본장의 내용 전체에는 인간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스데반의 순교화 교회가 당한 대핍박으로 인해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진출하게 되며 저 멀리 에디오피아까
지 복음이 진출되는 장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본장의 내용은 '이방 선
교'라는 주제하에 전.후 장(章)들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거니와 이를 고찰하기 위해
서 본장에 부각되어 있는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가) 흩어진 제자들의 복음 전도. 스데반의 선교를 시작으로 해서 예루살렘 교회
는 큰 핍박을 당하여 그 곳에 계속 머물 수 없으므로 유대와 사마리아 각처로 흩어지
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들의 삶의 뿌리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
었던 상황으로 인해 실망과 좌절 그리고 낙심으로 무기력해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들은 성령의 위로하심과 보호하심으로 인간적 좌절을 극복하고 주께서 당부하신 '증인
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였다. 이렇듯 고난과 역경에 처하여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제자들의 신앙 태도는 여러 가지 시련에 처해 있는 성도들이 견지(堅持)해야 할 신앙
태도가 어떤 것인가 깨닫게 한다. 복음을 전파함에는 때때로 환난과 역경이 동반됨을
기억하자.
본장에는 흩어진 제자들 중에 '빌립'이란 인물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어 있다.
빌립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며(마 10:3;막 3:18;눅 6:14), 또한 본서 6장
에도 나타난다. 본서 6장에서 빌립은 구제 문제로 인해 선출된, 예루살렘 교회의 성령
과 지혜가 충만한 안수받은 일곱 집사 중의 한 명이다. 초대 교회의 집사는 단지 교회
의 행정적인 직무만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늘 데에도 큰 역할을 감당했던 사실
을 스데반의 예(7:1-53)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여기에서도 전도자인 빌립은 주의 말씀에 깨어 있는 사람이었고, 성령의 인도에 민
감하였으며, 주께서 명하신 대로 어느 곳이나 거침없이, 그리고 용감하게 나아간 초대
교회의 주요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사마리아 성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기쁨을 주었으
며 인생의 극한 고통들을 해결해 주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5,6절). 또한
그는 권세를 가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성령께서 명하신 대로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한 순종의 사람이었다.
(나) 이방 선교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의지. 핍박과 제자들의 흩어짐, 그리고 흩
어진 제자들의 복음 전도 이면에는 구원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하신 의지가
흐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
렘과 온 유대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고 말씀하셨으며
본장은 이 말씀의 성취가 진행되는 과정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 말씀의 성취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고 아브라함
에게 약속하신 계시의 성취이며, 또한 구약성경의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이방인 구
원의 역사가 성취되는(사 55:5;단 7:14;호 2:13) 첫 시작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본장
은 거대한 기독교 선교사의 첫 나팔이 울리는 장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서에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부단히 증거되고 있으므로 '성령 행전'이라고도
불리며 본장에서도 복음 확장의 주역이 성령으로 부각되어 있다. 유대인들에게 소외당
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였고(15-17절),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을
때에 '가까이 나아가라'고 명하신 분도 성령이셨다(29절). 또한 빌립이 내시에게 이사
야 53장의 고난받으신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을 때 이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신 것도 성령이셨다(요 16:13).
이처럼 본장에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전체에 걸쳐 부
각되어 있거니와, 본서 전반에 강조되는 바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 1:18)으로부터 요한계시록 22장 끝까지 신약성경의 전반에 걸쳐 성령께서 구원 역
사를 이루시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주역으로 등장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
(2) 내용 구성. 본장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4절)은 이방
선교의 기폭제가 되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유대교의 핍박을 다룬 내용이며 둘째 단
락(5-25절)은 빌립의 사마리아 선교를 다룬 내용이다. 그리고 셋째 단락(26-40절)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세례를 준 내용이다. 이
중에서 둘째 단락은 다시 세 개의 소단락으로 세분한다. 5-8절은 사마리아 성에서의
복음 전파의 결과, 9-13절은 마술사 시몬의 개종, 14-25절은 두 사도의 사마리아 사역
과 책망받는 시몬을 다루었다.
한편 본장에는 선교 대상자들의 복음에 대한 상반된 두 가지 반응이 부각되어 있다.
마술사 시몬의 성령에 대한 그릇된 이해와 에디오피아 내시의 복음에 대한 순전한 열
정이 그것이다.

1. 흩어지는 교회(8:1-4)
본문은 본장 전체의 서론격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박해로 인해 흩어진 제자들이 예
루살렘을 벗어나 복음을 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말해준다. 또한 본문은 본서 전체에
있어서 선교의 중심지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이전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장 강해에서 언급한 대로, 예루살렘 전도(1-7장)와 이방 선교(13-18장)의 다리
가 되는 사마리아 선교(8-12장)가 바로 본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
부각되어 있는 핍박의 역사적 배경과 흩어지는 교회에 관한 신학적 의미에 초점을 맞
추어 보기로 하자.
(1) 예루살렘 교회에 임한 핍박의 양상. 예루살렘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중 스데반의 순교 사건을 맞아 커다란 좌절과 실망을 겪에 되었으나 핍박자들은 교회
에 대한 핍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동족 유대인들의 핍박외에도 로마 황제숭배 거
부로 인한 핍박이 있었다. 이에 관한 보다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문 주제 강해
'초대 교회가 당한 박해'를 참조하기로 하자.
결국 안팎의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 내에만 머무르려 했던 교회는 예루살렘을 벗어
나 각처로 흩어지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복음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결과
를 초래하였다. 기독교의 역사는 창세 이후 아벧로부터 시작해서 사가랴 선지자(눅
11:51)에 이르기까지 선지자들의 피가 끊임없이 땅에 흘렸던 것처럼 순교와 핍박의 역
사로 일관했으며 초대 교회 역시 그러했다. 이러한 순교와 핍박의 역사는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으며(눅 11:49) 기독교는 이로 말미암아 전세계의 기독교가 될 수 있었다.
한편 당시 사도들은 격렬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
다(1,14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인하여 교회를 떠났지만, 그들은 어려운
상황을 개의치 않고 교회에 남아 순교의 각오로 교회를 지키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 예수께서 대적들에게 수난을 당하며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제각기 피
신하였던 제자들의 두려워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막 14:50). 아무튼 예
수의 승천 이후 새롭게 변화된 사도들은 이제 예수의 뒤를 따라 선한 목자(요 10:11)
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하였던 것 같다.
(2) 흩어지는 교회의 신학적 의미.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이 썩어지는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생명의 구조선으로서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이와 같이 모
이는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할은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
리가 되신다는 사실에 근거한다(요 6:35). 하지만 교회는 '모이는 교회'로서 뿐만 아
니라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선교의 기능을 부여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움
받은 교회에서 공적 예배와 신앙 고백을 통해 신앙의 성장을 거듭한 성도는 또한 세상
에 나가 뭇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불러들여야 할 책임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1:8).
스데반의 죽음과 교회에 밀어닥친 커다란 박해는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책임과 의
무를 다하지 못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소극적이며 한계를 드러내는 예루살렘 교회를 치심으로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
회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하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받은 은혜레 감사한 만큼 각자가 처한 삶의 현장에서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하나라도 더 주께 돌아오도록 최선의 경주를 다해야 할 것이다.

* 초대 교회가 당한 박해. 구약 이스라엘의 전역사(全歷史)가 아벧의 피로부터 사가
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하나님의 증인들을 핍박한 역사이었듯이(마 23:35),
초대 교회도 엄청난 시련을 거쳐야만 했다. 이 사실에 대해 예수께서는 이미 예고하신
바 있으며, 궁극적 승리를 확신하며 담대히 환난을 견딜 것을 당부하셨다(마 5:11;요
16:33).
초대 교회는 유대교와 로마 제국 쌍방으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스데반과 야고보가
순교당하고 베드로가 투옥되던 때까지만 해도(6,7,12장) 박해는 소수인들에게와 예루
살렘 인근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소 출신 사울의 회심(9:1-9)과 더불어
복음은 로마 제국 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이로 인해 서서히 로마 관리들의 압력
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대체로 로마 제국은 속국 내의 여러 종교들에 대해 관대한 반
응을 보였었다.
유대교(Judaism) 또한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 이래로 묵인되어 왔으
며,A.D.70년의 예루살렘 함락 때까지 유대인들은 로마에 성전세를 납부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단지 유대교의 한 분파 정도로 간주하고 묵인하였다.
하지만 점차로 로마 제국 내에 그리스도인의 무리가 확대되고 로마 황제숭배를 반대하
는 등 배타적인 모습이 노출되자, 제국의 당국자들과 그리스도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마인에 의해 자행된 최초의 대규모 박해는 네로로부터 비롯되
었으며(A.D.64경), 데시우스(Decius)와 디오클레시안(Diocletian) 황제 치세(治世) 중
에 본격화되었다.

2. 사마리아 선교(8:5-25)
본문에는 혈통이나 종족 등 모든 장벽들을 복음 안에서 허물어버리시고 새로운 하나
의 공동체를 탄생시키고자 하신(갈 3:28;엡 2:13-16) 하나님의 섭리가 부각되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빌립(6:5)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유대인들과 반복 관계에 있던 사마
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신 것이다. 만일 먼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서 복음을 외쳤다면 사마리아인들로부터 심한 반발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눅 9:51-53).
반면에 빌립은 디아스포라에서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인 동시에 핍박으로 인해 예루
살렘에서 쫓겨난 처지였기 때문에 쉽게 사마리아인들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님께서는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예루살렘의 두 사도들(베드로, 요한)을 파견케 함으로써 명실 공히 일치된 교회로서의
면모를 확립시키고자 하셨다. 이런 점에서 초대 교회의 선교 역사는 곧 하나님의 선교
역사였다.
한편 본문에는 빌립의 사역이 확연히 부각되고 있거니와 빌립의 사역은 스데반의 사
역과 더불어 베드로와 바울 사이의 교량적 위치에 놓여지며, '예루살렘'과 '땅 끝'을
잇는 전도의 가교(架橋)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마리아 전도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고 아울러 본문에 부각되어 있는 사도단(使徒團)의 위치와 시몬
이란 인물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사마리아 전도의 역사적 의의. 사마리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구약시대 솔
로몬 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솔로몬 왕의 처음에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이스라엘 왕
국을 부국 강병(富國强兵)의 나라로 이끌어갔지만 만년에 이방 여인을 취하여 이스라
엘의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왕국은 두 나라로 나뉘어지게
되었으니(왕상 11:30-37) 그중의 하나인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로바암이 왕이 되어 에
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왕상 12:25), 여로보암은 벧엘
과 단에 금송아지를 두고 이를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한 신(왕상 12:28,29)으로
섬기게 하였도 이때로부터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호와 신앙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제6대 왕인 오므리 왕은 사마리아 산을 사서 성(城)을 건축하고 그 성을 '사마리아'
라고 부르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왕상 16:24). 사마리아 성은 주전 800년경 앗수르
의 사르곤2세에게 함락되어 2만 7천여 명이 포로로 잡혀갔고 또한 그곳에 타민족이 이
주해왔다. 이러한 이주 정책의 결과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 되었고 이로 이하여 유대
인으로부터 배척과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예수는 이러한 사마리아인에게 친히 복음을
전하셨고(요 4:1-42) 빌립 또한 사마리아 서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였으니, 이스라엘
왕국 분열 이후 참신앙을 갖지 못한 그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렸던 것이다. 복음은 어
떤 장벽도 넘어서며, 어떤 민족도 복음의 빛을 받는 데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다.
(2) 사도단(使徒團)의 위치.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수장격인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하여 빌립의 사역을 돕게 하였다(14
절). 이러한 사실을 두고 혹자는 사도들의 위치를 감독자나 통솔자로 생각하기도 하나
본서의 전반적 내용을 감안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사도들이 예수의 직접적 증인으로
서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
만 사도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복음 선교를 위한 협조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교권주의적(敎權主義的)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복음을 수용한 사마
리아 사람들을 위해 성령 받기를 기도한 사실(15절)이나 돈으로 성령의 은사를 매수하
려고 했던 시몬을 가차없이 꾸짖은 사실(20절) 등은 복음에 대한 순수하고도 지고한
그들의 열정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만일 복음의 확장을 빙자하여 자신의
권위나 명예나 지배욕을 채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몸소 섬기는 삶을 사셨으며 당신의
제자들에게 또한 섬김의 도를 교훈하신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행위
일 것이다. 복음은 정치적 야심과 거리가 멀다.
(3) 시몬의 유물주의적 망동(妄動). 빌립이 전한 복음을 순전하게 받아들였던 사마
리아 성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생의 근본 문제에 해답을 주며
죄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육신적 질병을 해결하는 능력의 복음이
므로 기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복음의 확장되는 곳에는 사단의 역사도 함께
있다.
일찍이 초대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고 마치 천국의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4장)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5:1-11)과 같은 불상사(不祥事)를 겪은
적이 있었다. 사단은 물욕을 통해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하여금 성령을 속이도록 역사
하였거니와 마술사 시몬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작용하였다. 시몬은 처음에 예수를 믿고
세례까지 받으며 열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녔지만, 자신의 사욕을 위해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와 같은 본색이 드러난 사실을 볼 때에 시몬이
빌립을 따른 것은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그는 복음의 핵심이나 실상(實相)보다는 빌립을 통해 나타나는 초자연적 이
적에만 오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이는 마치 예수의 이적을 보고 그 이름은 믿었으나
진정한 회개에로 나아가지 않았던 무리들과 흡사한 모습이다(요 2:23-25).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의 마음은 마치 자갈밭과 같아서 말씀을 듣고 즉시 받아들이기는 하지
만 뿌리가 없어 쉽사리 넘어져버린다(마 13:20,21).
둘째로, 시몬은 명예욕에 급급하여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였다(19절;딤전
6:5). 물욕에 눈이 어두워 신앙의 정도(正道)를 이탈한 경우를 우리는 구약 시대의 발
람과 게하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민 22:28-33;왕하 5:27). 또한 우리는 교회사상
중세기 카톨릭 교회(Catholic Church)가 면죄부를 판 사실이나, 선교라는 미명 아래
금전으로 하나님의 일을 좌우하려는 일들이 다 유다와 시몬의 유물주의적 망동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음을 본다.
이상에서 볼 때 외부적 박해를 통해 사단이 역사할 때에는 오히려 복음이 확장되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이 견고해지지만 사단의 역사가 교회 내부적으로 일어날 때에는
자칫하면 교회를 부패케 하고 급기야는 무너뜨리게 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은 내부적인 사단의 역사라 하겠다.

* 안수에 관하여. '안수'란 일반적으로 손을 타인의 머리 위에 얹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떤 능력이나 자질들을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하는 의미와, 영적
자격을 인정하는 외적 표시로서의 의미가 있다. 구약 시대부터 신약 시대에 이르기까
지 다양하게 사용된 안수는 오늘날도 교회에서 거행되고 있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본
주제 강해를 통하여 그 기원과 시대별로 구분하여 간략하게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구약 시대의 안수. 안수의 기원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족장 가운데 한 명인 야
곱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야곱은 자신을 문병한 요셉의 두 아들이 에브라임과 므낫
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창 48:8-22).
이후로 안수는 책임이나 영적 은사를 타인에게 전가(轉嫁)하고 전수하는 공인된 형식
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성막에서 하나님께 봉
사하게 된 레위인의 머리에 이스라엘 자손이 안수를 하였고(민 8:10,11) 또한 모세가
임종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후임자인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직분을 위임할 때 안
수를 행하였다(신 34:9). 그 외에도 구약성경에 나타난 안수의 실행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사법에서 나타난다. 구약 시대 제사를 드리는 자는 자신의 손을 대신 희
생당할 동물에게 얹었는데 이것은 그 자신의 죄악된 모든 것을 그 동물에게 떠넘긴다
는 상징적 행위였다(출 29:15,19;레 1:4;4:4;8:14).
둘째는, 신성 모독자를 돌로 칠 때 나타난다. 이것은 신성 모독의 말을 들은 증인들
이 자신들에게 임한 죄와 더러워진 인격, 나아가서 장차 당할 심판 등을 신성 모독자
에게 모두 전가시킨다는 것이다(레 24:14).
(2) 신약 시대의 안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도 안수는 구약 시대의 경우와 거의 비
슷하게 사용되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린아이를 축복하실 때 안수하셨으며(막
10:16) 초대 교회에서 직분 임명시나 전도자와 같은 특별한 사명을 하나님께 부여받아
파송할 때도 안수를 행하였다(6:6;13:2,3;딤전 4:14). 특별히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2:1-11)으로 말미암아 안수가 보편적으로 거행되었다. 즉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세례시에 안수를 행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7절).
(3) 신.구약 시대의 안수의 개념에 대한 차이점. 구약 시대에는 안수가 제사장, 선
지자, 족장 등의 특별한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해 특별한 대상에게 한하여 행해졌
으나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수께서 친히 행하셨고 사도들, 감독들 그리고 아나니
아(9:17) 등 안수하는 사람과 안수받는 사람들이 매우 다양한 점에서 안수가 매우 보
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에서도 성령의 역사의 필요에 의해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사마리아 교회에 안수를 행하였으며 병자를 치유할 때나(28:8) 하나님의 은사
를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서도 안수를 행하였다(딤후 1:6).
(4) 안수에 대한 자세. 안수가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록 보편화되기는 했으나 안수가
기복 신앙을 위해 행해지거나 감정적, 심리적 방법 등으로 남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
다. 안수는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에 따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그리고 삼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해야 할 것이다.

3. 빌립의 에디오피아 내시 전도(8:26-40)
빌립의 전도와 에디오피아 내시의 영접은 초대 교회의 선교 활동이 예루살렘과 유다
와 사마리아 지경을 훨씬 넘어 아프리카인 에디오피아에까지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보
여준다. 에디오피아는 '구스'라고도 불리며 애굽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창 2:13). 에
디오피아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 복음이
첫걸음을 내딘 것이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이것 또한 이방인 구원에 대한 구약 계시(사
55:5;단 7:14;호 2:13)의 성취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복
음을 받아들인 내시의 자세와 배후에 역사하신 성령의 개입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해
보기로 하자.
(1) '좋은 땅'의 모형인 내시의 탁월한 신앙 인격. 순전하게 복음을 받아들인 내시는 본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었다.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줄잡아 1,500km이상의 거리로, 마차 여행시 적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엄청난 거리이다. 그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예루살렘을 찾아 예배를 드리고 또 귀환 여행시 병거 위에서 이사야서를 탐독한 사실(26,28절)은 그의 신앙이 어떠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더욱이 그는 겸손하게 빌립을 청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며 복음을 들었을 때에도 일말의 주저함 없이 세례를 받았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좋은 신자의 한 모형이라 할 수 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삼십 배, 육십 배, 혹은 백 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마 13:23)과 같이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바로 그러한 예를 보여주는 바, 그는 에디오피아가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에 커다란 초석(礎石)의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이러한 사실은 한 사람에 대한 전도가 수많은 사람들을 소성(蘇醒)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일깨워 준다.
(2) 복음의 확장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일을 이루어나가시거나 본문에 나타난 구원의 역사 또한 성령의 주권적 인도하심에 따라 진행되었다. 직접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나 실질적 복음 확장의 주역은 성령이시다. 빌립에게 명하시고 내시로 하여금 믿게 하시고 또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가신 것은 성령이셨다(29,39절). 이러한 흐름은 '성령 행전'이라고도 불리우는 본서 전반에 나타난다. 그리고 앞 단락에서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던 것처럼 본문에서도 복음을 수용한 내시가 벅찬 구원의 감격과 희열을 느끼며 길을 간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기쁨이 임한다는 특징적 사실을 보여주며 이것 또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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