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 '제자'의 헬라어 '마데테스'(* )는 본서에서처음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공관복음서에서 160회, 요한복음서에서 78회, 본서에서 28회 사용되고 있는데 예수의 12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된 사람들까지 지칭한다.(14:21 ; 요 8:31). 전장에서 유다인들의 탄압에 대한 가말리엘의 변호(5:34-39)와, 채찍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한 사도들의 담대한전도는 제자들의 수를 급증시켰다. 렌스키(Lenski)에 따르면 이 때의 신자의 수는 약20,000-25,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증가되었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히브리파 사람 -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땅에서 출생, 성장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헬라파 유대인'이란 각처에서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Diaspora)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전자는 약간의 헬라어(Greek)를 알고 있으면서 셈어(Semitic language)를 주로 사용했다. 당시 거의 모든유대인들은 적어도 약간의 헬라어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헬라어는 지중해 동쪽 지방의 국제 통용어(lingua franca)였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어라기보다는 오히려아람어(Aramaic)였다고 봄이 더 정확하다. 반면 후자는 아람어를 전혀 모르거나 약간알고 있으면서 주로 헬라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상용어(常用語)인 헬라어로 예배드리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러한 습관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도지속되었다. 이들은 히브리파 사람들보다는 혼합주의적 영향력에 더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히브리파 사람들은 헬라파 사람들보다 선민적(選民的) 배타 의식이 더 강했다. 구제에 빠지므로...원망한대 - 당시 유대교내의 빈민 구제 사업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지역 내의 거주민들 중 극빈한 사람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열네끼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방랑하는 낯선 빈민들에게 사발에다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기독교 공동체의 구제 방식은 위의 두 가지와는 또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구제 대상이 공동체 내의 지역민들인 동시에구제 시기는 또 매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구제를 받은 사실은이미 유대교 사회로부터 소외당했음을 시사한다(Haenchen). 한편 헬라파 유대인들이원망하게된 구체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다. 그들은 매일 매일의식량 배급이나 생필품 지급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보다 푸대접을 받거나 더러는 누락이 되어 불만을 표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의 원성이 교회 안에서 높아감에 따라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2절). 더욱이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상용어가 서로간에 달랐으므로 자연히 따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며 이런 와중에서 서로는 편견과 불평들을 토로했을 것이다.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 당시 사도들은 교회의 중심 인물로서 기독교 공동체를 지도하고 감독했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임으대로처리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회의를 소집(召集)하였고 그 회의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라 그 문제를 처리하였다. 이 회의가 굳이 예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에 의해서 주재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반드시 남자들로만 구성되거나 연령 제한이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회의는 사도들 독단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사도들은단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 예수께서 열 두 사도에게 분부한 우선적인 사명은'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것이었다(마 28:19, 20). 그런데 교회 내에 구제 사업을 비롯한 행정적 일들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사도들은 정작 주력해야 할 복음증거 사역에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들이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교회 안의 행정 처리와 말씀 전하는 일을 이원화 시킬 것을 제안한다. 공궤를 일삼는 것 - '일삼는'의 헬라어 '디아코네인'(* )은 전치사 '디아'(* )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 )의 합성어로서 '먼지가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식사나 기타의 일 등에서 섬기는 것'(요 12:26)을 나타낼 때와 '집사로서봉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딤전 3:10, 13). 영어의 집사에 해당하는 단어deacon은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1절의 '구제'(* , 디아코니아)라는 말도 본 단어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되어 집사들이 교회 안에서 주로 맡은일들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6:1-7 주제 강해 '교회의 직분' 참조). 또 '공궤'의 헬라어 '트라페자이스'(* )는 '식탁'이나 '환전상의 탁자'를 의미하는데'디아코네인 트라페자이스'는 함께 결합하여 특별히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구제 사업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도들이'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하였다고 해서 '공궤'가 기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보다 저급(低級)한 일이라고 단정해 버려서는 안된다. 이는 다만 열 두 사도에게있어 '공궤' 하는 일은 그들이 주께로부터 부름받은 일(마 28:19, 20)보다 우선하지
=====6:3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듣는 사람 - 집사 일을 맡아 볼 사람들의 자격으로서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의 주요 동인(動因)이었기 때문이다(5:32; 8:39;10:19, 38, 44;11:12, 24;16:6).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혜의 충만함'은 성령 충만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혜의 충만함은 곧 성령 충만의 증거도 되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지혜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포괄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혜들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칭찬듣는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이다. 즉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분은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한편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선택하는 본문의 과정은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여호수아를 택하여 세우는 과정과 평행이 된다(민 27:16-20). 입곱을 택하라 - 집사의 수효를 굳이 일곱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제시되나 다음 세 가지가 비교적 타당성을 지닌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 유대인들에게 있어 7이라는 수는 성수(聖數) 또는 완전수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이 임의로 특정한수를 택해야 할 경우에는 대개 7을 택하였다. 그래서 본문의 경우에도 그들의 생활 관례에 따라 7명의 집사를 선택했을 것이다(Lenski, Pulpit Commentary). (2) 유대의 관습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7인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관습을 좇은 것같다(Marshall). (3) 유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지역 책임자들이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유대의제도를 따른 것같다(Haenchen). 어떠한 견해를 따르든 본 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별무리가 없으며 그 문제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7명 정도면구제 사업을 담당하며 교회 내의 사무 및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러한 사례를 본받아 어떤 교회에서는 항상 일곱 집사만을선택하여 세우려 하지만 이는 본문을 잘못 해석하여 적
=====6:4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여기서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사역의 방향이 제시된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안의 사무 행정 등의 문제를 담당한다면 목회자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전하는 사명을 특별히 부여하심(막 16:15)과 함께 늘 기도할것을 말씀하셨고 기도의 모형을 제시하시며 기도를 가르치셨다(마 6:9). 여기서 '기도'의 헬라어 '프로슈케'(* )는 때때로 기도라는 의미 외에 '기도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 예배'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여기서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됐는지는 모르지만, 사도들이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비쳤다면 당연히 성도들도 기도에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이로인하여 기도회(祈禱會)같은 모임이 자주 형성되었을 것이다.
=====6:5
스데반...니골라 - 본 절에서 제시된 일곱 사람의 이름은 모두 헬라명이다. 이 사실만가지고 이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 팔레스틴내에도 헬라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 누가가 여기서 헬라식 이름만을 기재한 사실과 이들을 뽑게 된 직접적인배경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이었다는 점 등을 본다면 이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스데반과 빌립'이 첫번째 언급된 것은 뒤이어 이어지는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즉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들처럼 훌륭한 사역을 감당한 전도자들이다. 한편 본 구절의 '빌립'은 예수의 제자 빌립과는 다른 인물이다(8:5;21:8). 안디옥 사람 니골라 -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은 본 구절의 '니골라'가 계 2:6-15의'니골라당'을 세운 사람과 이름이 같다 하여 양자를 동일 인물로 보아 본 구절의 니골라를 배교자로서 간주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일곱 사람들 중 유독 니골라에게만특별히 상세한 소개를 첨부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Gieseler, de Wette,Ewald).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6:6
안수하니라 - 여기서 사도들이 일곱 집사에게 안수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한 것은 민 27:15-23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여호수아를 자신의후계자로서 지명한 이야기와 평행하는 것 같다 (출 29:1-37 주제강해 '안수에 대하여'참조).
=====6:7
왕성하여...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 '왕성하여'의 헬라어 '으사넨'(* )은 '자라게 하다', '증가하게 하다'는 뜻인 '아워사노'(* )의 미완료과거 능동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 교회를 질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시며 또양적으로도 믿는 자의 수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루살렘 교회의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 내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조차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따르면 예수 당시의유대인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명가량이었고 이중 8,000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한다. 이 제사장들 이 제의(祭儀) 기능을 수행했던 기간은 3대 명절의순례축제 기간과 연 2주간 정도였으며 나머지 연 10-11개월 동안은 고정된 수입이 없었던 관계로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과대제사장들 사이의 사회적인 신분격차는 대단히 컸으며 대제사장들은 항상 제사장들의소득의 십분의 일을 떼곤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별다른 소득이 없는 제사장들은 굶어죽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제사장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따라서 당신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생활과 또한 유대교 자체의 부패상으로 인해서 많은 회의(懷疑)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그들에게는 생명력있는 기독교 신앙이 많은 호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6:8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 스데반에 대해서는 앞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요'(3절)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5절)로 묘사된바 있다. 이 두 표현과 본문의 표현은스데반의 영적자질을 묘사함에 있어 상호 보충적이다. 그리고 지혜, 믿음, 은혜, 권능이 모두는 성령충만에 따른 은사들이다.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다소 애매하다. 4:33과 눅 4:22에서 이는 영적인 매력이나 사람을 끄는 매력(winsomeness)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도 여전히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리고 '권능'(* , 뒤나미스)은 2:22와 4:33에서 각각 '기사와 이적' 및 '은혜'라는 말들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신적인 능력을 뜻한다.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 여기서 스데반이 행한 기사와 표적이 어떤 것들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가가 보도하고 있는 의도로 보아 예수와 사도들이 행한 것과 같은 것들로 짐작된다(2:22, 43;5:12). 한편 어떤 학자들은스데반이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후에야 그 같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다고 하였으나 이는 지나친 추측이다. 스데반과 다른 여섯사람들에 대한 안수가 집사로서의 임명(任命)에 준한 것이었다면 스데반의 그 같은 은사는 이미 그전에 주어진 것으로 보여진다(Marshall). 왜냐하면 그가 안수받기 이전에도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여'(5절) 그나름대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6:9
리버디노 - 이들은 본래 유대인이었으나 B.C. 53년 폼페이(Pompeii)의 유대 토벌후 로마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자유인이된 사람들의 후손이다(the Libertines, KJV;theFreedmen, NIV). 대벧리우스나 아르메니아 번역본에 따르면 이들을 '리비아인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그 정확성 여부가 의심스럽다. 구레네 - 북 아프리카의 구레나이가(Cyrenaica)국의 수도였으며 학술과 문화가 번창한 도시였다. B.C. 321년 프톨레미의 통치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게되었으며 후에는 이들이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 세계 최대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헬라어를 공통어(共通語)로사용하였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학자 필로(Philo)가 태어났으며 70인역(LXX)이 번역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 이 도시에는 약 1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길리기아 -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에 위치한 성읍으로 B.C. 57년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수도는 '다소'인데 이 도시에서 바울이 출생하였다(22:3).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 예루살렘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전용 회당이 있었는데(Chrysostom)이 회당의 수효에 관해서는 학자 간에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1) 여기언급된 다섯 부류 사람들을 위한 다섯 개의 회당이 있었다(Weiss, Lietzmann,Schurer). (2)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들의 회당과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 곧 2개의 회당이 있었다(Wendt, Zahn). (3) 'ghlekd'(* , 테스 쉬나고게스)이라는 말이 단수 형태로 사용되었고 '리버디노' 다음의네 명칭이 모두 성격상 설명적인 보충어로서 사용되었다. 따라서 당시의 회당은 단 한개가 있었다(Jeremias, Bruce, Haenchen). NIV의 경우는 이 마지막 견해와 분명한 일치점을 보인다. 어떠한 견해를 취한다 하더라고 해석상에는 별다른 지장을 주지않지만마지막 견해가 가장 무난하리라 본다.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새 - 이는 스데반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헬라파유대인들 가운데 뛰어들어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학자들간에는 다소 논쟁이 있다. (1) 스데반은 말씀 전파의 사도적(使徒的) 기능을 위해서임명된 것이 아니고 구제를 행하며 그같은 일을 감독하도록 임명되었기 때문에 스데반의 말씀 전파는 저자 누가의 기록 착오이다(Brandon). (2) 스데반이 실제로 말씀을 전파한 것이 아니고 다만 자신의 신적인 이적 행위에 대한 복
=====6:10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 스데반의 적대자들은 여럿임에도 불구하고 스데반 하나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눅 12:12에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눅 21:15에서는 지가혜의 도움을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초대 교회는 이 약속의 진실성을 입증했다.
=====6:11
사람들을 가르쳐...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 적대자들은 스데반의 지혜를 당해내지 못하게 되자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이 하나님과 모세를 모독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게 하였다. 이는 예수께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 내용과 유사하다(마 26:61;막14:58;요 2:19-22). 아마 스데반이 형식주의로 치달은 성전예배의 부패상과 전통 준수에만 급급한 율법주의의 폐단(弊端)을 지적한 데 대해 적대자들이 그릇된 편견을 나타냈을 것이다. 한편 후기의 랍비 율법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공적으로 거론하지 않는한 신성 모독의 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 당시에는 신성 모독을 정의할 때,"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는 민 15:30의 말씀에 따라 광범위한 적용이 가해졌다. 그리고 증인들이 피고가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여 증거하는 것은 신성 모독죄를 심문할때 일반적으로 행해진 순서였다. 하지만 스데반에 대한 유대인들의 증거는 거짓이요모함에 불과했다. 이렇듯 무고한 자를 사형에 처하게 하려고 법정에서 거짓 증거하는것은 극악한 범죄였다(잠 6:17, 19).
=====6: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 스데반의 적대자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스데반을 당할 수 없자 유대교 내의 공권력을 동원 하려고 했다. 장로와 서기관들은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산헤드린에서 스데반을 재판할것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셈이다.
=====6:13,14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 적대자들은 매우 치밀하게 스데반을 공격했다. 산헤드린 앞에 세워진 거짓 증인들은 스데반이 더욱이 예수를 반율법적 이단세력의 원흉으로 몰아붙였다. 이는 곧 기독교 교회 전체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의 복음을 소극적 측면에서 보면 성전 예배의 실제적 병폐들에 대한 신랄한비판으로 이해된다. 반면 적극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진정하고도 새로운관계 회복을 나타낸다. 적대자들은 이 두측면 중 소극적 측면에만 집착할 뿐만 아니라부정적이고 피상적인 의미로만 이해하였던 것이다. 사실 유대교 신자들이나 예루살렘거민들에게 성전에 관한 문제는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많은 예루살렘 거민들이 성전 덕택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 유지와 드려지는 예배를 위해서 세계각처의 흩어진 유대인들로부터 막대한 헌금이 제공되고 있었으며 또 매 절기 때마다 성전 순례자들이 많은 헌금을 바치며 많은 돈을 이 도시에서 소비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은 그 도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수입원(收入源)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공격은 곧 가장 직접적인 저들의 생활권의침해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래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공격한다는 소리를듣고 곧바로 스데반을 소환한 것이다.
=====6:15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 스데반의 얼굴에 천사와 같은 영광이 나타났다는 이 표현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단지 시적, 상징적 표현일뿐 이라고 생각한다(Kuinoel, de Wette). 그러나 이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광채가 나타난 현상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으로써 그리고 그의 임재로 말미암은 영광이 외적으로 반영된것이다(출 34:29-35).
4,5장에서는 외적으로 산헤드린 당국의 핍박을 받는 가운데서도 예루살렘 교회가 끊
임없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았거니와 본장에서도 이러한 핍박의 양상과 이에 적극적으
로 대처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 모습보다도 본장을
통해 확연히 부각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내적 움직임이라 하겠다. 점점 흥왕해지
는 교회를 은혜와 진리 가운데 굳건하게 세우고 더욱 선교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교회 내부의 조직과 체계의 정립이 이루어진 것이다. 본장의 세부적 내용에 대해서는
문단 강해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
자.
(1)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의 증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의 대
상은 대부분 본토의 유대인이었다. 열 두 사도들이 유대인이었고 그 외 예수를 좇은
많은 무리들이 유대인들이었으므로 복음 전도는 자연히 유대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1:13,14). 이러한 이유로 초대 기독교 교회는 유대주의적 요소가 다분했다. 조상 대
대로 전수받은 율법의 유전과 랍비들의 구약성경에 대한 해석은 그들의 삶의 뿌리였다
는 점을 감안할 때 초기 기독교가 그처럼 유대교적 요소와 사고 방식을 가졌음은 충분
히 이해가 되는 사항이다. 하지만 복음은 '조상의 유전한 행실'(벧전 1:18)과는 명백
히 구분되므로, 초대 기독교 교회는 점차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게 마련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긴장과 대립의 분위기가 형성 되
었고 이러한 관계의 심화는 기독교에 대한 유대교의 핍박으로 분출되었다. 이는 복음
이 유대인에게만이 아니요 이방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초대 교회 내에는 이미
이방인들이 있었고 그 수는 점차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여기에 이방 지역에 흩
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Diaspora Jews)의 기독교 개종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
부흥에 있어 큰 역할을 하였다(2:5). 많은 경건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만년에 이르
러 옛 조상들이 묻힌 예루살렘 근교에 자기 유골도 묻히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는데 이
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에 귀의하면서 예루살렘 교인의 수는 날로 증가한 것이다.
(2) 교회 조직의 필요성 대두. 이방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유입하게 됨에 따라 교회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존 유대계 그리스도인
들과 헬라계 그리스도인들간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경제적 배경(background)의 차이
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그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
데 더욱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교회 내부의 조직과 체계를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
게 되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상호간에 지체 의식을 갖고서 제자들에게 부
과된 사랑의 계명(요 13:34)을 실천함과 동시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1:8)는 주(主)의 지상 명령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구체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열 두 사도 이외에 헬라계 유대인들 및 이방인들 가운
데서 일곱 명의 지도자를 선택하였다. 본장에서 이들은 구제 사업을 전담하기 위하여
세움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3절), 실제 이들은 구제하는 일뿐만 아니라 말씀 전하는
일이나(7장;8:40)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음(8:6)을 볼 때 교회의 지도자로서 조금도 부
족함이 없는 자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지도한 열 두 사
도들이 무력하다거나 편협함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능히 이끌어가지 못했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예수의 직계 사도로서 교회를 주도해가는 기둥과 같은 인
물들이었다. 오히려 일곱 지도자를 따로이 세운 것은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善)을 이
루려는 사도들의 관용과 순종의 정신을 일깨워 준다. 과거 예수께서 지상 사역을 수행
하시는 동안 그들은 세속적 야욕에 사로잡혀 다른 일꾼의 사역을 금지시킬 정도로 영
적 암매(暗昧) 상태에 있었지만(눅 9:49,50), 주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의 은사를 체험
한 이후부터는 주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부인(否認)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실제
주의 일을 이루기 위해 겸손히 다른 종들과 협력하였다. 아무튼 예루살렘 교회는 열
두 사도들과 더불어 새로이 세움받은 일곱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더욱 부흥케 되었다.
한편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7절)은 사도들이 헬라파
유대인 가운데서 일곱 집사를 택하며 공궤(供饋)를 전담토록 한 내용이며, 둘째 단락
(8-15절)은 세움받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 스데반의 활약과 산헤드린 공회의 스데
반 핍박을 다룬 내용이다.
1. 일곱 집사의 피택(6:1-7)
본문은 열 두 사도들을 핵심으로 한 유대 중심의 사역에서, 바울을 중심으로 한 본
격적인 이방 선교에로 내용이 전개되는 가교(架橋)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요컨대, 예
루살렘 교회가 일곱 집사를 세운 것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 지
역으로 확산됨에 있어서 건축물의 주춧돌을 놓은 것과 같다고 하겠다. 장 강해에서 이
미 언급한 바거니와 본문에 나오는 '일곱 집사'는 오늘날과 같이 봉사를 중요한 직무
로 하는 '집사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구제, 말씀 증거, 치유 등의 다양한 직무를
수행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
예수의 직계 제자인 열 두 사도들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명실 상부(名實相符)한
최고 지도자들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들 이외에 다른 지도자들이 공적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거시적으로는 그들은 바울의 이방 선교의 전
초적 역할을 수행했던 바, '이방 선교'라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점진적으로 성취되
어가도 있음을 보여 주며, 미시적으로는 '교회 조직의 건립'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전자(前者)의 사항에 관련해서는 일곱 지도자들의 한결같이 이방 문화권에 친숙한
헬라계 유대인들 및 이방 출신의 사람들로서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달리 기꺼이 이방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파하려는 보편적 구원
사상을 가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의 설
교(7:1-60) 내용 가운데서는 유대교의 그릇된 신앙을 비판하고 온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은 당시 이방으로 취급당했던 사마리아 지역에 내려가서 복
음을 증거하였다(8:5-13). 나아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전도 활동을 폈
다(8:26-40). 후자(後者)의 사항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전자의 사항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교회 조직의 동기. 본서의 저자인 누가는 2:42-47과 4:32-37에서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자기의 소유로 하지 아니하고 서로 통용(通
用)하는 생활을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초대 교회의 이러한 생활은 이상적 사회를 만들
기 위한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요 각 사람이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전인격이 변화
됨으로써 초래된 결과였다. 하지만 초대 교회에 이러한 아름다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
었다. 고린도 교회는 특정한 지도자를 따라 형성된 의식 때문에 분쟁과 분열의 어려움
을 겪은 바 있었다(고전 1:10-17).
이제 예루살렘 교회는 각처에 흩어졌다가 유대 땅에 돌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의 수
효가 늘어남에 따라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제 문제에 관한 것이었
다. 기독교로 개종하여 예루살렘에 정착한 디아스포라의 많은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과
부들이 많았고 그들은 오랜 떠돌이 생활 중에 자기들을 돌보아 줄 친척이 별로 없었
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기에는 재정상에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 외에도 예루살렘에는 극빈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직
면하여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스라엘 땅에서 출생, 성장한 유대인들
로서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을 원망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보다 효과적으
로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은 헬라파 유대인의 무리 가운데서 일곱 사람을 택하여 공궤
의 일을 전담시키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지도자를 세워 조직을 갖추게 된 동기는 성도들간
의 불평과 원망을 해소시키고자 상호 지체 의식을 강화시키려고 한 데 있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는 때에 교회의 분열을 막고 결속을 다지는 예루살렘
교회의 조치는 오늘날 모든 교회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교회사상 얼마나 많은 교회들
이 분열을 거듭해 왔던가 ! 그 분열의 표면적 동기가 교리든 윤리적 측면이든 간에 결
론을 놓고 볼 때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교파 싸움과 분파적 다툼은 다 한
가지로 치우쳐 무익할 뿐이다. 관용과 사랑과 서로 용납함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취
해야 할 용단일 것이다. 그래야만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
13:34,35).
(2) 교회 조직의 방법. 본문을 보면 일곱 집사를 선택한 방법은 전교인이 참가하는
투표였다. 이러한 방법은 지도자를 선택할 때 제비를 뽑은 구약 시대의 방법과도 일맥
상통한다(삼상 10:21;대상 24:5;느 10:34). 오늘날 교회는 칼빈주의의 교회 헌법에 따
라 공동 의회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지도자를 택정하는 바, 이는 바로 예루살렘 교회가
지도자를 선택할 때 사용한 방법을 본받은 것이다.
(3) 교회 조직의 목적. 예루살렘 교회가 내적으로 체제를 갖춘 것은 지금까지의 모
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조직의 원형이 된다 하겠다. 이는 특히 예루살렘 교회 조직
의 목적이 '모범적'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첫째, 예루살렘 교회는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를 목적으로 조직을 갖추었다. 예루살
렘 교회의 성도들은 피차 사랑이 뜨거웠고(2:46) 문제가 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나
서서 해결하였다. 흔히 조직을 갖춘다함은 통치의 측면만을 생각하지만, 교회의 조직
은 다스린다는 면보다는 성도들 상호간의 사랑과 평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함이 마땅하
다. '교권주의'(hierarchism)의 맹점은 법의 원칙을 강조한 나머지 정죄와 처분을 위
주로 함으로써 권위와 독선과 아집에 치우치지 쉽다는 사실이다.
둘째, 예루살렘 교회는 기도와 전도에 주력하기 위하여 조직을 세웠다(4절). 교회가
수행하여 할 기능에는 봉사, 친교, 구제 등 여럿이 있지만,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
은 바로 기도와 말씀 증거이다. 기도함으로 성령이 능력을 받고 이 능력으로써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기도와 말씀 증거에 전력을 쏟기 보다는 그
외의 다른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현대의 교회들에게 일대 경종(警鍾)이 될 것이
다. 점점 교회의 문턱이 높아져만 가는 현실은 참다운 교회의 역할과 기능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
* 교회의 3대 사역. '교회'란 일차적으로 성도들의 모임인 유형적 교회라는 뜻이 있
지만 보다 완전한 의미의 교회는 제도적 실체가 아니라 초자연적 실체로서 완성과 내
세(來世)를 향해 성장,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하겠다. 또한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가
몸의 머리되신 자격으로 성령을 통하여 활동하시는 기관이며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속
한 자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영적 은사(恩賜)를 활용하여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
속,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교회가 수행하는 모든 사역의 주권자이시다. 즉 예배는 부활하신
주께서 자기 백성과 만나시는 것이며 복음 전파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초청하는 것
이며 대인, 대사회적인 봉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 정신을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역은 우선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어야 하며 주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의 3대 사역과 그 내용은 간략하게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의 미 | 내 용 |
+-----------------+--------------------+---------------------------------------+
| 케르그마 | 말씀 선포 | 예배, 전도, 교육 |
+-----------------+--------------------+---------------------------------------+
| 디아코니아 | 봉 사 | 구제와 건덕(建德), 사회개발 |
+-----------------+--------------------+---------------------------------------+
| 코이노니아 | 교 제 | 성도간의 화목과 친교, 공동체 의식 |
+-----------------+--------------------+---------------------------------------+
* 교회의 직분. 흔히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는 그 몸의 각 지체로 일컬어진
다(요 15:1-11). 각 지체는 유기체적 조직을 통해서 몸과 연결되듯 성도들 개개인은
'직분'을 갖고 교회에서 봉사하거니와 여기서는 '교회의 직분'에 관하여 간략하게 고
찰해 보기로 하자.
(1) 직분의 수여자.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다(롬 12:3;고전 12:4-6). 세상
에서는 인간 관계나 재능, 학벌, 문벌, 성별 등의 인간 중심적 기준에 따라 사람을 일
정한 직위에 앉히지만, 교회의 직분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뻔드르르한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중심을 보시는 바,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일꾼으로 선택
하시며 사용하신다(삼상 16:7). 따라서 교회에서는 임의로 직분을 주고 받는 것이 아
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직분을 생각함이 마땅하다.
(2) 직분의 성격.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다양성이다(고전 12:5). 이는
교회의 구성원들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개성이나 은사가 모두 다르며, 교회는
한 가지 직무나 은사만으로 운영될 수 없으며, 또한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진정한 하
나됨이 있다는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둘째는, 통일성이다(롬 12:5). 교회의 다양한
직분들은 서로 대립되지 아니하며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유기적 관계에
있다. 이는 각 사람에게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3) 직분의 목적.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성도를 온전케 함이다. 이는 곧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찢어진 그물을 수리하듯이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 일이며(갈 6:1),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역을 끝까지 완성하는 일이다(고전 1:10;살전 3:10). 둘째, 봉
사의 일을 하나됨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의미이다(벧전 2:4,5). 셋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 성도는 각자의 특별한 직분을 사용함으로써 그 자신의 영적으로 성장
하며, 성도의 영적 성장은 곧 교회의 성장으로 직결된다.
(4) 직분의 종류. 교회의 직분은 고정적이지 않다. 초대 교회 이래로 다양한 직분의
교회내에 생기게 되었고 그 직분의 개념과 명칭도 조금씩 변화되어 왔다. 교회의 직분
은 앞에서 제시한 성경 원칙에 맞는 선에서 그 명칭과 직위가 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
다. 여기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오늘날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직분들인
목사, 집사, 교사 등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가) 목사. '목사'를 뜻하는 라틴어 '파스토르'(pastro)는 헬라어 '포이멘'(*
)에 해당하며 이는 '보호하다'(to protect)라는 의미이다. 신약성경에 도합
18회 나오는 이 용어는 양 떼를 지키고 먹이는 '목자'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마 9:36;
막 6:34;눅 2:8;요 10:2)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6:31;막 14:27;요 10:14).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기능상의 차이이지 위치상으로는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벧전
2:25;5:1-4). 즉 목사는 목양(牧羊)의 은사를 강조한 것이며 장로는 목사와 감독을 포
함하는 교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만 감독(*
, 에피스코포스)은 초대 교회 시대 장로들 가운데서 선택된 자로서 일정 지역이나
교회들을 관장했던 특별한 직분인 것으로 존해진다(빌 1:1;딤전 3:1;딛 1:7,Clement
of Rome).
이로 볼 때 목사의 직분은 처음부터 뚜렷하게 구별된 교회의 직분이 아니라 초대 교
회와 중세 카톨릭 교회를 거쳐 종교 개혁 시대 이후 특히 18세기에 이르러 고정되었음
을 알 수 있다. 즉 설교, 예배, 교육, 목양, 행정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목사
의 직분은 오랜 기간의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으며, 이러한 목사의 직능은 시대에 따라
성경에 부각된 목자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고 하겠다.
(나) 장로. 기독교의 장로 직분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장로직에 그 영
원을 두고 있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을 두 부분으
로 나누어 고찰해 보기로 하자.
(a) 구약성경의 장로직.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장로'(* , 자켄)는 왕,
선지자, 제사장과 더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장로'란 한 지역의 덕망있는
연장자로서 그 지역의 정신적, 행정적 지도자이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자였던
것이다. 장로직의 유래와 역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스라엘 장로직의 기
원은 가나안 정복 이전인 유목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창 50:7). 그러나 구체적인
장로직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 이미 팔레스틴의 사회적 제도로 인정되
고 있었고(출 3:16) 출애굽 후 모세가 백성들에 대한 직무를 분담하기 위하여 70인의
장로를 뽑았을 때에 이스라엘의 제도로 정착하게 되었다(민 11:16,17). 둘째, 이스라
엘 장로의 역할은 다양하여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주요한 역할은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관 노릇을 하는 일이며, 그 외에 사회 기강을 세우는 제반 업무
및 중요한 정치, 종교, 사법적 일에 관여하는 일, 군사 지도자로서 조언하는 일, 왕을
간택하는 일(삼상 8:4;삼하 3:17), 상업적 거래의 증인이 되는 일(룻 4:4)등이었다.
(b) 신약성경의 장로직. 이는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이스라엘의 장로직과 긴밀
한 연관을 가진다. 이스라엘이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장로
직은 계속되었고(렙 29:1;겔 8:1) 공동 사회를 대표하고 지도하는 자로서 이스라엘의
장로직의 개념이 신약 성경의 장로직에 전수된 것이다. 하지만 신약성경의 '장로'(*
, 프레스뷔테로스)는 예언이나 가르침의 영적 은사를 소유하
거나(딤전 5:17) 교회를 관장하는 감독직(監督職)이라는 점에서 구약성경의 장로와 성
격을 달리 한다(20:28). 또한 장로직은 '목사직'에 대한 언급에서 밝힌 대로 목양을
담당하는 교회의 지도자라는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지만, 점차로 목사직과 구별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즉 장로는 감독의 자문 위원으로서 교회 행정을 보좌하고
성례전(聖禮典)시 봉사하는 등 직분상 교역자를 돕고 협력하여 교회를 세우는 데 솔선
수범해야 하는 교회의 어린이라 하겠다(Ignatius, 2C초 안디욱 교회의 감독).
(다) 집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노스'(* )는 '종', '섬
기는 자'를 뜻한다. 흔히 '집사'를 언급할 때에는 본문에 나오는 집사직을 연관시키지
만, 이 부분에 언급된 집사들은 장 강해에서 언급한 대로 사도에 버금가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물들이었다. 이 직분에 대한 명확한 언급으로는 빌립보
서 1:1과 디모데전서 3:8-13을 들 수 있는 바, 집사는 굳이 서열(序列)을 따진다면 감
독과 장로 다음가는 위치에 있으며 직능상 감독의 지명을 받아 세움받는 감독의 보조
자로서 교역자의 직무와 예배 의식을 돕고 그밖에 교회에서 봉사하며 외적으로는 가난
한 자, 병든 자, 과부, 고아 등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섰다. 특히 집사는 '섬김의 도'
(막 10:45)를 강조하신 예수의 가르침과 잘 부합하는 직분으로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사역의 기초가 되며 어느 시대이건 간에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하겠다.
(라) 교사. 신약성경에 60여회 사용된 '교사'(* , 디다스칼
로스)는 처음부터 교회의 공직(公職)은 아니었다. 교사는 유대교의 랍비(Rabbi)처럼
초대 교회의 지도자격에 있는 사람들에게 통칭적으로 사용되다가(13:1;엡 4:11) 후에
교회의 체계가 잡혀 감에 따라 장로 및 집사와는 달리 특별히 복음과 관련하여 교육하
는 일을 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된 것이다. 초대 교회 시대 교사로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폴리갑(Polycarp)이라는 자였는데 그는 '아시아의 교사'라
고 불리기까지 했다. 아무튼 교사는 교역자들을 보좌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으로서
교회 학교의 중요한 일꾼으로 인정받는 자들에 한하여 일컬어지게 되었다(롬 16:6-8;
고전 12:28-30).
* 교회 직분 선임(選任)의 조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
직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주님의 일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 있을
뿐이다(고전 4:2). 충성된 일꾼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본문
을 볼 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성령의 충만이다(7:55). 직분을 맡은 자는 성령으로 거듭날 뿐만 아니라 범
사에 기도하는 생활로 일관하여 언제든지 주의 뜻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인간의 재산이나 권력이 교회 직분 선임의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현세태를 볼 때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의 종이 갖추
어야 할 기본 요건이다.
둘째는, 지혜의 충만이다(고전 2:13). 여기서 '지혜'란 일반적 의미의 학식이나 상
식보다는 진리(眞理)를 분별할 줄 아는 학식으로만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
혜를 힘입어야 가능하다. 이는 학문과 학식을 무시하거나 배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학문과 학식이 있어도 그것을 믿음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학문과 학식
은 오히려 구원에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셋째는, 대인 관계에 있어 칭찬을 들을 만한 인격자이어야 한다(딤후 3:17). 수평적
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사실은 자명한 일이다.
주께서도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
씀하셨다(눅 10:2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를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교회 직분 선임의 요건들은 한결같이 인간 내적인 요소들임에 유의
하자. 오늘날 교회가 직분을 선임함에 있어 외적인 요소들, 곧 지위, 학식, 재산 등의
요건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영적 원리를 무시하는 것은 부패와 타락의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2. 스데반의 활약(6:8-15)
본문에서부터 7:60까지는 '헬라파 유대인'인 스데반 집사의 사역과 설교 및 순교 등
에 관한 기록이 전개된다. 본서에는 스데반은 빌립과 더불어(8:5) 베드로의 바통
(baton)을 이어받아 '이방인의 선도' 바울(롬 11:!3)에게 그것을 인계해 주는 다리 역
할을 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스데반의 설교와 순교 사건(7:1-60)의 서론격인 본문은 주로 헬라파 회당에 출입하
면서 전도하다가 대적들로부터 성전과 율법과 모세를 거스린다는 거짓 증거로써 스데
반이 공회에 고소당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대적들이 연합하여 예수를 살해하려고 음
모를 꾸미고 온갖 계책을 동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적들은 의인(義人) 스데반을 죽
이려고 함께 규합했던 바, 본문의 내용을 상고하기 위해 본문에 등장하는 세 부류의
주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보기로 하자.
(1) 살기 등등한 유대교 지도자들. 이들은 예수를 전파는 스데반을 제거하기 위해
위증자들을 내세울 정도로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스데반에 대한 유대교 지도
자들의 살해 음모는 일개인에 대한 핍박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전체에 대한 박
해의 의미를 갖는다. 4장과 5장에서 보았듯이 수차례 사도들을 위협하여 복음 전도를
저지하려고 한 그들이지만,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가 조직을 갖추며 더욱 부흥해 가자
그들은 종교적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기로 계획하고 이러
한 계획에 대한 구체적 실행으로 민간에 혁혁한 기사와 더불어 말씀을 전하는 스데반
을 공회에 불러들여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도들에 대한 핍박이 여러 모로 무위로 돌아가자 사도들 밑에 있는 일곱 집사 중
유력한 한 사람을 희생시키려고 한 유대교 지도자들의 사도는 이권(利權)을 지키기 위
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 술수에 능한 세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2) 음모에 가담한 위증자들. 십계명 중 아홉번째 계명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신 5:20)는 점을 알고 있음에도 스데반을 살해하려는 대적들의 음모를
도운 위증자들은 실상 살인하려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권력에 타협하여 율법
을 거스릴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일에 자기의 양심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3) 초연한 스데반. 대적들의 노기어린 모습과 대조적으로 스데반은 속세나 명리(名利)를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 있었다. 대적들은 뱀과 같이 독을 내며, 소인배들은 조그만 이(利)를 위하여 간사함을 드러내었으나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主)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므로 대적들의 면전에서도 평화와 기쁨을 잃지 않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15절). 사람이 시기와 악독이 가득하면 살기가 충천했던 가인과 같이 악마의 모습을 띠게 되거니와(창 4:5,6) 은혜가 충만하면 어떤 상황에 처하여서도 기쁨과 평안의 모습을 잃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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