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여기 이른바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라는 말은, 주님의재림시의 심판을 생각케 하는 것을 전연 제외하지는 않으나, 그리스도의 초림 시기를가리킨다. 그것은 5절에 그리스도의 초림 시대 곧, 신약 시대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 귀절에 선지자 엘리야(세례 요한)가 그 전(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오리라고 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오신 시대 곧, 신약 시대를"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한 것이 명백하다.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전개시키는 신약 시대는, 은혜로 사람들을 부르는 시대인데그 시대를 어떻게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약 시대를 두려운 날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은 많은 사람의패하고 흥함을 위한 두 가지 방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눅 2:34).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자는 영생을얻으나, 그것을 받지 않는 교만한 자는 멸망을 당한다. 그러므로 이 멸망 당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신약 시대도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다. 이 때에 교만하여 복음을받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불타서 망하듯이 멸망을 당한다.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 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라는말은, 신약 시대의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신앙을 경외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보통이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가리킨다(눅 1:78). 시 84:11; 60:19 참조. 태양이 만물을 살리는 것처럼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본문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가리켜 "치료하는 광선"이라고 하였다. "치료"라는 말은 구원을 가리킨다(겔47:1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씀은, 신자들이 구원의 즐거움으로인하여 극도로 기뻐할 것을 비유한다.
======4:3
"악인을 밟" - 는다 함은, 구원 얻은 하나님 백성의 최후적 승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물론 회개하는 시대 (그리스도 재림 이전 시대)에 완전히 실현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친히 악도들을 멸망시키실 때에 완전히 실현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이 승리에 참여하게 된다. 물론 이 승리가 복음 운동 시대(곧, 신약)에도 겨자씨와 같은 종자로 존재한 것만은 사실이다.
=======4:4
여기서는 선지자 말라기가, 유대인 들더러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한다. 그가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심히 부패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는 그는,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로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직전에 세례 요한(여기서는 엘리야라 함. 5절 하반절)이 오신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다. 이아래 5,6절이 그 뜻이다.
========4:5,6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 이라는 말은,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1절 해석참조."선지 엘리야" - 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는 이유는, 양자의 사역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눅 1:17).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 함은, 그 때에 유대 사회가 타락하여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그런 도덕적 타락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 도덕적 개혁이 진정한 종교를발생시킬 수는 없으나, 진정한 종교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영접할만한 준비는 될 수있다.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도덕적 개혁을 힘쓴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에 오시는 메시야를 영접하게 하려는 것이다(눅 3:4 - 6).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여기 이른바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라는 말은, 주님의재림시의 심판을 생각케 하는 것을 전연 제외하지는 않으나, 그리스도의 초림 시기를가리킨다. 그것은 5절에 그리스도의 초림 시대 곧, 신약 시대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도 하였기 때문이다. 그 귀절에 선지자 엘리야(세례 요한)가 그 전(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오리라고 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오신 시대 곧, 신약 시대를"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한 것이 명백하다.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전개시키는 신약 시대는, 은혜로 사람들을 부르는 시대인데그 시대를 어떻게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 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약 시대를 두려운 날로도 생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은 많은 사람의패하고 흥함을 위한 두 가지 방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눅 2:34).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고후 2:16).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자는 영생을얻으나, 그것을 받지 않는 교만한 자는 멸망을 당한다. 그러므로 이 멸망 당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신약 시대도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다. 이 때에 교만하여 복음을받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불타서 망하듯이 멸망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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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 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라는말은, 신약 시대의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신앙을 경외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보통이다.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오실 것을 가리킨다(눅 1:78). 시 84:11; 60:19 참조. 태양이 만물을 살리는 것처럼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본문은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을 가리켜 "치료하는 광선"이라고 하였다. "치료"라는 말은 구원을 가리킨다(겔47:12).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는 말씀은, 신자들이 구원의 즐거움으로인하여 극도로 기뻐할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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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을 밟" - 는다 함은, 구원 얻은 하나님 백성의 최후적 승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물론 회개하는 시대 (그리스도 재림 이전 시대)에 완전히 실현될 일은 아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친히 악도들을 멸망시키실 때에 완전히 실현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이 승리에 참여하게 된다. 물론 이 승리가 복음 운동 시대(곧, 신약)에도 겨자씨와 같은 종자로 존재한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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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선지자 말라기가, 유대인 들더러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한다. 그가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그 시대가 심히 부패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차 오실 메시야를 내다보는 그는, 메시야를 맞이할 준비로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직전에 세례 요한(여기서는 엘리야라 함. 5절 하반절)이 오신 목적도 이것을 위한 것이다. 이아래 5,6절이 그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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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 이라는 말은,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1절 해석참조."선지 엘리야" - 는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세례 요한을 엘리야라고 하는 이유는, 양자의 사역 성격이 유사하기 때문이다(눅 1:17).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 함은, 그 때에 유대 사회가 타락하여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그런 도덕적 타락을 개척하겠다는 뜻이다. 도덕적 개혁이 진정한 종교를발생시킬 수는 없으나, 진정한 종교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영접할만한 준비는 될 수있다.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은 도덕적 개혁을 힘쓴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에 오시는 메시야를 영접하게 하려는 것이다(눅 3:4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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