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스가랴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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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 12:1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 여기 "경고"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맛사이니 협박하는 예언(threatening Prophecy)을 가리킨다. 이것은 경성 하지 않는 자를 깨우치기 위한 교훈이다.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가 가라사대" - 사 43:15; 암 4:13 참조. 이렇게 하나님을 창조자로 칭호 하는 목적은, 그가창조적 능력으로써 이 아래 관설된 위대한 일을 하실 자이심을 알리려는 것이다. "하늘을 펴신"다 함은, 천공에 무수한 천체들을 유지하심을 이름이다. 하나님 께서 물질계에 하신 일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이 일이다. 오늘날 발달된 문명도 천체들의 세계 곧, 우주를 지향하고 새로운 발달을 도모 하고 있다. 그 세계는 크고 오묘하다."땅에 터를 세우심"은 또 한 가지 그의 일의 장관이다. 땅은 어떻게 그 궤도 대로 운전되도록 구조 되었는가?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초로 한 것이다.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자"도 전능하신 하나님 밖에 없다. 심령은 위에서 마랗다 하늘이나 땅 보다오히려 만들기 어렵다.

슥 12:2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국민 에게 흔취케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미치리라 - 열국은 예루살렘을 전취 하려고 왔으나드디어 힘을 잃고 패망하게 될 터이다. 그것은 마치, 에루살렘이 저들에게 마취제 같이 된 셈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성경에서 취하게 하는 음료로 비유된다(사 41:17).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통하여 열국에게 진노를 나타내실 것이다. 이 예언은, 신약 시대에 교회가 이방 세력의 박해를 받는 중에도 오히려 복음은 승리할 것을 비유적으로 가리킨다(Lange). "국민"이라는 말은 민족들을 가리킨다.

슥 12:3
그 날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리니 무릇 그것을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라 천하 만국이 그것을 치려고 모이리라 - 여기 "모든국민"은 열국의 민족들을 가리킨다. "무거운 돌이 되게" 함은, 무거운 돌을 쳐들어 보려는자가 결국 그 자신이 상처를 당하고 말 것을 가리킨다. 열국은 예루살렘을 치려다가도리어 자기들 편에서 손해를 보고 만다. 이 "돌"은 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단 2:45; 사 28:16; 슥 3:9; 눅 20:17; 마 21:44).
마르티(K. Marti)는, 여기 "무거운 돌"에 대한 말씀은, 헬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수입된 경기의 풍습에서 왔다고 한다. 곧, 청년들이 힘내기를 하면서 무거운 돌을 쳐들었는데 그리 하다가 흔히 몸을 상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합당치 않다.

슥 12:4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며 그 탄자를 쳐서 미치게 하되 유다 족속은 내가 돌아보고 모든 국민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리니 - 이 귀절은, 하나님께서 유다의 적군들의 병력을 권능으로 꺾을 것을 예언한다. 놀라게 하거나 눈이 멀게 하여 패전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왕하 6:18; 삿 7:22; 삼상14:20). 그리고 그가 "유다 족속은......도랑보" 신다고 하였으니, 그런 일은 역사상에 있다(삼상 7:5-11; 느 1:11; 사 37:36).
이 귀절에 기록된 세 가지 재앙("놀라게"함, "미치게"함, "눈 멀게"함) 은 하나님을대적하는 자들에게 내릴 것으로서, 모세가 일찌기 말한 바도 있다(신 28:28). 그렇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는 언제나 천벌로 망한다. 불란서 왕이 기독교를 반대하며개혁자 안드류 리베트(Andrew Rivet)를 위협할 때에 리베트는 왕에게 담대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교회는 많은 쇠망치를 부러친 쇠모루입니다"라고 하였다.

슥 12:5
유다의 두목들이 심중에 이르기를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찌라 - 곧,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 거민들이 힘이 된다는 뜻이다. 그들(예루살렘 거민들)이 저 지도자들에게 힘이 되는 원인은, 그들(예루살렘 거민들)이 하나님 곧, 만군의 여호와의 택한 백성이므로 그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다(10:12, 3:2, 1:17, 2:11). 시 87:2 참조.
이렇게 단체의 일이 잘 될 때에는, 그 단체의 성원들이 서로 높인다. 곧, 남이 나에게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힘의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슥 12:6
그 날에 내가 유다 두목들로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며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하리니 그들이 그 좌우에 에워싼 모든 국민을 사를 것이요 예루살렘 사람은 다시 그본 곳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리라 - 이것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 곧, 복음 전도자들이모든 불신앙과 죄악의 적들을 이기고 교회도 왕성케 할 것에 대한 비유이다(Pusey).
교회의 원수들은 언제든지 교회를 없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회(예루살렘 사람으로 비유되었음)는 늘 그 본곳(제 자리에 그대로)에 있다.

슥 12:7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리니 이는 다윗의 집의 영광과 예루살렘 거민의영광이 유다보다 더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유다 지방을 예루살렘보다 "먼저 구원"함은, 구원이 하나님께로서 온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유다 지방은 예루살렘과 달라서 방위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원이 거기 먼저 임하였다면, 그것은, 전연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집"(곧, 이스라엘 왕족이나 예루살렘 거민)과 꼭 마찬가지로 유다 지방 백성도 사랑 하신다. 그러므로 그는 오히려방위가 없는 유다 지방 사람들을 먼저 구원 하신다(렘 9:24; 고전 1:31; 고후 10:17;갈 3:28; 눅 10:20; 약 2:5).

슥 12:8
그 날에 여호와가 에루살렘 거민을 보호 하리니 그 중에 약한 자가 그 날에는 다윗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나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여호와의 사자 같을 것이라 - 이것은 신약 시대에 신자들이 어떻게 큰 은혜 받을 것을 보여 준다. 여기 "약한 자" 라는말은, 히브리 원어로 닉솰이니 "넘어진 자"(Stumble)를 의미 한다. 넘어진 자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올 때에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된다. "다윗의 족속"이라는 문구는, 베트 다위드이니 다윗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다윗의 왕퉁을 의미하나니, 그영광이 하나님 같이 나타나기는 그리스도(다윗의 후손이심)로 말미암은 구속 사업으로되었다. 그러므로 이 문구는 오실 그리스도를 내다보는 말씀이다. 더욱이 무리 앞에있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명칭은 실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니 만큼, 위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염두에 둔 것임이 분명하다. 칼빈(Calvin)도 그런 의미로 해석하였다(Minor Prophets, Vol. V. p. 357).

슥 12: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 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 사람은 아무리 힘써도 성공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엇을 목표 하시고 힘쓰시는 것은그대로 다 이루신다. 그는 교회의 원수들을 멸하실 것을 힘쓰신다고 하셨으니, 교회의 원수들은 그 앞길이 캄캄할 뿐이다.

슥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 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 이것은,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 끝에 일어난 회개 운동으로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행 2:37-41). 거기 말하기를,"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 들아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이라고 하였다.
신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신 고난을 생각하고 애통하는 것은, 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할 이유는, 그들의죄 때문에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혹 우리가 잘못 생각 하기를, 예수님이 우리를대신하여 죽으셨으니 우리는, 기뻐할 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생각 밑에서 죄를 아프게 여겨야한다. 자기 죄에 대하여 통분히 여길 줄 모르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없다.
자기의 죄를 슬퍼할줄 모르는 자는 구원 소망이 전연 없다. 야고보는 말하기를,"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라고 하였다(약 4:9). 우리 본문에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라고 했으니, 이는 진정한 슬픔을 의미하며, 깊은 슬픔을 의미한다. 자기 죄가 메시야를 죽인 일에 대하여 이런 진정한 슬픔을 가진 자들은 진정한 영적 희열을 가진다.

슥 12: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자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같을 것이라 -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은, 요시야 왕이 거기서 전사한 때에 유대인들이 슬퍼하였음을 의미한다(대하 35:22). 유대인들이 추앙하던 왕의 죽음은 그들의큰 슬픔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메시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신자들의 슬퍼할 일이다. 이것은 단지 육체적 슬픔이 아니고 회개의 슬픔이니 신령한 것이다.
모든 참된 신자들은 다 눈물을 소유한다. 눈물 없이는 십자가를 깨닫지 못한다.눈물은 부드러운 마음의 표현이다. 부드럽지 않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으니 어찌 십자가를 깨달으랴? 그러므로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눈물의 골짜기를 지남이 없이 하나님의 품에 이르는 길은 없다. 실망, 낙담, 응답되지 않는 기도, 이것이 있고서야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실망, 낙담할만한 때에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한다.

슥 12:12-14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다윗의 족속"은 유대의 왕족이고, "나단의족속"도 그러하다(나단은 다윗의 아들임). 그리고 "레위의 족속"은 제사장 족이고, "시므이의 족속"도 그러하다(시므이는 레위의 증손임-민 3:18). 스가랴가 여기서 왕족과 제사장족을 들어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케 한다. 여기 "따로"라는 말이 열 한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회개의 애통을 진실하게 또는 착실히 가져야 할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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