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요나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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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본장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의 내적인 상태를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의 내용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 본절은 4:2과 마찬가지로 이미 경험한 고통에 대해 기도한다는 표현이다(M.C.Griffiths). '기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트팔렐'(* )은 히트파엘 동사 미완료형으로 지속적이면서도 강한 재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스올의 뱃속(2절)이라고 비유될 정도로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한 물고기 뱃속에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계속적으로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2:2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 '스올의 뱃속에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베텐 쉐올'(* )은 '무덤의 깊은 곳에서'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요나가 죽었었다는 것을 지지하지는 않는다(C.L.Feinberg). 다만 요나는 자신이 죽은거나 다름없다거나, 죽은 자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2:3
본절은 매우 역설적인 기도 내용이다. 왜냐하면 요나는 심각한 역경을 토로하고 있는데, 자신에게 역경을 허락하신 주체가 바로 그의 기도 대상인 주님이기 때문이다. 요나는 주께서 자기에게 고난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하고 있다. 이는 요나의 훌륭한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주의 파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바레이카'(* )는 원래 '파괴자들'(breakers)을 의미하는 것으로 요나가 자기에게 닥친 하나님의 징계가 대단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실감한 듯하다. 이와같은 표현은 고라의 시편(시 42:7)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암울한 자신의 형편을 토로할 때 사용되었다.

=======2:4
3절에서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요나는 자신이 처한 암울한 상태를 주의 언약과 관련하여 이해하고,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백을 한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 본절은 자신이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쫓겨나는 꼴이 되긴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표현이다(H.L.Elison). 사실 요나는 자신의 의지를 따라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였지만,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다'고 표현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으로부터 격리되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로우심을 의지하는 태도이다(시 42:2-5). 아무리 죽음과 고통 중에 거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은 인생들에게 참된 힘이 된다(사 40:31).

========2:5
본절은 3절에서 시작된 요나 자신이 처한 상황, 즉 깊음 속으로 빠져든 자신의 처지를 계속 토로한다. 본문은 그의 절망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자신이 인간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그리면서, 자신이 인간적인 어떠한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음을 고백한다.
물이 나를 들렀으되...바다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 물 속에 빠져 급기야는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살아날 수 없음을 나타낸다.

=======2:6
내가 산의 뿌리까지...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니 - '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아레츠'(* )는 문맥상 '아래의 땅'(earth beneath), '하계'(下界,land beneath)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이는 땅 속에 있다고 하는 '죽은 자들의 장소'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요나가 필연코 죽을 운명임을 깨달았을 것을 보여준다(H.L.Elison).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 셈족의 문화권에서 '구덩이'는 통상 죽은 자의 영역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요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이 아니면 자신은 완전히 죽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시 30:3). 요나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구원자라는 사실과 장차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 '피곤할 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히트아테프'(* )는 문자적으로 '덮혔을 때', '압도되었을 때'(시 142:3; 143:4)라는 의미로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탈진된 상태를 나타낸다. 이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를 생각했다는 사실은 구원얻은 자의 특성이기도 하다.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 아무리 암울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달음박질하여도 피곤치 않을 정도로 새 힘을 공급받게 되며(사 40:31), 영혼이 소생된다(시 23:3). 특히 '주의 성전'(* , 헤이칼 카데쉐카)은 4절에서 지상의 성전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하늘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H.L.Ellison),요나는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2:8
요나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내용을 부각시키기 위해 우상 숭배자의 실상을 대조시킨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니 - '은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세담'(* )은 언약적인 용어로 요나가 그의 동족 중에서 우상 숭배자들을 염두에 두고 본절의 말을 했다면, '한결같은 사랑' 내지는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구원의 근원이시며 지고의 선이시라는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상이 거짓되고 헛되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우상을 섬기며 그것들로부터 행복과 기쁨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을 지적한다(렘 2:5-13).

========2:9
본절은 앞 구절과 대조적으로 요나 자신이 우상 숭배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면서, 궁극적인 구원이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주어진다는 믿음의 내용을 밝힌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것이다.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 '여호와께서...명하시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요메르 아도나이'(* )는 직역하면 '여호와께서...말씀하셨다'(KJV,NEB,RSV,JB)라는 의미이며, 이런 용어는 하나님의 창조에 사용된 것으로 단순한 명칭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창 1장).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 동안 살아 있었던 일이나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로 뱉어낸 사건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기이한 현상이다. 이런 일은 인간적인 과학 이성으로 규명되지 않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만큼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을 예표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마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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