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다니엘 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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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금 신상을 만든 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느부갓네살이 인도에서 이디오피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는 한편 직접적으로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인 즉위 18년째 되는 해로 추정된다(LXX, 데오도숀역). 한편 예루살렘 함락을 느부갓네살 19년으로 기술한 왕하 25:8과의 상이점은 유다와 바벨론의 연대기력상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금 신산을 만든 목적은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세력 확장과 정복을 기념하고 금으로 비유된(2:38) 자기 왕국의 영원성을 기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교만과 세상 제국의 부패한 우상 숭배적 경향을 여실히 반영한 것으로 2:47의 고백이 지극히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알게 한다.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 이는 신상 전체가 금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그 신상의 규모에 비추어 금도금을 입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출 30:1-3;37:25, 26;민 4:11). 한편 신상의 모양에 관해서는 견해가 분분한 바, 톰슨(Thomson)의 경우에는 겔 16:17과 같이 오벧리스크 유형의 '남근'(男根) 신상으로 보며, 델리취(Delitzsch) 등은 2장에 언급된 사람 형상의 신상으로 단지 다리 부분만이 기둥 형태로 되어진 것이라고 본다.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 고대 사람들은 이 '두라 평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유브라데쪽을 향한 카보라스 입구로서 갈그미스와 근접한 곳이며 이는 바벨론 성밖에 위치한다. (2) 아포니아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티그리스 맞은 편에 위치하며 이는 바벨론 성 내에 위치한다. 그러나 좀더 타당성 있는 (2)의 경우도 실제적으로는 바벨론의 수도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이를 그 수도 인근 남동쪽에 있는 두라라는 지명의 작은 언덕으로 이해한다(Delitzsch, Oppert).

=====3:2,3
낙성 예식에 바벨론의 전관리가 동원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절대적인 권한과 바벧론의 우상 숭배 성향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방백'(* , 아하쉐다르페나아)은 각 도시 지사로 바벨론 각 성의 주요 책임자를, '수령' (* , 시그나야)은 각 성의 군대 장관을, '도백'(* , 파하와티)은 각 성의 민간 행정관을, '재판관'(* , 아다르가제라야)은 중요한 재판의 결정권자인 감독관을, '재무관'(* , 게다베라야)은 국가에 속한 공공 재산의 관리자를 '모사'(* , 데타베라야)는 법률에 정통한 법률 전문가를, '법률사'(* , 티프타예)는 '우두머리'란 뜻이 포함되어 있는 말로 재판을 관리하는 자를, '(각 도의) 관원'(* , 쉴르토네)은 각 도에서 구겅을 담당하는 일반적인 정부 관료들을 의미한다. 한편 본문의 '낙성 예식'(* , 하누카트)은 신전(왕상 8:63;대하 7:5;스 6:16)은 물론 일반적인 집의 봉헌에도 사용되는 말인 바(신 20:5), 본문의 낙성 예식은 명백하게 종교 의례와 연관을 갖는다(Delitzsch).


=====3:4
반포하는 자(* , 카로자) - '선포하다', '조서를 내리다'란 뜻의 '케라즈'(* )에서 파생된 말로 왕의 명령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는 '전령'이나 '사자'(使者)를 가리킨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 여기서 '백성들'은 바벨론 본토에 거하는 자들을, '나라들'은 바벨론에 정복된 속국들을, '방언하는 자들'은 그 속국을 포함한 바벨론의 영토에 사는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각각 가리키는 바, 이는 바벨론 제국에 속한 모든 자들을 일컫는 강조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3:5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절하라 - 본절에서의 '악기 소리'는 모인 회중에게 정확한 예배 시간을 알리는 동시에 이 신상 낙성 예식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고대의 종교 예식에 있어서 악기는 그 예식의 중요 요소였던 바(느 12:27;시 30:1), 바벨론의 경우는 시 137:3;사 14:11 등에서 잘 나타난다. 특히 우상 숭배 예식에 있어서 이러한 악기는 사람들의 의식을 광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가기 위한 의도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3:6
본절은 앞절의 내용에 불복하는 자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서, 이러한 예식이 극히 엄하고 강압적인 상황 속에서 진행된 사실을 알게 한다. 한편 고대에 있어서 피정복자는 정복자의 신을 섬겨야 했는데, 이는 피정복자는 신보다 정복자의 신이 더 강하다는 의식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자의 신에게 경배하지 않는 태도는 정복국에대한 반역 행위로 간주되었다(Delitzsch). 즉시...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 여기서 '즉시'(* , 솨아타)는 '순간'이란 뜻으로서 극히 짧은 시간의 간격을 말하는 바, 바로 그 낙성 예식의 장소에서 처벌이 이루어질 것이란 사실을 암시한다. '풀무'(* , 아툰)는 '용광로'란 문자적 의미로 벽돌을 굽거나 금속을 녹일 때 사용되던 가마솥을 가리킨다. 한편 고대 근동에 있어서 이러한 화형의 형벌은 흔하게 나타난다(창 38:24;레 21:9;렘 29:22).

=====3:7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절하니라 - 2, 3, 5절에 이어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이란 말은 다분히 이 예식이 정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곧 느부갓네살은 종교적 의미 외에도 자신의 통치 권한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자신에 대한 피정복민들의 충성을 강요하는 방편으로서 이 예식을 준비한 것이다.

=====3:8-12
이미 반포된 왕의 명령을 인용해(5, 6절) 몇몇의 갈대아인들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참소하는 내용이 기술된다.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 여기서 '사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브린'(* )은 '강하게 되다', '큰 힘을 가지다'란 뜻의 '가바르'(* )에서 파생된 말인 바, 이 '갈대아 사람들'은 아마도 바벨론의 엘리트 계층인 갈대아 출신으로 왕 앞에 설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진 귀족들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들은 포로 출신인 유다의 세 젊은이가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에 심한 시기와 질투를 느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NIV등은 이들을 '몇몇의 점성가'로 번역하기도 한다.
참소하니라(* , 아칼) - 문자적으로 '먹다', '삼키다', '테워버리다'란 뜻을 가지는 바, 유다인들에 대한 이러한 고소가 곧 그들을 철저하게 멸절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게 한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 2:4 주석을 참조하라.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 갈대아인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왕에 대한 반역과 국가적인 이적 행위 그리고 종교적인 불순종의 죄를 저지른 패역한 범죄자로 고소하였다. 한편 본문에서 참소의 대상에 다니엘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가 공무상 출장을 갔거나 심한 병(8:27)을 앓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Thomson).

=====3:13

왕의 명령에 불복한 세 친구들에 대한 왕의 심문과 그들의 투철한 신앙 절개가 18절까지 진술되는 바, 본문(13-18절)에서 왕의 심문은 회유와 협박이라는 두 측면으로 나타난다(15절).
노하고 분하여(* , 비르가즈 와하마) - 문자적으로는 '분노하여 격렬하게 성을 내고', 곧 극도로 격양된 느부갓네살의 내적, 외적 상태를 잘 드러낸다.


=====3: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 불복한 세 친구들을 곧바로 풀무불에 던지지 않고 자신의 앞으로 데려오고, 최소한의 법정적 절차를 밟게 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이 참소자들의 참소 동기(시기와 질투)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은총을 받은 이들 인재를(1:19, 20;2:49) 끝까지 구하고 싶어 했음을 암시해준다.

=====3:15
회유와 위협이 곁들인 왕의 심문이 기술된다. 한편 혹자는 전반부의 황의 회유에 이은 후반부의 위협이 급격한 반전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당한 부분의 양쪽의 대화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한다(Thomson).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 LB는 '내가 너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겠다'(I'll give you one more chance)라는 알기 쉬운 의미로 번역했다. 한편 이러한 기회의 제공에 미루어 아마도 이 낙성 예식은 여러 날 지속된 것으로 보여진다(Thomson).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세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 여기서 '손'(* , 야드)은 상징적으로 '세력'(사 47:14) '권세'(대상 18:3)란 뜻을 가지는 바, 느부갓네살이 막강한 권세를 배경으로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교만을 드러내며, 나아가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과 자신이 섬기는 바벨론의 신(므로닥)보다 열등한 이방의 신들가가 동등한 위치로 격하시키는 신적 모독의 형태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출 32:30-32;사 37:10-13). 느부갓네살의 이러한 신관은 2:47로 미루어 보아 각 신들을 특정한 분야에 국한시켜 숭배하는 이방인들의 다신론적 신 개념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서, 아마도 하나님을 특정한 계시의 신으로 국한시켜 이해한 까닭에 이러한 무력적 상황은 하나님의 영역 밖의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Thomson).


=====3:16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 '이 일'(* , 데나 피트감)은 원어상 '이 조서'(스 6:11)란 뜻으로 반포된 칙령을 가리키나, 문맥상 여기서는 조서와 차후에 벌어질 상황 모두를 함축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여기서 여호와 신앙에 비추어 당할 형벌에 대해 감면을 호소하지 않겠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여호와 신앙과 왕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우상에게 절하라는 이 조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3:17본절에
언급된 세 친구들의 말속에는 구원에 대한 특별한 이적의 기대나 미신적인 생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 신앙에 입각하여 차후에 발생할 모든 일에 대해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겸손한 순종으로 일관하고 있다(Hitzig, Delitzsch, Welt).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생명을 부지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세 친구의 신앙 고백적 표현으로, 어떠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그에 대한 신앙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전인격적인 결단의 결과인 동시에 진정한 믿음의 진수를 보여준다.


=====3:19
낯빛을 변하고(* , 첼렘 아느포히 에쉬타노) - 문자적 의미는 '그의 얼굴 형체를 바꾸고'이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분노가 얼굴을 통해서 극명하게 표출되었음을 시사한다.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 여기서 '평일'(하제, * )은 '응시하다', '바라보다'란 어의 외에 '익숙하다'(wont to be, KJV, RSV)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평일보다'라는 말은 익숙해 있는 상태 곧 '평상시보다'(usual, NIV, LB)라는 뜻이다. 또한 '칠 배'는 고대에 흔히 통용되던 '7'이란 숫자의 상징성(레 26:18-24;신 28:7;시 12:6;마 18:22)에 비추어 단순한 7배가 아닌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최대한'을 가리킨다. 이러한 느부갓네살의 과격한 명령은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겠다.

=====3: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 - 왕이 시위대 중에서 가장 용맹한 군인을 선택한 이유는 다니엘의 세 친구에 대한 처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분노를 보여주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3:21
고의와 속옷과 겉옷과 별다른 옷을 입은 채 - 여기에 언급된 옷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먼저 '고의'(* , 사르발)는 원어상 외투식의 긴 겉옷(coats, KJV;robes, NIV;mantels, RSV)을 가리키나(Delitzsch) 70인역(LXX) 등은 이를 '신발'로 번역했다. '속옷'(* , 파티쉬)의 문자적 의미는 '망토형의 가운'(tunics, RSV)으로서 겉옷 위에 걸치는 것을 가리키나 NIV는 이를 '바지'(trousers)로 번역하고 있다. 또한 '겉옷'(* , 카르벧리)은 원어상 '소매없는 외투'나 '(머리에 감아 쓰는) 두건'이란 뜻을 함께 내포하나 대부분 후자의 뜻을 취한다(hats, KJV, RSV;turbans, NIV). '별다른 옷'(* , 레부쉐혼)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으나 아마도 발과 머리를 덮는 또 다른 종류의 의복으로 생각된다(Delitzsch). 이러한 옷들은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란 점에서 이후에 벌어질 하나님의 이적적인 구원 능력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Thomson). 한편 70인역(LXX)와 데오도숀역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본절을 '그들의 신을 신고 머리에 모자를 쓰고 겉옷을 입은 채...던져졌다'라고 간략하게 번역한다.

=====3:22,23
세 친구를 붙든 자가 불에 타 죽었다는 사실은, 일차적으로는 풀무불의 뜨거운 정도를 강조함으로써 세 치구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더욱 부각시키고, 이차적으로는 의인을 해하려는 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꾀에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부여준다(6:24;에 7:10). 한편 페쉬타역은 불에 타 죽은 자들을 세 친구를 참소한 자들(8절)로 해석한다.

=====3:24
때에 - 원문상 이는 그들이 풀무불에 떨어진 사건의 시간과 상황에 경과를 단순하게 제시할 뿐이나, 70인역(LXX)과 데오도숀역은 23절과 본절 사이에 세 친구들의 구원의 송가를 삽입하여 여기서의 '때에'를 '왕이 그들의 찬송 소리를 듣고 그들이 살아있음을 본 그 때에'라는 보다 구체적인 시점으로 해석한다.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 여기서 '놀라'(* , 테와)는 '간담이 서늘하도록 놀라다', '의아해 하다', '신기하게 생각하다'란 뜻의 '테마'(* )와 동의어인 바, 눈 앞에 벌어진 기이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충격의 정도를 보여주는 말이다. 한편 본절의 '모사'(* , 하다브린)는 왕의 곁에서 구정에 관한 자문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장관이나 참모 등의 고위 관리들을 가리킨다(6:7).

=====3:25
왕이 눌랐던 상황(24절)이 구체적으로 진술된다.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 이에 대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보 보는 겨해와 하나님의 사자(28절) 곧 천사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한편 느부갓네살은 '신들'(* , 엘라힌)이란 복수형의 표현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천사를 다신론적 신 개념에 의한 신들의 계보란 관점에서 이해한 듯하다(바벨론의 '말둑'은 헤아(Hea)의 아들로 언급된다). 특별히 풀러(Fuller)는 '아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르'(* )의 어의를 그들의 '불의 신'(이즈 바르)에서 찾는다.

=====3:2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 느부갓네살의 이 말 역시 이방적 사고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도 하나님을 유일하고 참된 신으로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각 신 사이에 차등을 두는 이방적 시각에서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신으로 말하고 있다(2:47, Delitzsch). 70인역(LXX)은 이러한 사상에 주안점을 두어 이를 '지극히 높은 신들의 신'으로 번역한다.

=====3:27
이 사람들이 본즉...없었더라 - 여기서 '본즉'(* , 하자인)은 '주시하다', '응시하다', '숙고하다'란 뜻을 가지는 바, 그들이 불 가운데서 나온 세 친구들을 유심하게 살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상황에 고위 관리들이 함께 배석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세 친구들이 수호한 신앙 양심의 정당성을 입증하게 되어 참소자들의 말문을 막게 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제 하나님게서는 은밀한 것에 대한 절대적 계시자로 자신을 드러내 부이신 데 이어 바벨론인들이 가장 강력한 것으로 여기는 불의 주인으로 자신을 나타내심으로써 세 친구의 바벨론에서의 신앙 생활의 장애를 제거해 주셨다(Thomson).

=====3:28
다니엘의 세 친구의 순교적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보호의 결과로 되어진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의 찬양이 30절까지 이어진다. 이 마지막 문단은 본장의 결론부로서 교만한 세상 권력과 이방 우상에 대한 여호와 신앙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의 하나님 -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을 자기와는 무관한 제3자의 하나님으로 호칭함으로써 하나님 찬양이 하나님께 대한 전인격적 결단과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본절의 '사자'(* , 말르아크)는 '파견하다'란 어의에서 유래된 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파견하신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킨다(25절). 자기를 의뢰하고...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 느부갓네살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순교를 각오한 신앙 용기를 가지고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세 친구의 투철한 믿음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의뢰하고'(* , 레하츠)는 '봉사하다', '시중들다'란 일차적 의미와 '믿다'란 이차적 의미를 함께 내포하는 바,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온전한 주인으로 섬겨 전적으로 믿고 따른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편 '왕의 명을 거역하고'의 '거역하고'(* , 쉐냐)는 원어상 '변경하다', '바꾸다'란 뜻으로, 고대 군주들의 반포된 조서는 거의 변경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개역 성경의 번역 '거역하다'처럼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NIV, LB는 '왕의 명령에 도전했다(반항했다)'로 번역한다(defied).

=====3:29
세 친구들의 신실한 신앙은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은 물론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보전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탁월한 명예(30절)까지도 얻을 수 있게 했다. 그 몸을 쪼개고...삼을지니 - 2:5 주석을 참조하라.

=====3:30
더욱 높이니라 - 여기서 '높이니라'(* , 첼라흐)는 '돌진하다', '번영하다'란 뜻으로서 모든 방면에 있어서 세 친구들의 위상이 탁월하게 높아진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맛소라 원전은 4:1-3을 본절 뒤에 31-33절의 형태로 첨가시키고 있다(4:1 주석 참조).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한 사건은 왕 자신에게나 그 당시의 바벧론 백
성들에게 세상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주는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하
나님의 나라(뜨인 돌)가 궁극적으로 세상 나라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확신을 전달해 주
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처음에는 지극히
겸손한 자세를 취하였다(2:46, 47).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왕의 신앙적 이해는 온전
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다. 본장에 이르러 느부갓네살 왕은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
고 바벧론에 속한 관리들로 하여금 숭배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러한 사건은 느부갓
네살 왕의 무지함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방 세계 속
에분며하게 계시하느 기회가 되었다. 즉 2장에서 하나님은 꿈을 해석하는 절대자로
소개되었으나, 본장에서는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살
아계신 분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느브갓네살 왕이 금 산상을 세우는 일련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전받=부(1-7절), (2)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의 신앙적 대응을 묘사하는 준반부
(8-18절), (3) 불 가운데서의 구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9-3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가 어떠한 환란과 고통 속
에 처한다 할지라도 온전히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세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다니엘의 해몽
으로 자신의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위기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2:31에 사용된
'신상'이라는 단어와 1러의 '신상;은 동일한 단어이다. 이는 1절의 신상과 느부갓네
살 왕의 꿈에 나타난 신상이 매우 유사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왕이 신상을 세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자신의 꿈 속에 나타난 신상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왕
은 다니엘과 꿈에 대한 해석을 듣고 모종의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뜨인 돌'이 신
상을 파괴한다는 것은 자신의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꿈에서 나타난 신상의 약점(2:42, 43)을 보완하기 위하여 '금으로'(1절)
신상을 만들렀고, 모든 백성들의 결속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신상에 대한 숭배를 강요
하였던 것이다(7절).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세상의 싸움의 본질적인 성격
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대립임이 분명해진다. 또한, 본장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의 신앙적 자세를 부각시키려는 저자의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점은
왕이 신상에 대한 숭배를 강요하는 부분(4-6, 10, 11, 15절), 제막시 행사를 언급하는
부분(2-7절), 왕의 분노를 표현하는 부분(13, 19절), 극렬히 타는 풀무불을 묘사하는
부분(6, 11, 15, 17, 20, 21, 23, 26절), 보통 이상으로 온도를 높이는 부분(19, 22
절), 강한 군사력들이 결박하여 풀무불에 집어넣는 부분(20, 21, 23절)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우상 숭배를 통해 국가의 단합과 안정을 도모하려는 느부갓네살 왕
의 탐욕과 이기심을 고발하면서 다니엘의 세 친구의 순수한 신앙심을 대조적으로 부각
시키고 있다.
또한, 흑자는 5절에 나타나는 악기들, 즉 '수금과 삼현금과 앙금' 등에 해당하는 아
람어가 헬라어에서 왔다는 이유로 본서의 저작 연대를 훨씬 후대의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B.C. 7세기에도 헬라의 악사들과 악기들은 느부갓네살 이전에 이미 앗시리아
문서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결국 느부갓네살의 신상 제막식은 전국가적인 행사였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정열을 바치는 신전 의식이었으므로 세계 도처의 악기를 동
원하여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타락한 피조물을 섬기는 일에 남다른 열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롬 1:25).
이상과 같은 본장에는 금 신상을 숭배하라는 왕의 명령을 거부한 다니엘의 세 친구의
신앙이 드러나고 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해몽을 듣고 잠시 하나님을 찬양했음
에도 불구하고(2:46-49) 자만감에 빠져 우상을 숭배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대해 사드
락, 메삭, 아벱느고는 순종하지 않았고, 바멜론 신하들의 참소를 받았다. 아마도 포
로인 유다인들이 높은 자위에 있는 것을 시기하여 제하려는 음모의 일종일 것이다.
그러나 세 친구는 왕의 위협과 회유에 대해서 확고한 신앙 절개를 가지고 끝까지 믿음
을 지켰다. 이들은 우상을 숭배함으로 생명을 부지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했던 것
이다. 이러한 태도를 본 왕은 대단히 진노하여 세 친구를 풀무불에 던져 버렸다(21
절).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세 친구를 완벽하게 보호하셨고, 외투에 불에
탄 냄새조차 없도록 지키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본 느부갓네살은 이전의
경솔한 판단을 취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28, 29절). 다니엘은 세 친구의
실례를 통해 경건의 참된 본보기를 보여주며, 우상숭배와 배교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1. 금 신상 숭배를 강요한 느부갓네살(3:1-18)
본 단락에는 금 신상을 세워 놓고 모든 사람들에게 숭배를 강요하고 있는 느부갓네
살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왕은 앞에서 자신의 꿈의 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한 다니
엘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했지만(2:46-49). 여기서는 우상 숭배를 종용하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이전의 느부갓네살 왕의 신앙 고백이
진정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느부갓네살의 신
상 제막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7절), (2)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가 고
소를 당하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 중반부(8-12절), (3) 왕의 심문과 세 친구의 확고
부동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는 후반부(13-1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여호와를 믿는 유일 신앙과 이방 종교를 분명하게 대조시키고, 이방 세
계에 하나님을 통치를 드러내는 적극적인 의지를 암시적으로 제시한다.
한편, 본 단락에는 다니엘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왜 다니엘이
세 친구와 연합하지 않았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1) 바벧론에 없거나
국사 때문에 타지방에 갔을 것임, (2) 입법이나 군사 계획 때문에 다른 각료와 밀담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름, (3) 질병 때문에 공식 석상에 참석하지 못했음(7:28 ; 8:27;
10:8), (4) 왕의 고관이므로 신상에게 절해야 할 의무가 없었음, (5) 너무 유명한 예
언자이므로 감히 공격하지 못했음 등이다. 어째든 다니엘이 세 친구가 참소당하는 장
소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본 단락에서 생략된 것이 분명하다. 아울러 이처럼 주인공
이 중요한 순간에 빠졌다는 사실은 본서가 허구가 아닌 실제 역사의 기록임을 반증해
준다. 만약 자유주의 학자들의 말처럼 본서가 이방의 압제자를 대항하기 위해 마카비
시대에 기록되었다면, 영웅의 주인공이 중대차한 시점에서 소외될 이유가 없는 것이
다.
또한, 본 단락은 거짓 종교의 허구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거짓 종교는 인간이 신을
만들며(1절), 신에 대한 숭배가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경건심(요 4:24)에서 출발
하지 않고, 오히려 외적인 복종에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미 2장에서 금
신상의 파괴를 예언하셨던 것이다(2:34, 35). 우상은 허무하며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롬 1:23, 25).
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느부갓네살 왕은 수호신을 섬기도록 강요하였다(1-7절). 하나님은 꿈과 해몽을
통해 우상을 섬기는 열왕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다고 경고하셨다(2:34, 35,
44).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은 여호와 신앙을 저버리고 모든 신하들과 백성둘
과 포로민들이 갈대아 정부의 수호신을 섬기도록 명령하였다. 그는 한때 하나님께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7)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 믿음
은 지극히 피상적이고 일시적이었다. 그는 국가에 대한 완전한 충성심은 유발시켜 제
국의 통일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우상 숭배를 요구하였다. 이처럼 느부갓네살은 정
치적 목적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피조물을 섬기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2) 신상 숭배에 대한 거부는 동시에 왕에 대한 반역의 의미를 갖는다(8-12절). 지
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가 처해 있는 상황은 단지 신상 숭배에 대한 문제만이 아
니라 왕의 권위와 통치에 대한 수용 여부와 연결되어 있다. 당시 갈대아 왕은 일종의
신으로서 군림하며 제국의 정치적 통일과 안정을 꾀하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세
친구는 신상에 대한 경배를 거절함으로써 왕의 절대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그
들은 왕의 보호를 포기하고 대신 하나님은 선택하였다. 이와 같은 순교적 자세는 일
체의 타협을 거절하고 오직 하난미만을 바라보는 신앙의 결과이다. 참신자는 믿음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명보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다니엘의 세 친구의 모습을 보
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으실지라도(18절) 배반보다는 풀무
불에 들어가기를 청원했다. 바울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면 곧 하나
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
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고백했다. 현대에도 세속과 싸우며 하나님을 섬기는 복
음의 전사들이 매우 필요하다.

2. 풀무불 속에서의 구원(3:19-30)
왕과의 대면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8-18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풀무불 속에서
구원을 받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1-7절까지는 사건의 발단에 관계
된 부분이었다. 반면에 본 단락은 사건의 절정과 대단원을 묘사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제까지의 느부갓네살과 사드락, 메삭, 아벱느고와의 팽팽했던 긴장
관계를 일거에 해소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결론적인 단락인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세 친구들이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전반부
(19-23절), (2) 불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보호에 대해 묘사하는 중반부(24-27절),
(3) 세 친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참양하는 느부갓네살의 모습을 언급한 후반부(28-30
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본문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한편, 본문 25절의 '신들의 아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
다. 유대 랍비들은 이 사람을 단순히 천사로 보이지만, 전통적인 견해는 성육신 이전
의 성자 하나님으로 본다. 그러나 본문의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신들의 아들'이란 하
나님의 초자연적 간섭에 의한 이적임을 보여주기 위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 인물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신적인 능력을 소유한 어떤
인물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제 본 단락의 중심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역사하신다(19-26절). 사드락, 메삭, 아벱느
고는 평일보다 풀무불의 온도를 7배나 뜨겁게 한 상황에서(19절) 풀무불 속으로 던져
지게 되었다. 그들은 현재 탈출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었다(20절). 이처럼 절망적인 환경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사 털끝 하나 상하
지 않도록 지키셨다. 소용돌이 치는 용광로 속에서 세 친구는 자유롭게 걸으며 불의
해를 전혀 받지 않았다(25절).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가 돋보였던 상황을 보면 언제나
인간의 절망적인 환경이 전제되어 있었다. 출애굽 사건에서의 상황이 그러했고(창
32:24-28)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직후의 상황이 그러하였다(마 2:13-18). 또한 십자
가의 죽음이라는 최대의 위기 상황은 부활로 인해 최고의 기쁨으로 전환되었다. 하나
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으로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구원을 펼칠 수 있다.
(2) 하나님은 절망적인 환경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27-30절).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난미 자신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그
래서 하나님은 세 친구들을 불 속에서 끄집어 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
을 만방에 알리셨던 것이다(28절). 느부갓네살의 조롱섞인 질문(15절)의 의도가 바로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라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사건의 의
미는 더욱더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의 오만하고도 위험한 명령을 기회로
이용하여 바벧론 왕궁에서 자신의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분명히 하셨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절망적인 환경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케 하는 요인이면서 동시
에 하나님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1)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제일 싫어하신다(출 20:4, 5). (2) 신자들은 신앙적인 동기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 속에서 무려 164회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롬 8:1 ; 고전 1:2 ; 고후 12:2 ; 엡 1:1 등) 이처럼 신자는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를 할 때 진정한 축복을 경험케 된다. (3) 신자들 삶의 최종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롬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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