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
이제 40장부터 전개된 성전의 측량과 새로운 율법의 지침이 일단락되면서 새로운 내용 곧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중심으로 성취될 이스라엘의 축복이 생명수의 환상을 통해 12절까지 제시된다. 실로 물과 기름짐, 축복 등은 구약에 있어서 서로간에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말인 바,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 황무하고 죽어있는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본문(1-12절)의 회화적 묘사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는 풍성한 축복을 상징한다(시 46:4;65:9;사 33:20). 한편 이 부분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심(계 22:1)과,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온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요 10: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으로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셨으며 친히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언급하셨다는 점에서(요 4:10;7:38) 이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하겠다. 전 문 - 이는 성전 중앙에 위치한 성소의 문을 가리킨다.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동으로 흐르다가 - 생수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갔던 바로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 생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발원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동으로 흐르다가'는 하반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정확히 문지방 중앙에서 동쪽으로 흘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그 생수의 진행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 여기서 '전 우편'(* , 미케테프 하바이트 하예마니트)은 '그 집 가장자리의 오른 쪽'을 의미하는데, 생수가 성소 문지방의 오른쪽(남쪽) 끝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Delitzsch, Schroder, Hengstenberg). 곧 그 문지방 오른쪽은 제단 남편이 된다. 한편 '흘러내리더라'란 말은 성소가 안뜰보다 높이 위치해 있음을 암시한다.
=====47:2
북문으로 나가서...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밖으로 흐르는 생수를 보기 위하여 바깥 북문을 통해 성전 밖으로 나와서 물이 흘러나오는 바깥 동문 앞으로 이동했다. 이는 바깥 동문이 닫혀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44:1, 2). 성전에서 발원된 생수는 성소 문지방을 지나 안뜰 동문과 바깥 뜰을 지나 바깥 동문 밑 으로 흘러나갔던 것이다. 스미어 나오더라(* , 파카) - '쏟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이는 단순하게 물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차게 솟구쳐 나오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서 1절의 '흘러내리더라'와 비교해볼 때 그 물의 양이 성전 안에서 이미 상당하게 불어나 있음을 암시한다(Delitzsch, Neumann, Gesenius).
=====47:3-5
천사가 일천 척(약 500m)을 측량할 때마다 물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이 네 번에 걸쳐 반복된다. 혹자는 6절에 언급된 '네가 이것을 보았으냐'란 말에 의거해 선지자의 직접적인 경험('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선지자가 직접 그 물을 건너간 것이 아니라 뚝을 따라서 4천 척이 되는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온(6절)것으로 본다(Delitzsch). 그러나 이는 6절의 구체적 내용과 '발목에 이르는 물'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선지자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실로 보아야 한다(Schroder). 그 물이 창일하여...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 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기적적으로 증가하여 이처럼 한길 이상되는 생수의 강으로 창일하게 된 사실은 여기서의 생수가 구원과 축복의 상징이란 점에서(1절 주석 참조) 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47:6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 여기서 '강가로'(* - , 알쉐파트 하나할)를 혹자는 '뚝을 따라'로 해석해 선지자가 뚝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는 의미로 이해하여 세 번째 측량 때까지 선지자가 직접 물을 건넌 사실을 배격한다(Delitzsch). 그러나 이 말은 생수의 강의 가장자리 곧 '뚝 위로'란 뜻으로서 선지자가 그 물 속에서 세 번째 측량때까지 따라 내려갔다가 그 물 속에서 네 번째 측량을 목격하고 다시 뚝 위로 올라온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잔연스럽다(Schroder, Hengstenberg).
=====47:7
나무가 심히 많더라 - 여기서 '많더라'(* , 리브)는 원어상 '(양이나 질에 있어서)풍성한'이란 뜻으로 단지 나무의 많음을 말한다기 보다는 나무와 함께 그 열매의 풍성함까지도 내포한 말이다(Schroder). 따라서 본 구절은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으로서의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7:8
선지자는 이제 그 물의 방향과 그 물로 이해 발생할 결과를 12절까지 언급한다. 동방으로 향하여...아라바로 내려가서 - 여기서 '동방'(* , 하그릴라 하카드모나)을 뜻하는 히브리어 중에 '하그릴라'는 '끊다', '구역을 나누다'란 뜻의 '갈랄'(* )에서 파생된 말인 바, 그 물이 동쪽의 전지역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동쪽의 제한된 지역 곧 사해 북쪽의 요단 강 유역으로 흘러갔음을 알게 한다. 또한 '아라바'는 팔레스틴을 남북으로 가른 요단 유역의 저지대를 통칭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문맥상 사해와 연결되는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Schroder). 이 지역은 가늘고 긴 저지대이며 전지역의 2/3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다 - 혹자의 견해대로 '지중해'를 가리킨다기보다는(Rosenmuller, Ewald) '사해'(死海)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이 사해는 성경에서 '염해'(창 14:3;민 34:3;신 3:17;수 3:16;12:3 등), '동해'(18절;욜 2:20;슥 14:8), '아라바 바다'(신 3:17;수 3:16;왕하 14:25), '바다'(암 8:12;미 7:12) 등 다양하게 불리워졌다. 이 흘러 내리는 물로...소성함을 얻을지라 - '소성함을 얻을지라'(* , 라파)는 '고치다'란 뜻인 바(왕하 2:22), 본 구절은 사해 곧 죽은 물이 성전에서 발원한 생수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9, 10절), 살아있는 물로 고침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상징적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당신의 백성을 옮기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암시한다.
=====47:9
이 강물이...심히 많으리니 - 여기서 '강물'(* , 나할림)은 원어상 복수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혹자는 이를 그 강의 지류들이란 뜻으로 해석한다(Kliefoth). 그러나 이는 그 물의 창일함과 강한 흐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Hengstenberg, Delitzsch, Umbreit). 그러한 강의 강력함이 모든 죽음의 세력을 휩쓸어 버리고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다가 강을 흡수하는 현상과는 달리 그 생수의 강은 죽음의 바다(사해)로 들어간 후 생명의 능력으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변환시킨다.
=====47:10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그물치는 곳이 될 것이라 - '설 것이니'(* , 암두)는 '서다'라는 뜻 외에 '거주하다', '머무르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풍성한 고기들로 인해 어부들이 그곳에 영구히 정착하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혹자는 '에네글라임'을 요단 강이 합류하는 사해 서쪽 해변의 최북단으로 이해하여 이 '강가'를 사해 근방 내륙의 엔게디로부터 이 에네글라임까지 곧 요단 강이 사해로 유입되는 지점의 강가로 해석한다(Jerome).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주요 주제가 사해의 소성에 있다는 점에서 이는 그 지명의 모호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사해의 전지역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Hengstenberg, Ewald). 그 고기가...심히 많으려니와 - 고기가 번성하는 것 외에 많은 종류가 혼재되어 있으리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창 1:11, 21, 25)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이 창조 당시의 축복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Neumann, Havernick). 이는 또한 상징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구원받게 될 성도의 보편적이고도 급격한 증가를 예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기에 상반절의 '어부'는 곧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의 사역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마 4:19, 20;눅 5:11, Hitzig).
=====47:11
기적적인 소성의 기사 속에서 예외적으로 소성치 못할 지역이 언급된다. 본절에 언급된 '진펄'(* , 비차)은 '진흙 수렁'을, '개펄'(* , 게베)은 '물웅덩이'를 각각 의미하는 바, 모두 사해 주변의 언덕에 위치한 진흙 웅덩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곧 우기에 바닷물이 넘치면 그 넘친 물이 계속 이 웅덩이 속에 고여 있게 된다. 따라서 그 고인 물들은 곧 증발하게 되며 그 지역은 남아 있는 소금기로 두텁게 덮이게 된다(습 2:9). 본절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비유해 소성치 못하는 땅을 언급하고 있는 바, 상징적으로 생수의 강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구원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영멸 속에 버려지게 되는 죽음(악)의 세력을 가리킨다(슥 14:17, Havernick).
=====47:12
계 22장에 언급된 생명수 샘과 그 주변의 생명나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 당시 에덴의 풍성함의 주요 근원이 강과 나무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것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사역(창 13:10;사 12:3)은 새로운 창조 사역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잎이 사들지 아니하며...새 실과를 맺으리니 - 점진적으로 강조된 본 구절이 묘사한 상황은 그 생수가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바, 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회복과 구원의 사역을 보여준다.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 생수가 위에 언급된 영원한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재삼 강조하여 밝히고 있다. 즉, 그 물이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며 번성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거처, 곧 성소에서 직접 발원한 것이기 때문이다(Hitzig).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 9, 10절에 언급된 고기가 식용되 되듯 실과 역시 식용이 된다. 이러한 실과의 식용은 창조 당시의 에덴의 정황과 연관지어질 수 있다(창 2:9). 그 생수를 통해 열린 실과의 식용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기인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생수를 통해 자란 생명나무는 그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나누어 주게 된다.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약 재료'(* , 리트루파)는 원어상 '고치다'란 뜻의 '라파'(* )에서 파생된 말로서 병들고 썩은 것을 고치는 의학적인 효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약 재료가 병들고 썩어진 세속적인 이방 세계에 작용함으로써 그 세계가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사역을 통해 치유받고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계 22:2).
=====47:13
갑작스런 기사의 전환을 이루는 부분으로 회복된 새 이스라엘에서의 땅의 분배를 언급하는 본서의 마지막 내용을 시작한다. 이러한 땅 분배는 그 땅의 회복과 구원의 확실성을 명시하는 것이다.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레위 지파가 별도의 '테루마'(거룩한 땅)로 그 분깃을 대신하는 한편 요셉의 자녀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의 독립된 지파로서 땅을 분배받게 되리란 의미로 이는 창 48:22과 수 17:14, 17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47:14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 '피차 없이 나누어'란 어느 한 편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가나안 땅 분배에서 보여지듯이 단순히 땅 넓이가 동일하게 분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고려해서 서로가 아무런 불만이 없게 분배하라는 것이다.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 이는 다음과 같은 삼중적 의미로 고찰해 볼 수 있다. (1) 여자적 해석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고토로 귀환하여 그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되리란 의미, (2) 신앙적 해석으로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증표로 주신 약속의 땅이란 점에서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에 대한 회복은 곧 그 동안 그들의 죄로 인해 파기되었던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새롭게 갱신된다는 의미, (3) 궁극적이고 종말론적 해석으로 가나안 땅이 하나님 나라의 예표였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의 의미(계 21:1) 등이다.
=====47:15-17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새 경계가 21절까지 언급된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의 경계가 민 34:1-12과는 달리 북, 동, 남, 서의 순으로 기술되었는데, 이는 모세 당시의 출애굽이 남쪽으로부터 시작된 반면에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북동쪽에서 시작된 사실에 연유된 듯하다(Delitzsch). 또한 이 경계의 판도는 솔로몬 왕국 당시와도 차이를 보인다(왕상 8:16). 본문은 북방의 경계를 먼저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48:1;민 34:7-9 주석을 참조하라.
=====47:18
동방은 하우란과...요단강이니 - 혹자는 이 요단 동편의 도시들이 민 34장에서 요단 동편 지파에게 분배된 사실을 들어 이 도시들 또한 새 이스라엘의 영토에 포함시킨다(Kilefoth). 동해 - 이는 사해를 가리키는 새로운 표현이다. 이 말은 동쪽 경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47:19
다말에서부터...대해에 이르나니 - 여기서 '다말'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아마도 사해의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된다(Hengstenberg). 그러나 '므리봇 가데스 물'은 고대에 잘 알려진 곳으로 민 27:14에 기술된 '가데스의 므리바 물'과 같은 곳으로서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 근처에 위치한다(민 34:4). 또한 '애굽 시내'는 구약에서도 보여진 곳으로 이전 팔레스틴의 남서쪽 경계가 된 바, 이를 따라 남쪽의 경계는 지중해의 서남단에까지 이른다.
=====47:20
새 영토의 서쪽 경계는 남쪽 경계인 지중해 서남단 지역(19절)으로부터 북쪽 경계의 서쪽 지역인 하맛 어귀까지 이르는 지중해 연안이다.
=====47:21
새 영토의 경계를 일단락하면서 새로운 내용으로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13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47:22
외인에 대한 분깃이 부가적으로 기술된다. 이러한 외인에 대한 기업의 할당은 모세의 율법(레 24:22;민 15:29), 이사야의 교훈(사 56:3-8), 에스겔의 초기 예언(14:7;22:7)과도 일치한다.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기업이 되게 할지니 - 여기서 '외인'(* , 게르)은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닌 일반적인 이방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이방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더욱 분병해진다.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 - 이 구절은 앞 주절을 수식한다. 이스라엘 중에서 자손을 낳음으로써 그 땅에 영구히 거주할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Delitzsch).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 이방인의 구별을 상쇄시키는 말이다. 실로 새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여호와 신앙으로 구원을 얻게 될 이방인들까지를 포괄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구원 사역의 구심점이자 매개가 되는 것이다(Havernick).
=====47:23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 외인에게 할당되는 기업을 이스라엘의 12지파의 땅 분배와는 달리 그들이 거주하는 각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별도로 주어지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본장은 40장부터 시작되는 새 성전의 환상의 절정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앞의 3장에 걸쳐서(44-46장) 성전과 제상의 규례를 지시하신 하나님은 이제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강이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흘러가서 생물들의 소생하고 척박한 땅이 옥토로 변하게 만들 것임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온 물은 죽음에 이른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살리는 능력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요 7:38)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것임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된다(계 7:17).
이처럼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에 대해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1)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강가에 대한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12절), (2) 이스라엘 12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3-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가) 물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옴(1,2절), (나) 물이 점점 불어남(3-5절), (다) 물이 아라바로 흘러가서 말물을 살림(6-12절), (라) 이스라엘의 땅 분배(13-20절), (마) 이방인의 상속(21-23절) 등과 같다.
한편, 본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생명강가의 환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통해 점점 확장되어 궁극적으로 완성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서 '어린 양의 보좌'(계 22:1)를 생명강의 근원으로 밝히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 예수님은 성전으로서(요 2:19-21) 믿는 자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나도록 만들어 주신다(요 7:37-39). 결국 에스겔이 본 생명강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적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본장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완성을 땅의 회복과 분배로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진술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삭(창 26:3,4,24), 야곱(창 35:9-12)을 거쳐 모세에게(출 6:8) 땅의 부여를 확언하셨으며, 여호수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실제로 성취되도록 하셨다(수 21:3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물들어 버리자, 하나님은 언약의 땅에서 그들은 추방시키셨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당연히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서 다시 땅을 재분배받는 것이다. 에스겔은 땅의 분배를 통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을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마 5: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생을 얻고(눅 12:8;요 4:14;행 10:43;요일 5:1) 하늘 나라의 영광과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비평주의 학자들은 생명강의 환상과 열두 지파의 땅 분배가 상이한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본장이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 생각이다. 에스겔은 여기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생수의 강으로 소생된 세계는 약속의 기업을 물려받음으로써 완성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1. 생명강의 환상(47:1-12)
에스겔은 성전과 관계된 각종 규례들을 열거하고 나서(40-46장) 본 단락에서는 성전의 궁극적 역할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주변의 모든 만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성전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척량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1-5절), (2) 성전 물의 효력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6-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완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개인의 신앙 경험을 비유적으로 제시해준다. 이제 본 단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문은 생명을 살리는 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1,2절).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 구약 시대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곧 성전이라고 선포하셨다(요 2:19-21).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는 것이다(요 7:37-39). 이처럼 진정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하게 된다(롬 10:9;갈 3:8,9,14).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은 영생을 누리며, 한량없는 희락과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계 21:2,3,22).
(2) 본문은 생명수가 공급되는 곳에는 진정한 생명의 회복이 일어남을 가르쳐준다(8-10,12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내려 팔레스틴의 저지대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 바다에 이른 물은 먼저 바다를 소생시켰다. 염분이 많아 고기들이 전혀 살 수 없는 사해는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게 되었고, 고기도 심히 많게 되어 어부들이 그물을 칠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참된 생명을 부여해주시는 것이다(행 1:8;2:41). 또한 생명강 좌우 가에는 각종 실과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실과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소성시키시며, 축복과 구원을 회복시키신다(창 13:10;사 12:3).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만물을 회복시킬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 충만한 생명력을 소유하고 있다.
(3) 본문은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여전히 소금 땅이 된다는 점을 교훈한다(11절). 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다시 살지만, 사해에 우기가 닥치면 바닷물이 넘쳐 진펄의 낮은 지역을 덮는다. 그때 물은 곧 증발하고, 소금 기운만이 남아 생물이 살 수 없게 된다(신 29:23;시 107:34;습 2:9). 이곳은 생명강물이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물이 회복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은 결국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슥 14:17).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패망시키시며, 영벌에 처하게 하신다.
2. 땅의 경계와 이방인의 상속(47:13-23)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한 척량과 물의 효력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 단락(1-12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이스라엘 12지파의 땅의 경계와 아울러 이방인의 땅의 상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땅을 전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12지파의 땅 분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땅을 경계하는 이유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반부(13,14절), (2) 구체적인 땅의 경계를 기록하고 있는 중반부(15-20절), (3) 이방인에 대한 땅의 상속을 묘사하는 후반부(21-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 들어있는 땅의 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행 중에 약속하셨던 땅의 구획과 조금 다르다. 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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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민 34:1-12 | 겔 47:1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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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편 경계 |하살에난-스밤-리블라-아인 동편-| 하우란-다메섹-길르앗-요단 강 |
| |긴네렛 동편-요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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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편 경계 |대해-호르 산-하맛-스닷-시브론- | 대해-헤들론 긴-스닷-하맛-브로다|
| |하살에난 | -시브라임-하셀핫디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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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경계 |염해-아그랍빔 언덕-가데스 바네 | 다말-므리봇 가데스-애굽 시내- |
| |아-남방-하살아달-아스몬- | 대해 |
| |애굽 시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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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편 경계 |대해가 경계가 됨 | 대해로서 남편 지계-맞은 편 하맛|
| | | 어귀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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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땅의 구획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 있다(13-20절).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에 의존하여 땅을 분배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대리 위임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땅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는 있을지라도 원 소유주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 다른 지파의 땅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오직 주어진 범위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탐욕과 시기가 없이 살아가는 실체적 공간인 것이다.
(2) 하나님의 기업은 이방인들에게도 허락된다(22,23절). 이방인들에 대한 땅의 상속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롬 10:12;골 3:11).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의 종교와 생활 방식과 모든 규례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인과 동일하게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 오경에 기록된 규례이기도 하며(레 24:22;민 15:29), 이사야(사 56:3-8)의 예언과도 일치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3)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방인의 구원으로 절정을 이룬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완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임을 설명한다. 이러한 언급은 신약의 교회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방인 선교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행 1:8).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고(행 2:21), 하나님 나라에서 풍성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참생명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요 1:12). (2) 구원의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개방되었다(엡 3:6).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야 한다.
* '땅'에 대한 신학적 의미 고찰.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땅 정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구약 성경에는 땅에 대한 언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회복과 상실은 이스라엘 역사의 멸망과 부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된다. 이제 구약 성경에서 땅이 갖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로서의 의미 :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약속하신 것이 땅의 소유였다(창 12:1-3). 이러한 약속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었고,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되었다(수 21:43). 그래서 이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에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신 26:9)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땅의 정복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약속의 성취이다.
2. 선물(기업)로서의 땅 : 출 6:8에서는 이 땅이 약속의 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밝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공짜로 가나안 땅을 수여받은 것이다.이스라엘은 땅을 차지할 만한 아무런 선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신 9:6).
3. 특별한 삶의 원리가 요구되는 땅 : 가나안 땅의 소유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수반하게 된다. 신 12:1에서는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고 되어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영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율법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생활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땅은 선물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
이제 40장부터 전개된 성전의 측량과 새로운 율법의 지침이 일단락되면서 새로운 내용 곧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중심으로 성취될 이스라엘의 축복이 생명수의 환상을 통해 12절까지 제시된다. 실로 물과 기름짐, 축복 등은 구약에 있어서 서로간에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 말인 바,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 황무하고 죽어있는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키는 본문(1-12절)의 회화적 묘사는 분명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는 풍성한 축복을 상징한다(시 46:4;65:9;사 33:20). 한편 이 부분은 궁극적으로 구원의 원천이 바로 하나님이심(계 22:1)과,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온 우주를 풍성하게 소생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요 10:10). 또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역으로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셨으며 친히 자신을 '생수의 강'으로 언급하셨다는 점에서(요 4:10;7:38) 이 '생명수의 강'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다 하겠다. 전 문 - 이는 성전 중앙에 위치한 성소의 문을 가리킨다.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동으로 흐르다가 - 생수가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갔던 바로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그 생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발원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한편 '동으로 흐르다가'는 하반절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정확히 문지방 중앙에서 동쪽으로 흘렀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그 생수의 진행 방향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 여기서 '전 우편'(* , 미케테프 하바이트 하예마니트)은 '그 집 가장자리의 오른 쪽'을 의미하는데, 생수가 성소 문지방의 오른쪽(남쪽) 끝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Delitzsch, Schroder, Hengstenberg). 곧 그 문지방 오른쪽은 제단 남편이 된다. 한편 '흘러내리더라'란 말은 성소가 안뜰보다 높이 위치해 있음을 암시한다.
=====47:2
북문으로 나가서...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 밖으로 흐르는 생수를 보기 위하여 바깥 북문을 통해 성전 밖으로 나와서 물이 흘러나오는 바깥 동문 앞으로 이동했다. 이는 바깥 동문이 닫혀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44:1, 2). 성전에서 발원된 생수는 성소 문지방을 지나 안뜰 동문과 바깥 뜰을 지나 바깥 동문 밑 으로 흘러나갔던 것이다. 스미어 나오더라(* , 파카) - '쏟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이는 단순하게 물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차게 솟구쳐 나오는 것을 묘사하는 말로서 1절의 '흘러내리더라'와 비교해볼 때 그 물의 양이 성전 안에서 이미 상당하게 불어나 있음을 암시한다(Delitzsch, Neumann, Gesenius).
=====47:3-5
천사가 일천 척(약 500m)을 측량할 때마다 물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는 기적적인 사건이 네 번에 걸쳐 반복된다. 혹자는 6절에 언급된 '네가 이것을 보았으냐'란 말에 의거해 선지자의 직접적인 경험('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선지자가 직접 그 물을 건너간 것이 아니라 뚝을 따라서 4천 척이 되는 지점까지 내려갔다가 돌아온(6절)것으로 본다(Delitzsch). 그러나 이는 6절의 구체적 내용과 '발목에 이르는 물'이라는 표현에 비추어 선지자가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실로 보아야 한다(Schroder). 그 물이 창일하여...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 성소에서 발원한 물이 기적적으로 증가하여 이처럼 한길 이상되는 생수의 강으로 창일하게 된 사실은 여기서의 생수가 구원과 축복의 상징이란 점에서(1절 주석 참조) 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47:6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 여기서 '강가로'(* - , 알쉐파트 하나할)를 혹자는 '뚝을 따라'로 해석해 선지자가 뚝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온다는 의미로 이해하여 세 번째 측량 때까지 선지자가 직접 물을 건넌 사실을 배격한다(Delitzsch). 그러나 이 말은 생수의 강의 가장자리 곧 '뚝 위로'란 뜻으로서 선지자가 그 물 속에서 세 번째 측량때까지 따라 내려갔다가 그 물 속에서 네 번째 측량을 목격하고 다시 뚝 위로 올라온 사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잔연스럽다(Schroder, Hengstenberg).
=====47:7
나무가 심히 많더라 - 여기서 '많더라'(* , 리브)는 원어상 '(양이나 질에 있어서)풍성한'이란 뜻으로 단지 나무의 많음을 말한다기 보다는 나무와 함께 그 열매의 풍성함까지도 내포한 말이다(Schroder). 따라서 본 구절은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으로서의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7:8
선지자는 이제 그 물의 방향과 그 물로 이해 발생할 결과를 12절까지 언급한다. 동방으로 향하여...아라바로 내려가서 - 여기서 '동방'(* , 하그릴라 하카드모나)을 뜻하는 히브리어 중에 '하그릴라'는 '끊다', '구역을 나누다'란 뜻의 '갈랄'(* )에서 파생된 말인 바, 그 물이 동쪽의 전지역으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동쪽의 제한된 지역 곧 사해 북쪽의 요단 강 유역으로 흘러갔음을 알게 한다. 또한 '아라바'는 팔레스틴을 남북으로 가른 요단 유역의 저지대를 통칭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문맥상 사해와 연결되는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Schroder). 이 지역은 가늘고 긴 저지대이며 전지역의 2/3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다 - 혹자의 견해대로 '지중해'를 가리킨다기보다는(Rosenmuller, Ewald) '사해'(死海)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 이 사해는 성경에서 '염해'(창 14:3;민 34:3;신 3:17;수 3:16;12:3 등), '동해'(18절;욜 2:20;슥 14:8), '아라바 바다'(신 3:17;수 3:16;왕하 14:25), '바다'(암 8:12;미 7:12) 등 다양하게 불리워졌다. 이 흘러 내리는 물로...소성함을 얻을지라 - '소성함을 얻을지라'(* , 라파)는 '고치다'란 뜻인 바(왕하 2:22), 본 구절은 사해 곧 죽은 물이 성전에서 발원한 생수로 인해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는(9, 10절), 살아있는 물로 고침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상징적으로 죽음의 자리에서 영생의 자리로 당신의 백성을 옮기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암시한다.
=====47:9
이 강물이...심히 많으리니 - 여기서 '강물'(* , 나할림)은 원어상 복수형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혹자는 이를 그 강의 지류들이란 뜻으로 해석한다(Kliefoth). 그러나 이는 그 물의 창일함과 강한 흐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Hengstenberg, Delitzsch, Umbreit). 그러한 강의 강력함이 모든 죽음의 세력을 휩쓸어 버리고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다가 강을 흡수하는 현상과는 달리 그 생수의 강은 죽음의 바다(사해)로 들어간 후 생명의 능력으로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변환시킨다.
=====47:10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그물치는 곳이 될 것이라 - '설 것이니'(* , 암두)는 '서다'라는 뜻 외에 '거주하다', '머무르다'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풍성한 고기들로 인해 어부들이 그곳에 영구히 정착하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혹자는 '에네글라임'을 요단 강이 합류하는 사해 서쪽 해변의 최북단으로 이해하여 이 '강가'를 사해 근방 내륙의 엔게디로부터 이 에네글라임까지 곧 요단 강이 사해로 유입되는 지점의 강가로 해석한다(Jerome). 그러나 본절의 문맥상 주요 주제가 사해의 소성에 있다는 점에서 이는 그 지명의 모호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사해의 전지역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Hengstenberg, Ewald). 그 고기가...심히 많으려니와 - 고기가 번성하는 것 외에 많은 종류가 혼재되어 있으리라는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 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창 1:11, 21, 25) 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질 축복이 창조 당시의 축복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Neumann, Havernick). 이는 또한 상징적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구원받게 될 성도의 보편적이고도 급격한 증가를 예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기에 상반절의 '어부'는 곧 구원을 선포하는 복음의 사역자들로 이해할 수 있다(마 4:19, 20;눅 5:11, Hitzig).
=====47:11
기적적인 소성의 기사 속에서 예외적으로 소성치 못할 지역이 언급된다. 본절에 언급된 '진펄'(* , 비차)은 '진흙 수렁'을, '개펄'(* , 게베)은 '물웅덩이'를 각각 의미하는 바, 모두 사해 주변의 언덕에 위치한 진흙 웅덩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곧 우기에 바닷물이 넘치면 그 넘친 물이 계속 이 웅덩이 속에 고여 있게 된다. 따라서 그 고인 물들은 곧 증발하게 되며 그 지역은 남아 있는 소금기로 두텁게 덮이게 된다(습 2:9). 본절은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비유해 소성치 못하는 땅을 언급하고 있는 바, 상징적으로 생수의 강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구원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영멸 속에 버려지게 되는 죽음(악)의 세력을 가리킨다(슥 14:17, Havernick).
=====47:12
계 22장에 언급된 생명수 샘과 그 주변의 생명나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 당시 에덴의 풍성함의 주요 근원이 강과 나무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것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사역(창 13:10;사 12:3)은 새로운 창조 사역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잎이 사들지 아니하며...새 실과를 맺으리니 - 점진적으로 강조된 본 구절이 묘사한 상황은 그 생수가 결코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바, 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영원한 회복과 구원의 사역을 보여준다.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 생수가 위에 언급된 영원한 생명과 풍요의 원천이 되는 이유를 재삼 강조하여 밝히고 있다. 즉, 그 물이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며 번성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거처, 곧 성소에서 직접 발원한 것이기 때문이다(Hitzig).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 9, 10절에 언급된 고기가 식용되 되듯 실과 역시 식용이 된다. 이러한 실과의 식용은 창조 당시의 에덴의 정황과 연관지어질 수 있다(창 2:9). 그 생수를 통해 열린 실과의 식용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기인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생수를 통해 자란 생명나무는 그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뿐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나누어 주게 된다.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약 재료'(* , 리트루파)는 원어상 '고치다'란 뜻의 '라파'(* )에서 파생된 말로서 병들고 썩은 것을 고치는 의학적인 효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약 재료가 병들고 썩어진 세속적인 이방 세계에 작용함으로써 그 세계가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 사역을 통해 치유받고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계 22:2).
=====47:13
갑작스런 기사의 전환을 이루는 부분으로 회복된 새 이스라엘에서의 땅의 분배를 언급하는 본서의 마지막 내용을 시작한다. 이러한 땅 분배는 그 땅의 회복과 구원의 확실성을 명시하는 것이다.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레위 지파가 별도의 '테루마'(거룩한 땅)로 그 분깃을 대신하는 한편 요셉의 자녀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의 독립된 지파로서 땅을 분배받게 되리란 의미로 이는 창 48:22과 수 17:14, 17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47:14
피차 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 '피차 없이 나누어'란 어느 한 편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말이다. 이 말은 가나안 땅 분배에서 보여지듯이 단순히 땅 넓이가 동일하게 분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고려해서 서로가 아무런 불만이 없게 분배하라는 것이다.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 이는 다음과 같은 삼중적 의미로 고찰해 볼 수 있다. (1) 여자적 해석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고토로 귀환하여 그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되리란 의미, (2) 신앙적 해석으로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증표로 주신 약속의 땅이란 점에서 이스라엘의 약속의 땅에 대한 회복은 곧 그 동안 그들의 죄로 인해 파기되었던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새롭게 갱신된다는 의미, (3) 궁극적이고 종말론적 해석으로 가나안 땅이 하나님 나라의 예표였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약속의 의미(계 21:1) 등이다.
=====47:15-17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새 경계가 21절까지 언급된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의 경계가 민 34:1-12과는 달리 북, 동, 남, 서의 순으로 기술되었는데, 이는 모세 당시의 출애굽이 남쪽으로부터 시작된 반면에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북동쪽에서 시작된 사실에 연유된 듯하다(Delitzsch). 또한 이 경계의 판도는 솔로몬 왕국 당시와도 차이를 보인다(왕상 8:16). 본문은 북방의 경계를 먼저 언급한다. 자세한 내용은 48:1;민 34:7-9 주석을 참조하라.
=====47:18
동방은 하우란과...요단강이니 - 혹자는 이 요단 동편의 도시들이 민 34장에서 요단 동편 지파에게 분배된 사실을 들어 이 도시들 또한 새 이스라엘의 영토에 포함시킨다(Kilefoth). 동해 - 이는 사해를 가리키는 새로운 표현이다. 이 말은 동쪽 경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47:19
다말에서부터...대해에 이르나니 - 여기서 '다말'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아마도 사해의 동남쪽 끝 부분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된다(Hengstenberg). 그러나 '므리봇 가데스 물'은 고대에 잘 알려진 곳으로 민 27:14에 기술된 '가데스의 므리바 물'과 같은 곳으로서 신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 근처에 위치한다(민 34:4). 또한 '애굽 시내'는 구약에서도 보여진 곳으로 이전 팔레스틴의 남서쪽 경계가 된 바, 이를 따라 남쪽의 경계는 지중해의 서남단에까지 이른다.
=====47:20
새 영토의 서쪽 경계는 남쪽 경계인 지중해 서남단 지역(19절)으로부터 북쪽 경계의 서쪽 지역인 하맛 어귀까지 이르는 지중해 연안이다.
=====47:21
새 영토의 경계를 일단락하면서 새로운 내용으로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 13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47:22
외인에 대한 분깃이 부가적으로 기술된다. 이러한 외인에 대한 기업의 할당은 모세의 율법(레 24:22;민 15:29), 이사야의 교훈(사 56:3-8), 에스겔의 초기 예언(14:7;22:7)과도 일치한다.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기업이 되게 할지니 - 여기서 '외인'(* , 게르)은 이스라엘의 혈통이 아닌 일반적인 이방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따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이방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 신앙으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킨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의해 더욱 분병해진다.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 - 이 구절은 앞 주절을 수식한다. 이스라엘 중에서 자손을 낳음으로써 그 땅에 영구히 거주할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Delitzsch).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 하나님의 기준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된 이방인의 구별을 상쇄시키는 말이다. 실로 새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여호와 신앙으로 구원을 얻게 될 이방인들까지를 포괄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그러한 구원 사역의 구심점이자 매개가 되는 것이다(Havernick).
=====47:23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지니라 - 외인에게 할당되는 기업을 이스라엘의 12지파의 땅 분배와는 달리 그들이 거주하는 각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별도로 주어지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본장은 40장부터 시작되는 새 성전의 환상의 절정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앞의 3장에 걸쳐서(44-46장) 성전과 제상의 규례를 지시하신 하나님은 이제 성전의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강이 죽음의 바다인 사해까지 흘러가서 생물들의 소생하고 척박한 땅이 옥토로 변하게 만들 것임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온 물은 죽음에 이른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까지도 살리는 능력이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수(요 7:38)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영생을 줄 것임을 예표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게 된다(계 7:17).
이처럼 성전에서 흐르는 생명수에 대해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1)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강가에 대한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12절), (2) 이스라엘 12지파에 대한 땅 분배를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3-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면 (가) 물이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옴(1,2절), (나) 물이 점점 불어남(3-5절), (다) 물이 아라바로 흘러가서 말물을 살림(6-12절), (라) 이스라엘의 땅 분배(13-20절), (마) 이방인의 상속(21-23절) 등과 같다.
한편, 본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생명강가의 환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통해 점점 확장되어 궁극적으로 완성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에서 '어린 양의 보좌'(계 22:1)를 생명강의 근원으로 밝히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 예수님은 성전으로서(요 2:19-21) 믿는 자에게 생수의 강이 흘러나도록 만들어 주신다(요 7:37-39). 결국 에스겔이 본 생명강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예표적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본장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완성을 땅의 회복과 분배로 기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진술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어 이삭(창 26:3,4,24), 야곱(창 35:9-12)을 거쳐 모세에게(출 6:8) 땅의 부여를 확언하셨으며, 여호수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실제로 성취되도록 하셨다(수 21:3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에 물들어 버리자, 하나님은 언약의 땅에서 그들은 추방시키셨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당연히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서 다시 땅을 재분배받는 것이다. 에스겔은 땅의 분배를 통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 나라의 기업을 상속받을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마 5:5).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생을 얻고(눅 12:8;요 4:14;행 10:43;요일 5:1) 하늘 나라의 영광과 복락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비평주의 학자들은 생명강의 환상과 열두 지파의 땅 분배가 상이한 내용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본장이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 생각이다. 에스겔은 여기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최종적인 완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생수의 강으로 소생된 세계는 약속의 기업을 물려받음으로써 완성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1. 생명강의 환상(47:1-12)
에스겔은 성전과 관계된 각종 규례들을 열거하고 나서(40-46장) 본 단락에서는 성전의 궁극적 역할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주변의 모든 만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성전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강에 대한 척량을 다루고 있는 전반부(1-5절), (2) 성전 물의 효력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6-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완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개인의 신앙 경험을 비유적으로 제시해준다. 이제 본 단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문은 생명을 살리는 물이 성전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을 가르쳐 준다(1,2절).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 구약 시대에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곧 성전이라고 선포하셨다(요 2:19-21).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는 것이다(요 7:37-39). 이처럼 진정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 가능하게 된다(롬 10:9;갈 3:8,9,14).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백성들은 영생을 누리며, 한량없는 희락과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계 21:2,3,22).
(2) 본문은 생명수가 공급되는 곳에는 진정한 생명의 회복이 일어남을 가르쳐준다(8-10,12절).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내려 팔레스틴의 저지대 아라바로 내려가서 사해 바다에 이른 물은 먼저 바다를 소생시켰다. 염분이 많아 고기들이 전혀 살 수 없는 사해는 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게 되었고, 고기도 심히 많게 되어 어부들이 그물을 칠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패역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통하여 참된 생명을 부여해주시는 것이다(행 1:8;2:41). 또한 생명강 좌우 가에는 각종 실과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실과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멸망한 이스라엘을 소성시키시며, 축복과 구원을 회복시키신다(창 13:10;사 12:3).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만물을 회복시킬 수 있을 만큼 풍성하고 충만한 생명력을 소유하고 있다.
(3) 본문은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여전히 소금 땅이 된다는 점을 교훈한다(11절). 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다시 살지만, 사해에 우기가 닥치면 바닷물이 넘쳐 진펄의 낮은 지역을 덮는다. 그때 물은 곧 증발하고, 소금 기운만이 남아 생물이 살 수 없게 된다(신 29:23;시 107:34;습 2:9). 이곳은 생명강물이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생물이 회복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은 결국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슥 14:17).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패망시키시며, 영벌에 처하게 하신다.
2. 땅의 경계와 이방인의 상속(47:13-23)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대한 척량과 물의 효력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 단락(1-12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이스라엘 12지파의 땅의 경계와 아울러 이방인의 땅의 상속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땅을 전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뒤이어 나오는 12지파의 땅 분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며,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게 됨을 보여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땅을 경계하는 이유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전반부(13,14절), (2) 구체적인 땅의 경계를 기록하고 있는 중반부(15-20절), (3) 이방인에 대한 땅의 상속을 묘사하는 후반부(21-2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 들어있는 땅의 구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여행 중에 약속하셨던 땅의 구획과 조금 다르다. 이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민 34:1-12 | 겔 47:13-20 |
+-----------+-------------------------------+--------------------------------+
| 동편 경계 |하살에난-스밤-리블라-아인 동편-| 하우란-다메섹-길르앗-요단 강 |
| |긴네렛 동편-요단 | |
+-----------+-------------------------------+--------------------------------+
| 북편 경계 |대해-호르 산-하맛-스닷-시브론- | 대해-헤들론 긴-스닷-하맛-브로다|
| |하살에난 | -시브라임-하셀핫디곤 |
+-----------+-------------------------------+--------------------------------+
| 남편 경계 |염해-아그랍빔 언덕-가데스 바네 | 다말-므리봇 가데스-애굽 시내- |
| |아-남방-하살아달-아스몬- | 대해 |
| |애굽 시내 | |
+-----------+-------------------------------+--------------------------------+
| 서편 경계 |대해가 경계가 됨 | 대해로서 남편 지계-맞은 편 하맛|
| | | 어귀까지 |
+-----------+-------------------------------+--------------------------------+
이제 본문의 주도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땅의 구획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 있다(13-20절).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에 의존하여 땅을 분배받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대리 위임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땅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는 있을지라도 원 소유주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 다른 지파의 땅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오직 주어진 범위 안에서 생활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탐욕과 시기가 없이 살아가는 실체적 공간인 것이다.
(2) 하나님의 기업은 이방인들에게도 허락된다(22,23절). 이방인들에 대한 땅의 상속은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롬 10:12;골 3:11).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며 이스라엘의 종교와 생활 방식과 모든 규례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인과 동일하게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 오경에 기록된 규례이기도 하며(레 24:22;민 15:29), 이사야(사 56:3-8)의 예언과도 일치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3)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방인의 구원으로 절정을 이룬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완성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임을 설명한다. 이러한 언급은 신약의 교회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방인 선교를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행 1:8).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고(행 2:21), 하나님 나라에서 풍성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1) 참생명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요 1:12). (2) 구원의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개방되었다(엡 3:6).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야 한다.
* '땅'에 대한 신학적 의미 고찰.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마디로 땅 정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구약 성경에는 땅에 대한 언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회복과 상실은 이스라엘 역사의 멸망과 부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된다. 이제 구약 성경에서 땅이 갖는 의미를 신학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로서의 의미 :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약속하신 것이 땅의 소유였다(창 12:1-3). 이러한 약속은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에게 반복되었고, 여호수아를 통해 성취되었다(수 21:43). 그래서 이 땅을 '약속의 땅'이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에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신 26:9)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땅의 정복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약속의 성취이다.
2. 선물(기업)로서의 땅 : 출 6:8에서는 이 땅이 약속의 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밝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공짜로 가나안 땅을 수여받은 것이다.이스라엘은 땅을 차지할 만한 아무런 선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신 9:6).
3. 특별한 삶의 원리가 요구되는 땅 : 가나안 땅의 소유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수반하게 된다. 신 12:1에서는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얻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고 되어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영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만약 율법을 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생활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땅은 선물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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