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겔 4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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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본절은 성전에 대한 모든 측량을 끝내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40:6) 돌아온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성전 구조에 대한 측량 기사가 일단락되고 있음을 밝힌다.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 본 구절은 성전의 구조적 측량에 이어 19년 전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그 동문을 통해 성전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10:18-22;11:22-24)이 그 동문을 통해 다시 완성된 성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한편 5절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의 회귀는 모세의 성막 봉헌식(출 40:33, 34)과 솔로몬 성전 봉헌식(왕상 8:11) 당시에도 보여진 바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와 새롭게 갱신된 교체의 회복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곧 성전 완공의 마지막 단계인 성전 봉헌식과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Delitzsch).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 이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현현 때 나타나는 장중한 소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1:24;시 29:3;93:4;계 1:15;14:2).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 모세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의 봉헌 때 있었던 하나님의 현현 묘사와 다소 차이를 보이는 부분으로 그곳에서 언급된 '가득찬 구름'대신 '영광의 빛'이 언급되었다. '구름'이 하나님의 임재와 그 영광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으므로 내용상 본 구절의 '영광'과 별차이가 없다. 다만 여기서 '땅'이 성전 입구나 이스라엘 등 국부적인 장소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모든 곳, 곧 전우주적 의미의 지역을 포괄하여 지칭한 것이라는 사실(사 6:3,;40:1)과 함께 에스겔 성전이 역사적으로 세워졌던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과는 달리 선재적으로 성취된 미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종말론적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이 조금 특이할 뿐이다(계 18:1;21:11, 23, Delitzsch, Schroder).

=====43:3
그 모양이...이상과도 같기로 - 1장에 나타난 그룹의 형상과 동일한 형상이라는 사실이 '...와 같다', '...와 마찬가지이다'란 뜻을 지닌 히브리어 '카'(* )의 반복을 통해 설명된다. 곧 이는 대조적으로, 동일한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이 처음에는 예루사렘에 대한 심판을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온전한 회복과 영광의 회귀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43:4
2절 내용의 구체적인 진행을 보여준다. 곧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들어갔다는 기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의 당위적인 성취를 암시한다.

=====43:5
성신이...안뜰에 들어가시기로 -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안뜰에 들어가서 그 영광의 현현을 보는 데는 성령의 인도(3:12, 14)가 필요하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제사장 출신인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영광의 현현을 보는 것을 허락하셨다(Schroder).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 출 40:35-38;왕상 8:10, 11을 참조하라.

=====43:6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에 이어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 성전의 제일 원리인 거룩을 설파하는 성전 신학의 원리가 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12절까지 선포된다. 누구인지...사람이 내 곁에 서서 - 혹자는 7절 이하의 단락을 하나님께서 직접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으로 이해한다(Kliefoth). 그러나 이는 선지자 곁에 섰던 '사람'인 천사로서 중간자의 입장에서 선지자에게 대언했다. 따라서 7절 이하의 실제적 화자는 이 천사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천사는 알 수 없는 한 천사가 아니라 40장부터 계속 선지자를 안내하고 그와 대화했던 '척량하던 천사'(40:3)를 가리키는 듯하다(Schroder).

=====43:7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영원히 거할 곳이라 - 선재적으로 성취된 에스겔 성전의 성격을 규정하는 구절이다. '내 보좌의 처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의 핵심이 되는 곳을, '내 발을 두는 처소'는 하나님의 안식처가 되는 곳을,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삶을 지배하시며 그들과 교제하시는 곳이란 의미를 각각 내포한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내 보좌의 처소'와 '내 발을 두는 처소'(나의 발등 상-시 132:7;사 60:13;66:1)는 모두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있는 '언약궤'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다(출 25:22;삼상 4:4;대상 28:2;시 132:7, 8). 여기서 하나님의 거처로서의 언약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영원함'(* , 레올람)의 적용 여부에 따른 것이며(37:26, 28) 에스겔 성전의 영원성과 완전함을 암시한다. 곧 이전 성전에서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수 없었다는 점과 에스겔 성전의 완성때인 메시야 시대에는 그 언약궤가 필요치 않다는 점, 궁극적인 의미에서 메시야 시대의 '하나님의 보좌'는 '하늘'을, '하나님의 발등상'은 '땅'을 상징한다는 점(사 66:1;마 5:35)에서 언약궤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더럽히지 아니하리라 - '죽은 왕들의 시체'를 혹자는 성전 근처에 매장된 왕들의 시체로 해석하나(Ewald, Hitzig, Kliefoth) 성경의 어느 곳에도 성전 내부나 근처에 왕들의 매장지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죽은 왕들'을 므낫세나 아몬같이 우상을 숭배했던 왕으로(왕하 21:4-7), '시체'는 극히 무력한 시체와 같은 '우상'으로 이해해 '이미 죽은 그 왕들이 섬겼던 죽은 시체와 같은 우상'이란 뜻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Delitzsch, Havernick, Rosenmuller).

=====43:8,9
이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던 이스라엘의 가증한 행위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상기시킴으로써 새 성전에서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행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 문지방을...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 여기서 '그 문지방'과 '그 문설주'는 이스라엘의 패역한 왕들이 성전 바로 옆에 세웠던 이방 신전을 상징하는 것이다(Delitzsch). 또한 '담'(* , 키르)은 '금지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쿠르'(* )에서 파생된 말로 여기서는 특별히 성전의 담과 관련되어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에 대한 구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 이방 신전이 문지방과 문설주가 닿을 만큼 성전과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단지 그 성전의 벽만이 성전과 이방 신전의 경계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토로한다. 이는 곧 상징적으로 죽은 시체와 같은 우상들의 위상을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에 놓았던 이스라엘의 패역한 우상 숭배 행위를 질타하는 것이다.

=====43:10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 '보여서'(* , 하기드)는 원어상 '입증하다', '알리다', '선언하다'란 뜻이므로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성전의 계시를 선포한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철회되었고 이제 다시 회복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새 성전의 계시가 함축하고 있는 소망의 메시지를 통해 선포하라는 것이다(사 40:2, 9). 그들로...측량하게 하라 - 상반절에서 제시된 새 성전에 관한 계시 선포의 목적이다. '측량하게 하라'는 단순한 성전 구조물의 측량이라는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그 새 성전을 계시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숙고하게 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계시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들의 이전 악행을 부끄러워 하며 회개케 함과(36:31, 32;롬 2:4) 동시에 그들에게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깊이 헤아려 보게 하라는 뜻이다(Delitzsch, Schroder, Hengstenberg).

=====43:11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은 40장 이하에서 이미 측량된 바 있는 성전의 상세한 부분들을, '그 모든 형상'에서 '형상'(* , 추라트)은 어떤 물체의 전체적인 외양을 뜻하는 말이란 점에서 성전 전체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미 에스겔 선지자가 측량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성전에 대해 보고 듣고 생각한 모든 사실들을 알려주라는 의미로 그 성전의 모든 구조 하나하나에 하나님의 심중한 뜻이 계시되어 있음을 암시한다(Delitzsch). 그 모든 규례와...알게 하고...지켜 행하게 하라 - 상반절이 성전의 구조적 특징, 곧 성전 자체에 대한 외양과 그 의미에 관계된 것이라면 본 구절은 그러한 성전에서 지켜야 할 영적, 윤리적 규범들의 제시와 그 실행을 지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절 전체는 새 성전의 내적 규범과 외적 실재 모두를 동시에 언급함으로써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의 성결한 삶'이란 성전의 근원적인 원리로 집약시킨 12절을 적극적으로 수식하고 있다.

=====43:12
본절에서 에스겔은 40장부터 지속된 새 성전에 관한 기사를 일단락한다. 전의 법 - '법'(* , 토리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한 부담과 외식의 빌미를 제공했던 불완전한 율법으로서의 모세 율법과 대조되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메시야 시대의 새 법이다(요 1:17;롬 3:19-31;엡 2:15;히 8:6, 7). 그러한 법의 사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의 상징인 새 성전에 있어서 성전의 제일 원리인 '거룩'으로 요약된다(레 6:16;7:6;24:9;고전 3:17). 바로 이어서 언급되는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란 구절에서 '산꼭대기 지점'은 그 성전의 핵심으로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지성소'를 가리키며, 상징적으로 모든 법의 정점인 '거룩'을 의미한다(Delitzsch, Schroder). 따라서 그 주위 또한 지극히 거룩하게 되리란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거처의 장소가 지성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전 전체가 될 것이란 의미로 이는 이전 모세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과 특별하게 구별되는 점이다. 곧 이전에 제사장만이 밟을 수 있었던 하나님의 처소가 모든 일반 백성에게까지 확산되고 개방된다는 것은 에스겔 성전이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 개방될 메시야 시대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상징함을 보여준다(Fairbairn).

=====43:13-17
에스겔 성전에 대한 모든 내적, 외적 지침에 이어 본절부터 46장까지는 그 부가적인 설명으로 새 성전에서 드려질 거룩한 예배의 새로운 규범들을 제시한다. 이는 곧 에스겔 성전이 궁극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처소인 점과 하나님과 그 백성들의 관계 또한 새롭게 회복되고 갱신되었다는 점에서 그에 합당한 하나님과의 교제 방법을 지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침은 먼저 번제단의 규모(13-17절)와 그 봉헌 규례(18-27절)로 시작된다.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 - '제단'(* , 미즈베아흐)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번제단을 가리킨다(9:2;40:47;출 30:28). 또한 이 번제단의 기준 척수 역시 성전 측량 때와 같은 왕실 규빗이다(40:5). 한편 여타 성전 기물들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에스겔 성전 기사에서 유독 이 번제단만이 상세하게 설명, 기술되고 있는 이유는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바로 속죄란 점에서 그 속죄가 수행되는 번제단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기 위한 의도로 보여진다(히 9:22). 한편 이 번제단은 밑받침을 제외하고 모두 정방형의 3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층의 변의 길이는 각각 16, 14, 12 규빗으로 그 아래층보다 2규빗씩 짧다(본장 13-27절 문단 강해, 번제단 도면 참조).

=====43:18
성막 제단과 솔로몬 성전 제단의 봉헌(레 8:11, 15, 19, 33;왕상 8:62-66;대하 7:4 -10)과 마찬가지로 에스겔 성전의 제단 또한 그 봉헌이 명령된다.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 성전 건립 시기에 대한 최초의 언급으로 이 제단을 포함한 성전의 미래적 실재를 확신시켜 주는 말이다. 번제를...규례가 이러하니라 - 본절 이하에서 지시될 '규례'는 일반적인 번제의 규례가 아닌 제단 봉헌에 국한된 규례다(Delitzsch). 그리고 이 에스겔 성전 제단의 봉헌식은 성막 제단의 봉헌식(출 29장;레 8장)과 비교해서 다음과 같은 상이점을 가진다. (1) 제단의 성결을 위한 기름부음 의식이 없다(20절;레 8:11). (2) 성막의 제단 봉헌식에서 수송아지는 7일간의 봉헌식에서 매일의 속죄 제물이었으나(출 29:36) 여기서는 첫날에만 국한되었으며 그 이후는 번제물로 언급되고 있다(19-24절). (3) 성막 제단의 경우 그 속죄 제물의 피는 제단의 뿔에만 발랐으나(출 29:12;레 8:15) 여기서는 뿔을 비롯해서 제단의 각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까지 발랐다(20절). (4) 성막 제단의 매일의 번제물은 어린 양이었으나(출 29:15-18) 여기서는 수송아지가 추가되었다(23, 24절). (5) 성막 제단 봉헌식은 제사장 위임식과 함께 행하여졌던 바 어린양이 그 위임식 제물로 드려졌으나(출 29:19 이하) 여기서는 그 위임식 자체가 생략되고 있다. 이는 에스겔 성전에 있어 제단 봉헌식 이전에 이미 그 제사장직의 직분과 직책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19절).

=====43:19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 - 본래적으로 제사장직은 아론의 자손에게 계승되었으나(출 28:1-3) 특별하게 레위인 중 '사독의 자손'이 제사장직을 위임받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에서 이들만이 신실하게 여호와 신앙을 수호한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44:15;왕상 12:28-32).

=====43:20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 - '제단의 정결'은 백성들의 생명과 관계괸 것으로서(레 17:11) 하나님의 거룩에 합당한 백성들의 정결과 동일시된다. 여기에 언급된 '속죄'와 '정결' 역시 그와 같은 의미에서 백성들의 완전한 성결을 의미한다(Schroder).

=====43:21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지며 - 이 '처소'는 일반적으로 제물을 태우는 곳이다(레 4:12;8:17). 에발트(Ewald)는 이를 46:19에 언급된 제사장들의 부엌으로 보나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제물의 고기를 요리하는 성별된 곳이란 점에서 여기서는 성소와는 분리된 건무로서 41:12에 언급된 일종의 '창고'(* , 기즈라)의 한 장소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Kliefoth, Delitzsch).

=====43:22
수송아지를 통한 제단의 정결 의식에 이은 두 번째 날의 제사 규례가 기술된다. 첫날의 속죄 제물이 수송아지였던 데 반해, 둘째 날부터 봉헌의 마지막 날까지는 숫염소가 속죄 제물로 드려지게 된다. 이는 본래적으로 숫염소가 족장의 속죄 제물이었으나(레 4:22, 23) 모든 회중의 속죄를 위한 대속죄일에 이 숫염소가 속죄 제물로 사용되었다(레 16:5)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새 성전에 출입하는 모든 백성의 온전한 속죄를 상징하는 듯하다.

=====43:23
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는 - 이는 해석에 따라 번제단 봉헌식의 거행 일수가 달라진다(25절 주석 참조).

=====43:24
그 위에 소금을 쳐서 - 모세 율법에 나타난 제사 규례에서와 같이, 번제물에 대한 '소금'의 사용을 명시한다(레 2:13). 곧 '소금'은 그 맛과 함게 부패함을 방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부정을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민 18:19).

=====43:25
본절은 23절에서 이미 밝힌 바 있듯이 학자들간이 견해가 분분한 부분이다. 혹자는 '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23절 주석 참조)란 구절과 본절에 언급된 칠 일 동안의 제물이 첫날의 제물과 다르다는 점을 들어 제단에 대한 정결의 의미로서의 속죄 제사가 이틀에 걸쳐 수행되었으며(19-24절) 본절의 '칠 일 동안'은 그 이틀을 제외한 별도의 칠 일로 본다(Hitzig, Kiefoth). 이 견해에 따르면 제단 봉헌식의 총 일수는 9일이 되며, 27절에 언급된 '제 팔 일'은 봉헌의 시작으로부터 '제 십 일'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전 모세 성막의 제단 봉헌(출 29:37;레 8:33)이나 솔로몬 성전 제단 봉헌(대하 7:9)이 모두 7일 동안 지켜졌다는 점에서 봉헌 제사는 7일간 드려졌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본절은 염소가 7일 동안 제물로 드려졌음을 제시하므로 수송아지가 드려진 첫날에도 염소가 드려졌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본절의 날짜 계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첫날에 염소가 제물로 바쳐진 기록이 없는 점을 들어 '7'(* , 쉐바)은 '6'(* , 쉐쉬)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Keith).

=====43:26
본절은 18절에서 25절까지의 내용을 모두 포괄하여 언급한 독립적인 문장으로 에스겔 성전의 제단 봉헌이 7일에 걸쳐 수행된 사실을 재삼 확인시켜 준다. 또한 '칠 일 동안 매일 수행된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란 말이 시사하듯 히찌히(Hitzig)나 클리포스(Kliefoth) 등이 제단의 정결을 이틀에 국한시켜 언급한 것이 모순임을 보여준다. 봉헌할 것이요 - 18절부터 제시된 규례가 곧 제단 봉헌식임을 결론적으로 밝혀준다. 한편 '봉헌'(* , 말라)은 문자적으로 '채우다', '충만하다'란 뜻을 내포하는 바, 이 칠일 간의 봉헌이 완전한 헌신을 상징함을 강조해준다.

=====43:27
이 모든 날이...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 칠 일 동안 제단 봉헌식이 끝난 다음날부터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제사를 수행하게 될 것이란 의미이다. 특히 여기서 '번제'와 '감사제'가 그 정규적인 제사로 언급된 것은 '번제'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 유지와 백성들의 온전한 헌신을, '감사제'가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선지자에게 계시된 새 성전에 가장 합당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장들(40-42장)에서는 성전의 외적인 양식들을 척량하고 그 용도를 설명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주님 자신의 영광의 현현을 위한 준비적인 단계에 불과하
였다. 이제 사전 작업들을 마치고 드디어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해야만 진정한 가치를 소유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
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게 임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성전 건물을 열납하셔
따는 증거가 된다(출 40:34,35;왕상 8:10,11;대하 5:13,14). 따라서 선지자는 하나님
의 영광의 임재를 묘사하고 나서 성전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번제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5절), (2) 이스라엘의 과거의 죄악을 더 이상 범하지 않을 경우에 있을 하나
니의 약속을 묘사하는 중반부(6-12절), (3) 번제단에 대한 설명과 봉헌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는 후반부(13-2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
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경우에는 구원을 회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
다.
한편, 본장은 에스겔이 경험했던 여호와의 영광이 임재를 기점으로 내용이 전개되
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경험과 지금의 경험이 하나님의 영광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겠으나, 역사적 상황에 있어서 여러 가지 차이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구분| 1:28 |3:23 | 11:22 |43:2 |
+----+----------------+----------------+-------------------+----------------+
|상황| 생물들에 대한 |선지자 자신의 예|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스라엘의 회복 |
| | 이상을 계시하 |언 사역과 관련된| 심판을 예언하는 |을 계시하는 상 |
| | 는 상황 |상황 | 상황 |황 |
+----+----------------+----------------+-------------------+----------------+

또한, 본장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이 드러난다(2,7절). 하나님은 전통적인 성전 기도
에 사용되었던 것과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여 성전을 자신의 보좌요(렘 14:21;17:12)
발을 두는 처소(시 99:5;132:7;애 2:1)로 말씀하신다. 이러한 용어는 이제부터 영원히
성전 안에 자신의 계시적 현존을 두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표명해준다. 하나님은 당
신이 백성과 가까이 교제하는 내재적인 분이며,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
해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여호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는 광경을 묘사한 후 제단의
규모와 제단 봉헌에 관한 규례를 설명하고 있다.사실 에스겔은 예전에 하나님의 영광
이 성전을 떠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10:18-22;11:22-24). 그 이후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호 1:9) 성전은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이방 나라의
포로로 사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금 새 성전
에 임재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드디어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게 되며(호
2:23)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한 제사를 드리게 된다. 새롭게 창조된 이스라엘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열납되는 영적 예배를 드리게 되고, 완전한 헌신을 통하
여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결국 에스겔은 미래에 완성될 성전의 영광과 거룩한 사
다제사의 회복을 묘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교회의 모습을 예표
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43;1-12)
본서의 마지막 부분(40-48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본문은 여호
와의 영광이 다시 성전에 임재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내용은 심판을 지나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들을 집중적으로 밝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여호와의 영광이 돌아옴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5
절), (2) 회개하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보여주는 중반부(6-9절), (3) 새 성전의
법과 규례를 나타내는 후반부(10-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당신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결국 구원으로 귀
결되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묘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현상은 솔로몬 성전 봉헌식이나 제2성
전의 봉헌식 때에도 나타났던 현상이었다. 이제 세 경우를 비교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분 류 |솔론몬의 성전 | 에스겔의 성전 | 제2성전 |
+-------------+------------------+-----------------------+------------------+
|성 경 구 절 |대하 2-5장 | 겔 40-48장 |학 1-2장 |
+-------------+------------------+-----------------------+------------------+
|성전 건축에 |다윗 때부터 이미 | 미래에 있을 사건으 |바벧론 포로 이후 |
|대한 언급 |예언되었음 | 로 묘사 | |
+-------------+------------------+-----------------------+------------------+
|성전의 참된 |여호와의 영광 | 여호와의 영광 |여호와의 영광 |
|주체 |(대하 5:14) | (겔 43:2) |(학 2:7) |
+-------------+------------------+-----------------------+------------------+
|성전이 세월 |솔로몬 당대의 |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 |바벧론 포로 이후 |
|질 때의 |최고의 절정기 | 로로 잡혀 있는 |의 재건기 |
|분위기 | | 암흑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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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본 단락에서 제기되는 의문 중 하나는 성전을 건축하고 그 형상을 척량하라
는 명령(10절)에 관한 것이다. 과연 이 언급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비
평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학자들은 이 일을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본문의
진정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70인역(LXX)에서는 이 구절을 개역 성경과는 다르
게 '그 모양과 그 배열을 보여주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보았을
때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문자 그대로 그 성전의 형상을 척량하라는 의미보다는 세
밀히 관찰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전의 형상을 척량하
는 것이 단지 그 규모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요구
하는 문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전의 형상을 주의깊이 관찰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른 교훈을 발견하도록 촉구하시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전 건축이 당대에 하나님의 현현을 드러내는 최고의 계시 전달
수단이며 그 주체가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구약의 성전은 언
약 백성의 회복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의 주도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온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한다(1-5절). 여호
와의 영광은 동문으로 해서 성전을 떠나갔는데(10:19;11:1,23) 다시금 동쪽으로부터
돌아오고 있다. 이러한 사건은 이스라엘이 심판에서 벗어나 새롭게 회복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
시고, 더불어 교제하시며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광의 회복은 단지
성전과 같은 국부적인 장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우주에 충만하게 된다(계
18:1;21:11,23).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용서
해 주시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셨다(엡 2:4,5,8). 그러므로 종말론적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는 죄와 슬픔과 고통이 전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가득한 곳
이 될 것이다.
(2)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6-9절). 성전 회복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려면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만들
었던 자신들의 범죄를 회개해야만 한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전에 그들 속에 함께하시
던 하나님의 모습을 상기시키고(7절), 회개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관념
적이거나 추상적인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부패한 행위들을 제거
하라고 말씀하신다(9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왕상 12:28,29;왕
하 21:4,5-7;렘 16:18)에서 벗어나 하나님만을 섬기고 경배할 때 영원한 축복을 소유
하게 될 것이다(9절).
(3) 새로운 성전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자각하도록 만들어 준다(10-12
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 성전의 구조와 치수, 형상 등을 보면서 자신들의 죄를 부
끄러워 한다(10,11절). 왜냐하면 성전의 구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특별히 여기서 백성들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단지 도덕적인 차원
의 죄의식이 아니라 신앙적인 의미의 죄의식이다. 그럼으로써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
을 깨닫고 잃어버린 거룩성을 회복하게 된다(레 19:2;대상 16:29). 이와같이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한 삶을 영위하며, 타락한 시대와 민족을 향해 거룩함을 일
깨울 책임이 있는 것이다(고후 7:1).

2. 제단의 규모(43:13-27)
앞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영적이며 인격적인 교제가 회복되고 있는
가시적인 양상으로서 성전에 임할 영광(1-5절)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로운 행위를 요
구하였다(6-9절). 특히 마지막 부분(10-12절)에서는 성전과 죄의식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이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장소가 되는
제단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제단의 모양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
는 전반부(13-17절), (2) 제단 봉헌에 관한 규례를 밝히고 있는 후반부(18-27절) 등으
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 묘사되고 있는 제단의 규모를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제단의
모습에 대한 단면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6 1 6 이러한 제단의 모습은 몇 가지
+--------------+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로, 몇
3 | | 3 개의 층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협
5+-----+--------------+----+5 력과 화합의 의미를 보여준다. 둘째
| | 로, 뿔이 있다는 것(15b절)은 권세
4+--+-------------------------+--+4 혹은 권능을 의미한다. 세 번째로,
3 | | 3 번제하는 바닥의 장이 십이 척, 광
+---+-------------------------------+---+ 이 십이척, 네모 반듯하다는 사실 (
| 2 | 16절)은 견고성, 지구성, 안전성을
+---------------------------------------+ 의미한다. 특히 번제단이 예수 그리
1. 제단 2. 밑받침 3. 턱 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하는 성
4. 아랫층 5. 윗층 6. 뿔 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위의 세 가지 성격은 하나님과 인간
이 근본적으로 화목하도록 도울 수 있고, 죄인을 능히 구원할 만한 능력이 있으며, 효
과가 안전하며 영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번제단에서의 피의 제사가 드려진다(18-24절). 인간은 죄인이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죄는 필연적으로 생명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그
냥 죽도록 내버려두실 수 없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짐승의
피를 통하여 내버려두실 수 없다.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짐승
의 피를 통하여 사죄받도록 하셨다. 인간 자체로는 속죄받을 만한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동물의 피를 사용하
셨다. 번제단은 인간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
은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을 예표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모든 제사를 단
번에 영원히 완성한 것이다(히 9:12).
(2) 제사 의식이 온전히 행해질 때 하나님과의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진다(25-27
절). 번제단에서 드려지는 의식은 속죄의 성격이 주된 핵심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제단에서 드려지는 의식 가운데 대표적인 의식이 '속죄제'인 것이다(26절). 그런데 속
죄제가 죄를 전제로 한 의식인 것을 감안한다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의 진정한 교
제는 오직 죄 문제를 해결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온전한 제사는 하나님
과의 온전한 화목을 이루어 준다(27절;20:40).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1) 성전의
진정한 가치는 성전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2)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떠나게 만든다(11:24). (3) 신약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성령의 전이 되었으므로(고전 3:16) 날마다 믿음으로 온전한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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