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겔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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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여기서부터는 두로에 대한 심판이 선고된다. 무려 세 장(26-28장)에 걸쳐 진행되는 내용을 통해 우리는 두로가 지녔던 정치적, 종교적 비중을 감지할 수 있다. 팔레스틴 해변 북쪽, 페니키아의 최남단에 위치한 두로는 항해와 상업의 요지로서,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번영을 구가하였다. 지중해, 홍해 및 인도양에까지 미치는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富)를 축적함으로써 고대 근동의 중요한 해양 도시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앗수르의 발홍과 더불어 두로는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틈만 나면 천연의 요새를 발판으로 삼아 반역을 도모했다. 그리고 앗수르가 쇠락의 길을 걷자 두로는 곧바로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본절의 신탁이 주어진 시기도 바로 이 무력이었다(R.H. Alexander). 제 십 일 년 - 이는 여호야긴이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때인 B.C. 597년으로부터 11년째가 되는 B.C. 586년으로서,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해로 보는 설(說)이 유력하다.

=====26:2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 - '문'에 해당하는 '달토트'(* )는 복수형이다. 반면에 이를 주어로 삼는 세 동사들('깨어져서', '돌아왔도다', '황무하였으니')은 모두 단수형이다. 이것은 본절의 '문(들)'이 단일한 통일체를 가리키고 있음을 의히만다. 단일한 통일체란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읍이다. 그리고 '만민의 문'이란 열국의 부와 권세가 집중되었던 예루살렘의 번영했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두로는 유다에 대해 일종의 경쟁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으며, 이제 예루살렘 패망과 더불어 부(富)를 독점할 수 있다는 기대에 취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는 잠 17:5의 말씀처럼, 두로는 예루살렘 파멸을 기뻐함으로 심판을 선고받았다.

=====26:3
내가 너를...열국으로 와서 너를 치게 하리니 - 여기서는 두로에게 파멸이 임하게 하실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즉 실제로 두로를 공략했던 열국, 곧 바벨론과 그 동맥국들은(Cooke)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해안 도시인 두로의 파멸을 해일과 폭풍의 이미지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26:4
티끌을...말간 반석이 되게 하며 - 3절에서 나타난 폭풍과 해일의 이미지가 계속 연결된다. 성벽과 망대를 허물어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티끌 하나 남기지 않을 정도로 슬어가버린다는 이 선언은,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경멸, 무시하며 죄악의 바벧탑을 쌓아가는 자들은 반드시 진멸당하고 만다(롬 2:4, 5;벧후 2:10).

=====26:5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 - 이 표현 역시 해안 도시인 두로에게는 매우 생생한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 출어(出漁)에 사용할 그물은 대개 해안의 바위 위에 널어 말렸다. 그런데 해일이 밀어닥쳐 그것을 바다 가운데로 쓸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바다 가운데'(* , 베토크 하얌)라는 표현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즉, 이 표현은 이집트나 앗시리아의 문서들에서 뿐만 아니라 본서의 다른 구절들(27:4;28:2)에서도 난공 불락에 가까운 요새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Walter Eichrodt). 그러나 여기서는 오히려 생계의 기본 방편인 그물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리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징벌 앞에서는 그 어떤 방어벽도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26:6
들에 있는 그의 딸들 - 두로에 의존되어 있었던 주변 성읍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두로만 파멸되면 쉽사리 정복될 수밖에 없었고(J.B. Taylor),두로의 지배권을 효과적으로 박탈하려고 하는 정복국이라면 당연히 이들마저 손아귀에 넣으려 했을 것이다(Water Eichrodt).

=====26:7
열왕의 왕 - B.C. 1100-626년 사이에 앗수르 왕들이 스스로 이런 칭호를 사용한 예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대왕'(the great king)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사 36:4). '열왕의 왕'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왕들에게 흔히 사용되었다(스 7:12). 토레이(Torrey) 같은 학자는 본절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삽입구로 보고 '열왕의 왕'이란 알렉산더 대왕을 지칭한다는 견해를 제시하지만 무리한 해석이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 이러한 칭호가 느부갓네살의 비분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느부갓네살은 스스로 바벨론의 정통을 계승한 자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Cooke). 그리고 '느부갓네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철자는 '네부캇레차르' (* )인데, 바벨론식으로는 '느보가 왕관을 수호한다'는 뜻인 '나부-쿠두리-우수르'로 일컬어진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적절한 독법이라 할 만하다. 개역 성경의 독법은 당시 폭넓게 사용되었던 아람어 형태이다. 북방 - 예레미야서에서 파멸 세력이 오는 방향으로 종종 언급된 바 있다(렘 1:14;4:6;6:1;13:20;47:2;50:3, 41).

=====26:8
운제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 '운제'(* , 다예크)는 '토성', '보루'를, '토성'(* , 솔렐라)은 '언덕', '방벽'을 각각 뜻한다. 이러한 것들은 해안 도시를 공략하기에는 부적절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에살핫돈(B.C. 673년경)과 앗술바니팔(B.C. 668년경)에 의해 두로가 함락될 당시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Cooke).

=====26:9
공성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벧'(* )은 성경 중 오직 여기서 단 한번 나온다. 아마 '받다', '대면하다'는 뜻인 '카발'(* )에서 유래한 듯한 이 단어는 고대 전쟁에서 성을 공략하기 위해 유용하게 쓰였던 공격 무기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26:10
말이 많으므로 그 티끌이 너를 가리울 것이며 - 고대 전투에서 마병의 위력을 실로 막강했다. 그런데 두로를 공격하는 마병의 수효는 그 먼지가 앞을 가리울 정도라고 묘사된다. '많으므로'의 히브리어 '쉬프아'(* )는 '풍부함' 혹은 '많은 무리'를 뜻하며(왕하 9:17;사 60:6), 비유적으로는 큰 물의 범람을 가리키기도 한다(욥 22:11;38:34).

=====26:11
견고한 석상 - 두로의 우상인 멜카스(Melkarth)에게 봉헌된 기념비를 가리킨다(Cooke). 고대 전쟁관에 의하면, 한 민족의 흥망은 곧 그들이 섬기는 신(神)들의 음명과 직결된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본절은 두로의 철저한 파멸을 암시하고 있다.

=====26:12,13
두로의 거민들과 신들을 사육하고 훼손시킨 뒤, 이어서 재물을 강탈하고 그 성읍을 철저히 파괴하는 광경이다. 기뻐하는 집 - '집'의 히브리어 '바이트'(* )는 '집', '뜰', '궁전' 등을 뜻한다. 본절의 '집'을 부으한 상인들의 거대한 정원으로 보는 이들도 있으나(Ewald), 왕궁을 포함한 근사하고 화려한 저택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더 무난하겠다(Delitzsch).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 - 알렉산더 대제가 두로를 공략할 때, 두로 땅의 바위나 목재들을 바다에 던져 넣어 방둑을 만든 후 그리로 침공해 들어간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로의 철저한 파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문맥적이었다. 그 결과 두로에는 번창할 당시의 모든 기쁨과 행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암 5:23 참조).

=====26:14
4, 5절과 유사한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내용이다. 본절의 선언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과 헬라의 알렉산더에 의해 완전히 성취되었다. 특히 알렉산더는 육지에서 두로에 이르는 길이 800m, 폭 60m 가량의 방파제를 건설한 후 7개월 간 압박하였다. 그러자 두로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약 3만명의 거민이 노예로 팔렸고 2천명 가량의 지도급 인사들이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26:15
모든 섬이 진동하지 아니하겠느냐 - 난공 불락이라고 여겨졌던 두로가 허무하게 멸망하는 것을 보고 섬들, 곧 두로에게 경제적, 정치적으로 의존하거나 교류하였던 지중해 연안 지역 전체가 공포와 당혹감에 휩싸이게 된다는 예언이다.

=====26:16
본절에서는 상황의 뒤바뀜으로 말미암은 대조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왕 - 개역 성경에서는 '왕'이라 번역되었으나, 두로와의교류를 통해 막대한 부를 누렸던 상인들(거상, 巨商)로 보는 것이 더 무난하다. '보좌'로 번역된 '키세오트' (* ) 역시 왕의 보좌라기보다는 근사하고 화려한 의자를 지칭할 뿐이다(삼상 4:13 참조). 이제 두로의 상인들은 부귀를 자랑하던 의복을 벗고 도리어 공포와 떨림으로 옷을 입는다. 이러한 수사법은 7:27에서도 발견된다.

=====26:17,18
여기서는 두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애가를 직접 인용함으로써, 마치 두로가 이미 멸망당한 것과도 같은 생생한 효과를 주고 있다. 애가(哀歌)를 부르는 절차는 고대 근동의 장례식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었다. 두 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본문이지만, '애가'(* , 키나)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즉, 17절은 죽은 이의 미덕이나 장점을 기리는 찬사(eulogy)에 해당하며, 18절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인 것이다(R.H. Alexander). 원문상으로는 본 애가가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 , 에크 아바데트)로 시작하는 바, 이것 역시 애가의 전형적인 서두에 해당한다(Walter Eichrodt).

=====26:19
두로의 멸망을 애도하는 장송가에 이어 영원한 사망을 선고함으로써 심판 선언을 마무리하고 있다. 본절부터 21절까지는 3-6절과 유사한 표현으로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겨냥하여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깊은 바다 - 히브리어 '테홈'(* )은 태고 시대의 혼돈의 물을 암시하는 말이며,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R.H. Alexander). 또한 이러한 이미지는 해양 도시 국가였던 두로에 대한 심판이라는 주제와 적절하게 어울린다.

=====26:20
내가 너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내려가서 - 죽음을 구덩이에 빠지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에스겔과 다른 선지자들에게 흔히 사용되었다(31:14-16;32:18, 23-25;사 14:15;38:18). 여기서 '구덩이'(* , 보르)는 사자(死者)의 처소라고 여겨진 '음부'(* , 쉐올)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옛적 사람'(* , 암 올람)이라는 표현은 노아 홍수로 인해 멸망당한 자들을 상기시킨다(벧후 2:5, Delitzsch).

=====26:21
내가 너를 패망케 하여 - 맛소라 본문인 '발라호트 에테네크'(* )를 직역하면 '내가 네게 공포(혹은 고통의 종국)가 임하게 할 것이다'이다. 회복의 가능성조차 전무한 깜깜하고 무시무시한 곳, 그곳이 바로 두로 앞에 놓여있는 운명의 장소라는 말이다(J.B. Taylor). 한편, 본절 하반절은 내용상 사 41:12과 유사하다.



에스겔은 이제 북쪽에 위치해 있는 두로에 대한 심판으로 눈을 돌린다. 특히 이 두
로에 대한 심판 예언을 다른 이방 국가들보다 길게 언급하였는데 이는 이 도시가 정치
적,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함을 암시한다. 또한 전장(25장)에서 묘사되고 있는 암몬이
나 모압, 블레셋에 대한 심판 예언이 포괄적인 반면, 본장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두로
에 대한 에언들은 상세하고 치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두로에 대한 심판을 신탁의 형식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는 전
반부(1-14절), (2) 두로의 멸망에 대한 이웃 국가들의반응을 묘사하고 있는 붕밤부
(15-28절), (3)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을 기술하고 있는 후반부(19-21절)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한편, 두로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본 대목(26-28장)은 심판 선언과 애가가 혼합
적으로 드러나 있다. 즉, 26:1-17a, 19-21;27:1-3a, 12-24;28:11,12a,20-22a,24-26 등
은 산문체로, 26:17b, 18;27:3b-11,25-36;28:2b-10,12b-19,22b-23 등은 시가체로 되어
있다. 이처럼 저자는 문체를 변경함으로써 자신의 영광에 자만했던 두로의 파멸의 확
실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본장은 암몬이나 모압, 블레셋 등에 대한 예언과는 다르게 상당히 많은 양을
할애하여 두로에 대한 심판을 기술하고 있다. 두로는 베니게의 중요한 성읍 중의 하나
였다. 솔로몬 시대에 두로 왕인 '히람 1세'는 히브리 사람과 중요한 무역 관계를 맺었
고(왕상 5장;9:10-14,26,27) 아합은 두로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벧을 아내로 삼았다(왕
상 16:31).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한 후 두로를 정복하기 위해 침략했
으나 끝내 정복하지 못했다. 이처럼 강한 두로에게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
임을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국제 무역의 요충지로서 이웃 나라들에
게 많은 영향을 끼친 두로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
해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었으며, 다른 족속들과 같이 적개심과 증오감을 가지고 있
었다. 이런 상황에서 두로는 예루살렘이 바벧론에 의해 함락되자 경제적 이익을 생각
하며 대단히 기뻐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부귀 영화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하
셨으며(사 23장; 렘 25:22;27:3;47:4)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게 만드신 것이다
(19-21절0. 여기서 우리는 외적 풍요에 물들어서 안일에 빠지고 택한 백성을 업신여기
는 태도를 지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1. 두로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26:1-14)
암몬과 모압, 블레셋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나서 본 단락에서는 두로에 대한 심
판을 예언하고 있다. 이 두로에 대한 예언은 전장(25장)에서 기술되고 있는 국가들과
는 달리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심판의 이유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
로 이스라엘과 관계된 것이었다. 결국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되는 두로에 대한 심판 역
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세상 세력의 상징인 두로와의 갈등에 기인하는 것이
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심판의 이유를 밝히는 전반부(1,2절), (2) 포괄적인 심판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는 중반부(3-6절), (3) 심판의 도구를 밝히는 후반부(7-14절) 등으
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 정확한 해석을 요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두로의 죄악을 밝히
는 문맥에서 두로가 '아하 좋다 만민의 문이 깨어져서 내게로 돌아왔도다'(2절)라고
묘사하는 내용이다. 비록 이 부분이 짧은 한 구절에 불과하지만, 본 단락에서 밝히고
있는 두로의 심판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학자들
은 '만민의 문'은 성전을 가진 예루살렘 도시의 구원사적인 사명을 의미한다고 본다.
즉, 만민이 예루살렘에 찾아와서 구원의 길을 찾게 됨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을 취한다면 예루살렘의 구원사적인 역할이 두로에게 넘어간다는 의미가
되므로 옳지 않다. 따라서 이 표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예루살렘이 열국의 상업 요
충지였었는데, 이제는 깨어졌으므로 그 역할이 두로에게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두로는 이러한 예루살렘의 패망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이다.
또한, 본 단락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두로에 대한 심판 예언은 다른 성경에서도
나타난다. 이를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이사야 | 에스겔 | 아모스 |
+-------------+-----------------+--------------------+----------------------+
| 성경 구절 |23:1-18 | 26:1-28:19 | 1:9,10 |
+-------------+-----------------+--------------------+----------------------+
| 심판의 이유 |자신들의 국력이 | 이스라엘이 망하는 |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
| |강해지자 교만하 | 것을 보고 좋아함 | 파기함(9절) |
| |게 됨(9절) | (26:2) | |
+-------------+-----------------+--------------------+----------------------+
| 심판의 결과 |견고한 성이 파 | 바벧론에 의하여 | 두로 성에 불을 보냄 |
| |괴됨(14절) | 멸망하게됨(26:7) | (10절) |
+-------------+-----------------+--------------------+----------------------+

이처럼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시작하고 있는 본 단락의 주도적인 내용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심판의 이유(1,2절) : 두로에 대한 심판의 이유 역시 이스라엘과 관련되어 있
다. 두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망을 보고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암몬 이 주로 이스
라엘 백성들의 종교적인 몰락을 보고 기뻐하였다면, 두로는 예루살렘의 정치적, 경제
적 몰락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되
어 철저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심판의 상황(3-6절) : 에스겔은 비유적인 어법으로 심판이 부분적이 아니라 포
괄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호와의 직접적인 개입을 알리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 버려서'(4절)라는 표현을 통해 심판의 상황이 하나님의 주도적
인 섭리에 의하여 철저하게 이루어짐을 강조하고 있다. 두로는 견고한 방비에도 불구
하고 성벽과 망대 등 모든 것들이 훼파되어 돌 위에 먼지 하나 남지 않도록 파괴된다
(3절). 이처럼 아무리 강대하고 훌륭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하루아침에
멸망하는 것이다(시 1:4).
(3) 심판의 두구와 심판의 전개 과정(7-14절) : 하나님은 심판의 구체적인 수단으
로서 바벧론을 사용하신다. 군사적으로 탁월한 지도자였던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르를 도우러 온 애굽의 바로느고를 쳐부수고(왕하 23;31;대하 35:20-27) 예루살렘
을 침공하여(왕하 24:7,10;25:1;단 1:1)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 여세를 몰
아 느부갓네살은 13년간 두로를 정복하고 통치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현존하는 세상의
국가글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성취하신다(대하 36:23;사 45:1-7). 이제 바벧론이 두로
를 침략하는 과정을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
| (가) 큰 군대가 와서 두로를 침(7절) - (나) 두로 성읍들을 파괴함(8-10절) - |
| (다) 거민들을 죽임(11절) - (라) 두로의 모든 재물을 노략할 것임(12절) - (마)|
| 즐거움을 빼앗아 감(13절) - (바) 완전히 소멸됨(14절) |
+----------------------------------------------------------------------------+

2. 두로 심판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반응(26:15-18)
본 단락은 두로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고 나서 주변 국가들의 반응에 대해 기록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의 전환은 두로에 대한 심판이 두로 자체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
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하나님
은 당시 가장 번성한 국가인 두로를 심판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
의를 드러내 보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두로의 부르짖음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5절),
(2) 이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6-18)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는 주변 국가의 왕들에 대한 애가가 기록되어 있는 데, 히브리
시의 독특한 문체인 장례식에서 행해지는 비탄조의 박자(qina meter)로서 표현되어 있
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현재 두로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종말에 가까운 심판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두로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이 세계의 진정한 통
치자임을 알리고 있다. 사실 두로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는가 하는 사실은
'모든 섬이 진동한다'(15절), '무시로 떨며 놀랄 것이며'(16절), '네 결국을 보고 놀
라리로다'(18절)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주변 국가들이 두로 만큼
은 쉽게 멸망되지 않을 견고한 나라라고 생각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견고
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역
사를 운영하시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3. 두로의 결정적인 패망을 예언함(26:19-21)
두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반응을 연속적으로 밝히고
있는 전 단락(1-18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두로가 결정적으로 황폐화될 것임을 강도
놓게 예언하고 있다. 이전의 내용들에서는 가까운 시점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였지
만, 본 단락에서는 먼 미래에 있을 두로의 종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이
와같이 이방 국가 중 강한 세력으로 대표되고 있는 두로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하나님
께서 모든 반하나님적인 세력들을 철저히 심판하심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
은 (1) 두로에 대한 심판의 시점을 밝히는 전반부(19절), (2) 두로가 완전히 패망할
것임을 확언하는 후반부(20,2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3-6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적인 비유 형태의 예언의 내용을 구체
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두 문단의 관련성을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구 분 | 3-6절 | 19-21절 |
+--------+--------------------------------+----------------------------------+
| 문 체 |시적이기에 상징적인 성격을 띰 |직설적인 형식을 취하여 묘사함 |
+--------+--------------------------------+----------------------------------+
| 도입부 |두 문단 모두 신탁의 형식을 빌어서 내용이 시작됨 |
+--------+--------------------------------+----------------------------------+
| 내용의 |하나님의 심판이 보편적으로 임할 |두로의 종말에 강조점을 두어 묘사함|
| 강조점 |것임을 언급함 | |
+--------+--------------------------------+----------------------------------+

또한, 본 단락에서는 두로의 종말에 대한 묘사를 하면서 '스올'에 들어가게 된다고
묘사한다. 이러한 표현은 본서뿐아니라(31:14-16;32:18,23-25) 이사야서(사
14:15;38:18)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에스겔은 두로에 대한 심판에서도 동일한 용어를
씀으로써 두로에게 임할 비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내용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두로의 죽음(19,20a절) : 두로가 '구덩이'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언은 죽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또한 '깊은 바다'나 '큰 물'이라는 표현 역시 죽음을 상징하는 표
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았을 때 두로는 하나님의 심판으
로 생명을 상실하게 된다.
(2) 두로의 사라짐(20b, 20절) : 두로의 죽음은 결국 두로가 역사선상에서 완전히
사라짐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두로의 옛 명성을 기억하고 찾지만 결코 발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맹위를 떨쳤던 국가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완
전히 사라진 사례를 종종 있었다. 고대 바벧탑의 무너짐(창 11:1-9)이나 소돔과 고모
라의 패망(창 19:24-28)은 좋은 실례이다. 이처럼 하나님 없이 인간적인 힘을 의존하
는 민족과 국가는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으
마비난하고 조롱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암 1:11). 하나님은 주권적
인 의지를 가지고 원수를 멸망시키시며, 성도를 존귀케 하신다. (2) 하나님의 백성들
은 이방 백성들의 멸망을 보면서 더욱더 경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벧전 4:7,8). 하
나님의 공의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과 다른 탁월한 삶을 영
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이방 국가드르이 심판에 대한 신학적 의미.
구약 선지자들, 특히 B.C. 8C 선지자들의 예언의 특징은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 이사야서에서는 이
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문맥 가운데(사 13-23절)에 위치하고 있고, 예레미야
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이 거의 끝나고 난 후의 문맥(렘 46-51장)에 위치하
고 있고, 아모스서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 전(암 1:3-2:3)에 언급되어 있
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 예언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만이 이 세계의 진정한 통치자임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 전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다(6절).
(2) 심판은 동시적이나 심판의 기준은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준(암 2:4;롬 2:17-29)이지만,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기준은 일반적인 도덕률에 의거한다(롬 2:14-16).
(3)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것에 대한 보응의 의미를 갖는다(2,3절). 이방에
대한 심판은 단순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소극적인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한 응징이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4) 이스라엘과 이방 국가에 대한 심판이 동시적이라는 사실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종적 심판을 예표한다(마 25:31-46).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구원과 영생과 상급, 불신자들에게는 유황불못에 던져지는 여원한 저주와 형벌이 각각 주어진다(계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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