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이스라엘 방백들 - '방백'의 히브리어 '나시'(* )는 '높은 지위의 사람', '지도자', '통치자' 등을 뜻한다. 맛소라 본문에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으나 70인역(LXX)은 단수형으로 읽고 있다. 70인역의 독법을 따르는 학자들은(Ewald, Hitzig) 그 단어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맛소라 사본의 독법을 따라 '방백들'이 유다의 왕들 중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Cooke, Wycliffe, Delitzsch). 애가 - 일반적으로 애가는 슬픈 곡조의 성격을 띠는 시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위클리프(Wycliffe)는 이에 대하여 세 박자로 된 긴 행(行)에 이어 두 박자로 된 짧은 행이 뒤따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애 1장;암 5:1-3).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방백들에 대한 애가(哀歌)를 짓도록 한 것은 이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인도할 뿐만 아니라 잘 목양(牧羊)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범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바,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교훈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19:2
네 어미는 무엇이냐 - 여기에서 '네 어미'란 비유적인 말로서 혹자는 요시야 왕의 부인이며, 여호아하스 왕의 모친인 하무달(왕하 23:31;24:1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나(Herrmann, Orelli), 일반적으로는 유다 왕국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Wycliffe, Cooke, Bruce, Delitzsch, Dyer). 이와같이 한 국가 또는 지역을 '어미'로 묘사한 곳은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시 87:5, 6;사 50:1;호 2:4, 7;4:5). 한 국가 또는 지역이 '어미'로 묘사된 것은 그 국가 또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곳에서 출생하고 안주하며 나아가서 그곳에 예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암사자라 - 혹자는 창 49:9이나 민 23:24 등에 유다나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된 '암사자'라는 말을 따른 것으로 추측한다(Plumtre).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 구절에서 유다 왕국을 '암사자'로 묘사한 것은 사자가 백수(百獸)의 왕으로서 강하고 용맹한 바 유다 왕국의 강함과 용맹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Wycliffe, Leale). 이와 달리 혹자는 암사자를 잔인하고 강포한 존재로 보기도 하지만(Calvin, Plumtre) 내용상 지지받기 힘들다. 특히 '암사자'란 다음에 언급되는 '사자들'이나 '젊은 사자'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이 사자의 생산성(生産性) 또는 양육성(養育性) 등의 뜻을 함축한다.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 여기에서 '사자들'이란 유다 왕국 주위에 거하고 있는 이방 열국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엎드리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바츠'(* )는 '(네 다리 모두를 모으고) 쭈그리다', '기대다', '휴식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로 보아 본 구절은 암사자가 다른 사자들 가운데서 편안히 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유다 왕국이 이방 열국 가운데 안연히 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여기에서 사자가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다 왕국이 주위 이방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안일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설명은 유다 왕국 말기에 국한된 것이기에 타당하지 않다. 그 새끼를 기르는데 - 여기에서 '그 새끼'란 여호아하스를 가리킨다(3절 참조).
=====19:3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삼키매 - 이는 젊은 사자의 포악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악하게 행동한 것을 가리킨다(왕하 23:30-32). 특히 본 구절은 그가 동족을 학대하고 압제하며 나아가서 살해까지 한 것을 암시한다.
=====19:4
이방이 듣고...애굽 땅으로 간지라 - 여기에서 '이방'이란 애굽 왕 바로느고를 가리킨다. 그는 앗수르를 치러 가는 자신을 대적하는 유다 왕 요시야를 죽이고 대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그의 후임 왕으로 옹립하였다(왕하 23:29, 30;대하 35:20-24). 그러나 유다 왕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악하게 행하자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애굽 왕 바로느고를 올라오게 하여 그를 애굽으로 사로잡아 가게 하셨다(왕하 23:31-34;대하 36:2-4).
=====19:5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되게 하니 - 본 구절에서 '새끼 하나'란 비유가 유다의 어느 왕을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되지 않는다. (1) 6-8절에 언급된 내용으로 보아 유다 왕 여호아하스를 계승하여 그 후임으로 왕이 된 여호야김을 가리킨다(Calvin, Bruce). (2) 9절의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실을 볼 때 여호야김 이후의 왕 여호야긴을 가리킨다(Wycliffe, Plumtre, Cooke, Dyer). 이상의 견해 중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두 번째 견해가 옳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족보에서 '아들'이란 표현이 '손자'에게도 적용되듯이 여기서도 '새끼'가 반드시 '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6
젊은 사자가 되매...왕래하며 - '젊은 사자'로 비유된 여호야긴 왕이 권력을 잡은 후에 이방 여러 나라들과 교제하며 교류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국제적인 정세는 느부갓네살 왕 휘하의 바벨론이 애굽을 패퇴시키고 근동 지방의 패자로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왕하 24:7). 사람을 삼키며 - 여호야긴 왕이 백성에 대해 압제와 학대로 악정(惡政)을 한 것을 가리킨다(3절 참조). 열왕기 저자는 그에 대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고 기록했다.
=====19:7
그의 궁실들을 헐고(* , 예다 알메노타우) - 이는 문자적으로 '그가 그의 과부들을 알다'의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1) 문자 그대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유다의 과부들을 범한 부정한 행위를 가리킨다(Delitzch, Leale). (2) 사본가(寫本家)들이 성경을 옮겨 쓸 때 잘못하여 실수한 것으로서 본 구절의 '과부들'은 '성읍들'(궁성들)로 읽혀져야 한다. '알다'란 '창피를 주다', '굴욕을 느끼게 하다'로 읽혀져야 한다. 위의 두 견해 중 전후 문맥의 흐름에 따르면 (2)가 더 타당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탈굼역(Targum)및 70인역(LXX)외에 많은 영역본들(NIV, RSV, NASB)도 후자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아마 여호야긴 왕은 자기의 정치적인 대적들을 학대하고 멸하면서 그 궁성들까지도 헐었던 것 같다. 성읍들을 훼파하니...황무한지라 - 여호야긴 왕이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 거주지 성읍들을 훼파한 학정으로 인하여 유다 땅이 황량케 됨을 암시한다. 본래 유다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17)으로서 풍요와 안식을 누리기에 적함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케 되었다는 것은 여호야긴 왕의 학정과 그로 인한 피폐함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 =====19:8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잡아 - '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 )은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는 유다 왕국 주위의 많은 이방 나라드를 가리킨다. 이들은 여호야긴을 직접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간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야긴을 공격했던 것 같다. 사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그 군대의 상당수를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에서 뽑았을 것이다. 본절은 이런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이 유다 왕국을 침입한 아람, 모압, 암몬 등의 침공 사건을(왕하 24:2)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alvin). 이것은 본장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
=====19:9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 '철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수가르'(* )는 '에워싸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사가르'(* )에서 나온 말로 '우리'를 뜻한다. 여기서는 사냥한 짐승이나 포로된 사람을 운반하기 위해 철이나 나무로 만든 우리를 가리킨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고대 앗수르의 앗술바니팔(Assurbanipal, B.C. 669-626년)의 사냥 장면을 나타낸 부조(浮彫)에는 생포된 사자르 나무틀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넣어 옮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Cooke). 이는 '젊은 사자'(5, 6절)로 비유된 여호야긴이 사냥된 짐승처럼 포로로 잡혀 바벨론 왕에게로 끌려가게 된 것을 잘 나타내 준다. 또한 포로로 잡혀가는 여호야긴의 처참성과 연약성을 엿보게 해주기도 한다.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옥에 가두어서 -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을 가리킨다(Wycliffe). 그는 약 석 달 동안 유다 왕으로 악하게 통치하다가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그 모친과 신복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었다(왕하 24:10-16). 그 소리로...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 7절을 참조해 볼 때, 땅을 황무케 하는 젊은 사자의 우는 소리가 이스라엘 산지에 들리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황량케 했던 여호야긴 왕의 잔악과 강포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미치지 못하게 함을 암시한다.
=====19:10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 두 개의 히브리 사본은 '네 피'를 '네 포도원'으로 읽고 있다. 이럴 경우 본 구절은 '네 어미는 네 포도원에서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해석된다. 이 독법이 자연스럽기는 하나 다른 히브리 사본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맛소라 사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히브리 사본처럼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읽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2절에서와 같이 '어미'는 유다 왕국을, '네 피'는 유다의 왕통을 비유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처음 유다 왕통에 의해 세워질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매우 견실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는 유다 열왕의 표본이 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했음을 가리킬 수 있다. 물이 많으므로 - 물은 성경에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매개체로 비유된다(시 1:3). 여기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충분할 만큼 공급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상징한다(17:5 참조). 신약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요 4:14;계 22:1, 2).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세력면에서 번성하여 강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19:11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홀이 될만한데 - 여기의 '가지'란 단어는 10절의 '가지'와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10절의 '가지'(* , 아네프)가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역할에 적용된 반면 본 구절에서의 '가지'(* , 마토트)는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가지'는 다윗을 이은 유다 왕통을 상징한다(Leale, Plumtre, Lange). 에스겔은 17:6, 7에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포도나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혹자는 여기에서 '가지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며 '홀'이 이스라엘(유다)의 왕을 뜻한다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이 해석은 전체 내용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지'는 다윗의 위를 이은 유다의 왕가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편 '홀'은 흔히 왕이나 권세자들이 그 권세와 권위의 상징으로서 지니는 조그마한 막대기를 가리킨다(창 49:10;암 1:5). 그 하나의 키가...높았으며...뛰어나서 보이다가 - 여기에서 '그 하나'란 본장의 문맥의 흐름상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이어 왕이 된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Wycliffe, Herrmann). 그는 유다를 11년 동안 통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와 반바벨론 정책을 펴다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당했다(왕하 24:18-25:7). 한편 '높았으며'나 '뛰어나서'란 표현에 대해 혹자는 시드기야를 상징하는 가지가 주위의 여러 가지들보다 뛰어나게 솟아오른 것을 나타내는 말로 이는 시드기야 시대의 왕국이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탁월하며 번창한 가운데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Calvin). 그러나 당시 유다 왕국이 정치적 격동기에 있었으므로(왕하 24:13, 14) 이 견해는 지지받기 어렵다. 오히려 그 두 단어는 실제로 왕위에 오를 수 없었으나 조카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19:12
분노 중에 뽑혀서...당하매 - 본 구절은 포도나무가 온전히 파괴당해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처해진 것을 뜻하는데 이는 시드기야 왕이 당한 패망의 처참성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는 바벨론 군대에 사로잡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끌려갔었다(왕하 25:7).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탔더니 - '동풍'이란 바벨론 군대를 상징한다(17:10). 이와 같은 본 구절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피폐해지고, 유다의 왕통이 끊어지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Plumtre).
=====19:13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되고 -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이란 바벨론 지역을 상징한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 이제는 이전에 누렸던 풍요로움, 정치적인 권력 등을 누리지 못하고 삭막하고 피폐한 상태에 처해진 것을 암시한다. 특히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의 소생 불능의 상태, 즉 다시 이전의 권력의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음을 암시한다.
=====19: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난에서부터 나와서 - 여기에서 '불'이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에서 엿보여지는 바와 같이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가지 중 하나'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 이로 볼 때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의 죄악과 하나님의 섭리에(렘 25:1-11;38:14-23) 거스린 반바벨론 정책으로 인해(왕하 24:19, 20;25:1)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결국 그 불길은 온 이스라엘(유다)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고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황폐케 한 사실을 뜻한다. 권세 잡은 자의 홀이...없도다 - 이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고 유다 왕국이 패망함으로 더 이상 육신적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는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다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다윗의 위를 이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신다(마 1:1;눅 1:32, 33).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날카로운 필치로 지적하고 있는
전장(18장)에 이어서 본장은 이스라엘 왕들의 근본적인 죄악을 애가의 형태로 지적한
다. 전장이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개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본장은 이스라엘의
상층부, 즉 지도자들의 죄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본장은 (1) 여호아하스 왕이 애굽의 포로로 잡혀간 사
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4절), (2) 여호야긴 왕이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간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5-9절), (3)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
간 사실에 대한 애가를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파멸이 아닌 평온에 대한 헛된 소망
을 갖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한편, 본장의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면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애가로 구성되어 있
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9절까지이고 두 번째 부분은 10-14절까지의 내용
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단편을 각각 다른 시대에 저작되었던 것을 에스겔이 후대
에 합해서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본장의 내용이 여러 왕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으
로 설정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기존의 문서들을 통합한 것으로 보게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에스겔은 본장의 내용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역
설적으로 서두(1절)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본
장은 유다 말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갖는 하나님의 슬픔을 시적으로 표출한 부분이라
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본장에는 상징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다윗 왕가를 암사자에, 왕
들을 젊은 사자에 비유한다(2,3,5,6절;창 49:9;왕상 10:19,20;미 5:8).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다윗 왕가를 포도나무에, 왕들을 가지에 빗대어 묘사하였다(10절; 창
49:10-12;시 80:8).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실제적
으로 보여준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신자를 가지에 비유하였다(요
15:5).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포도나무 비유는 하나님과 택한 백성 간의 관심과 애
정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운율에 따라 기록된 만가(輓歌) 형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심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원래 고대 근동 지방에서 만가는 죽은 사람
의 덕망과 업적을 찬양하고,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슬픔과 대적들에 대한 저주(삼
하 1:21;3:34)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에스겔은 애가를 통해 유다 왕국의
패망을 슬퍼하고, 유다 백성들의 죄와 슬픔을 후대에 가르치려고 한다. 결국 유다 왕
들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촉구하고, 평온에 대한 헛된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1. 여호아하스의 결국(19:1-4)
본 단락은 전장(18장)과 비교했을 때 문체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내용적 흐
름은 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전 단락(18:30-32)에서도 유다 백성들의 조에 대한 진
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듯이 본 단락에서도 유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단락부터는 유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왕들의 행적과 죄를 지적함으로써
구체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애가를 지으라는 권고를 담고 있는 전반
부(1절), (2) 젊은 사자의 결국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후반부(2-4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방백들'(1절)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나타나고 있
다. 우선 이 표현이 단수인가 복수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0인역(LXX)에서는 단수
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러 학자들이 유다 왕 시드기야 한 사람에 대한 애가로 주장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취할 경우 다음에 나오는 내용과 연관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M.T.(맛소라 사본)에서는 복수로 표현하고 있고, 대개의 학자들이 이 복수를
그대로 받아들여 유다 왕들 중에 몇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이 견해를 취한다면
다음의 내용들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용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방백들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
다. 이제 본 단락의 내용적 이해를 돕기 위해 왕들에 대한 지적을 요약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성경 구절 | 유다 왕 |통치 연대 | 중 요 치 적 |
+----------+-----------+--------------+-------------------------------------+
|왕하 23:31| 여호아하스|B.C.609년 | 악을 행함. 애굽에 끌려가서 죽음 |
| -34 | |(3개월간 통치)| |
+----------+-----------+--------------+-------------------------------------+
|왕하 23:34| 여호야김 |B.C.609-598년 | 요시야의 장자. 악하고 무능함. |
|-37, 24:6 | | | 바벧론에 반대하여 대항 |
+----------+-----------+--------------+-------------------------------------+
|왕하 24:8 | 여호야긴 |B.C.598년 | 느부갓네살 침공 때 포로가 되었음 |
| -16 | |(3개월간 통치)| |
+----------+-----------+--------------+-------------------------------------+
|왕하 24:17| 시드기야 |B.C.597-586년 | 요시야의 3자(子). 에돔. 모압, 암몬, |
| -25:7 | | | 베니게, 유다의 연합으로 바벧론에 |
| | | | 반대함. 그 결과 B.C.586년에 멸망 |
+----------+-----------+--------------+-------------------------------------+
이와 같은 도표를 통해서 보듯이 본 단락의 애가는 유다 말기의 어두운 시대적 상
황을 배경으로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 단락의 애가는 예레미야의 애가와 동일한 사상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망
해가는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을 극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
징을 갖는다. 그러나 몇 가지 내용에서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분 류 | 겔 19장 | 애 1-4장 |
+------------+--------------------------+-------------------------------------+
|내용의 배경 |유다 말기의 역사적 사실을 | 역사적 사건보다 신학적, 신앙적 의미|
| |배경으로 하고 있음 | 를 부각시킴. |
+------------+--------------------------+-------------------------------------+
|비유의 소재 |사자, 포도나무 | 처녀 시온, 정금 |
+------------+--------------------------+-------------------------------------+
|애가의 대상 |이스라엘 방백들 | 이스라엘 백성 전체 |
+------------+--------------------------+-------------------------------------+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사적 사건 : 본 단락의 내용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여호아하스의 시대를 배
경으로 하고 있다.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3절)라는 표현은 여호아하스
가 행한 악과 잔인성을 표현한 말이다(왕하 23:32). 그리고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
를 잡아'(4절)라는 표현은 애굽과 그 동맹국들이 여호아하스의 침략 정책을 보고 그를
잡으려고 함정을 놓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바로느고에 의해
서 여호아하스가 사로잡혀간 사실을 비유한 것이다(왕하 23:34;렘 22:11).
(2) 의미 : 이와 같은 여호아하스이 행동은 이스라엘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였는
가를 암시해 준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
에 민감해야만 했다. 왕의 통치 원리는 세상의 방식이나 동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식물 움키기', 즉 세상적인 동기를 갖고 이스
라엘을 지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여호야긴의 종말(19:5-9)
여호아하스의 패망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4절)에 이어서 본 단락
은 여호야긴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저자
가 유다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단락에서 여호아하
스 왕의 범죄를 짤막하게 언급했던 것에 반하여 본 단락은 여호야긴 왕의 잘못을 구체
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여호야긴 왕의 전성기를 비유적으로 그리
고 있는 전반부(5-7절), (2) 여호야긴 왕의 비참한 종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8,9
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백성
들을 포악하게 다스리는 왕은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게 됨을 강조적으로 제시하고 있
다.
한편, 본 단락은 여호야긴의 시대를 반영하는 애가이다. 순서적으로 본다면 여호야
김의 치적을 언급한 것이 원칙이나, 여호야긴의 상황이 더 절박한 상황으로 이해되어
졌기 때문에 먼저 여호야긴 왕을 언급한다. 어떤 학자들은 본 단락의 왕을 여호야김
왕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왕하의 내용과 본 단락의 내용을 비교하였을 때 저자는
여호야긴 왕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야긴의 범죄 : 여호야긴 왕은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왕하 24:9;대하 36:9). 그의 잔인함은 극에 달하여 성들을 훼파하고 땅을
황무하게 만들었다(7절). 언약 백성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백성들을 다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결국 : 여호야긴은 석 달을 치리하는 동안 악을 행하였으므로 엄청
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는 여호와의 전이 이방인에 의해 훼파되는 비극을 목격했으
며, 다른 포로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에 의해 바벧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왕
하 24:10-16;대하 36:10). 이처럼 하나님을 배신하며 자기의 악한 고집대로 행한 자들
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스 8:22;사 1:20;호 13:16).
이제 본장에 나타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에 대한 내용을 비교하여 도식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
| 분 류 | 여 호 아 하 스 | 여 호 야 긴 |
+--------------------+------------------------+------------------------------+
|포로로 잡혀가는 동기| 식물 움키기를 배움(3절)|식물 움키기를 배움(6절) |
+--------------------+------------------------+------------------------------+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 이방의 함정(4절) |그물을 치고 함정을 만듦(8절) |
+--------------------+------------------------+------------------------------+
| 결 과 | 이방에서 죽음(4,5절) |옥에 갇히어 소식이 끊어짐(9절)|
+--------------------+------------------------+------------------------------+
3.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감(19:10-14)
본 단락은 유다의 말기적 상황을 그리고 있는 내용의 결론 부분으로서 유다의 마지
막 왕인 시드기야의 종말에 대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애가이다. 저자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근본적인 관계를 상기하게 만드는 포도나무 비유를 사용하여 유
다의 패망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특별히 이전까지의 내용(1-9절)들은 애가의 배
경을 역사적인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는 이스라엘의 포로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초기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0,11절), (2) 심판을 받아 초라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는 후반부(12-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
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을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은 호도나무의 가지가 꺾인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태를 비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언급은 15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두 장을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분 류 | 15:1-8 | 19:10-14 |
+----------+--------------------------------+-------------------------------+
|강조점 |나무의 쓸모없음을 비유로 묘사함 |나무의 가지를 자라게 할 만한 |
| | |강한 가지가 없음을 묘사함 |
+----------+--------------------------------+-------------------------------+
|시대적배경|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함 |심판 이후의 상황 |
+----------+--------------------------------+-------------------------------+
|문 체 | 비유체 |애가체 |
+----------+--------------------------------+-------------------------------+
이러한 본 단락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인도하는 진정한 통치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
에는 없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제시해준다. 사실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인간적인 한계와 실수를 가지고 있었다(삼하 11:2-5, 15;24:10). 다른 이스라
엘 왕들은 더욱 많은 결함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흠이 없고 정의로운
통치자를 내려보내실 수밖에 없다. 인간 왕의 연약함과 사악함은 완전하신 메시야의
통치를 기대하는 소망으로 연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 애가는 메시야 대망 사상을 전
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의 독특한 위치와 특권을 상실하였을 때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2) 공동체를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한다. (3) 성도들의 삶의 중심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신다(마 7:21-23).
이스라엘 방백들 - '방백'의 히브리어 '나시'(* )는 '높은 지위의 사람', '지도자', '통치자' 등을 뜻한다. 맛소라 본문에는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으나 70인역(LXX)은 단수형으로 읽고 있다. 70인역의 독법을 따르는 학자들은(Ewald, Hitzig) 그 단어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맛소라 사본의 독법을 따라 '방백들'이 유다의 왕들 중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한다(Cooke, Wycliffe, Delitzsch). 애가 - 일반적으로 애가는 슬픈 곡조의 성격을 띠는 시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위클리프(Wycliffe)는 이에 대하여 세 박자로 된 긴 행(行)에 이어 두 박자로 된 짧은 행이 뒤따르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진술한다(애 1장;암 5:1-3). 하나님께서 에스겔로 하여금 방백들에 대한 애가(哀歌)를 짓도록 한 것은 이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인도할 뿐만 아니라 잘 목양(牧羊)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범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바, 범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교훈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19:2
네 어미는 무엇이냐 - 여기에서 '네 어미'란 비유적인 말로서 혹자는 요시야 왕의 부인이며, 여호아하스 왕의 모친인 하무달(왕하 23:31;24:18)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나(Herrmann, Orelli), 일반적으로는 유다 왕국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Wycliffe, Cooke, Bruce, Delitzsch, Dyer). 이와같이 한 국가 또는 지역을 '어미'로 묘사한 곳은 이 외에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시 87:5, 6;사 50:1;호 2:4, 7;4:5). 한 국가 또는 지역이 '어미'로 묘사된 것은 그 국가 또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 그곳에서 출생하고 안주하며 나아가서 그곳에 예속되기 때문인 것 같다. 암사자라 - 혹자는 창 49:9이나 민 23:24 등에 유다나 이스라엘에 대해 예언된 '암사자'라는 말을 따른 것으로 추측한다(Plumtre).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 구절에서 유다 왕국을 '암사자'로 묘사한 것은 사자가 백수(百獸)의 왕으로서 강하고 용맹한 바 유다 왕국의 강함과 용맹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Wycliffe, Leale). 이와 달리 혹자는 암사자를 잔인하고 강포한 존재로 보기도 하지만(Calvin, Plumtre) 내용상 지지받기 힘들다. 특히 '암사자'란 다음에 언급되는 '사자들'이나 '젊은 사자'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이 사자의 생산성(生産性) 또는 양육성(養育性) 등의 뜻을 함축한다. 사자들 가운데 엎드리어 - 여기에서 '사자들'이란 유다 왕국 주위에 거하고 있는 이방 열국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엎드리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바츠'(* )는 '(네 다리 모두를 모으고) 쭈그리다', '기대다', '휴식하다'의 뜻을 지닌다. 이로 보아 본 구절은 암사자가 다른 사자들 가운데서 편안히 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유다 왕국이 이방 열국 가운데 안연히 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여기에서 사자가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유다 왕국이 주위 이방 열국들과 마찬가지로 안일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설명은 유다 왕국 말기에 국한된 것이기에 타당하지 않다. 그 새끼를 기르는데 - 여기에서 '그 새끼'란 여호아하스를 가리킨다(3절 참조).
=====19:3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삼키매 - 이는 젊은 사자의 포악성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악하게 행동한 것을 가리킨다(왕하 23:30-32). 특히 본 구절은 그가 동족을 학대하고 압제하며 나아가서 살해까지 한 것을 암시한다.
=====19:4
이방이 듣고...애굽 땅으로 간지라 - 여기에서 '이방'이란 애굽 왕 바로느고를 가리킨다. 그는 앗수르를 치러 가는 자신을 대적하는 유다 왕 요시야를 죽이고 대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그의 후임 왕으로 옹립하였다(왕하 23:29, 30;대하 35:20-24). 그러나 유다 왕 여호아하스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지 못하고 악하게 행하자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 애굽 왕 바로느고를 올라오게 하여 그를 애굽으로 사로잡아 가게 하셨다(왕하 23:31-34;대하 36:2-4).
=====19:5
그 새끼 하나를 또 취하여...되게 하니 - 본 구절에서 '새끼 하나'란 비유가 유다의 어느 왕을 가리키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 되지 않는다. (1) 6-8절에 언급된 내용으로 보아 유다 왕 여호아하스를 계승하여 그 후임으로 왕이 된 여호야김을 가리킨다(Calvin, Bruce). (2) 9절의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실을 볼 때 여호야김 이후의 왕 여호야긴을 가리킨다(Wycliffe, Plumtre, Cooke, Dyer). 이상의 견해 중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두 번째 견해가 옳은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족보에서 '아들'이란 표현이 '손자'에게도 적용되듯이 여기서도 '새끼'가 반드시 '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6
젊은 사자가 되매...왕래하며 - '젊은 사자'로 비유된 여호야긴 왕이 권력을 잡은 후에 이방 여러 나라들과 교제하며 교류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국제적인 정세는 느부갓네살 왕 휘하의 바벨론이 애굽을 패퇴시키고 근동 지방의 패자로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왕하 24:7). 사람을 삼키며 - 여호야긴 왕이 백성에 대해 압제와 학대로 악정(惡政)을 한 것을 가리킨다(3절 참조). 열왕기 저자는 그에 대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고 기록했다.
=====19:7
그의 궁실들을 헐고(* , 예다 알메노타우) - 이는 문자적으로 '그가 그의 과부들을 알다'의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1) 문자 그대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유다의 과부들을 범한 부정한 행위를 가리킨다(Delitzch, Leale). (2) 사본가(寫本家)들이 성경을 옮겨 쓸 때 잘못하여 실수한 것으로서 본 구절의 '과부들'은 '성읍들'(궁성들)로 읽혀져야 한다. '알다'란 '창피를 주다', '굴욕을 느끼게 하다'로 읽혀져야 한다. 위의 두 견해 중 전후 문맥의 흐름에 따르면 (2)가 더 타당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탈굼역(Targum)및 70인역(LXX)외에 많은 영역본들(NIV, RSV, NASB)도 후자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아마 여호야긴 왕은 자기의 정치적인 대적들을 학대하고 멸하면서 그 궁성들까지도 헐었던 것 같다. 성읍들을 훼파하니...황무한지라 - 여호야긴 왕이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 거주지 성읍들을 훼파한 학정으로 인하여 유다 땅이 황량케 됨을 암시한다. 본래 유다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17)으로서 풍요와 안식을 누리기에 적함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무케 되었다는 것은 여호야긴 왕의 학정과 그로 인한 피폐함의 정도를 잘 보여준다. =====19:8
이방이 둘려 있는 지방에서...잡아 - '이방'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고임'(* )은 복수형이다. 따라서 이는 유다 왕국 주위의 많은 이방 나라드를 가리킨다. 이들은 여호야긴을 직접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간 것은 아니지만 바벨론의 세력을 등에 업고 여호야긴을 공격했던 것 같다. 사실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그 군대의 상당수를 유다 주변의 이방 나라에서 뽑았을 것이다. 본절은 이런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혹자는 본절이 유다 왕국을 침입한 아람, 모압, 암몬 등의 침공 사건을(왕하 24:2)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alvin). 이것은 본장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
=====19:9
갈고리로 꿰고 철롱에 넣어 - '철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수가르'(* )는 '에워싸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사가르'(* )에서 나온 말로 '우리'를 뜻한다. 여기서는 사냥한 짐승이나 포로된 사람을 운반하기 위해 철이나 나무로 만든 우리를 가리킨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고대 앗수르의 앗술바니팔(Assurbanipal, B.C. 669-626년)의 사냥 장면을 나타낸 부조(浮彫)에는 생포된 사자르 나무틀로 만들어진 우리 안에 넣어 옮기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Cooke). 이는 '젊은 사자'(5, 6절)로 비유된 여호야긴이 사냥된 짐승처럼 포로로 잡혀 바벨론 왕에게로 끌려가게 된 것을 잘 나타내 준다. 또한 포로로 잡혀가는 여호야긴의 처참성과 연약성을 엿보게 해주기도 한다.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옥에 가두어서 -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을 가리킨다(Wycliffe). 그는 약 석 달 동안 유다 왕으로 악하게 통치하다가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그 모친과 신복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었다(왕하 24:10-16). 그 소리로...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 7절을 참조해 볼 때, 땅을 황무케 하는 젊은 사자의 우는 소리가 이스라엘 산지에 들리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곧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삶의 터전을 황량케 했던 여호야긴 왕의 잔악과 강포가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 미치지 못하게 함을 암시한다.
=====19:10
네 피의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 - 두 개의 히브리 사본은 '네 피'를 '네 포도원'으로 읽고 있다. 이럴 경우 본 구절은 '네 어미는 네 포도원에서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해석된다. 이 독법이 자연스럽기는 하나 다른 히브리 사본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맛소라 사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히브리 사본처럼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물가에 심긴 포도나무 같아서'로 읽혀져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네 피에 있어서 네 어미'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즉 2절에서와 같이 '어미'는 유다 왕국을, '네 피'는 유다의 왕통을 비유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처음 유다 왕통에 의해 세워질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매우 견실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인 의미에서는 유다 열왕의 표본이 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실행했음을 가리킬 수 있다. 물이 많으므로 - 물은 성경에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매개체로 비유된다(시 1:3). 여기서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충분할 만큼 공급되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상징한다(17:5 참조). 신약에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했다(요 4:14;계 22:1, 2). 실과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세력면에서 번성하여 강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19:11
그 가지들은 견강하여...홀이 될만한데 - 여기의 '가지'란 단어는 10절의 '가지'와 다른 것이 사용되었다. 10절의 '가지'(* , 아네프)가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역할에 적용된 반면 본 구절에서의 '가지'(* , 마토트)는 줄기에서 뻗어나온 가지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가지'는 다윗을 이은 유다 왕통을 상징한다(Leale, Plumtre, Lange). 에스겔은 17:6, 7에서는 유다 왕 시드기야를 '포도나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혹자는 여기에서 '가지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며 '홀'이 이스라엘(유다)의 왕을 뜻한다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이 해석은 전체 내용상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지'는 다윗의 위를 이은 유다의 왕가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한편 '홀'은 흔히 왕이나 권세자들이 그 권세와 권위의 상징으로서 지니는 조그마한 막대기를 가리킨다(창 49:10;암 1:5). 그 하나의 키가...높았으며...뛰어나서 보이다가 - 여기에서 '그 하나'란 본장의 문맥의 흐름상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이어 왕이 된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Wycliffe, Herrmann). 그는 유다를 11년 동안 통치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와 반바벨론 정책을 펴다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당했다(왕하 24:18-25:7). 한편 '높았으며'나 '뛰어나서'란 표현에 대해 혹자는 시드기야를 상징하는 가지가 주위의 여러 가지들보다 뛰어나게 솟아오른 것을 나타내는 말로 이는 시드기야 시대의 왕국이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 탁월하며 번창한 가운데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Calvin). 그러나 당시 유다 왕국이 정치적 격동기에 있었으므로(왕하 24:13, 14) 이 견해는 지지받기 어렵다. 오히려 그 두 단어는 실제로 왕위에 오를 수 없었으나 조카 여호야긴을 대신해서 왕이 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19:12
분노 중에 뽑혀서...당하매 - 본 구절은 포도나무가 온전히 파괴당해 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 처해진 것을 뜻하는데 이는 시드기야 왕이 당한 패망의 처참성을 잘 묘사해 주고 있다. 그는 바벨론 군대에 사로잡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끌려갔었다(왕하 25:7). 그 실과는 동풍에 마르고...탔더니 - '동풍'이란 바벨론 군대를 상징한다(17:10). 이와 같은 본 구절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의 침입으로 피폐해지고, 유다의 왕통이 끊어지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Plumtre).
=====19:13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긴 바되고 -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이란 바벨론 지역을 상징한다.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 이제는 이전에 누렸던 풍요로움, 정치적인 권력 등을 누리지 못하고 삭막하고 피폐한 상태에 처해진 것을 암시한다. 특히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의 소생 불능의 상태, 즉 다시 이전의 권력의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없음을 암시한다.
=====19: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난에서부터 나와서 - 여기에서 '불'이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에서 엿보여지는 바와 같이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가지 중 하나'란 시드기야 왕을 가리킨다. 이로 볼 때 본 구절은 시드기야 왕의 죄악과 하나님의 섭리에(렘 25:1-11;38:14-23) 거스린 반바벨론 정책으로 인해(왕하 24:19, 20;25:1)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결국 그 불길은 온 이스라엘(유다)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고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황폐케 한 사실을 뜻한다. 권세 잡은 자의 홀이...없도다 - 이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고 유다 왕국이 패망함으로 더 이상 육신적 다윗 왕가의 후손 중에는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자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다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하신 왕으로서 다윗의 위를 이어 세세토록 왕노릇 하신다(마 1:1;눅 1:32, 33).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날카로운 필치로 지적하고 있는
전장(18장)에 이어서 본장은 이스라엘 왕들의 근본적인 죄악을 애가의 형태로 지적한
다. 전장이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개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라며, 본장은 이스라엘의
상층부, 즉 지도자들의 죄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본장은 (1) 여호아하스 왕이 애굽의 포로로 잡혀간 사
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4절), (2) 여호야긴 왕이 바벧론의 포로로
잡혀간 사실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5-9절), (3)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
간 사실에 대한 애가를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0-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파멸이 아닌 평온에 대한 헛된 소망
을 갖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한편, 본장의 구조를 면밀히 살펴보면 두 개의 상호 보완적인 애가로 구성되어 있
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9절까지이고 두 번째 부분은 10-14절까지의 내용
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두 단편을 각각 다른 시대에 저작되었던 것을 에스겔이 후대
에 합해서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본장의 내용이 여러 왕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으
로 설정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기존의 문서들을 통합한 것으로 보게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에스겔은 본장의 내용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역
설적으로 서두(1절)에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본
장은 유다 말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갖는 하나님의 슬픔을 시적으로 표출한 부분이라
고 정리할 수 있다.
또한, 본장에는 상징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다윗 왕가를 암사자에, 왕
들을 젊은 사자에 비유한다(2,3,5,6절;창 49:9;왕상 10:19,20;미 5:8).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다윗 왕가를 포도나무에, 왕들을 가지에 빗대어 묘사하였다(10절; 창
49:10-12;시 80:8).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 관계를 실제적
으로 보여준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신자를 가지에 비유하였다(요
15:5).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포도나무 비유는 하나님과 택한 백성 간의 관심과 애
정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운율에 따라 기록된 만가(輓歌) 형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심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원래 고대 근동 지방에서 만가는 죽은 사람
의 덕망과 업적을 찬양하고, 다시 만날 수 없음에 대한 슬픔과 대적들에 대한 저주(삼
하 1:21;3:34)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에스겔은 애가를 통해 유다 왕국의
패망을 슬퍼하고, 유다 백성들의 죄와 슬픔을 후대에 가르치려고 한다. 결국 유다 왕
들의 죽음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촉구하고, 평온에 대한 헛된
소망을 갖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1. 여호아하스의 결국(19:1-4)
본 단락은 전장(18장)과 비교했을 때 문체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내용적 흐
름은 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전 단락(18:30-32)에서도 유다 백성들의 조에 대한 진
술이 주류를 이루고 있듯이 본 단락에서도 유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 단락부터는 유다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왕들의 행적과 죄를 지적함으로써
구체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애가를 지으라는 권고를 담고 있는 전반
부(1절), (2) 젊은 사자의 결국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후반부(2-4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방백들'(1절)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나타나고 있
다. 우선 이 표현이 단수인가 복수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70인역(LXX)에서는 단수
로 표현하고 있으므로, 여러 학자들이 유다 왕 시드기야 한 사람에 대한 애가로 주장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취할 경우 다음에 나오는 내용과 연관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M.T.(맛소라 사본)에서는 복수로 표현하고 있고, 대개의 학자들이 이 복수를
그대로 받아들여 유다 왕들 중에 몇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이 견해를 취한다면
다음의 내용들에서 나오는 상징적인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용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방백들은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
다. 이제 본 단락의 내용적 이해를 돕기 위해 왕들에 대한 지적을 요약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성경 구절 | 유다 왕 |통치 연대 | 중 요 치 적 |
+----------+-----------+--------------+-------------------------------------+
|왕하 23:31| 여호아하스|B.C.609년 | 악을 행함. 애굽에 끌려가서 죽음 |
| -34 | |(3개월간 통치)| |
+----------+-----------+--------------+-------------------------------------+
|왕하 23:34| 여호야김 |B.C.609-598년 | 요시야의 장자. 악하고 무능함. |
|-37, 24:6 | | | 바벧론에 반대하여 대항 |
+----------+-----------+--------------+-------------------------------------+
|왕하 24:8 | 여호야긴 |B.C.598년 | 느부갓네살 침공 때 포로가 되었음 |
| -16 | |(3개월간 통치)| |
+----------+-----------+--------------+-------------------------------------+
|왕하 24:17| 시드기야 |B.C.597-586년 | 요시야의 3자(子). 에돔. 모압, 암몬, |
| -25:7 | | | 베니게, 유다의 연합으로 바벧론에 |
| | | | 반대함. 그 결과 B.C.586년에 멸망 |
+----------+-----------+--------------+-------------------------------------+
이와 같은 도표를 통해서 보듯이 본 단락의 애가는 유다 말기의 어두운 시대적 상
황을 배경으로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 단락의 애가는 예레미야의 애가와 동일한 사상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망
해가는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슬픔을 극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
징을 갖는다. 그러나 몇 가지 내용에서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도표화 하면
다음과 같다.
+------------+--------------------------+-------------------------------------+
| 분 류 | 겔 19장 | 애 1-4장 |
+------------+--------------------------+-------------------------------------+
|내용의 배경 |유다 말기의 역사적 사실을 | 역사적 사건보다 신학적, 신앙적 의미|
| |배경으로 하고 있음 | 를 부각시킴. |
+------------+--------------------------+-------------------------------------+
|비유의 소재 |사자, 포도나무 | 처녀 시온, 정금 |
+------------+--------------------------+-------------------------------------+
|애가의 대상 |이스라엘 방백들 | 이스라엘 백성 전체 |
+------------+--------------------------+-------------------------------------+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역사적 사건 : 본 단락의 내용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여호아하스의 시대를 배
경으로 하고 있다.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3절)라는 표현은 여호아하스
가 행한 악과 잔인성을 표현한 말이다(왕하 23:32). 그리고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
를 잡아'(4절)라는 표현은 애굽과 그 동맹국들이 여호아하스의 침략 정책을 보고 그를
잡으려고 함정을 놓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바로느고에 의해
서 여호아하스가 사로잡혀간 사실을 비유한 것이다(왕하 23:34;렘 22:11).
(2) 의미 : 이와 같은 여호아하스이 행동은 이스라엘을 어떤 방식으로 통치하였는
가를 암시해 준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
에 민감해야만 했다. 왕의 통치 원리는 세상의 방식이나 동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는 '식물 움키기', 즉 세상적인 동기를 갖고 이스
라엘을 지도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2. 여호야긴의 종말(19:5-9)
여호아하스의 패망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4절)에 이어서 본 단락
은 여호야긴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저자
가 유다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 단락에서 여호아하
스 왕의 범죄를 짤막하게 언급했던 것에 반하여 본 단락은 여호야긴 왕의 잘못을 구체
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여호야긴 왕의 전성기를 비유적으로 그리
고 있는 전반부(5-7절), (2) 여호야긴 왕의 비참한 종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8,9
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백성
들을 포악하게 다스리는 왕은 비참한 운명에 처해지게 됨을 강조적으로 제시하고 있
다.
한편, 본 단락은 여호야긴의 시대를 반영하는 애가이다. 순서적으로 본다면 여호야
김의 치적을 언급한 것이 원칙이나, 여호야긴의 상황이 더 절박한 상황으로 이해되어
졌기 때문에 먼저 여호야긴 왕을 언급한다. 어떤 학자들은 본 단락의 왕을 여호야김
왕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왕하의 내용과 본 단락의 내용을 비교하였을 때 저자는
여호야긴 왕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 틀림없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야긴의 범죄 : 여호야긴 왕은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아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왕하 24:9;대하 36:9). 그의 잔인함은 극에 달하여 성들을 훼파하고 땅을
황무하게 만들었다(7절). 언약 백성의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백성들을 다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충동적으로 행동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태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여호야긴의 결국 : 여호야긴은 석 달을 치리하는 동안 악을 행하였으므로 엄청
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는 여호와의 전이 이방인에 의해 훼파되는 비극을 목격했으
며, 다른 포로들과 함께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에 의해 바벧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왕
하 24:10-16;대하 36:10). 이처럼 하나님을 배신하며 자기의 악한 고집대로 행한 자들
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스 8:22;사 1:20;호 13:16).
이제 본장에 나타난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에 대한 내용을 비교하여 도식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
| 분 류 | 여 호 아 하 스 | 여 호 야 긴 |
+--------------------+------------------------+------------------------------+
|포로로 잡혀가는 동기| 식물 움키기를 배움(3절)|식물 움키기를 배움(6절) |
+--------------------+------------------------+------------------------------+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 이방의 함정(4절) |그물을 치고 함정을 만듦(8절) |
+--------------------+------------------------+------------------------------+
| 결 과 | 이방에서 죽음(4,5절) |옥에 갇히어 소식이 끊어짐(9절)|
+--------------------+------------------------+------------------------------+
3. 시드기야가 포로로 잡혀감(19:10-14)
본 단락은 유다의 말기적 상황을 그리고 있는 내용의 결론 부분으로서 유다의 마지
막 왕인 시드기야의 종말에 대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애가이다. 저자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근본적인 관계를 상기하게 만드는 포도나무 비유를 사용하여 유
다의 패망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다. 특별히 이전까지의 내용(1-9절)들은 애가의 배
경을 역사적인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본 단락에서는 이스라엘의 포로에
대한 신학적 의미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초기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0,11절), (2) 심판을 받아 초라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는 후반부(12-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
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을 철저하게 심판하신다는 교훈을 전달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은 호도나무의 가지가 꺾인 상황을 노래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현재의
상태를 비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비극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는 언급은 15장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사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분명히 하기 위해서 두 장을 비교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
|분 류 | 15:1-8 | 19:10-14 |
+----------+--------------------------------+-------------------------------+
|강조점 |나무의 쓸모없음을 비유로 묘사함 |나무의 가지를 자라게 할 만한 |
| | |강한 가지가 없음을 묘사함 |
+----------+--------------------------------+-------------------------------+
|시대적배경|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함 |심판 이후의 상황 |
+----------+--------------------------------+-------------------------------+
|문 체 | 비유체 |애가체 |
+----------+--------------------------------+-------------------------------+
이러한 본 단락은 하나님의 공동체를 인도하는 진정한 통치자는 예수 그리스도 외
에는 없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제시해준다. 사실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도 인간적인 한계와 실수를 가지고 있었다(삼하 11:2-5, 15;24:10). 다른 이스라
엘 왕들은 더욱 많은 결함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흠이 없고 정의로운
통치자를 내려보내실 수밖에 없다. 인간 왕의 연약함과 사악함은 완전하신 메시야의
통치를 기대하는 소망으로 연결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 애가는 메시야 대망 사상을 전
달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의 독특한 위치와 특권을 상실하였을 때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2) 공동체를 인도하는 영적인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한다. (3) 성도들의 삶의 중심은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신다(마 7: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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