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에스겔 07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가라사대 - 어떤 새로운 연대기나 사건 배경의 제시가 없는 것으로 보아 앞장의 내용에 이어 계속 언급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인다(3:15, 16;8:1 참조). 그리고 본장의 주제 또한 앞장과 계속 연관되어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 죄를 범한 결과 임하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이 언급되어 있다.

=====7:2
너 인자야 - 2:1 주석을 참조하라.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 '끝났도다'(* , 케츠 바)는 '끝이 왔다'란 뜻으로서 과거형이 사용되었다. 이 내용은 예언적 구절이기에 미래형이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형이 사용되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었거나 선포될 내용이 이미 성취된 것처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하게 성취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끝이 확실히 이르렀다는 뜻을 암시한다. 이보다 앞서 아모스 선지자도 우상 숭배하는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그들의 심판에 의한 파멸을 선포하기 위해 이 말은 사용했던 적이 있다(암 8:2). 본장에서 이 말은 5번 나온다(2, 3, 6절). 특히 본절에서 이 말이 두 번 반복된 것은 그 의미를 강조해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한편 '사방'이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말로서 세상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 전체를 나타내는 일종의 과장법이다. 이스라엘 땅이 심판으로 끝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이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됨을 암시한다(4:13 참조).

=====7:3
네 행위를 국문하고 - '국문하고'(* , 쉐파트티크)란 문자적으로 '판결을 선고하다', '심판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가증한 행위에 대하여 공의대로 판단하시어 심판하심을 뜻한다.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 나타티 알라이크 에트 칼토아보타이크) - 문자적으로 '내가 너의 가증한 일들을 네 위에 임하게 할 것이다'(I shall bring all your abominations upon you, NASB)의 뜻이다. 이것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죄는 반드시 그에 대한 심판을 초래한다는 히브리인들의 사고 방식에 따른 진술이다(Cooke, Brownlee).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가증한 일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 죄과를 반드시 드러내시어 죄에 대해 심판의 징벌로 되돌려 갚으신다는 뜻이다(4, 8, 9절;23:49). 이와 같은 표현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9:10;11:21;22:31)는 표현과 상통한다.

=====7:4
내가 너를 아껴 보지...아니하고 -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며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다(출 34:6;시 69:16;119:156). 이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전혀 아껴보지 아니하시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얼마나 가증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죄악에 대한 심판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준다(5:11 참조).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 토아보타이크 베토케크 티흐옌) - 이는 문자적으로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있게 하리니'란 뜻이다. 이것은 앞 구절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들을 그들에게 돌려 보내사 심판으로 갚으시겠다는 뜻이다.

=====7:5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 '재앙이로다'(* , 라아)란 문자적으로 '악'(evil, KJV) 또는 '해'(harm)를 뜻한다. 그런데 본절에서 그것은 인간들에게 해가 되는 일 곧 재난이 임하게 됨을 뜻한다. '비상한'에 대해서는 그 주장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맛소라 사본에 따르면 '비상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트'(* )는 '하나의'(only, KJV;unique, NASB)란 뜻이다. (2) 아람역인 탈굼역이나 기타 다른 많은 히브리어 사본에 따르면 '비상한'에 해당하는 용어는 '아하르'(* )로서 '~후에'(after, RSV)의 뜻이다. (1)로 이해할 경우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후에는 다시 없을 재앙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2)로 이해할 경우 매우 극심한 재앙이 될 것임을 뜻한다(Calvin). 포로 후기 이스라엘 역사를 고려할 때 (2)의 견해가 타당하지만 (1)이 강조적 의미만을 지닌 과장법이라면 그것도 무시될 수 없다.

=====7:6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 이중적인 반복은 강조의 의미를 나타내 준다. 2절 주석을 참조하라. 끝이 너를 치러 일어났나니 - '끝'을 의인화한 수사법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말이 곧 임박해 왔음을 역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7:7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 '정한 재앙'(* , 하체피라)이 문자적으로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다. (1) 사 28:5에서처럼 '화관', 즉 '왕관'을 뜻한다(The Targum Pseudo Jonathan). (2) '아침'(morning, KJV),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에 의하여 곧 조속히 멸망하게 된다는 의미에서의 '아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Kimchi, Calvin, Grotius). (3) '운명'(doom, NIV, RSV)의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곧 멸망하게 된다는 뜻의 '운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중에서 (1)은 그 의미상 본 문맥과 맞지 않으므로 가능성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본장 전체의 내용이 재앙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2)나 (3)은 그 의미상 어느 정도 본 문맥과 일치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아침'은 나쁜 의미보다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3)의 해석이 더 적합하다. 날이 가까왔으니 - '날'이란 말은 (1) 성경에서 종종 대적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의 날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30:9;사 9:3). (2) 그러나 일반적으로 선지자들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할 때 언급되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을 암시하였다(19절;13:5;36:33;사 2:12-22;13 :9;암 5:18). 그리고 때에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이 당신을 불신하고 대적하는 이방인들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통치 질서를 구축하시는 날을 뜻하는 의미로 언급되기도 했다(30:2;38:10, 14;39:22;렘 46:10;말 4:1). 본 구절에서는 (2)의 의미를 암시한다. 요란한 날이요 - 하나님의 심판, 즉 전쟁 등과 같은 참상을 통해 야기되는 혼란과 아스라장의 날을 가리킨다(사 22:5;암 3:9;슥 14:3). 이와 같은 상황은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 성읍이 포위당하고 유다 백성들이 칼로 멸망당하는 비극을 나타낸다(왕하 25:1-17).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 이 '날'은 앞 구절과 같은 '날', 즉 하나님의 심판 결과 야기되는 '요란한 날'을 더 한층 확인해 주는 말이다. 그러나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이란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를 수확할 때 즐거이 부르는 기쁨의 소리이다(렘 25:30;48:33, Delitzsch, Plumtre). (2) 원수에 대한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기쁨의 소리이다(Michaelis, Brownlee).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당이나 나무 밑에서 우상 숭배하며 떠드는 기쁨의 소리이

=====7:8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 본 구절은 3절의 '너의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와 동일한 내용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같은 반복된 언급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한층 강조적으로 나타내준다.

=====7:9
내가 너를...나타나게 하리니 - 4절 주석을 참조하라.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 본 구절은 4절 하반절과 병행구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징계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연(시 19:1-4;롬 1:19, 20), 말씀(요 1:1, 2;5:39), 그리고 사랑의 회복(34:27) 등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7:10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다 - '몽둥이'(* , 마테)란 '지팡이'(민 17:2-10;20:9;삼상 14:27), '(포도 나무의) 가지'(19:11-14), '(통치자의) 홀' 등 다양하게 묘사된다.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1)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들을 다스리는 통치자들, 즉 예루살렘에 거하는 지배자들을 가리킨다(Dyer, Cooke, Wycliffe).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전후 문장이 서로 상통하는 병행 구절로서, '꽃 피며'가 어떤 절정을 이루는 뜻을 나타내듯이(Plumtre),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불의가 그 삶의 표면상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뜻한다. (2)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기 위해 준비된 바벨론 제국 또는 그 왕의 왕권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Lange, Delitzsch, Calvin).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바벨론 제국에 의해 심판당할 만큼 무르익었음을 나타낸다. (3) '몽둥이'(* , 무테, 불의, injustice, RSV)는 '교만'과 함께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야기한 요소다(Carley). 본 구절은 히브리 시(詩)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병행 대구법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몽둥이'는 '교만'과 같은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3)의 견해가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렇다면 '몽둥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테'를 의도적으로 '불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무테'로 변경시킬 필요는 없다. '몽둥이' 자체가 죄악으로 뭉쳐진 완악한 인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7:11
포학이 일어나서...되었은즉 - '포학'(* , 헤하마스)은 '학대하다', '해하다'는 히브리어 동사 '하마스'(* )에서 유래된 말로 '학대', '잔인함' 등을 의미한다. 본 구절은 10절과 연관지어 해석할 때 10절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더 이상 지연시키지 못할 만큼 극에 달했음을 의미한다.

=====7: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왔으니 - 7절 중반절을 반복한 구절로 전면적이고 최종적인 심판의 시기가 임했음을 알려준다. 사는 자도 기뻐하지...말 것은 - 이는 사는 자나 파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비극으로 인하여 그들의 감정적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사고 파는 것은 13절을 근거로 해볼 때 토지를 매매하는 것을 뜻한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토지란 하나님께서 약속에 따라 값없이 주신 기업이다(창 15:7-21;17:8;출 6:8). 따라서 토지는 곧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토지를 판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커다란 슬픔과 비극의 일이었다. 그리고 토지를 사는 것은 삶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산물을 얻는 터전을 소유한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범죄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7:13
판 자가...얻지 못하리니 - 이는 토지를 판 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와중 속에서 죽지 않고 생명을 보존한다 할지라도 다시 그 팔았던 기업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토지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소유로서 그들에게 맡겨진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팔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레 25:23-28).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이 이 토지를 팔았다 해도 회년, 즉 50년째에는 다시 그 토지를 그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도록 율법을 통해 규정하셨다(레 25:13, 28).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지금 이런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후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 즉 바벨론 포로 70년까지는 결코 가나안 땅으로 귀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렘 25:11). 악한 생활로 스스로 강하게 할 자도 없으리라 - '칼빈'(Calvin)은 본 구절을 '악한 행위로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강하게 할 자도 없으리라'고 의역했다. 이 해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의와 악을 행함으로 그들의 삶, 특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영적 삶이 퇴색해지고 그 힘을 상실하게 됨을 잘 드러내고 있다.

=====7:14
그들이 나팔을 불어...예비하였을지라도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나팔을 부는 경우는 (1) 회중의 소집(민 10:7), (2) 회중의 행군 진행 신호(민 10:2-6), (3) 전쟁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민 10:9;삿 3:27;6:34;암 2:2), (4) 절기 때 제사 의식의 선포(민 10:10;시 81:3), (5) 하나님께 대한 찬미(시 47:5) 등 다양하였다. 본절에서는 이중 (3)의 경우로서 전쟁 준비 신호로 나팔을 불었던 것이다. 전쟁 나팔을 불어도 싸움에 나갈 군사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자신들의 힘과 의지로 애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도 극심하여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유다 왕국)의 패망시, 예루살렘 성읍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3년 동안이나 포위되어 기근 가운데서 버티다가 결국 함락되고 군대들도 칼로 멸망당한 사실에서 입증되었다(왕하 25:1-12).

=====7:15
본절은 5:2, 12과 6:11을 확언해 주는 내용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게 임하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성읍 밖에 있는 자는 무방비 상태에 있고 또한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므로 바벨론 군대의 칼에 죽고 성읍 안에 있어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자라도 결국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징벌에 의해 멸망된다는 것이다. 이는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하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7:16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 흔히 산은 지형적인 여건과 그 나무들로 인하여 옛부터 위험을 피하는 요새로 여겨져 왔다(창 19:17;삿 6:2;삼상 13:6;시 11:1;마 24:16).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는 재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아닌 만군의 주 하나님에 의한 것이므로 이런 자연적인 피난처가 전혀 그들에게 소용이 없다. 자기 죄악 까닭에 골짜기 비둘기처럼 슬피 울 것이며 - '자기 죄악 까닭에'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징계받는 근본 원인이 단순한 천재 지변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그들의 죄에 있음을 밝히기 위해 삽입된 구절이다. 한편 심판받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둘기'(* , 요나)로 비유한 것은 비둘기가 그 이름의 의미대로 '우는 자'처럼 산골짜기 같은 곳에서 슬프고 애처롭게 울기 때문이다. 즉, 이 새가 심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량하고 비참함을 잘 예시해주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언급된 것이다(사 38:14;59;11).

=====7:17
모든 손을 피곤하고...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 '피곤하고'(* , 레페나)란 문자적으로는 '느슨해지다', '맥이 빠지다'의 듯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두려움과 공포에 빠졌음을 암시한다(21:7;사 13:7;렘 6:24). 그들은 재앙의 공포로 인하여 모든 힘을 상실한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혹자는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 텔라케나 마임)의 원문에 '같이'라는 말이 없음을 강조하여 '물로 넘칠 것이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 말은 공포로 인해 식은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Plumtre). 이는 심판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공포의 정도를 더욱 잘 표현해준다.

=====7:18
굵은 베로...묶을 것이요 -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 '굵은 베'를 입기도 했으나(욘 3:5-10) 대부분 슬픔을 당했거나 재앙의 비극을 애도하는 경우에 입었다(창 37:34;삼하 3:31;사 15:2, 3;렘 48:37). 본 구절에서는 후자의 뜻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판의 결과로 파생된 슬픔을 나타낸다.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의 두려움으로 인한 슬픔과 통곡을 나타내기 위해 머리를 온전히 미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머리를 미는 것은 고대 가나안 족속들의 종교적 관습으로서 율법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행치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44:20;레 21:5;신 14:1).

=====7:19
그 금을 오예물같이 여기리니(* , 제하밤 레니다 이헤예) - 이는 문자적으로 '그들의 금이 부정한 것으로 될 것이다'(their gold will be an unclean thing, NIV)의 뜻이다. 이것은 그 금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앙과 환란에서 건져주지 못하고 전혀 쓸모없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금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며 우상 숭배를 하였다(20절;16:17).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징벌이 임하자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하나님 외 다른 신이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은금으로 만든 우상을 더러운 것으로 여기고 버릴 것이다. 한편 본 구절의 '오예물'에 해당하는 '레니다'(* )는 성경에서 여자의 월경의 부정함(18:16;레 15:19-33), 시체 접촉의 부정함(민 19:13-22), 우상 숭배의 부정함(36:18) 등과 연관되는 말이다.

=====7:20
그들이...미운 물건을 지었은즉 - 본 구절은 앞절과 연장선상에서 주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바, 은금을 가지고 우상을 만들며 우상 숭배에 빠졌음을 지적한 것이다.

=====7:21
외인의 손에 붙여...더럽히게 하고 - 본절에는 목적어가 없다. 그러므로 그것이 19, 20절에 언급된 것이라면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우상을 당신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북방 민족, 즉 본서에서 '열국의 강포한 자'(28:7;30:11;31:12;32:12)로 묘사된 바벨론 군대에 맡겨 더럽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고 신성시하여 섬긴 것을 이방 군대들이 더럽히게 한다는 사실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헛됨과 치욕됨을 드러내준다.

=====7:22
내가 또 내 얼굴을...돌이키리니 - '얼굴'은 긍정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또는 도우심을 상징하는 것이지만(시 27:9;42:5;80:3), 부정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낸다(시 34:16;벧전 3:12). 본 구절에서는 전자의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축복의 손길을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거두신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훈계와 권고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떠날 경우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등을 돌리시사 징계하심을 보여준다.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더럽히리라 - '그들이'란 앞 구절의 '그들'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 군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은밀한 처소'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시어 거하시는 성전을 뜻한다(출 25:8, 20-22). 하나님께서 이방인으로 하여금 당신의 거룩한 처소를 더럽히도록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우상 숭배를 통하여 그곳을 더럽혔기 때문이다(5: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더럽혀진 성소를 떠나시고 이방인으로 하여금 그곳을 모독하도록 허락하셨던 것이다.

=====7:23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갈 것을 암시한 표현이다(나 3:10). 이는 피흘리는 죄가...찼음이라 - 9:9 주석을 참조하라.

=====7:24
내가...더럽힘을 당하리라 - 본 구절은 21, 22절을 확언한 말씀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북방 민족, 즉 바벨론 제국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짓밟고 그 나라(유다 왕국)를 멸망케 하심을 뜻한다(렘 1:13-16).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이 당신을 거역하고 불의를 행할 때에는 언약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사 그 백성을 징계하시며 당신의 의를 드러내심을 뜻한다.

=====7:25
패망이 이르리니 - '패망'(* , 케파다)이란 문자적으로 '떨림' 또는 '공포'를 뜻한다. 이는 하나님의 징벌로 인하여 사람이 심적인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서 하반절의 '평강'이라는 말과 대조적인 뜻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이와 같은 공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할 때 그 심령속에서 일어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창 3:8, 10).

=====7:26
환난에 환난이...소문에 소문이 - 이와 같은 이중의 반복적 표현은 그 내용의 정도를 더 한층 강화해주는 강조적인 표현 방법이다(2, 6절). 특히 '환난'이나 '소문'이 연속적으로 임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숨돌릴 틈도 없이 하나님의 징계가 연속해서 임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 '선지자'란 하나님의 계시나 이상을 받아 그대로 전하는 자이다. 그러나 유다 왕국 말기 타락한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하여 거짓과 헛된 것을 예언하여 백성들을 미혹시켰다(렘 5:31;20:6;23:25, 26, 32;27:9, 10, 16).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 제사장의 근본 사역 중 하나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 외에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일이었다(신 31:9-13;말 2:7). 그러나 유다 왕국 말기에는 제사장들도 선지자와 함께 타락하였다(렘 5:31;6:13;8:10).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며 - 구약에서 '장로'(* , 자켄)란 이스라엘 사회에서 연장자로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이스라엘 왕조 설립 이전에는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출 3:16;19:7;신 19:12;22: 18;수 9:11). 그리고 왕조의 설립 후에도 그 역할은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삼상 11:3;30:26;삼하 3:17;5:3). 이들에게 이제 모략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타락하므로 환난과 재앙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7:27
왕은 애통하고 방백들은 놀람을 옷입듯 하며 - 앞절에서는 종교, 사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무력함을 지적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겪게 될 비극과 비참을 예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다 하나님으 떠나 불의 가운데 처해 있음과 아울러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의 예언에서 유다 왕과 방백들의 심판에 대하여 같은 내용으로 언급하였다(렘 4:9;24:8;34:21)



본장은 네 가지 극적인 징조(4, 5장) 이후에 주어진 두 번째 설교에 해당된다. 첫
번째 설교(6장)가 주로 심판의 원인이 된 이스라엘의 우상에 관한 언급이었던 반면,
본장은 임박한 종말의 원인과 심판의 형태, 그리고 심판의 결과가 급박한 어조로 드러
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심판의 임박성과 포괄성을 기술하고 있는 전반부(1-13절), (2)
심판의 결과에 대해 묘사하는 후반부(14-2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
하면 (가) 심판의 확실성(1-4절), (나) 심판의 임박성(5-9절), (다) 심판의 불가피성
(10-13절), (라) 재앙의 실상(14-22절), (마) 포로 생활(23-27절) 등으로 나눌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분명함을 강조함으로써
죄를 떠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한편, 본 대목(4-7장)은 문맥상으로 볼 때 점층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의 중심 지역인 예루살렘 멸망(4,5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외부 지역인 산들과 땅의 멸
망(6장)으로 이어진 후에 마지막으로 전체 이스라엘 따의 온전한 멸망을 선고한 것이
다. 그러므로 본장은 4-6장의 예언의 결론이자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Wycliffe).
또한 본장은 심판의 임박성과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복적인 단어나 어구를 많
이 사용하고 있다. 즉, '끝'(the end)이라는 단어를 6번(2,3,6절), '오고 있다'
(comming, has come)라는 단어를 7번(5-10절), '이제'(now)라는 표현을 2번(3,8절),
'때'(time), '날'(day), '가깝다'(is near, 7절) 등을 사용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용
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다가올 재앙은 어떤 재물, 권력, 힘으로도 피할 수 없
음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이스라엘 땅의 멸망이 신속하게 임할 것임을 거듭 증거하고 있
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동안 참으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이스
라엘 족속은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해서 반역을 저질렀다. 이제 더 이상 징벌
을 유보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만약 심판을 지체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행할 수 없는 무기력한 분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무 후무한 재앙의 필연성과 임박성에 대해 알려주시고 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인내하시지만,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다(호
9:7;암8:2;롬2:4,5;벧후3:9). 이 날에는 모든 은밀한 죄가 밝히 드러나며 통곡과 징계
를 받게 된다(렘 4:18;마25:31-33).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증한 우상 숭배의 대가로
엄청난 형벌이 주어지며(3,4절) 급기야 이방의 포로로 끌려가는 운명에 처해진다
(23-25절). 이와같이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비참한 종말에 대해 예견하면서 애타는 심
정으로 경고하는 것이다(눅 3:7-9).

1. 심판의 확실성(7:1-4)
본 단락은 이스라엘 온 따의 심판을 선고한 전 단락(6:11-14)에 이어 계속해서 유
다의 완전한 종말을 강조적으로 선고하고 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확고한 심판 의지
를 강조하며 재앙을 반복해서 선언함으로써 심판이 불가피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
한 본 단락은 (1)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임하였음을 알리는 도입 부분(1절),
(2)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심을 강조하는 부분(2a절), (3) 이스라엘 땅의 종말에 대
해 선고하는 부분(2b, 3절), (4) 하나님의 심판 행위를 구체적으로 표명하는 부분(4
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에서는 '이스라엘 땅'(2절)을 2인칭으로 의인화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 땅'이 단순히 팔레스틴의 지리적인 위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족속들을 함축적으로 암시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5:5-17;16:1-63).
이상과 같은 본자의 주도적인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심판의 필연성(1-4a절) : 에스겔은 '끝났도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연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심판이 더 이상 유보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사실 하나님은 지금까
지 이스라엘의 배도와 패역에 대해 끝없이 인내하시면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
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예정된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
의 법정에서는 죄에 대해서 반드시 형벌을 선고한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의 율
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에 탐닉한 유다의 파멸이 불가피함을 거듭 천명하고 있는 것이
다.
(2) 심판의 목적(4b절) :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심으로써 자
신이 언약을 성취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임을 드러내신다. 사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회복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참혹한 심판을 언급하는 내
용과 함께 여러 번 나타나고 있다(4,9,27절;6:7, 10, 13, 14).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면
서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죄인들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언약 백
성의 패역한 행도(2:3,4;습 1:4-6)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소망을 가
지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완악한 심령들에게도 끝까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2. 심판의 임박성과 심각성(7:5-13)
전 단락(1-4절)의 이스라엘 땅의 멸망에 대한 총체적인 선고에 이어 본 단락은 재
앙이 조속한 시일 내에 임할 것임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에스겔은 전무 후무한 재앙이
급박하게 이루어짐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본문은 (1) 하나님의 임박한 재앙 선
고(5-7절), (2) 죄에 가한 하나님의 보응(8, 9a절), (3) 심판의 목적(9b절), (4) 심판
의 불가피성(10-1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문은 하나님의 재앙의 임박성을 설명하기 위해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
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5절).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임박하도다'(6절), '이
땅 거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7절) 등과 같
이 매우 서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문을 시로 보아야 한
다고 주장하기도 한다(Bruce).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주도적인 사상과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재앙의 임박성(5-7, 10, 12절) ; 에스겔은 이스라엘에게 임할 재앙이 매우 조
속한 시일내에 닥쳐올 것이라고 말한다. 특별히 '임박하도다'라는 말을 4번(5-7, 10
절), '가까왔으니'라는 말을 2번(7, 12절) 사용하면서 매우 급박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님의 보응의 날이 임하
여 죄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 단행될 것이다.
(2) 재앙의 날(7-9절) : 에스겔은 재앙을 선포하면서 '날이 가까왔으니'라고 표현
했다. 이와같은 다가올 심판의 날에 대한 언급은 8C 선지자들의 공통된 메시지이다.
이 날은 범죄한 자들에게 기쁨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슬픔과 저주의 날이다. 하나님은
모든 은밀한 죄를 엄격하게 판단하시며(시 33:15;139:1-5) 확실하게 보응하신다. 요엘
선지자는 이 날을 '여호와의 날'로 표현했다(욜 1:15;2:1, 2, 11, 31;3:14). 여호와의
날은 역사상 유례없는 심판의 날로서 비명과 슬픔과 외마디가 울려퍼지는 고난의 날이
다(6:6,7;습 1:14;2:2).
(3) 재앙의 심각성(10-13절) : 다가올 재앙은 불순종한 유다의 삶의 근거가 박탈되
는 상황을 초래한다. 언약 백성을 처벌하는 몽둥이로 사용된 바벧론은 대부분의 백성
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재물을 몰수할 것이다. 그러므로 토지의 구매자는 땅을 차지할
수 없게 되고, 원 주인은 희년이 돌아와도 토지를 되돌려받을 수 없게 된다(레 25:10,
13-17). 결국 하나님을 떠난 교만한 이스라엘 백성은 잔인하고 포학한 침공을 당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지위나 소유에 관계없이 실향민이 되어 고통과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게 진행된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할 때 무서운 결과가 초래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사 26:11).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처벌하는 분이
시다(시 33:15; 139:1-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한 대속을 찬양하며, 성결하면서도 감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3. 재앙의 실상(7:14-27)
재앙의 임박성과 필연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내용(1-13절)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재앙의 결과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히 전 단락(5-13절)이 재앙의 긴박
감을 생생하게 감정적으로 묘사한 서정적 특색을 보인 반면에 본문은 재앙으로 인해
야기된 비참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열거하는 교훈적인 특색을 띤다(Wycliffe). 이러한
본문은 (1) 바벧론 군대의 침공으로 인한 파멸(14,1 5절), (2) 전쟁의 와중 속에서 도
망하는 자의 비참한 상태(16-21절), (3) 침략자들에 의한 하나님의 성소의 더렵혀짐
(22절), (4) 바벧론 포로로 잡혀감(23-27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바벧론 군대의 침략시 환난을 피해 비참하게 도망가는 모습은 12:1-16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후자가 도피하는 자들의 처량함과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죽음을 다
루고 있는데 비해, 본문은 전체 이스라엘 족속들이 당하는 생명의 위협, 도피자들의
비참함 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주도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바벧론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모든 준비가 소용없음을 밝히고 있다(14절). 사실
바벧론의 침공은 단순히 강대국이 약소국을 유린하는 우연한 행위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은 언약 백서으로서 우상을 숭배하고 공
의를 어그러뜨리는 유다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
지 않고, 인간적인 힘과 방법으로 침략을 격퇴하려는 시도는 심히 무모하고 어리석은
태도이다(레 26:36).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모든 수고와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다
(시 127:1, 2).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하여 심각한 고통에 처해질 것임을 밝히
고 있다(15-19절), 백성들은 어디서도 안전하지 못하며 칼과 온역과 기른으로 인해 멸
망을 당하게 된다. 설혹 살아남은 자라고 할지라도 안락함이나 만족감을 갖지 못하며,
항상 염려와 공포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들은 일체의 희망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고
독과 슬픔을 느끼며 피곤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은이나 금과 같은 보석이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귀잖은 존재가 될 것이다(19절). 에스겔은 이와같이 하나
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됨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
써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살후 1:8,9;히 3:15-19).
(3) 예루살렘 성전이 백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20-22, 24
절).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사 64:11)으
로 인해 커다란 자부심과 영광을 느꼈다. 이러한 사상은 점차 왜곡되어 성전이 있는
한 예루살렘은 절대로 멸망당하지 않는다는 성전 신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스겔은 백성들이 성소를 모독함으로써 하나님께 치욕을 드렸기 때문에 성전을 빼앗
기게 된다고 공언했다(왕하 25:13-17;스 1:7-11). 하나님은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예배
가 드려지는 성전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시고 갈대아인들의 침공에 맡김으로 성정의
모든 영광이 사라지게 하신다(단 1:1,2).
(4) 이스라엘 땅이 완전히 이방인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힌다(23-27절). 성
읍은 약탈당하고 파괴되며 방화와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대하 36:19-21). 백성들은 물
론 지도자들조차 당황하여 분별력을 상실하며 낙담과 고통 속에서 절망하게 된다. 그
때 비로소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잘못을 깨닫고 여호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
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인간의 교만을 껸어버리고(벧전 5:5) 거짓을 드러내주
며(애 2:14;고후 5:10)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슥 10:9, 12).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징벌하심을 깨닫게 된다(고전 11:27-32; 딤전 5:24). 하나님은 언약 백성을 처벌하시고, 성전을 파괴하셨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며 우리는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고전 5:1-8).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