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탄원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탄원을 들으사 그들을 용서하셨으며(출 32:11-14;민 14:13- 20),사무엘 역시 그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삼상 7:9).그러나 이제 이러한 위대한 중보자들이 기도하고 탄원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워낙 뿌리가 깊고, 도저히 돌이킬 수없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였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모세와 사무엘에대한 언급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즉 그는 이 두 선지자들에게서 그의 사역의 모형을볼 수 있었던 것이며, 그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15:2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 '사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웨트'(* )는 '멸망', '염병'으로도 번역된다. 본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징벌에 따른 재앙이,'사망', '칼', '기근', '포로', 혹은 '염병' 등으로 묘사되는 예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14:12;43:11;겔 14:21;33:27).
=====15:3
네 가지로 벌하리니 - 이 네 가지 심판의 도구들은 (1) 죽이는 칼 (2) 칼에 맞아죽은 시체를 찢어 놓을 개들, (3) 죽은 시체를 먹고 사는 새들, (4) 시체를 먹는 새들이 남기고 간 것을 먹어치울 짐승들 등이다(Clarke).
=====15:4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행한 바를 인하여 - 유다의 반역과 배도를 부채질했던열왕들 중 대표적 인물로서 므낫세가 지적되고 있다. 왕하의 여러 구절들에는 이 므낫세 왕의 악행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 지적되어 있다(왕하 21:10-15;24:3). 므낫세는 다윗계 열왕들 중에서 종교 혼합주의를 가장 많이 도입한 자였으며, 민족에게 대단히 깊은 악영향을 끼쳤다(왕하21장). 한편 본절과 앞절의 어투는 신 28:25, 26의 내용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사상에 동조하던 그의 동료나 신명기 학파 학자들의 주석인 것으로 가끔 이해되기도 했으나(Nicholson) 다소 지지하기어려운 견해이다.
=====15: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물을 자 누구뇨 - 예루살렘의 심각한 운명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내용이다. 본절의 세 가지 질문 사항들은 예루살렘을 동정하거나 위로할자가 아무도 없으며 또한 그들의 안부를 물어볼 자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B.C. 586년의 엄청난 파국을 반영하고 있는 예레미야 애가서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상기할 수 있다(애 1:1, 12;2:13, 20, Thompson).
=====15:6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 히브리어 원문상 '아호르 텔레키'(* )는'네가 계속적으로 뒷걸음질 친다(타락해왔다)'는 뜻이다. 또 여호와를 버리고 뒷걸음질 친 자가 바로 '너'라고 표현하면서 너란 대명사를 강조하고 있다(Thompson).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도록 참고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루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자비로우신 배려가 아무 쓸모없었기 때문이다(Clarke).
=====15:7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어 - 이런 장면은 타작 마당에 수확한 것을 모아두고 매년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알기 쉬운 예화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곡식을 키질하여 겨를 날려 보내듯이 이스라엘을 키질하여, 그들을 다 흩어버리실 것이다. 본절의 예언은 세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유다 침공을 통해 성취되었다.
=====15:8
그들의 과부가...모래보다 - 남자들이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과부가 여인들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Nicholson). 청년들의 어미를 - 칠십인역(LXX)은 '어머니(와) 청년들'로, 벌게이트역(Vulgate)은 '청년의 어머니'로, 또 수리아역(Syriac Version)은 '어머니와 청년들이 다 함께'로 각각 번역한다. 문맥상 '어미'를 수도나 대도시로 이해하여, 본절을 예루살렘 거민들의 모성인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다(Clarke).
=====15:9
일곱 자식을...기절하게 하며 - 아들들이 모두 전쟁에서 몰살당했음을 가리킨다(Nic holson). 클라크(Clarke)는 이 '여인'을 예루살렘으로 해석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녀, 예루살렘은 수많은 자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 땅의 수많은도시들과 마을들, 그리고 가문들의 어미였다. 그리고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수를 뜻한다. 한편, 일곱 아들의 어미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축복으로 여겨졌다(룻 4:15; 삼상2:5) . 그러나 그들이 백주에 몽땅 멸망하고 말 때에는 일곱 자식의 어미가 된다는것은 오히려 저주가 되고 만다. 이들 젊은이들은 한창 피어날 나이에 전쟁에서 죽게되어 대를 상속할 자손마저 없어져 버린다.
=====15:10
나의 모친이여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 깊은 절망감 속에서 내뱉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애도는 20:14-18의 날카로운 비명속에서도 나타난다. 이곳의 주제는 자기동포의 손에 핍박받는 것에 대한 것이다(11:18-12:6 참조, Nicholson).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과 고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욥 3:3-10). 그러나 그의 부르심은 어미의 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1:5), 그렇기 때문에 그의 탄생날에 대한 이 같은 한탄은 맡은 바 사명을 차라리 포기하고 싶은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는 '온 땅을 향해 법적인 투쟁과 변론을 벌일 자로'라고도 번역된다. 그는 아마 자기 민족을 향해 계속 소송을 거는 자로 보였던 것같다(J. Bright). 내게 뀌이지도 - 또 예레미야는 여기서 자신이 마치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취급을받는 것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다.
=====15:11
네 대적으로...간구하게 하리라 - '간구하게'의 히브리어 '파가'(* )는 '간청(요청)하다', '만나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동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절의 해석도 달라진다. (1) '내가 네 대적을 만나 은밀한 영향력으로써 그로 하여금 네게 선대하도록 만들어 주겠다'(KJV, Calvin). (2) '이제까지는 네 대적이 너를 조롱하고 대적하였으나 그날에는 오히려 네 대적이 네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NIV). 이 두견해 중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하기란 어렵다. 다만 (1)의 견해를 따를 경우 이 예언은40:1 이하에서 성취되었으며, (2)의 견해를 따를 경우 그 예언은 38:14에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절과 12-14절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제시되고 있다. 혹자는 11절만을 선지자에게 적용시키고 12-14절은 유다 백성에게 적용시키는가 하면(Calvin, Grotius, Henry, Scott), 또 어떤 학자는 11-14절 전체가 유다 백성에게 선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Venema). 그러나 가장 지지받는 견해는 11-14절 전체를 선지자에게 선포된 말씀으로 보되, 11절은 다분히 개인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또 12-14절은 백성들과의 동일선상에서 말씀하신 내용으로 보는 것이다.
=====15:12
본절은 난해 구절들 중의 하나로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이는 17:1의 내용이 잘못 표기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Rudolf, Bright). 그런가 하면 '유다의 미력한 군대로 어찌 강대한 갈대아 군대를 맞아 싸울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도해석한다(Clarke). 그러나 이를 우선 문자적으로 읽어보면 이러하다. '철이 북방으로부터의 철과 놋을 깨뜨릴 수 있는가?' 또한 이를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철과 놋이 북방으로부터의 철을 깨뜨릴 것인가?'로 볼 수도 있다. 문맥을 살펴보면, 예레미야에게지금 유다에 닥쳐올 적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유다로서는 그 어떤 확신과 자신감도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유다인들의 의지가(혹은 무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래서 그것이 마치 철이나 놋과 같다 할지라도 북방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적과는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15:13
유다를 침공할 적군들이 모든 값진 재물들을 노략해 갈 것을 뜻한다.
=====15:14
앞 구절과 본절은 17:3, 4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에 착안하여 어떤 이는 이르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웨하아바르티'(* )를 '섬기게 하다'는 뜻인 '웨하아바드티'(* )로 이렇게 수정해도 뜻은 통하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더라도 포로로 잡혀가는 것에 대한 본절의 의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15:15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 예레미야는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실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말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여호와께 기억해 주십사 하고 간구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인정하심을 얻기 원할 때이다(느13:14;시25:7;106:4등). 마지막 어구들을 살펴보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박해자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대변자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었으며,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즉 여기서 예레미야가 여기서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이 사사로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로이해될 수 있겠다(Thompson).
=====15:16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면 기꺼이 받아들였다. 에스겔도 비슷한 표현을사용하여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하였다(겔2:8-3:3).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공히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예레미야는'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고 에스겔은 '꿀처럼 달게' 받아들였다. 또한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말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5)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신 12:11)이란 어구와 같은 맥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다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천명이다.
=====15:17
기뻐하는 자의 회(會)에 앉지 아니하며 - 원문상의 직역은 '흥겹게 떠드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지 않았으며'이다(J. Bright).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도 누릴 수가 없었다. 본절에서는그의 사명에 대한 이 같은 헌신적인 성실성이 상세히 지적되고 있다(Thompson).
=====15: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시내 같으시리이까 - 여기에는 박해받는 중에 있는 하나님의 종이 터뜨리는 애절한 탄식이 언급되어 있다. 이 질문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시 22:1 참조). 예레미야에게는 그의 고통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며 그의 상처는 절망적이어서 도저히 치유가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참기 어려운 고난으로 인해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께서(2:13) 마치 '물이 말라 속이는 시내'인 것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속이는 시내'란여름철에는 말라버려 물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시내를 말한다. 팔레스틴 지방에는 많은비가 왔을 때만 물이 흘렀던 수많은 와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해하기 쉬운 예화였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물을 찾기 위해 종종 와디에 다가가지만 대부분 물을 찾지못하고 만다.
=====15:19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것이며 - 클라크(Clarke)는 본 문구를, '만일 네가 회개하면 다시 유다 따응로 돌려 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예레미야의 선지자 직분에 관련된 내용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예레미야는 자기백성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네가 돌아오면 나는 너에게 선지자의 직무를 돌려주겠다'란 의미로 볼 수 있겠다(Feinberg,Thompson). 여기서도 '돌아오다'(* , 슈브)란 동사의 언어 유희가 쓰이고 있다. 예레미야의 쓰라린 경험은 선지자로서의 그의 입을 거의 봉해 버렸으며 자기를 보낸 이에 대한 확신과 신적 소명에 거의 눈을 감아버리게 했다(20:7-9 참조).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의 반응에 개의치 말고 다시 돌아와서 오직 당신만 신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불평을 비난하면서도 우선 천한 것에서부터 귀한 것을 취할 것을 권면하신다. 즉 백성들의 속이는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서라고 만든다. 그렇게 할 경우 그는 하나님의 입 같이(출 4:16)됨 것이며, 그의 말은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으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 역시 그 말씀을 그러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5:20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구하여 건짐이니라 - '네가 나에게 충실한 이상,그 어느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Clarke). 이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다시 부르시는 재확인 절차이다(Nicholson). 이 내용의 어투는 1:8, 18, 19 의 내용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본절의 약속은 구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흔히 등장하는세 동사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절의 '구하다'(* , 야솨), '건지다'(*, 나찰)와 다음 절의 '구속하다'(* , 파다)이다, 이 동사들은 모두 출애굽 사건을 묘사하는 상당히 비중있는 구절들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때때로 보다 일반적인상황에도 적용되었다. 이들 각 동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제작기 다름 면을 강조하고 있다. '구하다'에 해당하는 '야솨'와 그 관련 명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압제받고 있는 자들은 구해낸다는 점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그리고 '건지다'에 해당하는'나찰'은 강한 자가 자기 먹이를 빼앗아 가려고 할 때 그것을 와락 붙잡는 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나타내며 본절에서는 특히 죽음, 무덤, 죄악, 고통, 공포 등으로부터 건짐받는 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동사인 '파다'는 대부분 어떤 사람의 소유에서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켜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Thompson).
=====15:21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 이 악한 백성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 '갈대아 군대의 손에서'의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것도 땅에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취되었다(Clarke).
본장은 심판에 관한 9가지의 일반적인 예언들(2-20장) 중 여섯 번째(14, 15장)에
속하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14:19-22에 기술된 바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
약(레 26:12)에 근거하여 자비를 호소하는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가 연속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전장 후반부(14:19-22)에서의 선지자의 중보 기도에 관한 하나
님의 응답을 진술하고 있는 잔반부(1-9절)와 (2) 선지자 자신의 극도의 고립감으로 인
한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가 진술되어 있는 후반부(10-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저자는 본장을 통해 신실한 백성에게 계속되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자비와 은혜로
우신 사랑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문맥상으로 볼 때 본장의 초두는 전장 후반부(14:19-22)의 결론적 서술의 형
태를 취하고 있다. 곧 선지자가 기도를 통하여 대화적 방식으로 제기했던 유다의 용서
에 관한 문제가 이제 하나님의 대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울러 전장에서의 예레미
야의 외적인 기도를 통한 애가가 더욱 심화되어서 이제 망연 자실(茫然 自失)한 모습
의 내적 고백(10, 15-18절)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상의 사실을 근거로 본장의 구조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전장 후반부(14:19-22)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1-4절) |
| B.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한 예언적 선언(5-9절) |
| C. 예레미야의 내적 고백:불평(10절) |
| D. 하나님의 반응:위로(11-14절) |
| C'. 예레미야의 내적 고백:불평(15-18절) |
| D'. 하나님의 반응:위로(19-21절) |
+--------------------------------------------------------------------+
이상과 같이 본장은 전장(14장)과 유사하게 교차식 서술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다
만 전장에서는 주로 선지자의 애가적 기도가 드러난 반면, 본장에서는 선지자 자신의
처절한 내적 고백이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본장은 예레미야의 내적 갈등과 하나님의 위로라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예레미야는 박해자들의 위협 때문에 소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기어려움을 고백했고, 이
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견고하게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선지자의 고백 | 하나님의 응답(위로) |
+-----------------------------------+------------------------------------------+
| 재앙, 저주(10절) | 강하게 함, 복을 얻게 함(1절) |
+-----------------------------------+------------------------------------------+
| 기억, 권고(15절) | 다시 이끌어 세움(19절) |
+-----------------------------------+------------------------------------------+
| 주의 말씀을 얻어 먹음(16절) | 너는 내 입이 될 것이다(19절) |
+-----------------------------------+------------------------------------------+
| 악인을 보복하시고 나로 멸망치 않 | 악인에게서 구원하여 건질 것임 |
| 게 하소서(15절) | (20, 21절) |
| | |
+-----------------------------------+------------------------------------------+
| 고통과 상처가 심각함 | 너를 견고한 놋 성벽 같이 되게 할 |
| (18절) | 것임 |
| | (20절) |
+-----------------------------------+------------------------------------------+
이처럼 선지자의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가 교차되고 있는 본장의 역사적 시점은 대
략 1차 포로 사건(B.C. 609)이후 여호야김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한편으로 칼
이나 기근을 통하여 이미 발생한 심판 사건을 언급하고 있으며(7절)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심각한 상태의 죽음과 파괴를 예고(豫告)하고 있다(9절). 결국 이상의 두 가지의
명백한 사실을 통하여 본장이 첫 번째 포로 사건(B.C. 609)과 두 번째 포로 사건
(B.C.597)의 중간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통하여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장의 곳곳에서 진술(14:7-9, 13, 19-22)된 바 있는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답변을 기술하고 있다(1-9절). 우선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중재자인 모세와 사무엘을 현재으 유다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 선지자들은 당시 반역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였고(출
32:11-14, 30-32;민 14:13-19;신 9:13-29;삼상 7:8, 9;12:19-25). 하나님의 응답을 통
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는 언약에서 너
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모세와 사무엘이 현재에 존재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
나님의 마음을 돌려 놓지는 못할 상태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지자의 애절한 기도
에 대해 심판의 불가피성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2) 하나님의 최종 답변을 통하여 앞으로 유다에 임할 4가지 재앙의 양식을 제시한
다. 즉,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빠져 멸망당하게 되는 유다는 사망(염병), 칼, 기근,
포로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재앙을 개와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이 시체를 해부하
여 나눠먹는 장면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하나의 경고적 차
원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건으로 등장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시행된다.
(3) 지금까지의 본서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예레미야의 선지자지에 관한 불평이 고
배경식으로 언급되어 있다(10, 15-18절). 우선 그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후회하고 있
다(10절;20:14;욥 3:1). 일찍이 그는 선지잘서의 삶이 출생 이전부터 작정된 것임을
고백했었다(1:4, 5). 그런데 현재에 와서 자신의 출생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이 사실
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의 소명에 관하여 불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가
자신의 적들에 대한 복수의 울부짖음으로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15절). 이 사실은 소
명에 대해 좀더 부연(敷衍)하여 설명하고 있는 애가적진술로 확인되며(16절;욥
23:12), 자신의 결백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17절;시 26:4, 5).
선지자는 자신이 마치 여름에 말라버린 시냇물과 같이 취급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괴로
움을 하소연하고 있다(18절). 이러한 예레미야의 푸념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성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4)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를 진술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1-14, 19-21절). 우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위해 선울 베푸시고 고난의 시기에 도우
실 것임을 확증시킨다(11절;40:4, 5).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유다 백성들에 대
해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패배시키시며 포로로 만드셔서 징벌할 것임을 선언하신다
(12-14절;신 32:22;시 44:12). 그 후에 극도로 암담한 상황으로 인하여 신적 사명에
대해 눈을 감아버린 선지자에게 다시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라고 요구하고 있
으며, 이를 수락할 경우 다시 자신의 대변자로 세우실 것임을 밝히신다(19절;1:9, 18,
19;슥 3:7).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어질 때 대적으로부터 구
원해줄 것임을 최종적으로 재확인해주고 있다(20, 21절;20:13;39:11, 12). 이처럼 하
나님은 의인의 낙심을 그냥 방치하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로해주시는 자상
하신 분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악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동시에 자기 백성이 처절한 상황 속에서 울부짖
는 음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존재이심을 깨닫게 된다.
1. 피할 수 없는 파멸(15:1-9)
본 단락은 전장(14장)에서 계속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대답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4가지의 상징적 진술들을 통하여 유다의 참혹한 파
멸을 선언하고 있다. 저자는 예루살렘을 모델로 하여 유다에게 임할 무서운 운명을 구
체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전장의 후반부(14:19-22)에서 드러난 예레미야의 호소에 관
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을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1-4절), (2) 유다의 파멸의 심각
성과 참상을 예루살렘이라는 현장을 통하여 구체화시키고 있는 후반부(5-9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읍의 확실한 파멸을 소개함으로써 성전 중심 신학, 즉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이유로 멸망치 않으리라는 확신을 불식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예루살렘의 비참한 운명을 언급하고 있는 5-9절의 내용은 9:1-11에서 지적하
고 있는 심판 선언에 관한 진술의 반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두 부분을 비교해 보
면 다음과 같다.
+------------------------------------------------------------------------------+
|(1) '그들은 나 알기를 싫어하였다(하나님의 신탁의 말씀) 그러므로...'(9:6) '네가|
| 나를 버렸고(하나님의 신탁의 말씀) 내게서 물러갔다. 그러므로...'(15:6) |
|(2) 9:1-11과 15:5-9은 그 내용상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연속적인 연대기적 순서 배|
| 열을 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곧 '내가 그들을 녹이고 연단(鍊鍛)하가라'(9:7|
| ) '내가 그들을 키로 까부르며...그들의 자식을 끊고...멸하였다'(15:7) 등과 |
| 같이 미래-과거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
또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결론적 선언(1절) |
| B. 심판의 성격(2, 3절;7:33;9:16;겔 14:21;슥 11:9).|
| C. 심판의 원인(4-6절;왕하 24:3, 4) |
| B'. 심판의 성격(7-9절;18:21)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하나님은 이전과는 달리 좀더 구체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규정하신다(1-4절).
유다 백성들은 4가지의 선별적인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즉, 재앙으로 인한 죽음
(14:12), 칼로 쳐 죽임을 당함, 기근으로 인한 죽음, 포로로 잡혀가게 됨 등이다. 왜
냐하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 기간 중 예루살렘을 너무 우상으로 더럽혔기
때문이다(왕하 21:1-18;대하 33:1-20). 그 결과 이후에 전개되는 요시야의 종교 개혁
조차도 단지 파멸을 지연시키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다(왕하 22:16-20). 결국 유다
심판의 역사적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지점으로 가버린 유다
의 패역에 있는 것이다.
(2) 유다의 심각한 파멸의 본보기로서 유다 백성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예
루살렘으리 파멸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5-9절). 예루살렘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 화
자(話者)로 등장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게 심판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기며 슬퍼할 자
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은 끝까지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분인 하나님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미련가 동정없이 예루살렘을 파
괴시키시겠다고 맹세하셨다. 마치 농부가 곡식을 까부르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을 까불
러서 겨와 같은 악인들을 제거시킬 것이다. 이제 그 심판의 참담한 효력이 온 예루살
렘 백성들에게 미치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성읍 여인들의 남편들이 적들에게 무차별
살해당하자 과부들이 모래알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일곱 아들을 소유한 어머니들은 노
년에 기쁨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들들의 몰살로 말미암아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처참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소개함으로써 예루살렘은 유
다 백성의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절망의 현장으로 잔락하게 됨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
님께 대한 불순종은 영광을 치욕으로, 존귀를 멸시로 변경시킨다.
한편, 본 단마락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의 중재자인 모세와 사
무엘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에스겔은 노아, 다니엘 및 욥을 예로 들기
도 하였다(겔 14:14)., 모세는 반역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바 있었고
(출 32:11-14, 30-32;민 14:13-19;신 9:13-29)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 요청을 수락하
셨다. 사무엘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삼상 7:8, 9;12:19-25) 역
시 동일한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너
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재에 성공하지 못했다. 설혹 모세와 사무엘이 다시 와
서 중재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
실은 모세를 계승하는 어떤 사람이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
님의 심판이 취소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아울러 하나님의 심판을 해결할 수 있는
참된 중보자의 필요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
다.
+---------------------------------------------------+
| 모세, 사무엘:언약 파기로 인한 백성 저주 |
| 언약의 갱생의 위한 중재 |
+------+--------------------------------------------+---------------+
| 예레미야(새로운 모세):언약 파기로 인한 저주를 |
| 몸소 경험, 새 시대를 통고 |
+--------+---------------------------------------------------+----------+
| 옛수님:언약의 주인으로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완성 |
+--------------------------------------------------------------+
이상의 본 다낙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수립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인간의 중보도 결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근복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만이 참다운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의 귀중함을 깨닫고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2. 선지자의 고민과 하나님의 위로(15:10-21)
본 단락은 백성들의 심화되는 핍박을 통하여 스스로 선택하신 하나님과 사랑하는
백성들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낀 예레미야의 허탈한 심정이 기탄없이 표출되고 있다.
저자는 두 번의 탄식(10, 15-18절)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 기반에 대한 회의를 솔직하
게 드러내고 죽음과 다름없는 현실으 고통감을 절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러한 탄식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듭되는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심으로써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신다(11-14, 19-21절). 이러한 본 단락은 (1) 선지자의 첫 번째 탄시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0-14절)와 (2) 계속되는 두 번째 탄시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5-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통 속에서 낙망해 있는 가운데 제 2
의 소명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추구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
로운 은혜를 맛보게 되었다.
한편, 본 단락은 문맥상으로 볼 때 본서 전체의 내용 중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곧 이전의 내용들이 주로 유다의 배도와 그 결과로서의 심판의 참상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이후의 내용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단순히 징계의 차원을 넘어 유다의 구
원과 회복을 궁극적목표로 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전 제:선지자의 탄식(10절;20:14;욥 3:1) |
| B. 위 로(11절;40:4, 5) |
| C. 파멸을 선언함(12-14절;신 32:22;시 44:12|
| ) |
|A'. 전제:선지자의 간구(15절) |
| B'. 회복을 촉구함(16-18절;욥 23:12;시 26:4, 5|
| ) |
| C'. 회복을 선언함(19-21절;1:8;20:13;39:11)|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예레미야는 모든 땅이 자신에게 대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애통하고 있다. 비
록 그 자신이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행위들을 가져오거나 불러오지는 않았지만(10
절) 예레미야는 백성들로부터 계속적인 도전과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계속해서 예레미야를 옹호해 주셨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원수들은 재앙의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선지자에게 간청하는 데서 성취되었다(21:1-7;37:1-10,
17-20;38:14-18). 예레미야는 현재 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좌절에 빠졌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통해 궁극적으로 소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신자는 마지
막 날에 승리할 것이므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다 백성을 깊은 죄악으로 인
하여 회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므로 맨손으로 철이나 동을 꺾을 수 없는 것처
럼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들의 힘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모든 재산들은 적들에
게 약탈을 당하게 도고(17:3;20:5) 급기야 노예로 사로잡혀 알지도 못하는 이방 땅으
로 끌려가게 된다(14:18;16:13;17:4). 이처럼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로 유다 백
성들을 향하여 불과 같이 타오를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을 그냥 간과하지 않고 철저히
보응하신다.
(3) 예레미야는 한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
었으나 다시금 자신의 소명을 기억하고 믿음을 회복했다. 하나님께서는 종극적으로 선
지자와 구원과 보호를 약속하셨으나(11절) 예레미야는 좀더 신속한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핍박자들에게 보응하시기를 원하신다. 사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
한 유다 백성들과는 반대로(8:9) 예레미야는 말씀으 중요성을 깨달았으며(시 1:2) 악
을 멀리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
님의 분노에 공감하며 공정한 보응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고민과 회의에 빠져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에 이르렀
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예레미야를 불러 원래의 소명(1:18, 19)을 불
러일으키시고 강한 확신을 불어놓어 주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청동벽처럼 강하게 만
드셔서 어떤 대적도 이길 수 없도록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다시 힘자르
얻어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하며 유다에 임할 재앙을 선포하게 된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첫사랑을 기억하며 새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예레미야는 암담한 현실로 인해 잠시 절망에 빠져 회의했지만, 곧 처음의 내적 소명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와 같이 성도는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탄원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탄원을 들으사 그들을 용서하셨으며(출 32:11-14;민 14:13- 20),사무엘 역시 그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삼상 7:9).그러나 이제 이러한 위대한 중보자들이 기도하고 탄원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악은 워낙 뿌리가 깊고, 도저히 돌이킬 수없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하였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모세와 사무엘에대한 언급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즉 그는 이 두 선지자들에게서 그의 사역의 모형을볼 수 있었던 것이며, 그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의 계승자였던 것이다.
=====15:2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 '사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웨트'(* )는 '멸망', '염병'으로도 번역된다. 본절에서처럼 하나님의 징벌에 따른 재앙이,'사망', '칼', '기근', '포로', 혹은 '염병' 등으로 묘사되는 예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14:12;43:11;겔 14:21;33:27).
=====15:3
네 가지로 벌하리니 - 이 네 가지 심판의 도구들은 (1) 죽이는 칼 (2) 칼에 맞아죽은 시체를 찢어 놓을 개들, (3) 죽은 시체를 먹고 사는 새들, (4) 시체를 먹는 새들이 남기고 간 것을 먹어치울 짐승들 등이다(Clarke).
=====15:4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행한 바를 인하여 - 유다의 반역과 배도를 부채질했던열왕들 중 대표적 인물로서 므낫세가 지적되고 있다. 왕하의 여러 구절들에는 이 므낫세 왕의 악행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 지적되어 있다(왕하 21:10-15;24:3). 므낫세는 다윗계 열왕들 중에서 종교 혼합주의를 가장 많이 도입한 자였으며, 민족에게 대단히 깊은 악영향을 끼쳤다(왕하21장). 한편 본절과 앞절의 어투는 신 28:25, 26의 내용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사상에 동조하던 그의 동료나 신명기 학파 학자들의 주석인 것으로 가끔 이해되기도 했으나(Nicholson) 다소 지지하기어려운 견해이다.
=====15: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물을 자 누구뇨 - 예루살렘의 심각한 운명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내용이다. 본절의 세 가지 질문 사항들은 예루살렘을 동정하거나 위로할자가 아무도 없으며 또한 그들의 안부를 물어볼 자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B.C. 586년의 엄청난 파국을 반영하고 있는 예레미야 애가서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상기할 수 있다(애 1:1, 12;2:13, 20, Thompson).
=====15:6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 히브리어 원문상 '아호르 텔레키'(* )는'네가 계속적으로 뒷걸음질 친다(타락해왔다)'는 뜻이다. 또 여호와를 버리고 뒷걸음질 친 자가 바로 '너'라고 표현하면서 너란 대명사를 강조하고 있다(Thompson).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반역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도록 참고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루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자비로우신 배려가 아무 쓸모없었기 때문이다(Clarke).
=====15:7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어 - 이런 장면은 타작 마당에 수확한 것을 모아두고 매년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알기 쉬운 예화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곡식을 키질하여 겨를 날려 보내듯이 이스라엘을 키질하여, 그들을 다 흩어버리실 것이다. 본절의 예언은 세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유다 침공을 통해 성취되었다.
=====15:8
그들의 과부가...모래보다 - 남자들이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에 과부가 여인들이 많아졌음을 지적한다(Nicholson). 청년들의 어미를 - 칠십인역(LXX)은 '어머니(와) 청년들'로, 벌게이트역(Vulgate)은 '청년의 어머니'로, 또 수리아역(Syriac Version)은 '어머니와 청년들이 다 함께'로 각각 번역한다. 문맥상 '어미'를 수도나 대도시로 이해하여, 본절을 예루살렘 거민들의 모성인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겠다(Clarke).
=====15:9
일곱 자식을...기절하게 하며 - 아들들이 모두 전쟁에서 몰살당했음을 가리킨다(Nic holson). 클라크(Clarke)는 이 '여인'을 예루살렘으로 해석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녀, 예루살렘은 수많은 자손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 땅의 수많은도시들과 마을들, 그리고 가문들의 어미였다. 그리고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수를 뜻한다. 한편, 일곱 아들의 어미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큰 축복으로 여겨졌다(룻 4:15; 삼상2:5) . 그러나 그들이 백주에 몽땅 멸망하고 말 때에는 일곱 자식의 어미가 된다는것은 오히려 저주가 되고 만다. 이들 젊은이들은 한창 피어날 나이에 전쟁에서 죽게되어 대를 상속할 자손마저 없어져 버린다.
=====15:10
나의 모친이여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 깊은 절망감 속에서 내뱉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애도는 20:14-18의 날카로운 비명속에서도 나타난다. 이곳의 주제는 자기동포의 손에 핍박받는 것에 대한 것이다(11:18-12:6 참조, Nicholson). 우리는 여기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불안과 고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그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욥 3:3-10). 그러나 그의 부르심은 어미의 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1:5), 그렇기 때문에 그의 탄생날에 대한 이 같은 한탄은 맡은 바 사명을 차라리 포기하고 싶은 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 자로'는 '온 땅을 향해 법적인 투쟁과 변론을 벌일 자로'라고도 번역된다. 그는 아마 자기 민족을 향해 계속 소송을 거는 자로 보였던 것같다(J. Bright). 내게 뀌이지도 - 또 예레미야는 여기서 자신이 마치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취급을받는 것에 대해 하소연하고 있다.
=====15:11
네 대적으로...간구하게 하리라 - '간구하게'의 히브리어 '파가'(* )는 '간청(요청)하다', '만나다'는 뜻이다. 그런데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동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본절의 해석도 달라진다. (1) '내가 네 대적을 만나 은밀한 영향력으로써 그로 하여금 네게 선대하도록 만들어 주겠다'(KJV, Calvin). (2) '이제까지는 네 대적이 너를 조롱하고 대적하였으나 그날에는 오히려 네 대적이 네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NIV). 이 두견해 중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하기란 어렵다. 다만 (1)의 견해를 따를 경우 이 예언은40:1 이하에서 성취되었으며, (2)의 견해를 따를 경우 그 예언은 38:14에서 성취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본절과 12-14절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제시되고 있다. 혹자는 11절만을 선지자에게 적용시키고 12-14절은 유다 백성에게 적용시키는가 하면(Calvin, Grotius, Henry, Scott), 또 어떤 학자는 11-14절 전체가 유다 백성에게 선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Venema). 그러나 가장 지지받는 견해는 11-14절 전체를 선지자에게 선포된 말씀으로 보되, 11절은 다분히 개인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또 12-14절은 백성들과의 동일선상에서 말씀하신 내용으로 보는 것이다.
=====15:12
본절은 난해 구절들 중의 하나로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어떤 이는 17:1의 내용이 잘못 표기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Rudolf, Bright). 그런가 하면 '유다의 미력한 군대로 어찌 강대한 갈대아 군대를 맞아 싸울 수 있겠는가'라는 뜻으로도해석한다(Clarke). 그러나 이를 우선 문자적으로 읽어보면 이러하다. '철이 북방으로부터의 철과 놋을 깨뜨릴 수 있는가?' 또한 이를 다른 각도에서 읽으면 '철과 놋이 북방으로부터의 철을 깨뜨릴 것인가?'로 볼 수도 있다. 문맥을 살펴보면, 예레미야에게지금 유다에 닥쳐올 적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유다로서는 그 어떤 확신과 자신감도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 '유다인들의 의지가(혹은 무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래서 그것이 마치 철이나 놋과 같다 할지라도 북방으로부터 오는 강력한 적과는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15:13
유다를 침공할 적군들이 모든 값진 재물들을 노략해 갈 것을 뜻한다.
=====15:14
앞 구절과 본절은 17:3, 4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에 착안하여 어떤 이는 이르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웨하아바르티'(* )를 '섬기게 하다'는 뜻인 '웨하아바드티'(* )로 이렇게 수정해도 뜻은 통하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더라도 포로로 잡혀가는 것에 대한 본절의 의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15:15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 예레미야는 자신이 겪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실것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말은 구약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특히 여호와께 기억해 주십사 하고 간구하는 경우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인정하심을 얻기 원할 때이다(느13:14;시25:7;106:4등). 마지막 어구들을 살펴보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박해자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대변자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었으며,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해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즉 여기서 예레미야가 여기서 호소하고 있는 내용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이 사사로운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할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미로이해될 수 있겠다(Thompson).
=====15:16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면 기꺼이 받아들였다. 에스겔도 비슷한 표현을사용하여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하였다(겔2:8-3:3). 예레미야나 에스겔은 공히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는 것 같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예레미야는'기쁨'과 '마음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였고 에스겔은 '꿀처럼 달게' 받아들였다. 또한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말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두시려고 택하신 곳'(신 12:5)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신 12:11)이란 어구와 같은 맥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다 하나님의 소유권에 대한 천명이다.
=====15:17
기뻐하는 자의 회(會)에 앉지 아니하며 - 원문상의 직역은 '흥겹게 떠드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지 않았으며'이다(J. Bright). 예레미야는 그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것도 누릴 수가 없었다. 본절에서는그의 사명에 대한 이 같은 헌신적인 성실성이 상세히 지적되고 있다(Thompson).
=====15: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시내 같으시리이까 - 여기에는 박해받는 중에 있는 하나님의 종이 터뜨리는 애절한 탄식이 언급되어 있다. 이 질문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토로하는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시 22:1 참조). 예레미야에게는 그의 고통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며 그의 상처는 절망적이어서 도저히 치유가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참기 어려운 고난으로 인해 '생수의 근원'되시는 여호와께서(2:13) 마치 '물이 말라 속이는 시내'인 것같이 여겨졌던 것이다. '속이는 시내'란여름철에는 말라버려 물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시내를 말한다. 팔레스틴 지방에는 많은비가 왔을 때만 물이 흘렀던 수많은 와디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이해하기 쉬운 예화였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물을 찾기 위해 종종 와디에 다가가지만 대부분 물을 찾지못하고 만다.
=====15:19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 앞에 세울것이며 - 클라크(Clarke)는 본 문구를, '만일 네가 회개하면 다시 유다 따응로 돌려 보내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씀은예레미야의 선지자 직분에 관련된 내용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다. 예레미야는 자기백성들을 향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문구는 '네가 돌아오면 나는 너에게 선지자의 직무를 돌려주겠다'란 의미로 볼 수 있겠다(Feinberg,Thompson). 여기서도 '돌아오다'(* , 슈브)란 동사의 언어 유희가 쓰이고 있다. 예레미야의 쓰라린 경험은 선지자로서의 그의 입을 거의 봉해 버렸으며 자기를 보낸 이에 대한 확신과 신적 소명에 거의 눈을 감아버리게 했다(20:7-9 참조).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의 반응에 개의치 말고 다시 돌아와서 오직 당신만 신뢰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불평을 비난하면서도 우선 천한 것에서부터 귀한 것을 취할 것을 권면하신다. 즉 백성들의 속이는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주신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서라고 만든다. 그렇게 할 경우 그는 하나님의 입 같이(출 4:16)됨 것이며, 그의 말은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으로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 역시 그 말씀을 그러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5:20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구하여 건짐이니라 - '네가 나에게 충실한 이상,그 어느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Clarke). 이것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다시 부르시는 재확인 절차이다(Nicholson). 이 내용의 어투는 1:8, 18, 19 의 내용을 강하게 상기시켜 준다. 본절의 약속은 구약에서 구원과 관련해서 흔히 등장하는세 동사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것은 본절의 '구하다'(* , 야솨), '건지다'(*, 나찰)와 다음 절의 '구속하다'(* , 파다)이다, 이 동사들은 모두 출애굽 사건을 묘사하는 상당히 비중있는 구절들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때때로 보다 일반적인상황에도 적용되었다. 이들 각 동사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제작기 다름 면을 강조하고 있다. '구하다'에 해당하는 '야솨'와 그 관련 명사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압제받고 있는 자들은 구해낸다는 점에 강조점이 두어졌다. 그리고 '건지다'에 해당하는'나찰'은 강한 자가 자기 먹이를 빼앗아 가려고 할 때 그것을 와락 붙잡는 자의 적극적인 행위를 나타내며 본절에서는 특히 죽음, 무덤, 죄악, 고통, 공포 등으로부터 건짐받는 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동사인 '파다'는 대부분 어떤 사람의 소유에서 속전을 지불하고 그를 해방시켜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Thompson).
=====15:21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 이 악한 백성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 '갈대아 군대의 손에서'의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것도 땅에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취되었다(Clarke).
본장은 심판에 관한 9가지의 일반적인 예언들(2-20장) 중 여섯 번째(14, 15장)에
속하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14:19-22에 기술된 바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
약(레 26:12)에 근거하여 자비를 호소하는 내용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가 연속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전장 후반부(14:19-22)에서의 선지자의 중보 기도에 관한 하나
님의 응답을 진술하고 있는 잔반부(1-9절)와 (2) 선지자 자신의 극도의 고립감으로 인
한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가 진술되어 있는 후반부(10-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저자는 본장을 통해 신실한 백성에게 계속되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자비와 은혜로
우신 사랑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문맥상으로 볼 때 본장의 초두는 전장 후반부(14:19-22)의 결론적 서술의 형
태를 취하고 있다. 곧 선지자가 기도를 통하여 대화적 방식으로 제기했던 유다의 용서
에 관한 문제가 이제 하나님의 대답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아울러 전장에서의 예레미
야의 외적인 기도를 통한 애가가 더욱 심화되어서 이제 망연 자실(茫然 自失)한 모습
의 내적 고백(10, 15-18절)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상의 사실을 근거로 본장의 구조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전장 후반부(14:19-22)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1-4절) |
| B. 예루살렘의 운명에 관한 예언적 선언(5-9절) |
| C. 예레미야의 내적 고백:불평(10절) |
| D. 하나님의 반응:위로(11-14절) |
| C'. 예레미야의 내적 고백:불평(15-18절) |
| D'. 하나님의 반응:위로(19-21절) |
+--------------------------------------------------------------------+
이상과 같이 본장은 전장(14장)과 유사하게 교차식 서술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다
만 전장에서는 주로 선지자의 애가적 기도가 드러난 반면, 본장에서는 선지자 자신의
처절한 내적 고백이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또한, 본장은 예레미야의 내적 갈등과 하나님의 위로라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예레미야는 박해자들의 위협 때문에 소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기어려움을 고백했고, 이
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견고하게 보호하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이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선지자의 고백 | 하나님의 응답(위로) |
+-----------------------------------+------------------------------------------+
| 재앙, 저주(10절) | 강하게 함, 복을 얻게 함(1절) |
+-----------------------------------+------------------------------------------+
| 기억, 권고(15절) | 다시 이끌어 세움(19절) |
+-----------------------------------+------------------------------------------+
| 주의 말씀을 얻어 먹음(16절) | 너는 내 입이 될 것이다(19절) |
+-----------------------------------+------------------------------------------+
| 악인을 보복하시고 나로 멸망치 않 | 악인에게서 구원하여 건질 것임 |
| 게 하소서(15절) | (20, 21절) |
| | |
+-----------------------------------+------------------------------------------+
| 고통과 상처가 심각함 | 너를 견고한 놋 성벽 같이 되게 할 |
| (18절) | 것임 |
| | (20절) |
+-----------------------------------+------------------------------------------+
이처럼 선지자의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가 교차되고 있는 본장의 역사적 시점은 대
략 1차 포로 사건(B.C. 609)이후 여호야김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한편으로 칼
이나 기근을 통하여 이미 발생한 심판 사건을 언급하고 있으며(7절)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심각한 상태의 죽음과 파괴를 예고(豫告)하고 있다(9절). 결국 이상의 두 가지의
명백한 사실을 통하여 본장이 첫 번째 포로 사건(B.C. 609)과 두 번째 포로 사건
(B.C.597)의 중간 시기에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통하여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전장의 곳곳에서 진술(14:7-9, 13, 19-22)된 바 있는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답변을 기술하고 있다(1-9절). 우선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중재자인 모세와 사무엘을 현재으 유다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 선지자들은 당시 반역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였고(출
32:11-14, 30-32;민 14:13-19;신 9:13-29;삼상 7:8, 9;12:19-25). 하나님의 응답을 통
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는 언약에서 너
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모세와 사무엘이 현재에 존재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하
나님의 마음을 돌려 놓지는 못할 상태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지자의 애절한 기도
에 대해 심판의 불가피성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2) 하나님의 최종 답변을 통하여 앞으로 유다에 임할 4가지 재앙의 양식을 제시한
다. 즉,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빠져 멸망당하게 되는 유다는 사망(염병), 칼, 기근,
포로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재앙을 개와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이 시체를 해부하
여 나눠먹는 장면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하나의 경고적 차
원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건으로 등장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시행된다.
(3) 지금까지의 본서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예레미야의 선지자지에 관한 불평이 고
배경식으로 언급되어 있다(10, 15-18절). 우선 그는 현재 자신의 상황을 후회하고 있
다(10절;20:14;욥 3:1). 일찍이 그는 선지잘서의 삶이 출생 이전부터 작정된 것임을
고백했었다(1:4, 5). 그런데 현재에 와서 자신의 출생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이 사실
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의 소명에 관하여 불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그가
자신의 적들에 대한 복수의 울부짖음으로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15절). 이 사실은 소
명에 대해 좀더 부연(敷衍)하여 설명하고 있는 애가적진술로 확인되며(16절;욥
23:12), 자신의 결백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17절;시 26:4, 5).
선지자는 자신이 마치 여름에 말라버린 시냇물과 같이 취급되고 있음을 밝히면서 괴로
움을 하소연하고 있다(18절). 이러한 예레미야의 푸념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성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4)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를 진술하는 내용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1-14, 19-21절). 우선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위해 선울 베푸시고 고난의 시기에 도우
실 것임을 확증시킨다(11절;40:4, 5).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유다 백성들에 대
해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패배시키시며 포로로 만드셔서 징벌할 것임을 선언하신다
(12-14절;신 32:22;시 44:12). 그 후에 극도로 암담한 상황으로 인하여 신적 사명에
대해 눈을 감아버린 선지자에게 다시금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라고 요구하고 있
으며, 이를 수락할 경우 다시 자신의 대변자로 세우실 것임을 밝히신다(19절;1:9, 18,
19;슥 3:7).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어질 때 대적으로부터 구
원해줄 것임을 최종적으로 재확인해주고 있다(20, 21절;20:13;39:11, 12). 이처럼 하
나님은 의인의 낙심을 그냥 방치하지 않으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로해주시는 자상
하신 분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악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동시에 자기 백성이 처절한 상황 속에서 울부짖
는 음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존재이심을 깨닫게 된다.
1. 피할 수 없는 파멸(15:1-9)
본 단락은 전장(14장)에서 계속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대답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4가지의 상징적 진술들을 통하여 유다의 참혹한 파
멸을 선언하고 있다. 저자는 예루살렘을 모델로 하여 유다에게 임할 무서운 운명을 구
체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전장의 후반부(14:19-22)에서 드러난 예레미야의 호소에 관
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응답을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1-4절), (2) 유다의 파멸의 심각
성과 참상을 예루살렘이라는 현장을 통하여 구체화시키고 있는 후반부(5-9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읍의 확실한 파멸을 소개함으로써 성전 중심 신학, 즉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이유로 멸망치 않으리라는 확신을 불식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예루살렘의 비참한 운명을 언급하고 있는 5-9절의 내용은 9:1-11에서 지적하
고 있는 심판 선언에 관한 진술의 반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두 부분을 비교해 보
면 다음과 같다.
+------------------------------------------------------------------------------+
|(1) '그들은 나 알기를 싫어하였다(하나님의 신탁의 말씀) 그러므로...'(9:6) '네가|
| 나를 버렸고(하나님의 신탁의 말씀) 내게서 물러갔다. 그러므로...'(15:6) |
|(2) 9:1-11과 15:5-9은 그 내용상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연속적인 연대기적 순서 배|
| 열을 취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곧 '내가 그들을 녹이고 연단(鍊鍛)하가라'(9:7|
| ) '내가 그들을 키로 까부르며...그들의 자식을 끊고...멸하였다'(15:7) 등과 |
| 같이 미래-과거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
또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결론적 선언(1절) |
| B. 심판의 성격(2, 3절;7:33;9:16;겔 14:21;슥 11:9).|
| C. 심판의 원인(4-6절;왕하 24:3, 4) |
| B'. 심판의 성격(7-9절;18:21)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하나님은 이전과는 달리 좀더 구체적으로 심판의 성격을 규정하신다(1-4절).
유다 백성들은 4가지의 선별적인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즉, 재앙으로 인한 죽음
(14:12), 칼로 쳐 죽임을 당함, 기근으로 인한 죽음, 포로로 잡혀가게 됨 등이다. 왜
냐하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통치 기간 중 예루살렘을 너무 우상으로 더럽혔기
때문이다(왕하 21:1-18;대하 33:1-20). 그 결과 이후에 전개되는 요시야의 종교 개혁
조차도 단지 파멸을 지연시키는 정도에 머물렀던 것이다(왕하 22:16-20). 결국 유다
심판의 역사적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돌아오지 못할 지점으로 가버린 유다
의 패역에 있는 것이다.
(2) 유다의 심각한 파멸의 본보기로서 유다 백성의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였던 예
루살렘으리 파멸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5-9절). 예루살렘의 운명을 한탄하고 있는 화
자(話者)로 등장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게 심판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기며 슬퍼할 자
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은 끝까지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분인 하나님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미련가 동정없이 예루살렘을 파
괴시키시겠다고 맹세하셨다. 마치 농부가 곡식을 까부르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을 까불
러서 겨와 같은 악인들을 제거시킬 것이다. 이제 그 심판의 참담한 효력이 온 예루살
렘 백성들에게 미치기 시작한다. 예루살렘 성읍 여인들의 남편들이 적들에게 무차별
살해당하자 과부들이 모래알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일곱 아들을 소유한 어머니들은 노
년에 기쁨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들들의 몰살로 말미암아 모든 희망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처참한 현장을 적나라하게 소개함으로써 예루살렘은 유
다 백성의 희망의 상징이 아니라 절망의 현장으로 잔락하게 됨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
님께 대한 불순종은 영광을 치욕으로, 존귀를 멸시로 변경시킨다.
한편, 본 단마락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의 중재자인 모세와 사
무엘을 소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에스겔은 노아, 다니엘 및 욥을 예로 들기
도 하였다(겔 14:14)., 모세는 반역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바 있었고
(출 32:11-14, 30-32;민 14:13-19;신 9:13-29)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 요청을 수락하
셨다. 사무엘도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였으며(삼상 7:8, 9;12:19-25) 역
시 동일한 응답을 받았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서 너
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중재에 성공하지 못했다. 설혹 모세와 사무엘이 다시 와
서 중재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
실은 모세를 계승하는 어떤 사람이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
님의 심판이 취소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아울러 하나님의 심판을 해결할 수 있는
참된 중보자의 필요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
다.
+---------------------------------------------------+
| 모세, 사무엘:언약 파기로 인한 백성 저주 |
| 언약의 갱생의 위한 중재 |
+------+--------------------------------------------+---------------+
| 예레미야(새로운 모세):언약 파기로 인한 저주를 |
| 몸소 경험, 새 시대를 통고 |
+--------+---------------------------------------------------+----------+
| 옛수님:언약의 주인으로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완성 |
+--------------------------------------------------------------+
이상의 본 다낙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수립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어떤 인간의 중보도 결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근복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대속만이 참다운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의 귀중함을 깨닫고 더욱 깊이 묵상해야 할 것이다.
2. 선지자의 고민과 하나님의 위로(15:10-21)
본 단락은 백성들의 심화되는 핍박을 통하여 스스로 선택하신 하나님과 사랑하는
백성들로부터 유리되었다고 느낀 예레미야의 허탈한 심정이 기탄없이 표출되고 있다.
저자는 두 번의 탄식(10, 15-18절)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 기반에 대한 회의를 솔직하
게 드러내고 죽음과 다름없는 현실으 고통감을 절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러한 탄식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듭되는 말씀을 통하여 위로하심으로써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신다(11-14, 19-21절). 이러한 본 단락은 (1) 선지자의 첫 번째 탄시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0-14절)와 (2) 계속되는 두 번째 탄시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5-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
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고통 속에서 낙망해 있는 가운데 제 2
의 소명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역을 계속적으로 추구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자비
로운 은혜를 맛보게 되었다.
한편, 본 단락은 문맥상으로 볼 때 본서 전체의 내용 중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곧 이전의 내용들이 주로 유다의 배도와 그 결과로서의 심판의 참상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 이후의 내용은 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단순히 징계의 차원을 넘어 유다의 구
원과 회복을 궁극적목표로 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근거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A. 전 제:선지자의 탄식(10절;20:14;욥 3:1) |
| B. 위 로(11절;40:4, 5) |
| C. 파멸을 선언함(12-14절;신 32:22;시 44:12|
| ) |
|A'. 전제:선지자의 간구(15절) |
| B'. 회복을 촉구함(16-18절;욥 23:12;시 26:4, 5|
| ) |
| C'. 회복을 선언함(19-21절;1:8;20:13;39:11)|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상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예레미야는 모든 땅이 자신에게 대한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애통하고 있다. 비
록 그 자신이 긴장과 갈등을 야기시키는 행위들을 가져오거나 불러오지는 않았지만(10
절) 예레미야는 백성들로부터 계속적인 도전과 핍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계속해서 예레미야를 옹호해 주셨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원수들은 재앙의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선지자에게 간청하는 데서 성취되었다(21:1-7;37:1-10,
17-20;38:14-18). 예레미야는 현재 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좌절에 빠졌지만
하나님의 보호를 통해 궁극적으로 소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신자는 마지
막 날에 승리할 것이므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다 백성을 깊은 죄악으로 인
하여 회새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으므로 맨손으로 철이나 동을 꺾을 수 없는 것처
럼 자신들을 공격하는 적들의 힘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모든 재산들은 적들에
게 약탈을 당하게 도고(17:3;20:5) 급기야 노예로 사로잡혀 알지도 못하는 이방 땅으
로 끌려가게 된다(14:18;16:13;17:4). 이처럼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로 유다 백
성들을 향하여 불과 같이 타오를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을 그냥 간과하지 않고 철저히
보응하신다.
(3) 예레미야는 한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
었으나 다시금 자신의 소명을 기억하고 믿음을 회복했다. 하나님께서는 종극적으로 선
지자와 구원과 보호를 약속하셨으나(11절) 예레미야는 좀더 신속한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핍박자들에게 보응하시기를 원하신다. 사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요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
한 유다 백성들과는 반대로(8:9) 예레미야는 말씀으 중요성을 깨달았으며(시 1:2) 악
을 멀리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에 대한 하나
님의 분노에 공감하며 공정한 보응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고민과 회의에 빠져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기에 이르렀
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예레미야를 불러 원래의 소명(1:18, 19)을 불
러일으키시고 강한 확신을 불어놓어 주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청동벽처럼 강하게 만
드셔서 어떤 대적도 이길 수 없도록 만드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다시 힘자르
얻어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파하며 유다에 임할 재앙을 선포하게 된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첫사랑을 기억하며 새 힘과 용기를 얻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예레미야는 암담한 현실로 인해 잠시 절망에 빠져 회의했지만, 곧 처음의 내적 소명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다. 이와 같이 성도는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며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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