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여기서부터 12:17까지는 언약의 요구조건에 충실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담고 있는 단락으로서, 이 단락의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견해는 느부갓네살이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무찌르기 얼마 전인 여호야김 시대에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고, 두 번째 견해는 B.C.622년 요시야 당시 힐기야에 의해 율법책이 발견된 후의 것으로서 종교 개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왕하 22,23장). 일반적으로는 후자의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는 모세의 율법과 전통으로 돌아가라는 촉구와 함께 이교도의 제사 형식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하 34장에 따르면, 율법책의 발견에 앞서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지역 신당에서는 가나안 종교 의식이 중단되었다.
=====11: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 여기서 '언약의 말'이란 것은 시내 산에서 체결되었던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서(신 5:2) 하나님은 그들의 일치된 예배와 순종의 대가로서, 민족 초기 단계에 있었던 그들에게 물질적, 영적 필요품들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소유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할 근거는 이러한 조건들을 수납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데 있었다(신 29:9).
=====11:3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 언약의 규정 조항들은 무시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내려지도록 촉구된다. 고대 근동 지역의 국제 조약문에도 계약의 이행과 불이행에 따른 축복과 저주 조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Harrison).한편 본절은 모세가 선포했던 것을 다시 부각시킨 내용이다(Calvin).
=====11:4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구약의 거의 대부분의 용례에서 순종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전반절의 '쇠풀무'란 말은 그들의 비참했던 노예 생활을 상징하는 말로 그 문자적 의미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나 화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노예 생활하던 그들을 주권적 권능으로 이끌어 내셨다. 따라서 그들의 불신앙은 참으로 심각한 것이며, 배은 망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방법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긴밀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11:5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 예레미야는 언약 관계의 핵심이 순종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다음, '아멘'이라는 익숙한 말을 사용하여 그 당시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에 대한 동의의 핵심을 다시 요약해서 지적한다. 물론 이 '아멘'이란 말은, 비록 언급이 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3절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신 27:15-26).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충실히 지킨 반면에(신 6:3;11:9;26:9), 정작 언약에 따른 축복에 모든 존재를 의존하고 있는 그 백성은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하여 왔었다(Harrison).
=====11:6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 하나님의 언약에는 축복이 있는 만큼, 저주 조항 역시 있다는 점을 모든 백성들이 다 알고, 그들의 의무가 무엇이며, 또 그들이 받아 누릴 특권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야 했다(Clarke).
=====11:7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 본절과 8절은 70인역(LXX)에는 누락되어 있고, 다만 '그들이 순종치 아니하였다'란 어구만 있다. 여호와를 대신하여 전달하고 있는 이 예레미야의 요구 사항은 앞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순종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다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광범위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과거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당시에도 순종하지 않았다.
=====11:8
이 언약의 모든 말로 응하게 하였느니라 - 사람의 깊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있어서는 온 마음과 정성을 수반하지 않은 채 외적인 형태만을 갖춘 그런 순종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배도를 통해 시내 산 언약 규정을 파괴하였었기 때문에 이미 실제적으로 저주 조항의 가동이 시작된 것이다. 오직 진정한 영적 회심만이 소멸되어가는 언약 규정을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나, 이런 조건이 충족될 수가 없었으므로 이제 선지자는 재앙의 도래 외에는 달리 선포할 것이 없었다(Harrison).
=====11:9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 여기서 '반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쉐르'(* )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폭동', '반항' 등으로도 쓰인다. 이 말은 원래 숨겨진 음모에 의해 야기된 폭동을 가리킬 때 쓰이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거스리는 모든 완악한 행사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쓰였다. 특히 우상숭배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명백한 거부였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 의무 조항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 행위였다.
=====11:10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 여기에는 본서에서 거듭거듭 나타나는 '슈브'(* )란 동사가 쓰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께 등을 지고 돌아섰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의 언약 요구에 순응하길 거부하였다. 지나간 역사의 사례들로부터 제시되는 경고와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전철을 되밟는 이 같은 유다 백성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빛과 진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구체적 실례라 하겠다(롬 1:28).
=====11:11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 '부르짖다'는 뜻으로 쓰인 '자아크'(* )는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맹렬하게 울부짖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절규와도 같다 하겠다(Calvin).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부르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50:15).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이미 회개의 가능성마저 없는 상태였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불러 보았자 그것은 진정한 회개에서 나온 것이 될 수 없었다.
=====11:12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 앞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응답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하셨던 바, 이제 부르짖을 데가 없어 그 거짓 신들에게 부르짖게 되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구절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의 접속사 '와우'(* )는 '그 다음에'란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구 부르짖기만 하는 무지 몽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을 반성하거나 진실로 돌아오지 않고 부르짖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Blayney).
=====11:13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 선지자는 유다인들이 바알을 위해 쌓은 제단들이 각 시도의 거리 수만큼이나 많았으며, 그들이 섬긴 신들의 수효가 그들의 성읍 수효만큼이나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아마 바알이란 이름이 합성되어 있는 지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인 바, 그들은 온갖 상상의 미신을 신격화하여 인간 존엄성을 망각하고 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레미야 사역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요시야의 개혁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Thompson).
=====11:14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백성들이 곤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듣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가 이제 그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성들을 위한 기도에 대한 이 같은 금지령은 7:16;14:11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11: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예디드)로 묘사하고 있는 이런 내용은 12:7에서도 보이며, 또한 사 5:1에도 등장한다. 본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혼인 관계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처럼 극진하신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영적 간음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 당시에도 유다인들은 성전에서 규칙적으로 희생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은 그 제물들을 용납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희생 제물은 짐승의 더러운 시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Calvin). 여호와께 대한 순종과 충성이 결여된 그런 제사는 아무리 풍성하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속이 빈 것이다. 이런 외형적 산물을 여호와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실 것이라는 신앙에서 출발한 위선적 희생 제사는 종교를 미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Thompson, Harrison).
=====11:16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그 가지는 꺾였도다 - 이스라엘을 감람나무에 비유한 예는 시 52:8;호 14:6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기롭고, 결실을 맺는 싱싱한 감람나무처럼 만들어 주었으나 그들은 약해지고 부패해지고 말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의 침입과 방화를 허용하셨다는 뜻이다(Clarke). 이 구절에도 여러 가지 본문상의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앞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분명하다. 아름답던 나무 잎사귀 위에 이제는 불이 놓여 있고 나뭇가지는 꺾여졌다. 이는 분명히 여호와의 백성들을 삼키게 될 임박한 파국의 참혹한 장면을 서술한 것이다(Thompson).
=====11:17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심으셨던 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며, 또한 그들에게 재앙을 선포하신 이도 그분이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구절에는 '재앙'과 '악'에 해당하는 원어가 모두 '라아'(* - )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악'이란 뜻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일어나는 '재앙'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이른바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준다.
=====11: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그들의 죄악을 꾸짖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언한다는 이유로 그의 생명을 해(害)할 음모를 꾸몄다. 하나님은 이런 음모를 비밀스러운 경고를 통해 그에게 알려주셨던 것이며, 그 결과 예레미야는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Clarke). 한편 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예들은 솔로몬시대부터 계속 아나돗에 살아왔었다(왕상2:26). 솔로몬 왕위 계승시에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탓으로 솔로몬에 의해 추방, 낙향당했던 것이다.
=====11:19
나는 알지 못하였나이다 - 아나돗 사람들은 마치 그 주인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나무')를 처치함으로써 그 입에서 선포되어지는 예언의 말씀('과실')을 단절시키고자 계획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레미야가 화(禍)를 면하게는 되었다 하더라도 사회적,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고향 마을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 배경상 크나큰 낙담에 빠지게 할 만한 것이었다.
=====11: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여호와여 - 무죄한 자의 누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탄원의 기도는 시편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주제이다(시17:1-9). 그리고 적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해 달라고 하는 것 역시 시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르짖음이다(시17:13,Nicholson).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정당하게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도 검토하신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엄청난 이 문제, 즉 자기 고향 전체가 그와 맞서고 있는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오직 하나님을 향해 중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 이 같은 보복에 대한 요구는 이스라엘의 압제당하던 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쓰던 다소 일반적인 표현이었다(시17:13,14;99:8;149:7;사34:8;35:4 등 참조).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들이 압제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할 때 그는 오직 하나님께 원정(寃情)을 호소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 '원정'(* , 리브)이란 말은 구약의 여러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법적인 소송 절차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법적 소송의 의미를 담고 있다(12:1;미6:1).
=====11:21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 그들이 이처럼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 해리슨(Harrison)은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 찬동하고 나선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톰슨(Thompson)은 이보다는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아마 요시야나 예레미아의 대적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모두 그 당시의 종교 생활에 어떤 위험한 요소가 있을 만큼 그렇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과거나 현재나 할 것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실패했다고 하는 예레미야의 강도 높은 비난은 아나돗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죄악을 선언한 예레미야는 그를 출생시킨 마을의 명예를 매우 손상시킨 자로 여겨졌던 것이며, 이런 사람은 마땅히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생각되었을 기능성이 높다 하겠다.
=====11:22,23
자기 종을 해하려는 이런 악한 음모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반응은 단호하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남는 자가 없을 정도로 철저한 살육이 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아나돗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은 그것으로 그치지않고 수차례나 더 계속되었다(20:1-3;38:6,13).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도와주시리라는 확약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아나돗에 대한 심판 예언은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당시에 성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본장은 심판에 관한 9가지의 일반적인 예언(2-20장) 중에서 네 번째 예언(11, 12
장)이 시작되는 곳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유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기로 맹세했던 언약의 율법(출 20장;레 26:12;
신 7:12)을 재차 새롭게 언급함으로써 유다의 범죄 행위를 '언약의 파기'라는 측면에
서 한층 더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1:1) 사람
들의 선지자 살해 음모를 언급함으로써 심각한 범죄 현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
다. 이러한 본장은 (1) 언약 조건에 따른 형벌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17절)와 (2)
예레미야에 대한 살해 음모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8-23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이전에 맺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킴으로써 현재
유다의 언약 파기의 양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본장은 12장과 내용상으로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고 있으며, 7:1-8:3과 매우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에 나타난 구조적 특
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반부(1-17절)는 산문체 말씀들의 복합체로서
여러 구절이(2, 3, 5b, 6, 9, 14절) 하나의 연속짜거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
히 언약과 연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
다. 둘째, 후반부(18-23절)는 본장의 주제와 관련지워 볼 때에 12:6까지 하나의 연속
적 서술로 볼 수 있는데 선지자의 언약 파기 선언을 듣고 반발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서술의 형식상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대화 형식을 이
루고 있으나, 그 내용의 본질상 선지자 자신의 고백록의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11:1-13:27의 내용은 11:1과 14:1의 표제의 동일성으로 인하여 하나의 단위
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의 내용을 정리해보녀 다음과 같다. 즉 (1) 예레
미야와 언약(11:1-13:27), (2) 예레미야와 그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11:18-12:6), (3)
하나님의 슬픔(12:7-17), (4) 두 가지의 상징적 비유와 죄악(13:1-27) 등이다. 여기서
(1)과 (3)은 예레미야 자신의 이해가 가미되어져 있으나, (2)와 (4)는 전적으로 하나
님의 개입(介入)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객관적인 말씀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이제까지의 예언이 단순히 유다인들의 범죄 행위만을 지적하여 심판의 타당
성을 논증한 데 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언약, 곧 율법을 상기시킴으로써 이전
보다 한층 더 심도 있게 심팜의 당위성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서술함에 있
어서 저자는 신명기에서 많이 보여지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관계되는
구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 예언의 역사적 시점은 힐기야의 율법책 발견
이후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추진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왕하 22, 23장).
이상의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에 나타난 내용상 특성을 정리해버면 다음과 같
다.
(1)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통하여 당시 유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1-17절). 저자는 처음에는 언약에 순종할 것을 강권하고 있으나 뒷부분에
는 백성이 언약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혹독하게 견책하고 있다. 여기서 이 언약이 요
시야의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가는 아니면 단순히 고대의 모세 언약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언약
이 모세 언약의 재천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성전 내에서의 종
교 의식보다 훨씬 중요한 고대의 모세 언약의 조항에 대한 순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신명기적 용어를 사용하여 권고하는 동시에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에 채결된 언약의
조문들을 지키도록 강권하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2) 예레미야의 암살 음모를 통하여 당시 유다 백성들의 언약에 대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18-23절).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자 선자자의 고향 아나돗 사람
들은 예언을 중단하도록 명령했으며, 그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죽게 될 것이라고 위
협하였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가)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질타하였고 (나) 예레미야가 주장하는 종교 개혁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누리던 향락을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선을 행하라는 선지
자의 외침은 아나돗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침해하는 것이었으므로 선
자자에 대한 암살 음모까지 꾸미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유다 사람들의 전체
적인 예언에 대한 수납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신자에게는 삶의 분명한 지표가 되는 객관적인 하나
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만약 유다 백성들처럼 말씀을 거부하고 배척하면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말씀이 주어질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여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1. 언약을 상기하라는 선지자의 권면(11:1-17)
본 단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언약은 하나
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열조들과 일찍이 맺은 것으로서 영원히 지속될 삶과 죽음의 약
정이다. 유다가 언약을 충실히 준행할 경우에는 가나안 땅을 영원히 소유하게 되지만
우상 숭배와 가은 언약 파기의 사실이 드러날 경우에는 재앙을 경험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언약의 역사성 및 축복과 저주 조항의 언급을 통하여 현재 유다
의 실상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10절), (2) 우상 숭배의 사실로 인하여 임박한 심
판을 선언하고 있는 후반부(11-1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세분하면
(가) 언약에 있어서의 저주(1-5절;출 19:5), (나) 언약의 명령들을 청종치 않음(6-8
절;3:12), (다) 우상 숭배를 자행함(9, 10절;겔 20:18), (라) 다가오는 심판(11-14절;
잠 1:28;사 1:15), (마) 심판의 원인으로서의 우상 숭배(15-17절;사 5:2) 등과 같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해 예레미야는 유다가 언약 백성이므로 언약에 명시된 기준에
의거하여 미래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본 단락은 여러 부분에서
'백성'과 관련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다의 위치를 강
조하고 있다. 즉, (1)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2, 9절) (2)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10, 17절), (3)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6, 13절), (4)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
거민(12절) 등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언약이 과거와 현재에 이르
기까지 그 연속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유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철저하게 행
해지고 있는 지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출애굽'(4, 7절), '언약'(2, 3, 6, 8, 10
절) 등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어졌던 언약의 사실을 주제로 하여 현재 유다의 상
태를 진단하고 있다(1-14절). 당시의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요시야 언약이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언약의 모체가 되는 고대 언
약, 곧 모세 언약을 기억케 함으로써 본래의 언약의 핵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핵심
이란 언약의 규정 조항들과 저주, 축복 그리고 증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약에 대한
순종은 축복을, 불순종은 저주를 초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 의무 조항들은 하
나님께서 현세대의 조상들을 애굽 혹은 쇠풀무에서 구해내시면서 명령하신 바와 같다
(신 4:20;왕상 8:51;사 48:10).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완악하여 다른 신들과의 혼합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2:28) 심지어 우상들을 숭배하는 사실에까지 도달하였던 것이
다. 결국 유다의 배도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파기 선언이면 언약적 저주의 실행 원
인이 된다.
(2) 헛된 종교 의식을 이유로 유다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15-17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12:7;사 5:1)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제사 의식을 통해 하
나님의 사가에 대해 보답하고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바로
그곳에서 '악을 행하며 기뻐하는'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매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
무런 의미도 없는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만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면서 이러한 제사 의식으로 인하여 벌일 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
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을 멈추지않고 계속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
나님께 대한 순결과 순종이 없는 이런 제사 의식들은 철저히 무용(useless)함을 강조
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외적 의식으로 만족하신다는 생각은 신앙을 미신의 차
원으로 전락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다의 왜곡된 제사와 성희는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일차적 근거로 등장할 뿐이다.
한편, 유다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는 본 단락은 많은 부분에 있
어서 신명기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내 용 | 렘 11장 | 신명기 | 기타 |
+------------------------------+------------+---------------------+------------+
| 이 언약의 말 |2, 3, 6절 | 29:1, 9 | |
+------------------------------+------------+---------------------+------------+
| 저주 | 3절 | 27:26 | |
+------------------------------+------------+---------------------+------------+
| 쇠풀무로부터 | 4절 | 4:20 | 왕상 8:51 |
+------------------------------+------------+---------------------+------------+
|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 5절 | 7:8;8:18;9:5 | |
+------------------------------+------------+---------------------+------------+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5절 | 6:3;11:9;26:9, 15; |출 13:5;수 |
| | | 27:3;31:20 | 5:6 |
+------------------------------+------------+---------------------+------------+
| 아멘 | 5절 | 27:15-26 | |
+------------------------------+------------+---------------------+------------+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한 언약| 8절 | 4:13 | |
+------------------------------+------------+---------------------+------------+
| 마음의 강퍅 | 8절 | 29:19 | 시 81:12 |
+------------------------------+------------+---------------------+------------+
| 다른 신들을 좇아 | 10절 | 6:4;8:19;11:29;| |
+------------------------------+------------+---------------------+------------+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선진들의 삶을 통하여 자
신의 위치와 현재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른 형식적인 신
앙 생활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 앞에 자신을 성
찰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몸으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
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예레미야 암살 음모(11:18-23)
본 단락에서는 아나돗 사람들의 예레미야에 대한 암살 음모를 서술하고 있는 동시
에 고향 친척들에게 원수의 감정을 느낀 예레미야가 공의의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소송
을 제기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보응을 선언하는 내
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1) 예레미야에 대한 암살 음모와 이로인한 선지
자의 요청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8-21절)와 (2) 아나돗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을 진술하고 있는 후반부(22, 23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선지자와 인간적으
로 가장 가까웠던 아나돗 사람들의 암살 계획은 당시 유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해 거부하고 배척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펴, 현 문맥에 제시되어 있는 이 사건들의 추이를 추적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본 내용을 12:1-6과의 관계를 통해 새롭게 재배열함
으로써 그 논리를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곧 12:1-6의 내용이 본 단락보
다 앞서 진술하는 것이 이야기의 전개상 논리적으로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 단락이 전 단락(1-17절)내용의 결과적인 형태이며, 예레미야의 고백적인 동기에 의
해서 쓰여졌으므로 정당한 배열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또한, 본 단락과 12:1-6의 내용은 내용상으로 애가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본 단락의 내용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두 부분을 비
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
| 형식상의 요소 | 18-23절 | 12:1-6 |
+------------------------+-----------------+---------------+
| 기원 | 18절 | 12:1a |
+------------------------+-----------------+---------------+
| 불평 | 19절 | 12:1b |
+------------------------+-----------------+---------------+
| 기도 | 20절 | 12:3, 4 |
+------------------------+-----------------+---------------+
| 하나님의 응답 | 21-23절 | 12:5, 6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의 내용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응답(21-23절)과 연결되는 선지자의 호소를 드러내고 있다(18-20절).
예레미야는 자신을 해하려고 모의된 음모와 자기 적들의 의도를 묘사함으로써 이 단락
을 시작하고 있다(시 3:1-2). 사실 이전에는 아나돗 사람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암시
가 전혀 없었다. 이에 관한 정보는 갑자기 주어진 것이며, 21절에 가서야 비로소 그
윤곽이 분명히 나타난다. 이처럼 갑자기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를 접한 예레미야는
엄청난 슬픔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무
죄한 자의 억울한 누명을 옹호해 주신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시 17:1-9). 그는 당면
한 위협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며, 옆으로 물러서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확신
하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상태를 알려주고 있
다. 예레미야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의 동기는 그가 유다 전체의 종교적, 사효거 새
오할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의식에 제시되어 있던 배경과 전망이 근본적으로 그릇되었으며 심지어는 위험다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강력한 비난은 아나돗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웠던 주장일 것이다.
그들은 민족의 죄악을 공표하고 나선 예레미야를 자기 마을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자로 취급하고 제거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나돗 사람들을 포함한 전
유다인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다인들은 하나
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배척하고 대적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
경에 이르렀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우선적으로 핍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위 사람일 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방심하지 말고 자기 주위로부터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12:17까지는 언약의 요구조건에 충실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담고 있는 단락으로서, 이 단락의 연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첫 번째 견해는 느부갓네살이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무찌르기 얼마 전인 여호야김 시대에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고, 두 번째 견해는 B.C.622년 요시야 당시 힐기야에 의해 율법책이 발견된 후의 것으로서 종교 개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왕하 22,23장). 일반적으로는 후자의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는 모세의 율법과 전통으로 돌아가라는 촉구와 함께 이교도의 제사 형식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하 34장에 따르면, 율법책의 발견에 앞서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지역 신당에서는 가나안 종교 의식이 중단되었다.
=====11:2
너희는 이 언약의 말을 듣고 - 여기서 '언약의 말'이란 것은 시내 산에서 체결되었던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서(신 5:2) 하나님은 그들의 일치된 예배와 순종의 대가로서, 민족 초기 단계에 있었던 그들에게 물질적, 영적 필요품들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소유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할 근거는 이러한 조건들을 수납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데 있었다(신 29:9).
=====11:3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 언약의 규정 조항들은 무시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내려지도록 촉구된다. 고대 근동 지역의 국제 조약문에도 계약의 이행과 불이행에 따른 축복과 저주 조항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Harrison).한편 본절은 모세가 선포했던 것을 다시 부각시킨 내용이다(Calvin).
=====11:4
너희는 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구약의 거의 대부분의 용례에서 순종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전반절의 '쇠풀무'란 말은 그들의 비참했던 노예 생활을 상징하는 말로 그 문자적 의미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나 화덕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노예 생활하던 그들을 주권적 권능으로 이끌어 내셨다. 따라서 그들의 불신앙은 참으로 심각한 것이며, 배은 망덕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방법이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긴밀한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다.
=====11:5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 - 예레미야는 언약 관계의 핵심이 순종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다음, '아멘'이라는 익숙한 말을 사용하여 그 당시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에 대한 동의의 핵심을 다시 요약해서 지적한다. 물론 이 '아멘'이란 말은, 비록 언급이 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3절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신 27:15-26). 하나님이 그의 약속을 충실히 지킨 반면에(신 6:3;11:9;26:9), 정작 언약에 따른 축복에 모든 존재를 의존하고 있는 그 백성은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하여 왔었다(Harrison).
=====11:6
이 언약의 말을 듣고 준행하라 - 하나님의 언약에는 축복이 있는 만큼, 저주 조항 역시 있다는 점을 모든 백성들이 다 알고, 그들의 의무가 무엇이며, 또 그들이 받아 누릴 특권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야 했다(Clarke).
=====11:7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 본절과 8절은 70인역(LXX)에는 누락되어 있고, 다만 '그들이 순종치 아니하였다'란 어구만 있다. 여호와를 대신하여 전달하고 있는 이 예레미야의 요구 사항은 앞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순종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그 다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광범위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이 백성들은 과거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당시에도 순종하지 않았다.
=====11:8
이 언약의 모든 말로 응하게 하였느니라 - 사람의 깊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있어서는 온 마음과 정성을 수반하지 않은 채 외적인 형태만을 갖춘 그런 순종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배도를 통해 시내 산 언약 규정을 파괴하였었기 때문에 이미 실제적으로 저주 조항의 가동이 시작된 것이다. 오직 진정한 영적 회심만이 소멸되어가는 언약 규정을 소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으나, 이런 조건이 충족될 수가 없었으므로 이제 선지자는 재앙의 도래 외에는 달리 선포할 것이 없었다(Harrison).
=====11:9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 여기서 '반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케쉐르'(* )는 다양하게 번역되어 '폭동', '반항' 등으로도 쓰인다. 이 말은 원래 숨겨진 음모에 의해 야기된 폭동을 가리킬 때 쓰이는데, 여기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거스리는 모든 완악한 행사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쓰였다. 특히 우상숭배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 명백한 거부였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언약 의무 조항에 대한 극단적인 파괴 행위였다.
=====11:10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 여기에는 본서에서 거듭거듭 나타나는 '슈브'(* )란 동사가 쓰이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여호와께 등을 지고 돌아섰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여호와의 언약 요구에 순응하길 거부하였다. 지나간 역사의 사례들로부터 제시되는 경고와 교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전철을 되밟는 이 같은 유다 백성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빛과 진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타락한 인간 본성의 구체적 실례라 하겠다(롬 1:28).
=====11:11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 '부르짖다'는 뜻으로 쓰인 '자아크'(* )는 단순히 외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맹렬하게 울부짖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절규와도 같다 하겠다(Calvin).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을 부르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50:15).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은 이미 회개의 가능성마저 없는 상태였고,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불러 보았자 그것은 진정한 회개에서 나온 것이 될 수 없었다.
=====11:12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 앞에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응답하지 않으리라고 단언하셨던 바, 이제 부르짖을 데가 없어 그 거짓 신들에게 부르짖게 되었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구절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원문의 접속사 '와우'(* )는 '그 다음에'란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구 부르짖기만 하는 무지 몽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을 반성하거나 진실로 돌아오지 않고 부르짖기만 하면 된다는 신앙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Blayney).
=====11:13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효와 같도다 - 선지자는 유다인들이 바알을 위해 쌓은 제단들이 각 시도의 거리 수만큼이나 많았으며, 그들이 섬긴 신들의 수효가 그들의 성읍 수효만큼이나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아마 바알이란 이름이 합성되어 있는 지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인 바, 그들은 온갖 상상의 미신을 신격화하여 인간 존엄성을 망각하고 또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위치를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레미야 사역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요시야의 개혁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Thompson).
=====11:14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백성들이 곤경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듣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선지자가 이제 그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백성들을 위한 기도에 대한 이 같은 금지령은 7:16;14:11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제시되었다.
=====11:15
나의 사랑하는 자가 많이 행음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 , 예디드)로 묘사하고 있는 이런 내용은 12:7에서도 보이며, 또한 사 5:1에도 등장한다. 본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혼인 관계에다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처럼 극진하신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영적 간음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한 제육이 그에게서 떠났거늘 - 당시에도 유다인들은 성전에서 규칙적으로 희생 제물을 바쳤지만, 하나님은 그 제물들을 용납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는 희생 제물은 짐승의 더러운 시체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Calvin). 여호와께 대한 순종과 충성이 결여된 그런 제사는 아무리 풍성하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속이 빈 것이다. 이런 외형적 산물을 여호와께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실 것이라는 신앙에서 출발한 위선적 희생 제사는 종교를 미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Thompson, Harrison).
=====11:16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그 가지는 꺾였도다 - 이스라엘을 감람나무에 비유한 예는 시 52:8;호 14:6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기롭고, 결실을 맺는 싱싱한 감람나무처럼 만들어 주었으나 그들은 약해지고 부패해지고 말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갈대아인들의 침입과 방화를 허용하셨다는 뜻이다(Clarke). 이 구절에도 여러 가지 본문상의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앞에서도 지적되었다시피 분명하다. 아름답던 나무 잎사귀 위에 이제는 불이 놓여 있고 나뭇가지는 꺾여졌다. 이는 분명히 여호와의 백성들을 삼키게 될 임박한 파국의 참혹한 장면을 서술한 것이다(Thompson).
=====11:17
유다 집의 악을 인하여 재앙을 선언하였느니라 -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심으셨던 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며, 또한 그들에게 재앙을 선포하신 이도 그분이시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구절에는 '재앙'과 '악'에 해당하는 원어가 모두 '라아'(* - )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악'이란 뜻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일어나는 '재앙'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는, 이른바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준다.
=====11: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그들의 죄악을 꾸짖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언한다는 이유로 그의 생명을 해(害)할 음모를 꾸몄다. 하나님은 이런 음모를 비밀스러운 경고를 통해 그에게 알려주셨던 것이며, 그 결과 예레미야는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Clarke). 한편 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예들은 솔로몬시대부터 계속 아나돗에 살아왔었다(왕상2:26). 솔로몬 왕위 계승시에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지지했던 탓으로 솔로몬에 의해 추방, 낙향당했던 것이다.
=====11:19
나는 알지 못하였나이다 - 아나돗 사람들은 마치 그 주인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들은 예레미야('나무')를 처치함으로써 그 입에서 선포되어지는 예언의 말씀('과실')을 단절시키고자 계획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레미야가 화(禍)를 면하게는 되었다 하더라도 사회적,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고향 마을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 배경상 크나큰 낙담에 빠지게 할 만한 것이었다.
=====11: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여호와여 - 무죄한 자의 누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탄원의 기도는 시편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주제이다(시17:1-9). 그리고 적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가해 달라고 하는 것 역시 시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부르짖음이다(시17:13,Nicholson).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정당하게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도 검토하신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엄청난 이 문제, 즉 자기 고향 전체가 그와 맞서고 있는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오직 하나님을 향해 중재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 이 같은 보복에 대한 요구는 이스라엘의 압제당하던 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할 때 쓰던 다소 일반적인 표현이었다(시17:13,14;99:8;149:7;사34:8;35:4 등 참조).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들이 압제로부터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할 때 그는 오직 하나님께 원정(寃情)을 호소할 뿐이었던 것이다. 이 '원정'(* , 리브)이란 말은 구약의 여러 용례에서 볼 수 있듯이 법적인 소송 절차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도 법적 소송의 의미를 담고 있다(12:1;미6:1).
=====11:21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 그들이 이처럼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한 이유에 대해서 해리슨(Harrison)은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 찬동하고 나선 때문이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톰슨(Thompson)은 이보다는 예레미야가 유다의 모든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아마 요시야나 예레미아의 대적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모두 그 당시의 종교 생활에 어떤 위험한 요소가 있을 만큼 그렇게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과거나 현재나 할 것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실패했다고 하는 예레미야의 강도 높은 비난은 아나돗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민족의 죄악을 선언한 예레미야는 그를 출생시킨 마을의 명예를 매우 손상시킨 자로 여겨졌던 것이며, 이런 사람은 마땅히 사형에 처해져야 한다고 생각되었을 기능성이 높다 하겠다.
=====11:22,23
자기 종을 해하려는 이런 악한 음모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반응은 단호하게 주어진다. 하나님은 남는 자가 없을 정도로 철저한 살육이 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아나돗 사람들로부터의 위협은 그것으로 그치지않고 수차례나 더 계속되었다(20:1-3;38:6,13).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도와주시리라는 확약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아나돗에 대한 심판 예언은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당시에 성취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본장은 심판에 관한 9가지의 일반적인 예언(2-20장) 중에서 네 번째 예언(11, 12
장)이 시작되는 곳으로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유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
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기로 맹세했던 언약의 율법(출 20장;레 26:12;
신 7:12)을 재차 새롭게 언급함으로써 유다의 범죄 행위를 '언약의 파기'라는 측면에
서 한층 더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1:1) 사람
들의 선지자 살해 음모를 언급함으로써 심각한 범죄 현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
다. 이러한 본장은 (1) 언약 조건에 따른 형벌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17절)와 (2)
예레미야에 대한 살해 음모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8-23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이전에 맺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킴으로써 현재
유다의 언약 파기의 양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본장은 12장과 내용상으로 하나의 단위를 형성하고 있으며, 7:1-8:3과 매우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에 나타난 구조적 특
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반부(1-17절)는 산문체 말씀들의 복합체로서
여러 구절이(2, 3, 5b, 6, 9, 14절) 하나의 연속짜거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
히 언약과 연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
다. 둘째, 후반부(18-23절)는 본장의 주제와 관련지워 볼 때에 12:6까지 하나의 연속
적 서술로 볼 수 있는데 선지자의 언약 파기 선언을 듣고 반발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서술의 형식상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대화 형식을 이
루고 있으나, 그 내용의 본질상 선지자 자신의 고백록의 양상을 띠고 있다.
또한, 11:1-13:27의 내용은 11:1과 14:1의 표제의 동일성으로 인하여 하나의 단위
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부분의 내용을 정리해보녀 다음과 같다. 즉 (1) 예레
미야와 언약(11:1-13:27), (2) 예레미야와 그의 고향 아나돗 사람들(11:18-12:6), (3)
하나님의 슬픔(12:7-17), (4) 두 가지의 상징적 비유와 죄악(13:1-27) 등이다. 여기서
(1)과 (3)은 예레미야 자신의 이해가 가미되어져 있으나, (2)와 (4)는 전적으로 하나
님의 개입(介入)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객관적인 말씀의 형태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이제까지의 예언이 단순히 유다인들의 범죄 행위만을 지적하여 심판의 타당
성을 논증한 데 비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언약, 곧 율법을 상기시킴으로써 이전
보다 한층 더 심도 있게 심팜의 당위성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서술함에 있
어서 저자는 신명기에서 많이 보여지는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관계되는
구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본 예언의 역사적 시점은 힐기야의 율법책 발견
이후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추진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왕하 22, 23장).
이상의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에 나타난 내용상 특성을 정리해버면 다음과 같
다.
(1) 요시야의 종교 개혁과 관련된 역사적 상황을 통하여 당시 유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1-17절). 저자는 처음에는 언약에 순종할 것을 강권하고 있으나 뒷부분에
는 백성이 언약을 위반한 사실에 대해 혹독하게 견책하고 있다. 여기서 이 언약이 요
시야의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가리키는가는 아니면 단순히 고대의 모세 언약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구별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언약
이 모세 언약의 재천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성전 내에서의 종
교 의식보다 훨씬 중요한 고대의 모세 언약의 조항에 대한 순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신명기적 용어를 사용하여 권고하는 동시에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에 채결된 언약의
조문들을 지키도록 강권하는 것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동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2) 예레미야의 암살 음모를 통하여 당시 유다 백성들의 언약에 대한 자세를 보여
주고 있다(18-23절). 예레미야가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자 선자자의 고향 아나돗 사람
들은 예언을 중단하도록 명령했으며, 그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죽게 될 것이라고 위
협하였다.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가) 예레미야가 계속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질타하였고 (나) 예레미야가 주장하는 종교 개혁은 이제까지 자신들이 누리던 향락을
박탈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함으로써 선을 행하라는 선지
자의 외침은 아나돗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안정된 생활을 침해하는 것이었으므로 선
자자에 대한 암살 음모까지 꾸미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의 유다 사람들의 전체
적인 예언에 대한 수납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신자에게는 삶의 분명한 지표가 되는 객관적인 하나
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만약 유다 백성들처럼 말씀을 거부하고 배척하면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말씀이 주어질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여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1. 언약을 상기하라는 선지자의 권면(11:1-17)
본 단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언약은 하나
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열조들과 일찍이 맺은 것으로서 영원히 지속될 삶과 죽음의 약
정이다. 유다가 언약을 충실히 준행할 경우에는 가나안 땅을 영원히 소유하게 되지만
우상 숭배와 가은 언약 파기의 사실이 드러날 경우에는 재앙을 경험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언약의 역사성 및 축복과 저주 조항의 언급을 통하여 현재 유다
의 실상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10절), (2) 우상 숭배의 사실로 인하여 임박한 심
판을 선언하고 있는 후반부(11-1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세분하면
(가) 언약에 있어서의 저주(1-5절;출 19:5), (나) 언약의 명령들을 청종치 않음(6-8
절;3:12), (다) 우상 숭배를 자행함(9, 10절;겔 20:18), (라) 다가오는 심판(11-14절;
잠 1:28;사 1:15), (마) 심판의 원인으로서의 우상 숭배(15-17절;사 5:2) 등과 같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해 예레미야는 유다가 언약 백성이므로 언약에 명시된 기준에
의거하여 미래가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본 단락은 여러 부분에서
'백성'과 관련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다의 위치를 강
조하고 있다. 즉, (1)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2, 9절) (2)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10, 17절), (3)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 거리(6, 13절), (4)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
거민(12절) 등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언약이 과거와 현재에 이르
기까지 그 연속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유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철저하게 행
해지고 있는 지를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출애굽'(4, 7절), '언약'(2, 3, 6, 8, 10
절) 등의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맺어졌던 언약의 사실을 주제로 하여 현재 유다의 상
태를 진단하고 있다(1-14절). 당시의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요시야 언약이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언약의 모체가 되는 고대 언
약, 곧 모세 언약을 기억케 함으로써 본래의 언약의 핵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핵심
이란 언약의 규정 조항들과 저주, 축복 그리고 증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약에 대한
순종은 축복을, 불순종은 저주를 초래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 의무 조항들은 하
나님께서 현세대의 조상들을 애굽 혹은 쇠풀무에서 구해내시면서 명령하신 바와 같다
(신 4:20;왕상 8:51;사 48:10).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완악하여 다른 신들과의 혼합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2:28) 심지어 우상들을 숭배하는 사실에까지 도달하였던 것이
다. 결국 유다의 배도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파기 선언이면 언약적 저주의 실행 원
인이 된다.
(2) 헛된 종교 의식을 이유로 유다의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15-17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12:7;사 5:1)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제사 의식을 통해 하
나님의 사가에 대해 보답하고 헌신을 다짐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바로
그곳에서 '악을 행하며 기뻐하는'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매일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
무런 의미도 없는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만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면서 이러한 제사 의식으로 인하여 벌일 피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
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사악한 행동을 멈추지않고 계속 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
나님께 대한 순결과 순종이 없는 이런 제사 의식들은 철저히 무용(useless)함을 강조
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외적 의식으로 만족하신다는 생각은 신앙을 미신의 차
원으로 전락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다의 왜곡된 제사와 성희는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일차적 근거로 등장할 뿐이다.
한편, 유다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는 본 단락은 많은 부분에 있
어서 신명기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내 용 | 렘 11장 | 신명기 | 기타 |
+------------------------------+------------+---------------------+------------+
| 이 언약의 말 |2, 3, 6절 | 29:1, 9 | |
+------------------------------+------------+---------------------+------------+
| 저주 | 3절 | 27:26 | |
+------------------------------+------------+---------------------+------------+
| 쇠풀무로부터 | 4절 | 4:20 | 왕상 8:51 |
+------------------------------+------------+---------------------+------------+
|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 5절 | 7:8;8:18;9:5 | |
+------------------------------+------------+---------------------+------------+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5절 | 6:3;11:9;26:9, 15; |출 13:5;수 |
| | | 27:3;31:20 | 5:6 |
+------------------------------+------------+---------------------+------------+
| 아멘 | 5절 | 27:15-26 | |
+------------------------------+------------+---------------------+------------+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한 언약| 8절 | 4:13 | |
+------------------------------+------------+---------------------+------------+
| 마음의 강퍅 | 8절 | 29:19 | 시 81:12 |
+------------------------------+------------+---------------------+------------+
| 다른 신들을 좇아 | 10절 | 6:4;8:19;11:29;| |
+------------------------------+------------+---------------------+------------+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선진들의 삶을 통하여 자
신의 위치와 현재의 삶을 돌아보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다른 형식적인 신
앙 생활을 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말씀 앞에 자신을 성
찰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몸으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
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2. 예레미야 암살 음모(11:18-23)
본 단락에서는 아나돗 사람들의 예레미야에 대한 암살 음모를 서술하고 있는 동시
에 고향 친척들에게 원수의 감정을 느낀 예레미야가 공의의 심판주이신 하나님께 소송
을 제기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보응을 선언하는 내
용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1) 예레미야에 대한 암살 음모와 이로인한 선지
자의 요청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부(18-21절)와 (2) 아나돗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을 진술하고 있는 후반부(22, 23절)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선지자와 인간적으
로 가장 가까웠던 아나돗 사람들의 암살 계획은 당시 유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
에 대해 거부하고 배척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펴, 현 문맥에 제시되어 있는 이 사건들의 추이를 추적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주석가들은 본 내용을 12:1-6과의 관계를 통해 새롭게 재배열함
으로써 그 논리를 명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곧 12:1-6의 내용이 본 단락보
다 앞서 진술하는 것이 이야기의 전개상 논리적으로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 단락이 전 단락(1-17절)내용의 결과적인 형태이며, 예레미야의 고백적인 동기에 의
해서 쓰여졌으므로 정당한 배열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또한, 본 단락과 12:1-6의 내용은 내용상으로 애가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본 단락의 내용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두 부분을 비
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
| 형식상의 요소 | 18-23절 | 12:1-6 |
+------------------------+-----------------+---------------+
| 기원 | 18절 | 12:1a |
+------------------------+-----------------+---------------+
| 불평 | 19절 | 12:1b |
+------------------------+-----------------+---------------+
| 기도 | 20절 | 12:3, 4 |
+------------------------+-----------------+---------------+
| 하나님의 응답 | 21-23절 | 12:5, 6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의 내용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응답(21-23절)과 연결되는 선지자의 호소를 드러내고 있다(18-20절).
예레미야는 자신을 해하려고 모의된 음모와 자기 적들의 의도를 묘사함으로써 이 단락
을 시작하고 있다(시 3:1-2). 사실 이전에는 아나돗 사람들의 악한 행위에 대한 암시
가 전혀 없었다. 이에 관한 정보는 갑자기 주어진 것이며, 21절에 가서야 비로소 그
윤곽이 분명히 나타난다. 이처럼 갑자기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를 접한 예레미야는
엄청난 슬픔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무
죄한 자의 억울한 누명을 옹호해 주신다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시 17:1-9). 그는 당면
한 위협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며, 옆으로 물러서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을 확신
하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2) 아나돗 사람들의 음모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상태를 알려주고 있
다. 예레미야 고향 사람들의 암살 음모의 동기는 그가 유다 전체의 종교적, 사효거 새
오할에 대해 강도 높은 비난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의식에 제시되어 있던 배경과 전망이 근본적으로 그릇되었으며 심지어는 위험다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도 실패하고
말았다는 강력한 비난은 아나돗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웠던 주장일 것이다.
그들은 민족의 죄악을 공표하고 나선 예레미야를 자기 마을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는
자로 취급하고 제거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나돗 사람들을 포함한 전
유다인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세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다인들은 하나
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배척하고 대적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지
경에 이르렀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우선적으로 핍박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주위 사람일 때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방심하지 말고 자기 주위로부터 올바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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