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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유다 왕들의 뼈와...묘실에서 끌어내어 -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유다에 침략해들어온 자들은 패배자들을 더욱 모독하기 위해서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선지자들과일반 시민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 뼈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로 간주되었는데,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 또한 이와같은 선상에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본장 1-3절은 앞장 내용의연속인 바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저질러질 만행에 대한 예언이며(Calvin, Venema).바벨론은 유다 백성을 능멸하기 위한 목적 외에 무덤속에 묻힌 귀중한 패물들을 약탈할 목적으로 무덤을 파헤쳤을 수도 있다(Lowth).

=====8:2
그들의 사랑하며...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분토같을 것이며 - 백성들이 사랑하고 섬기며 경배하던 이러한 천체의 우상들은 그들의 흩어진 뼈들을 무관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내려다볼 것이다. 그리고 살아 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뼈들을 주워모아서 장사지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뼈들은 지면의 분토처럼 내버려지는 것이다.

=====8:3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 본절이 지적하고 있는 요지는도처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죽은 자의 시체가 무덤에서 끌어내어 팽개쳐지는 등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앞으로 하나님께서 살아 남은 자들에게 내리실 징벌에비하면 이는 경미하다는 내용이다. 즉, 살아 남은 자들의 생은 죽은것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다(왕하 25:5-7 참조). 하나님의 수많은 권고와 견책을 무시한 결과는 참으로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심판이란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무시하며, 온갖 악행을 통해 육신의 배만 불리던 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임할 영원한 심판은 아마 이보다 더욱더 참혹할 것이다.

=====8:4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 예러미야 선지자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한계를 넘어선 완악성을 지적한다. 즉, 누구든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려고 하지만 유다 백성은 그릇된 길에 빠져들어서는 하나님께로 되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엄숙하고도 가혹하게 예언했으며 그들을 회개로 인도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구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것이다.

=====8:5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 실수와 과오는 때로 한 인간의심경을 변화시켜 더 나은 상태로 인도할 수 있다. 또한 실패를 통하여 교훈을 배우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완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이라 자신의 오류에서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니느웨 백성처럼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8:6
그들이...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과 경고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정밀하게 살폈다. 그러나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는 말을 한마디라도 내뱉는 자는 없었다. 이런 광경은 우리가 5:1-3에서도 이미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전장(戰場)에서 날뛰는 말같이 제멋대로 행하였는데, 여기서 '행하다'는 본서에서 아주 빈번하게 쓰이는 '슈브'(* )로서 '돌아가다'가 기본 뜻이다. 그들은여호와께로 돌아서지 않고 그들의 익숙한 행위로 돌아섰다(Thompson).

=====8: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 예레미야는 여기서 조류의 생태를 예화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연계의 새들로 하여금 그 시기와 때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도록 지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연계의 법칙에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내 백성은...알지 못하도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언약 백성으로 택함받은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법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마치 그것을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어 알지 못한 자들처럼 행동했다. 여기서 '알다'(* , 야다)란 동사는 단순한 지적 인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포함한다. 여기에는 감정적, 의지적 차원을 포함하는 전인격적(全人格的) 체험의 개념을 담고 있다(Thompson).

=====8:8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 그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주장하며 또한 여호와의 율법이 그들과 함께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종교 의식을 치루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에 대한 반론으로서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들이 내세우는 '여호와의 율법'이란 것은 분명히 '기록된 율법' 즉 성전에서 발견된 바 있는언약의 책 또는 신명기서와 같은 책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은 행위와실천보다는 기록된 책 그자체에 무슨 마력과 같은 힘이 있다는 미신에 젖어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율법책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경우와 똑같이 오히려 선지자의 메시지를 방해하는 데 사용되었던 것이다. 본절에는 서기관이란 말이 나오는데, 구약 성경에서 서기관이 어떤 직책을 맡은 특정 계층으로 언급되는 곳은 이 부분이 처음이다. 대상 2:55에 따르면, 서기관들의 조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대하 34:13에 따르면, 그들의 활동은 요시야 통치 때에 대단히 두드러졌던 것 같다. 아마 그 이전에도 그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율법과 역대 왕들의 사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 및 가르치는 자로서의소임도 맡았던 것 같다.

=====8:9
경황 중에 잡히리라 - 이에 해당하는 원어 '하투 와일라케두'(* )는 번역하기가 다소 난해하다.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하투'를 '크게 놀라다'는 뜻으로, '와일라케두'를 패전의 결과 포로로서 이송될 사실에 대한 경고의미로 각각 이해했다. 반면에 페쉬타역(Peshitta)과 탈굼역(Targum)은 전자를 '흩어지다'는 뜻으로 옮겼다. 어쨌거나 본절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혼비백산하게 될 상황을 가리킴은 분명하다(McKane).

=====8:10
그들의 아내를 마타인에게 주겠고...다 거짓을 행함이라 - 여기서는 전쟁 이후 저질러지는 범행이 예화로 사용되었다. 침략군은 유다 여자들을 빼앗아 가되 심지어 유부녀까지 그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소중히 여겨졌던 약속의 땅 가나안마저유린 당하고 적에게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런 참변에 대한 이유는 작은 자로부터 큰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탐욕으로 눈이 멀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그들의 악행을 발벗고나서서 말려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오히려 거짓과 사악한 행위에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8:11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 70인역(LXX)에는 10-12절이 누락되어 있는데, 이부분은 6:12-15과 유사한 내용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 전체가 중병을 앓으며 파국직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사할 것이라는 헛된 확신만을 심어 주었다.

=====8: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 그들은 이런 거짓 위안으로 백성들을 속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얼굴색도 바꾸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뿐이다. 설령 심판을 조금 연기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유익될 것이 조금도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죄악은 더 커지고 그 형벌이 더욱 혹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8:13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 포도나무 비유는 본서에서 2:21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거기서는 극상품의 선택된 포도가 야생포도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이어서 6:9에 포도나무 비유가 등장하였는데, 거기서는 예레미야가 포도를 수확하는 자로묘사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에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할 때 따르는 번영, 축복(신29:9; 시37:9)과는 대조적으로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귀결이다.

=====8:14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자구책을 강구하며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만, 그 모든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성읍은단지 파멸의 순간을 조금 지체시키는 역할을 해줄 뿐, 파멸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 '독한 물'에 해당하는 원어 '메 로쉬'( )는 '쓴 물'로도 번역된다. 즉 '로쉬'( )는 신32:32에서 '쓰다'는 의미에서 '쓸개'로 번역되었는데,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쓴 것'과 '독'은 유다인들에게있어 밀접하게 연관된 의미를 시사했던 것 같다(민5:18 참조, Delitzsch).

=====8:15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 일말의 희망도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명시하는 자들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지경에 다다르면 그때는 뉘우쳐도 이미 늦어버리게 되는 것이다(롬 2:4; 벧후 2:10).

=====8:16
바벨론의 마병이 노도처럼 내달아오는 것을 직접 보게 해주는 것 같은 생생한 예언이다. 이런 맥락에서 벌게이트역(Vulgate)과 페쉬타역(Peshitta)은 '들리고'를 '이미들려온다'라고 옮겼다(McKane).

=====8:17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 13절에 이어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한다.13절과본절 사이에는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본절에는 심판이닥쳐오는 것이 독사가 달려드는 것으로 비유되었는데, 이 독사에 대한 예화는 민21:6-9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그들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한 죄악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불뱀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불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지금 이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다(Thompson).

=====8:18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예루살렘파멸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과 한탄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레미아의 이고통스러운 한탄 속에는 여태까지는 그나마 버틸 만한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슬픔에짓눌려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며, 그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과 충성심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과 맞물려 있었으며, 그 결과 그는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라고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8:19
여호와께서...그 왕이...격노케 하였는고 - 여호와의 왕권 사상은 구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본절에서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호칭하는 것은 비교적 잘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질문 사항은 구약의 다른 슬픔의 시에서도 흔히보이는 형태이다(시44:24-26; 73:25-28 등). 그러나 예레미야가 선호하였던 애도의 표현은 비애와 놀라움을 뒤섞어서 나타내는 형식이었다(2:14; 8:4,5; 14:19; 22:28). 한편, 문맥상 본절에 등장하는 세개의 의문절 중 첫 번째 두 개의 질문은 백성들이 제기하는 물음이고 세 번째 것은 여호와의 질문으로서, 앞의 두 질문은 '그렇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라는 긍정의 대답을 전제한 물음이다(Thompson).

=====8: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 백성들의 불안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추수'(* , 카치르)는 밀수확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추수 때가 지나갔고 또 여름 과실을 수확하는 시기가 지나갔다. 추수는 흔히 4월에서6월까지 계속되었다. 밀 추수가 흉작으로 끝날 경우는 포도나 무화가 또는 감람 열매등의 수확이라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매조차 수확하지 못하게 되면,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바로 이런 상황을 예화로사용하였다. 유다 백성들은 반역된 길에서 돌아서서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들을차례차례 다 놓치고 말았으며 그래서 다가올 심판에서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상실하고만 것이다.

=====8:21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에 대한 책음이 그들의 극악한죄악에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여기서는 침략군의 발굽에 짓밟히는 동포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8:22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으나 치유받지 못한 환자에 비유된다.그런데 정작 치유받지 못한 이유는 명의나 명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고 또 치유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치유 계획과 은혜에 순종하고 고질적인 병폐인 죄악들에 대해 회개하였다면 그들에게는건강과 축복이 주어졌을 것이나, 그들은 정반대의 태도를 고집하였던 것이다(Clarke).



본장은 앞장의 마지막 부분(7:32-34)에 이어서 범죄한 유다가 받을 재난에 대해 언
급하고 나서 재차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유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토로하고
있다. 동시에 영적 지도자들의 범죄를 지적하며 이후의 심판으로 유다가 겪게 될 고통
과 후회를 예언하고 마지막으로 포로가 된 백성들의 터무니없는 자세를 설명하고 있
다. 이러한 본장은 (1) 철저한 유다의 재난과 결코 정제도리 수 없는 백성들의 완고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12절)와 (2) 임박한 심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중반부(13-17절), 그리고 (3) 예레미야의 동족에 대한 사랑을 하나의 애가(愛歌)로 표
현하고 있는 후반부(18-22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
자는 유다의 철저한 회개의 불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본장은 여러 개의 내용을 지닌 시(詩)들의 복합체로 가깝게는 유다의 그릇된
성전 예배를 지적하고 있는 내용의 결론(7:1-8:3)을 포함하고 있는 동시에 멀게는
6:27-30의 유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선언을 되풀이하여 통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
장까지 계속되고 있는 (8:4-10:25) 그 백성의 완고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죄악 상태와
미래에 닥칠 비극적인 파멸을 동지적으로 묘사하으로써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입장보다
는 비통한 애곡의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8:4-10:25은 다양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으나 주제상으로는 '유다의 좌악
과 그 결과'를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사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성경 구절 | 내 용 |
+--------------+----------------------------------------------------+
| 8:4-12 | 회개하지 않는 백성과 지혜롭지 못한 현인들 |
+--------------+----------------------------------------------------+
| 8:13-19:1 | 심판과 파멸 |
+--------------+----------------------------------------------------+
| 9:2-9 | 하나님의 슬픔 |
+--------------+----------------------------------------------------+
| 9:10-16 | 심판의 합리성 |
+--------------+----------------------------------------------------+
| 9:17-22 | 슬픔으로 인한 애가 |
+--------------+----------------------------------------------------+
| 9:23-26 | 만인에게 선포된 심판 |
+--------------+----------------------------------------------------+
| 10:1-16 | 우상들과 참하나님 |
+--------------+----------------------------------------------------+
| 10:17-25 | 하나님의 징계 |
+--------------+----------------------------------------------------+

또한, 본장의 역사적 시점은 정확히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본장의 핵심적
인 내용은 6:12-15에서의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의 분위기를 반영(10-12절)하고 있
다. 요시야의 종교 개혁은 진정한 회개를 가져오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소
유하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보호 아래 놓여 있다고 믿는 거짓된 환상을 산출했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지적이 본장에 나타난 예언의 근본적인 동기로 등장하고 있
다. 따라서 우리는 본장이 요시야 직후 여호야김 통치 초기(B.C. 608경)의 상황을 반
영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본장은 예메미야가 유다의 멸망이 현실적으로 임박한 상황에서 주로 사용한
애가적 내용을 표본적으로 담고 있다. 이 내용의 구조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A. 유다의 철저한 파멸에 대한 비유적 묘사(1-3절) |
| B. 회개치 않는 유다를 슬퍼하는 애가(4012절) |
| A'. 유다의 파렴치함과 임박한 심판의 강조(13-17절) |
| B'. 유다를 향한 안타까움을 서술하는 애가(18-22절)|
+-----------------------------------------------------+

저자는 이와 같이 교차식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유다의 배도(背道)를 책망하면서
도 여전히 언약 백성으로서의 유다의 역할을 아쉬워하는 심정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다 멸망의 상황을 3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어 유다를 멸망시킬 존재를 '단에서부터 들리고'(16a절)라는 표현을 통하여 암
시하고 있다. 결국 적군의 도착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도시이다. 이 사실은 이
미 언급한 바대로 '북방에서 오는 적'곧 바벧론이 침략자임을 보여준다. (나) 유다가
적에게 패하여 포로로 잡혀갈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3절). 그런데 포로라는 상황은 유
다의 예루살렘 성전의 포기를 의미한다. 유다가 이러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전장(7장)에서 살핀 바대로 잘못된 성전 신학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언
약 백성에게 주신 축복의 땅에서 우상 숭배를 자행하였기 때문이다(1, 2절). 결국 이
두가지가 맞물려 유다는 약속의 땅을 계속적으로 소유할 자격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다) 유다 백성의 때눠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그 심판의 참담함을 보여준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여러 곳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며(3b절), 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견고한 성읍 안에 들어가서 멸망하자(14절)고 촉
구하고 있다. 유다는 자기 방어의 불가능을 인식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패배를 자인하
게 된다.
(2) 유다의 현실에 대한 예레미야의 애가(哀歌)가 폭넓게 서술되어 있다(4012,
18-22절). 예레미야는 결코 자기 민족의 고난을 냉소적으로 지켜 보거나 단지 탄식의
맥락에서만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면한 고난의 현실을 통해 언약의 본
질을 상기하고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는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이제 그 중요한 신학
적 진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0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에 따른 반응으로서 율법에 순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거절하였다고 말한
다(7절). 이러한 진단은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단순히 지적인 맥락에서 이해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언약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것으로서 하
나님께 대한 전적 의지를 수반해야 한다. 모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
약 관계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을 한결같이 지적하였다. 유다 백성은 성전을
'여호와의 전'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7:4). 그러나 그들은 단지 지적인 차원에
서만 언약을 수납했으므로 결코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나) 유다 백성들은 언약 관계 속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무시하였다
(8, 9절). 곧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맡고 잇는 직분자들은 스스로 지혜롭다 여겨 자신
들만이 이미 주어진 율법의 합법적인 해석가라고 착각하였다. 그리하여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선포를 거짓으로 간주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인 규범내에만 존재한
다고보는 패쇄적 견해는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속으로 가두
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율법내에만
존재한다고 보는 패쇄적 견해는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계시의 속성을
완전히 왜곡시키게 된다. 결국 예레미야는 언약 백성이 참으로 의지해야 할 살악계신
하나님과 그의 역동적인 말씀을 버리고 한낱 메마른 지식 체계의 인정과 문자적 규범
에 함몰되어 있는 점에 대해 슬픔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장을 통해 우리는 (1)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그 말씀
을 오해할 때 야기되는 영적 범죄의 심각성과 (2) 완고한 백성들에게 임할 심판의 참
혹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조명을 통해 바른 계시 이해에 도달하
며, 그 진리를 토대로 바른 삶에 도달해야 한다.

1. 유다의 재난과 그 이유(8:1-12)
본 단락은 유다가 당하게 될 철저한 재난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는 동시에 계속되는
선지자의 회개 촉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화평치 않는 백성들의 완고함을 설
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오염된 유다의 치유 불가능성을 토로함으로써 심판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전장(7:32-34)에 이어서 범죄한 유다
가 받을 재난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3절)와 (2)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유다를
진술하고 있는 중반부(4-7절), 그리고 (3) 유다의 영적 지도자들의 범죄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8-12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유다
의 재앙의 근본적 원인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실제적인 거부를 지적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구조와 형식은 매우 의도적으로 짜여져 있는데, 각각의 유사한 던
어와 주제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정리할 수 있다.

+---------------------------------------------------------------------+
| A. 서론: 심판 날에 있을 처절한 죽음에 대한 묘사(7:30-8:3) |
| B. 본론(수사학적 진술, 4-10절) |
| a. 하나님의 공의로우심(4-7절) |
| b. 하나님의 율법(8-10절) |
| A'. 결론: 심판 날의 참혹함을 유다(하나님의 딸)의 유린으로 여김(11,|
| 12절;6:12-15에 근거함) |
+---------------------------------------------------------------------+

또한 본 단락의 표현상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상징적인 의도를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데, 크게 두 가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유다가 겪게 될 심판 날의 참상
을 효율적으로 강조하기 위하여 역설적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1-3, 10-12절). 둘째로,
심판의 참상의 원인을 강조적으로 진술하기 위해 의문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4-10절).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
다.
(1) 저자는 유다의 파멸을 영적 지도자들의 율법에 관한 오해와 관련시켜 진술하고
있다(8, 9절). 유다의 실질적인 지도자로서 언약 공동체 내에서 율법을 복사하고 해석
하는 역할을 감당하던 서기관들은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거짓되게 기록함으로써 백성
들을 심각한 무지와 죄악의 구렁텅이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여 일체의 희망이 단절된 상황 속에서도 거짓된 소망을 불어넣음으로써 진실된
회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율법을 맡고 있는 직분자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긴 나머지 하나님의 율법이 자신들과만 함께 있다고 주장하였다(8, 9
절). 이러한 오만한 자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또 다른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온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문서에 기록되어 있었으며,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었던 것이 분명하
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서 계속 작용하고 있었다. 결국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한 지식이 율법 내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는 유다의 지도자
들이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 선언하게 되었다.
(2) 예레미야는 유다이 비이성적인 행위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연계와의 대조를 사
용함으로써 유다의 죄악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6, 7절) 저돌적이고도 무모한 행위를
하면서도 고의적으로자신들의 행한 일에 관하여 후회를 표현하거나 회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5:1-3). 또한 자연계의 새들이 그 시기와 때를 알 수 있는 직관적인 지식을
통하여 자연의 흐름에 자동적으로 응답하는 것과는 달리 유다 백성은 삶의 조가거인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하였음을 밝힌다. 즉, 유다는 자연계의 새들과는 달리 하나님
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마련한 질서에 무감각했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본능적 충도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를 묵살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통해 저자는
유다의 현상황을 정확히 표현함으로써 심판의 필연성을 암시해주고 있다.
(3)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 전체의 범죄가 영적 지도자들의 잘못된 인도 때문이라고
말한다(10-12절). 지도자들은 유다 백성에게 요도된 판단을 제공함으로써 죄악된 현실
을 평안의 상태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백성들은 거짓된 이성을 촉발케 되었으
며 급기야 우상 숭배를 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없는 마비된 양심의 소유자가 되었다. 결
국 예레미야는 서기관과 제사장들의 잘못된 인도가 언약 백성인 유다의 보편적인 판단
을 흐리게 하여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파기하는 상황으로 전락시켰다고 진단하는 것
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 초래하는 위
험성에 대해 알 수 없다. 유다는 영적 지도자들의 잘못된 인도로 인하여 심각한 타락
과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성경 해석을 기초로 하여 올바른 삶
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2. 임박한 심판에 대하 재확인(8:13-17)
본 단락은 팔레스틴의 대표적 과실인 포도와 무화과의 핍절을 통하여 바벧론의 침
략으로 인한 무자비한 약탈과 자연계의 훼손을 암시함으로써 유다의 철저한 파명르 드
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태로 이르렀을 때 유다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
지만 끝내 회개로 연결되지 못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한 유
다의 파멸과 적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진술하고 있는 전반부(13-15절, (2) 북방으로
부터 오는 적과 하나님의 선언을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6, 17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유다의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을
'하나님의 공의'라는 관점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문맥적 관계를 살펴보면 앞 단락(1-12절)의 질문, 곧 '정말 이 백
성이 배신을 하고도 결코 회개치 않을 수 있을까?'에 대한 유다의 응답이 서술되고 있
다. 즉, 유다 백성들은 외형상으로는 후회를 표명하지만(14절) 끝내 진정한 회개에 도
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백성의 멸망에 대한 예레미야 자신의 고뇌에
찬 애통(18-22절)과 직접 연겨로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본 단락의 전체
적 상황은 처절한 비극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수확의 실패와 독사들이 들이닥치는
상황은, 대부분이 농경민즐인 이들에게 대단히 이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상징이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준심으로 본 단락의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
| A.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13절;마 21:19) |
| B. 심판을 당한 백성들의 독백(14, 15절) |
| C. 북방으로부터 오는 적에 관한 간단한 언급(16절;4:15;47:3) |
| A'.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선포(17절;민 21:6;신 32:24) |
+------------------------------------------------------------------------+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인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상징적인 표현을 통하여 유다의 파멸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13, 17절). (가)
농경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서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수확을 거두시기
위하여 자기 백성들에게 나아가신다(6:9). 그러나 생산성이 전무(全無)한 농장처럼 나
무에는 포도도 무화과도 없었고 다만 말라 비틀어진 잎사귀들뿐이라고 진술한다. 마치
선택된 포도나무가 변질되어 들 포도 나무가 되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2:21). 그러므로 선지자는 열매맺지 못하는 포도나무가 잘리워지는 것처럼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거부하고 죄악을 일삼는 백성에게는 당연히 멸망이 임하리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나) 유다를 공격해 오는 적에 대한 상징이 '뱀과 독사'로 묘사되고 있다(17
절). 이는 13절에서의 농경으로 인한 상징과 잘 부합된다. 사실 당시 농사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것이 바로 이 독사들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에 착안하여 유다에 대한
적의 공격이 인위적인 마술로도 없앨 수 없는 독사의 침입처럼 필연적인 사실이 될 것
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민 21:6-9).
(2) 심판에 대한 유다의 반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14, 15절). '우리가 어
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14a절)와 같은 외침은 절망 가운데서 부르짖는 비명으로서 유다 백성들이 설렁 자기
방어책을 강구한다 할지라도 헛될 뿐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다의 위기에 대한 인식
은 앞 단락에서의 '패강하다'(11절)라고 외쳤던 사실과 비교해 볼 때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난다. 유다는 심판을 당해서야 비로소 이전 상황이 평안한 상태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조차 단지 외형적인 수납에만 머물렀으므로(19
절)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고 말았다. 죄악의 궁극적 결과는 심판일 뿐이다(롬 6:23).
이상의 본 단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상황 속에서 절규하는 외침은 자칫 죄
악에 대한 고백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불만에 기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다. 바른 회개란 과거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자기 성차로가 방향의 전환을 수
반해야 한다. 그러므로 잘못에 대해 외면적 후회(14절)에 그쳐서는 안 되며 근본적인
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3. 유다를 위한 애가(8:18-22)
유다와 하나님과의 대화가 인상 깊게 소개되고 있는 본 단락에서는 바벧론의 포로
가 된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탄식과 불평이 소개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문제
의 핵심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여기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유다 백성과 그 땅에 대한 예레미야의 굽
힘없는 충성심을 보게 하는 부분(18절), (2) 유다 백성을 꾸짖는 부분(19절), (3) 현
실적으로 드러난 재앙을 돌이키지 못함에 안타까워하는 사실이 묘사되고 있는 부분
(20-22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의 상황
에 대한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고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은 내용적으로 애가 형식을 띠고 있으며 문맥상으로는 앞서 진술된
하나님의 심판 선언(13, 17절)과 백성들의 애가(14, 15절)와 평행을 이루고 있다. 또
한 이 내용은 추수에 대한 관점(13, 20절)이나, 치유에 관한 서술(15, 22절)의 논조와
도 일맥 상통하는데, 유다가 바벧론의 침입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다.
이상의 사실을 기초로 하여 본 단락의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예레미야의 유다에 대한 동정어린 슬픔이 묘사되어 있다(18, 19, 21, 22절).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망을 보면서 슬픔과 절망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백성들과 너무
나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파멸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터
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슬픔으로 가득 찬 예레미야는 자신의 눈이 눈물의 샘이
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죽임을 당한 자들을 위해서 밤낮으로 계속 울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4:17). 이렇게 백성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공유(共有)한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2) 유다 백성의 불안과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계속되고 있다(20절). 이미 14절에
서의 절규를 통해서 암시된 유다의 멸망이 이곳에서는 추수의 상징을 빌어 표현되고 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반역의 길에서 회개하고 임박한 심판에서 구원 받을 기회를 하나하나 잃어가고 있다고 묘사했다. 결국 언약 백성인 유다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으며 구원의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음울한 탄식을 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예레미야는 단순히 냉정하고 기계적으로 메시지를 선포하지 않았고, 회중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씀을 전달했다. 이처럼 현대 교회의 모든 목회자들도 성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가슴을 울리는 설교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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