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본절에서부터 8절까지는 북방의 적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시이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베냐민 지파는 예레미야가 소속해 있는 지파이며 그의 고향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적의 침략이 임박함에 따라, 선지자는 경고의 나팔을 울릴 것을 촉구하면서 무장하고 침략자들을 맞아 싸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냐민 자손들이 호명된 것은 예루살렘이 베냐민 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드고아는 아모스의 고향으로서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벨학게렘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 이르는 도상에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서는 봉화불을 올리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6:2
아름답고 묘한 딸...멸절하리니 - 시온이 아리따운 소녀에 비유되었다. 70인역(LXX)과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아름답고 상냥한 자여, 어떻게 해서 네 길이 더러워졌는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딸 시온을 이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로 여겨왔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수치와 불명예가 뒤따를 것이다(Calvin).
=====6:3
목자들이 그무리 양을 묵고 와서...먹이리로다 - 여호와로부터 심판받게 될 예루살렘이 여기서는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해오는 목자들의 목축지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이곳을 지배하며 자기 군사들을 먹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각자 지역을 분할하여 장막을 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장시간에 걸쳐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것임을 암시한다(Thompson, Clarke).
=====6:4
준비하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 )는 '봉헌하다', '성결하게 하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그늘이 길었구나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이 주로 아침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정오에는 햇빛이 내리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이 전쟁을 개시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시간인 정오에 전쟁하러 올라가자고 한 것은 적군들이 정오라 할지라도 결코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또한 적들은 날이 기울어진 것을 아쉬워한다. 이는 밤이 되어도 계속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Harrison).
=====6:5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 전쟁 때라도 저녁이 되면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보통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침략해 들어온 적들은 밤에도 공격을 감행하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적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이 구절을 낮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밤에는 기회를 잡자는 의미로 보고 야음을 이용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하자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6:6
나무를 베어서...흉벽을 쌓으라 - 이는 앞으로 일어날 싸움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에루살렘 사람들은 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것이며, 북방의 대적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을 부수려고 할 것이다. '흉벽'(* , 솔레라)이란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쌓아올린 거대한 공성퇴를 말한다(삼하20:15; 왕하19:32; 겔4:2; 26:8).
=====6:7
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 예루살렘이 악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샘에 비유되었다. 그리고 만연해 있는 사회악은 결국 심각한 도덕적 부패를 야기시켰는데 본절에서는 이것이 질병과 창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질병에는 위대한 의사의 진료와치료가 요청되지만 유다는 여호와의 훈계를 저버리고,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 유다가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주께로 돌아선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는 암시이다. 이와같이 심판이 선고되는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기회를 찾고 계신다. 이는 자신을 배반하고 떠나간 아들의 귀향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과도 유사하다(눅15:11-32).
=====6:9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 침략해 들어오는 갈대아인들에게 예루살렘 점령 이후 포로로 잡혀 가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자들마저 잡아가라는 권고의 말씀이 주어진다.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크게 뉘우쳐야 할 것인데, 이들조차도 주께로 돌아오지 않음을 암시한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확할때 남김없이 거둬들이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으나(레19:10; 신24:21), 당시 유다인들은 탐욕에 이끌려 이러한 규례를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절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죄악들을 장차 받게될 심판과 연관시켜 언급하고 계신셈이다.
=====6:10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 이는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을 완고하게 거부하였음을 가리킨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 , 아렐라)는 표현은 다소생소하다. 다른 곳에서는 입술의 할례(출6:12,30)나 마음의 할례(레26:41)란 표현이쓰이고 있다. 닫혀있는 귀에는 그 어떤 훈계나 가르침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6:11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 예레이먀의 전인격은 여호와의 계시를 온전히 수용하는 편에 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의 분노에 항의하거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는 유다에 임할 심판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클라크(Clarke)는이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유다에 임할 무섭고 끔찍한심판의 광경을 예레미야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이 예언을 힘써 전하기위해 뜨겁게 불타 올라 있었다고 해석하였다.
=====6:12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 유다인들의 모든 소유가 타인에게 넘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손을 그들에게 펴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땅 가나안에서 자신들을 쫓아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이미 모세가 경고한 바이기도 하였다(신28:30 이하).
=====6:13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 이 백성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탐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백성들의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종교 지도자들까지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자'와 '선지자'가 대구를 이루고 있고 '큰 자'가 '제사장'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지자가 제사장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모든 성직자를다 포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J.Bright, Thompson). 그리고 탐남으로 번역된 원어 '바차'(* )인데, 끝부분의 거짓과 대칭을 이루며,이와 유사한 뜻을 나타낸다. 이 단어가 어떤 경우에는 '이득을 얻다'란 의미로 쓰일때도 있지만, 대체로 '부당한 이익을 탐하다', '탐심에 빠지다'는 뜻으로 쓰였다.
=====6:14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 백성들의 상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는데도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평강만을 외쳤다. 여호와와 백성 간의 언약 관계는 파괴되어 심판이 목전에 다달았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팔요한 것은 허황된 빈 말로써 땜질하는 것이 아니라근본적인 치료였다. 한편 심상히(* , 네칼라)란 말은 원래 '무가치한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란 뜻인데, 70인역(LXX)은 이를 '여수데눈테스'(* )라고 번역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경멸하며'로 해석하였다. 심각한 상처에 대한 경각심 없이 이렇게 처치한다는것은 의사로서의 자격이없는 것이다.
=====6:15
부끄러워하였느냐...않았느니라 -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속이고 사기치는 더러운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얼굴을 붉히는 법도 알지 못하였으며,오히려 민족 전체가 잠겨 있는 그 악행에 대해 완전히 감각을 잃고 말았다. 더욱이 그들은 단순히 무감각한 정도가 아니라 악을 향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요시야 왕의 개혁 운동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와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저들의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의식 준수만으로도 항구적인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생각했는지도모른다(Thompson, Harrison).
=====6:16
옛적 길 곧 선한 길이...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조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았던 것을 가리킨다(창4:4;5:24; 6:8,9; 12:4등 참조). 그러나 당시 유다의 상황은 그들이 지난날 걸어온 행적을 되돌아보지 않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형편에 처해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안식과 번영의 길을 제시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멸망과 죄악의 길을 택하였다.
=====6:17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결코 자기 백성의멸망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기서의 '파숫군'이란 백성들이반역과 불순종의 죄악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거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겔3:16-21; 33:1-19, Nicholson).
=====6:18
열방아...회중아...알라 - 이제 하나님은 열방을 불러 그의 백성에게 내려지는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라고 하신다. '회중'의 히브리어 '에다'(* )는 구약에서 대체로 이스라엘 회중을 뜻하나 여기서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이런 점에서 이 말을 '증인들'(Witnesses)이라 옮긴 NIV의 번역이 좋다. 말하자면, 만방에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마땅한 제사장 나라가 오히려 배도의 길을 걸음으로써, 오히려 이방 민족들이 증인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심판과 수치를 당케 되리라는 말씀인것이다.
=====6:19
본절은 앞절에서 증인들을 소환한 후 유다 백성에게 내리는 선고문의 내용이다. 그리고 또한 처벌의 이유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고 지적된다. 여기서 '법'(* , 토라)이란 모세의 율법을 뜻하며 여호와의 율법이여호와의 말씀과 평행을 이루며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8:8,9). 아마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바른 길을 제쳐 두고 단순히 형식적 종교의식을 통해서 언약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20절).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달게 여기지 않노라 - 여기서 선지자는 앞절의내용을 보충하면서 하나님은 순종이 결여된 향기로운 예물을 원치 않으신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지적은 다른 선지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사1:11-14; 암5:21,22; 미6:6-8). 유향은 그 당시 무역 중심지였던 서남부 아라비아의 시바에서 들어왔으며(겔27:22), 향품은 인도에서 들어왔던 것 같다. 이 구절은 성전의 모든 제사체계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순종과 언약의 준수이지 이에 대한 폐지가 아니었다. 즉, 믿음과 말씀,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에게 짐이 될 뿐이다(삼상15:22; 사1:14).
=====6:21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멸망하리라 -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마련해둔 '거침'이란 것은 본절에는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자초한 장애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비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적의 침략을 뜻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이 거침에 의해 아비와 아들들 그리고 이웃과 친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걸려 멸망하게 된다.
=====6:22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 본절에서부터 26절까지는 북방에서 침략해 들어올 적에 대한 묘사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 부분은 운문체로 기록되고 있는데, 본절과 23절의 내용이 50:41,42에서 다시 언급된다. 이 나라가어떤 나라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바벨론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혹자는 이어지는 '땅 끝에서부터'라는 말에 근거하여 이 민족을 스구디아인으로 본다(Hitzig). 그러나 '땅 끝'이라는 말은 북방의 특정한 나라를 가리키는 지리적 언급이라기보다는 단지 매우 먼 거리를 나타내는 표현일 따름이다(Delitzsch).
=====6:23
그들은...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 그들이 진군해 들어오는소리를 흉흉거리는바다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이러한적의 군사 배치 목적은 시온을 멸망시키기 위함이었다.
=====6:24
손이 약하여졌고...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 적의 침략으로 인한 백성들의 공포와두려움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어서 그들의 정신적 불안이 아이를 낳는 여인의 고통에비유되었다. 완전 무장한 군인 앞에 아무런 저항의 수단이 없는 여인이 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처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3절의 '딸 시온'이라는 익숙한 용어도 이와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6:25
너희는...길로도 행치 말라 - 유다에 임할 심판에는 아무런 보호 수단이 없으며,그렇기 때문에 밭이나 길로 달아난다는 것조차 무모한 도피가 될 것이다. 한편 사방에두려움이 있음이니라는 말의 원어는 '마고르 밋사빕'(* )으로서 급박한 위기 상황을 시사하는 암호와 같은 표현이다(20:10; 46:5; 49:29).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바스훌에게 이 말로 이름을 지어주셨다(20:3,10).
=====6:26
굵은 베...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 유다가 할 일은 이제 굵은 베를 두르고 제를 뒤집어 쓰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고 애통하게 될 것이다. 독자의 죽음은 후손이 끊겨버리는 것을 뜻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엄청난 재난으로 여겼다. 이제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걸쳐 이런 재앙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6:27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 여기서부터 30절까지는 하나님의 호된 징계에도 불구하고 정화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이 금속의 제련 과정에 비유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을 제련할 때는, 먼저 제련하고자 하는 금속을 납과 함께 풀무나용광로에 넣은 후 뜨겁게 불을 지핀다. 그러면 납은 금속의 이물질을 품은 채 밑으로가라앉는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는 예려미야를 '살피는 자'로 임명하셨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행위를 검토하고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본서 초반부의내용을 참고한다면, 그는 열방들에 대한 '감독관'(1:10)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감정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6:28
그들은 놋과 철이며 - 본절에서 30절까지는 예레미야가 살피는 자로서 여호와께 보고하는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이와는 달리 27절에 계속 이어지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27,30절 등의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쨌든 본절은 유다인들을 가리켜 '심히 패역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문자즉으로는 '패역한 자 중에 패역한 자'라는 뜻이다. 앞서 예레미야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도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5:1), 그것과 잘 어울리는말이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가리켜 '놋과 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의 임무가은을 정제하는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예언의 불로써 은을 정제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불순물과 찌꺼기뿐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6:29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 광석의 성분이 워낙 불순하였기 때문에, 광석속의 비(卑)금속들이 제거되지 않아 결국 제련 과정이 무위로 끝났다는 것이다(J.Bright). 이는 유다의 죄악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6:30
내어버린 은이라 - 제련 관정은 바르게 진행되었지만, 상습적인 언약 파기자들은앞에서는 이런 정제 과정이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어, 결국 내버릴 수밖에 없었다.우리는 제련 과정이 실패했다는 이 말 속에서 심판이 불가피해진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처벌을 논하고 있는 부분(3:6-6:30) 중에서 최종적 진술을 하고
있는 본장은 앞서 4, 5장을 지배하였던 임박한 심판 주제가 여전히 중심 주제로 등장
하고 있다. 저자는 다시 한번 유다의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약 백성
은여전히 그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하게 되고, 살아 있는 역사적 교훈거리
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1) 다가올 바벧론의 침략에 관한 예언이 언
급된 전반부(1-8절)와 (2) 유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탄핵을 언급하고 있는 중반부
(9-21절), 그리고 (3) 심판날의 참상에 대한 예고를 보여주고 있는 후반부(22-3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 북방의 적이 다가오는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1-8절), (나) 민족의 자기 도취를 지적하는 선지자와 하나님
과의 대화(9-15절), (다) 정교한 제사라도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는 명백한 서술
(16-21절), (라) 북방 침략자들에 대한 소개(22-26절), (마) 예레미야가 이 백성의 시
금석임을 전제한 하나님의 신탁(27-30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저자는 회개하지 않는
유다의 말로가 비참한 지경에 이를 뿐임을 밝힘으로써 약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
판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본장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
| A. 예언적 사실의 생생한 묘사(1-8절) |
| B. 선지자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9-15절) |
| C. 현실 상황에 대한 묘사(16-21절) |
| A'. 예언적 사실의 생생한 묘사(22-26절) |
| D. 하나님의 신탁(27-30절) |
+--------------------------------------------------------+
한편 본장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
나 '북으로부터의 적'이 임박했음(1-8, 22-26절)과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8절)
이 언급되어 있고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 가시적인 평화로 인한 백성들의 자만(14
절)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본장의 역사적 시점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가속화된 통
치 말기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다의 사제들과 백성들 모두는 종교 개혁으로 인해 하
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와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
다. 그렇지만 유다는 율법 준수를 거부함으로써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
다(16-21절).
이와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의 내용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장래에 있을 유다의 심판 사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4-6, 22-26
절). 특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북으로부터의 적'이 언급되고 있는데(1, 22절),
당시의 국제 정세를 면밀히 살펴볼 때에 '바벧론'임이 분명하다(1:13-15;4:5, 6). 바
벧론 군대는 특유의 호전성을 발휘하여 유다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활과
창'을 가지고 '강포와 탈취'를 일삼으며 '질병과 창상'을 유발시킬 것이다(7, 23절).
결국 잔인하고 자비가 없는(23절) 바벧론의 공격으로 인하여 언약의 땅은 황무케 된다
(8절).
(2) 바벧론의 공격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해준다(4:5, 6). 특별히 저자
는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곧 가장 북쪽에 있
는 베냐민 족속을 언급함으로써 바벧론 침입의 임박성을 드러내고, 남쪽으로 도망가서
드고야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신호를 보내라 함을 통해(1절) 바벧론의
공격이 순식간에 북에서 남으로 치닫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레
미야는 임박한 심판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더욱더 강하게 시사하고 있
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기 이전에
먼저 각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공연히 여러 가지 외부적인 현상들을
자의적으로 곡해하며 상황을 잘못 판단하면 유다 백성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된
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경성하여 주위의 사실들을 바르게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준행해야 할 것이다(마 24:44-46;막 13:33;눅 12:40;계 3:3).
1. 바벧론의 유다 침입(6:1-8)
본 단락은 북방에서 온 이방 군대가 유다를 유린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
는 곳으로서 예루살렘이 순식간에 바벧론에 점령되어 멸망되는 상황이 긴박하게 서술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멸절시킬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다시 한번 회개를 촉구하심으로 마지막까지 인내하시는 그휼하심을 드러내셨다. 이
러한 본 단락은 (1) 더욱 임박한 심판의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전반부(1-5절)와 (2)
적의 도래를 죄를 지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지(告知)하고 있는 후반
부(6-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세분하여 보면 (가) 임박한 재앙에
관한 경고(1절;4:5-8), (나) 짤막한 환상(2, 3절;왕화 25:1-4), (다) 심판의 위급성을
알리고 있는 상징적 내용(4, 5절;사 32:14), (라) 하나님의 최종 선언(6-8절;22:17)
등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지금까지 선포해 온 파국이 마침내 가까이 왔다는
사실과 아무리 적들의 침입이 임박해 왔어도 아직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상
존(常存)하고 있음을 이중적(twofold)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
다.
(1) 유다가 징계를 받는 원인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가) 대(對)
사회적인 범죄 행각이다. 저자는 예루살렘 성을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샘에
비유해 약을 계속 만들어내는 소굴로 언급한다(7절). 그들은 죄없는 백성들을 억압하
고 강포와 탈취를 쉼없이 자행함으로써 율법적 삶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
다. (나)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는 종교적 범죄이다(8절).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마
음에 부합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항상 말씀을 주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은 율법상의 도덕법들을 파기하고 거부하였다. 결국 이상의 두
가지 관점에서 저자는 유다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포기했으므로 언약적 저주가 시행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2) 유다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두 가지의 관점에서 드러내고 있다. 먼저 유
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1-3절). 사실 성전이 존재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백성들의 마
음속에는 대단히 좋은 곳으로 간직되어 있었다(사 2:2, 3;겔 24:21;학 2:6-9). 그러나
이제 북으로부터의 재앙은 예루살렘 북쪽 지역의 거주자인 베냐민 지파의 남하와 또한
예루살렘의 남쪽인 베들레헴 남쪽 지방 드고아(암 1:1)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는 북쪽의 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음을 암시
하면서 유다의 입장에서는 매우 긴박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
음으로 심판의 도구인 바벧론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다(4-6절). 바벧론 군대는 예루
살렘을 공격하려는 욕방에 가득 차서 강한 햇빛으로 인하여 전쟁을 개시하기에 적다잎
않은 정오라 할지라도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석양의 그림자가 성
주위의 골짜기에 드리워지기 시작함을 아쉬워하면서 밤이 되어도 계속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바벧론 군사들에게 예루살렘 성의
방벽을 깨뜨리기 위해서 흉벽을 쌓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하셨다(겔 4:1-3). 결국 저자
는 유다를 공격하는 적들조차도 서둘러 유다를 침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유다의 심판이 매우 임박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항상 내적, 외적으로 영적인 상태를 점검함으로써
여러 가지 영적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유다는 심판의
징조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결국 파멸을 자초했다. 우리는 유다의 전철(前轍)
을 밟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함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유다의 죄에 대한 탄핵(6:9-21)
본 단락은 유다의 심각한 죄악의 단면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유다의 구석구
석까지 미칠 철저한 심판의 참상을 보여준다.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
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대신에 더욱 정교한 의식을 수행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
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다의 외식적인 태도와 사악함을 지적하고 다가올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부패한 민족에게 임하는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
부(9-15절), (2) 심판의 원인으로 유다의 부패한 종교 의식을 지적하고 있는 후반부
(16-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당시 유다에 만
연되어 있는 거짓 평화 의식, 곧 모세 율법에 따른 제사 의식을 행한다는 사실 하나만
으로 아무런 재앙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전반부(9-15절)에는 하나님과 예레미야 사이의 대화 형식이 다음
과 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 (1) 하나님의 말씀(선지자에 대한 명령, 9절) (2) 예레미야의 응답(질문과 불평 |
| , 10, 11a절) (3)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응답(11b, 12절) (4) 유다의 죄악 |
|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언급(13-15절) |
+------------------------------------------------------------------------------+
이러한 형식은 5:1-9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1) 일련의 문답체 형식 |
| (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 (나) 예레미야가 질문의 형식으로 반응함 (다) 하나 |
| 님이 다시 한번 말씀하심 |
| (2) 특정한 핵심 단어와 주제의 되풀이 |
| (가) '예루살렘의 거리'(5:1)가 6:11에서 넌지시 암시되고 있음 |
| (나) 유다의 '거짓' 상태(5:2)가 6:13에서 재차 강조됨 |
| (다) 유사 용어로 '귀인'(5:5)과 '큰 자'(6:13)가 언급되어 있음 |
| (라) 종결 형태가 '징계'로서 표현되는 심판 주제로 끝남(5:9;6:15) |
+------------------------------------------------------------------------------+
또한, 유다의 거부 상태에 대해 일종의 기도문 형식을 띠고 있는 후반부(16-21절)는
전반부의 핵심 단어인 '듣다'(10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실은 더 나아가
17절의 '들으라', '듣지 않겠다'와 19절의 '들으라'로 연결되며, 후반부의 '길로 행치
말라'(25절)와 주제적 연결을 맺고 있다.
어처럼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거부한 유다의 상태를 부각시키는 후반부는 매
우 논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유다의 배교 상태를 풍자적 언어로 진단한
후(16, 17절) 하나님의 법을 거부했음을 선언하고(18-20절), 마지막으로 최종적 멸망
을 예언하는 것이다(21절). 이상의 사실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의 내용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다의 죄를 두 가지의 사실로 요약하고 있다. (가) 유다 백성들은 열조들이
지녔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16절;18:15). 실제적으로
당시으 유다는 과거의 영적인 행로를 되돌아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주어지는선
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조차 무시하였다. 그들은 단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
라엘 사이에 수립된 언약으로 되돌아가는 고대의 전통에 깊이 집착했던 사람들에 지나
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예레미야는 이 백성에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엣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라'(16a절)고 권면하였다. 결국 예레미야는 유다의 실패
가 언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본질을 좇은 선조의
삶을 추구하지 않은 데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7:22, 23;11:1-13). (나) 유다 백성
들은 회개하라는 선지자의 호소를 거부하고 거짓된 평화에 안주했다는 것이다(14절),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함으로써 선지자에 의해 전달되는
영적 진단, 곧 언약의 옛적 길로 돌아오라는 끊임없는 요청에 대하여 '우리는 듣지 않
겠노라'(17절)고 응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언약을 무시하고, 파기에 따르는 위험에
관한 경고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유다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는 심각한 범죄 행위
라고 책망하는 것이다.
(2) 유다의 위선적인 제사 의식을 책망하고 있다(20, 21절). 유다는 율법의 본질은
몰아내고 대신에 값비싼 성전 의식에 몰두함으로써 언약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켜 보려
했다(20절)그러나 하나님은 순종 대신에 바쳐지는 이러한 호화로운 제사를 거부하는
결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레미야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믿음과
순종에서 분리된 의례적인 행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
이다(삼상 15:22). 그러므로 내적 마음가짐이 수반되지 않는 모든 외적 종교 행사들은
거부당해야 마땅하다.
이상의 본 단락에서 우리는 신자에게 있어서 예배 의식이라 하나의 피상적인 관롑
가 아니라 내적 순종의 외부적 표현 형식이어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신령과 진정이
증발된 의식은 하나님 앞에 갖으할 뿐이다(사 1:11-14;애 2:6).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 진정한 헌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심판날의 참상(6:22-30)
본 단락은 행악에 대한 책망(9-21절)에 이어 바벧론의 침공하는 모습을 좀더 구체
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동시에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
에서도 정화되지 않는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심판의 경고를 선
포해도 회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악을 비유적으로 묘사함으로
써 당시 유다가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북쪽에서 오는 강하고 무서운 적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22-26
절), (2) 유다의 극에 달한 패역을기술하고 있는 후반부(27-30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심판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만약 유다 백성
들이 지금까지의 수많은 경고 중에 단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패역하였으므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본 단락은 4:5 이후부터 계속되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의 최종 결론을 유도하
기 위해 북쪽의 적에 대해 언급하면서(22-26절; 4:5-18)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예레
미야의 역할(27-30절;3:1-4
:4)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예레미야의 초기 사역의 결론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상당 부분 초기 예언
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담고 있다. 곧 1:13의 '끊는 가마'의 환상은 본 단락의 '북으로
부터의 적'의 위험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며, 초기의 예레미야의 사역에 관한 규정
(1:10)은 본 단락의 하나님의 신탁(27-30절)을 통하여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본 단락은 바벧론의 침입에 대해 환상적인 묘사를 사용하여 서술함(22-26절)
으로써 실제성을 더해주고 있다. 즉 '활', '창', '전사', '항오', '해산하는 여인' 등
의 단어를 사용하여 다가올 재앙의 참상을 역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유다의
패역한 죄악성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서술함으로써(27-30절) 거듭되는 심판 선언 속데
서도 걸러지지 않는 유다의 죄악을 효과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본 단락의 내용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북쪽의 적이 접근해 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22-26절). 저자는 다가
오는 바벧론 군대가 잔인하며 사로잡은 자들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므로
유다 백성은 마치 해산의 고통처럼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24절).
결국 유다는 바벧론으로 인하여 마치 외아들을 잃어버린 자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
이다(26절).
(2) 예레미야의 사역의 성격을 통하여 유다의 죄악상을 이끌어내고 있다(27-30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예레미야는 쇠찌꺼기 가운데서 귀금속을 찾고 있는 사람처럼 자기 백성을 살피는 자의 역할을 감당케 된다(말 3: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본 대로 유다에는 공의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없음을 선포하면서 예언의 풀무 '불'은 유다에게서 불순물들을 제거할 수가 없었다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로서 이 백성이 '내어버린 은'이 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언약 파기를 증명한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자신의 육적 욕망만을 추구하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아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마 5:13)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준행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빌 2:12).
본절에서부터 8절까지는 북방의 적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시이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베냐민 지파는 예레미야가 소속해 있는 지파이며 그의 고향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4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적의 침략이 임박함에 따라, 선지자는 경고의 나팔을 울릴 것을 촉구하면서 무장하고 침략자들을 맞아 싸우라고 말한다. 그리고 베냐민 자손들이 호명된 것은 예루살렘이 베냐민 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드고아는 아모스의 고향으로서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벨학게렘은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에 이르는 도상에 위치해 있었는데, 여기서는 봉화불을 올리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6:2
아름답고 묘한 딸...멸절하리니 - 시온이 아리따운 소녀에 비유되었다. 70인역(LXX)과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아름답고 상냥한 자여, 어떻게 해서 네 길이 더러워졌는고'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은 딸 시온을 이처럼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로 여겨왔지만, 이제 그들에게는 수치와 불명예가 뒤따를 것이다(Calvin).
=====6:3
목자들이 그무리 양을 묵고 와서...먹이리로다 - 여호와로부터 심판받게 될 예루살렘이 여기서는 군대를 거느리고 진군해오는 목자들의 목축지로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이곳을 지배하며 자기 군사들을 먹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또한 각자 지역을 분할하여 장막을 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장시간에 걸쳐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것임을 암시한다(Thompson, Clarke).
=====6:4
준비하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 )는 '봉헌하다', '성결하게 하다'는 뜻을 내포하는 바 전쟁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종교 의식을 치르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정오에 올라가자...그늘이 길었구나 -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이 주로 아침에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정오에는 햇빛이 내리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이 전쟁을 개시하기에는 적당치 않은 시간인 정오에 전쟁하러 올라가자고 한 것은 적군들이 정오라 할지라도 결코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또한 적들은 날이 기울어진 것을 아쉬워한다. 이는 밤이 되어도 계속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Harrison).
=====6:5
우리가 밤으로 올라가서 - 전쟁 때라도 저녁이 되면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보통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위해 침략해 들어온 적들은 밤에도 공격을 감행하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적군의 사기가 충천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이 구절을 낮에는 기회를 놓쳤지만 밤에는 기회를 잡자는 의미로 보고 야음을 이용하여 기습 공격을 감행하자는 것으로도 해석한다.
=====6:6
나무를 베어서...흉벽을 쌓으라 - 이는 앞으로 일어날 싸움의 양상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암시하는 말이다. 에루살렘 사람들은 성을 지키고자 노력할 것이며, 북방의 대적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을 부수려고 할 것이다. '흉벽'(* , 솔레라)이란 성벽을 파괴하기 위해 쌓아올린 거대한 공성퇴를 말한다(삼하20:15; 왕하19:32; 겔4:2; 26:8).
=====6:7
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 예루살렘이 악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뜻에서 샘에 비유되었다. 그리고 만연해 있는 사회악은 결국 심각한 도덕적 부패를 야기시켰는데 본절에서는 이것이 질병과 창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질병에는 위대한 의사의 진료와치료가 요청되지만 유다는 여호와의 훈계를 저버리고, 멸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 유다가 여호와의 훈계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주께로 돌아선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는 암시이다. 이와같이 심판이 선고되는 긴박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실 기회를 찾고 계신다. 이는 자신을 배반하고 떠나간 아들의 귀향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과도 유사하다(눅15:11-32).
=====6:9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 침략해 들어오는 갈대아인들에게 예루살렘 점령 이후 포로로 잡혀 가고 유다 땅에 남아 있는 자들마저 잡아가라는 권고의 말씀이 주어진다.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크게 뉘우쳐야 할 것인데, 이들조차도 주께로 돌아오지 않음을 암시한다. 한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확할때 남김없이 거둬들이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으나(레19:10; 신24:21), 당시 유다인들은 탐욕에 이끌려 이러한 규례를 무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본절에서 하나님의 그러한 죄악들을 장차 받게될 심판과 연관시켜 언급하고 계신셈이다.
=====6:10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 이는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을 완고하게 거부하였음을 가리킨다.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다'(* , 아렐라)는 표현은 다소생소하다. 다른 곳에서는 입술의 할례(출6:12,30)나 마음의 할례(레26:41)란 표현이쓰이고 있다. 닫혀있는 귀에는 그 어떤 훈계나 가르침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6:11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 예레이먀의 전인격은 여호와의 계시를 온전히 수용하는 편에 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의 분노에 항의하거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능력으로는 유다에 임할 심판을 막을 수 없었다. 한편, 클라크(Clarke)는이를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하나님이 유다에 임할 무섭고 끔찍한심판의 광경을 예레미야에게 계시해주셨기 때문에 그의 영혼이 이 예언을 힘써 전하기위해 뜨겁게 불타 올라 있었다고 해석하였다.
=====6:12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니 - 유다인들의 모든 소유가 타인에게 넘어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손을 그들에게 펴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땅 가나안에서 자신들을 쫓아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이미 모세가 경고한 바이기도 하였다(신28:30 이하).
=====6:13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 이 백성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탐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더군다나 백성들의 도덕적 타락을 경고하고 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종교 지도자들까지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작은 자'와 '선지자'가 대구를 이루고 있고 '큰 자'가 '제사장'과 대구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선지자가 제사장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단지 모든 성직자를다 포괄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J.Bright, Thompson). 그리고 탐남으로 번역된 원어 '바차'(* )인데, 끝부분의 거짓과 대칭을 이루며,이와 유사한 뜻을 나타낸다. 이 단어가 어떤 경우에는 '이득을 얻다'란 의미로 쓰일때도 있지만, 대체로 '부당한 이익을 탐하다', '탐심에 빠지다'는 뜻으로 쓰였다.
=====6:14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 백성들의 상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는데도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 평강만을 외쳤다. 여호와와 백성 간의 언약 관계는 파괴되어 심판이 목전에 다달았다. 따라서 백성들에게 팔요한 것은 허황된 빈 말로써 땜질하는 것이 아니라근본적인 치료였다. 한편 심상히(* , 네칼라)란 말은 원래 '무가치한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란 뜻인데, 70인역(LXX)은 이를 '여수데눈테스'(* )라고 번역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 '경멸하며'로 해석하였다. 심각한 상처에 대한 경각심 없이 이렇게 처치한다는것은 의사로서의 자격이없는 것이다.
=====6:15
부끄러워하였느냐...않았느니라 -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속이고 사기치는 더러운행위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얼굴을 붉히는 법도 알지 못하였으며,오히려 민족 전체가 잠겨 있는 그 악행에 대해 완전히 감각을 잃고 말았다. 더욱이 그들은 단순히 무감각한 정도가 아니라 악을 향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요시야 왕의 개혁 운동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와 화목하게 되었으므로 저들의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의식 준수만으로도 항구적인 평화가 보장되리라고 생각했는지도모른다(Thompson, Harrison).
=====6:16
옛적 길 곧 선한 길이...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 이스라엘의 믿음의 선조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았던 것을 가리킨다(창4:4;5:24; 6:8,9; 12:4등 참조). 그러나 당시 유다의 상황은 그들이 지난날 걸어온 행적을 되돌아보지 않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계시가 주어지는데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형편에 처해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안식과 번영의 길을 제시하였으나 그들은 이를 거부하고 멸망과 죄악의 길을 택하였다.
=====6:17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결코 자기 백성의멸망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기서의 '파숫군'이란 백성들이반역과 불순종의 죄악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거나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가리킨다(겔3:16-21; 33:1-19, Nicholson).
=====6:18
열방아...회중아...알라 - 이제 하나님은 열방을 불러 그의 백성에게 내려지는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보라고 하신다. '회중'의 히브리어 '에다'(* )는 구약에서 대체로 이스라엘 회중을 뜻하나 여기서는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이런 점에서 이 말을 '증인들'(Witnesses)이라 옮긴 NIV의 번역이 좋다. 말하자면, 만방에 신앙의 모범을 보여야 마땅한 제사장 나라가 오히려 배도의 길을 걸음으로써, 오히려 이방 민족들이 증인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심판과 수치를 당케 되리라는 말씀인것이다.
=====6:19
본절은 앞절에서 증인들을 소환한 후 유다 백성에게 내리는 선고문의 내용이다. 그리고 또한 처벌의 이유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고 지적된다. 여기서 '법'(* , 토라)이란 모세의 율법을 뜻하며 여호와의 율법이여호와의 말씀과 평행을 이루며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8:8,9). 아마 백성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와 바른 길을 제쳐 두고 단순히 형식적 종교의식을 통해서 언약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20절).
=====6:20
시바에서 유향과 원방에서 향품을...달게 여기지 않노라 - 여기서 선지자는 앞절의내용을 보충하면서 하나님은 순종이 결여된 향기로운 예물을 원치 않으신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지적은 다른 선지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사1:11-14; 암5:21,22; 미6:6-8). 유향은 그 당시 무역 중심지였던 서남부 아라비아의 시바에서 들어왔으며(겔27:22), 향품은 인도에서 들어왔던 것 같다. 이 구절은 성전의 모든 제사체계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레미야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순종과 언약의 준수이지 이에 대한 폐지가 아니었다. 즉, 믿음과 말씀, 순종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에게 짐이 될 뿐이다(삼상15:22; 사1:14).
=====6:21
내가 이 백성 앞에 거침을 두리니...멸망하리라 - 하나님이 이 백성들에게 마련해둔 '거침'이란 것은 본절에는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자초한 장애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비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적의 침략을 뜻할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이 거침에 의해 아비와 아들들 그리고 이웃과 친구 할 것 없이 모두가 걸려 멸망하게 된다.
=====6:22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 본절에서부터 26절까지는 북방에서 침략해 들어올 적에 대한 묘사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 부분은 운문체로 기록되고 있는데, 본절과 23절의 내용이 50:41,42에서 다시 언급된다. 이 나라가어떤 나라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바벨론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혹자는 이어지는 '땅 끝에서부터'라는 말에 근거하여 이 민족을 스구디아인으로 본다(Hitzig). 그러나 '땅 끝'이라는 말은 북방의 특정한 나라를 가리키는 지리적 언급이라기보다는 단지 매우 먼 거리를 나타내는 표현일 따름이다(Delitzsch).
=====6:23
그들은...딸 시온 너를 치려하느니라 - 그들이 진군해 들어오는소리를 흉흉거리는바다와 같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이러한적의 군사 배치 목적은 시온을 멸망시키기 위함이었다.
=====6:24
손이 약하여졌고...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 적의 침략으로 인한 백성들의 공포와두려움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어서 그들의 정신적 불안이 아이를 낳는 여인의 고통에비유되었다. 완전 무장한 군인 앞에 아무런 저항의 수단이 없는 여인이 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처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3절의 '딸 시온'이라는 익숙한 용어도 이와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6:25
너희는...길로도 행치 말라 - 유다에 임할 심판에는 아무런 보호 수단이 없으며,그렇기 때문에 밭이나 길로 달아난다는 것조차 무모한 도피가 될 것이다. 한편 사방에두려움이 있음이니라는 말의 원어는 '마고르 밋사빕'(* )으로서 급박한 위기 상황을 시사하는 암호와 같은 표현이다(20:10; 46:5; 49:29).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바스훌에게 이 말로 이름을 지어주셨다(20:3,10).
=====6:26
굵은 베...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 유다가 할 일은 이제 굵은 베를 두르고 제를 뒤집어 쓰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독자를 잃음같이 슬퍼하고 애통하게 될 것이다. 독자의 죽음은 후손이 끊겨버리는 것을 뜻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엄청난 재난으로 여겼다. 이제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걸쳐 이런 재앙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6:27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 여기서부터 30절까지는 하나님의 호된 징계에도 불구하고 정화되지 않은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이 금속의 제련 과정에 비유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을 제련할 때는, 먼저 제련하고자 하는 금속을 납과 함께 풀무나용광로에 넣은 후 뜨겁게 불을 지핀다. 그러면 납은 금속의 이물질을 품은 채 밑으로가라앉는다. 한편, 여기서 여호와는 예려미야를 '살피는 자'로 임명하셨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백성들의 행위를 검토하고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본서 초반부의내용을 참고한다면, 그는 열방들에 대한 '감독관'(1:10)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감정가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6:28
그들은 놋과 철이며 - 본절에서 30절까지는 예레미야가 살피는 자로서 여호와께 보고하는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이와는 달리 27절에 계속 이어지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기도 한다. 여기서는 27,30절 등의 문맥을 고려할 때 후자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쨌든 본절은 유다인들을 가리켜 '심히 패역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문자즉으로는 '패역한 자 중에 패역한 자'라는 뜻이다. 앞서 예레미야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도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5:1), 그것과 잘 어울리는말이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을 가리켜 '놋과 철'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그의 임무가은을 정제하는 것이었음을 암시한다. 예언의 불로써 은을 정제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불순물과 찌꺼기뿐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6:29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 광석의 성분이 워낙 불순하였기 때문에, 광석속의 비(卑)금속들이 제거되지 않아 결국 제련 과정이 무위로 끝났다는 것이다(J.Bright). 이는 유다의 죄악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6:30
내어버린 은이라 - 제련 관정은 바르게 진행되었지만, 상습적인 언약 파기자들은앞에서는 이런 정제 과정이 아무런 효과를 낼 수가 없어, 결국 내버릴 수밖에 없었다.우리는 제련 과정이 실패했다는 이 말 속에서 심판이 불가피해진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범죄와 처벌을 논하고 있는 부분(3:6-6:30) 중에서 최종적 진술을 하고
있는 본장은 앞서 4, 5장을 지배하였던 임박한 심판 주제가 여전히 중심 주제로 등장
하고 있다. 저자는 다시 한번 유다의 회개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언약 백성
은여전히 그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하게 되고, 살아 있는 역사적 교훈거리
로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1) 다가올 바벧론의 침략에 관한 예언이 언
급된 전반부(1-8절)와 (2) 유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탄핵을 언급하고 있는 중반부
(9-21절), 그리고 (3) 심판날의 참상에 대한 예고를 보여주고 있는 후반부(22-3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 북방의 적이 다가오는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1-8절), (나) 민족의 자기 도취를 지적하는 선지자와 하나님
과의 대화(9-15절), (다) 정교한 제사라도 순종을 대신할 수 없다는 명백한 서술
(16-21절), (라) 북방 침략자들에 대한 소개(22-26절), (마) 예레미야가 이 백성의 시
금석임을 전제한 하나님의 신탁(27-30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저자는 회개하지 않는
유다의 말로가 비참한 지경에 이를 뿐임을 밝힘으로써 약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
판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본장의 구조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
| A. 예언적 사실의 생생한 묘사(1-8절) |
| B. 선지자와 하나님 사이의 대화(9-15절) |
| C. 현실 상황에 대한 묘사(16-21절) |
| A'. 예언적 사실의 생생한 묘사(22-26절) |
| D. 하나님의 신탁(27-30절) |
+--------------------------------------------------------+
한편 본장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
나 '북으로부터의 적'이 임박했음(1-8, 22-26절)과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8절)
이 언급되어 있고 요시야의 종교 개혁 이후 가시적인 평화로 인한 백성들의 자만(14
절)이 나타난 점으로 보아, 본장의 역사적 시점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가속화된 통
치 말기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유다의 사제들과 백성들 모두는 종교 개혁으로 인해 하
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화와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믿고 있었
다. 그렇지만 유다는 율법 준수를 거부함으로써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
다(16-21절).
이와 같은 배경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의 내용의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장래에 있을 유다의 심판 사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4-6, 22-26
절). 특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북으로부터의 적'이 언급되고 있는데(1, 22절),
당시의 국제 정세를 면밀히 살펴볼 때에 '바벧론'임이 분명하다(1:13-15;4:5, 6). 바
벧론 군대는 특유의 호전성을 발휘하여 유다를 철저하게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활과
창'을 가지고 '강포와 탈취'를 일삼으며 '질병과 창상'을 유발시킬 것이다(7, 23절).
결국 잔인하고 자비가 없는(23절) 바벧론의 공격으로 인하여 언약의 땅은 황무케 된다
(8절).
(2) 바벧론의 공격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해준다(4:5, 6). 특별히 저자
는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곧 가장 북쪽에 있
는 베냐민 족속을 언급함으로써 바벧론 침입의 임박성을 드러내고, 남쪽으로 도망가서
드고야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신호를 보내라 함을 통해(1절) 바벧론의
공격이 순식간에 북에서 남으로 치닫을 것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예레
미야는 임박한 심판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더욱더 강하게 시사하고 있
다.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가 현실적으로 드러나기 이전에
먼저 각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공연히 여러 가지 외부적인 현상들을
자의적으로 곡해하며 상황을 잘못 판단하면 유다 백성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하게 된
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경성하여 주위의 사실들을 바르게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준행해야 할 것이다(마 24:44-46;막 13:33;눅 12:40;계 3:3).
1. 바벧론의 유다 침입(6:1-8)
본 단락은 북방에서 온 이방 군대가 유다를 유린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
는 곳으로서 예루살렘이 순식간에 바벧론에 점령되어 멸망되는 상황이 긴박하게 서술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멸절시킬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다시 한번 회개를 촉구하심으로 마지막까지 인내하시는 그휼하심을 드러내셨다. 이
러한 본 단락은 (1) 더욱 임박한 심판의 사실을 경고하고 있는 전반부(1-5절)와 (2)
적의 도래를 죄를 지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지(告知)하고 있는 후반
부(6-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세분하여 보면 (가) 임박한 재앙에
관한 경고(1절;4:5-8), (나) 짤막한 환상(2, 3절;왕화 25:1-4), (다) 심판의 위급성을
알리고 있는 상징적 내용(4, 5절;사 32:14), (라) 하나님의 최종 선언(6-8절;22:17)
등이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지금까지 선포해 온 파국이 마침내 가까이 왔다는
사실과 아무리 적들의 침입이 임박해 왔어도 아직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상
존(常存)하고 있음을 이중적(twofold)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징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
다.
(1) 유다가 징계를 받는 원인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가) 대(對)
사회적인 범죄 행각이다. 저자는 예루살렘 성을 신선한 물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샘에
비유해 약을 계속 만들어내는 소굴로 언급한다(7절). 그들은 죄없는 백성들을 억압하
고 강포와 탈취를 쉼없이 자행함으로써 율법적 삶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
다. (나) 하나님의 훈계를 싫어하는 종교적 범죄이다(8절). 언약 백성은 하나님의 마
음에 부합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항상 말씀을 주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은 율법상의 도덕법들을 파기하고 거부하였다. 결국 이상의 두
가지 관점에서 저자는 유다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포기했으므로 언약적 저주가 시행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
(2) 유다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두 가지의 관점에서 드러내고 있다. 먼저 유
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1-3절). 사실 성전이 존재하고 있는 예루살렘은 백성들의 마
음속에는 대단히 좋은 곳으로 간직되어 있었다(사 2:2, 3;겔 24:21;학 2:6-9). 그러나
이제 북으로부터의 재앙은 예루살렘 북쪽 지역의 거주자인 베냐민 지파의 남하와 또한
예루살렘의 남쪽인 베들레헴 남쪽 지방 드고아(암 1:1)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저자는 북쪽의 적이 남쪽을 향하고 있음을 암시
하면서 유다의 입장에서는 매우 긴박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
음으로 심판의 도구인 바벧론의 입장에서 묘사하고 있다(4-6절). 바벧론 군대는 예루
살렘을 공격하려는 욕방에 가득 차서 강한 햇빛으로 인하여 전쟁을 개시하기에 적다잎
않은 정오라 할지라도 공격을 늦추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석양의 그림자가 성
주위의 골짜기에 드리워지기 시작함을 아쉬워하면서 밤이 되어도 계속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임을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바벧론 군사들에게 예루살렘 성의
방벽을 깨뜨리기 위해서 흉벽을 쌓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하셨다(겔 4:1-3). 결국 저자
는 유다를 공격하는 적들조차도 서둘러 유다를 침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유다의 심판이 매우 임박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항상 내적, 외적으로 영적인 상태를 점검함으로써
여러 가지 영적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유다는 심판의
징조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결국 파멸을 자초했다. 우리는 유다의 전철(前轍)
을 밟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함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유다의 죄에 대한 탄핵(6:9-21)
본 단락은 유다의 심각한 죄악의 단면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유다의 구석구
석까지 미칠 철저한 심판의 참상을 보여준다.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
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대신에 더욱 정교한 의식을 수행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
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유다의 외식적인 태도와 사악함을 지적하고 다가올 심판을
선언한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부패한 민족에게 임하는 심판을 언급하고 있는 전반
부(9-15절), (2) 심판의 원인으로 유다의 부패한 종교 의식을 지적하고 있는 후반부
(16-2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당시 유다에 만
연되어 있는 거짓 평화 의식, 곧 모세 율법에 따른 제사 의식을 행한다는 사실 하나만
으로 아무런 재앙이 없을 것이라는 착각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전반부(9-15절)에는 하나님과 예레미야 사이의 대화 형식이 다음
과 같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
| (1) 하나님의 말씀(선지자에 대한 명령, 9절) (2) 예레미야의 응답(질문과 불평 |
| , 10, 11a절) (3) 예레미야의 질문에 대한 응답(11b, 12절) (4) 유다의 죄악 |
|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언급(13-15절) |
+------------------------------------------------------------------------------+
이러한 형식은 5:1-9과 매우 유사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1) 일련의 문답체 형식 |
| (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 (나) 예레미야가 질문의 형식으로 반응함 (다) 하나 |
| 님이 다시 한번 말씀하심 |
| (2) 특정한 핵심 단어와 주제의 되풀이 |
| (가) '예루살렘의 거리'(5:1)가 6:11에서 넌지시 암시되고 있음 |
| (나) 유다의 '거짓' 상태(5:2)가 6:13에서 재차 강조됨 |
| (다) 유사 용어로 '귀인'(5:5)과 '큰 자'(6:13)가 언급되어 있음 |
| (라) 종결 형태가 '징계'로서 표현되는 심판 주제로 끝남(5:9;6:15) |
+------------------------------------------------------------------------------+
또한, 유다의 거부 상태에 대해 일종의 기도문 형식을 띠고 있는 후반부(16-21절)는
전반부의 핵심 단어인 '듣다'(10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사실은 더 나아가
17절의 '들으라', '듣지 않겠다'와 19절의 '들으라'로 연결되며, 후반부의 '길로 행치
말라'(25절)와 주제적 연결을 맺고 있다.
어처럼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거부한 유다의 상태를 부각시키는 후반부는 매
우 논리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유다의 배교 상태를 풍자적 언어로 진단한
후(16, 17절) 하나님의 법을 거부했음을 선언하고(18-20절), 마지막으로 최종적 멸망
을 예언하는 것이다(21절). 이상의 사실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의 내용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다의 죄를 두 가지의 사실로 요약하고 있다. (가) 유다 백성들은 열조들이
지녔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16절;18:15). 실제적으로
당시으 유다는 과거의 영적인 행로를 되돌아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주어지는선
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조차 무시하였다. 그들은 단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
라엘 사이에 수립된 언약으로 되돌아가는 고대의 전통에 깊이 집착했던 사람들에 지나
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예레미야는 이 백성에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엣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라'(16a절)고 권면하였다. 결국 예레미야는 유다의 실패
가 언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본질을 좇은 선조의
삶을 추구하지 않은 데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7:22, 23;11:1-13). (나) 유다 백성
들은 회개하라는 선지자의 호소를 거부하고 거짓된 평화에 안주했다는 것이다(14절),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이해함으로써 선지자에 의해 전달되는
영적 진단, 곧 언약의 옛적 길로 돌아오라는 끊임없는 요청에 대하여 '우리는 듣지 않
겠노라'(17절)고 응답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언약을 무시하고, 파기에 따르는 위험에
관한 경고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유다에 대해 예레미야는 이는 심각한 범죄 행위
라고 책망하는 것이다.
(2) 유다의 위선적인 제사 의식을 책망하고 있다(20, 21절). 유다는 율법의 본질은
몰아내고 대신에 값비싼 성전 의식에 몰두함으로써 언약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켜 보려
했다(20절)그러나 하나님은 순종 대신에 바쳐지는 이러한 호화로운 제사를 거부하는
결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예레미야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믿음과
순종에서 분리된 의례적인 행사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
이다(삼상 15:22). 그러므로 내적 마음가짐이 수반되지 않는 모든 외적 종교 행사들은
거부당해야 마땅하다.
이상의 본 단락에서 우리는 신자에게 있어서 예배 의식이라 하나의 피상적인 관롑
가 아니라 내적 순종의 외부적 표현 형식이어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신령과 진정이
증발된 의식은 하나님 앞에 갖으할 뿐이다(사 1:11-14;애 2:6).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내면적 성찰을 통해 진정한 헌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심판날의 참상(6:22-30)
본 단락은 행악에 대한 책망(9-21절)에 이어 바벧론의 침공하는 모습을 좀더 구체
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동시에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
에서도 정화되지 않는 유다 백성들의 패역함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심판의 경고를 선
포해도 회개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백성들의 가증스러운 악을 비유적으로 묘사함으로
써 당시 유다가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북쪽에서 오는 강하고 무서운 적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22-26
절), (2) 유다의 극에 달한 패역을기술하고 있는 후반부(27-30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심판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만약 유다 백성
들이 지금까지의 수많은 경고 중에 단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패역하였으므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본 단락은 4:5 이후부터 계속되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의 최종 결론을 유도하
기 위해 북쪽의 적에 대해 언급하면서(22-26절; 4:5-18)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예레
미야의 역할(27-30절;3:1-4
:4)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예레미야의 초기 사역의 결론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상당 부분 초기 예언
을 그대로 되풀이하여 담고 있다. 곧 1:13의 '끊는 가마'의 환상은 본 단락의 '북으로
부터의 적'의 위험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며, 초기의 예레미야의 사역에 관한 규정
(1:10)은 본 단락의 하나님의 신탁(27-30절)을 통하여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또한, 본 단락은 바벧론의 침입에 대해 환상적인 묘사를 사용하여 서술함(22-26절)
으로써 실제성을 더해주고 있다. 즉 '활', '창', '전사', '항오', '해산하는 여인' 등
의 단어를 사용하여 다가올 재앙의 참상을 역동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유다의
패역한 죄악성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서술함으로써(27-30절) 거듭되는 심판 선언 속데
서도 걸러지지 않는 유다의 죄악을 효과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토대로 하여 본 단락의 내용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북쪽의 적이 접근해 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22-26절). 저자는 다가
오는 바벧론 군대가 잔인하며 사로잡은 자들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므로
유다 백성은 마치 해산의 고통처럼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24절).
결국 유다는 바벧론으로 인하여 마치 외아들을 잃어버린 자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
이다(26절).
(2) 예레미야의 사역의 성격을 통하여 유다의 죄악상을 이끌어내고 있다(27-30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예레미야는 쇠찌꺼기 가운데서 귀금속을 찾고 있는 사람처럼 자기 백성을 살피는 자의 역할을 감당케 된다(말 3: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본 대로 유다에는 공의와 진리를 행하는 사람이 없음을 선포하면서 예언의 풀무 '불'은 유다에게서 불순물들을 제거할 수가 없었다고 진단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로서 이 백성이 '내어버린 은'이 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언약 파기를 증명한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자신의 육적 욕망만을 추구하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아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마 5:13)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준행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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