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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기서부터 9절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의 죄악상과 도저히 용서받을수 없는 도덕적타락을 묘사하는 내용으로 되돌아간다. 아마 예루살렘에 임할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함인 것 같다. 이런 내용은 2장에서도 이미 다루었던 것으로서 그 전체적 주제는 여호와의 주권과 그의 언약을 거부한 결과 그들이 심판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 '공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쉬파트'(* )이며 '진리'는 '에무나'(* )인데, 이 두 용어는 구약의 주요 사상인 '의'(* , 체다카)와 '사랑'(* , 헤세드)과 함께 연결되어 여호와의 언약 사상을 구성하는 주요한 용어들이다. 즉, 선지자는 이를 통해서 여호와와의언약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만악의 뿌리가 바로 이 언약을 배반한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의인을 한 사람이라도 찾게 되면, 심판을 면케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 조건이었던 의인 열 사람보다 훨씬 더 쉬운 것이었다(창18:22-32).

=====5:2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는 것은 어떤 약속이나 의무에 대해 여호와를 그러한 약증의 증인 또는 보증인으로 불러낸다는 뜻을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은 약속이나 의무를 파기할 경우는 여호와의 심판을 자청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맹세가 남용되었으며, 또한 거짓 맹세의 표상이 되고 말았다.

=====5:3
성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 어떤 관점에서 보면, 본절이 2절 앞에 위치하는것이 더 논리적인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바꾸지 않아도 본문은 전후 문맥상 자연스러운 위치에 놓여 있다고 본다. 즉 1,2절과 관련하여 본문은 유다 백성의 타락상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실을 구하시나그들 중에는 한 사람도 성실히 행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본절 하반절과 관련하여 본문은, 하나님이 이 백성을 성실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징계라는 방편을 사용하셨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C.W.E. Naegelsbach).

=====5:4
비천하고 우준한 것 뿐이라 - '비천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달림'(* )인데, 원문에는 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것은 다음 어구인 '우준한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다음절의 '귀인들'(* , 하그돌림)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이 말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결여된 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옳겠다. 당시의유다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응징에 대한 시대 감각이 없었으며, 그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5:5
일제히 그 멍에를...끊은지라 - 정치적, 종교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온갖 속박을 벗어던지고 모든 도덕법들도 짓밟아 버린사실이, 황소가 멍에를 꺾고 주인에게 반발하는 예화로 소개되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말씀을 선포하던 시기는 요시야의 개혁이 있은 지 그리 오랜 세월이 흐른 때가 아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지적은 참으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분명히 요시야 통치 시절에는 왕의 명을 받아 개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그의 명을 시행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5:6
사자...이리...표범 - 본절에서는 유다 백성이 언약을 파기하고 마치 황소가 주인의 멍에를 부순 것과 같이 달아난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황소가 자기 주인의 멍에를 꺾고 달아났지만,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수풀에서 나온 사자나또는 사막의 이리, 또는 그 주위를 배회하는 표범의 공격을 당하고 만다.하나님을 버린 유다 백성의 운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들 야생 동물은 4,6장에서 지적되고 있는침략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용맹성과 난폭함에 있어서는 영락없이 사자와 같았으며, 탐욕과 욕심에 있어서는 이리와 같았다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재빠른 활약상에 있어서는 표범과 같았다(Thompson, Clarke). 허물이 많고 패역이 심함이니이다 - 이는 유다가 짐승의 공격을 받게 된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지적하는 부분이다.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페솨'(* )는 반역된 행위들을 가리키며, '패역'에 해당하는 '메슈바'(* )는 베도를 가리키고 있다. 즉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을 파기하고 언약에 명시된 의무 조항들을거부하였으면서도 회개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5:7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 여호와를 거역하고 신이 아닌 것들 곧 허탄한 우상을 의뢰하고 경배하였던 사실에 대한 지적이다. 아마 므낫세 당시의 극단으로 치닫던 배도 행각이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고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깊이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 이방어 종교의 신전 매음 행위가 요시야의 개혁으로일망 타진된 이후, 그것에 참여했던 창녀들과 포주들은 은밀한 곳으로 숨어 그들의 사업을 계속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창기의 집'이 우상을 숭배하는 곳을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겠다. 선지자들은 우상 숭배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행음이란말을 종종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우상 숭배와 함께 의식 순서 중의 일부로서 육체적 행응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 이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도 무난할 것이다.

=====5:8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 같은 죄악이긴 하나 율법 정신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범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아내된 여자를 범하는 것이 훨씬 더 중한 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것은 간음과 함께 타인의 것을 탐하는 죄가 추가되기 때문일 것이다.타인의 아내를 탐하는 것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고 또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적 근거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5:9
하나님의 심판은 여호와를 무시하고 또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반기를 들고나오는 이런 행위들에 대한 반드시 임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새 언약하에서도 하느님의 도덕적 질서를 범하는 이런 자들에게는 반드시 같은 처벌을 내리고 말 것이다(엡5:5; 히13:4). 한편 벌하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 )는 '방문하다'는뜻을 지니고 있는데, 하나님의 방문은 여기서처럼 징계를 위함일 수도 있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일 수도 있다.

=====5:10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본절에서부터 19절까지는 적의 침략이 임박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유다 백성의 잘못된 생각을 뒤엎고 북쪽의 적이 심판의 대행자로 올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유다 백성은 하늘의 농부로부터 극상품의 포도 품종으로 심기워졌으나 그 열매는 역겨운 냄새가 나는 들포도가 되고 말았다(2:21).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다의 대적을 불러 하나님 소유가 아닌 나쁜 포도나무의 가지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맡기셨다. 한편, 70인역(LXX), 수리아역(SyriacVersions of the Bible) 등은 이 부분을 '그 근본은 남겨 두라. 그것들이 주의 것임이니라'고 해석하였다.

=====5:11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심히 패역하였느니라 - 솔로몬 사후 두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 중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의 침략으로 멸망했으며 많은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그중 더러 본토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는이들마저 심히 패역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패역하다'에 해당하는 '바가드'(* )란 말은 '속이다', '가증하게 행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대문에 이 말은 대단히심각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예레미야를 몹시 핍박했을 것이다.

=====5:12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보지 아니할 것이며 - 백성들은 여호와의 언약을 어겨도 아무런 처벌이 없을 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 근복적 이유는 여호와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는데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본질상 그 마음에 하나님 모시기를 거부하는 인생의 추악한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된다(롬1:28). 결국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오는칼이나 기근의 심판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우리는 이런 그들의 말을 근거로 해서 그들이 자기 도취에 빠져 있었음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백성들은 언약 파기로 인한 저주 조항이 가동되어 그들에게 심판이 닥칠 것이란 점을 새까맣게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5:13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바람처럼 공허한 것으로 여기고, 그 대신 거짖 선지자들의 감언 이설(甘言利說)을 좇아 갔다는 내용이다. '바람'의 히브리어 '루아흐'(* )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저자의 언어 유희(Wordplay)를 보여준다. 즉,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람으로 간주하는 중죄를 범했다는 것이다(C.L. Feinberg).

=====5:14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하고 -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 의해 바람으로취급되어버린, 바로 그 말씀을 무서운 불로 화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로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서 이것은 '전투에 임하는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전투의 하나님'이란 개념을 가졌다(출7:4 참조). 여기서는 천체와 천사의 무리까지 포함하는 '하늘과 땅의 무리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보인다(시103:21; 사40:26 참조).

=====5:15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 유다를 응징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에 대한묘사이다. 바벨론은 예레미야 당시에 이미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였으며 나보폴라살 왕(B.C.625-605년) 때부터는 팔레스틴의 신흥 강국으로 등장하여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5:16
열린 묘실이요 - 바벨론 군사들은 모두 다 능한 궁수들이어서 결코 표적을 놓치지않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화살 하나는 한 사람의 목숨과 같은 것이며, 장병들 어깨에 걸려 있는 전통은 마치 뭇사람의 무덤을 짊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5:17
16절이 전쟁의 과정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본절은 전쟁의 결과를 서술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추수 곡물, 양식, 양떼, 소떼, 아들과 딸 등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말것이다. 그들은 성이 튼튼하다고 자랑하였으나 이것들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때가되면, 예레미야의 예언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게 되는 셈이다. 차라리 자신의 예언이틀리기를 바라는 예레미야가 이런 종말적인 상태를 에언한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5:18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 본절의 앞 구절들은 운문체로 기록되었으나 본절과 그 다음절은 산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여태가지 참혹한 심판의 결과를 묘사해 왔으나, 그것이 이 민족의 완전한 종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인데, 이는 예루살렘에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이 임하기는 하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철저한 심판 중에서도 긍휼과 위로의 메시지가 함께하는 것은(4:27),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이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에 있지 않고 그들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Feinberg, Harrison).

=====5:19
여호와를 버리고...이방인들을 섬기리라 -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이방신들과 연합하였기 때문에 이제 그들은 그 이방인들에게 속박당하며 이방인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본절은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임을 지적하는 예언으로서 범죄에 대한대가는 반드시 치르어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한다.

=====5:20
야곱 집에 선포하며 - 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반역적이고 자민에 빠져 있는 유다백성에게 경고의 말씀을 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5:21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들을지어다 - 하나님은 이들 미련하고 무감각한 백성들에게 그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으라고 초대하신다. 이들은 여호와의 주권에 대한명백한 많은 증거들이 있었음에도 그굿들에 전혀 무감각했으며 징계의 채찍을 맞고서도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눈이 있다고는 하나 보지못하였으며, 귀가 있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던 것이다(사6:9,10; 마13:14,15).

=====5:22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 앞에 떤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와 주권을 존중하고 경외한다는 의미이다.그러나 이들 백성은 앞절에서 지적되었다시피 우준하고 무감각한 백성들이었던 까닭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界限)을 삼되 - 예레미야 선지자는 설명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여기서 바다를 예화로 사용한다. 거대한 산이나 바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집력이 없는 모래에 의해서 거대한 파도가 땅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기묘함을 한층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의 무감각 상태가 심각하였던 관계로 선지자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5:23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 '패역하는'에 해당하는 원어는 '소레르'(* )인데, 이것은 반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아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로 작심을 하고 돌아섰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우리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바다라도 하나님이 설정해 두신 계한을 넘지 않고 순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22절) 그들의 주권자가 누구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유다 백성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5:24
이른 비와 늦은 비 - 이것은 가을비와 봄비를 말하는 것으로서, 때를 따라 내리는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했다(호6:3; 히4:16).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바알에게서 나오는것으로 보았던 것 같다.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 '추수 기한'이란 것은 초실절과 오순절 사이에 끼어 있는7주를 말한다.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의 초실절에는 하나님께 소산의첫단을 바쳤다(레 23:15,16). 이는 여호와께서 곡식을 주셨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5:25
너희 허물이...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 땅의 가뭄을 화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언약 파기를 가리키는 데 흔히 사용되었던 두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것은 '허물'(* , 아온)과 '죄'(* , 헤트)이다.'허물'은 '방황하다', '빗나가다'란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죄'는 '표적을 놓치다'란말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유다는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함으로써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바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것이다.

=====5:26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 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에는 7:2-15의 성전 설교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요약해 놓은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본절에서는 동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악인들이 새 사냥꾼에 비유되어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이들 사냥꾼은 유다 백성들을 노예로 끌려가도록 하는 데 일조한 자들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5:27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 악인들의 집에는 사기나 속임수를 사용하여 부당하게 얻은 소득이 가득하였다는 말이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던 아모스도 당시 사람들에게 이와 비슷한 내용의 비난을 하였다(암2:6 이하). 그들이 거부가 되고 높은 지위에 올랐던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재산을 강탈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富)를 축적하였기 때문이었다(Clark, Calvin).

=====5:28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않고도 어찌번영을 누리려느냐'란 의미로도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Clarke). 선지자는 여기서 악인들의 악행이 끝도 없고 한계도 없음을 지적하려는 것 같다. 그들은 고아의 송사에대해서는 변론하기를 거부하였고 가난한 자들의 주장을 묵살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정의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사리 사욕을 채우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한 사회는 이같이 악이 만연하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며, 필연적으로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고 만다(Harrison).

=====5:29
이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 모세의 율법은 궁핍하고 사회적 특권을 누리지못하는 피지배층의 보호에 대단히 관심을 두고 있다(출22:25-27; 23:3,6; 레25:35-37;신14:28,29; 24:12,13).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괴롭히는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었다. 유다의 주권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신이상 이러한 악행이 결코 용납될 수는 없었다. 심판을 앞둔 유다 사회의 상황은 심판받지 않을 수 없는 극도의 악행이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5:30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 어떤 주석가는 이 구절을 '기괴한 죄악과 엄청난 범법 행위가 이 땅에서 저질러지고 있었다'(Dahler)라고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죄사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낱낱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 구절은 다음절의 내용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Clarke).

=====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은 사회적 불의에 편승하여 온갖 부당한 특권을 누리던 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심정을 전달하며, 사회 악을 고발하는 참선지자의 예언을 대적할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 거짓 선지자들이 제사장들과 야합하여 그들의 기득권 옹호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대표적인 계층인 선지자와 제사장이 이처럼 불의를 위해 공모한다는 것은 앞절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참으로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그들은 제사장의 권위를 내세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개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로만 충성을 다할 뿐 그 당시의 유행에 편승하여 죄악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스리며'(* , 이르두)를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은 '자기 손으로 박수를 쳤다'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그들과 연합하였다'(Blayney)라고 해석하였다.



본장은 유다 민족 위에 곧 닥치게 될 심판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는 곳으로
서 하나님의 심판의 당위성을 진술하고 있다. 즉 유다의 범죄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종교적 삶의 변질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철저한 타락을 초래함으로써 도덕적 공백
상태를 산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이제 더 이상의 심판의 유보(留保)가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본장은 (1) 심판의 당위성을 진술하고 있는 전
반부(1-9절)와 (2) 도래할 심판의 성격을 논하고 있는 중반부(10-19절), 그리고 (3)
심판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후반부(20-3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여기서 저
자는 반복되는 언약 백성의 범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나님의 보편적인 보응을 중점적으
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예레미야의 두 번째 설교(3:6-6:30)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
지하고 있는 곳으로서 가깝게는 '예레미야의 슬픔'(4:19-31)의 근본적인 원인을 서술
하고 있는 동시에, 멀게는 이미 2장에서 다루었던 주제, 곧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지
적과는 달리 유다의 배도 성격이 종교적, 사회적인 측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본장에서는 유다의 부패가 단지 종교적 제사 의식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만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본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주제별로 다양한 표현 양식이 서술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다의 임박한 심판에 대해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서술 형태의 연합을 보여주는 대화식 구조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1-9절).
(2) 다가오는 심판의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그 심판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과 '남
은 자'에 관한 암시에 대해 시적 단편들의 모음으로 표현하고 있다(10-19절). (3) 유
다 백성의 실패에 관한 다양한 이해와 심판의 불가피성에 대해 '백성'이라는 단어의
반복적 사용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20-31절). 이러한 세 가지의 상이한 표현 양식을
통해서 저자는 첫째, 유다의 멸망은 확실한 사실이고, 둘째 멸망 이후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 공동체를 현실화 시키실 것이며, 셋째, 새 공동체는 현재 유다의 배도와는 다
른 새로운 특징을 지니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본장이 쓰여지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내용들을 토대로 추측
할 수 있다. 먼저 전반부(1-9절)에서는 임박한 심판의 확실성을 논하면서도 이론상으
로는 아직 피할 여지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멀리서 다가오
는 적이 바벧론 군대임을 분명하게 제시한다(15-17절). 그러나 그들이 아직 오지 않았
음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는 심판의 확실성을 선포하고는 있지만 가뭄에 대
한 지적과 분리되어 서술되고 있지 않고(3:3) 26-31절에 언급되고 있는 악습은 7:2-15
의 성전 설교에서 지적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결국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서 면밀히
추측해보면 본장의 배경은 요시야 통시(B.C. 640-609년) 시대 말기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사실들을 배경으로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으로 앞에서 지적한 우상 숭배와 거짓 종교 행사(2장)보
다 사회적 개인적 도덕성에 그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1, 3-6, 8, 9, 26-31절).
선지자는 개혁으로 인하여 거짓 종교 재단 중심지들이 파괴되고 바알 숭배의 더러운
요소들이 제거된 시점에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완전한 주권에 대한 인정에는 예배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언약 규정에 대한 주의 깊은 준수가 요청됨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
님의 은혜에 대한 자각과 인정은 필연적으로 윤리적인 삶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러기에 단순히 제단들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언약 백성들이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레미야는 유
다 백성들의 부도덕한 삶을 지적하며 심판의 당위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 유다의 심판 이유에 대해 1-4장에서와는 달리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7-9, 11-13절). 이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유다는 공개적으로 우상 숭배를
일삼을 정도로 패역하였다(3:6-9). (나) 유다는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
시는 풍성한 은혜(롬 2:4)를 망각하고 영적, 육체적 음행에 몰두하였다(8절). (다) 유
다는 패역하여 하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유다 백성들은 외형적으로 하나님의 제사 의
식에 참여하였지만 실제적인 무신론자라고 볼 수 있다(12절). (라) 유다는 참선지자들
의 말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흘려 버렸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히브리어 '루아흐'의 이
중적 의미, 곧 성령과 바람이라는 뜻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선포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로 들었
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패역의 절정이라 하겠다.
이상의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백성들의 범죄 실상이 결코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불신자들처럼 하나님을 도외시한 상태에서 자
신들의 인간적 판단 근거에 의해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신자는 실제적인 무신론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세상과
의 차별성을 통해 빛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1. 철저히 타락한 유다(5:1-9)
본 단락은 앞으로 유다 백성에게 임할 심판의 불가피성에 대해 예레미야와 하나님
과의 대화를 통하여 객관적인 사실로 증멸하고 있는 부분으로서, 과연 유다 백성이 용
서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이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은 언약 백성으로
서 유다의 자격에 대한 예레미야의 강한 회의(懷疑)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선지자 자신
의 처절한 독백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총체적 부패의 늪에 빠져 있는 유다의 모습을 묘사하는 본문은 (1) 유다의
철저한 타락을 시사하고 있는 전반부(1-3절)와 (2) 유다의 지도자들의 영적 빈곤과 장
래의 파멸을 다루고 있는 중반부(4-6절), 그리고 (3)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강한 의지
를 보여주고 있는 후반부(7-9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예
레미야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유다의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는 죄의 심각성
을 강력히 부각시키면서 심판의 필연성을 자연스럽게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에는 하나님과 예레미야 사이의 대화 형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1)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1, 2절) |
| (2) 예레미야의 반응(3-6절) |
| (3) 하나님의 응답:(가) 유다(예루살렘)에 대한 공식적 선언(7a절) |
| (나) 예레미야에 대하 하나님의 응답(7b-9절) |
+---------------------------------------------------------------------+

또한 본 단락의 일부분은 몇몇 단어들의 반복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1) 1절에서의 하나님의 '진리'(에무나)에 관한 언급이 3절의 선지자의 반응에
서 '성실'로 언급되고 있다. (2) 1절에서 유다의 '용서'(살라흐)에 대하 가능성이 7절
에서 재차 언급되고 있다. (3) 3절의 선지자의 진술 가운데서 동사 '치다'(하카)와 '
돌아오기를 싫어하다'(메아누 슈브, 3, 6절)가 4, 5절의 '비천한 자와 귀인'의 운명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본문은 세 개의 수사학적 질문을 통하여(7-9절) 현재 유다의 특징을 간접적
으로 설명한다. 즉 첫째, 하나님께서 왜 유다를 용서해 주셔야만 하는가 둘째, 왜 죄
를 지은 유다를 벌하지 아니하겠는가, 셋째, 언약을 어긴 유다에게 왜 보응하지 않겠
느냐 등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용서받지 못할 유다의 상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토대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언약 백성의 특성이 묘사되어 있다(1절).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공의'(미
쉬파트)를 행하며 '진리'(에메트)를 구하는 자라고 말한다. 이 두 용어는 일반적으로
예언 문학에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그 동료들과의 관계를 지배하
는 언약의 특성을 뜻한다. 동시에 이 용어들은 대개 히브리어 '체다카'(올바른 행위,
의)와 '헤세드'(사랑, 진리, 특성)란 말과 연결되어 그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언약에 충실한 삶을 영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약 백성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언약 백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발견치 못하였다는 사실(창 18:23-32)은 이미 그들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음을 알려준다.
(2) 언약을 어긴 유다의 심각한 상태에 대해 몇 가지의 단어들을 통하여 구체적으
로 심화 시키고 있다(4-6절). 첫째, 유다가 '비천한 자'이면서 동시에 '우준한 자'임
을 밝힘으로써(4절)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백성의 영적 무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언약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도덕적 삶에 전혀 문이한이면서도 그저 예루
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는 백성들의 허구성을 지적
하는 것이다(7:4). 둘째,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 백서응로서 '허물'이 많음을 지적한
다. 이 단어는 유다가 언약의 준칙들을 무시함으로써 수많은 반역 행위들을 저질러 왔
음을 의미한다. 셋째, 유다의 '패역'(메슈바)을 드러낸다. 이 용어는 유다에 의해 언
약의 의무 조항들이 일방적으로 거부되어 왔음을 알려 준다.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과를 알 수 있다. 하나님
의 은혜를 전적으로 망각한 유다는 종교, 정치, 문화 등 전체 영역에서 심각한 부패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그리스도이 은혜에 기초하여 성결한
삶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2. 심판의 성격(5:10-19)
본 단락은 유다의 패역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될 심판의 이유를 진술하고 있는 동시
에 그 심판의 대행자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심판 선언의 와중에
서도 '남은 자'에 관하 소망을 피력함으로써 가시적인 유다의 멸망이 결코 언약의 본
질적인 부분까지 침해하지는 못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유다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자만에 빠진 것으로 인해 무
서운 심판이 임할 것임을 선포하는 전반부(10-14절)와 (2) 그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
도래할 북쪽의 적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15-17절), 그리고 (3) 심판의 양상과
결과를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18, 19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악을 위협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원받게 될 것이라
는 소망을 전달해 준다(사 10:22;롬 9:27).
한편 본 단락의 구조는 각 부분간의 상호 밀접한 관련과 내적인 점진성으 드러내
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 A. 심판은 마지막 상황이 아님(10-13절) |
| B. 선지자에 대한 말씀(14절) |
| C. 유다에 대한 심판(15-17절) |
| A'. 심판은 마지막 상황이 아님(18, 19절):A 안의 10절과 내용이 유사함. |
+-----------------------------------------------------------------------------+

또한 본 단락의 표현들은 각 구절마다 매우 독특한 양식으 취하고 있는데 마치 수
많은 짧은 어구들이 모여서 편집된 듯한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본 단락은 이미 앞장
들에서 묘사한 사실들중 가장 핵심적인 사실, 곧 '배도 심판 회복' 등에 대해 종합적
으로 모아 놓은 곳이다. 다시 말해 10절은 이스라엘을 선택된 포도나무로 묘사하고 있
는 2:21의 내용으로 소급되며, 신의가 없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언급은 3:6-11을
상기시킨다. 또한 남은 자에 관한 사상(10, 18절)은 3:14, 15, 17의 내용들을 구체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임박한 유다의 심판이 언약 백성의 마지막 파국이 아님을 제시하고 있다(10,
18절).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2:1-3)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이기 때문에 유다의 심판이 하나님 계획의 종국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택한 백성의 완전한 파멸은 하나님 자신이 그 언약을 파기하시는 결과가 되므로
실현될 수 없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는 유다에 대한 보복 행위나 최종적 멸절이 아니
라 선택된 백성 중 남은 자들을 통하여 구속 언약을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볼 수 있다.
(2) 이스라엘과 유다의 배도의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12, 13절). 유다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정면으로 부인하며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맹목적인 자기 도취에 빠져
있다. 사실 그들은 계속되는 심판 선언 속에서 언약 파기가 언약의 저주 조항들을 가
동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으로 연결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약 의무 조항들보다
는 언약 당사자로서의 특권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언약 파기를 묵인
해주실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백성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인하여 더욱 확대되었을 것이다
(13:13, 14).
이상의 본 단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철저히 심판하심으
로써 죄악을 경계시키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면한 고난에 대
해 반항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섭리적 역사로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극복
해야 할 것이다.

3. 심판의 원인(5:20-31)
본 단락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고 서로 속이며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착취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특히 선지자와 제사
장들까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는 예레미야의 질책은 우준하고 반역적이며 자만에
빠져 있는 유다백성들의 총체적 부패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
실들은 인간의 정의와 사랑의 원천이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필연적으로 사회적, 도덕
적 타락을 수반하게 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러한 (1) 하나님이 삶의 원천이며 생명 유지의 근본임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있는 유다의 우매함을 설명하는 전반부(20-25절)와 (2) 몇몇 특정 범죄들을
지적함으로써 언약 백성으로서의 도리를 망각한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중반부(26-29
절), 그리고 (3)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를 표현하고 있는 후반부
(30, 31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유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단순히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하나님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고 마침내 공동체 내의 심각한 윤리적 파괴 현상을
초래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단락은 각 부분마다 독특한 표현 양식을 소유하고 있다. 이 점을 정리해보
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반부(20-25절)에서는 회중을 대상으로 선포된 시적 형태를
같추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유다 백성들의 완고함을 효과적으로 고발하기 위해 시가
체를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중반부(26-29절)에서는 유다 백성들의 비정한 태도
에 대해 다양한 비유들을 통하여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1-9절의 내용을 좀더
구체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후반부(30, 31절)는 앞서 서술된 시적 형태들
과는 다른 독립적 형태를 띠고 있는 곳으로서 당시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은 12, 13절의 내용을 좀더 구체화시킨 것으로서 다양한 표현
양식을 통하여 백성드리의 삶의 형태를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이상의 사실을 배경으로 본 단락에 나타난 구조적 형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A. 유다 백성들의 실상(20절) |
| B. 하나님의 선언(21, 22절) |
| B'. 예레미야의 회고(23-25절) |
| A'. 유다 백성들의 실상(26-29절) |
| A''. 유다 백성들의 실상(30, 31절) |
+--------------------------------------------+

이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예레미야는 이제까지 유다 백성들의 지각과 눈, 그리고 귀에 호소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음을 깨닫고 마침내 지각 없는 백성들의 성품에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가) 자연도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를 준수하는데 어찌하여 너희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
의 규례를 거역하느냐(22, 23절), (나)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서도(히 4:16)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는 커녕 감사하는 마음조차 가지지 않았
다(24, 25절). (다) 동족간에 서로 속이며 헐뜯을 뿐만 아니라 불의한 송사를 일삼는
다(26-28절). 더구나 보호의 대상인 고아와 과부, 그리고 빈천한 자들의 송사까지도 공평하게 판결하지 않고 있다(시 146:9).
(2)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자 대해 저자는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25절)고 말한다. 여기서 '허물'(아온)이란 말의 본래 의미는 '방황하다', '빗나가다'란 뜻을 내표하고 있으며, '너희 죄(하토테켐)의 본래 의미는 '표적을 놓치다'라는 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결국 저자는 유다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방황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체결된 언약을 전적으로 무시했다고 말하는 거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지 않는 유다의 고집스럽고 반역스로운 마음은 심각한 파범죄를 유발하여 언약적 저주의 실행을 재촉하게 만든다.
이상에서 우리가 본 단락을 통해서 얻게 되는 교훈으로는 성도들이 대인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 점검해 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성도들의 모든 삶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평강에 의해 지배받아야 할 것이다(골 3:15;벧젠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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