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이 매우 어렵고절박하였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은 안팎의 여러 문제들이 직면하여 이제까지 취해오던 노선을 변경시켜 다른 방도를 따르고자 나름대로 모색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오직 당신만을 의뢰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특히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 나타났던 그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그들이 가담하고 있는 모든 의족적 외교 조약과 우상을 타파하고 오직 여호와의 주권만을 인정하는 실질적인 회개를 통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가증한 것을 버리고 - '가증한 것'에 해당하는 원어는 '쉬쿠츠'(* )로서구약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다. 이것은 불결한 의복(나3:6), 우상에게 바친 음식(슥9:7), 그리고 이교도의 신들(왕상11:5; 왕하 23:13; 대하15:8)을 가리키며, 때로는거짓 신들을 섬기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호9:10). 여기서는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가증한 것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와 다른 신들은 양립될 수 없고 화합될 수가 없다.
=====4:2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 때로는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란 말로도 번역되는 이구절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할 때에 사용하는 상투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십계명 중 제3계명은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출20:7; 신5:11).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맹세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구약 예언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들이다.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 여호와의 주권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이스라엘이 약속된 축복의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다른 민족들도 축복의 참된 근원이 여호와께 있으며 그의 언약에 순종할 때 축복을 받게 됨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는 이스라엘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게되는 것이다(사42:6; 49:6).
=====4:3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 - 본절의 유다가 1절의 '이스라엘'의 일부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진다. 어떤 주석가들은 1절의 '이스라엘'이 현재 포로로 잡혀가 있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본다(Streane, Welch). 그러나 문맥상 본절과 4절은1,2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본절의 '유다'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변방 주(州)로 편입된 이후 남하한 백성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묵은 땅을 갈고 - 여기서 '묵은 땅'(* , 니르)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된 바가 없는 '새 토양'을 뜻한다. 결국 분문은 개혁 기간 동안의 형식적, 피상적 회개가 아닌 근복적 회개를 요청하는 내용으로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란(마9:17; 막2:22) 예수의 비유와 일맥 상통한다.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라는 토지가 과거, 특히므낫세 통치 이후에 악행이라는 가시덤불로 만연되어 있으며, 유다의 유일한 희망은오직 새 토지를 경작하는 것뿐임을 지적한다.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기된 온갖종류의 폐단들, 곧 가시덤불을 회개와 순종이라고 하는 쟁기로 갈아서 온전히 제거해버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C.L. Feinberg).
=====4:4
할례를 행하여...마음 가죽을 베고 - 할례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창17:1-14 주제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참조). 이 의식은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으며(창17:10-14) 단순히 외적인 표징이 아니라 여호와의 주권에 전혹적으로 순종한다는 내적 실체에 대한증거였다(신10:16; 30:6). 한편 선지자는 여기서 남자 성기 표피 끝을 잘라내는 할례를 말하지 않고 마음 가죽을 베어낼 것을 명하고 있다. 이 '마음'이란 지성과 의지,감정 등을 다 포함하는 내적 삶의 전체를 뜻한다. 즉, 마음이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한 물리적인 할례 의식으로는 언약의 취지를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 언약 파괴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근동의 종주국과 봉신국 간에 체결된 언약에도 축복과 저주가 뒤따랐다. 언약을 배반한 봉신은 대군주의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권 군주이신 여호와는 자기와의 언약을 깬 이스라엘을 징벌하고야 마신다. 그리고 그 징벌을 예레미야는 '끌 자가 없는 불의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런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7:20; 사1:31; 암5:6등).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응징했던 것과 똑같이 이제 유다도 심판하실 것인 바, 유다는 이미 그의 주인 이스라엘보다 더 범죄해 있었다(3:11).
=====4:5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 여기서부터는 심판의 상세한 내용이 묘사된다. '나팔을불라'는 것은 사자(使者)의 가슴 아픈 전달 사항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알린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은 호세아가 외친 경고의 말씀과 유사하며(호5:8), 후대의 요엘 선지자도 이와 비슷한 경고를 고하였다(욜2:1).
=====4:6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 '기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 )는 '표준', '기준', '신호'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무슨 신호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위급한 상태를 알리기 위해 먼 지역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봉화와 같은 것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라기스(Lachish)의 발굴에서 나온 편지중의 하나는 B.C.586년 느브갓네살 침략 당시 남유다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 편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왕께서 지시한 대로 우리는 리가스의 기호('네스')를 지켜보고 있나이다.'=====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 여기서 사자에 비유된 침략자는 바벨론을 가리킨다. 51:38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혼비 백산하는 바벨론 거민들을 부르짖는 사자새끼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은, 마치먹이를 찾아 나온 굶주린 사자에게 찢기듯이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당시 바벨론은 B.C.612년에 앗수르를 점령한 데 이어서 근동 지역의패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주변 열국들을 초도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4:8
굵은 베를 두르고 - '굵은 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킴'(* )은 거칠고조잡한 삼베류의 옷을 뜻하는데 흔히 슬픔과 애곡을 표현할 때 입었다(사15:3; 겔7:18등).
=====4:9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던 왕과 방백, 제사장, 선지자 등의 지도층 인사들이(2:8,26) 이 소식에 놀라 공포에 사로잡히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왕과 방백 등의정치 지도자들은 안전과 희망의 근거를 잃었기 때문에 쓰러진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내세운 희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며 배도한 제사장들이 내세운 공허한 안전 역시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다.
=====4:10
슬프도소이다...주께서...크게 속이셨나이다 - 이는 예레미야가 받은 바 하나님의심판에 관한 계시에 대단히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다(19절). 이것은 또한 예레미야의성품이 어떠한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과 많은 대화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얼핏 보면 예레미야의 이런 항의는 참람되어 보인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이 실행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자기 자신의 삶이든 아니면 타인의 삶이든 간에비극적인 처지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낀 데서 나온 일시적인 한탄인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 본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본 구절 또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혹자는 '이르시기를'을 '그들이 이르기를'이라 번역한 70인역(LXX)에 근거하여, 본문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heyne, Hyatt). 그러나 이는 원문 독법상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보다 적합한 해석으로는,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 이설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인간의 자의적 악행을 하나님이 허용하거나 내어 버려두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그 악행에 개입하신 것처럼 표현한 사례가 종종 나온다(출9:12; 살후2:11).
=====4:11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 '뜨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흐'(* )는문자적으로 '맑은', '깨끗한'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서파멸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맑은 바람이 '파멸'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그 어떤 방파제 같은 것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그리고 이 바람은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오는데, KJV, RSV에서는 이를 '내 백성의 딸'(the daughter of my people)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내 딸'과 '내 백성'은 동격으로 쓰이고 있으므로 '내 딸=내 백성'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것이다. 비록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긴 해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를분명하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함도 아니며 - 이는 타작 마당의 키질하기 위해 부는 바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앞으로 유다에 임할 바람은 알곡을 추리기위한 키질용 바람이 아님을 선포한 것으로서 이들을 몽땅 날려버리는 엄청난 파멸의바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CALVIN, J.Bright, Nicholson, Clarke).
=====4:12
나를 위하여 오리니 - 유다에 임할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왔음을 가리키는말이다. 여태까지 유다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았던 것에 대한 보응으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베푼다'는 것은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사 유다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을 선고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Thompson, Clarke, NIcholson).
=====4:13
구름같이...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 심판의 도구로서 유다에 밀어닥칠 적군의진군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환상을 통해 유다를 침략할 적군이마치 빽빽한 구름과도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고뇌에 찬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12-18절이 끝난 다음에 기술되어있다. 이에 대한 백성의 반응은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란 것이었는데,이는 온 땅이 황폐화 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자책과 후회의 한탄을 말한다. 하나님의심판이 비록 더딘 것 같아도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때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막을 수 없고 또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J.Bright, Nicholson).
=====4:14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 예레미야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상하게 하다', '깨뜨리다' 등의뜻인 '라아'(* )에서 유래한 말로서 구약에서 흔히 쓰인 단어이다(창6:5; 출32:22; 민32:13; 신1:35; 삿9:56; 삼상25:21등). 3장에서도 예레미야는 이와 유사한회개로의 부르심을 촉구하였다. 아마 예레미야는 심판이 문앞에 이르렀다고 해도 회개로의 부르심이 늦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Thompson).
=====4: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 '단'은 팔레스틴 북부 변방의 한 도시로서 오늘날의 '텔엘-카디'인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예레미야 당시 이곳은 정치,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은 이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예루살렘의 전방 기지와 같은 곳이었다.바로 이런 곳에서 적의 침략을 알리는 소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Nicholson).
=====4:16
에워싸고 치는 자들 - 클라크(Clarke)는 본문에 해당하는 원어 '노체림'(* )을 '지키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다 성읍을 점령하고 파멸시킬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Calvin).
=====4:17
밭을 지키는 자같이 - 본절의 장바변은 시골 농부가 곡식단을 돌보기 위해 임시로만들어 둔 오두막에서 들짐승이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던 것에서 따온 예화인데, 아마 이런 알기 쉬운 예화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Nicholson, J.Bright).
=====4: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불구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밀어닥친 심판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는 너의 악함이라'는 말은 심판이 백성들의 악으로 말미암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이다.
=====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 본절에서부터 21절까지는 갈대아인들에 의한예루살렘의 파멸과 유다의 황폐를 내다보는 에레미야의 내적인 고통과 근심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마 그는 팡에서 예언한 그 모든 환난의 내용을 환상을 통해 직접 목격했던 것 같다. '슬프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에'(* )의 뜻은 '창자'인데,아마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히 심각하게 주어졌을 경우, 신체 내부 기관이 이를 감당할수 없어 어떤 방응을 나타냈던 데서 유래한 단어인 것 같다(Thompson).
=====4: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성들이 불타고 거민들이 내어쫓기고 학살당할 것이다. 나의 천막...나의 휘장 - 이는 유목민 시대의 천막 생활에 대한 잔재를 나타내는것으로서, 튼튼한 요새들이 아무런 방어 수단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4:21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 예레미야의 내면에서는 재앙으로 인한 전쟁의함성과 나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귀는 이미 이러한 소란스러운고함 소리에 지쳐 있었으며, 그의 눈에는 자기 동족의 비극적인 고통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4:22
나를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요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지침이나 교훈에 대한 앎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 대해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때, 이 말속에는 그 백성들의 불신과 반역 및계명에 대한 불순종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Mckkane).
=====4:23
혼돈하고 공허하며 - 본절에서부터 28절까지는 임박한 파멸에 대한 심판의 참상이환상을 통해 표현된다. 본문의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 )는 창1:2에서 땅이 창조되기 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인 말이었다. 이런 표현을통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이 마치 땅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혼돈을 초래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4:24
진동하며...요동하며 - 클라크(Clarke)는 본절의 '산들'과 '작은 산들'이 '왕과 방백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서 달아날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물론 이 해석도 무난하겠지만 앞 구절과의 연결을 중시할 때, 산들이 진동할 정도로 유다에 밀어닥칠 바벨론 군대의 공세가 무시무시할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이좋겠다. '산들'과 '작은 산들'은 흔히 힘과 안정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힘과 안정의 상징이 모두 흔들리고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J.Bright).
=====4:25
새가 다 날아갔으며 - 파멸과 황폐함의 철저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한편 하나님은 악인을 멸하실 때에 짐승과 새와 물고기도 함께 멸하신다고 말씀하셨다(습 1:3).
=====4:26
본절에서는 쓸쓸함과 파멸이 그 이전의 풍성한 결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황무지로 변해버린 '좋은 땅'의 원어는 '카르멜'(* )인데, 이것은 어떤 특징 지역을 가리키기보다는 풍요로웠던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Cheyne).
=====4:27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 이 구절은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앞 구절들에서는 이 땅 전체가 황폐해질 것으로 지적했으며, 이어지는 28절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하나님의 심판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타개하기 위해 혹자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로'(* )를 생략하거나, 이를 강조의 '라멕'(* )으로 보기도한다(Soggin). 그러나 우리는 이땅이 비록 황무지가 된다 하더라도 23-26절에 묘사된바와 같이 완전한 종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여러 주석가들은 이를 심판 중에도 남은 자가 이 재앙에서 살아 남게 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R.K.Harrison).
=====4:28
땅이 슬퍼할 것이며... - 여기서는 땅과 하늘에 대한 의인법이 쓰이고 있는데,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도 흔히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혹자는 '땅이란 그 땅위의 거민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땅의 멸망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깊은선지자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겠다. 즉 감각이 없는 땅조차도 슬퍼하는데, 정작 슬퍼해야 할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점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Calvin).
=====4:29
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시온의 극심한 고통을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침략자들의 진군 소리에 놀라서 달아나며, 안전한 곳으로 숨는다. 또한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기어들어가며,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이사야도 하나님의 심판이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에게 임할 것임을 예언하면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사2:19-21).
=====4:30
네가 붉은 옷을 입고...꾸밀지라도 - 고운 옷으로 차려 입고 온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눈썹을 그리는 이 같은 행동은 창녀가 손님을 맞을 때 하는 행위를 암시하는데,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갖추던 장식(사3:18-23)을 비유하기도 하며 약소국이 대국의 침략을 당하여 제3국에게 원군을 요청하며 예물을 바치는 모습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곧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유다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로이해된다.
=====4:31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 창녀의 행위를 예화로 들었던 선지자는 여기서 그 표상을 바꾸어 첫 아기를 해산하려고 울부짖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여인의 고통하는 소리를 딸 시온의 소리로 설명한다. 유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기의 진정한남편을 거부하고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과 같은 정부들과 놀아났었다. 그리고 이제음란한 유다의 악행은 그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본장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회개 촉구(3:6-25)를 최종적으로 선
언하고 나서 머지않아 도래하게 될 심판을 기술하고 있다. 특별히 1-3장에서 암시되어
오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아주 극적으로 공포(公布)하면서(3, 4절) 4:5-6:30의 중심
주제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다. 이러한 내용은 넓게는 이미 앞에서 제시된 끓는 가마
환상(1:13-16)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성취로 간주될 수 있고, 좁게는 3:6에서부터
서술된 예언 단락의 종결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경고가 심판에 앞
서 주어진 것은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자비로운 마음에 근거
한다. 동시에 심판이 주어질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민 23:19).
이러한 본장은 (1) 참된 개혁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전반부(1-4절)와 (2)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중반부(5-18) 그리고 (3) 반복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후반부(19-31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
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주어질 심판의 성격이 철저히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
로써 유다의 영적 무감각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함편, 본장에는 두 가지의 표현법이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다. 첫째로, 비유적 표
현의 사용이다(11-18절). 독립적으로 한 편의 짧은 시를 이루고 있는 전쟁 그림(13-17
절)속에 상세히 묘사되고 있는 비유는 유다에게 들이닥칠 참변이 마치 사막에서 불어
오는 뜨거운 바람과 같이 강력한 것임을 시사하여 심판의 양상을 예언해 주고 있다.
둘째로, 호화적 기법의 사용이다(23-28절). 저자는 두드러지고 놀라운 회화적 영상을
통하여 유다에 임하게 될 심판이 세계적 양상을 띠고 돌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묘
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생
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범죄한 이스라엘과 유다가 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곧 (가) 하나님 앞에서 가중한 것을 버려야 함(1절;욜 2:12), (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새해야 함(2절;창 22:18;고전 1:31), (다) 묵은 땅을 갈아야 함(3절;호 10:12;마
13:7), (라) 마음의 가죽을 베어야 함(4절;약 1:21)등이다. 여기서 '가중한 것'은 하
나님보다 우위에 놓고 경배하는 모든 대상을, '묵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닫혀진 마음, '마음 가죽'은 도덕적 성품 등을 의미하고 있다.
(2) 유다의 패망을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점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
다. (가) 5010절:'북으로부터 오는 적'에 대한 예고(5-8절)와 이 사건이 초래할 좌절
을 서술하는 짧은 신탁(9절), 그리고 예레미야의 불평(10절)이 나타나 있다. (나)
11-18절:대파국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지하는 신탁(11, 12절)으로 시작하고 나서 적
의 접근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시(13-17절)가 뒤이어 나오는데 회개에 대
한 마지막 간청(14절) 때문에 중단된다. 아울러 죄로 인하여 재난이 초래되었다고 설
명하는 간단한 해설이 나온다(18절). (다) 19-22절:예레미야의 조국 멸망에 대한 고뇌
에 찬 고백이 등장하고(19-21절), 이에 덧붙여 나오는 짧은 신탁(22절)은 모든 불행의
원인인 백성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있다. (라) 23-28절:환상(23-26절)을 통하여 선지
자는 도래하는 심판을 두려움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심판을 결코 완
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신탁이 주어진다(27, 28절). (마) 29-31절:적의
접근과 예루살렘의 곤경을 묘사하여, 예루살렘은 정부(情夫)들의 손에 죽는 매춘부에
비유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심판의 철저함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해 필연적으로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성
도는 죄의 무서음을 자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노
력해야 할 것이다.
1. 진정한 개혁의 모습(4:1-4)
본 단락은 참된 개혁의 본지이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적 개혁임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성전 제사 의식의
지속으로 개혁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백성들에게 언약의 본질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
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 거듭되는 회개의 요청을 시사하고 있는 전
반부(1, 2절), (2) 참된 개혁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는 후반부(3, 4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저자는 언약 백성의 본질(identity)은 외부적인 순
종에 있지 않고, 오직 마음과 결부된 내적 순종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진술한 바 있는 3:22b-25의 회개의 서술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본 단락에
서 두 부분으로 제시된다. 먼저 1, 2절에서 하나님은 참된 회개의 의미를 상세히 말씀
하신다. 즉, 3:1의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本夫)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란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들에 대해 두 가지의 비유
(농사, 유대인의 할례 의식)들을 통하여 다시 확대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표현에 뒤이
어서 참혹한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5-31절) 이 회개의 외형
적 선언과 백성의 실제적 행동 사이에는 대응되는 바가 전혀 없음을 동시에 알 수 있
다.
이상의 사실을 배경으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서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우든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초로 하여 자기 백성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비로우신 의도를 가지고 계신다(1절). 그런데 이러한 은혜는 단순히 형식적인 회개
문을 암송하는 것으로 인함이 아니라-아마 요시야 개혁 운동 당시 이 같은 형식적인
회개문이 종종 사용되었던 것 같다-다른 신들과 맺은 모든 조약들을 분명하게 거부하
는 결단에 의해서 제시된 신실하고도 영속적인 회개에 근거하는 것이다. 결구 하나님
의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
행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수준은 '진실'(에메트),
'공평'(미쉬파트), '정의'(체다카) 등을 실천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의 질을 확보할
때 언약은 영속적으로 지속되고 택한 백성의 구원을 보증하게 된다.
(2) 선지자는 회개의 필요성을 알려주기 위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가) 농사에 관한 비유이다. 즉, 농부가 기경하지 않은 땅에는 씨앗을 뿌리지 않는 것
처럼 하나님도 회개치 않는 마음에는 축복의 씨를 뿌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나) 유
다인의 할례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계약하에 이루어진 징표(창 17:9-14)이나 마
음의 할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직 심령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내적인 요건이
외부적인 신앙 고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9:25, 26;신 10:16;30:6;롬 2:28, 29). 그
러므로 만일 유다가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진노는 백성들을 향하
여 격렬히 타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본 단락을 통하여 얻게 되는 교훈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죄악된 과거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말씀에 입각한 영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진리와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2. 임박한 심판의 경고(4:5-31)
본 단락은 하나님의 거듭되는 화해의 요청(3:6-4:4)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한 유
다에게 이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관계를 기억하사 이제 임박한 심판에 앞서서 최종
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닥칠 재앙의 양상에 대해 환상을 통하여 그 참혹함을
제시함으로써 유다 백성을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을 간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후의 심판의 실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의 공의로우심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는 전반부(5-18절)와
(2) 심판의 광경을 환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9-31절)로 나누
어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가 심판에 앞서 주어진 것은 언약 백성들에게 회
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영영히 기억케 하시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앞서 제시된 심판의 위협(3, 4절)이 좀더 극명하게 현실적으로 묘
사된 곳으로서 예레미야의 환상을 통하여 그 심각함이 명로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심
판에 대한 예언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바 있으므로 새삼
스러운 사실은 아니었다(사 29:1-16;호 8:1-4;미 3:12). 그러나 이제 예레미야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다 주위의 국제 정세가 더욱 급박해짐으로써 예레미야 환상이 그저 자신
의 깊은 내적 이해에 그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
다.
또한 본 단락의 내용을 보면 심판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생생하기 때문에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목격담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본 단락의 연대에 관하여 요시야 통치 시기에서 시드기야 때까지의 다양한
입장이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생생한 상징법이나 회화
적 영상을 사용하여 미래의 사건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파멸
의 전조를 심각히 받아들였으며, 침략군의 특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
기 때문에 더욱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의부 침략에 대한 선언(5-13절):유다에게 다가오는 파멸의 경고가 나팔을 부는
것(도래하는 위험이나 전투의 신호 역할)과 견고한 성읍으로 피난하기를 요구하는 사
실로 적절히 소개되고 있다(5절). 이러한 사실은 이미 1:13-16에서 예언도니 북으로부
터의 재앙이 이제 현시로하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침략국에 대해서는 어떠
한 명확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주변 정세로 보아 바렐론을 의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그날에는 이제까지 거짓 예언(6:14;14:13;23:16, 17)을 통한
왜곡된 희망으로 조금의 참회도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각계 각층의 유다인들이 강력한
침입자들의 뒤세에 두려워하며 놀라게 될 것이다(9-13절).
(2) 회개를 호소함(14-18절):하나님께서는 군대를 보내어 유다를 징벌하도록 하셨
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재앙에
고나한 책임은 전적으로 유다 자신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옐루살렘
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만 한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긴바한 운명으로부터 구
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14, 15절).
(3) 선지자의 번민(19-22절):이 부분은 자주 '예레미야의 십자가'라고 언급되어지
는 곳으로서 마음 깊은 곳의 슬픔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슬픔의 원인에 대해
저자는 (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 (나) 지각(知覺)의 부족, (다) 미련함 등이
라고 말한다(22절). 사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
해 무관심한 자들을 보면서 큰 아픔을 느끼게 된다.
(4) 혼란과 파멸의 시간(23-31절):이곳에서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극적이면서도 희미하게 경험하고 있다(23절). 그러나 이 같
은 유다의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희망을 선언하고 계신다(27
절;5:10, 18;30:11;46:28). 이러한 사실은 언약이 무효화되지 않으며 언약 공동체가
남은 자들을 토애여 회복될 것임을 보여준다(6:9;23:3;42:19;사 11:16;암 5:15;미
2:12;습 2:9;학 1:1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땅을 슬피 울 것이며, 심판은 오
고야 말 것이다(28-31절).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들은 저자가 하나님께서 당장 유다에 대해 심판하심으로써
마치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무효화시키는 듯함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23-26절에서의 독특한 표현을 통하여 역설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이 남
은 자들을 통하여서(27절) 전 우주적으로 전환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사실
에 대해 예레미야는 창세기의 창조 사실과 관련지워 표현하고 있다. 이 점을 도표를
통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대혼란 | 창조 |
+-------------------------------+-----------------------------------+
|혼돈과 공허(23절) | 혼돈과 공허(창 1:2) |
+-------------------------------+-----------------------------------+
| 빛(23절) | 빛(창 1:3) |
+-------------------------------+-----------------------------------+
| 하늘들(23절) | 하늘들(창 1:8) |
+-------------------------------+-----------------------------------+
| 땅(23절) | 땅(창 1:10) |
+-------------------------------+-----------------------------------+
| 새(25절) | 새(창 1:20) |
+-------------------------------+-----------------------------------+
| 사람(25절) | 사람(창 1:26) |
+-------------------------------+-----------------------------------+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 당시의 유다의 심판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당시의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 공통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참담한 상태가 되었다. (2) 그러나 그 언약의 본질은 유효하며 새 창조를 통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3) 그러므로 계속되는 배도 속에서도 끊임없이 선택된 백성을 위하여 신실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 본문은 당시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이 매우 어렵고절박하였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은 안팎의 여러 문제들이 직면하여 이제까지 취해오던 노선을 변경시켜 다른 방도를 따르고자 나름대로 모색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오직 당신만을 의뢰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특히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개혁 운동에 나타났던 그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그들이 가담하고 있는 모든 의족적 외교 조약과 우상을 타파하고 오직 여호와의 주권만을 인정하는 실질적인 회개를 통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가증한 것을 버리고 - '가증한 것'에 해당하는 원어는 '쉬쿠츠'(* )로서구약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이다. 이것은 불결한 의복(나3:6), 우상에게 바친 음식(슥9:7), 그리고 이교도의 신들(왕상11:5; 왕하 23:13; 대하15:8)을 가리키며, 때로는거짓 신들을 섬기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호9:10). 여기서는 가나안의 거짓 신들을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가증한 것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와 다른 신들은 양립될 수 없고 화합될 수가 없다.
=====4:2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 때로는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란 말로도 번역되는 이구절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할 때에 사용하는 상투어였다. 그러나 이 말은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십계명 중 제3계명은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출20:7; 신5:11). 뿐만 아니라 여기서는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맹세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구약 예언서에서 빈번하게 쓰이는 단어들이다.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 여호와의 주권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이스라엘이 약속된 축복의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다른 민족들도 축복의 참된 근원이 여호와께 있으며 그의 언약에 순종할 때 축복을 받게 됨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참된 회개는 이스라엘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게되는 것이다(사42:6; 49:6).
=====4:3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 - 본절의 유다가 1절의 '이스라엘'의 일부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진다. 어떤 주석가들은 1절의 '이스라엘'이 현재 포로로 잡혀가 있는 북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본다(Streane, Welch). 그러나 문맥상 본절과 4절은1,2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되며, 따라서 본절의 '유다'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변방 주(州)로 편입된 이후 남하한 백성까지 포함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묵은 땅을 갈고 - 여기서 '묵은 땅'(* , 니르)은 오랫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작된 바가 없는 '새 토양'을 뜻한다. 결국 분문은 개혁 기간 동안의 형식적, 피상적 회개가 아닌 근복적 회개를 요청하는 내용으로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란(마9:17; 막2:22) 예수의 비유와 일맥 상통한다.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 예레미야는 여기서 '유다'라는 토지가 과거, 특히므낫세 통치 이후에 악행이라는 가시덤불로 만연되어 있으며, 유다의 유일한 희망은오직 새 토지를 경작하는 것뿐임을 지적한다.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야기된 온갖종류의 폐단들, 곧 가시덤불을 회개와 순종이라고 하는 쟁기로 갈아서 온전히 제거해버리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C.L. Feinberg).
=====4:4
할례를 행하여...마음 가죽을 베고 - 할례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이스라엘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표시였다(창17:1-14 주제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참조). 이 의식은 언약의 표로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으며(창17:10-14) 단순히 외적인 표징이 아니라 여호와의 주권에 전혹적으로 순종한다는 내적 실체에 대한증거였다(신10:16; 30:6). 한편 선지자는 여기서 남자 성기 표피 끝을 잘라내는 할례를 말하지 않고 마음 가죽을 베어낼 것을 명하고 있다. 이 '마음'이란 지성과 의지,감정 등을 다 포함하는 내적 삶의 전체를 뜻한다. 즉, 마음이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한 물리적인 할례 의식으로는 언약의 취지를 달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 언약 파괴의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고대근동의 종주국과 봉신국 간에 체결된 언약에도 축복과 저주가 뒤따랐다. 언약을 배반한 봉신은 대군주의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권 군주이신 여호와는 자기와의 언약을 깬 이스라엘을 징벌하고야 마신다. 그리고 그 징벌을 예레미야는 '끌 자가 없는 불의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런 비유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7:20; 사1:31; 암5:6등).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응징했던 것과 똑같이 이제 유다도 심판하실 것인 바, 유다는 이미 그의 주인 이스라엘보다 더 범죄해 있었다(3:11).
=====4:5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 여기서부터는 심판의 상세한 내용이 묘사된다. '나팔을불라'는 것은 사자(使者)의 가슴 아픈 전달 사항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알린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은 호세아가 외친 경고의 말씀과 유사하며(호5:8), 후대의 요엘 선지자도 이와 비슷한 경고를 고하였다(욜2:1).
=====4:6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 '기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스'(* )는 '표준', '기준', '신호'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무슨 신호를 가리키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아마 위급한 상태를 알리기 위해 먼 지역까지 전달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봉화와 같은 것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라기스(Lachish)의 발굴에서 나온 편지중의 하나는 B.C.586년 느브갓네살 침략 당시 남유다에 긴급 사태가 발생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 편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왕께서 지시한 대로 우리는 리가스의 기호('네스')를 지켜보고 있나이다.'=====4:7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 여기서 사자에 비유된 침략자는 바벨론을 가리킨다. 51:38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혼비 백산하는 바벨론 거민들을 부르짖는 사자새끼에 비유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다 백성은, 마치먹이를 찾아 나온 굶주린 사자에게 찢기듯이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당시 바벨론은 B.C.612년에 앗수르를 점령한 데 이어서 근동 지역의패권을 잡기 시작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주변 열국들을 초도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4:8
굵은 베를 두르고 - '굵은 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킴'(* )은 거칠고조잡한 삼베류의 옷을 뜻하는데 흔히 슬픔과 애곡을 표현할 때 입었다(사15:3; 겔7:18등).
=====4:9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던 왕과 방백, 제사장, 선지자 등의 지도층 인사들이(2:8,26) 이 소식에 놀라 공포에 사로잡히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다. 왕과 방백 등의정치 지도자들은 안전과 희망의 근거를 잃었기 때문에 쓰러진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내세운 희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되며 배도한 제사장들이 내세운 공허한 안전 역시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다.
=====4:10
슬프도소이다...주께서...크게 속이셨나이다 - 이는 예레미야가 받은 바 하나님의심판에 관한 계시에 대단히 슬퍼하고 있는 모습이다(19절). 이것은 또한 예레미야의성품이 어떠한지 그 일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과 많은 대화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얼핏 보면 예레미야의 이런 항의는 참람되어 보인다. 감히 인간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고 있었고 언젠가는 하나님의 신실한 계획이 실행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은 자기 자신의 삶이든 아니면 타인의 삶이든 간에비극적인 처지를 보고 깊은 슬픔을 느낀 데서 나온 일시적인 한탄인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 본절 상반절과 마찬가지로 본 구절 또한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혹자는 '이르시기를'을 '그들이 이르기를'이라 번역한 70인역(LXX)에 근거하여, 본문이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Cheyne, Hyatt). 그러나 이는 원문 독법상의 혼란을 야기시킨다. 보다 적합한 해석으로는, 여기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 이설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인간의 자의적 악행을 하나님이 허용하거나 내어 버려두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그 악행에 개입하신 것처럼 표현한 사례가 종종 나온다(출9:12; 살후2:11).
=====4:11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 '뜨거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흐'(* )는문자적으로 '맑은', '깨끗한'이란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서파멸을 상징하고 있다. 이렇게 맑은 바람이 '파멸'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바람을 막아줄 나무나 그 어떤 방파제 같은 것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그리고 이 바람은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오는데, KJV, RSV에서는 이를 '내 백성의 딸'(the daughter of my people)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내 딸'과 '내 백성'은 동격으로 쓰이고 있으므로 '내 딸=내 백성'으로 이해함이 무난할 것이다. 비록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상황이긴 해도 예레미야는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의 언약 관계를분명하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함도 아니며 - 이는 타작 마당의 키질하기 위해 부는 바람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앞으로 유다에 임할 바람은 알곡을 추리기위한 키질용 바람이 아님을 선포한 것으로서 이들을 몽땅 날려버리는 엄청난 파멸의바람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CALVIN, J.Bright, Nicholson, Clarke).
=====4:12
나를 위하여 오리니 - 유다에 임할 심판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왔음을 가리키는말이다. 여태까지 유다 백성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았던 것에 대한 보응으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심판을 베푸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을 베푼다'는 것은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사 유다의 범죄 행위에 대한 형을 선고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Thompson, Clarke, NIcholson).
=====4:13
구름같이...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 심판의 도구로서 유다에 밀어닥칠 적군의진군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 말씀이다. 예레미야는 환상을 통해 유다를 침략할 적군이마치 빽빽한 구름과도 같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고뇌에 찬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의 고통스러운 심정은 심판 장면을 묘사하는 12-18절이 끝난 다음에 기술되어있다. 이에 대한 백성의 반응은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란 것이었는데,이는 온 땅이 황폐화 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자책과 후회의 한탄을 말한다. 하나님의심판이 비록 더딘 것 같아도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때는 그 어느 누구도 이를막을 수 없고 또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J.Bright, Nicholson).
=====4:14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 예레미야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그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상하게 하다', '깨뜨리다' 등의뜻인 '라아'(* )에서 유래한 말로서 구약에서 흔히 쓰인 단어이다(창6:5; 출32:22; 민32:13; 신1:35; 삿9:56; 삼상25:21등). 3장에서도 예레미야는 이와 유사한회개로의 부르심을 촉구하였다. 아마 예레미야는 심판이 문앞에 이르렀다고 해도 회개로의 부르심이 늦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Thompson).
=====4:15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 '단'은 팔레스틴 북부 변방의 한 도시로서 오늘날의 '텔엘-카디'인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의 발굴에 의하면 예레미야 당시 이곳은 정치,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에브라임 산은 이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예루살렘의 전방 기지와 같은 곳이었다.바로 이런 곳에서 적의 침략을 알리는 소리가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Nicholson).
=====4:16
에워싸고 치는 자들 - 클라크(Clarke)는 본문에 해당하는 원어 '노체림'(* )을 '지키는 자'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다 성읍을 점령하고 파멸시킬 느부갓네살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Calvin).
=====4:17
밭을 지키는 자같이 - 본절의 장바변은 시골 농부가 곡식단을 돌보기 위해 임시로만들어 둔 오두막에서 들짐승이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보던 것에서 따온 예화인데, 아마 이런 알기 쉬운 예화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Nicholson, J.Bright).
=====4: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 예레미야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불구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스라엘에 밀어닥친 심판의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는 너의 악함이라'는 말은 심판이 백성들의 악으로 말미암았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이다.
=====4:19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 본절에서부터 21절까지는 갈대아인들에 의한예루살렘의 파멸과 유다의 황폐를 내다보는 에레미야의 내적인 고통과 근심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아마 그는 팡에서 예언한 그 모든 환난의 내용을 환상을 통해 직접 목격했던 것 같다. '슬프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에'(* )의 뜻은 '창자'인데,아마 정신적인 충격이 대단히 심각하게 주어졌을 경우, 신체 내부 기관이 이를 감당할수 없어 어떤 방응을 나타냈던 데서 유래한 단어인 것 같다(Thompson).
=====4: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 재앙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결과성들이 불타고 거민들이 내어쫓기고 학살당할 것이다. 나의 천막...나의 휘장 - 이는 유목민 시대의 천막 생활에 대한 잔재를 나타내는것으로서, 튼튼한 요새들이 아무런 방어 수단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4:21
저 기호를 보며 나팔 소리 듣기를 - 예레미야의 내면에서는 재앙으로 인한 전쟁의함성과 나팔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의 귀는 이미 이러한 소란스러운고함 소리에 지쳐 있었으며, 그의 눈에는 자기 동족의 비극적인 고통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4:22
나를 알지 못하는 우둔한 자요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은 단순한 지침이나 교훈에 대한 앎과는 다르다. 하나님이 백성들에 대해 '나를 알지 못한다'고 하실 때, 이 말속에는 그 백성들의 불신과 반역 및계명에 대한 불순종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Mckkane).
=====4:23
혼돈하고 공허하며 - 본절에서부터 28절까지는 임박한 파멸에 대한 심판의 참상이환상을 통해 표현된다. 본문의 히브리어 '토후 와보후'(* )는 창1:2에서 땅이 창조되기 전의 무질서한 상태를 묘사할 때 쓰인 말이었다. 이런 표현을통해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에 임할 심판이 마치 땅이 창조되지 않은 것과 같은 혼돈을 초래할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4:24
진동하며...요동하며 - 클라크(Clarke)는 본절의 '산들'과 '작은 산들'이 '왕과 방백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서 달아날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물론 이 해석도 무난하겠지만 앞 구절과의 연결을 중시할 때, 산들이 진동할 정도로 유다에 밀어닥칠 바벨론 군대의 공세가 무시무시할 것을 나타낸다고 해석하는 것이좋겠다. '산들'과 '작은 산들'은 흔히 힘과 안정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힘과 안정의 상징이 모두 흔들리고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J.Bright).
=====4:25
새가 다 날아갔으며 - 파멸과 황폐함의 철저성을 부각시키는 표현이다. 한편 하나님은 악인을 멸하실 때에 짐승과 새와 물고기도 함께 멸하신다고 말씀하셨다(습 1:3).
=====4:26
본절에서는 쓸쓸함과 파멸이 그 이전의 풍성한 결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황무지로 변해버린 '좋은 땅'의 원어는 '카르멜'(* )인데, 이것은 어떤 특징 지역을 가리키기보다는 풍요로웠던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Cheyne).
=====4:27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 이 구절은 많은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앞 구절들에서는 이 땅 전체가 황폐해질 것으로 지적했으며, 이어지는 28절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하나님의 심판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을 타개하기 위해 혹자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로'(* )를 생략하거나, 이를 강조의 '라멕'(* )으로 보기도한다(Soggin). 그러나 우리는 이땅이 비록 황무지가 된다 하더라도 23-26절에 묘사된바와 같이 완전한 종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여러 주석가들은 이를 심판 중에도 남은 자가 이 재앙에서 살아 남게 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R.K.Harrison).
=====4:28
땅이 슬퍼할 것이며... - 여기서는 땅과 하늘에 대한 의인법이 쓰이고 있는데,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도 흔히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혹자는 '땅이란 그 땅위의 거민들을 가리킨다고 하나, 땅의 멸망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깊은선지자의 내면에 접근할 수 있겠다. 즉 감각이 없는 땅조차도 슬퍼하는데, 정작 슬퍼해야 할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점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Calvin).
=====4:29
본절에서부터 31절까지는 시온의 극심한 고통을 서술하고 있다. 사람들은 침략자들의 진군 소리에 놀라서 달아나며, 안전한 곳으로 숨는다. 또한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기어들어가며,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기도 한다. 한편, 이사야도 하나님의 심판이 교만하고 자고한 자들에게 임할 것임을 예언하면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서술하고 있다(사2:19-21).
=====4:30
네가 붉은 옷을 입고...꾸밀지라도 - 고운 옷으로 차려 입고 온몸을 황금으로 장식하고 눈썹을 그리는 이 같은 행동은 창녀가 손님을 맞을 때 하는 행위를 암시하는데,이는 우상 숭배자들이 갖추던 장식(사3:18-23)을 비유하기도 하며 약소국이 대국의 침략을 당하여 제3국에게 원군을 요청하며 예물을 바치는 모습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곧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유다가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로이해된다.
=====4:31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 창녀의 행위를 예화로 들었던 선지자는 여기서 그 표상을 바꾸어 첫 아기를 해산하려고 울부짖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그리고 이 여인의 고통하는 소리를 딸 시온의 소리로 설명한다. 유다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자기의 진정한남편을 거부하고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과 같은 정부들과 놀아났었다. 그리고 이제음란한 유다의 악행은 그 절정에 달했던 것이다.
본장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회개 촉구(3:6-25)를 최종적으로 선
언하고 나서 머지않아 도래하게 될 심판을 기술하고 있다. 특별히 1-3장에서 암시되어
오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아주 극적으로 공포(公布)하면서(3, 4절) 4:5-6:30의 중심
주제에 대해 상세히 언급한다. 이러한 내용은 넓게는 이미 앞에서 제시된 끓는 가마
환상(1:13-16)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인 성취로 간주될 수 있고, 좁게는 3:6에서부터
서술된 예언 단락의 종결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경고가 심판에 앞
서 주어진 것은 언약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자비로운 마음에 근거
한다. 동시에 심판이 주어질 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민 23:19).
이러한 본장은 (1) 참된 개혁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전반부(1-4절)와 (2)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중반부(5-18) 그리고 (3) 반복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하는 후반부(19-31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내
용들을 통하여 저자는 주어질 심판의 성격이 철저히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킴으
로써 유다의 영적 무감각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함편, 본장에는 두 가지의 표현법이 두드러지게 등장하고 있다. 첫째로, 비유적 표
현의 사용이다(11-18절). 독립적으로 한 편의 짧은 시를 이루고 있는 전쟁 그림(13-17
절)속에 상세히 묘사되고 있는 비유는 유다에게 들이닥칠 참변이 마치 사막에서 불어
오는 뜨거운 바람과 같이 강력한 것임을 시사하여 심판의 양상을 예언해 주고 있다.
둘째로, 호화적 기법의 사용이다(23-28절). 저자는 두드러지고 놀라운 회화적 영상을
통하여 유다에 임하게 될 심판이 세계적 양상을 띠고 돌발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묘
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통하여 선지자는 유다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생
생하게 드러냄으로써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장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범죄한 이스라엘과 유다가 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곧 (가) 하나님 앞에서 가중한 것을 버려야 함(1절;욜 2:12), (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새해야 함(2절;창 22:18;고전 1:31), (다) 묵은 땅을 갈아야 함(3절;호 10:12;마
13:7), (라) 마음의 가죽을 베어야 함(4절;약 1:21)등이다. 여기서 '가중한 것'은 하
나님보다 우위에 놓고 경배하는 모든 대상을, '묵은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닫혀진 마음, '마음 가죽'은 도덕적 성품 등을 의미하고 있다.
(2) 유다의 패망을 매우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점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
다. (가) 5010절:'북으로부터 오는 적'에 대한 예고(5-8절)와 이 사건이 초래할 좌절
을 서술하는 짧은 신탁(9절), 그리고 예레미야의 불평(10절)이 나타나 있다. (나)
11-18절:대파국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지하는 신탁(11, 12절)으로 시작하고 나서 적
의 접근을 좀더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시(13-17절)가 뒤이어 나오는데 회개에 대
한 마지막 간청(14절) 때문에 중단된다. 아울러 죄로 인하여 재난이 초래되었다고 설
명하는 간단한 해설이 나온다(18절). (다) 19-22절:예레미야의 조국 멸망에 대한 고뇌
에 찬 고백이 등장하고(19-21절), 이에 덧붙여 나오는 짧은 신탁(22절)은 모든 불행의
원인인 백성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있다. (라) 23-28절:환상(23-26절)을 통하여 선지
자는 도래하는 심판을 두려움으로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심판을 결코 완
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신탁이 주어진다(27, 28절). (마) 29-31절:적의
접근과 예루살렘의 곤경을 묘사하여, 예루살렘은 정부(情夫)들의 손에 죽는 매춘부에
비유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심판의 철저함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해 필연적으로 보응하신다. 그러므로 성
도는 죄의 무서음을 자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노
력해야 할 것이다.
1. 진정한 개혁의 모습(4:1-4)
본 단락은 참된 개혁의 본지이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적 개혁임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성전 제사 의식의
지속으로 개혁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백성들에게 언약의 본질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
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 거듭되는 회개의 요청을 시사하고 있는 전
반부(1, 2절), (2) 참된 개혁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는 후반부(3, 4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저자는 언약 백성의 본질(identity)은 외부적인 순
종에 있지 않고, 오직 마음과 결부된 내적 순종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진술한 바 있는 3:22b-25의 회개의 서술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본 단락에
서 두 부분으로 제시된다. 먼저 1, 2절에서 하나님은 참된 회개의 의미를 상세히 말씀
하신다. 즉, 3:1의 "가령 사람이 그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본부(本夫)가 그를 다시 받겠느냐"란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을 하시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조건들에 대해 두 가지의 비유
(농사, 유대인의 할례 의식)들을 통하여 다시 확대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표현에 뒤이
어서 참혹한 하나님의 진노가 다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5-31절) 이 회개의 외형
적 선언과 백성의 실제적 행동 사이에는 대응되는 바가 전혀 없음을 동시에 알 수 있
다.
이상의 사실을 배경으로 본 단락의 내용적 특서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경우든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초로 하여 자기 백성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비로우신 의도를 가지고 계신다(1절). 그런데 이러한 은혜는 단순히 형식적인 회개
문을 암송하는 것으로 인함이 아니라-아마 요시야 개혁 운동 당시 이 같은 형식적인
회개문이 종종 사용되었던 것 같다-다른 신들과 맺은 모든 조약들을 분명하게 거부하
는 결단에 의해서 제시된 신실하고도 영속적인 회개에 근거하는 것이다. 결구 하나님
의 백성이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
행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의 수준은 '진실'(에메트),
'공평'(미쉬파트), '정의'(체다카) 등을 실천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의 질을 확보할
때 언약은 영속적으로 지속되고 택한 백성의 구원을 보증하게 된다.
(2) 선지자는 회개의 필요성을 알려주기 위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가) 농사에 관한 비유이다. 즉, 농부가 기경하지 않은 땅에는 씨앗을 뿌리지 않는 것
처럼 하나님도 회개치 않는 마음에는 축복의 씨를 뿌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나) 유
다인의 할례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의 계약하에 이루어진 징표(창 17:9-14)이나 마
음의 할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직 심령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내적인 요건이
외부적인 신앙 고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9:25, 26;신 10:16;30:6;롬 2:28, 29). 그
러므로 만일 유다가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진노는 백성들을 향하
여 격렬히 타오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본 단락을 통하여 얻게 되는 교훈은, 진실로 회개하는 자는 죄악된 과거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고 말씀에 입각한 영적인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진리와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2. 임박한 심판의 경고(4:5-31)
본 단락은 하나님의 거듭되는 화해의 요청(3:6-4:4)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한 유
다에게 이전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관계를 기억하사 이제 임박한 심판에 앞서서 최종
적인 경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닥칠 재앙의 양상에 대해 환상을 통하여 그 참혹함을
제시함으로써 유다 백성을 마지막으로 설득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을 간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이후의 심판의 실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의 공의로우심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는 전반부(5-18절)와
(2) 심판의 광경을 환상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후반부(19-31절)로 나누
어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고가 심판에 앞서 주어진 것은 언약 백성들에게 회
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에서 비롯되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영영히 기억케 하시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앞서 제시된 심판의 위협(3, 4절)이 좀더 극명하게 현실적으로 묘
사된 곳으로서 예레미야의 환상을 통하여 그 심각함이 명로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심
판에 대한 예언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선포된 바 있으므로 새삼
스러운 사실은 아니었다(사 29:1-16;호 8:1-4;미 3:12). 그러나 이제 예레미야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다 주위의 국제 정세가 더욱 급박해짐으로써 예레미야 환상이 그저 자신
의 깊은 내적 이해에 그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임을 보여주고 있
다.
또한 본 단락의 내용을 보면 심판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생생하기 때문에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목격담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본 단락의 연대에 관하여 요시야 통치 시기에서 시드기야 때까지의 다양한
입장이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른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생생한 상징법이나 회화
적 영상을 사용하여 미래의 사건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파멸
의 전조를 심각히 받아들였으며, 침략군의 특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
기 때문에 더욱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본 단락에 나타난 내용적 특성을 순차적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의부 침략에 대한 선언(5-13절):유다에게 다가오는 파멸의 경고가 나팔을 부는
것(도래하는 위험이나 전투의 신호 역할)과 견고한 성읍으로 피난하기를 요구하는 사
실로 적절히 소개되고 있다(5절). 이러한 사실은 이미 1:13-16에서 예언도니 북으로부
터의 재앙이 이제 현시로하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침략국에 대해서는 어떠
한 명확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주변 정세로 보아 바렐론을 의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그날에는 이제까지 거짓 예언(6:14;14:13;23:16, 17)을 통한
왜곡된 희망으로 조금의 참회도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각계 각층의 유다인들이 강력한
침입자들의 뒤세에 두려워하며 놀라게 될 것이다(9-13절).
(2) 회개를 호소함(14-18절):하나님께서는 군대를 보내어 유다를 징벌하도록 하셨
다. 왜냐하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재앙에
고나한 책임은 전적으로 유다 자신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다. 옐루살렘
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만 한다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긴바한 운명으로부터 구
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14, 15절).
(3) 선지자의 번민(19-22절):이 부분은 자주 '예레미야의 십자가'라고 언급되어지
는 곳으로서 마음 깊은 곳의 슬픔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슬픔의 원인에 대해
저자는 (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결핍, (나) 지각(知覺)의 부족, (다) 미련함 등이
라고 말한다(22절). 사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
해 무관심한 자들을 보면서 큰 아픔을 느끼게 된다.
(4) 혼란과 파멸의 시간(23-31절):이곳에서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극적이면서도 희미하게 경험하고 있다(23절). 그러나 이 같
은 유다의 임박한 심판을 선언하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희망을 선언하고 계신다(27
절;5:10, 18;30:11;46:28). 이러한 사실은 언약이 무효화되지 않으며 언약 공동체가
남은 자들을 토애여 회복될 것임을 보여준다(6:9;23:3;42:19;사 11:16;암 5:15;미
2:12;습 2:9;학 1:1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땅을 슬피 울 것이며, 심판은 오
고야 말 것이다(28-31절).
이러한 본 단락의 내용들은 저자가 하나님께서 당장 유다에 대해 심판하심으로써
마치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를 무효화시키는 듯함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23-26절에서의 독특한 표현을 통하여 역설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이 남
은 자들을 통하여서(27절) 전 우주적으로 전환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사실
에 대해 예레미야는 창세기의 창조 사실과 관련지워 표현하고 있다. 이 점을 도표를
통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 대혼란 | 창조 |
+-------------------------------+-----------------------------------+
|혼돈과 공허(23절) | 혼돈과 공허(창 1:2) |
+-------------------------------+-----------------------------------+
| 빛(23절) | 빛(창 1:3) |
+-------------------------------+-----------------------------------+
| 하늘들(23절) | 하늘들(창 1:8) |
+-------------------------------+-----------------------------------+
| 땅(23절) | 땅(창 1:10) |
+-------------------------------+-----------------------------------+
| 새(25절) | 새(창 1:20) |
+-------------------------------+-----------------------------------+
| 사람(25절) | 사람(창 1:26) |
+-------------------------------+-----------------------------------+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 당시의 유다의 심판이 갖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당시의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 공통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참담한 상태가 되었다. (2) 그러나 그 언약의 본질은 유효하며 새 창조를 통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3) 그러므로 계속되는 배도 속에서도 끊임없이 선택된 백성을 위하여 신실하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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