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이사야 6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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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무슨 집을 지을꼬 - 신령과 진정은 결여된 채(요 4:23 참조)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만 몰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대상 28:2;시 11:4;99:5;132:7;애 2:1). 즉,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편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여기서는 성전 건축과 연관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히찌히(Hitzig)는, 포로 귀환 후에도 계속 바벨론에 남아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움브라이트(Umbreit)는, 성전이나 희생 제사 예식이 도무지 필요없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에 착수해야 할 유대 공동체에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를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이해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신약 시대와 새 예루살렘에서의 신령한 예배를 겨낭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66:2
마음이 가난하고(* , 아니) -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주(救主)를 기다리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동일한 용어가 산상 수훈의 한 대목에 나타난다(마 5:3). 바로 이 같은 자의 심령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요 14:23).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성전이란 없다. 그때에는 주 하나님 그분이 성전 자체이시다(계 21:22).

=====66:3
유대인에게 있어 '개'란 추잡함이나(신 23:18) 경멸스러움을(삼상 17:43)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그 목을 꺾어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65:4). 그런데 본절은 율법이 허용하고 있는 소 및 어린 양의 제사를 이방의 제사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절을 고려하면 이 난제는 쉽게 풀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인데, 그 제사란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바로 이 같은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66:4
유혹(* , 타알룰레헴) - '악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대하다'는 뜻인 '알랄'(* )에서 온 용어로서 '안달', '토라짐', '뻔뻔함' 등을 뜻하나 3절의 '자신들이 멋대로 택한 길'(개역 성경에는 '자기의 길'로 나와 있음)과 대비를 이루는 용어로 볼 때 '망상', '잘못된 생각' 정도로 의역함이 가능하겠다. 많은 학자들이 본 용어를 망상, 잘못된 생각이 야기할 수 있는 '재앙'으로 번역하고 있다(Noyes, Lowth).

=====66:5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쫓아내며 - 공공 예배와 연관된 특권을 박탈당하거나 그 공동체로부터 출교당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님도 공생애 동안 이것을 참성도에게 닥치는 중요한 시련 가운데 하나로 가르치신 바 있는데(마 10:22), 구체적으로는 사도들이 유대인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다(요 16:2). 여호와께서는...원하노라 - 남은 자들을 향한 자신들의 포학이 하나님을 위한 열정 때문에 나온 것인 양 퍼붓는 박해자들의 조롱조의 도전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께서도 동일한 조롱을 받으셨다(마 27:42, 43).

=====66:6
소리가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들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안보다는 이스라엘 밖에 있는 대적, 곧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보응을 암시한다(슥 12:2, 3;14:3, 19-21). 논조가 본절에서 급히 바뀌었는데 이것은 이방 대적을 향한 하나님의 복수가 급박하게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66:7
전혀 고통없이 그것도 순식간에 자녀를 출산한다는 이 비유적 예언은, 1차적으로는 이적적 섭리에 따른 포로들의 귀환을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태동과 발전을 암시한다. 본절의 예언처럼 성령 감림으로 교회가 시작된 후 이방의 개심자들과 유대의 개종자들의 수는 급속히 불어났다(행 2장). 특히 교회의 태동과 확장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출 경우 여기 '남자, 곧 영적 이스라엘이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가 한 머리(메시야)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임을 가리키는 것이거나, 영적 이스라엘 복수 공동체를 가리키는 대표 단수를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66:8
나라(* , 에레츠) - 문자적인 뜻은 '땅'이지만 평행구가 '민족'으로 되어 있으므로 개역 성경처럼 '나라'로 의역하는 것이 좋다. 땅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소산을 내기 마련이다(막 4:28). 이 원리는 세상 나라의 발전 속도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 원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이적적 개입이 있게 될 것이다.

=====66:9
나는 해산케...닫겠느냐 - 8절에서 언급된 바와 같은 예언이 필연적으로 성취될 수 밖에 없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 근거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역사하심이다.

=====66:10
본절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 혹은 이방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주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이다. 슬픔으로부터 기쁨으로의 주제의 전환은 본서 하반부(40-66장)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인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므로 본 기쁨의 노래는 '종말론적 찬양의 노래'라고 불리운다(Whybray).

=====66:11
젖을 빠는 것 같이...만족하겠고 - 이사야는 '회복될 예루살렘'을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1) 회복될 예루살렘이 그들의 본향이며(잠 27:8;히 11:14-16), 거기에는 (2) 신령한 젖이 있으며(벧전 2:2), (3) 모든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시 73:10;계 22:1, 2).


=====66:12 주리니(* , 노테) - 문자적인 뜻은(주먹이나 텐트 따위를 펼칠 때와 같은) '뻗치다'(창 12:8) 혹은 (강의 범람 따위로 인하여 없었던 지류가 새로 생겨났을 때를 가리키는) '뻗어나다' 등이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강의 범람으로 전에 강이 없던 곳에 새 지류가 생기듯이, 전에 맛보지 못했던 신령한 평안과 번영이 넘치리라는 예언이다.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 문자 그대로는 49:22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이 이방의 부요를 받아 나누게 될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사랑하는 모든 자가 하나님이 주는 영육간의 풍성함을 누리게 될 것을 가리킨다.

=====66:13
예루살렘이 그 자녀를 돌보는 개념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어머니의 역할을 감당하는 개념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여기서 당신의 백성을 돌보시고 구하시는 모든 은총의 진정한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만이 생모가 자녀를 돌보는 이상으로 그 백성을 돌보신다는 주제가 49:13-15 이후 다시 반복되고 있다.

=====66:14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 문자적인 뜻은 '너희 뼈들이 풀처럼 번성하리라'이다. 인간의 신체 중에 뼈를 소재로 한 이미지는 성경에 자주 나온다. 몸의 활력이 스러질 때, 많은 고통을 받을 때 뼈가 연약해졌다 혹은 말랐다라는 표현이 사용된다(시 6:2;22:14, 17;38:3;51:8;잠 14:30;17:22;애 1:13). 반면 번영, 건강, 혈기 왕성 등을 나타낼 때는 그 뼈가 살찐다거나 혹은 본 구절과 같은 표현이 사용된다(58:11). 하나님의 진노의 불로 인해 바짝 타버린 뼈와 같은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생기를 회복할 것이다(잠 3:8;15:30).

=====66:15
불에 옹위되어 - '불'은 그의 대적들을 심판하고 징벌하기 위한 주의 강림의 상징으로 흔히 사용되는 이미지이다.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 여호와를 전사(戰士)로 비유한 본 이미지는 바벨론 군대의 당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바 있다(렘 4:13).

=====66:16
원무에 뚜렷이 나타난 평행법을 살려 상반절을 재번역하면 이와 같다:'불로 여호와께서 심판을, 그의 검으로 (그가 심판하시리라) 모든 육체를.' 심판의 도구인 불과 검이 강조되었다.
모든 혈육 - 하나님의 진노의 모든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경건한 자들은 주님에 의해 심판의 장소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숨겨질 것이다(26:20, 21;시 31:20;살전 4:16, 17).

=====66:17
가증한 물건(* , 하쉐케츠) - 식용이 금지된 부정한 짐승들을 기록하고 있는 레위기에 나온 용어이다(레 11:10-45).
쥐 - 레 11:29에서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다.

=====66:18
아노라 - 원문에는 이 단어가 없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이고만 되어 있다. 문맥을 고려해서 '왜냐하면 내가 그들의 일들과 생각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로 번역하는 견해가 있는데(Maurer), 앞절에 '...망하리라'가있다는 점에서 취해 봄직도 한 번역이다. 하반절과 19절은 심판 이후의 후속 조치를 설명하고 있다.

=====66:19
징조(* , 오트) - 문자적인 뜻은 '깃발', '표시', '표적'이다. 본서에서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7:14),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해 세워질 제단(19:19, 20) 혹은 잣나무와 화석류가 가시나무와 질려를 각각 대신하게 될 것(55:13) 등을 '오트'라는 말로 표현한바 있다. 여기서 이 말이 지칭하는 것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1) 이곳 저곳 멀리 흩어졌던 유대인들의 귀환의 예비 작업으로, 모임 장소를 알리기 위해 높은 장소에 세울 물건. (2)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마 12:38-40, Kidner). (3) 하나님이 파송하실 자에게 길을 알려 주시기 위해 세운 이정표(Westermann). 이중 본문맥에서는 (3)의 견해가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들 중 도피한 자 - 이에 관한 해석도 가지가지이다. (1) 유대인들 중 남은 자(Grogan). (2) 열방들에 대한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Westermann). 여기서는 이방인들 중 여호와 신앙에 복종하며 열방에게 임할 심판에서 벗어나는 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다시스 - 오늘날의 유럽 서부 스페인의 어느 지방인데, 여기서는 당시 히브리인들에게 가장 먼 곳에 있는 항구로 알려진 곳이었기 때문에 거명되고 있다.
뿔 -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지방으로 애굽과 에디오피아 국경 지방이기도 하다.
룻 - 소아시아의 리디아 지방을 가리킨다.
두발 - 흑해와 아락세스 사이코커서스 남부 지역에 위치한 티발레니안스를 가리킨다.
야완 - 성경에 나오는 야완의 모든 후손들을 포함하는 '이오니아인들'로 불리우는 자들이다.

=====66:20
그들이...드릴 것이요 - 문자 그대로는 이방인들이 흩어진 이스라엘을 거룩한 땅으로 데려온다는 것인데, 영적으로는 이방 세계로부터 예루살렘, 곧 하나님의 교회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의 행렬이 이어질 것을 뜻한다.
교자(轎子) - '마차'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자세하게는 낙타 따위가 이끄는 유개차(有蓋車), 말하자면 바람이나 비를 막기 위하여 마차 위에 덮어 씌운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66:21
그 중에서...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이란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제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이방인들이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는 부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벧전 2:9).

=====66:22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 바로 앞문맥에서 언급된 바, 이방인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상황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사실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

=====66:23
매 안식일에 - '한 안식일에서 또 다른 안식일이 되는 것만큼 자주'란 뜻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시대가 오면 안식일 규례가 영원한 규례로 정착될 것을 의미한다.

=====66:24
그들이...볼 것이라 - 이스라엘이 홍해에서 진멸당한 애굽 군대의 시체를 목격했듯이(출 14:30)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악인들의 멸망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 예루살렘 남부 힌놈의 골짜기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30:33). 경건한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에 이어지는 불의한 사단의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본서는 끝맺고 있다.



1-65장까지 저자는 여러 부분에 관해 부정적인 책망이나 심판 혹은 긍정적인 역사
적 전망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주제는 시온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다시 한번 이 문
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즉, 신약 시대에 이방인에게까지 구원의 범위가 확대될 것과 그
리스도의 재림과 최후 심판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이사야는 앞에서 언급된 예언을
종합하고 반복하면서(40-65장) 다시 한번 의인을 위로하고 악인을 경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대해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그릇된 제사에 대한
지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전반부(1-4절), 이스라엘을 위로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중반부(5-14절), 새로운 시대에 대한 모습을 예언하고 있는 후반부(15-24절) 등
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장의 6-16절을 전혀 다른 성격의 장으로 이해하려는 학자들이 있다. 그래
서 묵시적인 성격이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이교도 백성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
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전후 문맥의 관계를 고찰하여 보았을 때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지금 저자의 일관적인 관심은 이스라엘의 미래와 운명
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이스라엘의 축복스러
운 상황을 임산부의 비유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서의 전반부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도성에 대한 언급이 다시 한번 언급되고 있으며(2 : 1-4), 45, 49, 54,
60-62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결론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또한, 본장에서는 레위기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3
절). 이러한 내용을 도표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합당한 제사 | 금지된 제사 |
+--------------------------------------+---------------------------------------+
| 소를 잡는 것(레 17:3, 4) | 살인(레 24:7-21;신 19:6;24, 25) |
+--------------------------------------+---------------------------------------+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것(레 14:10-25)| 개의 목을 꺾는 것(출 34:20) |
+--------------------------------------+---------------------------------------+
| 소제를 드리는 것(레 2:1, 13) | 돼지의 피(레 11:7;신 14:8) |
+--------------------------------------+---------------------------------------+
이제 본장의 내용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66 : 1-4)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극도의 찬양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65 : 17-25)에 이어
서 본 단락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제사에 대하여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제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과 이스라
엘의 정체성(identity)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담
고 있는 본 단락은 하나님의 임재의 편재성(偏在性)을 묘사하는 전반부(1, 2절), 이스
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제사를 지적하는 후반부(3, 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성전의 삶과 세상의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는 점이다. 저자는 제사의 잘목을 지적했기 전에 하나님의 편재성을 논한다(1, 2절).
이러한 언급은 하나님이 성전을 왜 허락하셨는가에 대한 답변을 제공해준다. 그들의
삶은 성전과 세상의 삶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세상은 성전에서의 삶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에
속한 자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
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계시 중심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가증스럽게
도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으면서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여하였다. 이러
한 제사는 하나님 앞에 결코 상달되지 않는다. 오직 죄의 사유는 진심으로 믿고 회개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본 단락에서 저자는 하나님을 경시하는 외식적인
예배는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심령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의 중요
성을 강조하고 있다.

2. 하나님의 위로(66 : 5-17)
잘못된 제사 의식에 대한 지적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4절)에 이어서 본 단락
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를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위로는 모
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위로
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는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
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2절)라는 표현을 상고할 때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라기보다는 남은 자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이처럼 남은 자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에 찬 예언을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은 말씀
을 인하여 떠는 자에 대한 위로를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5-9절), 예루살렘
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10-14절), 약한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는 후반부(15-1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본문
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기쁘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7-9절) : 저자는 임산부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한다. 여기
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2, 5절)로서 하나님의 위
로를 받는 자이다. 즉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고통을 당하나 후에 아기가 탄생하면 산
고(産苦)를 모두 잊고 기뻐하는 것처럼 시온이 고통을 당하나 그 모든 고통은 택한 백
성을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자로 삼기 위한 고통이므로 그 백성이 돌아오는 날, 이
전의 모든 고통을 잊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신약의 성도들도 역시 이 세상 속에
서 고통을 당하거나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최고의 축복은 안식이다(11-14절) : 저자는 하나님
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평강을 강같이'부어줄 것을 묘사한다(12절). 특히 자기 백성들
이 어미 품에 안긴 자식처럼 하나님의 품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것이라고 말한다. 이처
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축복은 종종 안식으로 특징지워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주신 율법에서도 안식일과 안식년이 나타난다. 그리고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은
종말론적으로 임할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3. 종말론적으로 임할 새로운 시대(66 : 18-24)
이제 본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사실 저자가 현재 이스라엘의 패역한 상황을
보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본 단락에서 계시되고 있는 종말론적 미래
에 대한 소망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슬픔 중에서도 기쁨을 볼 수 있었고 고난 가운
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궁극적인 미래를 소개하
고 있는 본 단락은 하나님의 산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예언이 수록되어
있는 전반부(18-21절), 하나님에 대한 참된 경배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
(22-2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21절에 대하여 사해 사본과 70인역(LXX)은 '나 자신을 위해'라는 말을 덧붙
이고 있으며 반면에 시리아역, 탈굼역, 벌게이트역, 맛소라 사본에는 생략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의미에 비중을 둔다면 '나 자신을 위하여'라는 표현을 첨가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로, 문맥이 하나님 자신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
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본 단락에 나
오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더욱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특
성을 담고 있는 본문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산에 모든 사람이 모일 것이다(18-20절) :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즉 성산을 회복시키고 모든 사람을 부를 것이라는 사실은 본서에서 일관되게
밝혀 온 내용이다(2 : 1-4). 이러한 예언은 장차 교회 시대에 있을 이방인들의 구원을
예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혈통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구원에 도달
할 것이다. 특히 19절에서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는 표현은 장차 교회 시대
의 복음 전파를 예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파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된다.
(2) 마지막 때에 여호와의 산에서는 참된 예배가 있을 것이다(20, 23절) : 여호와
의 산에 모여 믿는 자들은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된다. 이러한 참된 예배는 예수님이
밝히신 바'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참된 예배는 궁극
적으로 마지막 날에 있게될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지지만 부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
도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가능케된 영적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예배는 하나
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을 확인하여 주는 가장 중요한 표지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본서
의 마지막 단락에서 진정한 예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첫째, 교회의 삶과 세상의 삶이 분리되지 않으므
로 우리의 생활 전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하며(롬 12 : 1) 둘째, 미
래에 대한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롬 5 : 1-4)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받아누리며 거룩하게 살아야 함을 배울 수 있다.

* 성경적인 예배에 대하여. 구약에는 예배에 대한 규정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25-31장과 35-40장은 광야에서의 예배 처소인 성막의 설계와 건축을 다룬다.
레위기 1-16장은 제사 제도를 포함한 예배에 관한 규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예배의식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성막과 성전에서의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족장 시대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곳이 예배 처소가 되었고(창 28:10-22) 광야 시대에는 성막, 왕조 시대에는 성전이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데 성막과 성전의 공간적 배치와 구조및 자료, 각종 설치물과 기구들은 예배의 원리를 보여준다. 사실 성소, 지성소와 뜰의 구분, 번제단, 물두멍, 향단, 촛대, 법궤 등은 하늘의 모형을 따라 만들어진 것들로 예배와 관련된 영적인 요소를 실재화시킨 것이다(출 25 : 9, 40 ; 히 8 : 5). 이스라엘의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에 나타난 예배의 원칙들도 모두 영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신약에서는 모든 의식적 영역을 폐지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도록 권고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구약의 모든 제사 의식을 완전히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참성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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