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이사야 6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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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 바로 앞장 마지막 부분에서 토로된 이스라엘의 탄원에 대한 대답의 첫 성(聲)으로 주어진 것이 바로 본 구절이다.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란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물음을 받았다'는 '니드라쉬티'(* )인데 이것은 수동태로서 '찾음을 당하였다'가 문자적인 뜻이다.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신학적으로 다소 어폐(語弊)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시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하나님이 이방인도 부르신 것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면 된다. 바울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롬 10:20). 그런데 구원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의 탄원이라는 문맥에서 암시된 이방인 구원에의 비전은 구원 역사에 관한 좀더 넓은 시야를 열어준다.

=====65:2
내가...불선한 길을 행하는 - 이것은 다음절에서부터 자세하게 열거하게 될 이스라엘의 패역한 행동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배척하셨던 그리고 이방에게 그의 구원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하신 전체적인 이유를 담고 있다.
종일 손을 펴서 - '손을 펼친다'는 것은 초청을 뜻한다(잠 1:24).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의 은총 속에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다.

=====65:3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 이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와 연관성이 있는 표현이다. 이방인들은 주로 수풀 속에서 제사 의식을 가졌다. 또한 그들은 벽돌 위에 미신적인 상징을 새기기도 하였는데 돌 대신 벽돌을 재료로 취한 까닭은 벽돌이 돌 보다 그 위에 새기기 용이하기 때문이었다. 출 20:25에 보면 제단을 세울 때 다듬은 돌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새기는 것을 금하고자 한 것과 일맥 상통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의 제사는 그 외형적인 모양도 취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 여기 '항상'의 원문 직역은 '계속적으로'이다. 이것은 2절의 '종일' 곧 '계속적으로'와 적절한 대비를 이룬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을 초청하셨지만 그들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신 32:21).

=====65:4
무덤 사이에 앉으며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1) 영매(靈媒)가 되기 위해 묘지에 왕래했던 사실(8:19)을 가리킨다(Whybray).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생을 떠난 사람의 경우 이생에 관한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 비밀을 알아내기 위하여 죽은 자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자 하는 영매술이 유행했다. (2) 죽은 자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러 무덤으로 간 것을 가리킨다(Vitringa). 이 둘 중 어느 하나를 단정적으로 취하기는 어렵다.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 '은밀한 처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추림'(* )의 원형은 '지키다', '숨기다', '숨다' 등을 뜻하는 '나차르'(* )이다. 따라서 본문은 이방의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Jerome)이나 지하 토굴(Delitzsch)을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지내며'(* , 얄리누)는 '하룻밤을 머물다'는 뜻이다.
돼지 고기를 먹으며 - 이방인들은 돼지를 대체로 식용이나 제물로도 사용하였던 반면, 이스라엘은 그러한 사용을 일절 금하였다. 이것을 알았던 신 구약 중간 시대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Antriochus Epiphanes)는 여호와 신앙의 포기 및 배교의 증표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다. 한편, 돼지가 이방의 희생 제사에 사용되기도 했다는 측면에서 보면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단순한 식용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즉, 제물로 바쳐진 것을 먹는 것은 그 제물이 바쳐진 대상에 대한 경의를 뜻하는 셈이 되었던 것이다. 본문에서는 바로 이 사실도 넌지시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 여기 '국'(* , 파라크)의 문자적인 뜻은 '조각'이다. 이방 종교 의식에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드리는 의식이 있었는데, 본 구절은 바로 그 같은 의식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앞구절의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 '가증한 물건'이란 돼지고기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65:5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말라 - 그 당시 혐오스러운 이방 예식에 종사하던 자들이 영적 오만으로 자신을 구별하였던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주님 시대 당시 위선적인 자기 의로 가득 찼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부류를 연상시킨다(마 9:11;눅 5:30;18:11;유 1:19). 내 코의 연기요...불이로다 - 여기 '코'(* , 아프)는 문자 그대로의 '코'를 의미하지만(민 11:20;욥 40:24) 때때로 '분노'를 뜻하기도 하는데 분노는 강한 호흡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본 구절은 이방 제사자들의 역겨운 행동이 연기가 코를 찌르고 불쾌하게 하듯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그들의 행동이 분노의 상징인 하나님의 코에 불을 붙였다는 것, 곧 하나님의 진노케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65:6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 이 표현은 왕의 포고령을 그 백성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서책(書冊)에 혹은 테이블 따위에 기록하여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워두거나 비치하던 당시의 관습을 연상케 한다. 이방 신 제사 금지와 그 금지를 어길 때에 따를 처벌에 관한 사실은 이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 여기 '품'(* , 헤크)이란 '가슴'이라는 뜻 외에 물건 따위를 넉넉히 받기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 부분을 가리킨다(출 4:6, 7;잠 6:27). 여기서는 범죄한 이방 제사자들에게 임할 징벌이 크고 심할 것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65:7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 함께 하리니 -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임하기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지나면서 축적되어 왔던 것을 암시한다.

=====65:8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 이 구절은 여러 원인 때문에 대부분이 상해버린 포도송이들 중에서 그래도 쓸 만한 송이를 가려내는 작업을 연상케 한다. 나도...그같이 행하여 -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이 상해버린 포도 송이들 중에서 좋은 포도즙을 낼 수 있는 포도 송이를 가려 뽑듯이 하나님이 불경건한 이스라엘 민족 대부분을 명망시키는 중에 경건한 '남은 자'를 아껴 두실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본서에는 이 사상이 반복되고 있다(1:9;6:13;10:21;11:11-16).

=====65:9
씨 - '거룩한 씨'란 뜻으로, 조상들의 죄로 말미암아 몰수당했던 거룩한 땅을 다시 소유키로 되어 있는 야곱의 후손들을 가리킨다(6:13).
나의 산들 -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이 지형학적으로 높은 곳이므로 산이라 불리웠다.

=====65:10
사론 - 지중해 연안 갈멜 산 남부 지방인데 빼어난 경관과 비옥한 땅으로 유명한 곳이다(35:2).
아골(* , 아코르) - 문자적인 뜻은 '고통'인데 여리고 가까이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다. '고통'이란 의미가 붙여진 이유는 과거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수 7:24). '아골 골짜기'란 호칭은 성경에서 재앙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처소로도 사용된다(호 2:15).

=====65:11
갓에게 상을 베풀어 놓으며 - '갓'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여겨졌던 시리아 신(神)으로 이해되며 포에니시아(Phoenicia), 팔미르(Palmyra) 및 팔레스틴 등지에서 숭배되었다(수 11:17;12:7;15:37 참조, J. Watts, Whybray). 이 신을 섬기기 위해 마련된 상 위에는 온갖 음식, 특히 포도주와 꿀을 섞은 술잔 등이 진설되었다고 한다(Jerome).
므니(* , 메니) - '할당하다', '세다' 등을 뜻하는 '마나'(* )의 변형이 분명한데, 많은 견해가 있지만 운명의 신으로 숭배되었던 것 같다(J. Watts, Whybray).

=====65:12
칼에 붙일 것인즉 - 고도의 언어적 유희가 돋보이는 구절이다. 여기 '붙일'에 해당하는 '마니티'(* )는 11절의 '메니'(* )와 그 원형(* , 마나)이 동일하다. 패역한 백성이 그들의 운명을 세듯 좌지 우지할 것으로 믿었던 바로 그 신의 운명을 하나님께서 좌지 우지하신다는 것이 본 언어 유희의 핵심이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헛된 우상 '메니'(* )를 의지한 이스라엘의 불경건한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65:13
본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자와 배척하는 자가 서로 다른 운명에 처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본절이 이스라엘 역사 속의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암시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주릴 것'이란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의 예루살렘 포위로 백십여 만 명이 기근으로 몰살한 역사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명확하다(Houbigant). 뒷문맥에 근거하여(17-25절) 본절을 다분히 종말론적 상황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좋겠다.

=====65:14
심령이 상하므로 - '상하므로'의 히브리어 '솨바르'(* )는 '산산이 부숴지다', '찢어지다'는 뜻으로서 극심한 재앙으로 인해 그 마음이 크게 눌릴 때 사용된다. 하나님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이 제외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인 마 8:12에 유사한 뜻의 표현이 사용되었다:"나라의 본(本)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65:15
너희의...될 것이니라 - 어떤 이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 대한 저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끔찍한 저주의 사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실례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저주하기 위해 시드기야와 아합의 이름을 사용한 렘 29:22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Whybray).

=====65:16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 환난이 잊어졌다는 것은 환난이 종결되었음을 뜻한다. 말을 바꾸면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우상에게 맹세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사라지고 참신이신 하나님께 맹세하고 복을 구하게 될 텐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65:17
본절은 1차적으로 포로 귀환 이후 새로이 회복될 공동체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메시야의 통치시대의, 더 이상 고통과 슬픔 따위가 없는 완전한 세계를 바라보게 하고 있다.
갈렙이 그 발로 밟았던 바로 그 땅을 물려받았듯이(신 1:36), 메시야와 그의 백성들은 전혀 새롭게 변화된 새 땅을 물려받을 것이다(34:4;66:22;히 12:26-28;벧후 3:13;계 21:1)

=====65:18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 새로이 재건될 예루살렘 혹은 새 창조로 말미암은 천성(天城) 예루살렘에 즐거움이 넘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I will create Jerusalem to be a delight, NIV).

=====65:19
우는 소리와...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그리고 2차적으로는 모든 구원받을 자에 대한 예언이다(25:7, 8;35:10;계 7:17;21:4).

=====65:20
본절은 인간의 평균 수명이 최소한 100세일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 종말 이후 펼쳐질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새 세계는 수명이란 것이 아예 없이 영원히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점은 본절의 평균 수명 100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영원히'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할 때 해소될 수 있다. 이 해석에 비추어 보건대, 아마도 너무 일찍 죽는 현세대의 상황과 대비시키기 위해 평균 수명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 같다.

=====65:21
본절 역시 포로 귀환 후의 상황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가옥 건축과 과실 재배에 관한 본절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는 새 세계에 가옥이 있고 노동이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세계를 좀더 실감나게 상상케 하기 위하여 익히 알고 있는 현세상의 이미지를 끌어들이고 있다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65:22
본절 상반절은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졌던 저주와 정반대되는 내용이다:"...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네가 그 과실을 쓰지 못할 것이며"(신 28:30).
나무 - 자연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것 중의 하나로, 이 역시 영원한 삶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61:3;시 92:12).

=====65:23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 원문 직역은 '고통을 위하여 낳지 않을 것이며'이다. 이것은 후손의 운명을 암시한다. 당시 산모가 아기를 낳을 경우, 아이는 출산 과정에서 죽기도 하고 분만이 되어도 짧은 생(生)을 살고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65:24
64:7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와 대조를 이루는 구절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친밀한 영적 교제를 암시하는 표현이다.

=====65:25
인간의 범죄 이후 여러 현상이 발생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자연의 조화가 깨어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저주가 임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라고 묘사하고 있다(롬 8:22). 그런데 본절에서 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그와 같은 부조화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식 동물의 식성이 바뀔 것이며 심지어 저주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 나오는 창 3장을 연상케 하는 뱀까지도 더 이상 파괴자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의와 평강과 희락의 세계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곧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조성된 적대감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로 청산될 때에만 가능하다.



전장(64장)에서는 시온의 황폐함에 주목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긍휼히 여겨 다시 회
복시켜달라는 간절한 요청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소는 자신들의
현재의 부정적 상황이 근본적으로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에 나오
는 반응이었다. 이에 비하여 본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즉 이스라엘이 전공동
체를 어떻게 다루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전장이 기도의 형
식을 빌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상태를 근거로 미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장
이라면 본장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밝히는 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전까지는 다소 희미했던 하나님의 미래에 관한 계시가 본장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죄에 대해 묘사하는 전반부(1-7절), 신실
한 자와 불신실한 자에 대한 상반되는 결과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중반부(8-16절),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밝히고 있는 후반부(17-25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한편, 본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건설'에 관한 주제가 중점적으로 다루어
지고 있다(17-25절). 이러한 내용은 신 . 구약을 일관성있게 이해할 수 있으며 하나님
이 갖고계신 최종적인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17절의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언급은 신약의 요한계시록의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본장은 우
선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한 자'(15절)이며, '하나님의 종'(13, 14
절)임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역사가 대체적으로 배도의 성격을 갖지만 하나님에 대하
여 신실한 남은 자가 있으며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
이와 관련해서 본장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1절). 본 예언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이방인이 하나님의 교회에 참
여한다는 사실을 논하던 문맥에서 인용한 구절이다(롬 10 : 20). 여기서 우리는 하나
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자는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믿음의 원리가 인종적 제한으로 인하여 차별화될 수
없음을 선언한다(롬 10 : 11-13).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아브라함의 선택에서
부터 나타나 있었다(창 12 : 3). 결국 본장은 하나님 나라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모든
자를 포괄하는 종말론적 완성의 영역이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이제 본장의 내용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65 : 1-7)
이스라엘의 실존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는 전단락(64 : 10-12)에 이어
서 본 단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상태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
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이스라엘의 죄악이 심각한 지경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
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는 본 단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적인 죄를 지적하는 전반부(1-5절),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을 예언하는 후반부(6, 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지적을 하고 있다. 특
히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 지내며'(4절)라는 표현은 공동 묘지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죽은 자의 영헌들과 접촉하는 그 당시의 심령술(necromancy)을 말한다. 이
처럼 심령술로 종교적 안위를 찾으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바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의미한다. 이제 이처럼
우상 숭배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1) 의식(儀式)적 영역에서의 범죄(3, 4절)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인격
적인 교제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삶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
성들은 이 의식의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죄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우
상을 숭배하고 있었는가는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3절)라는 표현
속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동산을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벽돌'을 제단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여호
와의 제단은 반드시 손대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아야 하는 규정(출 20 : 15 ; 수 8 :
31)을 무시하고 '벽돌'로 제단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멸시하는가
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2) 열조의 범죄와 하나님의 보응(5-7절) : 의식적 영역에서의 범죄는 본서의 저자
가 살던 그 당시의 상황만은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의 열조들을 통해서 행
해져왔던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너희의 죄악과 너희 열조의 죄악을'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7절). 이러한 그들의 오래된 범죄는 하나님의 보응을 받게 되었다. 그래
서 반복적으로 '보응'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6, 7절). 이와 같은 사실의
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가장 심각한 죄악이라는 점과 반드시 하나님의 보응
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65 : 8-16)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 의식의 범죄에 대하여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는 전 단락
(1-7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하나님의 심판과 동시에 남은 자를 통한 구원 역사를 묘
사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 전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로
인하여 좌절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이러
한 미래 구원 역사에 대한 계시는 장(章)을 거듭할수록 분명해져 오는데, 본 단락에
이르러서는 매우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남은 자에 대한 하나
님의 구원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8-10절), 패역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중반부(11, 12절), 남은 자와 패역한 자들에 대한 결과를 비교하고
있는 후반부(13-16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문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니게 족속이 섬기는 행운의 여신이었
던 '갓'과 수리아 사람들이 섬기던 운명의 신인 '므니'를 섬겼다고 고발한다. 즉, 이
방신에게 상을 베풀고 섞은 술을 가득히 부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
들은 여호와와의 교제를 위해 진설병 상(床, 출 25 : 23-30)과 같은 것을 마련하여 섬
겼다. 그런데 본 단락에 와서는 그 대상이 여호와가 아니라 이방 신상이 되었다는 것
이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 당시 이스라엘의 제사 의식은 형식주의적으로 흘렀
고,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그들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이 두드러지는 본 단락
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신다(8-10절) : 저자는
구원의 역사가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남은 자를 통하여 성취된
다는 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는 데 있어서 실패
하지 않으신다. 비록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이 극단적인 배도의 흐름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남은 자에게 기업을 허락하시고 구원의 역사
를 진행시키신다. 이러한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 시대뿐만 아니라
엘리야의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신약에서 바울은 남은 자를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
도를 믿는 자와 동일시하고 있다(롬 9-11장). 특히 엘리야 시대는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패역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 칠천명이 존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고 남은 자를 선택하신다(13-16절) : 우상 숭배에 빠
져 여호와를 버린 이스라엘은 더 이상 민족 전체로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대상
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이제 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구원 역사를 전개해 나가실 것이
다. 이러한 본서의 구조를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롬 9-11장). 즉,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중심적인 틀이 유대인들에게서 이방인들에게
로 옮겨져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대상이 소수의 진실한 자들로
제한되고 있다.

3.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65 : 17-25)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8-16절)에 이어서 본 단
락은 본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 본
서의 저자가 1장부터 계속해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시온의 회복, 즉 하나님의
새로은 나라의 건설이었다. 특히 본문은 남은 자에 대한 암시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내용에 이어 하나님 나라를 언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내적인
특성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7-20절),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풍요로움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21-2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나라의 내적인 특성은 기쁨이다(18-20절) : 저자는 온전한 하나님 나라
의 완성을 묘사하면서 그 내적인 특징을 '기쁨' 혹은 '즐거움'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러한 기쁨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자들이 누리는 복스러운 기쁨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것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왜냐하면 세상의 기쁨은 한시적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18절에서 '영원히 기뻐하며'라고 언급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령 깊은 곳에서 흘러 나오는 참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된다.
(2) 하나님 나라의 외적인 특성은 전우주적인 회복이다(17, 21, 25절) : 저자는 하나님 나라를 가리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17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전영역에 대한 획기적 변혁임을 드러내고 있다(엡 1 : 10 ; 계 21 : 1).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자연계를 완전히 회복시키신다.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의식적 영역에서 범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요 4 : 23). 둘째,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은혜로 구원하심을 믿고, 언제나 진실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이 세우실 온전한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한다(살전 1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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