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53:2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 ,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엊넉 과거'라 부른다.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3:3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53:4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53:5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53:6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53:7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53:8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53:9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53:10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53:11
자기 자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53:12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전장 말미(52:13-15)에서 서론적으로 종의 고난을 예고했던 이사야는 본장에서 복
격적으로 종의 모습을 세밀하게 언급한다. 종은 비천한 출신으로 탄생하여 온갖 멸시
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시고 급기야 형벌을 받아 돌아가심으로써 백성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가장 완벽하게 그리스도의 일생을 표현한
것이므로 본장은 '이미 성취된 구약 성경에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심오한 내
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 종의 배척을 다루
는 부분(1-3절) (2) 종의 고난을 다루는 부분(4-6절) (3) 종의 배척을 다루는 부분
(7-9절) (4) 종의 승귀를 다루는 부분(10-1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본장은 40장 이후에서 계속적으로 소개되거나 암시된 여러 전망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전망들 중의 하나는 바벧론 포로라는 전망이다. 먼저
40-47장에서는 바벧론 압제자의 멸망을 다루었고 48:1-52:12에서는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방해없이 본국으로 귀환 것을 다룬 바 있다. 또 다른 전망은 여
호와의 종이다. 40-47장에서는 종을 소개하며 온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묘사하였다.
48:1-52:12에서는 종이 국가 따위의 단체가 아닌 개인임을 밝히며 그의 순종과 고난을
간단히 묘사하였다.
구런데 이러한 두 가지 전망 속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이다
(42:24, 25;43:25;48:17-19;50:1). 이스라엘의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종이 원하는 참
된 자유가 성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자는 본장에서 종의 고난과 순종이 바로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대속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40:1-52:12에서 진전되어 온 모든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다. 본장에 이
르러 저자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밝히먼 구원의 메시지들을 종한하고 분명하게 제시
한 것이다.
한편 대속 사역에 있어서 종의 고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는 대칭법을
사용하고 있다. 각각의 세 구절을 한 단위로 하는 다섯 개의 연들 즉 52:13-15;1-3
절;4-6절;7-9절;10-12절 등이 상호 대칭을 이루도록 배열하였다. 여기서 대칭의 축과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은 고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3연이다. 본연을
축으로 할 때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연(2, 4연)은 동일하게 종의 배척당함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좀더 먼 곳에 위치한 양 편의 두 연(1, 5연)은 종의 승귀를 다루고 있
다. 또한 대칭 구조의 축을 중심으로 할 때 좌편(1, 2연)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우
편(4, 5연)은 종 중심의 관점으로 기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알기
쉽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 3연 |
+---------------+
| 53:4-6 |
+--------------+--------------+---------------+--------------+--------------+
| 1연 | 2연 | 종 | 4연 | 5연 |
+--------------+--------------+ 의 +--------------+--------------+
| 52:13-15 | 53:1-3 | | 53:7-9 | 53:1-12 |
+--------------+--------------+ 고 +--------------+--------------+
| 종의 승귀 | 종의 배척 | 난 | 종의 배척 | 종의 승귀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저자는 '종의 고난'이 본서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구속사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근본적 이유
는 죄 때문이었다(42:24, 25;43:25;48:17-19;50:1). 또한 인류가 명망받을 수밖에 없
는 까닭도 죄 때문이다(룸 3:23). 그래서 하나님은 유월적 이후 제사 제도를 통해 속
죄의 길을 예표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본장은 바로 종이 진정한 제사장이며 동
시에 제물이라고 밝히고 있다(히 9:11, 12).
저자는 죄를 사하기 위해 행해지는 피뿌림(10절)을 포함한 모든 메시야의 사역을
'고난'이라는 큰 문맥 속에서 진술하면서 온 인류의 죄사함의 유일한 근거가 오직 종
의 수난 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종의 수난을 통한 대속사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본장을 몇 단
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종의 배척당함(53:1-3)
전장 마지막 단락(52:13-15)은 본장의 서론으로서 종의 승귀에 강조점이 두어졌었
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 단락에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종의 배척당함이 중점적으로 다
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여호와의 팔(1절) (2) 조의 보잘것 없는 외
모(2절) (3) 사람들의 멸시(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저자는 종의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음을 언급한다(2절):종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므로 사람들이 흠모할 만하지 못하였다. 사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만큼 특별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52:14;시
45:2;아 5:16;단 7:9)과 신약(마 17:2;계 1:14;4:3)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 저자는 종이 점차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2절):종은 '연한 순' 같아서
멸망된 다윗 족보를 통해 탄생하며,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패역한 시대 속에서
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킬 것이다(요 15:1-6). 그런데 이러한 지속적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눅 2:40).
(3) 저자는 종이 백성들의 배척을 받게 된다고 기술한다(3절):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며 배격한다(마 26:65-68;27-31;막 15:18-20). 심지
어 제자들조차도 외면한다(마 26:56, 72-75). 이처럼 종은 가장 비참한 지경에 도달하
게 되었다(49:7). 그러나 종은 이러한 비난을 감수함으로써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2. 종의 고난(53:4-6)
본문은 메시야가 받으신 고난의 참됨 의미에 대해 해명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가 가
시관을 쓰고(마 27:29;막 15:17;요 19:2) 십자가에 못막힌(마 27:35;막 15:24;눅
23:33;요 19:17;행 2:36) 이유가 인간의 구원을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종의 고
난을 다루고 있는 본 단락은 (1) 고난의 이유를 종과 사람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전반
부(4, 5절), (2) 인간의 범죄적 본성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에 대해 속죄의 염
소(scapegoat)의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는 후반부(6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에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1인칭 복수
및 3인칭 단수의 빈번한 사용:특히 5절에서 '그'라는 3인칭 단수와 '우리'라는 1인칭
복수가 네 번이나 대조되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저자는 종이 고난을 당함으로 우
리가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고통과 징벌을 암시하는 명사와
동사들의 빈번한 사용:저자는 '질고'(2회), '간고', '징벌', '고난', '찔림', '상함',
'징계'(1회)와 같은 용어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의 고난이 죄에 대한 징벌과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본 단락은 종의 고난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받는 대리적 형벌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길 잃은 양과 속죄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
여 인간의 반역과 어린 양의 대속을 효과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속죄
일에 희생 염소를 광야로 떠나 보내던 이스라엘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보여진다(마
18:12-14;눅 15:1-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
해 자원하여 고통을 감수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벧전 2:24).
3. 배척에 대한 종의 태도(53:7-9)
전 단락(4-6절)에서 종의 고난이 대속 사역의 절정으로 다루어진 후 본 단락에서는
종의 배척당함(1-3절)이 재차 언급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배척에 대한 종의 태도를
초점으로 잡고 있다. 종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는 상황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
는 인내를 보여 주었다(50:5-7). 이와 같은 종의 순종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본문은
(1) 고난과 죽음을 침묵으로 맞는 종(7, 8절), (2) 장식된 종(9절) 등으로 나눌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저자는 오용된 공권력 앞에서도 침묵하는 종의 모습을 중점적
으로 부각시키고 있다(7, 8절). 인산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십자
가-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주는 고통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
셨다(막 14:36;히 5:7). 그러나 자신의 인간적 욕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순
종을 결심하셨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해와 모욕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심지어 오용된 공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셨다(벧전 2:23). 이러한 태
도는 에레미야의 행동과 대조를 이룬다(렘 11:18-20;12:1-3). 종은 억울한 대우를 받
을 때도 결코 흥분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구속
적 사역을 성취하고자 하는 메시야의 헌신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4. 종의 승귀(53:10-12)
수난을 당하는 종의 태도에 이어지는 본 단락에서는 52:13-15에 이어 다시 한번 종
의 승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앞부분(52:13-15)에서는 짧막하게 선포식으로 다룬 반
면, 본 단락에서는 종의 중보 사역을 소개하면서 장화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속건 제물로서 죄악을 담당하는 여호와의 종(10, 11절) (2) 종의 최종
적인 승귀(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종의 대속 사역
의 결과 많은 생병이 구원됨을 밝힌다. 종은 자신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써
(10절)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고 아울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다. 저자는 이러한 사
역을 위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한다(요
1:1-18).
또한, 구원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한다. 하나님은 수난을 통과한 메시야에게 천상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
과 존귀를 부여하신다(빌 2:9-11).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
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진리의 가장 확고한 보증이 되는 것
이다(빌 3:10, 11;벧전 1:5-7;4:13).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사
실 유대인들은 영광과 권능으로 오실 정치적 메시야를 희구하였다. 그런데 진정한 구
원자는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고난의 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희
생하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마 20:28;막 10:45;행 14:22;벧전
2:19-21;3:14, 17, 18;4:13, 16).
* '여호와의 종'의 성격과 사명. 이사야에서는 '여호와의 종'(servant of the
Lord)으로 불리우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특별히 42:1-4;49:1-6;50:4-9;52:13-15 등은
'종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을 대단히 소중하게 생
각하며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누구이며,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그 사명은 무엇인지 개발적으로 고찰해
보자고 한다.
1. '여호와의 종'의 실체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석으로 나누어진다.
(1) 집합적 해석: '여호와의 종'이 구속적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
한다고 본다(49:3). 흑자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남은 자로 이해한다
(49:5, 6). 결국 종은 선지자적 이상이 다윗 왕조를 통해 계승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투영된 실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2) 개인적 해석: '여호와의 종'이 어떤 특별한 체험을 겪은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모세, 예레미야, 고레스, 스룹바벧, 이사야 등과 같은 특징한
역사적 인물로 주장한다. 그러나 종은 죄가 없으며(8절) 활동의 웅대한 점(42:4)으로
볼 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42:6;요 12:38, 41;행
8:32-35).
(3) 종합적 해석:개인과 공동체 간의 날카로운 구분을 철폐하고 종이 대표자인 동
시에 구속자라고 이해한다. 특별히 '공동 인격'(corporate personality)에 대한 개념
을 통해 종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는 메시야인 동시에 자신 안에 이스라엘을 집약
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결국 이 견해는 '여호와의 종'이란 메시야적 성격을 가
진 이상적 이스라엘이라고 보는 것이다(52:13-53:12).
2. '여호와의 종'의 성격
종은 여호와의 택하심을 입고(42:1;49:1)성령의 인도를 받으며(42:1) 하나님의 능
력을 소유(49:2, 5)하였다. 그는 연약하고 고운 모양도 없이 멸시를 받았으며
(52:14;53:1-3, 7-9) 자발적으로 고난을 감수했다(53:10).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53:9) 끊임없이 고통을 당했으므로(50:6;53:3, 8-10) 기진하였다(49:4). 그러나 하나
님의 뜻이었으므로(10절) 여호와를 신뢰하였고(49:4;50:7-9) 기꺼이 복종하였으며
(50:4, 5) 승리할 때까지(42:4;50:8, 9) 오래 참으셨다(50:7).
3. '여호와의 종'의 사명
종은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을 일삼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49:5). 그러나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고 세계 만국의 구원과 심판을 전개하였다(42:1, 3, 4;49:6). 이러한 사명은 영웅적인 정복 사역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난과 형벌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는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담당함으로써(53:4-6, 8)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53:12). 결국 종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 구원을 성취하게 되었고(53:10) 전세계에 존귀와 영광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12절;52:13, 15).
4.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죽음은 유일한 인류 구원의 근거가 된다(막 10:45;14:24;눅 18:31). 따라서 우리는 순종과 인내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올바른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 '우리'에 대해서는 (1) '선지자 자신'(Calvin, Oehler, Stier), (2) 52:15의 '열방들'(혹은 이방인들, G.W. Grogan), (3) '이스라엘 백성, 특히 선지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경건한 무리들'(Delitzsch, Leupold) 등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으나 마지막 견해가 가장 나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이들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며, 또 저들의 고백은 거의 회개에 가까운데,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새로운 깨달음을 믿은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53:2
주 앞에서 - 여기 '주'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종'의 삶의 과정은 인간들 앞에서는 하찮은 것이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자라나기를( , 야알) - 문자적인 뜻은 '그가 자라나셨다'로, 과거 시제(완료형)로 되어 있다. 본 동사의 시제를 따른다면 본절이 나타내는 인물은 본서 저자 이사야의 과거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세, 욥, 예레미야 등을 거론할 수 있지만 본장이 묘사하는 종과는 비교되 될 수 없다. 결국 이 종은 메시야인신 예수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과거로 시제를 적은 이유는 본서 저자가 미래를 내다볼 때 자신이 예언하는 메시지의 성취를 너무나도 명백히 보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는 그 일이 이미 발생한 것처럼 확신있게 적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을 예언적 기술법 중의 하나인 '예엊넉 과거'라 부른다. 마른 땅 ... 줄기 -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11:1)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며, 특히 '마른 땅'이란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처해 있던 비천한 상황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53:3
본절에서 저자는 '종'의 비하(卑下)를 좀더 상세히 묘사한다.
멸시를 받아서 - 여기에는 거절과 배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가 고난의 걸미미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를 거절하고 배척 했다. 고난의 '종'에 대한 태도 문제에 있어서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인간은 그의 구원을 즐거워하고 그를 높이거나 아니면 그를 배척하고 멸시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무관심 역시 그에 대한 적의를 품고 있는 것이다.
질고를 아는 - 문자적인 뜻은 '병을 잘 아는'이다. 그러나 이 구절을 그가 육체적으로 허약하여 이런 저런 질병에 계속 걸렸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병'은 '죄'를 묘사하는 비유적 술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육체적 질병을 비유로 해서 유다의 죄악 상태를 드러낸 바 있다(1:5,6). 따라서 성취될 구원은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인 것이 분명하다.
=====53:4
우리의 질고를 지고 - '종'이 짊어진 질고와 수난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대리 개념이다. 의로운 한 분이 질고와 허물과 죄악이 가득한 자들을 대신하셨다는 것이다(롬 5:17-19). 이것은 그 '수난자'가 자기 백성을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업슨다 것이기 때문이다. '수난자'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53:5
본절은 '종'이 고난받은 참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의 허물 때문이다. 여기 '허물'이란 단순한 실정법들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위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대변되는 우리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변적인 법에 대해서 범죄하였다. 그 결과우리는 그의 진노와 그 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다. 죄들은 영원한 사망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상황에서 인간이 지불할 사망이란 요구가 '종'에게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맥에서 볼때 여기 '찔리다', '상하다'등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죽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사실 히브리어에서 이 두단어는 격렬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시사하는 용어들이다.
평화 - 이것은 단지 외적인 안녕과 조화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 곧 하나님과의 평화를 뜻한다.
=====53:6
본절은 신학의 대요이다. 먼저, 우리가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은, 우리가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구원할 상태에 있지 못하다는 전적 부패 교리의 근거가 된다. 둘째로, 본장에서 지금까지는 나타나지 않던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죄악을 '종'에게 담당시킨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근거가 된다. 셋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분에게 담당시킴으로써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에 필요한 것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구원 교리로 볼 수 있다.
=====53:7
본절은 고난에 대한 종의 태도를 요약해준다. 먼저 '곤욕을 당하여'는 좀더 풀어보면 '그가 자신을 곤욕당하도록 내맡기셨다'이다. 이것은 종이 고난을 자원하여 받은 것을 가리킨다. 또한 '그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수하고 참아냈다는 것을 가리킨다. 종은 고난을 자원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셨는데, 저자는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의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53:8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 '곤욕'( , 오체르)은 '강압', '구금자'이 그 문자적인 뜻인데, 따라서 어떤 학자는 이 단어를 '감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신약에 비추어 볼때 '체포'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종'은 법적인 과정을 밟아 사형 언도를 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이 같은 결과가 단순한 오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종종 무죄한 피고가 부당히 고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 경우가 있기 떠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그 같은 결과는 사람들이 악했기 때문이다. '종'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죄로 저주 아래 있던 이땅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하게 죽였다.
=====53:9
그리스도께서 범죄자로 낙인 찍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후 부자의 묘실에 장례된 것을 연상케 한다(마 27:32-61).
=====53:10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 하나님께서 그를 즐겨 고난당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속건 제물'과 속죄 제물의 차이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속건 제물은 부채를 갚거나 또는 부과된 죄값을 만족시켜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려졌다(레 5:15). 이제 우리는 '종'의 비참한 죽음과 처참한 고난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죽음, 즉 그의 생명의 피를 쏟아 부음은 속죄를 위해 계획되고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한편 '종'의 죽음이 희생 제물이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하셨다는 말이기도 하다. 종은 다른 제사장과는 달리 기꺼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따라서 그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들과는 근본적으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유일 무이(唯一 無二)한 제사로서 다른 제사의 원형이며 실체이다 :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히 9:26).
그 씨를 보게 되며 - 여기 '씨'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영적 후손을 가리킨다(시 22:30). 유대 사회에서 많은 자손은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물론 살아 생전 누리는 축복이었다. 그런데 종은 죽음으로써, 또 죽어서 그 축복을 누리신다.
그 날은 길 것이요 - 장수 역시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 이제 종 메시야는 죽음에서 일어나 승천하시고 다시 재림하신 후 영원히 그의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호 6:2;롬 6:9).
=====53:11
자기 자식으로 - 이는 '그(종)의 지식으로'(by his knowledge, KJV, RSV, Hengstenberg, Stier) 혹은 '그(종)에 관한 지식으로'(by knowledge of him, Delitzsch) 등 두 가지로 해석된다. 어떤 해석을 취하든 본문 이해에는 별무리가 없으나,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라는 50:4내용 등을 고려하건대, 첫 번째 견해를 더 지지하고자 한다.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 이것은, 종이 많은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근거가 된다. 한마디로 그들의 죄악을 짐어지셨다는 말이다. 죄악을 짊어짐으로 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완전한 의를 베푸신다. 이렇게 주어진 '의'는 '법정적 칭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53:12
본장은 종의 사역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인 선포롤 끝맺고 있는데, 종이 위대한 승리자로서 전리품을 나누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 승리는 바로 종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얻은 결과였으며, 이로 인해 범죄자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 4:8).
전장 말미(52:13-15)에서 서론적으로 종의 고난을 예고했던 이사야는 본장에서 복
격적으로 종의 모습을 세밀하게 언급한다. 종은 비천한 출신으로 탄생하여 온갖 멸시
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시고 급기야 형벌을 받아 돌아가심으로써 백성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가장 완벽하게 그리스도의 일생을 표현한
것이므로 본장은 '이미 성취된 구약 성경에 예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심오한 내
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 종의 배척을 다루
는 부분(1-3절) (2) 종의 고난을 다루는 부분(4-6절) (3) 종의 배척을 다루는 부분
(7-9절) (4) 종의 승귀를 다루는 부분(10-12)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본장은 40장 이후에서 계속적으로 소개되거나 암시된 여러 전망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전망들 중의 하나는 바벧론 포로라는 전망이다. 먼저
40-47장에서는 바벧론 압제자의 멸망을 다루었고 48:1-52:12에서는 이스라엘이 바벧론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 방해없이 본국으로 귀환 것을 다룬 바 있다. 또 다른 전망은 여
호와의 종이다. 40-47장에서는 종을 소개하며 온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묘사하였다.
48:1-52:12에서는 종이 국가 따위의 단체가 아닌 개인임을 밝히며 그의 순종과 고난을
간단히 묘사하였다.
구런데 이러한 두 가지 전망 속에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이다
(42:24, 25;43:25;48:17-19;50:1). 이스라엘의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종이 원하는 참
된 자유가 성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자는 본장에서 종의 고난과 순종이 바로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대속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40:1-52:12에서 진전되어 온 모든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이다. 본장에 이
르러 저자는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밝히먼 구원의 메시지들을 종한하고 분명하게 제시
한 것이다.
한편 대속 사역에 있어서 종의 고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저자는 대칭법을
사용하고 있다. 각각의 세 구절을 한 단위로 하는 다섯 개의 연들 즉 52:13-15;1-3
절;4-6절;7-9절;10-12절 등이 상호 대칭을 이루도록 배열하였다. 여기서 대칭의 축과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은 고난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3연이다. 본연을
축으로 할 때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연(2, 4연)은 동일하게 종의 배척당함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좀더 먼 곳에 위치한 양 편의 두 연(1, 5연)은 종의 승귀를 다루고 있
다. 또한 대칭 구조의 축을 중심으로 할 때 좌편(1, 2연)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우
편(4, 5연)은 종 중심의 관점으로 기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내용을 좀더 알기
쉽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
| 3연 |
+---------------+
| 53:4-6 |
+--------------+--------------+---------------+--------------+--------------+
| 1연 | 2연 | 종 | 4연 | 5연 |
+--------------+--------------+ 의 +--------------+--------------+
| 52:13-15 | 53:1-3 | | 53:7-9 | 53:1-12 |
+--------------+--------------+ 고 +--------------+--------------+
| 종의 승귀 | 종의 배척 | 난 | 종의 배척 | 종의 승귀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와 같은 구조를 통해 저자는 '종의 고난'이 본서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구속사의
핵심이며 기독교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근본적 이유
는 죄 때문이었다(42:24, 25;43:25;48:17-19;50:1). 또한 인류가 명망받을 수밖에 없
는 까닭도 죄 때문이다(룸 3:23). 그래서 하나님은 유월적 이후 제사 제도를 통해 속
죄의 길을 예표적으로 제시해 주었다. 그런데 본장은 바로 종이 진정한 제사장이며 동
시에 제물이라고 밝히고 있다(히 9:11, 12).
저자는 죄를 사하기 위해 행해지는 피뿌림(10절)을 포함한 모든 메시야의 사역을
'고난'이라는 큰 문맥 속에서 진술하면서 온 인류의 죄사함의 유일한 근거가 오직 종
의 수난 뿐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종의 수난을 통한 대속사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본장을 몇 단
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종의 배척당함(53:1-3)
전장 마지막 단락(52:13-15)은 본장의 서론으로서 종의 승귀에 강조점이 두어졌었
다. 그런데 이어지는 본 단락에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종의 배척당함이 중점적으로 다
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여호와의 팔(1절) (2) 조의 보잘것 없는 외
모(2절) (3) 사람들의 멸시(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저자는 종의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음을 언급한다(2절):종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으므로 사람들이 흠모할 만하지 못하였다. 사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만큼 특별하지 않았고 지극히 평범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약(52:14;시
45:2;아 5:16;단 7:9)과 신약(마 17:2;계 1:14;4:3)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 저자는 종이 점차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2절):종은 '연한 순' 같아서
멸망된 다윗 족보를 통해 탄생하며,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처럼 패역한 시대 속에서
도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킬 것이다(요 15:1-6). 그런데 이러한 지속적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눅 2:40).
(3) 저자는 종이 백성들의 배척을 받게 된다고 기술한다(3절):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며 배격한다(마 26:65-68;27-31;막 15:18-20). 심지
어 제자들조차도 외면한다(마 26:56, 72-75). 이처럼 종은 가장 비참한 지경에 도달하
게 되었다(49:7). 그러나 종은 이러한 비난을 감수함으로써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자기 희생적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2. 종의 고난(53:4-6)
본문은 메시야가 받으신 고난의 참됨 의미에 대해 해명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가 가
시관을 쓰고(마 27:29;막 15:17;요 19:2) 십자가에 못막힌(마 27:35;막 15:24;눅
23:33;요 19:17;행 2:36) 이유가 인간의 구원을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종의 고
난을 다루고 있는 본 단락은 (1) 고난의 이유를 종과 사람의 입장에서 조명하는 전반
부(4, 5절), (2) 인간의 범죄적 본성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에 대해 속죄의 염
소(scapegoat)의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는 후반부(6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 단락에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 1인칭 복수
및 3인칭 단수의 빈번한 사용:특히 5절에서 '그'라는 3인칭 단수와 '우리'라는 1인칭
복수가 네 번이나 대조되었다. 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저자는 종이 고난을 당함으로 우
리가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고통과 징벌을 암시하는 명사와
동사들의 빈번한 사용:저자는 '질고'(2회), '간고', '징벌', '고난', '찔림', '상함',
'징계'(1회)와 같은 용어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의 고난이 죄에 대한 징벌과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상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본 단락은 종의 고난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받는 대리적 형벌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길 잃은 양과 속죄 양의 이미지를 사용하
여 인간의 반역과 어린 양의 대속을 효과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비유는 속죄
일에 희생 염소를 광야로 떠나 보내던 이스라엘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보여진다(마
18:12-14;눅 15:1-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
해 자원하여 고통을 감수하신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벧전 2:24).
3. 배척에 대한 종의 태도(53:7-9)
전 단락(4-6절)에서 종의 고난이 대속 사역의 절정으로 다루어진 후 본 단락에서는
종의 배척당함(1-3절)이 재차 언급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배척에 대한 종의 태도를
초점으로 잡고 있다. 종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는 상황 속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하
는 인내를 보여 주었다(50:5-7). 이와 같은 종의 순종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본문은
(1) 고난과 죽음을 침묵으로 맞는 종(7, 8절), (2) 장식된 종(9절) 등으로 나눌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저자는 오용된 공권력 앞에서도 침묵하는 종의 모습을 중점적
으로 부각시키고 있다(7, 8절). 인산의 몸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십자
가-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주는 고통을 예견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
셨다(막 14:36;히 5:7). 그러나 자신의 인간적 욕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순
종을 결심하셨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해와 모욕을 담담하게 맞이했다.
심지어 오용된 공권력을 휘두르는 권력자 앞에서도 침묵하셨다(벧전 2:23). 이러한 태
도는 에레미야의 행동과 대조를 이룬다(렘 11:18-20;12:1-3). 종은 억울한 대우를 받
을 때도 결코 흥분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구속
적 사역을 성취하고자 하는 메시야의 헌신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4. 종의 승귀(53:10-12)
수난을 당하는 종의 태도에 이어지는 본 단락에서는 52:13-15에 이어 다시 한번 종
의 승귀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앞부분(52:13-15)에서는 짧막하게 선포식으로 다룬 반
면, 본 단락에서는 종의 중보 사역을 소개하면서 장화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속건 제물로서 죄악을 담당하는 여호와의 종(10, 11절) (2) 종의 최종
적인 승귀(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종의 대속 사역
의 결과 많은 생병이 구원됨을 밝힌다. 종은 자신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림으로써
(10절) 제사 제도를 완성하셨고 아울러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다. 저자는 이러한 사
역을 위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음을 증거한다(요
1:1-18).
또한, 구원 사역을 성실하게 수행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것임을 말한다. 하나님은 수난을 통과한 메시야에게 천상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이름
과 존귀를 부여하신다(빌 2:9-11).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
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진리의 가장 확고한 보증이 되는 것
이다(빌 3:10, 11;벧전 1:5-7;4:13).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수난받는 메시야의 모습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사
실 유대인들은 영광과 권능으로 오실 정치적 메시야를 희구하였다. 그런데 진정한 구
원자는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는 고난의 종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기꺼이 희
생하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마 20:28;막 10:45;행 14:22;벧전
2:19-21;3:14, 17, 18;4:13, 16).
* '여호와의 종'의 성격과 사명. 이사야에서는 '여호와의 종'(servant of the
Lord)으로 불리우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특별히 42:1-4;49:1-6;50:4-9;52:13-15 등은
'종의 노래'라는 명칭으로 불리운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종'을 대단히 소중하게 생
각하며 하나님의 구속을 성취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누구이며,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그 사명은 무엇인지 개발적으로 고찰해
보자고 한다.
1. '여호와의 종'의 실체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해석으로 나누어진다.
(1) 집합적 해석: '여호와의 종'이 구속적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
한다고 본다(49:3). 흑자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남은 자로 이해한다
(49:5, 6). 결국 종은 선지자적 이상이 다윗 왕조를 통해 계승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투영된 실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2) 개인적 해석: '여호와의 종'이 어떤 특별한 체험을 겪은 개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모세, 예레미야, 고레스, 스룹바벧, 이사야 등과 같은 특징한
역사적 인물로 주장한다. 그러나 종은 죄가 없으며(8절) 활동의 웅대한 점(42:4)으로
볼 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42:6;요 12:38, 41;행
8:32-35).
(3) 종합적 해석:개인과 공동체 간의 날카로운 구분을 철폐하고 종이 대표자인 동
시에 구속자라고 이해한다. 특별히 '공동 인격'(corporate personality)에 대한 개념
을 통해 종을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는 메시야인 동시에 자신 안에 이스라엘을 집약
할 수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결국 이 견해는 '여호와의 종'이란 메시야적 성격을 가
진 이상적 이스라엘이라고 보는 것이다(52:13-53:12).
2. '여호와의 종'의 성격
종은 여호와의 택하심을 입고(42:1;49:1)성령의 인도를 받으며(42:1) 하나님의 능
력을 소유(49:2, 5)하였다. 그는 연약하고 고운 모양도 없이 멸시를 받았으며
(52:14;53:1-3, 7-9) 자발적으로 고난을 감수했다(53:10).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53:9) 끊임없이 고통을 당했으므로(50:6;53:3, 8-10) 기진하였다(49:4). 그러나 하나
님의 뜻이었으므로(10절) 여호와를 신뢰하였고(49:4;50:7-9) 기꺼이 복종하였으며
(50:4, 5) 승리할 때까지(42:4;50:8, 9) 오래 참으셨다(50:7).
3. '여호와의 종'의 사명
종은 하나님을 버리고 반역을 일삼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49:5). 그러나 단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고 세계 만국의 구원과 심판을 전개하였다(42:1, 3, 4;49:6). 이러한 사명은 영웅적인 정복 사역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수난과 형벌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그는 친히 대속 제물이 되어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죄의 대가를 담당함으로써(53:4-6, 8)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였다(53:12). 결국 종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 구원을 성취하게 되었고(53:10) 전세계에 존귀와 영광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12절;52:13, 15).
4.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죽음은 유일한 인류 구원의 근거가 된다(막 10:45;14:24;눅 18:31). 따라서 우리는 순종과 인내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천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올바른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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