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 여기서 시온은 아내, 유대인은 자녀들, 그리고 하나님은 남편과 아버지로 비유되고 있다(54:5;62:5;렘 3:14). 율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에게서 결격 사유를 발견하면 합법적으로 그 아내를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 이혼장을 주었다(신 24:1). 그런데 악한 가장들은 아내를 내보내는 행위를 정당화 시킬 때 이 율법대로 이혼장을 써주었다(마 19:7 참조). 뿐만 아니라 악의가 없는 가장들도 채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할 때 자녀들을 종으로 팔기도 하였다(출 21:7;왕하 4:1;느 5:5). 그런데 본절에서 하나님은 아내된 이스라엘과 자녀된 그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이 팔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혼 증서를 써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 때문인 것을 밝히기 위해 이스라엘이 익히 알고 있는 한 율법 조항을 사용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이 설명 속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인연은 잠시 중단된 것이며 한 남편이 그 아내와 자녀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징벌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그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Horsley).
=====50:2
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표현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던 사실을 암시한다(렘 7:25, 26).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은 베드로의 설교 속에 잘 드러난다(행 3:22-26). 내 손이 어찌 짧아...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 길게 뻗은 손은 '능력'을, 그 짧은 손은 '연약함'을 상징한다(59:1, Fausset).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고 그 수치스러운 생활이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계속 묘사된다. 거기 물이...되느니라 - 어떤 학자는 근종 사막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태양 광선으로 강줄기가 말라 그곳에 있던 물고기가 죽은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지만(Barnes), 그것보다는 출애굽 전,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하여 그곳의 물고기가 죽고 악취를 풍겼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문맥적이다(출 7:18-21).
=====50:3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출애굽 전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리셨던 흑암 재앙을 가리킨다(출 10:21, 22).
굵은 베로 덮느니라 - '베'는 그 피륙의 조직 상태가 조잡하고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는 천으로,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3:31). 그러나 본절에서는 애도의 상징보다는 그 색이 검다는 사실 때문에 언급되었으므로 본절의 상반절과 동의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2절에서는 땅 위, 본절에서는 하늘에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대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온 우주를 향해 그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50:4
본절부터는 화자(話者)가 바뀌고 있다. 이 화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 8절은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물론 이사야가 심문을 받는 이유는 바벨론이 바사에게 곧 멸망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Whybray, J. Watts).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 다른 하나는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지지를 받아왔던 이 견해는 결정적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6절을 인용하여 그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던 사실을 들고 있다(눅 18:31, 32). 이 결정적인 단서를 빼고서 객관적으로 볼 때도 철저하게 능욕당함(6절), 여호와로 인한 궁극적 승리(8절) 등은 이사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메시야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증거들이라 하겠다.
곤핍한 자 - 문자적인 뜻은 '지친 자'이다. 죄 의식으로 눌려 있는 자 혹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50:5
귀를 열으셨으므로 - 이 표현은 가르침의 전달이나 임무 수여를 뜻할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룻 4:4;삼상 9:15). 메시야는 인류 구속의 성취라는 막중한 임무를 하나님께 받으셨다. 비록 그 임무 수행에는 온갖 고통이 따르지만 그분은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셨다.
=====50:6
나를 때리는...등을 맡기며 - 물론 이사야 자신도 이 같은 유(類)의 시련을 전혀 당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되었다(마 27:26;눅 18:33). 수염을...맡기며 - 수염은 당시 사회에서 일종의 영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수염을 자르거나 뽑는다는 것은 최고의 모욕 중 하나였다. 특히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들로 간주되었다. 로마의 악한 소년들 중에는 족집게로 학자들의 긴 수염을 뽑는 못된 습관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Hengstenberg). 이 무례하고 사악한 부류에게 메시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빰을 맞으셨다(마 26:67;눅 18:32).
침 뱉음 - 누구의 면전에서 다른 곳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더구나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바로 이 모욕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다(눅 18:32;막 14:65;15:19).
=====50:7
고통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모든 오욕을 인내로 이겨내실 것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 성경에서 마음, 이마, 얼굴 따위를 굳게 한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부여된 임무를 고통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는 각오가 담겨져 있다:"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미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도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겔 3:8, 9).
=====50: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 여기 '의롭다 하심'이란 죄인을 의롭다 하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메시야의 의롭고 무죄하신 품성을 인정하고 드러내심을 가리킨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사역 과정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먼저 그가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를 통하여(마 3:17), 그가 행하신 기적을 통하여, 빌라도 아내의 입을 통하여(마 27:19), 심지어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눅 23:47) 그의 의로움이 증거되었다. 결국, 이는 그의 공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인정 속에 되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사 하늘로 오르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의 의로우심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 미 바알 미쉬파티) - 문자적인 뜻은 '누가 나의 재판의 주인이냐'이다. 얼핏 보면 재판장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보이나, 문맥상 '나의 의로움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불의함을 선고하기 위하여 재판을 걸어오는 자가 누구냐'라는 의미의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 누가 재판을 걸어봐도 결국 메시야 자신의 의로움은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Barnes, Fausset).
=====50:9
주 여호와께서...누구뇨 - 사도 바울 역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50:10
너희 중에...누구뇨(* , 미 바켐) - 이 표현을 이해하는 견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본절이 묘사하는 대상, 곧 경건한 자의 숫자가 매우 적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Hengstenberg), 다른 하나는 단순히 '누구든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부사로 보는 견해이다(Fausset). 문맥상 후자가 타당하다고 본다. 본절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에 처해 있을 때에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메시야 자신을 본받아 자신들을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50: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 - 원문 직역은 '섬광(불꽃)으로 너 자신을 둘러쌀 불을 지피는 자'이다. 여기 '섬광(불꽃)'이란 지속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큰 광채를 내지만 곧 스러지고 마는 문자 그대로의 불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인생 여정에서 역경을 만날 때 자신의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보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영매, 마법 등에 의존하는 영적 무지에 빠졌던 백성들 혹은 인간 철학의 교묘한 올무, 거짓 종교, 무신론, 자기의 등에 빠져 있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결국 그 의존하는 것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만다. 이것은 마치 빛과 열기를 기대했던 불에게 삼키움을 당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10절과 본절은 인생 여정, 특히 역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자신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를 비교하고 그 결과를 뚜렷이 대조시킨다.
전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종의 사역을 근거로 한 이스라엘 구원의 확신의 메시지
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포로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쁨을 유발시켰다.
그러나 본장에서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종의 순종을 언급하고 있
다. 특별히 이러한 구도는 포로 귀환으로도 완결되는 않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근본
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준다. 물론 종의 순종의 내용은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고 암시적
인 이미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떠한 고난이
라도 참고 순종하는 종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진술함에 있어서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특징적인 문학 기법은 대조
법이다. 좁게는 1-3절의 불완전한 종과 4-8절의 완전한 종을 대조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넓게는 49장의 강한 능력을 가진 종(49:2)과 본장의 목자적인 온유함(4절)을 보
여주는 종을 대비시키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반역적 태도와(1절) 고통과 수욕을 참
는 종의 자세(5, 6절)를 대조한다. 특히 종에 대한 묘사는 53장과 비교해 볼 때 문자
그대로의 복음서 기사에 더욱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다(마 26:67;27:30;막 15:19;눅
22:63). 또한 본장은 여러 차례 흥미로운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1절에는 청중
들의 질문을 가정한 질문이 나오고 2절에는 청중(이스라엘)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을
목적으로 하는 질문이 나오며 8, 9절에서는 경탄조와 기쁨의 신앙 표현으로 질문이 사
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10절에서는 청중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대열에 들 수
있음을 암시하고 권고하는 목적으로 질문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1)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전반부(1-3절)와 (2) 종의 순종을 다루는 후반부(4-11절) 등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그
들의 죄에 기인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퍅함과 완고함은 결국 심
판으로 귀결된 것이다(48:4). 반면에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5절)
등에 채찍을 맞고 당시 근동 지방에서의 최대 모욕이었던 침 뱉음까지 당하신다(6절).
그는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순종하시는 것
이다. 저자는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을 대조함으로써 한층 더 진정한 구
원의 길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여호와 만을 신뢰하도록 유도한다.
이제 본 단락의 내용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주도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1. 이스라엘의 죄(50:1-3)
전 단락(49:14-26)에서 화려하고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진술하였던 저자는 본 단락에서 질문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죄
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구원 진술->죄 지적'의 구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기 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바로 죄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의도
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출애굽과 연관된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2, 3절).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지적(1절) (2) 과거 구원 역사의
예시(2, 3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각각의 내용을 짧막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진술 의도를 빨리 파악케 하도록 돕고 있다. 이제 본 단라긔 중심 내용
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1절):당시 이스라엘 가정의 남편은 아내가 맘에 들지
않을때, 이혼 증서를 써준 후 내보낼 수 있었고, 채무자는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자식
을 채권자에게 넘겨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로된 이스라엘의 손에는 이혼서가 없었고
채무 관계로 팔리운 자도 없었다. 이와같이 저자는 이스라엘 풍습을 활용하여 이스라
엘이 포로가 된 이유가 오직 '죄'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과 영적 결혼 관계
에 있는 이스라엘은 결점이 없음을 입증하는 '이혼 증서'(신 24:1)를 받을 자격이 없
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한 사실을 생각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
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것이다(롬 7:14).
(2)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2, 3절):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주
로 사용하는 방법은 과거 구원 역사의 소개이다. 특히 여기서는 홍해 사건(출
14:21-23), 요단 강을 건너 기사(수 3:16, 17), 강이 피로 변한 사건(출 7:20, 21) 등
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재앙 중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출
10:21-23)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사건들을 짧은 몇 마디의 구절들을
사용하여 연속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빨리 돌아가는 활동 사진을 보
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서술 기법을 통해 많은 역사적 사실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종의 겸손(50:4-11)
전 단락(1-3절)에서 포로 생활의 원인이 바로 죄임을 지적한 이사야는 본 단락에서
는 종의 목자적, 혹은 교사적인 품성과 순종심을 기술하고 있다. 외견적으로 볼 때 이
두 단락(1-3;4-11)은 연결성이 부족하게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라엘의 죄를 언그
반 후 바로 이어서 종의 순종을 기술함으로써 종의 순종이 곧 이스라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나타내고 있다. 즉, 저자는 상호 무관해 보이는 두 단락을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고도의 문학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 단락은 종의 대속 사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예고편에 불과하
다. 말하자면 종의 대속 사역을 본격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53장의 내용을 미리 몇 가
지만 간략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종의 교사(목회자)적 품성(4절) (2) 수
욕을 감내하는 종(5, 6절) (3) 종이 수욕을 감내하는 이유(7-9절) (4) 종의 순종을 바
라본 이스라엘의 선택(10, 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주인공에 대
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본문에서 '종'이라는 호칭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10절)는 점에 착안하여 '이사야'를 주인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성경에 나타난 이사야의 모습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어떤 인간과도 비교하기가 어렵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만 부합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인공을 '여호와의 종' 즉, '메시야'로 보아야 한
다. 저자는 메시야의 친밀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앞에서 그에 대한 호칭을 일인칭
'나'(48:16). '내가'(49:1-12) 등으로 바꾸었고, 본 단락에서도 '일인칭' 호칭을 사용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본 단락에 부각된 종의 특징을 살펴보자.
(1) 먼저 종은 '학자'로 묘사되었다(4절):이러한 사실은 메시야께서 조용히 앉아서
가르치는 선생과 같은 면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어떤 선동가처
럼 활동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요
3:32;4:34;6:38;7:16;8:18).
(2) 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순종하는 자로 묘사된다(5절):특히 그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내밀었고 수염을 뽑는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침을 뱉는 자에
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욕지거리하는 소리를 반항없이 그대로 들으셨다(6절). 이
러한 모습은 전장(49:2)에서 메시야를 말씀에 능력이 있는 강한 분으로 묘사한 사실과
첨예하게 대조된다. 저자는 여기서 종의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수난의 광경을 그리고 있다.이러한 내용은 53장에 이르러 가장 절정에 도
달한다. 메시야는 극단적 수난까지 감내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복하는 것이
다.
(3) 종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묘사되고 있다: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가 없다. 오직 메시야의 사역을 통해서만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오직 메시야를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소망
가운데서 기쁨으로 살수 있다(행 5:41;살전 5:8;딛 1:2;3:7;벧전 1:3). 반면에 의뢰치
않는 자는 영원한 고통과 슬픔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잠 16:18;18:2;마 25:30;약
4:6). 저자는 오직 메시야만이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메시야의 순종에 대하여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온갖 멸시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였다. 그런데 인간은 여전히 범죄하며 반역을 되풀이 한다. 이제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휩쓸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마 26:42;요 5:30;빌 2:7, 8) 순종하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삼상 15:22;렘 35:8;행 5:29;롬 6:16;고후 7:15;히 5:8;벧전 1:14, 22).
내가 너희 어미를 내어 보낸 이혼서가 어디 있느냐 - 여기서 시온은 아내, 유대인은 자녀들, 그리고 하나님은 남편과 아버지로 비유되고 있다(54:5;62:5;렘 3:14). 율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에게서 결격 사유를 발견하면 합법적으로 그 아내를 내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 이혼장을 주었다(신 24:1). 그런데 악한 가장들은 아내를 내보내는 행위를 정당화 시킬 때 이 율법대로 이혼장을 써주었다(마 19:7 참조). 뿐만 아니라 악의가 없는 가장들도 채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할 때 자녀들을 종으로 팔기도 하였다(출 21:7;왕하 4:1;느 5:5). 그런데 본절에서 하나님은 아내된 이스라엘과 자녀된 그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이 팔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혼 증서를 써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 때문인 것을 밝히기 위해 이스라엘이 익히 알고 있는 한 율법 조항을 사용하여 설명하신 것이다. 이 설명 속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인연은 잠시 중단된 것이며 한 남편이 그 아내와 자녀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이 징벌의 의미를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합법적으로 그 관계를 회복하실 수 있다는 암시가 내포되어 있다(Hors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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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왔어도 사람이 없었으며 -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적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표현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던 사실을 암시한다(렘 7:25, 26).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이 땅에 보내셨는데 그리스도의 선지자되심은 베드로의 설교 속에 잘 드러난다(행 3:22-26). 내 손이 어찌 짧아...건질 능력이 없겠느냐 - 길게 뻗은 손은 '능력'을, 그 짧은 손은 '연약함'을 상징한다(59:1, Fausset).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고 그 수치스러운 생활이 지속되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징벌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이 계속 묘사된다. 거기 물이...되느니라 - 어떤 학자는 근종 사막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렬한 태양 광선으로 강줄기가 말라 그곳에 있던 물고기가 죽은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지만(Barnes), 그것보다는 출애굽 전, 애굽의 하수가 피로 변하여 그곳의 물고기가 죽고 악취를 풍겼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문맥적이다(출 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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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출애굽 전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리셨던 흑암 재앙을 가리킨다(출 10:21, 22).
굵은 베로 덮느니라 - '베'는 그 피륙의 조직 상태가 조잡하고 어두운 색으로 되어 있는 천으로, 애도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삼하 3:31). 그러나 본절에서는 애도의 상징보다는 그 색이 검다는 사실 때문에 언급되었으므로 본절의 상반절과 동의적 개념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2절에서는 땅 위, 본절에서는 하늘에 일어난 초자연적 현상을 대비적으로 언급함으로써 온 우주를 향해 그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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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절부터는 화자(話者)가 바뀌고 있다. 이 화자가 누구를 가리키느냐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본서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경우, 8절은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한다. 물론 이사야가 심문을 받는 이유는 바벨론이 바사에게 곧 멸망할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Whybray, J. Watts).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이사야가 바벨론 정부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구절은 없다. 다른 하나는 메시야로 보는 견해이다. 초대 교회 시대 이후 지지를 받아왔던 이 견해는 결정적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6절을 인용하여 그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던 사실을 들고 있다(눅 18:31, 32). 이 결정적인 단서를 빼고서 객관적으로 볼 때도 철저하게 능욕당함(6절), 여호와로 인한 궁극적 승리(8절) 등은 이사야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메시야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증거들이라 하겠다.
곤핍한 자 - 문자적인 뜻은 '지친 자'이다. 죄 의식으로 눌려 있는 자 혹은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자 등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50:5
귀를 열으셨으므로 - 이 표현은 가르침의 전달이나 임무 수여를 뜻할 때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룻 4:4;삼상 9:15). 메시야는 인류 구속의 성취라는 막중한 임무를 하나님께 받으셨다. 비록 그 임무 수행에는 온갖 고통이 따르지만 그분은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셨다.
=====50:6
나를 때리는...등을 맡기며 - 물론 이사야 자신도 이 같은 유(類)의 시련을 전혀 당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표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취되었다(마 27:26;눅 18:33). 수염을...맡기며 - 수염은 당시 사회에서 일종의 영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수염을 자르거나 뽑는다는 것은 최고의 모욕 중 하나였다. 특히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들로 간주되었다. 로마의 악한 소년들 중에는 족집게로 학자들의 긴 수염을 뽑는 못된 습관을 지닌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Hengstenberg). 이 무례하고 사악한 부류에게 메시야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빰을 맞으셨다(마 26:67;눅 18:32).
침 뱉음 - 누구의 면전에서 다른 곳을 향해 침을 뱉는 것은 모욕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더구나 그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바로 이 모욕을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다(눅 18:32;막 14:65;15:19).
=====50:7
고통을 통하여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을 아시고 자신에게 퍼부어지는 모든 오욕을 인내로 이겨내실 것임을 나타내는 구절이다.
내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였은즉 - 성경에서 마음, 이마, 얼굴 따위를 굳게 한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 모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부여된 임무를 고통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는 각오가 담겨져 있다:"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미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네 이마도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겔 3:8, 9).
=====50: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 여기 '의롭다 하심'이란 죄인을 의롭다 하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메시야의 의롭고 무죄하신 품성을 인정하고 드러내심을 가리킨다.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사역 과정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난다. 먼저 그가 세례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를 통하여(마 3:17), 그가 행하신 기적을 통하여, 빌라도 아내의 입을 통하여(마 27:19), 심지어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로마 백부장에 의해서(눅 23:47) 그의 의로움이 증거되었다. 결국, 이는 그의 공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인정 속에 되어졌다는 것을 입증하며 그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사 하늘로 오르셔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의 의로우심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 미 바알 미쉬파티) - 문자적인 뜻은 '누가 나의 재판의 주인이냐'이다. 얼핏 보면 재판장이 누구냐는 질문으로 보이나, 문맥상 '나의 의로움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불의함을 선고하기 위하여 재판을 걸어오는 자가 누구냐'라는 의미의 질문으로 보는 것이 좋다. 그 누가 재판을 걸어봐도 결국 메시야 자신의 의로움은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Barnes, Fausset).
=====50:9
주 여호와께서...누구뇨 - 사도 바울 역시 이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50:10
너희 중에...누구뇨(* , 미 바켐) - 이 표현을 이해하는 견해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본절이 묘사하는 대상, 곧 경건한 자의 숫자가 매우 적을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며(Hengstenberg), 다른 하나는 단순히 '누구든지' 정도의 의미를 지니는 부사로 보는 견해이다(Fausset). 문맥상 후자가 타당하다고 본다. 본절에서 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혹독한 재앙에 처해 있을 때에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이루려 하지 말고 메시야 자신을 본받아 자신들을 신실한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50:11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 - 원문 직역은 '섬광(불꽃)으로 너 자신을 둘러쌀 불을 지피는 자'이다. 여기 '섬광(불꽃)'이란 지속적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큰 광채를 내지만 곧 스러지고 마는 문자 그대로의 불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본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인생 여정에서 역경을 만날 때 자신의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그것을 헤쳐보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영매, 마법 등에 의존하는 영적 무지에 빠졌던 백성들 혹은 인간 철학의 교묘한 올무, 거짓 종교, 무신론, 자기의 등에 빠져 있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결국 그 의존하는 것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만다. 이것은 마치 빛과 열기를 기대했던 불에게 삼키움을 당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무튼 10절과 본절은 인생 여정, 특히 역경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자신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자를 비교하고 그 결과를 뚜렷이 대조시킨다.
전장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종의 사역을 근거로 한 이스라엘 구원의 확신의 메시지
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포로지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쁨을 유발시켰다.
그러나 본장에서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고발과 종의 순종을 언급하고 있
다. 특별히 이러한 구도는 포로 귀환으로도 완결되는 않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근본
적 해결 방안을 제시해준다. 물론 종의 순종의 내용은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고 암시적
인 이미지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떠한 고난이
라도 참고 순종하는 종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진술함에 있어서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특징적인 문학 기법은 대조
법이다. 좁게는 1-3절의 불완전한 종과 4-8절의 완전한 종을 대조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넓게는 49장의 강한 능력을 가진 종(49:2)과 본장의 목자적인 온유함(4절)을 보
여주는 종을 대비시키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반역적 태도와(1절) 고통과 수욕을 참
는 종의 자세(5, 6절)를 대조한다. 특히 종에 대한 묘사는 53장과 비교해 볼 때 문자
그대로의 복음서 기사에 더욱 밀접하게 접근하고 있다(마 26:67;27:30;막 15:19;눅
22:63). 또한 본장은 여러 차례 흥미로운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1절에는 청중
들의 질문을 가정한 질문이 나오고 2절에는 청중(이스라엘)을 향한 노골적인 비난을
목적으로 하는 질문이 나오며 8, 9절에서는 경탄조와 기쁨의 신앙 표현으로 질문이 사
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10절에서는 청중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대열에 들 수
있음을 암시하고 권고하는 목적으로 질문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1)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는
전반부(1-3절)와 (2) 종의 순종을 다루는 후반부(4-11절) 등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난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그
들의 죄에 기인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강퍅함과 완고함은 결국 심
판으로 귀결된 것이다(48:4). 반면에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5절)
등에 채찍을 맞고 당시 근동 지방에서의 최대 모욕이었던 침 뱉음까지 당하신다(6절).
그는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순종하시는 것
이다. 저자는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죄와 종의 순종을 대조함으로써 한층 더 진정한 구
원의 길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여호와 만을 신뢰하도록 유도한다.
이제 본 단락의 내용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주도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1. 이스라엘의 죄(50:1-3)
전 단락(49:14-26)에서 화려하고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종말론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진술하였던 저자는 본 단락에서 질문법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죄
를 지적하고 있다. 특히 '구원 진술->죄 지적'의 구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기 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바로 죄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의도
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출애굽과 연관된 열 가지 재앙과 홍해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2, 3절).
이와 같은 본 단락은 (1)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지적(1절) (2) 과거 구원 역사의
예시(2, 3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각각의 내용을 짧막하게 연결시킴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진술 의도를 빨리 파악케 하도록 돕고 있다. 이제 본 단라긔 중심 내용
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1절):당시 이스라엘 가정의 남편은 아내가 맘에 들지
않을때, 이혼 증서를 써준 후 내보낼 수 있었고, 채무자는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자식
을 채권자에게 넘겨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로된 이스라엘의 손에는 이혼서가 없었고
채무 관계로 팔리운 자도 없었다. 이와같이 저자는 이스라엘 풍습을 활용하여 이스라
엘이 포로가 된 이유가 오직 '죄'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과 영적 결혼 관계
에 있는 이스라엘은 결점이 없음을 입증하는 '이혼 증서'(신 24:1)를 받을 자격이 없
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한 사실을 생각하고 억울한 심정을 가
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것이다(롬 7:14).
(2)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2, 3절):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저자가 주
로 사용하는 방법은 과거 구원 역사의 소개이다. 특히 여기서는 홍해 사건(출
14:21-23), 요단 강을 건너 기사(수 3:16, 17), 강이 피로 변한 사건(출 7:20, 21) 등
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재앙 중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의 재앙'(출
10:21-23)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사건들을 짧은 몇 마디의 구절들을
사용하여 연속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빨리 돌아가는 활동 사진을 보
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러한 서술 기법을 통해 많은 역사적 사실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 종의 겸손(50:4-11)
전 단락(1-3절)에서 포로 생활의 원인이 바로 죄임을 지적한 이사야는 본 단락에서
는 종의 목자적, 혹은 교사적인 품성과 순종심을 기술하고 있다. 외견적으로 볼 때 이
두 단락(1-3;4-11)은 연결성이 부족하게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라엘의 죄를 언그
반 후 바로 이어서 종의 순종을 기술함으로써 종의 순종이 곧 이스라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임을 나타내고 있다. 즉, 저자는 상호 무관해 보이는 두 단락을
대비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고도의 문학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 단락은 종의 대속 사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예고편에 불과하
다. 말하자면 종의 대속 사역을 본격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53장의 내용을 미리 몇 가
지만 간략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1) 종의 교사(목회자)적 품성(4절) (2) 수
욕을 감내하는 종(5, 6절) (3) 종이 수욕을 감내하는 이유(7-9절) (4) 종의 순종을 바
라본 이스라엘의 선택(10, 11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주인공에 대
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고 있다. 자유주의 학자들은 본문에서 '종'이라는 호칭이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10절)는 점에 착안하여 '이사야'를 주인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성경에 나타난 이사야의 모습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어떤 인간과도 비교하기가 어렵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만 부합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인공을 '여호와의 종' 즉, '메시야'로 보아야 한
다. 저자는 메시야의 친밀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앞에서 그에 대한 호칭을 일인칭
'나'(48:16). '내가'(49:1-12) 등으로 바꾸었고, 본 단락에서도 '일인칭' 호칭을 사용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본 단락에 부각된 종의 특징을 살펴보자.
(1) 먼저 종은 '학자'로 묘사되었다(4절):이러한 사실은 메시야께서 조용히 앉아서
가르치는 선생과 같은 면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 땅에 오셨을 때 어떤 선동가처
럼 활동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정하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요
3:32;4:34;6:38;7:16;8:18).
(2) 종은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히 순종하는 자로 묘사된다(5절):특히 그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내밀었고 수염을 뽑는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침을 뱉는 자에
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고 욕지거리하는 소리를 반항없이 그대로 들으셨다(6절). 이
러한 모습은 전장(49:2)에서 메시야를 말씀에 능력이 있는 강한 분으로 묘사한 사실과
첨예하게 대조된다. 저자는 여기서 종의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수난의 광경을 그리고 있다.이러한 내용은 53장에 이르러 가장 절정에 도
달한다. 메시야는 극단적 수난까지 감내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복하는 것이
다.
(3) 종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묘사되고 있다:이스라엘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가 없다. 오직 메시야의 사역을 통해서만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오직 메시야를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소망
가운데서 기쁨으로 살수 있다(행 5:41;살전 5:8;딛 1:2;3:7;벧전 1:3). 반면에 의뢰치
않는 자는 영원한 고통과 슬픔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잠 16:18;18:2;마 25:30;약
4:6). 저자는 오직 메시야만이 유일한 구원의 중보자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메시야의 순종에 대하여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인간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온갖 멸시와 천대를 자발적으로 감수하였다. 그런데 인간은 여전히 범죄하며 반역을 되풀이 한다. 이제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휩쓸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마 26:42;요 5:30;빌 2:7, 8) 순종하는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삼상 15:22;렘 35:8;행 5:29;롬 6:16;고후 7:15;히 5:8;벧전 1:1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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