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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그 즈음에 - 히스가야 왕은 29년을 통치하였다(왕하 18:2). 그중 15년은 질병이 나은 후에 여호와의 은혜로 생명이 연장된 기간이다. 따라서 본문의 사건은 그의 재위 14년째에 일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의 앗수르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한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36:1). 히스가야 왕이 치명적인 병을 얻어 죽음을 선고받은 후에 여호와 앞에서 그토록 슬퍼하며 통곡한 것도 이와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즉, 그가 슬퍼한 것은 자신의 갑작스런 죽음보다도 오히려 그의 죽음으로 인해서 민족이 당할 비극적인 처지를 더 걱정했기 때문이다. 어떤학자들(Calvin,Vitringa)은 히스가야의 질병이 앗수르 군대 퇴각 이후에 발생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히스가야 왕의 기도의 응답으로 그의 치유 뿐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의 구원까지 약속되고 있기 때문이다(6절). 따라서 본장과 39장의 사건은 36,37장보다 시간적으로 앞에 위치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Lange,Leupold,Oswalt,Delizsch).
히스가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 히스가야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다만 21절의 '종처'(腫處)라는 말을 근거로 할때, 그의 병이 염증을 동반하는 치명적인 병-가령, 종기나 등창 같은-이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레 13:18;욥 2:7 참조).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살지 못하리라'는 말은, 죽음이 임박했으며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이다. 히스가야에게 이 말은 결코 변경될 수 없는 냉혹한 사형 선고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중에 철회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새의 운명과 관련된 하나님의 선고에도 집행 유예(執行猶豫)는 있다(출 32:6-12 참조). 언제나 인생에게 복주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그의 종들이 기도를 기꺼이 들으시며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은 불변하나, 성도의 기도는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방법을 변경시킬 수 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Oswalt).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히스가야의 겸손과 기도의 열심을 우리는 본받아야 하겠다.

=====38:2
히스가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기도하며 - 이러한 행동은 아합 왕이 취했던 것과 일견 비슷하게 보이나(왕상 21:4), 그 기본 정신에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아합이 그의 얼굴을 벽으로 향한 것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한 노여움에서였지만, 히스가야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이다.

=====38:3
여호와여 구하오니...추억하옵소서 - 히스가야의 기도는 '의인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구약의 확신에 부합되는 것이다(시 4:3;6:8;17편;26편;34:15,17,18;잠 15:29).그러나 그 초점은 행동의 완전함이 아니라 동기의 순전함에 모아진다. 히스가야도 인간인 한 비록 그의 행사가 다 완전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순전한 양심에 따라 최대한 바르게 행하고자 하였다. 왕하 18:1-7에 나오는 역사적인 기록과 평가를 참조하라.
진실과 전심으로 - 문자적으로는 '진리(* ,에메트) 안에서 그리고 완전한 마음(* ,레브 솰렘) 안에서'이다. '에메트'는 흔들림없이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 나가는 성실성을 가리키며, '레브 솰렘'은 나뉘지 않은 마음의 온전함, 즉 정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38:4
이에...가라사대 -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선지자에게 전달된다. 첫 번째 말씀과 두 번째 말씀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그렇게 오래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왕하 20:4의 평행구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지자는 그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38:5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말씀하시기를 - 히스가야에게 죽음을 선고할 때는 여호와의 이름만 간단히 언급되었다(1절). 그러나 위로를 제시할 때, 선지자는 여호와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부른다. 이는 히스가야에게 베풀어진 여호와의 은혜와 자비가 그 조상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기인한 것이며, 약속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Calvin). '다윗'은 단순한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왕국의 연속성을 약속받은 인물로서 언급되고 있다(삼하 7:12-16). 물론 이 영속성이 다윗 자신이 아니라 그의 후손과 관련된 것임을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 '듣고-보았다'는 말은 여호와께서 히스가야의 기도를 참되고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이다. 여호와는 의인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한 기도를 들으시며, 특히 의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

=====38:6
너와 이 성을...보호하리라 - 히스가야에게 주어진 약속은 유다에 이미 진주해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앗수르 군대의 위협으로부터의 일시적인 보호뿐만 아니라(Hitzig, Hendewerk, Knobel). 동시에 일단 퇴각한 후에도 계속해서 있을 수 있는 추가적인 모든 위협으로부터의 완전한 보호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Gesenius,Rosenmtiller).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으니 앗수르는 결코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38:7
나 여호와가...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 개역 성경은 1인칭 문장으로 되어 있으나, 히브리어 원문에는 3인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께로부터 너에게 (주어질) 징조니, 그가 말씀하신 이 말씀을 여호와께서 이루실 것이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일의 순서상 이사야의 말이 주어지기 전에 징조를 구하는 히스가야의 적극적인 요청이 선행되었을 것이다(22절; 왕하 20:8 참조). 이 점에서 히스가야의 행동은 징조 구하기를 거부한 아하스의 불신 행위와 대조를 이룬다(7:12,Skinner,Oswalt).

=====38:8
아하스의 일영표에...물러가게 하리라 - '아하스의 일영표'는 히스가야의 선왕(先王) 아하스가 세운 해시계를 말한다. 헤로도투스(Herodotus)의 기록에 의하면,일영표는 바벨론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herod. .109). 이것이 앗수르에 의해 전달되었을 것이고, 아하스가 다메섹에 있는 디글랏 빌레셀을 방문했을 때 이에 대한 지식을 도입한 듯하다(왕하 16:10 참조). '일영표'는 문자적으로 '계단들'(* ,마알로트) 이니, 해가 떠오를 때와 질 때를 기준으로 해서 계단에 드리워진 그늘을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하 20:9,10의 병행구에 따르면,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가야 왕에게 그림자가 앞으로 10도 나아가는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도록 제안했으며,왕은 좀더 어렵게 보이는 후자를 선택하였다. 이에...물러가니라 - 히찌히(Hitizig)는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간 현상을 히스가야의 죽음이 뒤로 연기된 것과 평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10'이라는 숫자 대신에 '15'라는 숫자가 사용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칼빈(Calvin)은 '당시 해시계는 12눈금밖에 없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하였다...그러므로우리는 이러한 숫자상의 차이 때문에 꺼림칙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시계의 눈금의 정확한 수치는 차치하고라도, 해시계 자체에 대해서 학자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더구나 이 징조는 히스가야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적적'인 것이다(대하 32:31 참조). 그럴진대, 이러한 현상이 히스가야의 눈앞에서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혹자는 이것을 부분적인 일식 현상으로 해석한다(Bosanquet). 그러나 이로써는 그림자가 뒤로 물러감을 설명하지 못한다. 가장 적절한 해석은 이것을 시각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해 오후에 바닥에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이적적으로' 위로 옮겨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Delitzsch,Lange,Oswalt). 본문에서도 '뒤로 물러간 것'은 태양이 아니라 그 그림자였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태양의 진행이 한시적으로 거꾸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물리학적인 견지에서 이 지구상에 엄청난 문제점들이 야기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성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그러나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자신이 설정해 두신 이 세상의 법칙들과 조화

=====38:9
유다 왕 히스가야가...기록한 글이 이러하니라 - 히스가야 왕의 시편(9-20절)은 오직 본서에서만 볼 수 있다. 그는 이 시편을 죽음의 병에서 회복된 후에 지었다.본절은 이 시편의 표제인데,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유다 왕 히스가야의 글(* ,믹탑), 그가 병들었다가 그 병에서 살아난 때'(원문). '믹탑'은 보통 '기록된 글' 혹은 '쓰여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이 다른 시편의 표제에는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게세니우스(Gesenius)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믹탐'(* )으로 고쳐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믹탐'은 시편의 전문 용어로서, 시 16,56-60편에서 표제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의미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문학에 탁월하였던 히스가야는 성전 예배시에 관악과 성악을 복구시켰으며(대하 29:25-30), 특히 위원회를 결성하여 잠언을 수집하고 고대 문서들을 수집, 보관하는 등의 일을 추진케 한 바 있다(잠 25:1). 따라서 이러한 그가 본 시편을 지었다는 사실은,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38:10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 직역하면 '내 날들의 고요함 가운데서 음부의 문으로 내가 달려간다'이다. '고요함'(* ,데미)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에 의해서 '건강한 생활의 평탄한 과정'(Delitzsch), '격정의 때가 지나고 사람의 성격이 한층 고요해지는 때'(Umbreit), '정오의 휴지(休止)'(Cheyne) 드의 긍적적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Gesenius, Maurer, Knobel). 그럴진대, '내 날들의 고요함'을 '내 생애의 정점'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NSB). '음부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이다(5:14;14,9,11,15;28:15,18, 삼하 12:15-25하주제 강해, '구약의 사후(死後) 개념-(陰府)' 참조).

=====38:11
내가 또 말하기를...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 계속하여 히스가야는 돌연한 죽음으로 인하여 그가 상실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를 노래하니, 그 첫째는 '여호와를 뵈옵는 것'이며, 그 둘째는 '사람들(동료)과 교제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뵈옵는다'는 것은 육신의 눈으로 그를 본다는 말이 아니라, 성전에서 공중 예배를 드림으로써 그의 임재하심을 경험하며 그와 살아있는 접촉과 교제를 나눈다는 말이다(시 11:7;17:15;27:4;42:2;63:2;84:2 참조).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는 필경 사람들과의 친밀한 교제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람과 어울리는 이러한 즐거움이야말로 히스가야가 생존세계, 곧 짧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죽음의 자리에서 이것들을 안타깝게 추상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뵈옵지 못하겠고 -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호와'의 단축형인 '야'(* )가 연속해서 두 번 나온다. 직역하면 '내가 보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 여호와. 산 자들의 땅에서'이다. '야 야'(* )는 '야훼'(* )의 오류가 아니라 강의적인 반복을 나타내는 것이다(Alexander).

=====38:12
나의 거처는...하였도다 - 자기 생명의 덧없음을 상기하면서 시인은 그것을 두 가지로 비유한다. (1)목자가 장막을 걷음 : 목자는 목초지가 싱싱한 곳에 '장막'(* , 오헬)을 세우고 짐시 기거한다. 그러나 그 기간은 풀이 남아 있을 때뿐이다. 풀이 마르면 목자는 곧 장막을 걷고 새로운 곳을 찾아 이동한다. (2)직공이 베를 틀에서 끊음 : 피륙이 베틀에서 완성되어진 다음에는 순식간에 직공의 손에 의해서 잘려진다.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는 40:6-8;마 6:30;벧전 1:23을 참조하라.

=====38:13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사오나 - 탈굼역(Targum)은 본문의 동사(* ,쉬위티)를 변형시켜 '(괴로움으로 인해 나는 사자처럼) 포효하였다(* ,쉬와티)'라고 읽는다(Houbigant).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 '사자'에 비교된 이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데 난점이 있다. 또 혹자는 '솨와'(* ) 동사에 '...과같이 되다', '...에 필적하다'는 뜻이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나는 아침까지 (사자)와같이 되었다(즉, 포효하였다)'는 해석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그 뒤에 나오는 '뼈를 꺾는다'는 표상을 '사자'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시 7:2), 동일한 표상을 양자 모두에게 적용해야 하는 보순에 빠지게 된다(Alexander). 그러므로 문맥상 본절은 히스가야가 극한 고통 속에서도 인내로서 밤을 세웠으나, 아침이 되어도 병세는 그대로였으며 오히려 '사자가 그의 뼈를 물어 뜯는 것'과 같은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거의 죽게 된 사람처럼 혼미한 소리를 내뱉는 뜻으로 이해함이 무난하겠다.

=====38:14
여호와여...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 구원을 호소하는 왕의 탄원은 '주여'(* ,아도나이) 라는 외침으로부터 시작된다 : '주여! 나에게 억압, 나의 보증이 되소서'(원문). '억압'(* ,아쉐카)은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느끼는 짓눌림을 나타내는 전문적인 법정 용어이다(마 18 : 28-30 참조). '나의 보증이 되소서'(* ,아르베니)라는 단어 역시 법정 용어이니, 채무자의 압박을 경감시켜 주기 위해 그 빛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시 119:122;잠 20:16;27:13 참조). 히스가야는 채무자의 입장에서 채권자이신 여호와께 자신을 위해 보증이 되어 달라고, 즉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욥 17:3, Wildberger, Cheyne, J. Watts).

=====38:15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또 친히 이루셨사오니...각근히 행하리이다 - 본절을 기점으로 시편의 정조가 '비탄'에서 '찬양'으로 급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고-행하셨다'는, 즉 '주께서 내 기도를 응답하셨고-죽음의 질병으로부터 구원해주셨다'는 두가지 사실로부터 유도된다. 여호와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 앞에서 시인은 할 말을 잊는다 :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삼하 7:20 참조,Alexander, Delitzsch, Leupold, Lange, J. Watts). 이제 그는 은혜로 부여받은 15년이라는 여생을 지난날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한다. '각근히 행하리이다'의 히브리어 '에다데'(* )는 시온산을 향해 나아가는 백성들의 엄숙한 행진을 묘사하는 말이다(시 42:4).

=====38:16
원컨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주옵소서 - 본문은 개역 성경처럼 간구 형태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여기 사용된 두 동사는 모두 히필형(사역형 능동)으로서 명령형뿐만 아니라 미완료형으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미완료형으로 번역할 경우에는, '당신이 나를 치유하시며(* ,타할리메니). 나를 살게 하시리이다'(* , 하하예니)가 되어 두 동사 모두 기도자의 확신을 나타낸다.

=====38:17
보옵소서...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 죽음에서 벗어난 후 히스가야는 자신의 이전 고통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자기에게 가져다준 영적인 유익을 노래한다. 히스가야는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생명과 건강의 축복을 '평안'(혹은 '온전함', * ,솰롬)이란 한 단어로 요약하여 말한다. 진실로 깨닫는 자에게는 고통조차도 그를 연단, 완성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된다(롬 8:28 참조). 주께서..사랑하사...건지셨고...던지셨나이다 - '사랑하사'에 해당하는 '하솨크'(* )는 내적으로 확고하게 결합된 사랑을 의미한다. 또 '멸망'의 히브리어 '벧리'(* )는 '허무', '부정'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으로부터 떠나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는 의미로 취한다. 그리고 '등 뒤에 던지다'라는 말은 '주께서 사라지게 하다', '망각하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느 9:26 참조). 반대로 주께서 무언가를 기억하실 때는 그 대상을 그의 얼굴 앞에, 눈앞에 놓으신다고 표현된다(시 90:8;109:15;렘 16:17;호 7:2). 결국 하반절은 히스가야가 자신에게 선고된 죽음의 재난을 그가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시 103:3,4 참조, Alexander).

=====38: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 본절과 19절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가능성과 관련하여, '죽음'과 '생명'을 대조시킨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찬미하지 못한다'는 구약적 인식에 관하여는 욥 10:21,22;시 6:5;30:9;88:10-12;115:17 등을 참조하라. 특히 본절과 관련하여, 사후(死後) 세계에 대한 이러한 비관적인 생각은 히스가야가 죽음을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결과로 파악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Calvin).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 '산 자 곧 산 자'(* , 하하)는 강의적 반복이다(11절 참조). 죽음을 선고받은 자의 슬픔의 '어제'와, 죽음에서 벗어난 자 곧 산 자의 찬미의 '오늘'이 대조되고 있다(Lange). '주의 신실을 아비가 자녀에게 알게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의미로 이해된다(출 12:24-27;신 6:7 참조). 왜냐하면 이 당시 히스가야는 아직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Alexander).

=====38: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노래하리로다 - 히스가야의 시편은 그가 자신의 동료 예배자들에게 자기와 더불어 찬미할 것을 권유하는 말로 끝난다. 찬미의 주제는 '여호와의 구원'이며, 그 방법은 '악기를 사용하여 노래하는 것'이며, 그 장소는 '여호와의 전'이다. 아마도 히스가야는 성전에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염두에 둔 듯하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는 '여호와'라는 고유 명사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라는 부정사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문장이다. 가장 무난한 독법은, 부정사에 임박한 미래적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생각하고 본문을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로 읽는 것이다(Oswalt).

=====38:21
이사야는 이르기를...왕이 나으리라 하였었고 - 앞에서 언급하지 못했던 사항들을 이사야 선지자는 부연하니, 그중 첫째가 치료약에 관한 것이다. 선지자는 왕에게 무화과 열매를 찧어 만든 찜질약을 종처 부위에 바르도록 처방하였다. 무화과나무는,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종기를 빨리 곪게 하여 고름을 터뜨리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무화과나무는 오히려 종기에 해로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Grotius). 이들의 말에 따르면, 무화과나무가 상처에 해로운데도 붙이게 한 것은, 히스가야의 질병이 오직 여호와의 권능에 의해서만 기적적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치료를 매개 물질 없이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역사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모든 치유 행위는 여호와께 속한다. 그는 때때로 병을 직접 치유하시나, 또다른 경우에는 매개 물질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치유하기도 한다(Oswalt).

=====38:22
히스가야도 말하기를...하였었더라 - 선지자의 처방 다음에 징졸르 구하는 히스가야의 요청이 이어진다(왕하 20:7,8). '여호와의 전에 올라간다'는 말은, 예배드리기 위하여 혹은 여호와를 찬미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간다는 말이다. 이사야는 히스가야에게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약속하였다(왕하 20:5). 이에 히스가야는 그 약속을 확증할 수 있는 징조를 요구했으며, 여호와께서는 해의 그림자가 뒤로 10도 물러가는 이적으로 응답해 주신 것이다(8절).



앗수르의 위협에 대한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장
(37장)에 이어서 본장은 히스기야 왕이라는 한 개인의 병을 치유하는 내용으로 일관하
고 있다. 그러나 본장의 내용이 히스기야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해서 그 중심 인물을
히스기야로 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본서의 일관된 내용은 이사야의 사
역과 예언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 왕의 치유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이사야의 사역과 예언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실 히스
기야 왕을 부각시키는 내용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왕하 20장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열왕기 상하의 저자의 관점은 왕의 신앙과 통치 사역에 집중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서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사역에 집중하고 있기 때
문에 철저히 선지자적인 관점에서 본장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히스기
야의 생명 연장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8절). 기도의 응답으로 인한
감사의 찬양을 묘사하고 있는 중반부(9-20절), 구체적인 치유의 내용을 소개하는 후반
부(21, 2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장에는 왕하 20장과는 달리 히스기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연장받고
감사하면서 찬양했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9-20절까지 나오는
히스기야의 감사의 시에 대한 히스기야의 저작권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
다. 그러나 9-20절의 내용은 히스기야의 저작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저자가 중간
중간 이야기식(narrative)의 표현을 빌어서 사건의 역사적인 배경을 밝혀주고 있는 특
성(36 : 1-3 ; 37 ; 1, 2, 5, 6, 8, 9, 14, 15)은 이러한 사실을 확증해준다. 더구나
같은 내용을 압축하여 기록하고 있는 대하 32 : 32에서는 '이사야의 묵시책'이 독립적
으로 존재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본장에 나타나는 주된 신학적인 특징은 '예루살렘 성의 보호와 구원'(6절)이
다. 이러한 특징은 37 : 35에서도 이미 나타나 있는데, 사실 본서 전체에서 반복적으
로 나타나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은 한편에서 묵시적인 배경 속에서(24-35
장), 또 한곳에서는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36-39장) 나타난다. 즉 형태는 다르지만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예루살렘의 보호와 구원'인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은 현재의
이스라엘의 상황을 전제하면서 궁극적으로 신약 시대에 있을 하나님의 교회를 바라보
게 해주고 있다.
이제 본장의 내용을 좀더 세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병 중에 있는 히스기야의 기도(38 : 1-8)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서술하고 있는 전 단락(37 : 36 :-38)에 이어서 본 단락은
히스기야의 병과 그에 대한 기도를 서술하고 있다. 일단, 전 단락에서 히스기야와 앗
수르 왕의 대립을 앗수르의 심판으로 결론지은 저자는 본 단락에서는 히스기야 한 개
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위기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취해야 하는 구체적인
자세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경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 단
락은 히스기야가 기도하게 되는 동기를 밝히고 있는 전반부(1, 2절), 히스기야의 기도
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을 예언하는 중반부(3-6절), 그리고 병의 치유가 확실하게 이루
어질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후반부(7, 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본 단
락의 내용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성도의 절망은 하나님을 절실하게 찾는 동기가 된다(1, 2절) : 현재 중병에 걸
려 있는 히스기야는 매우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
는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다'(1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호
와께서 자신의 생명을 가져가신다는 선언을 접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
하기를 시작했다. 이처럼 성도는 매우 절박한 상황을 만날 때 더욱 열정적으로 하나님
을 구하게 된다. 이러한 반응은 성도의 특권이며 동시에 절망적인 상황을 축복으로 변
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성도의 절망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생생하
게 체험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2) 성도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다(4-6절) :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
도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대전환을 맞이한다. 이러한 결과는 거꾸로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참되었음을 반응해주고 있다.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위기와 자
신의 치명적인 병으로 인하여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계획이나 타인
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간절히 구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간절한 기
도에 대해 하나님은 단지 사무적으로 응답하지 않았고 히스기야의 가슴속에 있는 탄식
을 위로하시며 긍휼에 찬 인격적인 응답을 베푸셨다. 이러한 사실은 '네 눈물을 보았
노라'(5절)라는 표현 속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슬픔의 원인이 어
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충분히 이해하시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신 것이다.
(3) 구약의 기적은 하나님이 천하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증명하는 사건이다(7, 8절)
: 성경에 나타나 있는 기적 사건들은 기적 자체의 경이성보다도 기적이 주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보았을 때 해의 그림자가 10도 물러가게 하는 사건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참신이며 모든 천지 만물의 주권자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약의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사건도 동일한 의미를 함유한다. 요한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변한 사건을 기록한 후 '그 영광을 나타
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 : 11)라고 묘사하고 있다. 기적은 하나님의 능
력의 가시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2. 히스기야의 감사(38 : 9-20)
히스기야의 기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8절)에 이어서 본 단
락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히스기야의 감사의 찬송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히
스기야의 감사의 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신앙적 태도이다. 이러한 본 단락
은 히스기야 자신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전반부(9-16절)와 히스기야 자신의
구원의 모습을 노래하는 후반부(17-20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의 주된 내용
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히스기야는 자신의 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
했다(10-15절) : 히스기야는 이사야로부터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후에 "내가 다
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 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겠고"(11
절)라는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극히 어려
운 일을 만나게 될 때 갖는 일종의 위기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히스기야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도 극단적인 한계 상황에
처했을 때 좌절과 실의에 빠질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자만하지 말고 언제나 겸허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경성해야 할 것이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서자 잃어버렸던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였다(17절) :
절망에 빠졌던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신앙을 회복하고 나서 자신의
병의 원인이 죄에 있었음을 고백했다. 이러한 고백은 본장 초반부에 나와 있는 의를
자랑하는 듯한 기도(3절)와는 질적으로 변화된 모습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섬
으로써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직시하고, 이스라엘 내에서 일으켰던 개혁 운동으로 인하
여 교만해진 마음을 다시금 겸손하게 회복하게 되었다.

3. 히스기야의 치유(38 : 21-22)
히스기야의 치유 예언에 대한 감사의 찬송을 담고 있는 전 단란(9-20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치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기록
하는 저자의 의도는 히스기야의 구원 예언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동시
에 하나님의 신설하심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본문에는 병의 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21절) 히스기야의 신앙적 결심(22절)이 나타나 있다. 이제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문은 치유의 방법 역시 하나님의 은헤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21절)
: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여 종처에 붙이면 완쾌되리라고 말
한다. 이러한 처방은 치유가 무화과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무화과나무가 전혀 효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치유의 주체는 결단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야고보 사도
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
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5:14)라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도 기름
은 하나님의 치유하심과 전혀 상반되지 않는다.
(2) 본문은 고난을 겪고 난 후 히스기야가 더욱더 경건해졌음을 알려준다(22절) :
히스기야는 치유가 이루어진 후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정조가 무엇이뇨'(22절)
라는 표현을 통하여 전일생을 통해 하나님만 경배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이러한 고백은 매우 성숙한 신앙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신자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순간적으로 위기감과 공포감을 가져 오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앙이 증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경험을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신앙 인물들이 겪었던 체험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신자들은 히스기야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롬 5 : 1-4)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둘째,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신앙이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는 매우 오묘하므로 함부로 단정짓지 말고 끝까지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시 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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