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이사야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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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열국이여...귀를 기울일지어다 - 1:2에서 땅과 하늘을 소환했던 것처럼 여기서 선지자는 지상에 거하는 모든 이민족들을 불러 모은다. 그러나 이 소환은 그들을 증인으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예비된 심판의 무서운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열국'(* ,고임)은 하나님의 백성을 거스리는 이방 민족을 일컥는 말로서, '민족들'(* ,우밈)과 동의어이다.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이여 - 노벧(Knobel)은 '땅에 충만한 것'을 짐승들로, '셰계에서 나는 모든 것'을 식물들로 규정하고 선지자가 그 대상을 부르고 있는 순서에서 '열국들, 백성들-짐승들-식물들'의 점강법적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는 임의적인 해석의 한 예일 뿐이다 '땅에 충만한 것'과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은 시적 동의어로서 '온 땅에 편만한 인구'를 가리키는 말이다(Oswalt).

=====34:2
그들을 진멸하시며 살륙케하셨은즉 - 열국과 거기 속한 여호와의 격렬한 진노의 내용은 마치 옛 가나안 족속들처럼 '진멸'(* ,헤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수 6:17,21;삼상 15:3). '헤렘'의 사상은 '여호와만이 홀로 전쟁의 유일한 승리자이시며 따라서 전쟁에서 얻어진 전리품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해야 하고 이것이 인간에게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완전히 파멸시킨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럴진데,이 말과 관련하여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 '열국의 범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홀로 그들을 정복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을 삼키게 될 것이다'(Oswalt)

=====34:3
그 살륙당한 자는...산들이 녹을 것이다 - 여호와의 극심한 진노와 그에 뒤따르는 가공할 장면이 묘사된다. 살륙당한 자의 수효가 너무 많기 때문에 땅에 묻지도 못하고 다만 내어 던지게 된다. 시체가 부패하면서 풍기는 악취가 천지를 진동시키고(겔 39:11 이하), 시체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산들마져 녹는다(즉,피가 강물처럼 흘러 산들을 씻기운다).

=====34:5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 '에돔' (* )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에서의 후손(창 36장)으로서 끊임없이 이들을 훼방하고 대적하였다(창 25:23;민 20:14-21;대하 21:8-10; 25:11; 28:17;암 1:11,12;옵 1:1-14). 특히 이들은 B.C. 586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협조했으며 이로 인해 에돔은 이스라엘의 제 1의 증오 대상이 되었다(겔 35장 참조). 하여튼 에돔은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로서 '멸망으로 정한 뱃성'으로 규정되고 있다(25:9-12에서 '모압'이 하나님 백성의 전형적인 원수로 취급된 것과 유사하다).

=====34:6,7
선지자는 에돔으로 대표되는 열국의 진멸을 '희생 제사에 비교한다(렘 46:10; 51:40; 겔 39:17; 습 1:7-9). 이는 동물들이 하나님의 예배와 영광을 위해 살육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돔의 멸망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데 이바지하기 때믄이다(Calvin). 몸집이 작은 '어린 양'과 '염소'와 '수양'은 에돔의 평민들을 사용하며, 몸집이 큰 '들소'와 '송아지'와 '수소'는 에돔의 영주들을 상징한다(Delitzsch). '들소'(* ,레에밈)는 다른 곳에서 희생 동물로서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서, 이마에 뿔이 달려 있으며 '힘'의 상징으로 자주 나온다(민 23:22;신 33:17;욥 39:9;시 22:21;92:10). 아마도 이는 다른 곳에서 드려진 것보다도 더 큰 대규모의 희생 제사가 '보스라'와 '에돔 땅'에서 드려질 것과 또 이 살육에서 제외될 자가 아무도 없게 될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보스라'는 사해 남단에서 남동쪽으로 약 32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에돔의 성읍(혹은 수도)으로, 오늘날의 '부세이라'(Buseirah)로 추정되고 있다(63:1;창 36:33; 대상 1:44;렘 49:13-22;암 1:12 참조).

=====34:8
이것은 여호와의 보수할 날이요...신원하실 해라 - 본문은 '왜냐하면'(* ,키)이라는 불변사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에돔을 이토록 잔혹하게 진멸하시는 이유가 제시된다. 선지자는 그것을 '여호와의 복수'라고 말한다. 그 복수는 에돔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고 핍박을 받아온 시온을 위한 것이다. 에돔은 시온에 대한 그들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복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감정적인 응징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복수'(* ,나캄)는 어느 한 쪽의 폭압적인 범죄로 인해 어그러지고 뒤틀린 상태를 바로 잡고 균등케 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평행하는 단어 '신원함'(* ,쉴루밈)이라는 말에서 더 분명히 드러나는데, '보상', '보수'라는 뜻을 갖는 이 단어는 '안전케 하다', '회복시키다', '갚다'는 뜻을 가진 '솰람'(* )동사에서 파생된 것이다(J.Watts).

=====34:9,10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에돔 땅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를 생생하게 묘사된다. 이 묘사는 파괴된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창 19:24-28;신 29:23;렘 49:18).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서 범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표상으로 주어지고 있다(유 1:7). '역청'과 '유황'은 모두 불에 잘 타는 가연성 물질이어서 한번 점화되면 꺼지지 않고 오래도록 타오른다(Sanetius, Leupold). 본문의 표현은 특히 에돔이 사해에 근접해 있고 그곳에 화산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한편,꺼지지 않는 불과 끊임없이 떠오르는 연기는 세상의 종말을 암시한다(계 19:3, Delitzsch).

=====34:11
당아와 고슴도치...부엉이와 까마귀 - 열거된 짐승과 새들 가운데 까마귀(* ,오레브)만이 분명하게 확인될 뿐, 그 나머지 이름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당아'(혹은 펠리칸)라고 번역된 '카아트'(* )는 '토하다'란 뜻의 '코'(* )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아마도 그 새의 울음소리를 본따서 만든 말인 듯하다(레 11:18;시 102:6;습 2:14,Delitzsch). '고슴도치'라고 번역된 '키포트'(* )는 '움츠리다', '둥글게 굽다'는 뜻의 '카파드'(* ) 동사에서 파생된 명칭이며, '부엉이'라고 번역된 '얀소프'(* )는 탈무드에서 종종 나쁜 징조를 나타내는 새로 언급되는데 아마도 으스스한 소리를 내는 그 새의 울음소리에서 따온 말인 듯하다(Oswalt).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 '줄'과 '추'는 건축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호와께서 에돔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파괴하는 일에 이것들을 사용하신다. 그 작업의 결과, 여호와께서는 '혼란'(* , 토후)과 '공허'(* ,보후)라는 말에서 암시된 것처럼, 창조 때의 무질서하고 혼돈스러운 상태속으로 에돔을 던져버릴 것이다(말 1:4,5 참조) =====34: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없게 될 것이요 - 이는 세습 귀족들이 모여 새로운 왕을 선출하는 군주국이었던 에돔에 이러한 일이 끊어질 것을 말하니 곧 왕국으로서의 에돔의 운명이 끝장날 것을 의미한다.

=====34:13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 '시랑'(* ,타님)은 사막에 사는 야수의 일종을 가리키는데(13:22;렘 9:11), '재칼'(Gesenius,Ewald) 혹은 '이리'(Henderson)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욥 30:29에도 '시랑'과 '타조'가 함께 나온다.

=====34:14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 '들짐승'(* ,치임)은 광야에서 거주하는 동물들을 가리키며, '이리'(* ,이임)는 '울부짖는 동물'을 가리킨다. '치임'과 '이임'은 형태와 소리가 비슷한 두 개의 다른 낱말이 어우러져서 언어 유희(paronomasia)의 효과를 가져온다. 수염소가...쉬는 처소를 삼으며 - '수염소'와 '올빼미'는 마성적(魔性的)인 괴물들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거주할 안락한 장소를 구해 오랫동안 헤매던 이들이 이전에 왕과 방백들이 잠자던 궁궐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발견한다.

=====34:15
부엉이가 거기깃들이고 - '부엉이'로 번역된 '키포즈'(* )는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화살 뱀', '뛰어오르는 뱀'으로 이해된다. '악마'와 '뱀'의 이미지는 서로 유사점이 있다. 솔개들도...거기 모이리라 - '솔개'(* ,다야)는 시체들을 먹고 사는 '검은 독수리'를 가리킨다. 본문의 의미는 분명하다 :'사람이 살던 곳에 광야의 야수들이 깃들어 살 뿐 아니라 그곳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계속적으로 번식하니, 이는 에돔의 파멸이 영구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Alexander).

=====34:17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나눠 주셨으니 - 그 옛날 여호와께서 제비를 뽑고 줄로 재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처럼(민 26:55,수 18:4-10). 그와 동일한 방법과 그 세심함으로 에돔 땅을 나누어 혐오스러운 동물들에게 분배해주신다는 뜻이다(Alexander,Oswalt).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구원을 노래하는 전장에 이어서 본장은 다시 전우주적인 심판
의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본장과 35장은 27장부터 시작되었던 묵시적인 내용들의 대
미(大尾)를 장식하는 부분으로서, 본장은 심판에 대하여 35장은 구원에 대한 일종의
결론적인 성격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심판의 상황을 제한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포괄
적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장은 전우주적 종말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전반부(1-4
절), 에돔 땅에 대한 철저한 파멸을 예언하는 중반부(5-15절), 그리고 심판이 하나님
의 예언 속에 있음을 밝히는 후반부(16, 1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36-39장까지의 역사적인 기록 때문에 34, 35장의 내용을 저자가 활동하던 시
대보다 훨씬 후대에 작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제까지
저자가 서술하고 있는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서 일어나는 오해라고 할 수 있겠
다. 저자는 항상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즉 현재적인 전망과 미래적인 전망을 동시에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묵시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본장은 이사야에 의해 당시에 기록된 예
언아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본장에는 부분적으로(1절) 평행법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 A. 열국이여 B. 들을지어다 |
| A'. 민족들이여 B'. 귀를 기울일지어다 |
+---------------------------------------------------+
이제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장의 내용을 좀더 세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상의 종말(34 : 1-4)
하나님에 의한 놀랄 만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묘사하는 전 단락(33 : 17-24)과는 달
리 본 단락은 다시 전우주적인 심판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
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이방 세계를 다스리며 통치하시는 신이심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하여 심판과 구원이라는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밖에 없음을 부각시키며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이렇게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본 단락은 열방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선포를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1절)와 심판의 구
체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2-4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본 단락
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심판은 전세계적인 성격을 갖는다(1절) : 저자는 하나님의 권면을 받
을 대상으로 '열국'과 '민족들'뿐 아니라 '땅과 땅에 충만한 것', '세계와 세계에서
나는 모든 것' 즉 피조 세계까지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들의 우둔함이 극
에 달할 때 흔히 사용되는데(시 106 : 7 ; 잠 28 : 5 ; 호 4 : 14 ; 롬 3 : 11), 하나
님의 심판의 영역이 극에 달할 때 흔히 사용되는데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장차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를 묘사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전우주적인 갱신이 이루어짐을 알려주고 있다(계시 21 : 1). 하나님의 심판은 전우주
적인 규모로 진행될 것이다(13 : 10 ; 24-23 ; 51 : 6 ; 65 : 17 ; 66 : 22 ; 욜 : 2
: 30).
(2) 심판의 근본적인 요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2-4절) : 심판을 행하
시는 주체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인한다. 저자는 '여호
와께서 만국을 향하여 진노하시며'02절)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모든 국가들이 심판의 대상임을 알려준다. 이와같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판결의 궁극적인 기준이 된다는 내용은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 : 31-46)에서 잘 나
타난다.

2. 에돔의 최후(34 : 5-15)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하는 열방들에 대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4절)에
이어 본 단락은 대표적으로 에돔을 부각시켜 하나님의 심판의 구체적인 상황을 서술하
고 있다. 즉 전 단락이 심판의 포괄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면 본 단락은 심판의 실제적
인 측면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가 이렇게 에돔을 부각시켜 하나님의 심판
을 묘사하는 이유는 8절의 '시온'에 대한 반대 세력으로서 에돔을 상징화 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도성을 대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시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에돔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5-8
절), 에돔 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9-15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심판은 예정되었다(5절) : 저자는 에돔의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우연적이거나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예정된 사건이라
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선언은 에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려
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이와같이 심판이 하나님의 예정 가
운데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 바울은 롬 9 : 22, 23에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이 미리 정해져 있음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은 구원뿐만 아니라
심판도 예정하신다. 이러한 이중 예정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하시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정은 본서의 저자가 살던 그 시대에도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서 저자는 에돔 백성을 향하여 '멸망으로 정한 백성'(5절)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러
나 예정은 숙명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2) 시온에 대한 적대는 곧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이다 (8절) : 여호와가 에돔 백성
들을 심판하시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신의 백성에 대한 신원(伸寃) 때문이다. 여호와
는 당신의 백성인 '시온'에 대하여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언제나 보호하신다.
에돔이 심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백성인 '시온'에 대하여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
였기 때문이다. 사실 시온에 대한 에돔의 적대적인 태도는 피상적으로 보면 시온에 대
한 침략으로 보이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언약 공동체를 다스리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에돔은 시온에 대한 적대
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과 아
브라함과의 첫번째 언약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이미 예언된 바 있다(창 12 : 3).

3. 심판의 확실성(34 : 16-17)
에돔의 백성들과 그 땅에 내려질 궁극적인 심판의 상황을 묘사하는 전 단락(5-15
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그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질 것임을 더욱더 분
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혹시 이 심판의 사건이 지연되거나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자들에게 심판의 심각성과 확실성을 분명히 경고하기 위함
이라고 보여진다. 이러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심판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
루어진다는 사실을 강하게 밝히고 있는 전반부(16절)와 에돔에 대한 심판의 최종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 후반부(17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에돔에 임한 심판의 상황이 표면적으로 보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사건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
임을 강조하고 있다(16절). 저자는 이런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명령법의 어조를 빌
어서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도전하고 이어서 그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
라는 내용을 서술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역사관은 이 세상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서 신학적, 신앙적 지평을 한 차원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게
성취된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
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55 : 11)고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의 장이며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실현임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16절의 '여호와의 책'에 대해 의견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떤 학자는
모세율법으로 보며, 또 다른 학자는 이사야 때까지의 모세의 율법, 선지서 및 시가 등
의 수집으로 보기도 하고, 이사야 자신의 예언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왜냐
하면 이전의 내용들이 주로 에돔에 임할 심판을 전달하는 흐름 속에서 언급된 표현이
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말견할 수 있다. (1) 이 세상
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실현되는 과정이며 결과이다(55 : 11). (2) 그러므
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생활하며(롬 1 : 17) (3) 순간
순간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가져야 한다.

* 성경적인 역사관. 세속적인 역사가들은 역사의 주체를 인간으로 보고 있다. 반대로 성경은 하나님이라고 증언한다. 성경이 역사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증언한 사실은, 인간은 이 세상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자신의 미래의 삶을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기능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한 인간은 더 이상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예측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통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역사 속에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예언적인 약속의 충실한 성취이다.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으로 절정을 이루고 그 마지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으로 장식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런 관점에서 사도 바울은 현 시대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에 있는 기간으로 이해하였다. 베드로 역시 이 세상의 역사를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주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 : 8)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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