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주는 기사를...행하셨음이라 - 찬양의 이유가 제시된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기이한 일(* ,펠레)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5:11;시 40:5;77:11, 14;78:12;88:10, 12;89:5). 이 기이한 일의 시간적 깊이는 영원까지 닿는다. 인간의 사고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래 전부터(* ,메라호크) 이 일을 계획 하시고 정하신(22:11;37:26)하나님은 이것을 또한 '성실함과 진실함'(* ,에무나 오멘)으로 이루신다. '에무나'와 '오멘'은 모두 '받들다', '견고하다'는 뜻의 '아만'(* )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들을 병렬시킴으로써 최대한의 강조적 의미를 얻고 있다(3:1;16:6 참조). '성실함과 진실함'은 '완전한 성실'로 번역 가능하다. '기이한 일'의 내용이 다음절에 소개된다.
=====25:2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여기서 '성읍'은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을 가리킨다(Oswalt, Delitzsch). 이것들은 모두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 외인(* , 자림)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를 뜻하는 말이다(1:7;29:5;61:5). 심판의 끝에서 열방들은 하나님께 돌아온다.
=====25:3
강한 민족이...주를 경외하리이다 - '하니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억압하던 세상 나라가 심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을 목도한 후에(24:14) 비로서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경외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이다.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자연 특히 역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다는 뜻이며(24:23;26:15), '(그를) 경외한다', '두려워한다'(* ,이르아)는 말은 하나님께 에배드린다는 뜻이다(시 34:11, Gray).
=====25:4
빈궁한 자의 보장(保障)이시며...그늘이 되셨사오니 - 하나님은 포악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자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로부터 압제를 당해온 가련한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자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본문의 초점은 세말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맞춰진다. 선지자는 우선 그 백성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세 가지(보장, 피나처, 그늘)로 형상화 한다. '보장'(* , 마오즈)은 문자적으로는 '힘', '강함'인데, 여기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요새의 뜻으로 쓰였다(시 27:1;28:8;29:11;31:2;43:2;46:1;렘 16:19).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친숙하게 발견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특히 찬양 문학에서 현저하다(신 33:27;삼하 22:3;시 9:9;14:6;27:1;28:8;31:4;37:39;46:1, 7, 11;48:3;62:7, 8;71:7;91:2, 9;94:22;142:5;렘 16:19). 더위를 피하는 '그늘'에 대하여는 4:6;16:3;32:2;시 57:1;91:1 등을 보라. 이어서 구원의 대상이 두 가지로 묘사된다. '빈궁한 자'(* ,달)와 '빈핍한 자'(* ,에브욘)는 가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후자의 경우 물질적, 경제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적,계층적 열등성이 더 부각된다(10:2;11:4;14:30;26:6;29:19;41:17;시 72:12-14). 그러나 강조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 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고 있다.
=====25:5
주께서...포악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 마른 땅에 작열하는 폭양 같은 포학자의 압제도 두꺼운 구름으로 그늘을 지어 그 백성을 돌보시는 여호와의 능력 앞에서는 그 위력을 잃는다. 그 결과, 한때의 승리에 도취되어 노래 부르던 적들의 환호가 가라앉을 것이다. 여기서 '노래'(* , 제미르)는 승전(勝戰)의 외침 소리를 뜻하며, '훤화'와 동의어로 쓰였다.
=====25:6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 콜레스테롤을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지방질이 풍부한 살진 고기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창 45:18;시 36:8;63:5). 특히 화목제의 주요한 제물로 기름이 드려졌다는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출 29:13-22;레 3:3;4:8, 9;8:16;9:19). 이전에 그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졌던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백성들에게 되돌려진다(Oswalt, Lange). 여기서 아름다운 반전(反戰)이 있다. 골수에는 영양분이 아주 많았으므로 사람들을 먹고 남은 뼈다귀를 으깨어 골수를 먹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오래 저장되어 완전히 발효한 포도주도 고급 연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음식의 하나였다. '기름진 것'(* , 쉐마님)과 '포도주'(* , 쉐마림)는 발음이 유사하다.
=====25:7
그 가리워진 면박과... 그 덮인 휘장을 제시하며 - 그날에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참된 교제가 실현된다. '면박'(* ,로트)은 얼굴에 덮는 수건이니(고후 3:15). 참된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영적인 무지를 비유한 것이다(출 34:30 참조). '덮인 휘장'(* , 마세카)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22:8). 그러나 주님이 그 가리운 것을 제시하면 그때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얼굴로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전 13:12;요일 3:2). 그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Delitzsch, Bultema).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인생을 지배하던 최후의 적인 죽음(고전 15:26)의 정복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덧붙여진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가 사망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빌라), 영원히'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이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이와 유사한 사상에 대하여는 65:20;단 12:2;호 13:14 등을 보라. 눈물을 씻기시며...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 죽음이 제거되면 그로부터 연유하는 눈물도, 슬픔도 없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죽음이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친히 그 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신다(계 7:17;21:4). '그 백성의 수치'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관련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홀로 여호와 종교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조소거리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그날에 모든 수치는 녹는 눈처럼 사라질 것이다(롬 11:11, 12, Oswalt).
=====25:9
그 날에 말하기를 -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에 비추어 보건대 하나님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다가 이제야 그 구원을 맛본 백성들의 노래라고 추론할 수 있다(Gray).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이는 여호와시라 - 원문에는 '보라'(힌네, * )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의 입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발출되는 탄성이다:'보라! 이 분이 우리가 말했던 그분, 곧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으며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시 48:14). 우리가 그들 기다렸으니...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도래 할 때 그 약속을 의지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기다림'은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도가 뿌리는 눈물의 씨앗이다(시 123편). 그리고 '구원'은 그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수확의 날에 성도가 거두는 기쁨의 단이다(시 126:5, 6).
=====25:10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 '손'(* , 야드)은 권능을 상징한다. 시온산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손은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축복의 손이요, 반면에 그 백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한 모압에게는 심판과 복수의 손으로 역사하신다(Delitzsch, Oswalt). 모압이...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 교만한 모압의 몰락이 '지푸라기가 똥더미에 묻히는 모양'으로 비유된다(왕하 9:37;시 83:10;렘 8:2;9:22;16:4;25:33 참조). '거름물'에 해당하는 '마드메나'(* )는 '거름을 주다'는 뜻의 '다만'(* ) 동사에서 파생한 말로, '거름더미', '똥더미'를 뜻한다. 이는 모압 성읍인 '마드멘'(* )에 대한 언어 유희로 의도적으로 채택된 것이다(렘 48:2). 여기서 모압이 왜 구속받은 백성들의 대표적인 원수로 등장하였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지 않다. 모압이 과거에 이스라엘에 행했던 일들을 보려면 왕하 24:2;겔 25:8-11;습 2:8-10등을 보라.
=====25:11
그가...누르실 것이라 - 앞절의 표상이 계속된다. 본문의 요점은 명료하다. 모압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교만은 낮추어질 것이다(Gray). 여기서 헤엄치는 이는 모압 자신이며(Gesenius, Hitzing), '그 속'은 모압이 빠진 퇴비더미를 뜻한다(Knobel, Alexander).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모압의 죄악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 첫 째는 '교만'이며, 그 둘 째는 '그 손의 교활'이다(16:6;렘 48:29).'손의 교활'은 손의 간교한 동작으로 상징되는 속임수, 거짓, 책략 등을 뜻한다(Lange). 참조로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을 물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팔을 휘젓는 모양으로 해석한다.
=====25:12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 여호와께서 모압을 낮추심을 선지자는 다르게 표현한다. 강하고 높은 성벽으로 묘사된 모압의 위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는 날에 '헐리고 땅이 내려지며 심지어 먼지 바닥에 던져진다'(26:5). 즉,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전세계적인 심판과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묘사하고 있는 전장(24장)에 이어
서 본장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
을 물리치고 건설한 메시야의 왕국은(24 : 23) 풍성한 축제가 베풀어지고 영적 우매함
이 극복되는 이상적인 나라이다(호 13 : 14 ; 고전 15 : 54 ; 계 21 : 14 ; 21 : 4).
선지자는 예언자적 환상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영
광스러움을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종국적으로 완성될 나라에 대해 감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1) 타
락한 성읍을 멸망시킨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묘사하는 전반부(1-5절), (2)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잔치를 묘사하는 중반부(6-8절), (3)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상징적인 도성인 모압의 멸망을 선언하는 후반부(9-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서술하면서 항상 시온 산과 예
루살렘을 축으로 묘사하고 있다(6, 7절). 이러한 사실은 본서의 핵심적인 주제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시온 산
과 예루살렘은 문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종국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된
모습을 예표한다. 이러한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 대한 관심을 본서의 결론부라 할 수
있는66 : 20-24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지자는 예루살렘과 여호와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동일시하고 있다(65 : 17, 18).
이러한 견해는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계 21 :
1-4). 사실 본서는 요한계시록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
서도 특히 '두 도성'의 개념이 대표적이다. 곧 하나의 도시는 죄악이 중한 타락한 도
시이며 또 하나의 도시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거룩한 도시라는 개념이다. 두
책은 이와같이 두 가지 도시의 특징을 대조적으로 병치(juxtaposition)시키면서 구원
과 심판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본서의 시작 부분과 끝나는 부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장은 타락한 성읍에 대한 탄식으로 시작하며, 마지막 66장은 새예루살렘
에 대한 극도의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다(66 : 20-24). 이러한 대조는 본장에서도 드
러난다. 한성읍은 다시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심판을 받고, 시온 산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연회가 배설된다(2, 6절). 이와 같은 대조에 있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지로서 신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본장은 반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두
번 혹은 세 번까지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1 : 4에서"슬프다 범
죄한 나라요 허물어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등과 같이
나타난다. 본장에서도 "주는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
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4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본장은 하나님의 행사와 종국에 있을 궁극적인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
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종말론적인 왕국을 찬양하고 있는
본장의 핵심적인 내용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타락한 성읍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찬양함(25 : 1-5)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시온 산에서 계시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전 단락(21 : 21-23)에 이어서 본 단락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구체적인 찬양을 묘사
하고 있다. 선지자는 전장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 상기시키며 타락한 성읍과
포학한 원수들을 궤멸시키고 의인을 견고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전반부(1절)와 찬양의 구체적
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2-5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에서 부각
되고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찬양의 대상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1절) : 저자는 본 단락을 시작하면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경험한 뒤에 흘러나오는 진실한 고백이다. 예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 사건울 체험하고 난 이후에 이와 동일한 고백을 하였다(출 15 : 2). 선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사역을 보면서 오직 주님만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실하고 진실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찬양의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
다.
(2)타락한 성읍에 대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읍이 있을 것임을
천명한다(2, 3절) : 저자는 타락한 성읍에 대한 심판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회복될 수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여기서 이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읍
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장(24장)에서 언급되었던 성읍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독특한 사실은 이러한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도한 강한 민족들과 포학한 나
라들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경외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표현은 이전에 하나님을 인
정하지 않던 민족들이 심판 이후에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의 구원으로 성취된다(롬 11 : 25). 결국
선지자는 심판의 결과가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구원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3)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과정 속에서도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 보이신다(4, 5절) :
저자는 심판의 과정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과는 반대로 하
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하나님은 공의와 동시에 사랑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모습이 정당하게 드러나
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묘사하던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
을 알리기 위해서 연약한 자를 돌아보시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의 보장이며 그늘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연회(25 : 6-8)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새롭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들이 생길 것임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5절)에 이어서 이제는 시온 산에서 있게 될 축복스러운 잔치가 묘사되
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의 급격한 전환은 심판을 끝낸 이후,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가
시작됨을 극적으로 알리려는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연회의 풍성함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6절), 구체적인 연회의 내용을 소개
하는 후반부(7, 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드러난 주된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본 단락에 등장하는 잔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6절) : 선지자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인한 축복들을 연회의 표상으로 묘사한
다. 사실 이러한 설명은 구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시 22 : 26-31). 또한 신약은
이런 표상을 좀더 상세하게 발전시킨다(마 8 : 11 ; 22 : 2-14 ; 눅 14 : 15-24). 하
나님 나라는 이처럼 풍성하고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진미의 연회'
(feast of delicacies)와 같다. 예수님께서도 가나 혼인 잔치에서 기적적으로 포도주
를 만드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나타내셨다(요 2 : 1-11).
(2) 하나님의 연회는 위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7, 8절) : 하나님의 연회는 당신
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모습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열방 중에서 택한 자를 불러모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생생하게 보여주신다(고전 13 : 12). 그때에는 모든 악과 죄
가 원천적으로 제거되며 오직 영원한 기쁨과 찬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같이 지
상에서 맛볼 수 없는 완전한 위로에 대한 묘사는 계시록의 모습과도 유사하다고 뽈 수
있다(계 7 : 17 ; 21 : 3, 4).
3.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함(25 : 9-15)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잔치를 통해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6-8절)
에 이어지는 본 대목은 종말론적인 구원을 경험한 백성들의 반응과 모압의 파멸을 소
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본 단락은 (1)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에 대
해 찬양하는 전반부(9절), (2)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반대자로서의 상징적인 성
격을 갖고 있는 모압에 대한 심판을 밝히고 있는 후반부(10-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이러한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날'은 믿는 자에게 찬양의 날이 될 것이다(9절) : 고통과 핍박 가운
데서도 하나님을 대망하는 경건한 자들은 종말론적 시기에 임하여 하나님을 직접 대면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사야는 이러한 소망을 선포함으로써 성도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울 대망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26 : 8 창 49 : 18 ; 시 27 :
14). 특히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라는 표현 속에는 하나님과 백성의 지속적인 관계
가 드러나고 있으며, 백성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의 날
을 기다리며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롬 5 : 1-4).
(2)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모압은 멸망할 것이다(10-12절) : 사실,
모압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방 민족으로서(왕하 24 : 2 ; 겔 25 : 8-11 ;
습 2 : 8-10) 하나님의 백성의 전형적인 원수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찬양
(9절)과 모압의 파멸(10-12절)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여호와의 날의 양면적 성격
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호와의 날은 마치 유월절이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의 날,
애굽에게는 사망의 날이었던 것처럼 언약 백성들에게는 위로와 구원의 날이지만 교만
한 자들에게는 파멸과 심판의 날이다. 특별히 이사야는 모압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거름물 속의 초개같이 밟히고'(10b절) '견고한 성벽이 완전히 파괴될 것'(12절)이라
고 묘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모압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파멸에 도달하게 됨을 드러내
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메시야를 통해 완성될 왕국에 대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종말론적으로 임할 나라는 원수들이 철저히 제거되고(왕하 9 : 34 ; 시 83 : 10 ; 렘 8 : 2 ; 9 ; 22 ; 25 : 33)영적 우매함이 사라지며(호 13 : 14 ; 고전 15 : 54
; 계 20 : 14 ; 21 : 4) 풍성한 사랑과 기쁨만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날을 고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롬 1 : 17)과 사랑(요 13 : 34, 35)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 세상을 판단하신다.
주는 기사를...행하셨음이라 - 찬양의 이유가 제시된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기이한 일(* ,펠레)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출 15:11;시 40:5;77:11, 14;78:12;88:10, 12;89:5). 이 기이한 일의 시간적 깊이는 영원까지 닿는다. 인간의 사고력이 미치지 못하는 오래 전부터(* ,메라호크) 이 일을 계획 하시고 정하신(22:11;37:26)하나님은 이것을 또한 '성실함과 진실함'(* ,에무나 오멘)으로 이루신다. '에무나'와 '오멘'은 모두 '받들다', '견고하다'는 뜻의 '아만'(* )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이처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들을 병렬시킴으로써 최대한의 강조적 의미를 얻고 있다(3:1;16:6 참조). '성실함과 진실함'은 '완전한 성실'로 번역 가능하다. '기이한 일'의 내용이 다음절에 소개된다.
=====25:2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 여기서 '성읍'은 하나님의 도성에 대립하는 지상의 도성을 가리킨다(Oswalt, Delitzsch). 이것들은 모두 멸망당할 운명에 놓여 있다. 외인(* , 자림)은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를 뜻하는 말이다(1:7;29:5;61:5). 심판의 끝에서 열방들은 하나님께 돌아온다.
=====25:3
강한 민족이...주를 경외하리이다 - '하니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억압하던 세상 나라가 심판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위엄을 목도한 후에(24:14) 비로서 하나님께 돌아와 그를 영화롭게 하며 그를 경외하게 될 것이다'는 의미이다. '(그를)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자연 특히 역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는다는 뜻이며(24:23;26:15), '(그를) 경외한다', '두려워한다'(* ,이르아)는 말은 하나님께 에배드린다는 뜻이다(시 34:11, Gray).
=====25:4
빈궁한 자의 보장(保障)이시며...그늘이 되셨사오니 - 하나님은 포악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자로서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로부터 압제를 당해온 가련한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자로서 영광을 받으신다. 본문의 초점은 세말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맞춰진다. 선지자는 우선 그 백성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세 가지(보장, 피나처, 그늘)로 형상화 한다. '보장'(* , 마오즈)은 문자적으로는 '힘', '강함'인데, 여기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강력한 요새의 뜻으로 쓰였다(시 27:1;28:8;29:11;31:2;43:2;46:1;렘 16:19).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은 성경에서 친숙하게 발견되는 표현 중의 하나이다. 특히 찬양 문학에서 현저하다(신 33:27;삼하 22:3;시 9:9;14:6;27:1;28:8;31:4;37:39;46:1, 7, 11;48:3;62:7, 8;71:7;91:2, 9;94:22;142:5;렘 16:19). 더위를 피하는 '그늘'에 대하여는 4:6;16:3;32:2;시 57:1;91:1 등을 보라. 이어서 구원의 대상이 두 가지로 묘사된다. '빈궁한 자'(* ,달)와 '빈핍한 자'(* ,에브욘)는 가난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후자의 경우 물질적, 경제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사회적,계층적 열등성이 더 부각된다(10:2;11:4;14:30;26:6;29:19;41:17;시 72:12-14). 그러나 강조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념 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만 의뢰하고자 하는 경건한 자들에 대한 묘사로 사용되고 있다.
=====25:5
주께서...포악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 마른 땅에 작열하는 폭양 같은 포학자의 압제도 두꺼운 구름으로 그늘을 지어 그 백성을 돌보시는 여호와의 능력 앞에서는 그 위력을 잃는다. 그 결과, 한때의 승리에 도취되어 노래 부르던 적들의 환호가 가라앉을 것이다. 여기서 '노래'(* , 제미르)는 승전(勝戰)의 외침 소리를 뜻하며, '훤화'와 동의어로 쓰였다.
=====25:6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 - 콜레스테롤을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지방질이 풍부한 살진 고기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창 45:18;시 36:8;63:5). 특히 화목제의 주요한 제물로 기름이 드려졌다는 것은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다(출 29:13-22;레 3:3;4:8, 9;8:16;9:19). 이전에 그 백성들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졌던 그것이 이제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백성들에게 되돌려진다(Oswalt, Lange). 여기서 아름다운 반전(反戰)이 있다. 골수에는 영양분이 아주 많았으므로 사람들을 먹고 남은 뼈다귀를 으깨어 골수를 먹기도 하였다. 이와 함께 오래 저장되어 완전히 발효한 포도주도 고급 연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음식의 하나였다. '기름진 것'(* , 쉐마님)과 '포도주'(* , 쉐마림)는 발음이 유사하다.
=====25:7
그 가리워진 면박과... 그 덮인 휘장을 제시하며 - 그날에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지고 참된 교제가 실현된다. '면박'(* ,로트)은 얼굴에 덮는 수건이니(고후 3:15). 참된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가리는 영적인 무지를 비유한 것이다(출 34:30 참조). '덮인 휘장'(* , 마세카)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22:8). 그러나 주님이 그 가리운 것을 제시하면 그때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던 모든 장애가 사라지고 사람들은 마치 얼굴로 대면하여 보는 것처럼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고전 13:12;요일 3:2). 그날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Delitzsch, Bultema).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 인생을 지배하던 최후의 적인 죽음(고전 15:26)의 정복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덧붙여진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가 사망을 꿀꺽 삼켜버릴 것이다(* ,빌라), 영원히'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노래하면서 이 말을 이렇게 인용한다:"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4). 이와 유사한 사상에 대하여는 65:20;단 12:2;호 13:14 등을 보라. 눈물을 씻기시며...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 죽음이 제거되면 그로부터 연유하는 눈물도, 슬픔도 없게 될 것이다. 여호와는 죽음이라는 근본 원인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친히 그 손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신다(계 7:17;21:4). '그 백성의 수치'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관련된 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홀로 여호와 종교를 갖는다는 것만으로 조소거리가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 모든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그날에 모든 수치는 녹는 눈처럼 사라질 것이다(롬 11:11, 12, Oswalt).
=====25:9
그 날에 말하기를 -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문맥에 비추어 보건대 하나님을 오래 전부터 기다리다가 이제야 그 구원을 맛본 백성들의 노래라고 추론할 수 있다(Gray).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이는 여호와시라 - 원문에는 '보라'(힌네, * )가 삽입되어 있다. 이는 구원받은 백성의 입으로부터 자랑스럽게 발출되는 탄성이다:'보라! 이 분이 우리가 말했던 그분, 곧 우리가 그토록 기다렸으며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시 48:14). 우리가 그들 기다렸으니...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도래 할 때 그 약속을 의지하고 기다린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기다림'은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성도가 뿌리는 눈물의 씨앗이다(시 123편). 그리고 '구원'은 그의 기다림이 보상받는 수확의 날에 성도가 거두는 기쁨의 단이다(시 126:5, 6).
=====25:10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 '손'(* , 야드)은 권능을 상징한다. 시온산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손은 구속함을 입은 백성들에게는 은혜와 축복의 손이요, 반면에 그 백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한 모압에게는 심판과 복수의 손으로 역사하신다(Delitzsch, Oswalt). 모압이...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 교만한 모압의 몰락이 '지푸라기가 똥더미에 묻히는 모양'으로 비유된다(왕하 9:37;시 83:10;렘 8:2;9:22;16:4;25:33 참조). '거름물'에 해당하는 '마드메나'(* )는 '거름을 주다'는 뜻의 '다만'(* ) 동사에서 파생한 말로, '거름더미', '똥더미'를 뜻한다. 이는 모압 성읍인 '마드멘'(* )에 대한 언어 유희로 의도적으로 채택된 것이다(렘 48:2). 여기서 모압이 왜 구속받은 백성들의 대표적인 원수로 등장하였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지 않다. 모압이 과거에 이스라엘에 행했던 일들을 보려면 왕하 24:2;겔 25:8-11;습 2:8-10등을 보라.
=====25:11
그가...누르실 것이라 - 앞절의 표상이 계속된다. 본문의 요점은 명료하다. 모압이 무슨 일을 하건 그는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교만은 낮추어질 것이다(Gray). 여기서 헤엄치는 이는 모압 자신이며(Gesenius, Hitzing), '그 속'은 모압이 빠진 퇴비더미를 뜻한다(Knobel, Alexander).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모압의 죄악이 두 가지로 언급된다. 그 첫 째는 '교만'이며, 그 둘 째는 '그 손의 교활'이다(16:6;렘 48:29).'손의 교활'은 손의 간교한 동작으로 상징되는 속임수, 거짓, 책략 등을 뜻한다(Lange). 참조로 델리취(Delitzsch)는 이 말을 물 속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하여 팔을 휘젓는 모양으로 해석한다.
=====25:12
너의 성벽의 높은 보장을 헐어...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 여호와께서 모압을 낮추심을 선지자는 다르게 표현한다. 강하고 높은 성벽으로 묘사된 모압의 위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는 날에 '헐리고 땅이 내려지며 심지어 먼지 바닥에 던져진다'(26:5). 즉, 완전하게 파괴될 것이다.
전세계적인 심판과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묘사하고 있는 전장(24장)에 이어
서 본장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원수들
을 물리치고 건설한 메시야의 왕국은(24 : 23) 풍성한 축제가 베풀어지고 영적 우매함
이 극복되는 이상적인 나라이다(호 13 : 14 ; 고전 15 : 54 ; 계 21 : 14 ; 21 : 4).
선지자는 예언자적 환상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영
광스러움을 극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종국적으로 완성될 나라에 대해 감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본장은 (1) 타
락한 성읍을 멸망시킨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묘사하는 전반부(1-5절), (2)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잔치를 묘사하는 중반부(6-8절), (3)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상징적인 도성인 모압의 멸망을 선언하는 후반부(9-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서술하면서 항상 시온 산과 예
루살렘을 축으로 묘사하고 있다(6, 7절). 이러한 사실은 본서의 핵심적인 주제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시온 산
과 예루살렘은 문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종국에 있을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된
모습을 예표한다. 이러한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 대한 관심을 본서의 결론부라 할 수
있는66 : 20-24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지자는 예루살렘과 여호와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동일시하고 있다(65 : 17, 18).
이러한 견해는 신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계 21 :
1-4). 사실 본서는 요한계시록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에
서도 특히 '두 도성'의 개념이 대표적이다. 곧 하나의 도시는 죄악이 중한 타락한 도
시이며 또 하나의 도시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거룩한 도시라는 개념이다. 두
책은 이와같이 두 가지 도시의 특징을 대조적으로 병치(juxtaposition)시키면서 구원
과 심판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본서의 시작 부분과 끝나는 부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장은 타락한 성읍에 대한 탄식으로 시작하며, 마지막 66장은 새예루살렘
에 대한 극도의 찬양으로 끝을 맺고 있다(66 : 20-24). 이러한 대조는 본장에서도 드
러난다. 한성읍은 다시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심판을 받고, 시온 산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연회가 배설된다(2, 6절). 이와 같은 대조에 있어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통치의 중심지로서 신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한, 본장은 반복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두
번 혹은 세 번까지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1 : 4에서"슬프다 범
죄한 나라요 허물어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등과 같이
나타난다. 본장에서도 "주는 빈궁한 자의 보장이시며 환난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
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4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본장은 하나님의 행사와 종국에 있을 궁극적인 구원을 강조하기 위해 동일
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종말론적인 왕국을 찬양하고 있는
본장의 핵심적인 내용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타락한 성읍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찬양함(25 : 1-5)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시온 산에서 계시하실 것이라는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전 단락(21 : 21-23)에 이어서 본 단락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구체적인 찬양을 묘사
하고 있다. 선지자는 전장에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 상기시키며 타락한 성읍과
포학한 원수들을 궤멸시키고 의인을 견고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런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전반부(1절)와 찬양의 구체적
인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2-5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에서 부각
되고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찬양의 대상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1절) : 저자는 본 단락을 시작하면서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경험한 뒤에 흘러나오는 진실한 고백이다. 예전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 사건울 체험하고 난 이후에 이와 동일한 고백을 하였다(출 15 : 2). 선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사역을 보면서 오직 주님만을 높여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성실하고 진실하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찬양의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
다.
(2)타락한 성읍에 대한 심판의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읍이 있을 것임을
천명한다(2, 3절) : 저자는 타락한 성읍에 대한 심판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회복될 수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여기서 이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읍
을 지칭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장(24장)에서 언급되었던 성읍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독특한 사실은 이러한 성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목도한 강한 민족들과 포학한 나
라들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경외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표현은 이전에 하나님을 인
정하지 않던 민족들이 심판 이후에 하나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의 구원으로 성취된다(롬 11 : 25). 결국
선지자는 심판의 결과가 멸망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구원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3)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과정 속에서도 사랑과 긍휼을 나타내 보이신다(4, 5절) :
저자는 심판의 과정 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과는 반대로 하
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하나님은 공의와 동시에 사랑을 소유하고
계신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모습이 정당하게 드러나
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묘사하던 선지자는 이제 하나님의 사랑
을 알리기 위해서 연약한 자를 돌아보시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들의 보장이며 그늘이 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원의 궁극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축복스러운 연회(25 : 6-8)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새롭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들이 생길 것임을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1-5절)에 이어서 이제는 시온 산에서 있게 될 축복스러운 잔치가 묘사되
어 있다. 이러한 분위기의 급격한 전환은 심판을 끝낸 이후,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가
시작됨을 극적으로 알리려는 저자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은 연회의 풍성함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6절), 구체적인 연회의 내용을 소개
하는 후반부(7, 8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드러난 주된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본 단락에 등장하는 잔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6절) : 선지자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인한 축복들을 연회의 표상으로 묘사한
다. 사실 이러한 설명은 구약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시 22 : 26-31). 또한 신약은
이런 표상을 좀더 상세하게 발전시킨다(마 8 : 11 ; 22 : 2-14 ; 눅 14 : 15-24). 하
나님 나라는 이처럼 풍성하고 다양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진미의 연회'
(feast of delicacies)와 같다. 예수님께서도 가나 혼인 잔치에서 기적적으로 포도주
를 만드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나타내셨다(요 2 : 1-11).
(2) 하나님의 연회는 위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7, 8절) : 하나님의 연회는 당신
의 백성들을 위로하는 모습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열방 중에서 택한 자를 불러모으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생생하게 보여주신다(고전 13 : 12). 그때에는 모든 악과 죄
가 원천적으로 제거되며 오직 영원한 기쁨과 찬양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같이 지
상에서 맛볼 수 없는 완전한 위로에 대한 묘사는 계시록의 모습과도 유사하다고 뽈 수
있다(계 7 : 17 ; 21 : 3, 4).
3. 여호와의 구원을 찬양함(25 : 9-15)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해 잔치를 통해 묘사하고 있는 전 단락(6-8절)
에 이어지는 본 대목은 종말론적인 구원을 경험한 백성들의 반응과 모압의 파멸을 소
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본 단락은 (1)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에 대
해 찬양하는 전반부(9절), (2)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반대자로서의 상징적인 성
격을 갖고 있는 모압에 대한 심판을 밝히고 있는 후반부(10-12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
다. 이러한 본 단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날'은 믿는 자에게 찬양의 날이 될 것이다(9절) : 고통과 핍박 가운
데서도 하나님을 대망하는 경건한 자들은 종말론적 시기에 임하여 하나님을 직접 대면
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 이사야는 이러한 소망을 선포함으로써 성도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울 대망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26 : 8 창 49 : 18 ; 시 27 :
14). 특히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라는 표현 속에는 하나님과 백성의 지속적인 관계
가 드러나고 있으며, 백성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의 날
을 기다리며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롬 5 : 1-4).
(2) 여호와의 날에 이스라엘을 대적하던 모압은 멸망할 것이다(10-12절) : 사실,
모압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이방 민족으로서(왕하 24 : 2 ; 겔 25 : 8-11 ;
습 2 : 8-10) 하나님의 백성의 전형적인 원수이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찬양
(9절)과 모압의 파멸(10-12절)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여호와의 날의 양면적 성격
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호와의 날은 마치 유월절이 이스라엘에게는 생명의 날,
애굽에게는 사망의 날이었던 것처럼 언약 백성들에게는 위로와 구원의 날이지만 교만
한 자들에게는 파멸과 심판의 날이다. 특별히 이사야는 모압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거름물 속의 초개같이 밟히고'(10b절) '견고한 성벽이 완전히 파괴될 것'(12절)이라
고 묘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모압이 궁극적으로 완전한 파멸에 도달하게 됨을 드러내
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메시야를 통해 완성될 왕국에 대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 종말론적으로 임할 나라는 원수들이 철저히 제거되고(왕하 9 : 34 ; 시 83 : 10 ; 렘 8 : 2 ; 9 ; 22 ; 25 : 33)영적 우매함이 사라지며(호 13 : 14 ; 고전 15 : 54
; 계 20 : 14 ; 21 : 4) 풍성한 사랑과 기쁨만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 날을 고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믿음(롬 1 : 17)과 사랑(요 13 : 34, 35)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 세상을 판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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