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슬프다 -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되고 있는 본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경고'( , 맛사)라는 말로 시작되지 않고 '호'( )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13:1;14:28;15:1;17:1과 비교하라).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첫째, 본장이 17:12에 연속되는 예언의 한 부분이며, 둘째, 본장을 구스에 대한 심판예언(경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논의의 초점은 오히려 앗수르에 향해 있다. 본장은 어떤 의미에서 애굽에 대한 경고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혹은 서론)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장은 19, 20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Oswalt).
구스의 강 건너편 - '구스'( , 쿠쉬) 곧 에디오피아는 애굽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영토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하였다(겔 29:10;30:6). 바사 시대에 구스는 인도와 더불어 땅의 맞은편 끝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에 1:1). 따라서 탈굼역(Targum)이 본문을 '인도의 강 건너편'으로 해석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Oswalt). B.C. 715년, 샤바코(Shabako)가 애굽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된 애굽 제25왕조(Nubian 왕조) 시대에 이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와 함께 서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나파타(Napata, 오늘날의 Gebel Berkal)틔 그 당시 정치의 중심지였다. 누비안(Nubian) 왕조의 세 번째 왕인 디르하가(Tirhakah)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핍박하여 라기스를 포위했을 때 그와 접전하였다(37:8, 9; 왕하 19:8, 9, Leon Wood). 한동안 계속되었던 에디오피아인의 애굽 퉁치는, B.C. 633년, 애굽의 삼메티쿠스(Psammeticus)가 그 자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종인을 고하게 된다. 여기에 언급된 '구스의 강'은 나일 강과 그 지류를 가리키며, '그 건너편 땅'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에디오피아인들이 지배하던 남쪽 땅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Alexander, Delitzsch).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 그 땅은 선지자의 묘사에 의하면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 , 에레츠 칠찰 케나파임)이다. '칠찰'( )을 '첼'( , 그늘)의 반복형(혹은 강조형)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말을 '날개로 그늘 드리운 땅'으로 해석한다(KJV, Calvin, Grotius, Vitringa, Eichorn, Knobel). 그러나 '칠찰'의 이중 형태가 성경에서 거의 소리와 연관되어 쓰이기 때문에(신 28:42; 삼하 6:5; 시 150:5). 이 말을 본래대로 번역함이 낫겠다. 이소리는 '강물의 철썩거림'(Umbreit)이나 '군인들의 무기가 부딪혀 '쨍그렁거림'(Gesenius, Rosenmuller)이라기보다는 '곤층들의 윙윙거림'(Michaelis, Delitzsch)이 더 어울린다. 무덥고 습기찬 에디오피아 땅에는 곤충들의 날개치는 소리가 흔했다(7:18). 아울러 본문은 앗수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소집된 군사들의 거대한 함성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18:2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 '갈대배'는 파피루스 갈대로 만든 배로서, 극히 가볍고 빨라서 나일 강에 적합하였다(35:7;출 2:3).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직역하면 '사자들을 바다( , 얌)로 보내며'이다. 여기서 '바다'는 나일강일 것이다(19:5;나 3:8).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의 '사자'를 유다 땅에 파견된 에디오피아 사자들로 이해한다.이들은 아마도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한 공동 전선의 필요성을 유다에게 역설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Ewald, Knobel, Meier). 이들에게 선지자의 음성이 떨어진다.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가되 - 에디오피아 사자들에 대한 선지자의 회답은 한마디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는 에디오피아의 제안에 대한 거절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경첩하다'( , 칼림)는 말은 '가볍고 날래다'는 뜻이다.이하에서 에디오피아인과 그 나라에 대한 선지자의 섬세한 인상 묘사가 나열된다.(1)'장대하고 준수한 백성':그들은 '메무솨크'( ), 즉 키가 크고 당당하며(45:14), 또한 '모라트'( ), 즉 윤기나며 부드러운 살갗을 가졌다. 그리스의사가(史家)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에디오피아인들을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들'이라고 하였다.(2)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백성' :선지자는그들이 애굽을 압도하고 그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시초부터'( - , 민-후와할르아)는 공간적인 의미, 즉 '왼거리에서부터'로 해석함이 더 적절하다.
'강성하여'( - , 카우-카우)는 '측량줄', '명령'. 혹은 '힘'을 뜻하는 '카우'( )를 이중으로 결합시킨 말이니, 이는 온 땅을 명령하며 탁난 용맹성으로 끝없이 영토를 확장시켜 정복해 나가는 그들의 호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3)'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 : 에디오피아인에 대한 신체묘사가 마지막으로 덧붙여진다. '강들이 흘러 나누인다'는 말은 그 땅이 지극히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Alexander, Delitzsch).
=====18:3
세상의 모든 거민...너희는 들을지니라 - 앞절의 거절에 대한 이유가 설명된다. 선지자의 말은 지상에 거하는 모든 거민들을 향해 선포된다. 이제 곧 여호와께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것이다. 그날에 온 세상은 산 위의 기호를 바라봄같이, 그리고 나팔소리를 들음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호'와 '나팔'에 대하여는 5:26;13:2;렘 4:5;51:27을 참조하라
=====18:4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 여호와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놀라운 역사는 먼저 고요한 감찰(침묵) 가운데서 비롯된다. 이 침묵은 때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그리고 악을 밥먹듯이 행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부재(죽음)의 증표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대, 이것은 목적있는 한정적 침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성숙하기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리시지만, 그 때가 되면(갈 4:4 참조) 지체함없이 신속하게 행동하신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대하여 기다리시는 이 기간은 그들이 하나남의 진노의 막대로서 이스라엘을 때리는 때까지요(10:12), 일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그가 역사하셔서 앗수르를 징벌하실 것이다(10:25, John A. Martin). 본문의 전체적인 표상은 시 33:13, 14에 일치한다.
쬐이는 일광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雲霧)같도다 - 하나님의 정관(靜觀)은 한낮의 햇볕과 저녁의 이슬에 비유된다. 이것들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매우 필요하고 적절한 것이다. '일광'( , 홈 차흐)은 밝은 빛을 가리키며, '운무'( , 아브 탈)는 밤에 이슬이 되는 가벼운 구름을 뜻한다. 온 세상을 포괄하는 고요한 응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영글어간다.
=====18:5
추수하기 전에... 찍어 버려서 - 하나님의 개입은 추수기가 가까워져서 포도들이 거의 익어갈 무렵 일어난다. 선지자는 그것을 거의 성숙한, 그러나 아직은 신맛이 남아 있는 포도가 달려 있는 연한 가지( , 하잘잘림)와 길게 뻗은 덩굴손( , 하느티쇼트)을 베어내는 농부의 작업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서 비유되고 있는 '익어가는 포도'( , 보세르)는 아마도 앗수르일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과 그들의 급작스런 몰락에 대하여는 14:24-27;17:12-14 등을 참조하라.
=====18:6
산의 독수리들에게와...과동(過冬)하리라 - 앞절에서 농부에 의해 베어지고 찍혀진포도 가지가 여기서 산과 땅에 무참히 내버려진 시체들로 구체화된다. '독수리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트'( )는 썩은 고기를 뜯어먹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46:11;창 15:11).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에 의하면,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한 시체들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들이 여름 내내 먹고, 맹수들( , 베헤마트)이 겨울 내내 먹을 것이다. 즉.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한다(겔 39:17-20). '과하(過夏)하며' , 카츠)는 '여름을 보낸다'는 뜻이며, '과동하리라'( , 테헤라프)는 '겨울을 보낸다'는 뜻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몰살당하였을 때, 그 죽은 수가 무려 185,000명에 이르렀다고 성경은 전한다(37:36).
=====18:7
그 때에 - 앗수르의 패망이 에디오피아에 미칠 영향이 기술되고 있다. '그 때'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지. 아니면 먼 미래를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선지자는 앞절의 사건이 있은 직후 에디오피아가 시온 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예물드릴 것을 미리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이것을 통하여 먼 미래에 세계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할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을 내다보는 이중적인 전망을 보았을 것이다(2:2-4;습 3:10;행 8:26-39).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백성에게서 - 2절에 묘사된 에디오피아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수미 쌍관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동일한 나라로부터 두 번의 사절이 파견된다. 첫 번째는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함께 연합할 것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었다(2절). 그러나 두번째는 앗수르를 물리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예물을 들고 올 것이다. 이는 시편 기자가 노래한 바,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 68:31)는 내용과 같다(Delitzsch).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 - 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곳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고 그 이름을 부르도륵 명하신 곳, 즉 시온 산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대체되었다(Calvin).
남왕국 유다의 북쪽에 위치한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 후에 이
사야는 여섯 번째로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 구스에 대한 예언을 선포한다. 그런데 지금
까지는 주로 이방인들에 대한 책망, 저주, 멸망 등을 선포한 반면 본장에서는 구스에
게 유다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믿음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7절로 이루어진 짧은 예언이므로 단락의 구분이
불필요할 정도이다. 다만 예언의 내용적 흐름을 중심으로 볼 때, (1) 구스 사절을 향
한 선지자의 충고(1, 2절), (2) 앗수르의 파멸에 대한 예언(3-6절), (3) 여호와 앞에
굴복할 구스의 미래(7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에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구스는 애굽의 남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의 국가로서 B.C. 20세기경에 국가를 형성했고, B.C. 715년경에는 애굽을 통치할 정도
로 강성하게 되었다. 이사야가 구스를 향하여 본 예언을 선포한 시기는 바로 구스가
애굽의 제25왕조를 건립하고 전역을 다스리던 중이었다. 이때 앗수르의 산헤립은 북이
스라엘과 다메섹을 정복한 후 1차로 유다를 침공한 데 이어 2차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
다(왕하 18 : 19-19 : 34). 그러므로 애굽을 지배하던 구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다. 왜냐하면 유다가 정복당하면 인접해 있는 구스도 곧 침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
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스는 자국의 군대를 소집함과 동시에 주변국들에게도 사신을
파송하여 동맹군을 결성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구스의 사신들은 협조
를 요청하기 위해 갈대배를 타고 유다를 방문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본 예언을 선포하여 앗수르의 멸망(왕하 19 : 35-37)과 아울러 구스가 유다에 예물을
바치게 됨(대하 32 : 23)을 알린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직접적으로 구스를 행해 선포한 예언이라기보다는 앗수르를 향한
철저한 심판이 구스인들에게 초래할 일시적인 변화와 영향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
다. 물론 포괄적인 면에서는 구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구
스에 대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파멸 선언이 드러나는 20장의 전초적인 예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좋다.
이제 구스의 사절단을 향해 선포된 예언이 드러나고 있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
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스 사절에 대한 권면(18 : 1-2)
앗수르의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에 이어지는 본문은 구스의 사신들에 대한 선지자의
동정심과 권면이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슬프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구
스에 대한 연민의 심정을 숨김 없이 보여준다(55 : 1 ; 슥 2 : 10). 사실 당시 구스는
외교적, 군사적 측면에서 곤경에 빠졌으며, 갈대배(papyrus vessels)를 주요 운송 수
단으로 삼던 교역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면 초가(四面楚歌) 상태에
빠진 구스에 대한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고 돌아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 보도록
독려하고 있다(2절).
여기서 우리는 '장대하고 준수하며 구리빛 피부를 가진' 구스인(Herodotus)들의 두
려움을 일거에 넘어서는 이사야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이사야는 그들의 염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더 이상 군대의 힘으로 앗수르를 대항하지 않아도 됨을 선언한다. 이
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강대한 세상 세력의 공포심을 제거해 줄 수
있을 만큼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2. 앗수르의 파멸을 예언함(18 : 3-6)
구스 사절단에게 앗수르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동맹군을 결성하지 않아도 됨으로
귀국하도록 종용한(1, 2절) 선지자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
판 계획을 설명해준다. 특히 본문은 앗수르의 파멸에 대해 감각적 언어를 사용하여 드
러냄으로 생생한 전달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기호를 세움', '나팔을 붐'
(3절), '꽃이 떨어지고', '낫으로 가지를 찍어버림'(5절) 등이다.
그런데 저자는 앗수르의 파멸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앗수르가 세력
확장을 위해 군사를 모집하여 침공한다(3절).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조용히 침묵하
시며 감찰하신다(4절). 이러한 침묵은 인류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과
정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파멸시키신다(6절). 앗수르의 세력
확장이 넓었던 것처럼 멸망도 심각하고 철저하게 진행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산의 독
수리와 들짐승들이 겨우 내내 먹을만큼 앗수르 군대의 수가 많다고 함으로써 그 규모
를 짐작케 한다(37장).
이상에서 이사야는 구스 사절단에게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킬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대하 32 : 23).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악인의 융성
을 저지하심으로(시 37 : 2) 의인들에게 참소망을 갖도록 하신다.
3. 여호와의 앞에 굴복할 구스의 미래에 대한 예언(18 : 7)
앞에서 앗수르의 파멸을 예언(3-6절)한 선지자는 여기서 구스인들이 결국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다고 예언한다.
구스인의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끄는 18만 5천의 군사를 몰살시키심으로 앗수르의 위
험에서 다위의 집과 남쪽 나라들을 건져내셨기 때문이었다(37 : 36). 대하 32 : 20-23
에는 본 예언의 성취 기사가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尊大)하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 구스의 사절단도 그들 중에 끼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와같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구스와 유다 주변의 나라들이(14 : 1, 2, 32 ; 16
: 1 ; 19 : 19-25 참고) 각각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의 시온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은 2
: 2-4에서 예언하고 있는 대로 열방이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 시온으로 그 진리의 도
를 배우기 위해 모여들 것에 대한 제1차적인 성취이기도 하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갈밭의 들짐
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위하여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셀라)"(시68 : 29-32) 등으로 노래했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영화롭게 하시고 열방이 그 영광스런 은혜의
그늘 아래에서 쉼을 얻게 하실 것을 단편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시
온은 선지자의 눈에 기독교의 선교적 세계주의의 온상이었다. 이러한 유다의 영광은
신약 시대에서는 교회가 얻게 될 영광으로 연결된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세계 만민을 그 은혜 아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보게 된다(습 3:9,10). 또한 포도나무의 베임에 비유된 앗수르의 패망 예언을 통해서 포도원 농부(요 15 : 1)이신 여호와께서 모든 불순종자, 곧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하거나 거스리는 자를 제하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고 어떤 세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바른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슬프다 - 구스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되고 있는 본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경고'( , 맛사)라는 말로 시작되지 않고 '호'( )라는 감탄사로 시작한다(13:1;14:28;15:1;17:1과 비교하라).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첫째, 본장이 17:12에 연속되는 예언의 한 부분이며, 둘째, 본장을 구스에 대한 심판예언(경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논의의 초점은 오히려 앗수르에 향해 있다. 본장은 어떤 의미에서 애굽에 대한 경고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혹은 서론)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장은 19, 20장과는 확연히 구별된다(Oswalt).
구스의 강 건너편 - '구스'( , 쿠쉬) 곧 에디오피아는 애굽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영토는 오늘날의 에디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를 포함할 만큼 광활하였다(겔 29:10;30:6). 바사 시대에 구스는 인도와 더불어 땅의 맞은편 끝에 있는 나라로 인식되었다(에 1:1). 따라서 탈굼역(Targum)이 본문을 '인도의 강 건너편'으로 해석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Oswalt). B.C. 715년, 샤바코(Shabako)가 애굽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시작된 애굽 제25왕조(Nubian 왕조) 시대에 이 나라는 북쪽의 앗수르와 함께 서아시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나파타(Napata, 오늘날의 Gebel Berkal)틔 그 당시 정치의 중심지였다. 누비안(Nubian) 왕조의 세 번째 왕인 디르하가(Tirhakah)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핍박하여 라기스를 포위했을 때 그와 접전하였다(37:8, 9; 왕하 19:8, 9, Leon Wood). 한동안 계속되었던 에디오피아인의 애굽 퉁치는, B.C. 633년, 애굽의 삼메티쿠스(Psammeticus)가 그 자리를 다시 찾음으로써 종인을 고하게 된다. 여기에 언급된 '구스의 강'은 나일 강과 그 지류를 가리키며, '그 건너편 땅'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에디오피아인들이 지배하던 남쪽 땅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Alexander, Delitzsch).
날개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 - 그 땅은 선지자의 묘사에 의하면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 , 에레츠 칠찰 케나파임)이다. '칠찰'( )을 '첼'( , 그늘)의 반복형(혹은 강조형)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말을 '날개로 그늘 드리운 땅'으로 해석한다(KJV, Calvin, Grotius, Vitringa, Eichorn, Knobel). 그러나 '칠찰'의 이중 형태가 성경에서 거의 소리와 연관되어 쓰이기 때문에(신 28:42; 삼하 6:5; 시 150:5). 이 말을 본래대로 번역함이 낫겠다. 이소리는 '강물의 철썩거림'(Umbreit)이나 '군인들의 무기가 부딪혀 '쨍그렁거림'(Gesenius, Rosenmuller)이라기보다는 '곤층들의 윙윙거림'(Michaelis, Delitzsch)이 더 어울린다. 무덥고 습기찬 에디오피아 땅에는 곤충들의 날개치는 소리가 흔했다(7:18). 아울러 본문은 앗수르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소집된 군사들의 거대한 함성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18:2
갈대배를 물에 띄우고 - '갈대배'는 파피루스 갈대로 만든 배로서, 극히 가볍고 빨라서 나일 강에 적합하였다(35:7;출 2:3). 그 사자를 수로로 보내며. 직역하면 '사자들을 바다( , 얌)로 보내며'이다. 여기서 '바다'는 나일강일 것이다(19:5;나 3:8).대부분의 학자들은 본문의 '사자'를 유다 땅에 파견된 에디오피아 사자들로 이해한다.이들은 아마도 앗수르를 견제하기 위한 공동 전선의 필요성을 유다에게 역설하기 위하여 파견되었을 것이다(Ewald, Knobel, Meier). 이들에게 선지자의 음성이 떨어진다. 너희 경첩한 사자들아...가되 - 에디오피아 사자들에 대한 선지자의 회답은 한마디로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는 에디오피아의 제안에 대한 거절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경첩하다'( , 칼림)는 말은 '가볍고 날래다'는 뜻이다.이하에서 에디오피아인과 그 나라에 대한 선지자의 섬세한 인상 묘사가 나열된다.(1)'장대하고 준수한 백성':그들은 '메무솨크'( ), 즉 키가 크고 당당하며(45:14), 또한 '모라트'( ), 즉 윤기나며 부드러운 살갗을 가졌다. 그리스의사가(史家) 헤로도투스(Herodotus)는 에디오피아인들을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들'이라고 하였다.(2) '시초부터 두려움이 되며 강성하여 대적을 밟는백성' :선지자는그들이 애굽을 압도하고 그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사실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시초부터'( - , 민-후와할르아)는 공간적인 의미, 즉 '왼거리에서부터'로 해석함이 더 적절하다.
'강성하여'( - , 카우-카우)는 '측량줄', '명령'. 혹은 '힘'을 뜻하는 '카우'( )를 이중으로 결합시킨 말이니, 이는 온 땅을 명령하며 탁난 용맹성으로 끝없이 영토를 확장시켜 정복해 나가는 그들의 호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3)'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 : 에디오피아인에 대한 신체묘사가 마지막으로 덧붙여진다. '강들이 흘러 나누인다'는 말은 그 땅이 지극히 비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Alexander, Delitzsch).
=====18:3
세상의 모든 거민...너희는 들을지니라 - 앞절의 거절에 대한 이유가 설명된다. 선지자의 말은 지상에 거하는 모든 거민들을 향해 선포된다. 이제 곧 여호와께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것이다. 그날에 온 세상은 산 위의 기호를 바라봄같이, 그리고 나팔소리를 들음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호'와 '나팔'에 대하여는 5:26;13:2;렘 4:5;51:27을 참조하라
=====18:4
내가 나의 처소에서 종용히 감찰함이 - 여호와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놀라운 역사는 먼저 고요한 감찰(침묵) 가운데서 비롯된다. 이 침묵은 때로 고난받는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버리심으로, 그리고 악을 밥먹듯이 행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부재(죽음)의 증표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할진대, 이것은 목적있는 한정적 침묵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성숙하기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리시지만, 그 때가 되면(갈 4:4 참조) 지체함없이 신속하게 행동하신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대하여 기다리시는 이 기간은 그들이 하나남의 진노의 막대로서 이스라엘을 때리는 때까지요(10:12), 일단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면 그가 역사하셔서 앗수르를 징벌하실 것이다(10:25, John A. Martin). 본문의 전체적인 표상은 시 33:13, 14에 일치한다.
쬐이는 일광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雲霧)같도다 - 하나님의 정관(靜觀)은 한낮의 햇볕과 저녁의 이슬에 비유된다. 이것들은 곡식을 여물게 하는 데 매우 필요하고 적절한 것이다. '일광'( , 홈 차흐)은 밝은 빛을 가리키며, '운무'( , 아브 탈)는 밤에 이슬이 되는 가벼운 구름을 뜻한다. 온 세상을 포괄하는 고요한 응시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영글어간다.
=====18:5
추수하기 전에... 찍어 버려서 - 하나님의 개입은 추수기가 가까워져서 포도들이 거의 익어갈 무렵 일어난다. 선지자는 그것을 거의 성숙한, 그러나 아직은 신맛이 남아 있는 포도가 달려 있는 연한 가지( , 하잘잘림)와 길게 뻗은 덩굴손( , 하느티쇼트)을 베어내는 농부의 작업으로 형상화한다. 여기서 비유되고 있는 '익어가는 포도'( , 보세르)는 아마도 앗수르일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과 그들의 급작스런 몰락에 대하여는 14:24-27;17:12-14 등을 참조하라.
=====18:6
산의 독수리들에게와...과동(過冬)하리라 - 앞절에서 농부에 의해 베어지고 찍혀진포도 가지가 여기서 산과 땅에 무참히 내버려진 시체들로 구체화된다. '독수리들'로 번역된 히브리어 '에트'( )는 썩은 고기를 뜯어먹는 새를 뜻하는 말이다(46:11;창 15:11).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에 의하면,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한 시체들의 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새들이 여름 내내 먹고, 맹수들( , 베헤마트)이 겨울 내내 먹을 것이다. 즉.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한다(겔 39:17-20). '과하(過夏)하며' , 카츠)는 '여름을 보낸다'는 뜻이며, '과동하리라'( , 테헤라프)는 '겨울을 보낸다'는 뜻이다. 산헤립의 군대가 하룻밤에 몰살당하였을 때, 그 죽은 수가 무려 185,000명에 이르렀다고 성경은 전한다(37:36).
=====18:7
그 때에 - 앗수르의 패망이 에디오피아에 미칠 영향이 기술되고 있다. '그 때'가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지. 아니면 먼 미래를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선지자는 앞절의 사건이 있은 직후 에디오피아가 시온 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예물드릴 것을 미리 바라보는 한편, 동시에 이것을 통하여 먼 미래에 세계 모든 민족들이 나아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미할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을 내다보는 이중적인 전망을 보았을 것이다(2:2-4;습 3:10;행 8:26-39). 강들이 흘러 나누인 나라의...백성에게서 - 2절에 묘사된 에디오피아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수미 쌍관의 구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동일한 나라로부터 두 번의 사절이 파견된다. 첫 번째는 앗수르를 대적하기 위해 함께 연합할 것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온 것이었다(2절). 그러나 두번째는 앗수르를 물리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예물을 들고 올 것이다. 이는 시편 기자가 노래한 바,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시 68:31)는 내용과 같다(Delitzsch).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 - 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곳이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경배하고 그 이름을 부르도륵 명하신 곳, 즉 시온 산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대체되었다(Calvin).
남왕국 유다의 북쪽에 위치한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 후에 이
사야는 여섯 번째로 유다의 남쪽에 위치한 구스에 대한 예언을 선포한다. 그런데 지금
까지는 주로 이방인들에 대한 책망, 저주, 멸망 등을 선포한 반면 본장에서는 구스에
게 유다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믿음을 갖도록 권면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7절로 이루어진 짧은 예언이므로 단락의 구분이
불필요할 정도이다. 다만 예언의 내용적 흐름을 중심으로 볼 때, (1) 구스 사절을 향
한 선지자의 충고(1, 2절), (2) 앗수르의 파멸에 대한 예언(3-6절), (3) 여호와 앞에
굴복할 구스의 미래(7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에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구스는 애굽의 남쪽에 위치한 아프리카
의 국가로서 B.C. 20세기경에 국가를 형성했고, B.C. 715년경에는 애굽을 통치할 정도
로 강성하게 되었다. 이사야가 구스를 향하여 본 예언을 선포한 시기는 바로 구스가
애굽의 제25왕조를 건립하고 전역을 다스리던 중이었다. 이때 앗수르의 산헤립은 북이
스라엘과 다메섹을 정복한 후 1차로 유다를 침공한 데 이어 2차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
다(왕하 18 : 19-19 : 34). 그러므로 애굽을 지배하던 구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된
다. 왜냐하면 유다가 정복당하면 인접해 있는 구스도 곧 침공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
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스는 자국의 군대를 소집함과 동시에 주변국들에게도 사신을
파송하여 동맹군을 결성하고자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구스의 사신들은 협조
를 요청하기 위해 갈대배를 타고 유다를 방문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본 예언을 선포하여 앗수르의 멸망(왕하 19 : 35-37)과 아울러 구스가 유다에 예물을
바치게 됨(대하 32 : 23)을 알린 것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직접적으로 구스를 행해 선포한 예언이라기보다는 앗수르를 향한
철저한 심판이 구스인들에게 초래할 일시적인 변화와 영향을 기술한 것으로 볼 수 있
다. 물론 포괄적인 면에서는 구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포함시킬 수도 있으나, 구
스에 대한 하나님의 본격적인 파멸 선언이 드러나는 20장의 전초적인 예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좋다.
이제 구스의 사절단을 향해 선포된 예언이 드러나고 있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
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스 사절에 대한 권면(18 : 1-2)
앗수르의 심판을 선언하는 내용에 이어지는 본문은 구스의 사신들에 대한 선지자의
동정심과 권면이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처음부터 '슬프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구
스에 대한 연민의 심정을 숨김 없이 보여준다(55 : 1 ; 슥 2 : 10). 사실 당시 구스는
외교적, 군사적 측면에서 곤경에 빠졌으며, 갈대배(papyrus vessels)를 주요 운송 수
단으로 삼던 교역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면 초가(四面楚歌) 상태에
빠진 구스에 대한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고 돌아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지켜 보도록
독려하고 있다(2절).
여기서 우리는 '장대하고 준수하며 구리빛 피부를 가진' 구스인(Herodotus)들의 두
려움을 일거에 넘어서는 이사야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이사야는 그들의 염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더 이상 군대의 힘으로 앗수르를 대항하지 않아도 됨을 선언한다. 이
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강대한 세상 세력의 공포심을 제거해 줄 수
있을 만큼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2. 앗수르의 파멸을 예언함(18 : 3-6)
구스 사절단에게 앗수르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동맹군을 결성하지 않아도 됨으로
귀국하도록 종용한(1, 2절) 선지자는 이제 더욱 분명하게 앗수르를 향한 하나님의 심
판 계획을 설명해준다. 특히 본문은 앗수르의 파멸에 대해 감각적 언어를 사용하여 드
러냄으로 생생한 전달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기호를 세움', '나팔을 붐'
(3절), '꽃이 떨어지고', '낫으로 가지를 찍어버림'(5절) 등이다.
그런데 저자는 앗수르의 파멸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앗수르가 세력
확장을 위해 군사를 모집하여 침공한다(3절).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조용히 침묵하
시며 감찰하신다(4절). 이러한 침묵은 인류 역사를 진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과
정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파멸시키신다(6절). 앗수르의 세력
확장이 넓었던 것처럼 멸망도 심각하고 철저하게 진행된 것이다. 특히 저자는 산의 독
수리와 들짐승들이 겨우 내내 먹을만큼 앗수르 군대의 수가 많다고 함으로써 그 규모
를 짐작케 한다(37장).
이상에서 이사야는 구스 사절단에게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멸망시킬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대하 32 : 23).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 악인의 융성
을 저지하심으로(시 37 : 2) 의인들에게 참소망을 갖도록 하신다.
3. 여호와의 앞에 굴복할 구스의 미래에 대한 예언(18 : 7)
앞에서 앗수르의 파멸을 예언(3-6절)한 선지자는 여기서 구스인들이 결국 여호와께
드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다고 예언한다.
구스인의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끄는 18만 5천의 군사를 몰살시키심으로 앗수르의 위
험에서 다위의 집과 남쪽 나라들을 건져내셨기 때문이었다(37 : 36). 대하 32 : 20-23
에는 본 예언의 성취 기사가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후부터 히스기야가 열국의 눈에
존대(尊大)하게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분명 구스의 사절단도 그들 중에 끼어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와같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구스와 유다 주변의 나라들이(14 : 1, 2, 32 ; 16
: 1 ; 19 : 19-25 참고) 각각 예물을 가지고 여호와의 시온으로 올라오게 되는 것은 2
: 2-4에서 예언하고 있는 대로 열방이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 시온으로 그 진리의 도
를 배우기 위해 모여들 것에 대한 제1차적인 성취이기도 하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전을 위하여 왕들이 주께 예물을 드리리이다 갈밭의 들짐
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위하여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 아래 밟으소서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 방백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땅의 열방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셀라)"(시68 : 29-32) 등으로 노래했다.
결국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영화롭게 하시고 열방이 그 영광스런 은혜의
그늘 아래에서 쉼을 얻게 하실 것을 단편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시
온은 선지자의 눈에 기독교의 선교적 세계주의의 온상이었다. 이러한 유다의 영광은
신약 시대에서는 교회가 얻게 될 영광으로 연결된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세계 만민을 그 은혜 아래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을 보게 된다(습 3:9,10). 또한 포도나무의 베임에 비유된 앗수르의 패망 예언을 통해서 포도원 농부(요 15 : 1)이신 여호와께서 모든 불순종자, 곧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하거나 거스리는 자를 제하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고 어떤 세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바른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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