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모압이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유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선지자는 유다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권유한다. 조공은 복종을 표시하며, 동시에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수단이다.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도 새끼양 십 만의 털과 수양 십 만의 털을 보낸 전력이 있었던 만큼, 그 물품으로는 어린 양들이 적격이었을 것이다(왕하 3:4). 셀라에서부터...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 '셀라'는 모압 사람들이 도피하였던 에돔의 수도이다(왕하 14:7). 그러나 이 말이 고유 명사로서보다는 '바위'(* , 셀라)로 뒤덮인 모압의 주요 도시들을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쓰였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Oswalt, G.Rawlinson). 이 공물은 셀라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해 남부를 돌아 유대 광야를 거쳐 딸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이르도록 지시되었다.
=====16:2
모압의 여자들은...새 새끼 같을 것이라 - '모압의 여자들'(* , 베노트 모압)은 모압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킨다(애 1:15;겔 16:55-57 참조).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근심스레 방황하는 그들은 이미 '떠다니는 새'요,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들의 정서가 아르논 강에 속한 나루터에서 가장 진하게 투영된다. 본절은 모압의 처지가 어느 정도로 위태로운가를 여실히 묘사해주고 있다.
=====16:3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지자가 유다의 입장에서 모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유다의 피난민들을 모압인들이 친절히 대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모압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한다(Gesenius, Delitzsch, Gary, Oswalt).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 직역하면 '모략을 자져오며 공의를 실행하며'이다. 그 뜻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고 은혜롭게 대우해 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정오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 성경에서 종종 '한낮의 뜨거움'은 억압과 고난을 표상하는 말로 쓰인다(4:6;25:4). 그럴진대 '그늘'이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함의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의미는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명확히 해석되고 있다:'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16:4
나의 쫓겨난 자들로...그 피할 곳이 되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쫓겨난 모압인들로 너와 함께 머무르게 하라. 너는 약탈자의 얼굴로부터 그들을 숨기는 피난처가 되라'(NIV). 대저 토색하는 자가...멸절하였으며 - 그러나 이러한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착취자'(* , 하메츠)가 끝장나고 '폭압'(* , 쇼드)이 그쳤으며 '발로 짓밟는 자'(* , 로메스)가 그 땅에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동사의 과거 시제는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이 압제의 종언(終焉)은 다윗 장막에서 출현할 미래의 완전한 통치자(왕)의 출현과 밀접히 관련된다.
=====16: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신속히 행하리라 - 폭력과 착취로 능사를 삼는 지상 제국이 멸절한 자리에 그와 대조적인 한 왕국이 돋아남을 본다. 이 왕국은 다윗 장막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왕은 '인자함'(* , 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 , 에메트)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시 89:24,33 참조), 또한 '공평'(* , 미쉬파트)과 '의'(* , 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다(9:7;11:4). 이 모든 것들에서 메시야적 시대를 구별짓는 친숙한 특징들을 발견한다. 이 메시야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한다. 이는 모압이 시온의 그늘 아래서 피난처를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다. 2:1-4에 기록된 예언을 연상시킨다.
=====16:6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피난민들을 숨겨달라는 모압의 간청에 대한 시온의 부정적인 답변, 즉 거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엄밀히 살펴볼진대, 명백한 거부 의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3,4절에서 2인칭 복수로 되어 있는 점이 위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레이(Gray)의 제안을 따라 본문을 모압의 교만에 대한 독립된 서술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 선지자는 모압을 교만한 민족이라 단정짓는다. 짧은 본문에서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교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중언(重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는 25:11;렘 48:42을 참조하라. 이러한 교만은 다른 사람을 쉽게 경멸하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격분'(* , 에브라)과 자신을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자랑'(* , 바딤)으로 연결된다. '바딤'은 '재잘거리다', '쓸데없이 말하다'는 뜻의 '바다드'(* )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거짓말'로 번역하였다.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자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 으뜸가는 것이며(잠 6:16,17;8:13), 그 최후는 필경 멸망과 넘어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잠 16:18). 따라서 다음절에서 모압의 교만은 통곡으로 바뀌어진다.
=====16: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라는 말은 모압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운다는 뜻이다(Calvin). 이 울부짖음에서 제외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비탄의 크기가 클 것임을 뒤이어 나오는 '모두 다(* , 쿨로) 통곡한다'는 말이 보여준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양털과 더불어 모압의 대표적 작물의 하나이며 모압의 교만의 한 요인이기도 한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추어 모압의 황폐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15:1;왕하 3:25). '건포도 떡'(* , 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을 말하는데(삼하 6:19;아 2:5;호 3:1), 아마도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인 듯하다. 칼빈(Calvin), 미켈리스(Michaelis) 등은 이 말을 '토대', '주춧돌'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흠정역도 그렇게 해석함). 그러나 모압 덩쿨의 황폐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건포도 떡'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Alexander, Delitzsch). 본문과 병행하는 렘 48:31에서 '길하레셋 건포도 떡'은 '길헤레스 사람'(* , 안쉐)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16:8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 -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헤스본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촌락으로(민 32:38;수 13:19), 제롬(Jerome)의 수사학적 표현에 의하면,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되는 거리'쯤에 위치해 있다. 전에는 그 가지가...바다를 건넜더니 -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이는 물론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이다. '야셀'은 헤스본 북쪽 1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민 32:35;수 13:25).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 본문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십마의 포도주의 우수성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방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포도나무가 급작스레 황폐하게 된 원인을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Alexander, Oswalt). 전자의 해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에 도취되어 쓰러졌도다'로 번역한다(Cocceius, Vitringa, Lowth, De Wette, Delitzsch, Gray). 이들은 본문의 동사 '할람'(* )이 28:1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력한 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과 28:1 사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이점이 있으니, 즉 그곳에는 적에 의한 포도나무의 황폐를 암시하는 말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을 넘어뜨린 것도 포도나무가 아니라 포도주였던 것이다(Gesenius, Kissane). 언급된 '열국의 주권자들'은 아마도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Leupold).
=====16:9
내가...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본문의 주제는 선지자의 눈물이다. 선지자는 십마의 포도나무가 황폐케 된 것을 슬퍼하는 야셀의 울음에 자신의 눈물을 섞는다. 그의 눈물은 쉬임없이 흘러 헤스본과 엘르알레를 적신다. 이 눈물은 물론 모압의 참상에 대한 선지자의 인간적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Alexander). '엘르알레'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 '떠드는 소리'(* , 헤다드)는 원래 포도짜는 농부들이 포도즙을 밟을 때 내지르는 즐겁고 유쾌한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옥한 들판이 침략군의 장화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이다. 마땅히 흘러야 할 포도즙 대신에 선지자의 '눈물'(* , 데마)이, 마땅히 들려야 할 수확의 환호소리 대신에 포도원이 유린되는 소리가 들린다.
=====16:10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 롤린슨(G.Rawlinson)에 의하면, '틀'은 포도원 가까이에 있다. 이는 바위를 파서 만드는데,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르는 것을 아래에서 받도록 하였다. 포도를 따면 먼저 윗틀에 부어 발로 밟고 그것을 아랫틀로 내려오게 한다. 이때 밟는 사람은 대략 7명이며 맨발로 밟는다고 한다. 이들은 포도를 밟을 때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렘 25:30;48:33).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그치게 하는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것이다.
=====16:11
나의 마음이...그러하도다 - '마음'(* , 메에)과 '창자'(* , 케레브)는 몸의 내장, 심장, 창자를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선지자의 눈물은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발하며'(* , 예헤무)는 직역하면, '격렬하게 떨리며', '요동하며'이다. 모압에서 이루어질 가공할 심판을 생각할 때 선지자의 창자는 마치 하프 줄이 떨림같이 고통으로 뒤틀린다는 것이다. '길하레셋'은 '길헤레스'(렘 48:31)와 같은 곳이다.
=====16:12
그 산당에서...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 재난의 순간에 모압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모스 신이 있는 산당에 나아가 몸이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 키-니르아 키-닐르아)는 직역하면 '모습을 드러낼 때, 기진 맥진할 때'이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제몸을 학대하는 이방 종교의 예배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왕상 18:28 참조). '니르아 닐르아'(* )는 유음 현상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무효하리로다'(* , 로 유칼)는 '할 수 없을 것이다'이니, 즉 그들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그 응답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16:13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선지자가 제시했던 모압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말씀이다. 여기에 새로운 예언이 첨가되어 계시의 결론 부분을 형성한다.
=====16:14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 3년이라는 시기는 예언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이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그날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21:16). 이처럼 모압의 파멸을 확정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한치의 착오나 어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삼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듯하며, 다만 본절의 사건은 B.C.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 혹은 B.C.718년경의 사르곤 2세의 아라비아 북서쪽 부족민들에 대한 정벌 원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모압의 영화와...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 니클라). 즉, 그때에 모압의 많은 무리가 끊어져 무시할 만한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교만(* , 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 , 칼론)로 마감되다.
전장(15장)부터 시작된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은 본장에서도 계속된다. 특별히 저
자는 모압 족속들에게 다윗 왕권에 복종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이방인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장과 본장을 내용적으로 비교해 볼 때,
전장이 심판의 결과를 만가(애가) 형식으로 기술한 반면, 본장은 심판의 동기와 함께
아직 다 예언하지 않은 심판의 결과가 기술되어 있다. 또한 본장에서는 모압의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좀더 포괄적으로 메시야의 왕국과 메시야로 인
한 구원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결국 본장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회복(구원)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먼저 전반부에서는 모압의 심판이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기술되고, 중반부에서는 모압에게 임할 심판의 동기와 함께 전장에서 다 기술
되지 않고 남은 심판의 결과가 기술되며, 후반부에서는 모압의 심판 시기에 대한 여호
와의 말씀이 명시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정리해 보면, (1) 모압의 순종을
촉구함(1-5절), (2) 모압에 임할 자연적 재난(가뭄)(6-10절), (3) 모압의 심판 시기
(11-14절) 등이다. 이제 본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핵심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1. 모압의 순종을 촉구함(16 : 1-5)
심판받는 모압 백성을 향한 이사야 선지자의 조언으로 시작되는 본 단락은 하나님
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모압 백성에게 위기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권고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외교적 요구로
도 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윗 왕권의 계승자인 메시야에 대한 순종을 권고하는
것이다.
결국 모압 백성들을 유다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서 쉼을 얻게 하
고, 마침내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의 통치 가운데 인자와 신실한 공평과 의로 구속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시온(예루살렘)이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
게 보호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10 : 24-34) 모압인들에게 시온, 곧 하나님의 날개 안
으로 피난하도록 권고했다. 사실 모압의 희망은 오직 시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다. 시온은 온 세계 모든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다(2 : 2-4 참고). 시온만이 인류의 유
일한 희망이 될 수 있었기에 선지자는 모압 백성들로 하여금 공물(어린 양들)을 가지
고 유다로 올라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도록 간청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권고는 과거
에 모압 왕 메사가 새끼양 10만 마리의 털과 수양 10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친 일을 생각나게 한다(왕하 3 : 4). 선지자는 모압을 향해 아합의 사후(死後)에 중
단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조공을 다시 재개하라고 촉구함과 동시에 유다와의 우호적
인 관계 가운데 유다를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라고 말하는 것이
다.
이에 대해 모압 백성들은 유다의 조언을 구하며 자신들의 피난처가 되어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한다(3, 4절). 이 말은 모압의 사신들이 유다에게 말한 내용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5절은 전통적으로 메시야 예언 구절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유다의
날개 아래서 피난처를 갖게 된 모압 백성들은 유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유산을 나누
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모압이 다윗 왕권에 복종하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았게 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나올 메시야에 관
한 진리가 다른 이방 나라에게도 전해질 것을 예언하면서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있다(5절 ; 9 :6, 7 ; 11 : 1-10 ; 42 : 1; 암 9 : 11).
2. 모압에 임할 자연적 재난 : 가뭄(16 : 6-10)
앞 단락(1-5절)이 모압의 심판을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기술한 삽입 부분이라면,
본 단락은 전장(15절) 9절에 이어지는 모압의 심판에 대한 예언 단락이다. 먼저 본 단
락에서는 모압이 당하게 될 심판의 동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실 이전까지는 심판
의 동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오직 심판의 결과에 대해서만 기술했다. 그런
데 여기서 선지자는 모압의 심판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절과 병행구인 렘 48 : 42에서는 이 교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교만은 모든 강대국과 열방들의
심판의 동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인데(10 : 5-19 ; 14 : 12-14 ; 25 ; 11 참고)
본 단락에서는 모압의 교만이 '교만', '거만', '분노', '과장' 등으로 연이어 표현될
만큼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나나님은 모압을 심판하신다. 특히 자연 재해, 즉 극심한 가뭄을 통해
징계하신다. 선지자는 모압의 포도 농사를 대표적 예로 들어 심판의 비참함을 설명하
고 있다(7-10절). 왜냐하면 모압의 대표적인 산업과 자랑이 포도 농사였으며 또한 가
뭄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포도 농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
나님과 그 백성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기 전에는 그들은 최상품의 포도주와 건포도
를 풍부하게 생산하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멸망시키
시며 모든 권세와 영광을 철저히 탈취하시는 분이시다(잠 16 : 18 ; 단 5 : 20 ; 말 4
: 1 ; 약 4 : 6).
한편 본 단락에서는 특이한 언어적 유희가 나타나는데, 9절 마지막 앵의 '헤다드'
(* ,shouting)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나 모압에서 포도즙
틀을 밟던 자들이 유쾌한 흥분에 들떠서 발하던 '기쁨과 풍요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소리를 앗수르 군대가 모압 땅을 유린하면서 발하는 외침으로 표현한다. 그
럼으로써 기쁨의 외침이 완전히 사라지고 파멸의 신음소리만이 가득 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 모압의 심판 시기(16 :11-14)
앞에서 저자는 모압의 심판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모압의 심판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로서 모압에 선고된 파멸이 성취될 시기
를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는 3년 내에 모압 전
역에 심판이 임하여 그 모든 영화를 다 빼앗기고 능욕당하며, 매우 적은 수의 사람만
이 그 심판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모압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의지하여 여호와의 심판을 피해 보고자 노력한다. 산당에 올라가 기
도하며 피곤할 때까지 봉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봉사와 기도가 효험이 있을 리는 만무
하다. 여호와 외의 모든 신은 우상이요(출 30 : 3, 4), 모압에 임한 심판은 역사의 주
관자요 전능자이신 여호와께서 정하시고 경영하신 것이기 때믄이다(14 : 24, 27). 모
압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으며 정해진 시기에 정확히 찾아올 것이
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모압은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임으로써 멸망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 : 5b)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 땅 치리자에게 어린 양들을 드리되 - 현재의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모압이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유다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서 선지자는 유다 왕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권유한다. 조공은 복종을 표시하며, 동시에 보호와 도움을 요청하는 간구의 수단이다. 모압은 양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도 새끼양 십 만의 털과 수양 십 만의 털을 보낸 전력이 있었던 만큼, 그 물품으로는 어린 양들이 적격이었을 것이다(왕하 3:4). 셀라에서부터...딸 시온 산으로 보낼지니라 - '셀라'는 모압 사람들이 도피하였던 에돔의 수도이다(왕하 14:7). 그러나 이 말이 고유 명사로서보다는 '바위'(* , 셀라)로 뒤덮인 모압의 주요 도시들을 지칭하는 집합 명사로 쓰였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Oswalt, G.Rawlinson). 이 공물은 셀라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해 남부를 돌아 유대 광야를 거쳐 딸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이르도록 지시되었다.
=====16:2
모압의 여자들은...새 새끼 같을 것이라 - '모압의 여자들'(* , 베노트 모압)은 모압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가리킨다(애 1:15;겔 16:55-57 참조). 고향을 떠나 이곳 저곳을 근심스레 방황하는 그들은 이미 '떠다니는 새'요, '보금자리에서 흩어진 새'나 다름없다. 이러한 그들의 정서가 아르논 강에 속한 나루터에서 가장 진하게 투영된다. 본절은 모압의 처지가 어느 정도로 위태로운가를 여실히 묘사해주고 있다.
=====16:3
본문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지자가 유다의 입장에서 모압에게 말하고 있다고 본다. 즉, 유다의 피난민들을 모압인들이 친절히 대해 주도록 부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모압의 멸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을 유다에 대한 모압 사절들의 간청으로 해석한다(Gesenius, Delitzsch, Gary, Oswalt).
모략을 베풀며 공의로 판결하며 - 직역하면 '모략을 자져오며 공의를 실행하며'이다. 그 뜻은 어려운 지경에 빠진 모압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고 은혜롭게 대우해 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피난민들을 보호해 달라는 것이다.
정오 때에 밤같이 그늘을 짓고 - 성경에서 종종 '한낮의 뜨거움'은 억압과 고난을 표상하는 말로 쓰인다(4:6;25:4). 그럴진대 '그늘'이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을 함의함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그 의미는 뒤따라 나오는 구절에서 명확히 해석되고 있다:'쫓겨난 자를 숨기며 도망한 자를 발각시키지 말며.'
=====16:4
나의 쫓겨난 자들로...그 피할 곳이 되라 - 본문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쫓겨난 모압인들로 너와 함께 머무르게 하라. 너는 약탈자의 얼굴로부터 그들을 숨기는 피난처가 되라'(NIV). 대저 토색하는 자가...멸절하였으며 - 그러나 이러한 피난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착취자'(* , 하메츠)가 끝장나고 '폭압'(* , 쇼드)이 그쳤으며 '발로 짓밟는 자'(* , 로메스)가 그 땅에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동사의 과거 시제는 미래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다. 이 압제의 종언(終焉)은 다윗 장막에서 출현할 미래의 완전한 통치자(왕)의 출현과 밀접히 관련된다.
=====16:5
다윗의 장막에 왕위는...신속히 행하리라 - 폭력과 착취로 능사를 삼는 지상 제국이 멸절한 자리에 그와 대조적인 한 왕국이 돋아남을 본다. 이 왕국은 다윗 장막에서 나온 한 왕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왕은 '인자함'(* , 헤세드)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충실함'(* , 에메트)으로 옳고 그름을 판결할 것이며(시 89:24,33 참조), 또한 '공평'(* , 미쉬파트)과 '의'(* , 체데크)를 추구하고 실행할 것이다(9:7;11:4). 이 모든 것들에서 메시야적 시대를 구별짓는 친숙한 특징들을 발견한다. 이 메시야적 소망에 모압도 열방의 하나로서 참여한다. 이는 모압이 시온의 그늘 아래서 피난처를 삼았다는 사실로 말미암는 것이다. 2:1-4에 기록된 예언을 연상시킨다.
=====16:6
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이 피난민들을 숨겨달라는 모압의 간청에 대한 시온의 부정적인 답변, 즉 거절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엄밀히 살펴볼진대, 명백한 거부 의사를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3,4절에서 2인칭 복수로 되어 있는 점이 위의 주장을 수용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그레이(Gray)의 제안을 따라 본문을 모압의 교만에 대한 독립된 서술로 간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 선지자는 모압을 교만한 민족이라 단정짓는다. 짧은 본문에서 동일한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교만'이란 낱말이 4번이나 중언(重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는 25:11;렘 48:42을 참조하라. 이러한 교만은 다른 사람을 쉽게 경멸하며 사소한 것도 참지 못하는 '격분'(* , 에브라)과 자신을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자랑'(* , 바딤)으로 연결된다. '바딤'은 '재잘거리다', '쓸데없이 말하다'는 뜻의 '바다드'(* ) 동사에서 파생한 말이다. 흠정역은 이 말을 '거짓말'로 번역하였다. 허영과 교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자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거짓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교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 중 으뜸가는 것이며(잠 6:16,17;8:13), 그 최후는 필경 멸망과 넘어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잠 16:18). 따라서 다음절에서 모압의 교만은 통곡으로 바뀌어진다.
=====16:7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라는 말은 모압 사람들이 서로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운다는 뜻이다(Calvin). 이 울부짖음에서 제외되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비탄의 크기가 클 것임을 뒤이어 나오는 '모두 다(* , 쿨로) 통곡한다'는 말이 보여준다. 이하에서 선지자는 양털과 더불어 모압의 대표적 작물의 하나이며 모압의 교만의 한 요인이기도 한 포도나무에 초점을 맞추어 모압의 황폐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해 나간다.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 '길하레셋'은 '길 모압'과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15:1;왕하 3:25). '건포도 떡'(* , 아쉬쉐)은 건포도를 떡의 모양으로 눌러 만든 것을 말하는데(삼하 6:19;아 2:5;호 3:1), 아마도 길하레셋의 주요 교역 물품인 듯하다. 칼빈(Calvin), 미켈리스(Michaelis) 등은 이 말을 '토대', '주춧돌'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흠정역도 그렇게 해석함). 그러나 모압 덩쿨의 황폐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문맥에 비추어 볼 때 '건포도 떡'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Alexander, Delitzsch). 본문과 병행하는 렘 48:31에서 '길하레셋 건포도 떡'은 '길헤레스 사람'(* , 안쉐)으로 변형되어 나온다.
=====16:8
헤스본의 밭과 십마의 포도나무 - 헤스본과 십마는 모압의 유명한 포도 산지들이다. 특히 십마의 포도는 그 맛이 달고 강렬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헤스본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십마는 르우벤 지파에 속했던 촌락으로(민 32:38;수 13:19), 제롬(Jerome)의 수사학적 표현에 의하면, '헤스본에서 걸어서 500보 되는 거리'쯤에 위치해 있다. 전에는 그 가지가...바다를 건넜더니 - 한창 때 모압의 포도 농사는 북쪽으로 야셀에 미치고 동쪽으로는 시리아 사막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사해 근방까지 펼쳐졌었다. 이는 물론 선지자의 과장된 표현이다. '야셀'은 헤스본 북쪽 15마일 되는 거리에 위치한다(민 32:35;수 13:25).
열국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를 꺾었도다 - 본문은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십마의 포도주의 우수성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처럼 방대한 지역에서 번성하던 포도나무가 급작스레 황폐하게 된 원인을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Alexander, Oswalt). 전자의 해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본문을 '열국의 주권자들이 그 좋은 가지에 도취되어 쓰러졌도다'로 번역한다(Cocceius, Vitringa, Lowth, De Wette, Delitzsch, Gray). 이들은 본문의 동사 '할람'(* )이 28:1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력한 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본문과 28:1 사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이점이 있으니, 즉 그곳에는 적에 의한 포도나무의 황폐를 암시하는 말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을 넘어뜨린 것도 포도나무가 아니라 포도주였던 것이다(Gesenius, Kissane). 언급된 '열국의 주권자들'은 아마도 여러 민족 단위의 사령관들로 구성된 앗수르 군대를 가리킬 것이다(Leupold).
=====16:9
내가...나의 눈물로 너를 적시리니 - 본문의 주제는 선지자의 눈물이다. 선지자는 십마의 포도나무가 황폐케 된 것을 슬퍼하는 야셀의 울음에 자신의 눈물을 섞는다. 그의 눈물은 쉬임없이 흘러 헤스본과 엘르알레를 적신다. 이 눈물은 물론 모압의 참상에 대한 선지자의 인간적 동정심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Alexander). '엘르알레'에 대하여는 15:4 주석을 참조하라.
너의 농작물에 떠드는 소리가 일어남이니라 - '떠드는 소리'(* , 헤다드)는 원래 포도짜는 농부들이 포도즙을 밟을 때 내지르는 즐겁고 유쾌한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비옥한 들판이 침략군의 장화에 의해 짓밟히는 소리이다. 마땅히 흘러야 할 포도즙 대신에 선지자의 '눈물'(* , 데마)이, 마땅히 들려야 할 수확의 환호소리 대신에 포도원이 유린되는 소리가 들린다.
=====16:10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 롤린슨(G.Rawlinson)에 의하면, '틀'은 포도원 가까이에 있다. 이는 바위를 파서 만드는데,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위에서 흐르는 것을 아래에서 받도록 하였다. 포도를 따면 먼저 윗틀에 부어 발로 밟고 그것을 아랫틀로 내려오게 한다. 이때 밟는 사람은 대략 7명이며 맨발로 밟는다고 한다. 이들은 포도를 밟을 때 '포도의 노래'를 불렀다(렘 25:30;48:33).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 포도를 수확할 때 부르는 기쁨의 노래를 그치게 하는 이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에 불과한 것이다.
=====16:11
나의 마음이...그러하도다 - '마음'(* , 메에)과 '창자'(* , 케레브)는 몸의 내장, 심장, 창자를 가리킨다. 이로 보건대, 선지자의 눈물은 그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이 분명하다. '소리를 발하며'(* , 예헤무)는 직역하면, '격렬하게 떨리며', '요동하며'이다. 모압에서 이루어질 가공할 심판을 생각할 때 선지자의 창자는 마치 하프 줄이 떨림같이 고통으로 뒤틀린다는 것이다. '길하레셋'은 '길헤레스'(렘 48:31)와 같은 곳이다.
=====16:12
그 산당에서...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로다 - 재난의 순간에 모압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모스 신이 있는 산당에 나아가 몸이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 키-니르아 키-닐르아)는 직역하면 '모습을 드러낼 때, 기진 맥진할 때'이다. 이는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하여 제몸을 학대하는 이방 종교의 예배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왕상 18:28 참조). '니르아 닐르아'(* )는 유음 현상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의 모든 노력은 결국 헛된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무효하리로다'(* , 로 유칼)는 '할 수 없을 것이다'이니, 즉 그들이 성전에서 큰소리로 부르짖을지라도 그 응답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16:13
전에 모압을 들어 하신 말씀이어니와 - 선지자가 제시했던 모압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 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말씀이다. 여기에 새로운 예언이 첨가되어 계시의 결론 부분을 형성한다.
=====16:14
품군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 3년이라는 시기는 예언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이 시간은 결코 늦춰지거나 연기될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것이 '품군의 정한 해' 곧 고용 기간이 끝나 품꾼들이 정한 삯을 받기로 되어 있는 그날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품꾼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21:16). 이처럼 모압의 파멸을 확정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한치의 착오나 어김도 없을 것이다. 한편 이 '삼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듯하며, 다만 본절의 사건은 B.C.734년의 디글랏 빌레셀의 침공 사건 혹은 B.C.718년경의 사르곤 2세의 아라비아 북서쪽 부족민들에 대한 정벌 원정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모압의 영화와...소용이 없이 되리라 하시도다 - 3년이 지나기 전에 모압의 영화는 '능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 , 니클라). 즉, 그때에 모압의 많은 무리가 끊어져 무시할 만한 극소수만 남게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압의 운명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교만(* , 게온)으로 시작해서 수치(* , 칼론)로 마감되다.
전장(15장)부터 시작된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은 본장에서도 계속된다. 특별히 저
자는 모압 족속들에게 다윗 왕권에 복종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이방인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장과 본장을 내용적으로 비교해 볼 때,
전장이 심판의 결과를 만가(애가) 형식으로 기술한 반면, 본장은 심판의 동기와 함께
아직 다 예언하지 않은 심판의 결과가 기술되어 있다. 또한 본장에서는 모압의 심판이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좀더 포괄적으로 메시야의 왕국과 메시야로 인
한 구원과의 연관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 결국 본장은 이미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회복(구원)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먼저 전반부에서는 모압의 심판이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기술되고, 중반부에서는 모압에게 임할 심판의 동기와 함께 전장에서 다 기술
되지 않고 남은 심판의 결과가 기술되며, 후반부에서는 모압의 심판 시기에 대한 여호
와의 말씀이 명시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정리해 보면, (1) 모압의 순종을
촉구함(1-5절), (2) 모압에 임할 자연적 재난(가뭄)(6-10절), (3) 모압의 심판 시기
(11-14절) 등이다. 이제 본장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핵심 사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1. 모압의 순종을 촉구함(16 : 1-5)
심판받는 모압 백성을 향한 이사야 선지자의 조언으로 시작되는 본 단락은 하나님
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멸망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모압 백성에게 위기 상황을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는 권고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외교적 요구로
도 볼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윗 왕권의 계승자인 메시야에 대한 순종을 권고하는
것이다.
결국 모압 백성들을 유다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서 쉼을 얻게 하
고, 마침내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의 통치 가운데 인자와 신실한 공평과 의로 구속을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사야는 시온(예루살렘)이 앗수르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
게 보호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10 : 24-34) 모압인들에게 시온, 곧 하나님의 날개 안
으로 피난하도록 권고했다. 사실 모압의 희망은 오직 시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다. 시온은 온 세계 모든 민족의 유일한 희망이다(2 : 2-4 참고). 시온만이 인류의 유
일한 희망이 될 수 있었기에 선지자는 모압 백성들로 하여금 공물(어린 양들)을 가지
고 유다로 올라가 자신들을 보호해 주도록 간청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권고는 과거
에 모압 왕 메사가 새끼양 10만 마리의 털과 수양 10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친 일을 생각나게 한다(왕하 3 : 4). 선지자는 모압을 향해 아합의 사후(死後)에 중
단되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조공을 다시 재개하라고 촉구함과 동시에 유다와의 우호적
인 관계 가운데 유다를 보호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라고 말하는 것이
다.
이에 대해 모압 백성들은 유다의 조언을 구하며 자신들의 피난처가 되어 보호해 줄
것을 간청한다(3, 4절). 이 말은 모압의 사신들이 유다에게 말한 내용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5절은 전통적으로 메시야 예언 구절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유다의
날개 아래서 피난처를 갖게 된 모압 백성들은 유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유산을 나누
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모압이 다윗 왕권에 복종하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할 수 았게 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저자는 이스라엘에게 나올 메시야에 관
한 진리가 다른 이방 나라에게도 전해질 것을 예언하면서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있다(5절 ; 9 :6, 7 ; 11 : 1-10 ; 42 : 1; 암 9 : 11).
2. 모압에 임할 자연적 재난 : 가뭄(16 : 6-10)
앞 단락(1-5절)이 모압의 심판을 유다와의 관계 속에서 기술한 삽입 부분이라면,
본 단락은 전장(15절) 9절에 이어지는 모압의 심판에 대한 예언 단락이다. 먼저 본 단
락에서는 모압이 당하게 될 심판의 동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실 이전까지는 심판
의 동기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오직 심판의 결과에 대해서만 기술했다. 그런
데 여기서 선지자는 모압의 심판의 동기가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본절과 병행구인 렘 48 : 42에서는 이 교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교만은 모든 강대국과 열방들의
심판의 동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인데(10 : 5-19 ; 14 : 12-14 ; 25 ; 11 참고)
본 단락에서는 모압의 교만이 '교만', '거만', '분노', '과장' 등으로 연이어 표현될
만큼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하나나님은 모압을 심판하신다. 특히 자연 재해, 즉 극심한 가뭄을 통해
징계하신다. 선지자는 모압의 포도 농사를 대표적 예로 들어 심판의 비참함을 설명하
고 있다(7-10절). 왜냐하면 모압의 대표적인 산업과 자랑이 포도 농사였으며 또한 가
뭄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포도 농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
나님과 그 백성 앞에서 교만한 마음을 품기 전에는 그들은 최상품의 포도주와 건포도
를 풍부하게 생산하여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탄식과 슬픔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멸망시키
시며 모든 권세와 영광을 철저히 탈취하시는 분이시다(잠 16 : 18 ; 단 5 : 20 ; 말 4
: 1 ; 약 4 : 6).
한편 본 단락에서는 특이한 언어적 유희가 나타나는데, 9절 마지막 앵의 '헤다드'
(* ,shouting)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나 모압에서 포도즙
틀을 밟던 자들이 유쾌한 흥분에 들떠서 발하던 '기쁨과 풍요의 외침'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소리를 앗수르 군대가 모압 땅을 유린하면서 발하는 외침으로 표현한다. 그
럼으로써 기쁨의 외침이 완전히 사라지고 파멸의 신음소리만이 가득 찰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 모압의 심판 시기(16 :11-14)
앞에서 저자는 모압의 심판의 원인과 과정과 결과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이제 본
단락에서는 모압의 심판에 대한 최종적인 판결로서 모압에 선고된 파멸이 성취될 시기
를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여호와께서는 3년 내에 모압 전
역에 심판이 임하여 그 모든 영화를 다 빼앗기고 능욕당하며, 매우 적은 수의 사람만
이 그 심판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모압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의지하여 여호와의 심판을 피해 보고자 노력한다. 산당에 올라가 기
도하며 피곤할 때까지 봉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봉사와 기도가 효험이 있을 리는 만무
하다. 여호와 외의 모든 신은 우상이요(출 30 : 3, 4), 모압에 임한 심판은 역사의 주
관자요 전능자이신 여호와께서 정하시고 경영하신 것이기 때믄이다(14 : 24, 27). 모
압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으며 정해진 시기에 정확히 찾아올 것이
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장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모압은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임으로써 멸망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 : 5b)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생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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