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 - 아하스 시대의 예언이 마감되고 이어서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 선고가 뒤따른다(13-23장). 글의 구성은 다소 의도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7-12장에 예언된 메시야의 통치 곧 전우주적인 평화의 왕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적대적인 지상 왕국들이 평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40:3-5;마 3:3). 열국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바벨론이 제일 먼저 거론된다. 이는 그 당시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던 바벨론이 머잖은 장래에 앗수르를 대신하는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을 선지자가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39장).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본장에서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바벨론의 역사적 측면보다는 스미드(G.Smith)가 명기한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적이요 암흑의 요새'(창 11:9;계 14:8;17,18장)로 취급되어온 바벨론의 영적인 특성에 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벨론은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대변자이다. 바벨론이 망한다면 바로 그 내적인 교만 때문이다(12-17절). 유다와의 관계는 여기서 고려되고 있지 않다.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 )는 문자적으로는 '무거운 짐'인데, 이는 환난의 말씀이나 파멸 선고같이 전달하기 부담스러운 메시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언서에 자주 나온다(14:28;15:1;17:1;19:1;21:1,11,13;22:1;23:1;30:6;나 1:1;슥 9:1;12:1;말 1:1).
=====13:2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 군대가 소집된다. 이 장면은 연속되는 세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나무없는 민둥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깃발이 세워진다. 그 다음 큰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서둘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군대를 소집하는 이가 누구인지, 또 소집된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는다(그것들은 나중에 점차적으로 드러남).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였으며, 그 운명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자산'의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슈페'(* )는 '긁다, 벗기다'는 뜻의 동사 '솨파'(* )의 나팔 분사형으로, '벌거벗은', '벗겨진'을 의미한다. '기호'(* , 네스)에 대하여는 11:12 주석을 참조하라.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 군대를 소집한 목적은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도성을 정복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존귀한 자'(* , 네디빔)는 아마도 바벨론의 군주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시 107:40;113:8).
=====13:3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 강조형으로 쓰인 '내가'(* , 아니)란 말에서 군대를 소집한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드러난다. 그는 바벨론과의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용사들을 선발하고 또 준비하신다. 즉 '성별하신다'(렘 22:7;51:27;욜 3:9;습 1:7).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 용사들을 성별한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하는 막대기로 부름받았다. 앗수르를 불러 유다를 치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동일한 방법으로 용사들을 불러 바벨론을 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삼으시는 것이다(10:5).
=====13:4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 산에서 들리는 이 소리는 많은 사람의 소리, 곧 '열국 민족들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이다. 침략군들은 잡다한 산악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렘 51:27).
=====13:5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 '온 땅'(* , 콜-하아레츠)은 바벨론 제국을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현이다(Gray). NIV는 이를 '온 나라'(the whole country)라고 번역했다.
=====13:6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 욜 1:15 참조. 원문대로 읽으면 '전능자에게서(* , 미솨다) 멸망같이(* , 케쇼드)임할 것이다'이다. '멸망'(* , 쇼드)과 '전능자'(* , 솨다)는 모두 '강하다', '황폐시키다'는 뜻의 '솨다드'(* )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언어 유희의 일종이다.
=====13:7,8
심판날에 바벨론 주민들이 겪을 공포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1)'모든 손이 피곤하며':저항 불능의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2)'마음이 녹을 것이라':싸울 용기마저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3)'놀라며':직역하면 '전율하며'(* , 니브할루)이다. (4)'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臨産)한 여자같이 고통하며':'해산의 고통'은 선지자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다. '괴로움'(* , 치림)과 '슬픔'(* , 하발림)은 모두 임산한 여자의 고통과 관련된 말들이다. (5)'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불꽃 같은 얼굴'은 얼굴에 피가 솟구침을 비유한 말이다. 공포와 경악의 극한을 보여준다.
=====13:9
땅을 황무케 하며...죄인을 멸하리니 - '땅'(* , 하아레츠)은 전세계를 가리킨다(Ewald, Umbreit, Delitzsch). 전세계적 심판을 통한 죄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노아 홍수와 유사하다(창 6:13).
=====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 여호와의 날은 어두움의 날이다(겔 32:7;욜 2:10;3:15;암 5:18;슥 14:6,7). 그날에 하늘의 별들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의 빛남이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증거한다면(창 1:14-19;마 5:45), 역으로 어두움의 지배는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어두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갈보리 언덕에서 1번 있었고(마 27:45), 최후의 심판 때에 다시 있을 것이다(마 24:29).
=====13:11
교만한 자의 오만...강포한 자의 거만 - 본문은 '그중에서 죄인을 멸한다'는 9절 말씀의 확대, 부연이다. 세상은 그 죄로 인해 멸망당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다. 그 모든 죄 가운데 선지자는 교만의 죄를 으뜸으로 꼽는다. '교만한 자', '강포한 자'는 사악한 세상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특히 '강포한 자'로 번역된 '아리침'(* )은 단순히 군주를 뜻하는 '네디빔'(* -2절)과는 달리 무섭고 잔인한 폭군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바벨론의 주요한 특성을 나타내는 전용어로 에스겔서에 자주 등장한다(겔 30:10,11;31:12;32:12).
=====13:12
사람을...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 직역하면 '내가 사람(* , 에노쉬)을 정금보다 희귀하게 하며, 사람(* , 아담)을 오빌의 금보다'이다. 여기서 '에노쉬'와 '아담'은 보통 사람과 고귀한 사람을 구별하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동의어로 쓰였다(Alexander).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될 것을 말한다. 선지자는 이 희귀함을 금에 비교한다. 금은 값비싼 만큼 그 수가 많지 않다. 더욱이 불순물이 혼합되지 않은 정금일수록 그 수효는 훨씬 더 줄어든다. '오빌'의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오는 금은 특별히 좋은 것으로 인정된 듯하다(왕상 9:28;10:11;22:48;대상 29:4;대하 8:18;9:10;욥 22:24;28:16;시 45:9).
=====13:13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떠나게 하리니 - 하늘이 떨리며 땅이 흔들림은 전세계적 격변이 일어날 최후 심판의 날을 연상시킨다(24:18;욜 2:10;3:16;학 2:6,7;21,22등). 선지자에게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는 날은 여호와의 날의 한 모형이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완성은 세상이 낡은 허물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로움을 덧입게 될(엡 4:24) 세상 끝날에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13:14
그들이...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 제국의 전성기에 바벨론은 각처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간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제국의 멸망에 직면해서 거대한 군중들이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 나갈 것이다. 선지자는 이들의 모습을 위험에 처해서 혼비 백산하여 사방으로 날뛰는 겁많은 노루와 한번 흩어지면 다시는 모일줄 모르는 양들에 비유한다.
=====13:15
만나는 자는...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 그들이 이처럼 사력을 다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읍에 남아 있다가 붙잡히는 날에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여기서 길에서 발견당한 사람과 집에 숨어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로우스(Lowth)는 혼자 있다가 붙잡힌 사람과 무리와 함께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본다. 전자가 더 합당하다.
=====13:16
어린아이들은...그 집은...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 침략군의 만행에서 제외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지자의 묘사는 소름끼친다.
심지어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마저 내던져져 유리 구슬처럼 부수어 뜨림을 당한다 - 그것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호 13:16;나 3:10). '메어침을 입는다'로 번역된 '라타쉬'(* )는 '박살낸다', '깨뜨린다', '산산조각낸다'는 뜻이다(18절). 집이 약탈당하고 아내가 욕을 보는 재앙에 대하여는 신 28:30;렘 3:2;애 5:11;슥 14:2 참조하라.
=====13:17
보라...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 여기 처음으로 약탈자들의 정체가 제시된다. 그들은 메대 사람들이다.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 이들은 오랫동안 앗수르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특히 사르곤 왕 때에는 부족의 일부가 점령당하여 일단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대의 여러 마을에 강제로 이주되기도 하였다(왕하 17:6).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만 해도 메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본래 호전적인 그들은 B.C. 714년경에 독립된 나라를 형성하였으며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하기도 하였다(B.C.612년). B.C. 539년, 메대-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점령한 사실에 기초하여 일군의 학자들은 본문이 그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 후대의 작가가 본문을 작성할 때, 바벨론 점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바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바사 대신 메대만을 언급한것은 아마도 그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포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민족들로 알려졌었기 때문일 것이다(Oswalt, G.W.Grogan). 은을...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 이 말은 그들이 금과 은의 가치를 모르는 미개한 야만인들임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만 그들의 목적이 바벨론 정복에 있음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13:18
활로 - 메대 사람들은 활을 잘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22:6;렘 49:35). 청년을...태의 열매를...아이를 가석(可惜)히 보지 아니하리라 - 이는 모두 메대인들의 잔인성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표현이다.
=====13:19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 - 직역하면 '갈대아 사람들의 자랑의 영광'이다. '노리개'로 번역된 '티프에레트'(* )는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의 '파아르'(*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장식', '광채', '영광'을 의미한다. '갈대아 사람'(* , 카스딤)은 바벨론 성읍 최남단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로 초기 바벨론을 구성한 주요한 부족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B.C.
722년경에 히브리어로 므로닥 - 발라단이라 이름하는 그들의 지도자 마르둑 - 아플라 - 일디나(Marduk - Apla - iddina)를 앞세워 바벨론을 정복했으며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약 1세기 후에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 신바벨론 제국이 건설되어 그 지배력을 온 세계에 떨치게 되었다(J.Watts). 부족민, 즉 갈대아 사람들에게 세계 제일의 도시 바벨론은 진실로 그들의 자랑이며 영광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형벌로 인한 완전한 파멸의 보기(모범)로 쓰이고 있다(1:9).
=====13:20
아라비아 사람도...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 아라비아 사람들(아라비,* )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떠도는 유랑민족으로 목축과 수렵에 능하였다. 그들은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거주하였기 때문에 헬라인들로부터 '천막 생활자들'(* , 스케네타이)이라는 말을 들었다(Calvin). 그런데 이들마저도 그곳에 장막 치기를 거부한다는 말은 바벨론 땅이 사람의 주거지로서만이 아니라 잠시 유숙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지 못할 만큼 철저히 황폐해질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Lange).
=====13: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곧 저주받아 쓸모없게 된 땅을 '들짐승들'(* , 치임)과 '부르짖는 짐승'(* , 오힘), 그리고 '타조'(* , 베노트 야아나)와 '들양'(* , 세이림)이 차지한다. '치임'과 '오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하이에나, 족제비등과 같이 광야에서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타조'는 문자적으로는 '타조의 딸들'인데, 이는 고대 근동에서 타조에 대해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세이림'은 본래 '털이 많은 숫염소'를 뜻하는데(레 17:7;대하 11:15에서 숫염소의 형상을 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됨),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보급된 민간 신앙에서 이는 염소의 모양을 하고 사막에 자주 출몰하는 귀신(34:14)으로 여겨졌다고 한다(Alexander).
=====13:22
그 궁성에는 시랑이...들 개가 울 것이라 - '시랑'(* , 이임)은 그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울부짖는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리', 혹은 '재칼'등으로 번역된다. '들 개'(* , 타님)는 '하이에나'(RSV) 또는 '도마뱀'(KJV)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런 동물들이 '궁성'에 거주한다. '궁성'(* , 알므노트)은 '과부살이'를 뜻하는 '알마노트'(* )와 모음 하나만 다르다. 이는 한때 호사스러웠던 궁성이 이제는 외로운 과부살이처럼 버려진 곳이 될 것을 빗대어 암시한 것이다.
앞 부분(1-12장)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그런데 본장부터 23장까지는 대상을 주변부에 위치한 열방에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전환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를 주관하시는 통
치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7-12장에 예언된 일련의 메시야를 통한 구원 약속이
열방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욜 2:28-32; 욘 3:5-10;4:11).
이처럼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본장은 특별히 바벧론에 대해
언급한다. 왜냐하면 바벧론은 다음 세기에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
로로 잡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벧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패역한 유다를
징계할 것이지만 결국 메대 사람을 통하여 멸망당하게 된다고 경계한다. 이러한 본 단
락은 (1) 심판을 위해 용사를 모집하시는 하나님(1-5절), (2) 심판의 내용에 대한 서
술(6-16절), (3) 심판의 결과에 대한 서술(17-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본
장과 내용적으로 유사한 성경은 21장;47장;렘 50:1-51:58 등인데, 이중에서 가장 후대
에 속하는 예레미야서에서는 좀더 발전된 형태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비평학자들은 예언 단락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저작
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17절에서 바벧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
로 언급된 메대는 아직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으며(메대는 바벧론의 멸망, B.C.
539년경, 직전에야 등장한다), 둘째, 19절에서 바벧론이 '열국의 영광'으로 지칭되었
으나, 이사야 당시 세계의 영광은 앗수르(니느웨)였고 바벧론은 약소국에 불과했기 때
문(바벧론은 니느웨의 멸망, B.C. 612년경, 후에야 비로소 세계의 영광으로 등장한다)
이라고 한다. 즉 비평학자들의 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적어도 100-150년 후의 일을
예언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에 이 예언 단락의 저자로 B.C. 6세기 이후에
활동한 다른 인물(제2의 이사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선지자의 역할에 대한 비성경적인 이해와 '선지자는 자신
이 활동하는 당대의 사건에 대해서만 예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서 생겨난
것이다. 사실 선지자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당대의 사건에 대한 영적 해석도 있지
만, 대개가 미래의 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주 먼 장래에 될 일까
지도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리시는 분이시다(41:21-29). 그러므로 본 예언 단락은 이사
야 선지자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먼 장래에 있을, 바벧론을 비롯한 세계
열국의 심판에 대한 일련의 메시지를 듣고 기록한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본장의 정확한 기록 시기를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아하스 왕이 죽은 해로
추정된다(14:28). 그러나 본 예언들은 각각 독립된 표(13:1;14:28;15:1;17:1;19:1;21
:1, 11, 13;22:1;23:1)하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모두 단번에 선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
다. 그러면 이제 본장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장에서부터 23장까지의 새로운 예언 단락에는 바벧론(Babylon), 앗수르
(Assyria), 블레셋(Philistia), 모압(Moab), 다메섹(Damascus), 구스(Ethiopia), 애굽
(Egypt), 두마(에돔, Edom), 아라비아(Arabia), 두로(Tyre) 등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
들에 대한 심판 선언 및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주인이요, 통치자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의 대적 세력들의 멸망을 통해 언약 백성의 궁극적인 구원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렘 51:17-20).
(2)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들의 죄를 징계하여 심판하신 후 자신을 알게 하시고, 구원 잔치에 초청하신다. 즉 열
방에 대한 심판은 변형된 구원의 초청이다(14:1, 2, 32;16:1-5;17:7;18:7;19:18-25;25
:6-9;49:22 이하;56:6-8;61:4-9). 하나님은 각 나라와 민족의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구
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시작부터 하나님을 대적한 바벧론은
(창 11:1-9) B.C. 1124년경에 국가를 재건하였으나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다가 앗수르
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독립을 쟁취, 세력을 점점 확장시켰다. 그후 바벧론은 앗
수르의 멸망후(B.C. 612년경) 날로 강대하여져서 B.C 568년경에는 멀리 애굽까지도 정
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포학스럽고 교만했으며, 남왕국 유다를 B.C.
586년경에 멸망시키고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24, 25장).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B.C. 539년경).
이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용사를 소집하시는 하나님(13:1-5)
본문은 바벧론에 대한 심판의 내용(6-16절)과 결과(17-22절)를 선포하기 이전에 여
호와의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바벧론은 하
나님에 의해 소집된 용사들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
은 (1) 여호와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한 군대의 소집을 언급하는 전반부(1-3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드러난 영적 교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전쟁
의 실질적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자신의 초자연적 권능을 사용하여 바벧론
을 반드시 초토화시킬 것이다. 아무리 강대하고 능력이 뛰어난 국가라고 할지라도 하
나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을 수행함에 있어 메대
와 바사와 같은 이방 국가들도 사용하신다(3절) :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선택된
국가로서 당시 최강의 국력을 가지고 있는 바벧론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는 하나님의 구별된 자들(렘 22:7;51:27)이 도처에 존재함을 깨닫고 더욱 주의를 기울
여야 할 것이다.
2. 심판의 내용에 대한 서술(13:6-16)
앞으로 바벧론의 심판을 위해 모집하신 하나님은 이제 메대와 바사를 통하여 이루
어질 '여호와의 날' 을 공포하고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바벧론 사람들은 교
만하고 포악함으로 인하여 무서운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
는 본 단락은 먼저 여호와의 날이 가까와졌다는 사실을 선언하고(6절) 이어서 그날에
있어질 파멸의 고통, 잔혹함, 놀람, 슬픔, 살륙, 수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
다. 특별히 본문에서 저자는 심판의 이유와 실상에 대해 설명한다.
(1) 심판의 이유(11절) : 하나님께서는 바벧론인들이 죄악과 교만(14:12-17)과 강
포 때문에 멸망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렘 51, 51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벧, 므로닥(말둑)
과 같은 우상과 신상들을 숭배한 죄(렘 50:2, 38;51:47), 여호와를 향한 교만(렘 50:
29),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대(虐待)한 죄(렘 50:33;51:24, 34-37) 등으로 소개한다.
사실 앗수르(10:7-11)나 모압(16:6)등 모든 세계 열강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공통적인 이유도 바로 이 자만심과 강포와 교만이었다.
(2) 심판의 실상(13-16절) :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인하여 바벧론 사람들은 모
두 흩어지게 되므로(13, 14절;렘 50:16) 바벧론의 인구는 현저히 감소된다(12절). 특
히 15, 16절에서는 바벧론인들이 잔인한 살륙을 당하게 되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눈
앞에서 메어침을 당하여 머리가 부서지게 되며(영아 살해), 그 아내들은 눈앞에서 욕
보임을 당하게 될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심판의 잔인성에 대한 묘사는 바벧론의
죄악과 강포가 이웃 나라의 지독한 원한을 살 정도로 얼마나 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바벧론인들이 당하게 될 수모와 잔인함은 전에 그들이 이웃 나라를 정복
할 때 행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報讐)하시는 것이라 그의 행
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보수하라"(렘 50:15b)는 예레미야의 증거가 이러한 사실을 뒷
받침한다.
3. 심판의 결과에 대한 서술(13:17-22)
본문은 이전 단락(1-16절)의 결과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완
전히 파멸하게 되는 바벧론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한때 영광스럽
고 강력하였던 바벧론이 누구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음을 부각시키
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세계 역사를 진행시키는 진정한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려준다. 유다의 심판을 위해 바벧론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이제 본장에
서는 바벧론의 심판을 위해 메대를 사용하시는 것이다(17절 ; 렘 50:18).
사실 당시 메대의 역사적 상황은 히스기야 왕 말년까지 여러 지방에 부락 단위로
흩어져 살다가 앗수르로부터 도망한 뒤(B.C. 714년경) 데요쎄쓰(Deioces)왕의 통치하(
709-8년경)에 민족 통일과 국가 독립을 이룬 입장이었다(렘 51:11). 그러므로 이 나라
의 바벧론 침략 원정의 목적은 앗수르의 후계자인 바벧론에 대한 복수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재물의 약탈보다는 바벧론인들에 대한 살륙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국가적 관계를 적절히 활용하여 바벧론에 대해 철저한 심판을 수행한 것이다.
결국 전쟁시에 활을 많이 사용하는 메대인들은(18절;렘 50:14;51:3) 잔인한 방법으
로(렘 50:42) 바벧론을 소돔과 고모라같이 멸망시킬 것이다(19절). 그 결과 바벧론 땅
은 더 이상 상주하는 거민이 없게 되며, 아라비아의 여행하는 대상들이나 양을 치며
유랑하는 목자들조차도 저주받은 곳으로 여겨 잠시도 머무르지 않게 된다. 즉 시랑,
들개, 타조, 부엉이, 까마귀 등과 같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어두움의 동
물들로 가득 차게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17:2;34:11-17). 예레
미야도 바벧론의 황폐하에 대해 말하기를 그 땅이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렘
50:13)가 될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실제 이루어졌다.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B.C. 539년경
에 바벧론을 멸망시킨 고레스 왕은 바벧론의 도성과 성벽을 남겨두었으나, B.C. 518년경에 두번째로 바벧론을 정복했던 다리우스 히스타스페스(Darius Hystaspes)는 약 30야드 높이의 성벽만을 남겨 두고 모두 파괴시켰고, 그후 아하수에로(Xerxes) 왕은 그 찬란했던 벧(Bel) 신전을 완전히 파괴시켰으며, 끝으로 B.C. 312년경에 셀류커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에 의해서 완전 폐허화되었다. 이러한 바벧론의 멸망과 폐허는 장차 있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세력에 대한 대심판의 한 모형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세계 역사의 주인이시다. (2)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상 세력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3) 교만한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높아지고 형통할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바벨론에 대하여 받은 경고 - 아하스 시대의 예언이 마감되고 이어서 바벨론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에 대한 심판 선고가 뒤따른다(13-23장). 글의 구성은 다소 의도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7-12장에 예언된 메시야의 통치 곧 전우주적인 평화의 왕국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적대적인 지상 왕국들이 평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40:3-5;마 3:3). 열국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바벨론이 제일 먼저 거론된다. 이는 그 당시 미미한 세력에 불과했던 바벨론이 머잖은 장래에 앗수르를 대신하는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을 선지자가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39장).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본장에서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바벨론의 역사적 측면보다는 스미드(G.Smith)가 명기한바,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적이요 암흑의 요새'(창 11:9;계 14:8;17,18장)로 취급되어온 바벨론의 영적인 특성에 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벨론은 인간의 영광과 교만의 대변자이다. 바벨론이 망한다면 바로 그 내적인 교만 때문이다(12-17절). 유다와의 관계는 여기서 고려되고 있지 않다. '경고'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맛사'(* )는 문자적으로는 '무거운 짐'인데, 이는 환난의 말씀이나 파멸 선고같이 전달하기 부담스러운 메시지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언서에 자주 나온다(14:28;15:1;17:1;19:1;21:1,11,13;22:1;23:1;30:6;나 1:1;슥 9:1;12:1;말 1:1).
=====13:2
자산 위에 기호를 세우고...그들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 군대가 소집된다. 이 장면은 연속되는 세 개의 컷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나무없는 민둥산에 멀리서도 볼 수 있는 깃발이 세워진다. 그 다음 큰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 서둘러 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군대를 소집하는 이가 누구인지, 또 소집된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는다(그것들은 나중에 점차적으로 드러남).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였으며, 그 운명의 시간이 임박했다는 사실이다. '자산'의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니슈페'(* )는 '긁다, 벗기다'는 뜻의 동사 '솨파'(* )의 나팔 분사형으로, '벌거벗은', '벗겨진'을 의미한다. '기호'(* , 네스)에 대하여는 11:12 주석을 참조하라.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라 - 군대를 소집한 목적은 그들로 존귀한 자의 문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도성을 정복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존귀한 자'(* , 네디빔)는 아마도 바벨론의 군주들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시 107:40;113:8).
=====13:3
내가 나의 거룩히 구별한 자에게 명하고 - 강조형으로 쓰인 '내가'(* , 아니)란 말에서 군대를 소집한 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이 드러난다. 그는 바벨론과의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명을 위해 용사들을 선발하고 또 준비하신다. 즉 '성별하신다'(렘 22:7;51:27;욜 3:9;습 1:7).
나의 노를 풀게 하였느니라 - 용사들을 성별한 목적이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표출하는 막대기로 부름받았다. 앗수르를 불러 유다를 치게 하신 하나님은 이제 동일한 방법으로 용사들을 불러 바벨론을 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삼으시는 것이다(10:5).
=====13:4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 산에서 들리는 이 소리는 많은 사람의 소리, 곧 '열국 민족들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이다. 침략군들은 잡다한 산악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다(렘 51:27).
=====13:5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 '온 땅'(* , 콜-하아레츠)은 바벨론 제국을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현이다(Gray). NIV는 이를 '온 나라'(the whole country)라고 번역했다.
=====13:6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 욜 1:15 참조. 원문대로 읽으면 '전능자에게서(* , 미솨다) 멸망같이(* , 케쇼드)임할 것이다'이다. '멸망'(* , 쇼드)과 '전능자'(* , 솨다)는 모두 '강하다', '황폐시키다'는 뜻의 '솨다드'(* ) 동사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언어 유희의 일종이다.
=====13:7,8
심판날에 바벨론 주민들이 겪을 공포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1)'모든 손이 피곤하며':저항 불능의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2)'마음이 녹을 것이라':싸울 용기마저 잃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3)'놀라며':직역하면 '전율하며'(* , 니브할루)이다. (4)'괴로움과 슬픔에 잡혀서 임산(臨産)한 여자같이 고통하며':'해산의 고통'은 선지자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다. '괴로움'(* , 치림)과 '슬픔'(* , 하발림)은 모두 임산한 여자의 고통과 관련된 말들이다. (5)'서로 보고 놀라며 얼굴은 불꽃 같으리로다':'불꽃 같은 얼굴'은 얼굴에 피가 솟구침을 비유한 말이다. 공포와 경악의 극한을 보여준다.
=====13:9
땅을 황무케 하며...죄인을 멸하리니 - '땅'(* , 하아레츠)은 전세계를 가리킨다(Ewald, Umbreit, Delitzsch). 전세계적 심판을 통한 죄인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노아 홍수와 유사하다(창 6:13).
=====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 여호와의 날은 어두움의 날이다(겔 32:7;욜 2:10;3:15;암 5:18;슥 14:6,7). 그날에 하늘의 별들도 빛을 잃고 해와 달도 더 이상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과 별의 빛남이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증거한다면(창 1:14-19;마 5:45), 역으로 어두움의 지배는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어두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갈보리 언덕에서 1번 있었고(마 27:45), 최후의 심판 때에 다시 있을 것이다(마 24:29).
=====13:11
교만한 자의 오만...강포한 자의 거만 - 본문은 '그중에서 죄인을 멸한다'는 9절 말씀의 확대, 부연이다. 세상은 그 죄로 인해 멸망당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현이다. 그 모든 죄 가운데 선지자는 교만의 죄를 으뜸으로 꼽는다. '교만한 자', '강포한 자'는 사악한 세상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특히 '강포한 자'로 번역된 '아리침'(* )은 단순히 군주를 뜻하는 '네디빔'(* -2절)과는 달리 무섭고 잔인한 폭군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바벨론의 주요한 특성을 나타내는 전용어로 에스겔서에 자주 등장한다(겔 30:10,11;31:12;32:12).
=====13:12
사람을...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 - 직역하면 '내가 사람(* , 에노쉬)을 정금보다 희귀하게 하며, 사람(* , 아담)을 오빌의 금보다'이다. 여기서 '에노쉬'와 '아담'은 보통 사람과 고귀한 사람을 구별하는 의미로 쓰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동의어로 쓰였다(Alexander).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될 것을 말한다. 선지자는 이 희귀함을 금에 비교한다. 금은 값비싼 만큼 그 수가 많지 않다. 더욱이 불순물이 혼합되지 않은 정금일수록 그 수효는 훨씬 더 줄어든다. '오빌'의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오는 금은 특별히 좋은 것으로 인정된 듯하다(왕상 9:28;10:11;22:48;대상 29:4;대하 8:18;9:10;욥 22:24;28:16;시 45:9).
=====13:13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떠나게 하리니 - 하늘이 떨리며 땅이 흔들림은 전세계적 격변이 일어날 최후 심판의 날을 연상시킨다(24:18;욜 2:10;3:16;학 2:6,7;21,22등). 선지자에게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는 날은 여호와의 날의 한 모형이요 시작에 불과하다. 그 완성은 세상이 낡은 허물을 벗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로움을 덧입게 될(엡 4:24) 세상 끝날에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
=====13:14
그들이...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 - 제국의 전성기에 바벨론은 각처에서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로 인간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제국의 멸망에 직면해서 거대한 군중들이 썰물처럼 도시를 빠져 나갈 것이다. 선지자는 이들의 모습을 위험에 처해서 혼비 백산하여 사방으로 날뛰는 겁많은 노루와 한번 흩어지면 다시는 모일줄 모르는 양들에 비유한다.
=====13:15
만나는 자는...잡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겠고 - 그들이 이처럼 사력을 다해서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읍에 남아 있다가 붙잡히는 날에는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게세니우스(Gesenius)는 여기서 길에서 발견당한 사람과 집에 숨어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로우스(Lowth)는 혼자 있다가 붙잡힌 사람과 무리와 함께 있다가 붙잡힌 사람이 대조되고 있다고 본다. 전자가 더 합당하다.
=====13:16
어린아이들은...그 집은...그 아내는 욕을 당하리라 - 침략군의 만행에서 제외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지자의 묘사는 소름끼친다.
심지어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마저 내던져져 유리 구슬처럼 부수어 뜨림을 당한다 - 그것도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호 13:16;나 3:10). '메어침을 입는다'로 번역된 '라타쉬'(* )는 '박살낸다', '깨뜨린다', '산산조각낸다'는 뜻이다(18절). 집이 약탈당하고 아내가 욕을 보는 재앙에 대하여는 신 28:30;렘 3:2;애 5:11;슥 14:2 참조하라.
=====13:17
보라...메대 사람을 내가 격동시켜 그들을 치게 하리니 - 여기 처음으로 약탈자들의 정체가 제시된다. 그들은 메대 사람들이다. 메대인들은 아리안족의 후손으로서 소금 사막(the Salt Desert)과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저지대 사이에 있는 이란 북서부의 고원 지방에 거주하였으며, 성경 기록으로는 창 10:2에 처음 나온다. 이들은 오랫동안 앗수르의 시달림을 받아왔으며 특히 사르곤 왕 때에는 부족의 일부가 점령당하여 일단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메대의 여러 마을에 강제로 이주되기도 하였다(왕하 17:6).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만 해도 메대는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본래 호전적인 그들은 B.C. 714년경에 독립된 나라를 형성하였으며 그로부터 1세기 뒤에 바벨론과 함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략하기도 하였다(B.C.612년). B.C. 539년, 메대-바사 연합군이 바벨론을 점령한 사실에 기초하여 일군의 학자들은 본문이 그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다면 후대의 작가가 본문을 작성할 때, 바벨론 점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바사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선지자가 본문에서 바사 대신 메대만을 언급한것은 아마도 그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포하기 그지없는 사나운 민족들로 알려졌었기 때문일 것이다(Oswalt, G.W.Grogan). 은을...금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 이 말은 그들이 금과 은의 가치를 모르는 미개한 야만인들임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만 그들의 목적이 바벨론 정복에 있음을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13:18
활로 - 메대 사람들은 활을 잘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22:6;렘 49:35). 청년을...태의 열매를...아이를 가석(可惜)히 보지 아니하리라 - 이는 모두 메대인들의 잔인성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표현이다.
=====13:19
갈대아 사람의 자랑하는 노리개 - 직역하면 '갈대아 사람들의 자랑의 영광'이다. '노리개'로 번역된 '티프에레트'(* )는 '꾸미다', '장식하다'는 뜻의 '파아르'(*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 '장식', '광채', '영광'을 의미한다. '갈대아 사람'(* , 카스딤)은 바벨론 성읍 최남단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로 초기 바벨론을 구성한 주요한 부족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B.C.
722년경에 히브리어로 므로닥 - 발라단이라 이름하는 그들의 지도자 마르둑 - 아플라 - 일디나(Marduk - Apla - iddina)를 앞세워 바벨론을 정복했으며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약 1세기 후에 느부갓네살의 통치 아래 신바벨론 제국이 건설되어 그 지배력을 온 세계에 떨치게 되었다(J.Watts). 부족민, 즉 갈대아 사람들에게 세계 제일의 도시 바벨론은 진실로 그들의 자랑이며 영광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나님께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같이 되리니 -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형벌로 인한 완전한 파멸의 보기(모범)로 쓰이고 있다(1:9).
=====13:20
아라비아 사람도...양떼를 쉬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 아라비아 사람들(아라비,* )은 일정한 거주지가 없이 떠도는 유랑민족으로 목축과 수렵에 능하였다. 그들은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거주하였기 때문에 헬라인들로부터 '천막 생활자들'(* , 스케네타이)이라는 말을 들었다(Calvin). 그런데 이들마저도 그곳에 장막 치기를 거부한다는 말은 바벨론 땅이 사람의 주거지로서만이 아니라 잠시 유숙하는 곳으로도 사용되지 못할 만큼 철저히 황폐해질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Lange).
=====13: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 엎드리고...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요 -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곧 저주받아 쓸모없게 된 땅을 '들짐승들'(* , 치임)과 '부르짖는 짐승'(* , 오힘), 그리고 '타조'(* , 베노트 야아나)와 '들양'(* , 세이림)이 차지한다. '치임'과 '오힘'이 구체적으로 어떤 짐승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하이에나, 족제비등과 같이 광야에서 서식하는 야생 동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타조'는 문자적으로는 '타조의 딸들'인데, 이는 고대 근동에서 타조에 대해 언급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세이림'은 본래 '털이 많은 숫염소'를 뜻하는데(레 17:7;대하 11:15에서 숫염소의 형상을 한 우상의 의미로 사용됨), 유대인들 가운데 널리 보급된 민간 신앙에서 이는 염소의 모양을 하고 사막에 자주 출몰하는 귀신(34:14)으로 여겨졌다고 한다(Alexander).
=====13:22
그 궁성에는 시랑이...들 개가 울 것이라 - '시랑'(* , 이임)은 그 어원적 의미에서 볼 때 '울부짖는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리', 혹은 '재칼'등으로 번역된다. '들 개'(* , 타님)는 '하이에나'(RSV) 또는 '도마뱀'(KJV)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런 동물들이 '궁성'에 거주한다. '궁성'(* , 알므노트)은 '과부살이'를 뜻하는 '알마노트'(* )와 모음 하나만 다르다. 이는 한때 호사스러웠던 궁성이 이제는 외로운 과부살이처럼 버려진 곳이 될 것을 빗대어 암시한 것이다.
앞 부분(1-12장)에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그런데 본장부터 23장까지는 대상을 주변부에 위치한 열방에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전환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를 주관하시는 통
치자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7-12장에 예언된 일련의 메시야를 통한 구원 약속이
열방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욜 2:28-32; 욘 3:5-10;4:11).
이처럼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본장은 특별히 바벧론에 대해
언급한다. 왜냐하면 바벧론은 다음 세기에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
로로 잡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벧론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패역한 유다를
징계할 것이지만 결국 메대 사람을 통하여 멸망당하게 된다고 경계한다. 이러한 본 단
락은 (1) 심판을 위해 용사를 모집하시는 하나님(1-5절), (2) 심판의 내용에 대한 서
술(6-16절), (3) 심판의 결과에 대한 서술(17-22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본
장과 내용적으로 유사한 성경은 21장;47장;렘 50:1-51:58 등인데, 이중에서 가장 후대
에 속하는 예레미야서에서는 좀더 발전된 형태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비평학자들은 예언 단락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저작
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17절에서 바벧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
로 언급된 메대는 아직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으며(메대는 바벧론의 멸망, B.C.
539년경, 직전에야 등장한다), 둘째, 19절에서 바벧론이 '열국의 영광'으로 지칭되었
으나, 이사야 당시 세계의 영광은 앗수르(니느웨)였고 바벧론은 약소국에 불과했기 때
문(바벧론은 니느웨의 멸망, B.C. 612년경, 후에야 비로소 세계의 영광으로 등장한다)
이라고 한다. 즉 비평학자들의 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적어도 100-150년 후의 일을
예언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에 이 예언 단락의 저자로 B.C. 6세기 이후에
활동한 다른 인물(제2의 이사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견해는 선지자의 역할에 대한 비성경적인 이해와 '선지자는 자신
이 활동하는 당대의 사건에 대해서만 예언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서 생겨난
것이다. 사실 선지자에게 주어진 예언의 말씀은 당대의 사건에 대한 영적 해석도 있지
만, 대개가 미래의 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주 먼 장래에 될 일까
지도 선지자들에게 미리 알리시는 분이시다(41:21-29). 그러므로 본 예언 단락은 이사
야 선지자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먼 장래에 있을, 바벧론을 비롯한 세계
열국의 심판에 대한 일련의 메시지를 듣고 기록한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본장의 정확한 기록 시기를 알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아하스 왕이 죽은 해로
추정된다(14:28). 그러나 본 예언들은 각각 독립된 표(13:1;14:28;15:1;17:1;19:1;21
:1, 11, 13;22:1;23:1)하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모두 단번에 선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
다. 그러면 이제 본장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장에서부터 23장까지의 새로운 예언 단락에는 바벧론(Babylon), 앗수르
(Assyria), 블레셋(Philistia), 모압(Moab), 다메섹(Damascus), 구스(Ethiopia), 애굽
(Egypt), 두마(에돔, Edom), 아라비아(Arabia), 두로(Tyre) 등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
들에 대한 심판 선언 및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모든 민족, 모든 나라의 주인이요, 통치자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의 대적 세력들의 멸망을 통해 언약 백성의 궁극적인 구원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렘 51:17-20).
(2)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파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들의 죄를 징계하여 심판하신 후 자신을 알게 하시고, 구원 잔치에 초청하신다. 즉 열
방에 대한 심판은 변형된 구원의 초청이다(14:1, 2, 32;16:1-5;17:7;18:7;19:18-25;25
:6-9;49:22 이하;56:6-8;61:4-9). 하나님은 각 나라와 민족의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구
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시작부터 하나님을 대적한 바벧론은
(창 11:1-9) B.C. 1124년경에 국가를 재건하였으나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다가 앗수르
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독립을 쟁취, 세력을 점점 확장시켰다. 그후 바벧론은 앗
수르의 멸망후(B.C. 612년경) 날로 강대하여져서 B.C 568년경에는 멀리 애굽까지도 정
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포학스럽고 교만했으며, 남왕국 유다를 B.C.
586년경에 멸망시키고 그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24, 25장).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B.C. 539년경).
이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용사를 소집하시는 하나님(13:1-5)
본문은 바벧론에 대한 심판의 내용(6-16절)과 결과(17-22절)를 선포하기 이전에 여
호와의 전쟁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바벧론은 하
나님에 의해 소집된 용사들에 의해 파괴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 단락
은 (1) 여호와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한 군대의 소집을 언급하는 전반부(1-3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에 드러난 영적 교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전쟁
의 실질적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자신의 초자연적 권능을 사용하여 바벧론
을 반드시 초토화시킬 것이다. 아무리 강대하고 능력이 뛰어난 국가라고 할지라도 하
나님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2) 하나님은 자신의 심판을 수행함에 있어 메대
와 바사와 같은 이방 국가들도 사용하신다(3절) :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선택된
국가로서 당시 최강의 국력을 가지고 있는 바벧론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는 하나님의 구별된 자들(렘 22:7;51:27)이 도처에 존재함을 깨닫고 더욱 주의를 기울
여야 할 것이다.
2. 심판의 내용에 대한 서술(13:6-16)
앞으로 바벧론의 심판을 위해 모집하신 하나님은 이제 메대와 바사를 통하여 이루
어질 '여호와의 날' 을 공포하고 그 실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바벧론 사람들은 교
만하고 포악함으로 인하여 무서운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
는 본 단락은 먼저 여호와의 날이 가까와졌다는 사실을 선언하고(6절) 이어서 그날에
있어질 파멸의 고통, 잔혹함, 놀람, 슬픔, 살륙, 수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
다. 특별히 본문에서 저자는 심판의 이유와 실상에 대해 설명한다.
(1) 심판의 이유(11절) : 하나님께서는 바벧론인들이 죄악과 교만(14:12-17)과 강
포 때문에 멸망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렘 51, 51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벧, 므로닥(말둑)
과 같은 우상과 신상들을 숭배한 죄(렘 50:2, 38;51:47), 여호와를 향한 교만(렘 50:
29),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대(虐待)한 죄(렘 50:33;51:24, 34-37) 등으로 소개한다.
사실 앗수르(10:7-11)나 모압(16:6)등 모든 세계 열강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공통적인 이유도 바로 이 자만심과 강포와 교만이었다.
(2) 심판의 실상(13-16절) :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으로 인하여 바벧론 사람들은 모
두 흩어지게 되므로(13, 14절;렘 50:16) 바벧론의 인구는 현저히 감소된다(12절). 특
히 15, 16절에서는 바벧론인들이 잔인한 살륙을 당하게 되고,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눈
앞에서 메어침을 당하여 머리가 부서지게 되며(영아 살해), 그 아내들은 눈앞에서 욕
보임을 당하게 될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심판의 잔인성에 대한 묘사는 바벧론의
죄악과 강포가 이웃 나라의 지독한 원한을 살 정도로 얼마나 심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사실 바벧론인들이 당하게 될 수모와 잔인함은 전에 그들이 이웃 나라를 정복
할 때 행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報讐)하시는 것이라 그의 행
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보수하라"(렘 50:15b)는 예레미야의 증거가 이러한 사실을 뒷
받침한다.
3. 심판의 결과에 대한 서술(13:17-22)
본문은 이전 단락(1-16절)의 결과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완
전히 파멸하게 되는 바벧론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한때 영광스럽
고 강력하였던 바벧론이 누구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음을 부각시키
면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세계 역사를 진행시키는 진정한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려준다. 유다의 심판을 위해 바벧론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이제 본장에
서는 바벧론의 심판을 위해 메대를 사용하시는 것이다(17절 ; 렘 50:18).
사실 당시 메대의 역사적 상황은 히스기야 왕 말년까지 여러 지방에 부락 단위로
흩어져 살다가 앗수르로부터 도망한 뒤(B.C. 714년경) 데요쎄쓰(Deioces)왕의 통치하(
709-8년경)에 민족 통일과 국가 독립을 이룬 입장이었다(렘 51:11). 그러므로 이 나라
의 바벧론 침략 원정의 목적은 앗수르의 후계자인 바벧론에 대한 복수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재물의 약탈보다는 바벧론인들에 대한 살륙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하나님은
이러한 국가적 관계를 적절히 활용하여 바벧론에 대해 철저한 심판을 수행한 것이다.
결국 전쟁시에 활을 많이 사용하는 메대인들은(18절;렘 50:14;51:3) 잔인한 방법으
로(렘 50:42) 바벧론을 소돔과 고모라같이 멸망시킬 것이다(19절). 그 결과 바벧론 땅
은 더 이상 상주하는 거민이 없게 되며, 아라비아의 여행하는 대상들이나 양을 치며
유랑하는 목자들조차도 저주받은 곳으로 여겨 잠시도 머무르지 않게 된다. 즉 시랑,
들개, 타조, 부엉이, 까마귀 등과 같이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어두움의 동
물들로 가득 차게 되어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17:2;34:11-17). 예레
미야도 바벧론의 황폐하에 대해 말하기를 그 땅이 '거민이 없는 온전한 황무지'(렘
50:13)가 될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 예언은 역사적으로 실제 이루어졌다. 델리취(Delitzsch)에 의하면 B.C. 539년경
에 바벧론을 멸망시킨 고레스 왕은 바벧론의 도성과 성벽을 남겨두었으나, B.C. 518년경에 두번째로 바벧론을 정복했던 다리우스 히스타스페스(Darius Hystaspes)는 약 30야드 높이의 성벽만을 남겨 두고 모두 파괴시켰고, 그후 아하수에로(Xerxes) 왕은 그 찬란했던 벧(Bel) 신전을 완전히 파괴시켰으며, 끝으로 B.C. 312년경에 셀류커스 니카토르(Seleucus Nicator)에 의해서 완전 폐허화되었다. 이러한 바벧론의 멸망과 폐허는 장차 있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세력에 대한 대심판의 한 모형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여호와 하나님은 세계 역사의 주인이시다. (2)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세상 세력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 (3) 교만한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높아지고 형통할수록 더욱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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