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이사야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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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 레바논의 울창한 삼림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세상 제국의 급속한 몰락과 미미한 그루터기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 메시야 왕국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 싹은 메시야이며, 그는 이새의 줄기 곧 다윗 가문에서 탄생하실 것이다(삼상 16:1). 선지자가 '다윗'대신 '이새'란 이름을 사용한 것은, 그로부터 나올 싹이 다윗 이전의 지위, 곧 농부였던 그 아버지 이새가 상징하는 미천한 신분으로 태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땅에 묻힌 뿌리에서 연한 가지(* , 네체르)가 돋아남같이, 메시야는 무너진 다윗 가문에서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오실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는 비천하고 멸시받는 나사렛 사람(Nazarene)으로 불리워야 했다(마 2:23). 그러나 그 가지는 곧 자라서 열매맺는 장성한 나무로 발전할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삶 역시 그러할 것이다.

=====11:2
여호와의 신...강림하시리니 - 나무의 비유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유의 주인공 곧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전면에 부상한다. 그 위에 여호와의 '영'(* , 루아흐)이 강림하신다. 이는 다윗 언약과 관계된 듯이 보인다(삼하 7:14). 하나님의 영은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다. 여호와의 영은 메시야에게 통치에 필요한 능력을 분여(分與)해 주신다. 그것들은 각각 세 쌍으로 분류된다(J.Watts). (1)지혜와 총명의 신:'지혜'와 '총명'은 왕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들이다(왕상 3:5-9). '지혜'(* , 호크마)는 외적 분별력을 의미하며, '총명'(* , 비나)은 이보다 깊은 내적 통찰력을 의미한다. (2)모략과 재능의 신:'모략'과 '재능'은 9:6에 각각 '모사'와 '전능'으로 나와 있다(잠 8:14). '모략'(* , 예차)은 정책 수립과 입안(立案), 전쟁 계획의 작성 등 포괄적인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힘을 뜻하며(36:5;왕하 18:20), '재능'(* , 게부라)은 군대를 이끌고 나가 싸울 수 있는 영웅적인 힘을 뜻한다(왕상 15:23;16:5,27;22:45). (3)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둘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것인데, 여호와의 영은 왕으로 하여금 신앙에 있어서도 소홀함이 없도록 힘을 복돋아 주신다. '지식'(* , 다아트)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말한다. '여호와 경외'(* , 이르아트)는 사유(思惟)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대한 왕의 절대적인 두려움과 복종을 말하는 것이다.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 원문대로 읽으면 '여호와 경외를 코로 흐흡한다'이다. '코로 호흡한다'는 말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향기를 만끽하는 것, 다시 말하면 즐거워한다는 것이다(Delitzsch, Gesenius, De Wette). 메시야-왕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마치 향기로운 꽃향기를 숨쉬듯이, 오로지 여호와께 대한 경외로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삼으신다. 눈에 보이는 대로...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은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제2의 다윗, 즉 메시야 - 왕은 눈과 귀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께 대한 경외로 즐거움을 삼는 원칙에 의해 사물을 분별하실 것이다(Aben Ezra).

=====11:4
공의로...정직으로 - 메시야의 통치는 '공의'(* , 체데크)와 '정직'(* ,미쇼르)에 입각한 평등 사회로 구현된다. '미쇼르'는 '평등함', '올곧음'을 뜻하는 말이다. 공의롭고 정직한 평등 사회의 구현, 그것은 이스라엘의 오랜 꿈이었다. 그 나라는 빈핍하고 겸손하 자가 보살핌을 받고, 이 세상의 행악자는 엄정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런 나라이다. 이 점에서 메시야의 통치는 유당 왕들의 악한 통치와 철저하게 대조된다(1:23;3:15;10:1,2). 빈핍한 자...겸손한 자 -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될 때, 가장 기뻐할 이들은 바로 세상에서 멸시받고 억압받던 '빈핍한 자'(* , 달림)와 '겸손한 자'(* ,아나윔)이다. '달림'은 '매달리다'는 뜻의 '달라'(* )에서 나온 말인데, 사회적으로 열등하고 비천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아나윔'은 '굽히다'는 뜻의 '아나'(* )에서 나온 말인데, 전자보다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내외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가리킨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권세자나 부자에게 매달리고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다. 그러나 메시야의 날에 그들은 의로운 왕이 바로 자기들의 편이며,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려지는 하늘 나라가 바로 자기들과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마 5:3;눅 6:20,21).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악인을 죽일 것이며 - 메시야의 날은 지상의 질서가 뒤바뀌는 격변의 날이될 것이다. 그날에 높은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는 높아진다(삼상 2:8). '세상'(* , 에레츠)은 직역하면 '땅'이다. 이 땅으로 만족을 삼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 , 라솨)은 공평한 재판에 의해 그에 합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면 메시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한마디로도 그 일은 간단히 처리될 수 있다. '입술의 기운'곧 그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분은 '입의 막대기' 곧 그 말씀으로 세상을 좌우하신다(살후 2:8, Lange).

=====11:5
공의로...성실로 - 왕의 허리에 두른 예대(禮帶)에는 '공의'(* , 체데크)와 '성실'(* , 에무나)이라는 두 가지 장식이 아로 새겨져 있다(Calvin). 그는 모든 일을 공의대로 처리하시며 마땅히 되어져야 할 바는 성실로써 수행하시므로 그의 통치는 지극히 이상적일 것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평화와 지복의 낙원이 건설된다.

=====11:6,7
메시야의 통치가 실현될 그날에 '분리됨'을 그 특징으로 하는 죄악 세상은 마감되고, 적대하던 모든 세력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평화와 공존의 새세상이 열리게 된다. 이 새세상이 오기 위해서 우선 피조물을 허무한 데 굴복케 만드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는 새창조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롬 8:19,20;고후 5:17). 그러나 그 궁극적 완성은 역사의 전변(全變), 즉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기까지 미뤄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선지자의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주어지는 새로움을 넘어 먼 미래의 종말에까지 확대되고, 그가 노래한 메시야 왕국의 평화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한다'(계 21:5)는 요한의 묵시록에서 그 진정한 이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먼 미래에 완성될 이 새로움은 최초의 낙원 상태의 회복과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복된 세계는 미움도, 갈등도, 다툼도 없는 조화의 세계였으며, 푸르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동산에서 이리와 표범, 곰, 사자 등의 맹수들이 어린 양과 염소, 송아지 등과 어울려 놀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 세계는 또한 동물들이 인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질서의 세계이기도 하였다. '(모든 짐승들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라는 구절에서 이 같은 표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선지자가 보여주는 본문의 그림에는 약육 강식, 적자 생존의 비정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1:8
젖 먹는 아이가...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 이 복된 낙원 상태는 두 갓난 아이 - 하나는 젖을 먹고, 다른 하나는 젖을 막 뗀 - 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하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그날에는 독사조차도 해롭지 않다. 태초의 세계에서 향유되었던 인간과 동물(자연계)의 친화가 그지없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11:9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 '나의 거룩한 산'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전용어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것은 후반부의 '세상'(* , 하아레츠)과 병행하여, 하나님에 의해 구속되고 새로워진 세계를 총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65:25, J.Watts). 해(害)됨도 없고...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우주적인 평화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먼저 여호와를 아는 지식, 곧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고(잠 1:7) 온 마음으로 그를 기뻐하며(11:3) 기꺼이 그 앞에 복종하는 지식이 온 땅에 편만하게 퍼지지 않으면 안 된다.

=====11:10
이새의 뿌리 - '뿌리'(* , 쇼레쉬)는 1절의 '싹'(* - 호테르) 혹은 '가지'(* , 네체르)와 본질적으로 같다.
만민의 기호(旗號)로 설 것이요 - 이새의 뿌리 속에 감추어졌던 그분이 마침내 높은 곳에 우뚝 설 그날이 올 것이다. 그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볼 것이며, 그에게 관심을 갖고 그를 경배하기 위해 몰려들 것이다. '기호'(* , 네스)는 사람들을 소집할 목적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게 만든 표시 혹은 깃발을 뜻한다. 이 기호가 5:26에서는 심판의 방편으로 쓰였으나, 여기서는 흩어진 백성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그 거한 곳'(* , 메누하토) 곧 '그가 거주하시는 장소'는 말일에 세상 만민이 몰려드는 역사의 중심지요 또한 구원의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구원의 중심지가 될 것이므로 당연히 영화로울 것이다. 또한 이곳은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은 복음 선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에 널리 전파된 신약 시대에 그대로 성취되었다(롬 15:12).

=====11:11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 주께서 손을 펴심을 그의 손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심이다. 주께서 이전에 그의 전능한 손의 위력으로써 그의 백성들을 구출해 내셨던 것처럼(출 12:51) 이제 또 '다시'(* , 쉐니트-'다시', '두 번째'라는 뜻) 그의 백성들을 포로 상태로부터 구원해주실 것이다. 앗수르와 애굽과...바다 섬들에서 - 앗수르와 애굽이 먼저 거론된 것은 이들 두 나라가 이사야 시대의 주요 강대국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언급된 나라들을 애굽에 속한 나라(바드로스, 구스)와 앗수르에 속한 나라(엘람, 시날, 하맛), 그리고 바다 섬들의 세 부류로 구분한다. 앗수르에 대해서는 7:17-8:22;10:28-34;36,37장;왕하 15:29;17:6;18:11을 참조하라. 그리고 애굽에 대해서는 7:18;왕하 23:29-35;호 9:3,6을 참조하라. '바드로스'는 애굽 상부이며(렘 44:1, 애굽 하부는 '미스라임'), '구스'는 애굽 남쪽 아라비아 만을 포함한 에디오피아이다(18:1). '엘람'은 티그리스 강 동쪽 땅이고(21:2;22:6) '시날'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만나는 남쪽 평원이다(창 10:10). '하맛'은 레바논 북부에 인접한 수리아 땅이다(10:9). '바다 섬들'은 지중해의 섬들과 주변 연안 국가들을 가리킨다. 이상 언급된 나라들은 사실상 이방 세계 전부를 가리킨다(Oswalt). 선지자의 예언은 부분적으로는 복음이 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을 때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 완전한 성취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롬 11:26) 비로소 이루어질 것이다(Alexander).

=====11: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 주께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방식이 설명된다. 그는 '기호'(* , 네스)를 세우실 것이다. 이는 열방 중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가 기호를 세우면 열방은 그의 백성을 석방하며 호송까지 해줄 것이다(49:22;62:10, Delitzsch). 스룹바벧과 에스라의 영도하에서의 귀환은 그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쫓긴 자...유다의 이산한 자 - '쫓긴 자'는 남성형이고, '이산한 자'는여성형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게세니우스(Gesenius)에 의하면, 양(兩) 술부는 양 주어에 공히 종속된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의 쫓긴 남자들과 이산한 여자들'을 가리킨다.

=====11:13
에브라임의 투기는 없어지고...유다는 에브라임을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요 - 솔로몬 시대 이래 남북으로 나뉘어진 이스라엘이 장차 통일된 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말이다. 이 일은 상호간에 적대시하던 감정이 해소될 때 성취된다. 이 적대감은 에브라임 쪽에 더 강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8:1;12:1;왕상 11:26;시 78:60-68). 이는 유다를 괴롭게 하는 자가 에브라임이라는 반복된 진술에서 드러난다. 이에 반해 에브라임에 대한 유다의 적의(敵意)는 본절 끝에서 단 한번 나온다. 포로에서의 귀환 이후, 이런 분열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11:14
그들이 서(西)으로...자기에게 복종시키리라 - 회복된 이스라엘 곧 신앙으로 일치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성공만이 따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이 그들을 공격할때, 그들은 어깨를 같이하여 단합된 힘으로 방어할 것이므로 항상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은 실제 전쟁을 이야기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우월성과 탁월함을 비유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어깨'(* , 카테프)는 바다를 향해 경사진 블레셋 해안의 별명이다. 이스라엘은 마치 굶주린 독수리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먹이를 덮치듯이 블레셋을 공격할 것이다. 여기 언급된 나라들은 이스라엘에 인접한 주변국들인데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혔었다(렘 49:28,29;겔 25:4,10).

=====11:15
애굽 해고(海股)를 말리우시고...건너가게 하실 것이라 - 과거와 미래가 시적으로 혼합되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한층 강력하고도 풍부하게 표현한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사람의 혀(해고)처럼 생긴 애굽의 홍해를 마르게 하사 그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이제 여호와께서 그보다 더 놀라운 권능으로써 뜨거운 바람을 일으켜 유프라테스 강물을 말리운 다음, 손으로 그것을 내리쳐 7개의 작은 강물로 쪼개사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이 신을 신은채로 건너올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할 때마다 출애굽의 테마는 주선율로서 거듭 나타난다(40-55장;렘 16:14;23:7).

=====11:16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 '대로'(* , 메실라)는 인공적으로 건축한 큰 길 혹은 공공 도로를 말한다. 남은 자들이 대로를 통해서 돌아온다는사상은 본서에서 자주 나온다(19:23;35:8;49:11;62:10). 본문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서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대로를 준비하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아니하셔서 돌아올 때도 전혀 어려움이 없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구원 사건은 다음장에서 노래불러지는 찬양으로 일단락 된다(12장).


전장(10장)에서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거대한 흑암의 세력 앗수르의 멸망에 관한
심판을 예언하던 이사야는 이제 메시야의 오심으로 이룩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해 기
술한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위세를 떨치던 앗수르는 완전히 파멸한 반면 미미하고 연
약하던 다윗 가문은 가장 위대한 결과를 산출할 것이다.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본장은
메시야를 통한 구원의 놀라움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존쟁에는 메시야
의 혈통(다윗의 후손, 1,10절 ; 9:7), 메시야의 무장(성령 강림, 2절), 메시야의 통치
원리(공의, 정직, 능력, 성실, 3-5절 ; 9:7), 메시야의 왕국의 성격(평화의 나라,
6-9, 13절 ; 9:7), 메시야 왕국의 범위(온 세계 열방, 10-12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은 메시야와 관련된 정보가 가장 포괄적으로 기록된 임마누엘 예
언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이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반부(1-10절), (2)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귀환을 기술하고 있는 후반부(11-16
절)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제 본장에 나타난 핵심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
면 다음과 같다.
(1) 본장에서는 구원자로서의 메시야가 다윗의 후손으로 온다는 사실을 정확히 밝
히고 있다(1,10절) : 이사야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찍히고 베임을 당하는
내용(10:33,34)과 대조적으로, 잘려진 그루터기에서 줄기가 나고 결실을 맺는다고 말
한다. 여기서 그루터기는 6:13의 구루터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6:13에서는 그루
터기(거룩한 씨)가 집합적으로 회개할 남은 자들에게만 적용되고 있느나, 여기서는 다
윗 왕조의 심판 중에 남겨진 자들뿐 아니라 메시야에게까지 연결되어 적용되고 있다.
곧 '이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의미하며, 장차 이스라엘의 구
원을 이루실 메시야께서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계
22:16).
(2) 본장은 메시야가 우주적 구원을 완성하실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6-10절) : 메
시야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는 분이
시다(2:2-4 ; 49:22). 그러므로 존말론적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는 민족과 언어가
다른 백성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마 8:11 ; 계 7:9,10). 사실 이러한 구원의 우주
적 성격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소명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는 이미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는 약속(창
18:18)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라는 우주적 구원을 계시하셨다.
(3) 본장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열방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불러 모아 구원
하실 것을 기술하고 있다(11-16절) : 이러한 사실은 전장(10장)에서 선포된 앗수르의
심판과 멸망을 바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구원은 대적 세력
인 앗수르의 멸망을 바탕으로 성취된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통해서 사단
을 정복하시고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들과 유다의 이산(離散)한 자들을 사방에서 모
으신다. 그리고 의와 거룩이 지배하는 왕국을 건설하실 것이다(12-14절). 이사야는 하
나님께서 출애굽 때와 같은 능력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지키시리라는 확신을 다시
한번 표명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메시야 왕국의 특징이 종합적으로 묘사되는 본장을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11:1-10)

본 단락은 앞장 후반부(10:33,34)와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앞 부분은 앗수
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꺾이고 베임당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반면에 본
대목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메시야가 도래하며 승리할 것을 선포한다. 이사야는 이
러한 대비를 통하여 현재 보잘것 없는 그루터기의 상태로 존재하는 메시야가 장차
위대한 구원을 성취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같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설명하고 있는 본 단락의 핵심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본문은 메시야 위에 성령이 임하게 됨을 설명해 준다(2절) : 성령은 여호와의
신(the Spirit of the Lord), 지혜의 신(the Spirit of wisdom), 총명의 신(the
Spirit of understanding), 모략(謀略)의 신(the Spirit of counsel), 재능의 신(the
Spirit of strength), 지식의 신(the Spirit of knowledge), 여호와를 경외케 하는
신(the Spirit of the frar of the Lord)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할 때 그리스도는 지혜와 총명, 모략과 능력, 지식과 하나님 경외함 등을
소유하게 된다. 본 단락은 바로 오실 메시야가 자신의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무장
(equipment)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61:1 ; 마 3:16 ; 눅 4:18 ; 요 3:34). 사실 이
사야는 다른 어떤 구약 기록자보다도 성령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2절 ; 30:1 ;
32:15 ; 24:16 ; 40:13 ; 42:1 ; 44:3 ; 48:16 ; 59:21 ; 61:1 ; 63:10,11,14), 메시
야에 관한 풍부한 예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메시야는 성령
을 통하여 위대한 구원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게 됨을 알 수 있다.
(2) 메시야의 통치 원리에 대해 알려준다(3-5절) : 성령의 능력을 받은 메시야는
공의와 정직과 성실로 세상을 통치하심으로 모든 악을 제거하실 것이다. 사실 이사야
는 이미 9:7에서도 메시야께서 왕국을 굳게 세우고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보존하실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이러한 메시야의 통치로 인하여 전피조계는 모든 대립과 갈
등이 사라지는 완전한 평화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메시야를 진정
한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으로 부르고 있다(9:6).
(3) 메시야 왕국의 백성은 혈통적 유대인을 넘어서서 열방으로 확장됨을 보여준다
(10절) : 이새의 뿌리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친히 '만민의 기호'로
서서 열방을 자신에게로 불러모으실 것이며, 그 결과 온 천하 만민이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호(旗號)는 원래 '군기'(standard)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광야에서 놋뱀을 만들어 군기에 매달아 높이 들게 하신 사건(민 21:4-9)과 깊
은연관을 가지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 음식, 물을 인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심으로 다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세의 중
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불뱀에 물려 죽게 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로 하
여금 놋뱀을 만들어 군기에 달아 높이 들게 하시며 그 놋뱀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
게 하셨다. 이때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군기에 매달게 한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
히 사망의 세력의 표상에 해당되는 불뱀을 물리치셨다는 승리의 선포를 의미하였다.
즉, 놋뱀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속죄 사역을 통해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고
택하신 자들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에 대한 예표였다(요 3:14).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사야는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께서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고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의 구원을 성취하신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메시야의 속죄 사역은 혈통과 무
관하게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구원을 허락하게 된다.

2.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귀환(11:11-16)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던 이사야는 이제
다시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예언을 선포한다. 이스라엘이 비록 범죄하여 멸망할지라도
메시야는 평화와 승리의 나라를 다시금 건설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열조와 맺은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온 세계에서 불러모아 새 이스라엘을
형성하신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시는
사역에 대해 이사야 선자자는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돌
아올 자들을 위해 능력으로 홍해를 말리신 것처럼, 바벧론으로부터 돌아올 자들을 위
해 유브라데 강을 일곱 갈래로 나누어 수심을 얕게 만드실 것이다. 또한 앗수르로부터
돌아올 자들을 위해서는 대로(大路)를 준비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방불하게 하실 것이다.
이상과 같이 남은 자의 구원을 선포하는 본 대목은 특별히 두 가지가 강조되고 있
다 . 첫째, 재형성된 이스라엘은 전과는 달리 서로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협력하여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승리하게 된다(13,14절). 둘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귀환
시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모든 장애의 요소가 모두 제거된다(15,16
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귀환은 출애굽 사건과 같은 위대한 구원 사역으
로 여겨진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제2의 다윗 왕조의 형성(암 9:11,12), 제2의 정
복 사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은 좀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때 메시
야의 사역을 예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메시야께서도 출애굽 당시
처럼 열방 중에서 남은 자들을 다시 모으시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것처럼
메시야 왕국을 세우시고, 다윗이 정복 사역을 통하여 큰 영토를 다스렸던 것처럼 복음
전파를 통한 새로운 정복 사역을 펼침으로 크고, 완전하고, 영원한 나라(단2:44 ;
7:13,14참고)를 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예표적 성격은 본서 후반부(40-55
장)에서 더욱 상세히 발전되며, 다른 선지서에서도 계속 나타난다(렘 16:15-21 ;
23:7,8 ; 31:8,9).
본장에서 우리는 메시야 왕국의 특징중의 하나가 '평화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메시야가 이 세계를 통치하시기 전에는 결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 현 세계의 정치적 화해 무드도 결코 참평화의 세계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주의 나라가 하루빨리 이 땅에 임하시길 기도해야 하는데, 이는 곧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림으로 나타나게 된다(고전 16:22 ; 계 22:20). 또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확장하기 위해 전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남긴 위대한 명령 (마 28:19,20 ; 막 16:15 ; 눅 24:47-49 ; 요 20:21 ; 행 1:8)을 기억하며 거룩한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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