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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불의한 법령을 발포하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 선지자는 여기서 관료적인 이스라엘의 법집행의 부당함을 탄핵한다. 법 앞에 만민을 공평하게 대우하라는 율법 정신이 완전히 소멸된 당시 이스라엘의 타락상이 여실히 반영되고 있다(출 23:6-9;레 19:15;신 10:17;16:19;24:17). 본절을 유다에 국한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5:23). 이런 죄악은 남북을 불문하고 온 이스라엘에 편만하였던 것이다(암 5:12). '법령을 발포하며'와 '말을 기록하며'는 두 종류의 다른 직급, 즉 재판관과 서기관을 암시하는 말(Aben Ezra, Kimchi, Grotius)이라기보다는 동일한 뜻을 지닌 평행법으로 봄이 무난하다.

=====10:2
빈핍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화 있을진저 - 권세자들의 편에 선 재판관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편파적이며 일방적인 판결을 능사로 삼을 때, 권력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사실이다. 불공평한 판결이 지배하는 곳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빈핍한 자'와 '가련한 자'뿐이다. 선지자는 이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과부와 고아들'이라고 언급한다.

=====10:3
벌하시는 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욤 페쿠다'(* )는 문자적으로 '방문의 날'이니, 하나님이 자신의 임재하심을 특별히 나타내시는 때를 가리킨다(호 9:7, Alexander). 그날은 '멀리서 오는 환난 때'와 동일시되는데, 이는 곧 앗수르에 의한 침공을 암시한다(5절;5:26). 선지자는 하나님의 방문의 날과 관련하여 불의한 재판관들에게 세 가지 물음을 던지는데,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다음절에서 통렬하게 제시된다.

=====10:4
포로된 자의 아래에 구푸리며 - 그들의 결국은 참으로 비참할 것인데,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감옥 안에 눕거나 전쟁터에서 나뒹구는 주검이 될 것이다. 이어 선지자의 시선은 범죄한 이스라엘로부터 그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부름받은 앗수르로 향한다.

=====10:5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운명을 나타낸 '화 있을진저'(* , 호)가 앗수르에게도 적용된다.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도구로 잠시 사용된후, 그 교만 때문에 역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10:6
내가 그를 보내어 한 나라를 치게 하며 - '한 나라'는 직역하면 '불경한(* , 하네프) 나라'이다. 그 나라는 평행을 이루는 문장에서 '나의 노한 백성'으로 구체화된다. 이는 '나의 진노의 대상이 된 백성'이란 뜻이다(3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를 가장 경건한 민족이라 자부하고 앗수르 같은 이방 나라는 신(神)을 모르는 불경한 민족이라 멸시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정반대로 말한다:'너희들이야말로 불경한 백성이며 앗수르는 너희들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부름받았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Oswalt).

=====10:7
그의 뜻은 이같지 아니하며...멸절하려하여 -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부름받은 바, 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고 자신의 힘의 한계를 깨달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하였다. 앗수르의 마음에는 이러한 깨달음 대신 중동의 지배자가 되려는 패권주의적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는 무력을 근간으로 하는 제국주의의 필연적 속성이다(왕하 18:25).

=====10:8
이르기를 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 앗수르가 그 같은 야망을 품은 것이 결코 헛된 공상만은 아니라는 것이 반어법으로 표현된다. 실제로 앗수르의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왕은 대왕(36:4)의 칭호를 가졌으며, 그 밑에 있는 방백들마저도 그 지위와 위세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왕들과 버금갈 정도였다.

=====10:9
갈로는 갈그미스와 같지 아니하며...사마리아는 다메섹과 같지 아니하냐 - 이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 앗수르가 거둔 혁혁한 전과(戰果)때문이었다. 사실 앗수르가 취하고자 했던 도성 중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의도에서 빗나간 것이 없었다. 과거의 자신감을 토대로 앗수르는 미래의 성공을 스스로 예견한다. '갈그미스'는 유브라데 강변에 위치한 성읍으로서(대하 35:20;렘 46:2-12) B.C. 717년에 함락되었다. '갈로'는 '갈그미스'로부터 남쪽 50마일 정도에 있는 '갈레'를 가리키는 듯하며(암 6:2), B.C. 738년에 함락되었다. '하맛'은 오론테스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민 34:8;왕하 14:25,28;암 6:2,14), B.C.738년과 720년에 함락되었다. '아르밧'은 '하맛'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왕하 18:34), 둘 다 수리아의 성읍들이었다. '아르밧'은 B.C. 740년에 함락 되었다. '다메섹'은 수리아의 수도이며(B.C. 732년 함락),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이다(B.C. 722년 함락). 언급된 6개의 성읍들은 아마도 지정학적 근접성을 기준으로 하여 배열된 듯하다(Oswalt).

=====10:10
내 손이 이미 신상을 섬기는 나라에 미쳤나니 - 고대의 정복 전쟁은 신들 간의 전쟁으로 고려되었으며, 신들의 우열은 전쟁의 승패에 직결되었다. '미쳤나니'(* ,마체아)는 '도달했다', '발견했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굴복시켰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10:11
내가...예루살렘과 그 신상에게 행치 못하겠느냐 - 결국 앗수르의 최종 목표는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앗수르는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다른 나라의 우상들, 특히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수입된 우상들과 같이 취급하였다. 여기에 그의 결정적인 실책이 있다. 여호와에 대한 모독에 이어 앗수르의 파멸이 곧 뒤따름을 보라.

=====10:12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 - 교만은 사람의 마음에서 발원하여 마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눈에서 비친다. 앗수르 왕의 이 같은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다.

=====10:13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총명한 자라 - 그는 자신이 거둔 모든 성공을 자신의 힘과 지혜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결과라고 해석한다. 스스로 도취하는 나르시스적 경향은 '나는 총명한 자라'는 말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는 '내 솜씨가 정말 절묘했어'라는 식의 자화 자찬(自畵自讚)의 말과 같다(Calvin). 그런데 그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약자에 대한 잔인한 핍박과 약탈이다.
용감한 자같이 위에 거한 자를 낮추었으며 - '용감한 자 같이'를 직역하면 '황소처럼'으로도 된다(시 22:12). '황소'는 앗수르의 권능의 상징이었다.

=====10:14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 같고...하는도다 - 정복 전쟁과 재물 탈취의 용이함이 비유로 묘사된다. 그 용이함은 어미새가 자리를 비운 새둥지에서 알을 줍는 것에 비견된다. 만약 어미새가 있었다면 생사(生死)를 각오하고 침입자에게 덤벼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 강조점은 아무도 앗수르를 대적하거나 저항하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10:15
도끼가 어찌...큰 체 하겠느냐 - 교만의 어리석음을 선지자는 날카롭게 공박한다. 도끼와 톱은 유용한 물건이긴 하지만 사람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만약 도끼와 톱이 정반대로 자기들이 사람을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는가?=====10:16
살진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 - 앗수르의 교만과 어리석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로 선포되니, 하나는 병의 형별이요 다른 하나는 불의 형벌이다. '살진 자로 파리하게 한다'는 말은 질병을 보낸다는 말이다(레 26:16;신 28:22). 이는 앗수르군 진영에 전염병이 도져 하룻밤 사이에 185,000명이 죽었다는 기록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37:36). '영화'는 앗수르의 잘 무장된 군대를 가리킨다(Delitzsch). 그 영화 밑에 불을 질러 깨끗이 소멸시킨다는 말은 앗수르 군대의 급속하고도 완전한 멸망을 비유하는 말이다(Vitringa, Rosenmuller, Clericus). 선지자는 '불태우다'는 의미의 '야카드'(* )동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불타는 광경을 눈으로 직접 목도하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한다.

=====10:17,18
형극과 질려가...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 거룩한 불꽃에의해 소멸될 대상은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형극과 질려는 앗수르인들의 하류 계층을 가리킨다. 둘째, 삼림과 기름진 밭의 영광은 상류 계층을 의미한다. 이 같은 앗수르인들의 총체적인 파멸은 '전부'라는 말에서 강조되고 있으니, 이는 직역하자면 '영혼에서 육체까지'이다. 이 말은 전인(the whole man)을 가리키는 통상적인 표현이다(시 16:9;84:2).

=====10:19
그 삼림에...능히 계산할 수 있으리라 - 앗수르의 황폐함은 마치 거대한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몇 그루의 나무만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광경에 비유되고 있다. 불에 타고 남은 나무의 수가 얼마나 적을 것인지는 '아이라도 능히 계산할 수 있다'는 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어린아이가 셀 수 있는 숫자는 열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10:20
그 날에...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 '자기를 친 자'는 앗수르를 가리킨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 외에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징벌을 당하였다. 그러나 심판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이후에는 오직 하나님만을 진실로 의지할 것이라는 말이다.

=====10:21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 이 일은 스알야숩(7:3)의 이름속에 포함된 예언의 성취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능하신 하나님'(* ,엘 깁보르)은 임마누엘이라 하는 아이에게 적용된 이름 중 하나이다(9:6).

=====10:22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돌아오리니 - '네 씨로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창 22:17)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성취되어 이스라엘 자손이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삼하 17:11) 되었으나, 저들의 범죄로 인하여 남은 자는 소수에 국한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며 오직 약속의 자녀라야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롬 9:6-8,27)는 사상과 연결시켜 인용한다.

=====10:23
온 세계 중에 -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행하기로 작정하신 훼멸은 온 땅 가운데서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이니 거기에서 살아 남은 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10:24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 앞절에서 무서운 위협의 말이 선포된 후, 곧 이어서 위로의 말이 덧붙여진다. '시온'은 하나님의 처소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경건하고 신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위로는 소수의 신실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 할 것이다(Calvin).

=====10:25
내가 불구(不久)에 네게는 분(憤)을 그치고...그들을 멸하리라 - 앞절의 '두려워 말라'는 위로에 대한 직접적인 이유가 제시된다. 즉, 하나님께서 곧 그의 분노를 이스라엘에서 앗수르로 옮기실 것이다(12절). '불구에'는 '오래지 않은 시간에', '짧은 시간에'란 말이다. 앗수르의 파멸은 다음절에서 두 가지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10:26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죽이신 것같이 - 첫째, 그것은 기드온과 300 군사에 의한 미디안 군대의 패퇴에 비교된다(9:4). 오렙 반석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을 죽인 곳이다(삿 7:25).
막대기를 드시되 바다를 향하여 애굽에 드신 것같이 - 둘째, 그것은 홍해에서 바로의 군대가 몰살한 것과 비교된다(출 14:16-18).

=====10:27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 '기름'으로 번역된 '솨멘'(* )은 '비만', '지방', '기름'을 뜻하는 말이다. 앗수르로부터의 이스라엘 해방은 황소의 목이 비대해짐에 따라 멍에가 찢어져 자유하게 됨과 같이(Hitzeg, Hendewerk) 그렇게 확실하게 올 것이다. 흠정역은 본문을 '기름부음 때문에'(because of the anointing)라고 번역함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0:28
아얏에 이르러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 치중을 머무르고 - '아얏'은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한 성읍으로, '돌더미'를 뜻하는 '아이'를 가리키는 듯하다(수 8:1-28). '미그론'은 벧엘에서 도보로 약 8시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하였으며, '믹마스'는 예루살렘 북방 약 7마일 정도에 위치한 군사 전략상의 요충지로서, 베냐민 지파의 주요 성읍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짐을 풀었다. 이는 행군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병참 기지를 건설하기 위함일 것이다. '치중'(* , 켈라)은 '그릇, 옷, 도구, 무기'등의 군수 물자를 뜻한다.

=====10:29
영(嶺)을 넘어 게바에서 유숙하매 - '영'(* , 마으바라)은 '산길'을 뜻하는 말로, 믹마스와 게바 사이에 있는 오늘날의 와디 슈바니트(Wady-es-suweinit)를 가리킨다(삼상 13:23). 깊고 거치른 좁은 골짜기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진군하던 군대는 게바(수 18:24;21:17)에서 야영한다.
=====10:30
딸 갈림아...라이사야...너 아나돗이여 - '갈림'과 '라이사'는 기브아와 예루살렘 사이에 위치한 성읍이다(삼상 25:44). 두 곳 모두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시간 15분쯤 되는 거리에 있는 오늘날의 아나타(Anata)란 곳이다(수 21:18;삼하 23:27;대상 6:60). 28,29절에 비해 본절은 선지자의 개인적인 반응이 강하게 투사된다. '갈림'과 '라이사'는 근접한 성읍이어서 큰소리로 외치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외침은 군대가 옴을 알려주는 경계의 소리라기보다는 극도의 공포에서 우러나는 비명에 가까울 것이다.

=====10:31
맛메나 사람은...게빔 거민은 도망하도다 - '맛메나'는 '기름더미'란 뜻이다. '게빔'은 '물웅덩이'란 뜻이다. 두 성읍 다 예루살렘에 근접한 것은 확실하나 분명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이들 거민 또한 황급히 도망한다.

=====10:32
이 날에 그가 놉에서 쉬고 - '놉'은 아마도 예루살렘 북쪽에 있는 스코푸스(Scopus) 동산을 가리키는 듯하다(Oswalt). 앗수르 군대는 예루살렘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전열(戰列)을 재정비한다.
예루살렘 산을 향하여 그 손을 흔들리로다 - 손을 흔드는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위협적인 제스처이다. 예루살렘이 정복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위기의 순간 앗수르 군대가 휘두르는 손이 클로즈업되면 문득 환상은 끊긴다.

=====10:33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 삼림의 비유가 다시 등장한다. 그 삼림은 앗수르이다. 벌목하시는 이는 주 만군의 여호와이시다. 도끼찍는 소리가 온 숲에 울려 퍼진다. 위협하듯이 하늘 향해 뻗은 가지가 둘로 꺾어진다. 큰 나무, 굵은 나무 할 것없이 두 동강 난다. 이 모양으로 앗수르의 파멸은 철저할 것이다.

=====10:34
레바논이...작벌을 당하리라 - 앗수르는 종종 레바논의 삼림에 비교되었다(겔 31:3). 선지자는 레바논의 울창한 삼림의 붕괴에서 작고 가녀린 한 싹을 예언적으로 내다본다(11장).


앞장(9장)에서 예약된 '한 아기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은 본장에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흑암의 세력인 앗수르의 심판 예언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사실 앗수르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
을 대적하는 사단의 세력의 쫓겨남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마 12:28 ; 눅 11:20). 따라서 앗수르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는 본장은 전 단락
(9:1-7)에 이어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구원 예
언은 바로 다음 11장의 '이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을 통한 구원 예언으로 이어지
고, 12장에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송'으로 그 절정을 이루게 되어 1-12장까지의
긴 예언 단락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는 본장은 (1)불의한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예언
(1-4절), (2)앗수르의 교만과 하나님의 심판(5-19절), (3)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향한
약속(20-23절), (4)시온을 향한 위로(24-34절)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에서 첫째
단락(1-4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후렴구가 발견된
다는 점에서(4절 ; 9:12,17,21)앞장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본장에 나타난 심판 예언은 북왕국과 함께 남왕국 유다까지도 포함시켜 온 이스
라엘에 포괄적으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보다 직접적
으로 예언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9:8-12), 두 왕국의 운명은 8:5이하에서
부터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
언한 이사야가 남왕국 유다에 보냄받은 선지자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지
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보냄받은 예언 사역의 주 대상국 외에 밀접하게 관련된 다
른 나라들에 대한 예언 사역도 함께 함을 생각할 때 별 문제가 안 된다. 더욱이 남왕
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은 근원적으로 모두 아브라함의 언약 안에 있는 한 나라이
기 때문에 남왕국에 보내진 선지자가 북왕국에 대한 것을 예언하거나(1:1 ; 2:1 ;
9:8-10:4) 북왕국에 보내진 선지자가 남왕국에 대해서 예언하는 것(암 1:1 ; 2:4,5)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멸망을
예언함으로서 전이스라엘 왕국에 경책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항은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사야의 역사관이다. 사실 앗수르의 영토 확장과 멸망 사건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는 하나님의 역사와는 무관한, 단지 한 강대국이 겪게 되는 흥망 성쇠의 자연스런 과
정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펴기 위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사용된 도구라고 이해한다.(5,6,15절).
이러한 해석은 역사의 진정한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독특한 역사관에 근거
하는 것이다. 세속 사가들은 역사의 주체가 인간 자신이라는 전제 위에서 역사를 기
술하지만 선지자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에 따라 역사의 진행에
유기적, 자발적으로 동참될 뿐, 진정한 주체자는 아니며 진정한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
이시라고 선포한다. 물론 역사 안에서의 인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강조할 때는 한정된
의미에서 인간도 주체의 역할을 감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
님 앞에서의 인간의 역할은 사실 수동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인
간은 역사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없다. 역사의 참된 해석은 결
국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것이다. 이사야는 본장에서 앗수르의 멸망
이 갖는 의미와 그 동기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평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상에서 정리한 사항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불의한 지도자들에 대한 심판 예언(10:1-4)

이스라엘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 계속되는 본 단락은 사실상 전장(9장)의 연속이
라고 볼 수 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교만과 골육 상쟁에 대해 질타한 후 이제
는 불의한 지도자들에게로 시야를 전환하였다. 사실 이스라엘의 범죄 중 그 지도자들
이 담당하고 있는 비중은 너무나도 커서, 이미 앞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다
(1:17,21-23 ; 3:13-15 ; 5:8,23 ; 9:16 ; 미 3:1-4,9-11). 이 같은 지도자들의 타
락은 남왕국이나 북왕국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사야는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불의를 낱낱이 고발했다. 즉, 그들은 불의한
법령(法令)을 제정,발표(發表)하고,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고, 의지할 데
없는 고아와 과부에게 약탈(掠奪)과 토색(討索)을 했다는 것이다(1,2절). 이사야는 동
시대에 살았던 아모스 선지자도 북왕국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타락에 대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
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암 2:6-8),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
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稅)를 취하였은즉...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휘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
는 자로다"(암 5:11,12)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3,4절). 이와같이 하나님께 범죄하는 행위는 반드
시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2. 앗수르의 교만과 그로 인한 심판 예언(10:5-19)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심판을 선포하던(9:1-10:4)선지자는 이제
분위기를 급격히 전환하여 갑자기 앗수르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앗수르는 자
신들이 하나님의 손에 들린 심판의 도구임(5,6,15절)을 잊어버리고, 마음이 교만하여
졌다. 그래서 허락된 범위 내에서 심판의 임무를 수행하려 하지 않고, 세계 재패의 정
복욕과 제국주의적 야심에 눈이 어두워 모든 나라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고 멸절시키
려 했다(7절). 또한 전복의 성취감에 도취되어 잘못된 자긍심과 자만심을 드러내
었다(8,9,13,14절). 심지어 주변의 모든 나라를 이긴 자신들이 모든 신들을 능가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36:19 ; 37:12 ; 삼상 4:5-8)살아계시고 참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무시하였다(10,11절). 이와 같은 앗수르의 교만은 신성 모독에 해당된
다(36:20).
그러므로 선지자는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마치
건장한 군사들이 병들어 하루 아침에 파리하게 되는 것처럼 그들의 모든 영광이 완전
히 소멸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바벧론(14:12 -20), 모압(16:6), 두로(23:8-12) 등
도 교만으로 인하여 동일한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앗수르는 하나님
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후 완악한 마음과 교만(12절)으로 말미암아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3.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향한 약속(10:20-23)

본 대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앗수르의 초라하고 비참한 최후와 대조적으로 이스
라엘의 남은 자가 경험할 큰 회복과 구원에 대해 묘사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이스
라엘의 남은 자들을 향한 신실한 약속을 반복하신다. 사실 앞 단락에서 언급된 앗수
르의 멸망은 곧 시온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대적이 멸망하는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구원이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실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고 있다(23절).

4. 시온을 향한 위로(10:24-34)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심판(5-19절)과 남은 자의 구원(20-23)을 말씀하신 후 본
단락에서 시온에 거하는 백성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신다. 이러한 내용은 남은 자를
향한 약속의 연장선 속에서 전개되는데, 하나님께서 시온을 향한 분노를 그치고 이스
라엘을 앗수르의 노략과 압제에서 해방시킨다는 약속이다. 선지자는 이러한 약속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햐여 사사시대 에브라임 지파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미디안 방백 오렙을 살해한 사건(9:4 ; 삿7:25)과 출애굽 당시 홍해를 건넌 모세가
지팡이를 내밀어 바다룸을 합하게 하여 애굽 군사를 수장시킨 사건(출 14:26-31)을 상
기시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앗수르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비록
앗수르가 무서운 기세로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지만(28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군대를 철저하게 멸망시켜 주신다(33,34절).
이러한 예언은 후대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성취되었다. 앗수르는 B.C.722년경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 시온은 넘어뜨릴 수 없었다. 비록 B.C.701년경 앗수르 왕 산헤립이 심 팔만 오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이사야의 예언대로 하루 아침에 모두 몰사하고 말았으며(37:30-38 ; 왕하 19:35), 그후B.C.612년에는 바벧론에게 완전히 멸망당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1)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인류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신다. 외견상 우연히 진행되는 것 같은 국가의 흥망 성쇠도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다. (2)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행동해야 하며,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웃들을 더욱 사랑으로 보살피고 도와줘야 한다(1,2절). (3)우리는 어떠한 결과를 도출했을지라도 앗수르처럼 교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15절 ; 시 115:1), (4)교만한 자는 반드시 패망하게 된다(시 101:5 ; 잠 6:16,17 ; 11:2 ; 16:18 ; 29:23 ; 벧전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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