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잠언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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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15-19에 전술된 교훈들이 재언급되는 본장은 6:20-35;7장과 함께 음행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기술한다. 지혜 ... 명철 - 본서에 나타나는 일반적 의미와 같이 이들은 모두 오랜세월과 연륜의 경험, 관찰 속에서 획득된 체험적, 실제적 지혜를(1:2 주석 참조) 가리킨다.

=====5:2
근신을 지키며 - '근신'( , 메짐모트)은 문자적으로 대부분 '악의적인 음모나 궤계'란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24:8). 그러나 여기서는 '신중하고 사려깊은 생각'(1:4;2:11 주석 참조)이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Delitzsch).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 본 문구는 '네 입술로 지혜의 교훈을 보호하고 전달하라'(Zockler) 또는 '네 입술은 옳고 합당한 하나님의 지식에서 나오지 아니하는 어떠한 것도 피하라'(Delitzsch)로 해석될 수 있다(시 17:3;말 2:7). 한편 여기서의 '입술'은 3:1에 나타나는 '마음'의 은유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저자의 시적 병행의 의도 속에서 3절의 '음녀의 입술'에 대한 대조적 형태로 쓰여진 것이다(Delitzsch).

=====5:3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 '음녀'에 대해서는 2:16, 17 주석을 참조하라. 성경에서 입의 말이 꿀처럼 달콤한 것으로 비유된 용례는 있으나(시 119:103), 입이나 입술 그 자체가 꿀로 비유된 용례는 없다는 점에서 '음녀의 입술'은 곧 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의미하며, 꿀이 벌집에서 흘러나오는 상태를 비유한 '꿀을 떨어뜨리며'는 곧 달콤한 유혹의말을 하는 상태를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이다(Toy). 따라서 본 문구는 육체적 의미에서의 말초적인 쾌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꿀이 달고 매혹적인 맛을 가졌듯이, 음녀의 관능적으로 유혹하는 말이 매우 달콤하여 일시적 쾌락을 자극한다는 의미이다.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 여기서의 '입'( , 히카) 또한 그 문자적 의미(8:7;욥 12:11;31:30;겔 3:26;호 8:1)보다는 '음녀의 입술'과 마찬가지로 음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기름보다 미끄러우나'는 '부드럽게 하다', '아름답게 하다'란 상징적 의미를(2:6;6:24) 가지는 바(Delitzsch), 본 문구는 음녀가 아첨과 유혹의 말로 음행의 죄악을 교묘하게 합리화시키며 그로 인해 판단력을 마비시켜 범죄하게 함을 의미한다(시 55:21).

=====5:4
음녀와 관계한 자의 비참한 결말이 3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기술된다. 나중은 - 이 말은 현세적인 쾌락과 범죄 뒤에 수반되는 궁극적인 심판의 의미를 함축한다. 쑥같이 쓰고 - 여기서 '쑥'( , 라에나)은 우리가 흔히 식용하는 '쑥'과는 다른 종류로서 단단하고 곧은 줄기에 가지가 많으며 둥글고 작은 열매와 흰색잎이 달린 높이 60cm 가량의 식물이다. 이는 쓰고 염분이 있어 근동에서는 독초로 알려져 있다(신 29:18;암 5:7;6:2;계 8:11). 한편 원어상 '쑥'이란 말에는 '저주'란 뜻이 함축되어 있는바, 이는 본절의 의미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70인역(LXX)은 이를 단지 '쓰다'는 의미에서 '쓸개'( , 콜레스)로 번역했다(gall, NIV).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 하다 케헤레브 피요트) - '양날에 날이 선 칼같이 날카로우며'가 더 원전에 충실한 해석이다(시 149:6;사 3:16). 여기서 '칼'은 원어상 '파멸'을 뜻하는 '하라브'에서 파생된 말인 바, 본 문구는 음녀와 함께한 결과가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과 같은 죽음임을 보여준다(Delitzsch).

=====5:5
본서의 저자는 음녀와 음행에 관한 구절을 언급할 때마다 계속해서 같은 경고를 발함으로써(2:18;7:27), 음행으로 인한 죄의 엄중한 심판을 강조하고 있다(2:18 주석 참조).

=====5:6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 '평탄한 길'( , 오라흐)은 문자적으로 사람들의 잦은 왕래가 있어 그 안전함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갈을 가리키며, '찾지 못하며'( , 펜테팔레스)는 '준비하지 못하다', '예비하지 못하다'란 뜻을 나타내는 바, 본 문구는 특히 '못하며'( , 펜)가 보다 강한 부정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욥 32:13), 음녀의 죄악된 삶은 결단코 생명과 안전이 보장된 길을 예비할 수도 없고 따라서 그러한 길에서 완전히 제외된 대상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Delitzsch, Gesenius, Holden, Luther, Zockler).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도 - '든든치 못하여도'( , 나우)는 '비틀거리다', '방랑하다'란 뜻을 가지는 바(시 107:27;사 24:20;29:9;렘 14:10;애 4:14), 이는 올바른 삶의 목적과 그 방향을 상실한 채, 궁극적인 귀착지가 음부인 죄된 길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Wordsworth).

=====5:7
2:1 주석을 참조하라.

=====5:8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 건강한 사람이 격리된 전염병 환자를 대하듯이 철저하게 음녀와 가까이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이는 곧 죄(음행)의 무서운 전염성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5:9
음행에 대한 엄중한 심판적 결과가 현재적(9, 10절), 종국족(11-14절) 측면에서 기술되고 있다.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 여기서 '존영'( , 호드)은 문자적으로 '아름다움', '영예'란 뜻을 가지나 본절 속에서 이는 청년에게서만 찾아볼 수있는 '청순함', '순수함'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단 10:8;호 14:6). 따라서 본 문구는 그러한 청년의 이미지가 음란의 범죄로 말미암아 공공연하게 퇴색되고 상실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Zockler). 네 수한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 '수한'은 문맥상 아름다움과 패기, 힘등이 절정에 이르는 청년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원어상 집단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잔포자'( , 레아케자리)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음녀의 추종자들을 지칭하는 바, 이들은 유혹된 대상을 완전히 영적, 육적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고자 혈안이 된 자들이다.

=====5:10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 '재물'( , 코아흐)은 원래 '힘'을 뜻하나 여기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청년이 수고하여 얻은 돈과 재산을(욥 6:22;호 7:9)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Delitzsch). 또한 '타인'( , 자림)은 위에서 언급된 '음녀와 그 추종자들'을 가리킨다. 청년이 애써 수고하여 얻은 재물이 그가 음녀의 유혹에 빠짐으로써 일순간에 상실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는 본 문구는 음행의 결과가 청년에게 있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의 일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6:26). 한편 하반절은 상반절과 병행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5:11
현세적, 가시적 파멸(9, 10절)에 이어 삶의 종국에 닥칠 파멸을 기술한다. 네 몸, 네 육체가 쇠패(衰敗)할 때에 - 여기서 '몸'( , 바사르)은 단순히 '살덩이'(욥 31:31)를, '육체'( , 쉐에르)는 뼈와 조직을 포함한 '육신'을 가리키는 바, 이들은 곧 현세적 삶에 대한 시적 병행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인간의 현세적 삶의 마지막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탄하여( , 나하메타) - 이는 원어상 '바다의 요동함'(사 5:30), '사자의 울부짖음'(28:15), '사람들의 애통함'(겔 24:23)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여기서는 명백한 목적없이 정욕과 방종 가운데 지낸 죄악된 삶에 대한 절망적인 탄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Delitzach).

=====5:12
1인칭 어법으로 그 삶에 대한 회한이 자괴적인 탄식으로 기술된다. 훈계 - 1:2 주석을 참조하라. 꾸지람 - 3:12 주석을 참조하라.

=====5:13
청종치 ... 귀를 기울이지 - 이들은 모두 '주의깊게 듣고 순종하다'란 원어상의 의미를 가지는 바(신 26:14;삼하 12:18), 본절은 피교훈자의 타락과 그로 인한 절망이 결코 교훈자의 훈계나 인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욕에 눈이 멀어 말씀을 배격하고 순종치 않은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5:14
많음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 베토크 카할 웨에다) - 여기서 '카할'은 특별히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회중)을( , LXX), '에다'는 일반적인 군중들의 모임(집회, , LXX)을 각각 가리키나 여기서는 특별한 구분없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을 강조하기 위해 두 단어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진다(Delitzsch). 한편 이 말들은 성경에서 백성을 재판했던 70인의 장로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기도 하였다(민 25:7;35:12). 모든 악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 곧 많은 사람들 중의 한 구성원으로 속해 있으면서도 그 악행을 자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종류의 종교적, 도덕적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됨을 가리킨다. 한편 죄클러(Zockler)는 여기서의 '악'을 죄악의 결과로 파생되는 '형벌'의 의미로 파악해(출 5:19;삼하 16:18;사 10:6 참조) 본절을 '많은 군중들 앞에서 그 죄악에 따른 치명적인 보응을 받게 되었다'란 뜻으로 해석한다.

=====5:15
음행에 대한 엄중한 심판적 경고를 기술한 데 이어 저자는 아가서에 나타나는 바와 같은 에로틱한 비유들을 통해 건전하고 순결한 결혼 생활을 권고하고 있다(15-19절). 네 우물에서 ... 네 샘에서 - 고대 근동에 있어서 '샘'과 '우물'은 매우 소중한 자산 중의 하나로 여겨졌기에 이 말은 유다 지파(사 48:1) 또는 이스라엘(민 24:7) 등에 비유되기도 하였던 바, 여기서 아내를 '샘'과 '우물'에 비유한 것은(아 4:12) 아내에 대한 소중함을 특별히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마시며'( , 쉐테)란 말 속에는 본능적인 욕구의 충족이란 뜻이 함의되어 있는바, 본절은 정상적인 부부 사이의 건전한 성생활을 권면하는 것으로서 순결하고 깨끗한 성생활은, 건강에 유익한 맑은 샘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비유하고 있다(고전 7:9).

=====5:16
네 샘물을 ... 네 도랑물을 - 본절은 학자들 간에 다양하게 해석되어진다. (1) '샘물'가 '도랑물'을 부부 관계를 통해 얻은 '자녀'들로 보고 그들의 선한 행실이 풍성한 물줄기처럼 넘치게 될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Aben Ezra, Holden, Wardlaw). (2) '샘물'과 '도랑물'을 남편의 힘, 곧 '생산력'으로 보아 그러한 생산력을 오직 결혼 관계 안에서만 행사할 것을 반어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Delitzsch). (3) 전후 문맥과는 연결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샘물'과 '도랑물'을 모두 아내에 대한 비유로 보아 '네 아내를 순결한 결혼 생활 안에만 숨겨두라'란 뜻으로 이해한다(Origen, LXX). 본 문구는 (3)의 해석에 근거할 때 음행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합법적으로 맞아들인 아내의 소중함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5:17
그 물로 ... 나누지 말라 - 16절의 내용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본절은 또한 16절의 견해들에 따라 그 해석이 상이하다. 곧 (1)의 견해에 따를때 본절은 '합법적인 결혼 생활 속에서만 네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라, 결코 부정한 성관계를 통해 자녀들을 낳아 집 밖에 두는 일이 없도록 하라'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2)의 견해는 '네 본능적인 욕구를 결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통해 충족시키지 말라'란 뜻으로 해석된다. 한편 가장 타당한 (3)의 견해에 의거할 때 본절은 합법적인 아내와의 충실하고 순결한 결혼 생활을 재삼 강조하여 권고하는 내용으로 이해된다.

=====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 여기 '네 샘'( , 마코레카)은 '아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 문구는 자신의 아내로 하여금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이다(Bertheau, Delitzsch, Zockler). 여기서는 자녀의 출산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겼던 히브리인들의 축복 개념이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창 30:1-8).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 여기서 '젊어서 취한 아내'는 '젊음의 아름다운 소산으로 네게 준 아내'(Umbreit), 또는 '네가 젊을 때 결혼한 아내'(Delitzsch)를 가리킨다. 그러한 아내와 평생을 같이 하면서 그 안에서만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라는 교훈이다.

=====5:19
유일한 사랑의 대상인 젊은 아내의 매력과 아름다운 특성을 그러한 속성을 지닌 동물들에 비유해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아 4:5;8:14). 사랑스러운 암사슴( , 아옐레트 에하빔) - 여기서 '아옐레트'는 성숙한 영양(羚羊)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셈족에게 있어서 우아한 다리와 아름다운 눈 때문에 사랑스런 여인의 상징으로 곧잘 비유되어 왔었다(Delitzsch). 또한 '에하빔'은 에로틱한 의미에서의 이성적 사랑을 나타내는 말이다(7:18). 아름다운 암노루( - , 야엘라트헨) - '야엘라트'는 '기어 올라가는 것'( , 야알)이란 말에서 파생되어 '야생 염소'를 가리키는데 그 우아한 모습으로 인해 고대 근동에 있어서 연애 대상에 대한 탁월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하는 데 보편적으로 비유되어 왔다(Zockler). 또 이 동물은 아랍과 페르시아의 시문헌에서도 많이 보여진다(Umbreit).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 '품'( , 다데이하)은 원어상 사랑의 처소로서의 '유방'을 가리키며(겔 23:3, 8, 21), '족하게'( , 예라우카)는 '갈증을 풀만큼 흠뻑 마시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이는 아내의 사랑이 그 남편으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만족으로 흡족시켜 줄 것이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편 70인역(LXX)은 이런 에로틱한 표현을 피하여 원전의 의미를 많이 희석시키고 있다. 연모하라( , 티쉐게) - 이는 '취하다'란 뜻의 동사 '솨가'( )에서 유래된 것으로(20, 23절;22:1;사 28:7), 부부는 마땅히 서로에 대해 술에 취하듯 취해야 한다는 것, 곧 부부간에 지고(至高)의 행복감을 얻게 하는 열렬한 사랑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Delitzsch).

=====5:20
저자는 본장의 내용을 피교훈자에게 다시 한번 주지시키려는 의도에서 합법적인 부부 생활의 유익성(15-19)을 기술한 직후에, 무익하고 맹목적인 정욕에의 탐닉에서 파생되는 음행의 부당성을 반어법적으로 재차 강조하여 지적하고 있다. 음녀 ... 이방 계집 - 2:16 주석을 참조하라.

=====5:21
피교훈자에게 합법적으로 결혼한 아내의 순결함과 소중함을 들어 음행의 부당성을 지적한 저자는 이제 최종적으로 이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죄(음행)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 곧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로 귀착시켜 음행의 부당성을 종교적 의미에서 강도높게 설파하고 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 여기서 '사람의 길'( , 다레케 이쉬)은 각 사람들의 삶의 여정, 또는 개개인의 행동 양식을 가리키며, '여호와의 눈'( , 에이네이 예화)은 모든 피조물을 감찰하시는 하니님의 신적 능력에 대한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이다. 인간의 행위와 그 모든 삶의 행적을 하나님 앞에서 여실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곧 '주의 눈은 악한 자와 선한 자를 살피면서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15:3)는 말씀처럼 피조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된 행위를 조금도 은폐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욥 24:23;31:4;34:21;렘 16:17;32:19;호 7:2;히 4:13). 실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유지 없이 어떠한 참된 삶의 목적과 방향도 설정할 수 없으며 바른 종교적, 도덕적 행위 능력과 판단력도 소유할 수 없다. 오직 '여호와의 눈'을 의식하고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영위할 때에야 만이 진정한 구원의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본절과 내용상 연결에 있어 본 문구는 음행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성한 부부관계를 파괴시키는 비윤리적 죄악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엄히 금하신 계명임을 상기시키고 있다(출 20:14). 평탄케 하시느니라( , 메팔레스) - 이 말은 원어상 '평탄케 하다'(6절; 4:26), '정확히 헤아리기 위해 저울에 달아보다'(Buxtorf, Gesenius) 등의 뜻을 가지며 여기서는 후자의 견해가 더 합당한 듯하다(pundereth, KJV). 곧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와 그 마음의 숨은 동기를 헤아리시며 선악 간의 모든 일을 판단하신다(벧전 2:23;계 20:13 참조).

=====5:22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 1:16, 17과 유사한 표현으로 여기서 '걸리며'( , 일레케두노)는 '그물이나 함정, 덫에 걸려 잡힌다'는 뜻이다. 곧 자신의 악한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정을 행한 자는 결국 그 죄에 대한 엄중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자는 현세적으로는 스스로 인격적 파탄의 지경에 이르게 되며,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없게 된다(마 26:52; 계13:10).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 상반절과 그 의미상 병행을 이루는 구절이며 여기서 '줄에 매이나니'( , 베하벧리 이타메크)는 견고한 올가미에 강하게 동여맨다는 뜻으로 이러한 매임은 곧 죽음과 직결되는 것이다(1:31, 32; 11:5; 18:7; 29:6; 시 7:15;40:12;사 5:18;요 8:34;벧후 2:19).

=====5:23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 여기서 '받지 아니함'( , 베인)은 원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본 문구는 '훈계가 없어서 죽겠고'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진다(shall die without instruction, KJV). 그러나 이러한 문자적 해석은 마치 음행을 행한 자가 교훈자의 훈계를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범죄한 것처럼 내용을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받지 아니함'은 이미 주어진 훈계를 배격하고 순종하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Vulgate, Umbreit). 곧 본 문구는 음행자가 교훈자의 간곡한 훈계를 듣지 않고 자의적으로 범죄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영멸의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리라는 뜻이다.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 '미련함'( , 이웰레토)은 '완악하고 어두운 마음'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자제할줄 모르는 육체적 정욕을 가리키며(Delitzsch), '혼미하게 되느니라'( , 이쉐게)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19, 20절)란 뜻을 가지는 바, 본 문구는 술에 취해 자신의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이는 어리석은 자처럼 교훈자의 훈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정욕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정도(正道)를 이탈해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음행자의 비참한 말로(末路)를 여실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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