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1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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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
악인(* , 아담 라) - 단수이지만 복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집합적 단수 명사이다. 이것은 다음절에 있는 복수형과 조화를 이룬다 하겠다.
나를 건지시며(* , 할르체니) - 이는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으로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는 상황을 암시한다. 이 사실 때문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학적 양식을 중시하는 비평가들은 본 시편을 '개인적 비탄시'(indivisual lament)로 분류하고 있다(Anderson). 그러나 본시의 전체적 분위기나 내용은 오히려 저주시에 가깝다.
강포한 자(* , 이쉬 하마심) - 문자적인 뜻은 '폭력의 사람'(삼하 22:49)인데, 이 호칭은 반복적으로 범법을 일삼고 악행을 되풀이하는 사람, 그래서 악행이 하나의 성품처럼 되어버린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명과 같은 것이다. 다윗 시대에 그 같은 별명에 걸맞는 사람으로는 사울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고 많은 학자들은 본절의 '강포한 자'를 사울 혹은 사울 일행으로 본다(Barnes).

=====140:2
저희가 중심에 해하기를 꾀하고(* , 아쉐르 하쉬부 라오트 벧레브) - 직역하면 '그 마음들 속에 해로운 악들을 상상하였던(자들)'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바로 앞절의 악인을 수식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사울은 때로 겉으로는 다윗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했으나 그 근본 동기는 다윗을 해하는 데 있었다(삼상 18:17). 또한 '저희'라고 하는 복수형은 한 중심 인물인 사울 아래 여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악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방안들을 모의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 칼 욤 야구루 밀르 하모트) - 어순(語順) 그대로 직역하면 '모든 날들에 그들이 전쟁을 위하여 모이며'이다. 여기서 '모든 날들'이란 '날마다', '계속적으로'를 의미하고, '모이며'는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하여 여러 날 동안 함께 체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여 재번역하면 '계속적으로 악인들은 전쟁할 목적으로 여러 날 동안 함께 체류하며'가 되겠다. 물론 여기서 '전쟁'은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문맥상 한 대상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로 보는 것이 낫겠다.

=====140: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 여기서 뱀의 이미지가 사용된 것은 우선 피부를 꿰뚫을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뱀의 혀 때문인 것 같다(58:4;64:3). 그러나 오늘날 익히 알려진 사실대로, 뱀에게 물리는 것이 치명적인 이유는 그 뿌리(근원)에 작은 독주머니가 달려 있는 뱀의 이빨 때문이다. 뱀이 어떤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이빨 속에 나있는 작은 관을 통해 독이 그 사람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루어 볼 때 본절이 강조하는 대상은 뱀의 독과 같은, 악인의 입에서 뱉어진 악한 말이 되겠다.

=====140:4
나를 지키사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강포한 자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 외관상의 변화는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1절의 반복으로 보여지는 구절이다. 그러나 여기서 '악인'은 원문상으로는 1절의 '아담 라와'(* )와는 다른 '라솨'(* )가 쓰였다. '라솨'(1:1;28:3;92:7)는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이란 실존적 의미가 없는,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죄란 한두 행위가 아닌 삶 그 자체가 죄인 자를 주로 가리킨다(Rengstorf).
저희는 나의 걸음을 밀치려 하나이다(* , 아쉐르 하쉬부 리드호트 페아마) - 직역하면 '나의 발걸음들을 옆으로 밀치려는 목적을 가졌던 (자들)'이다. 이는 앞의 '악인'을 수식하는 구절이다. 한마디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진행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118:13은 동일한 구절을 '나의 발걸음을 뒤집어 엎는 자들'로 번역하고 있다.

=====140:5
교만한 자(* , 게임) - '모르다', '치솟다' 등을 뜻하는 '가아'(* )로부터 유래한 '게임'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자신들을 치켜세우는 자들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123:4;욥 40:11, 12;사 2:12;렘 48:29). 이들의 죄의 특징은 단순한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까닭에 이들의 대인 관계는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자기 중심적인 계획만을 실천하려고 애쓰게 된다. 시편 기자가 본절에서 '게임'을 사용한 까닭은 그 대적들이 단순히 자신에게 해로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뜻만을 관철하려는 자들인 것을 고발하기 위함인 것 같다. 성경에서 이러한 자들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하여 덫을 놓고 그물을 치는(9:15;31:4;119:110) 사냥꾼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시편 기자들은 한 개인에 대한 다수의 대적들을 묘사할 때 이 같은 비유적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9:15;31:4;35:7;64:5;141:9;142:3).

=====140:6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하였나이다 - 대적인 교만한 자들의 음모를 고발한 후에 터진 이 고백은 대적의 음모로 인한 위험 속에서 하나님에게만 피난처를 찾으려는 신앙 고백으로 볼 수도 있으나, 바로 앞절에서 살펴본 대적의 특성과 대비되는 시편 저자의 특성을 알려주는 내용으로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여호와를 여호와로 인정하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본절은 여호와에 대한 저자의 충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는 나의 하나님 - 이는 7절의 '주 여호와'와 평행을 이루는 표현이다. 시인인 보호를 요청한 분은 다름 아닌 당신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신 '주'요,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요 또한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셨다(VanGemeren).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호와 변호를 요청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언약 관계 때문이다. 우리는 언약 관계를 상기하고 하나님을 부르는 경우를 시편 곳곳에서 볼 수 있다(16:2;31:14;52:5; 113:5).

=====140: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 '주'는 만물을 주재하는 초월적인 통치자를 뜻하는데 기자는 바로 하나님의 그와 같은 속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구원의 힘'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나오는 호칭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고통당하는 자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다.
전쟁의 날(* , 욤 나쉐크) - 문자적인 뜻은 '무기(혹은 권투)의 날'이다. 이는 성경에 한번만 등장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날'로 이해하는 학자도 있으나(Kraus), 문맥을 고려하여 '전쟁의 날'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왕하 10:2;겔 39:9, 10).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 - 하나님은 흔히 위경(危境)에 처한 자의 머리를 방패나 투구 등으로 보호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3:3;사 59:17;엡 6:17;살전 5:8).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신체 부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 머리, 곧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140:8
여호와여 악인의 소원을 허락지 마시며 - 말하자면 시편 기자를 파멸시키려는 악인의 계획들이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해달라는 간구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악하고 교만한 자의 악한 음모를 좌절시키는 분이시다. 사악한 자들이 거만한 야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하지만,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그들로 말미암은 혼란 상태를 오래도록 방치하지는 않으신다는 확신이 이 간구에 깔려 있다. 이러한 확신에 근거하여 시인은 간구의 정도를 넘어 담대히 저주를 선포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9-11절).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하소서 - '악한 꾀를 이루다'는 '제마모 알타페크'(* )이며 '악한 계획을 증진시키다'는 뜻도 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원하는 바는 개역 성경의 문자적인 뜻처럼 악한 계획이 실천에 옮겨져 성공을 거두는 것을 막아 달라는 뜻뿐만 아니라 악한 계획 자체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발전되지 않게 해달라는 의미도 아울러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40:9
나를 에우는 자가 그 머리를 들 때에 - 원문상 본문은 '나를 에워싼 이들의 머리'(* , 로쉬 메시바)라는 뜻인데, 70인역(LXX)과 제롬역(Jerome), 그외 대다수의 현대 주석가들을 좇아 개역 성경은 앞절 마지막 부분의 '그들이 쳐들었다'(* , 야루무, 개역 성경은 '저희가 자고할까'로 옮김)를 본 구절 앞에도 붙여서 이같이 번역한 것 같다. 기자를 둘러싼 대적들이 그 머리를 들었다는 것은 그들이 계획한 음모를 구체적인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는 시편 기자를 대항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위였다(5절 주석 참조).
저희 입술의 해(害)가 저희를 덮게 하소서 - 기자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계획되었던 대적들의 악한 계교가 그들 자신에게 임하게 해달라는 소원이다. 그 해악을 '입술의 해'라고 한 것은 저자를 파멸키 위한 모든 계획은 모든 대적들의 입을 통해 의논되고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기 때문이다.

=====140:10
뜨거운 숯불(* , 게할림 바에쉬) - 문자적인 뜻은 '불 속에 있는 숯불', 말하자면 맹렬히 타고 있는 숯불을 가리킨다(그리스 사본, 제롬역, 대부분의 영역본). 본절 상반절은 시편 기자가 소돔과 고모라 기사로부터 추론한(창 19장) 신적(神的) 징벌의 상징적 묘사로 볼 수도 있겠다.
깊은 웅덩이(* , 마하모로트) - 구약 성경에 단 한번 등장하는 단어로 그 의미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BDB(Hebrew English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by F. Brown, S. R. Driver and C. A. Briggs, 1907) 사전은 심마커스역, 탈굼역, 제롬역 등의 지지를 받는 '홍수'로 번역하고 있고, 우가릿역은 지하 세계의 한 구역을 가리키는 '진흙탕'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다훗(Dahood)은 우가릿역과 유사하게 '진흙 투성이의 깊은 곳'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상의 번역들은 히브리어가 속한 어군(語群)인 셈족어군에서 유사 개념을 찾으려고 하는 동일 어군 중시적 접근의 소산인데 이 같은 접근보다는 성경 다른 곳에서 유사 개념을 찾는 성경 중심적 접근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본 용어가 포함된 하반절의 의미를 고려할 때 이 용어는 고라와 그 왕이 빠졌던(민 16:32), 혹은 소돔과 고모라의 왕들의 추종자들이 빠져 몰사하였던(창 14:10) 구덩이를 연상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하기 위하여 본 기자가 창 14:10 혹은 민 16:3 등에서 따온 용어가 아닌가 여겨진다.

=====140:11
악담하는 자(* , 이쉬 라숀) - 문자적인 뜻은 '입술(혀)의 사람'인데 여기서는 욥 11:2에서와 같이 '말이 많은 사람'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3절에서와 같이 '비난이나 중상 모략을 잘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참조로 '라숀'(* )은 '혀를 날름거리다', '핥다', '헐뜯다'는 뜻인 '라솬'(* )에서 유래된 명사이다.

=====140:12
내가 알거니와(* , 야다티) - 화자(話者)의 확신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6절의 '내가...말하기를'이란 표현과 병행을 이룬다. 저자는 비을 거쳐(1-5절) 여호와의 보호하심에 관한 담대한 확신을 피력한 바 있거니와(6-8절), 이제 또다시 대적들을 향한 강조 높은 저주를 거쳐(9-11절) 여호와의 섭리에 관한 더욱 강한 확신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VanGemeren). 이 확신은 그의 백성을 위해 이전에 베푸신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에 관한 지식에 근거한다(20:6;56:9).

=====140:13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 '주의 앞에 거한다'는 말은 주의 보호 아래 있게 된다는 뜻이고 그의 축복과 은총을 받게 된다는 뜻이며(11:7;31:20), 또한 악한 자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를 예배하고 종국엔 그분의 땅에 거하게 된다는 뜻이다(11절). 문맥상 '정직한 자'란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고 악인들에게 불법적인 박해를 받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므로 대인 관계가 곧바르고 성실한 자를 가리킨다. 바로 이러한 자가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를 받고 그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본시는 강포하고 사악한 원수들의 박해로부터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애절한 간구가
드러나 있다. 시인은 사악한 악인들의 횡포와 술수에  대해 탄원하여 하나님의 보응을
촉구한 후 이어서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가 감사를 표명한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서 악
인의 궁극적 패망을 확신하고 아울러 하나님의 은총을입은 자들의 영원한 소망을 기억
하며 위로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34:15;95:1, 2;마13:42).
   본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는없다. 다만 다윗이 악인의 잔인성, 반
역 행위 등을 호소하며 악인의 멸망과 하나님의 도움심을 갈망한 점으로 볼 때 다윗이
악한 무리로부터 도피하던 시기임은 분명하다. 아마도 다윗이 왕이 되기전 사울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도망한 때였거나 아니면 왕으로 즉위한 후 아들압살롬의 반역으
로 인하여 도주하던 상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본시는 시편의 분류상 악인들의 멸망을 기원하는 '저주시'라고볼 수 있다. 다
윗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죄악을 대단히 미워하였으므로 악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도
록 기도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 이전에 등장하는 보복법의 전형으로서 우리들에
게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도록 촉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여기서 환난과 핍박받는 다윗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볼 수 있
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육신하며 숱한  고난을 겪은 후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이러한 메시야의 대속적 고통은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미리 예표되었다.
더구나 다윗이 원수들의 박해에 대하여 인간적인 힘과 노력으로 대항하지 않고 하나님
께 기도했던 사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와 방불하다.
   본시는 내요에 있어서  1 악인의 횡포에 대한 호소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신뢰가
드러나는 전반부(1-7절)와 2  하나님의 저주에대한 간구가 나타나는 후반부(8-13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좀더 자세하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
        | A.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호소(1-5절)      |
        |   B. 믿음의 고백(6, 7절)             |
        | A'. 악인의 심판과 저주에 대한 호소(8-11절) |
        |    B'. 믿음의 고백(12, 13절)               |
        +--------------------------------------------+
   이제 본시를 몇 단락으로 나누어 좀더 심층적으로 고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악인으로부터의 보호를 탄원(140:1-5)
   악인들의 횡포와 올무에서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애원하는 다윗의 기도가 들어있는
본연은 1 강포한 자로부터의 구출을 위한기도(1절) 2 다윗을 해치려는 악인의 모략(2,
3절) 3 구원을 위한 간구(4절) 4 악인의 음흉한 모략(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대적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처리하시도록 간구
한다.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난 후 수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당
했다. 원수들은 날마다 다윗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악한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마
치 맹독을 품은    독사와 같이 다윗을 파멸시키려고 광분하였다. 마치 사냥꾼이 동물을
잡으려고 무성한 수풀 속이나 잡목 또는 거치른 산 언덕에 함정과 덫과 그물을 치듯이
교묘한 술책을 사용하여 걸려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5절).
   그런데 이러한 고난은 다윗의 잘못에서 기인하지않고 철저히 악인들의 패역한 마음
에서 출발한 것이다. 다윗은 특별한 이유도없이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고 있다. 이와같
이 악인들은 하나님을 미워한 결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온
갖 방책을 꾸민다(잠21:10).
   이처럼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결코 인간적인 수단이나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기도하였다. 악인의 거
듭괸 추격에도 대항하지 않았고 끝까지 피할 뿐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태도를 보면서 모든 문제에  직면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단3:12-28). 악인들이 아무리맹공을 퍼붓는다고 할지라
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결코 털끝 하나라도 상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
나님의 인도를 받음으로써 우는 사자와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는 사단과 세상의 악인들
의 유혹을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119:11, 105;벧전5:8).

        2. 믿음의 고백과 저주의 호소(140:6-11)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고 공의를회복하도록 간구하는 본문(6-11절)은 1 신뢰와
고백(6-8절), 2 심판에 대한 간구(9-11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서 과거에자기를 전쟁터에서 구원하셨음을 상기하면서 현재의
위험과 상황에서도 구원해 주실 수 있음을 신뢰하고 있다(6절). 다윗은 하나님만이 자
신의 방패와 보호자가되시며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구원자이심을 확신하면서 겸손
하게 기도하였다. 특히 언제대적들의 칼날 앞에 죽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위태로운 전
쟁터에서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를 수없이 경험한 다윗은(7절)당면한 위협 속에서도 두
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한 소원을 억제하시고 그들의 잘못된 목적과시도를 근본적으로 제압하시도
록 기도하였다(8절). 왜냐하면 악인들의 성공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성도들을 오만하게
대하는 태도를 정당화해 주기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악한 음모
와 술수를 적당한 때에 정당화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
악한 음모와 술수를 적당한 때에 꺾어버리시는 분이심을 믿고(렘49:30;단6:17-24)사랑
과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어서 다윗은자기를 위협하는 악인들에게 여호와의 재앙
이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9,10절). 시인은 대조적으로 자신의 머리는 하나님의 특
별한 보호를 받는 반면 악인들의 머리 위에는 숯불이 떨어지도록 간구하고 있다. 다윗
은 악인들이 타인을 향해 퍼붓는 악인들의 머리위에는 숯불이 떨어지도록 간구하고 있
다.  다윗은  악인들이 타인을 향해 퍼붓는 저주가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지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9절). 즉 대적자들이 소돔과고모라가 유황불(창19:24, 25)에 의해
멸망당했던 것처럼 완전히 패망하여 쓰러지도록 간구한다(105:33-35;잠13:6,21, 22;겔
18:20;살후1:9).  왜냐하면  악인들은  남을  향하여 주저(10:7), 궤사(144:8),  거짓
(63:11), 악한 말(50:19) 등을  퍼붓고도 절대로 뉘우치지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다윗은 악인들의 궁극적 심판을 기원문의 형태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시인의 확신은  창3:15에 나오는 '원시 복음'을 연상시켜준다. 다윗은
여기서 장차 오실 여자의 후손,즉 메시야가 사단의 머리를 완전히 파괴하여 결정적 승
리를 쟁취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악인의 세상에서 외적으로
번영하고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다(1:4;욥21:18). 2
의인의 환난과 시험을 겪을지라도 반드시 최후 승리를얻게 될 것이다(마10:22;눅21:8;
약1:12).

        3. 구원에 대한 신뢰와 확신(140:12-13)
   앞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에 대한 호소와 함께 악인의 심판에대해 확신하고 간구하던
다윗은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신뢰하며 감사하고있다. 본 단락에서는 악인
들의 멸망을 간구하고 호소하던 거룩한 분노가 어느정도 가라앉고 하나님 공의를 바라
보는 명랑하고 밝은분위기가 전재된다. 다윗은 어둡고 우울하던 현실에서 벗어나 하나
님을 바라봄으로써 즐거움을 회복하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부각시키려고 노려한다.
   시인은 특별히 마지막 부분에서 정직한 자가 궁극적으로 구원의 은총을받고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하며, 오직의인만 하나님의 기업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
한다(16:11). 성도는 장차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  서서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주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악인들은 최종적인 심판을 받고 처절하게 멸망하게 될 것
이다. 다윗은 하나님게서 의의 재판관으로서 선하고 정직한 자들을 격려하시고 사악한
자들은 징벌하시는 분임을 거듭천명한다.
   이와 같은 다윗의 선언은 경건한 자들이 비록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음을 드러내준다. 성도들이순수한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받는  핍박은 결코 영혼을 멸망시킬 수 없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는 자유와 평화는 어떠한 세력도  찬탈해 갈 수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순수한 하나님의 인도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시험을 훌륭하게 이겨낼 수 있다. 아울러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눈물과 슬픔과 죄가 전혀없는 감사와 찬송과 축복의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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