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78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8:1
내 백성이여 - 시편 기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는 말이다. 기자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 부름은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위임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위임 권위로 이스라엘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위임 권위를 가진 교사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훈하고자 하고 있다.
내 교훈을 들으며 - 여기서 '교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기본어는 '토라'(* )로서 '야라'(* , 흐르다, 가리키다, 가르치다)에서 유래되었다. 흔히 구약 성경에서는 '율법'(19:7;레 26:46;신 1:5), '법'(105:45;민 5:29;6:21) 등의 의미를 지니며, 드물게 '교훈'(잠 13:14;사 42:21)으로도 번역되었다. 영역본 KJV에서는 '법'(law)으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나 문맥상 한글 개역 성경처럼 '교훈'이란 의미로 보는 게 더 타당한 듯하다(Anderson). 한편 '들으며'(* , 아잔)는 '귀를 펴다', '귀를 기울이다'(incline your ears, KJV, RSV)의 뜻이다. 본문에서는 교사로서의 기자의 교훈을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들으라고 촉구하는 의미이다. 이는 고대의 다양한 시들의 서두를 장식하는 말(창 4:23;삿 5:3) 또는 지혜로운 교사의 교훈을 들으라는 시작의 말(49:1;잠 7:24;사 28:23)로 자주 사용되었다.


=====78:2
비유를 베풀어서 - '비유'의 히브리어 '마솰'(* )은 '지배하다', '같게 하다', '닮다' 등의 기본 의미를 지니는 말로 '우월성'의 뜻도 있으나 '유사함', '같음', '비교', '비유', '잠언' 등의 다양한 뜻을 갖는다(잠 1:1). 본문에서는 '비유'(comparison)의 의미로 사용되었다(Dahood). 저자는 본시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제시하고자 하고 있다.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 '비밀한 말'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히다'(* )이다. 이것은 '후드'(* , 매듭을 매다, 수수께끼를 풀다)에서 유래된 말로 '수수께끼'(삿 14:12, 13;겔 17:2)를 뜻한다. 그러나 히브리 사회에서 수수께끼란 단순히 말풀이나 어떤 놀이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위의 것들을 통하여 그 속에 내재된 진정한 지혜를 드러내는데 그 주목적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도 전도자가 말하는 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정한 지혜의 교훈을 전하고자 함을 암시한다 하겠다. 한편 '발표하리니'의 히브리어 '나바'(* )는 '용솟음쳐 나오다', '발하다'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기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도록 청산 유수처럼 지혜의 말을 하는 것을 말한다.

=====78: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전한 바라 -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조상들에게 전해 들은 것으로서 전혀 사실성이 없거나 근거가 결여된 허황된 것이 아님을 제시해 주는 말이다. 신약에서는 사도 요한이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요일 1:1).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과거의 신앙적 교훈 또는 사건들을 그 후손에게 전함으로 그들 가운데 존재하는 여호와 신앙을 계속 유지하며 맥을 이었다(출 12:26, 27;수 4:6, 7).

=====78:4
여호와의 영예와...기이한 사적 - '영예'의 히브리어 '테힐라'(* )는 '찬미', '찬양'을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복된 일들을 나타내신 결과 찬양받으실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영역본 NIV는 이를 '찬양받으실 만한 행동들'(the praiseworthy deeds)로 의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 단어가 '찬양'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행동'(the glorious deeds)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주장하여 후자와 같이 번역한 RSV를 선호하기도 한다(Anderson). 한편, '능력'(* , 에주주)이란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전쟁 중에 이스라엘의 대적들에게 대적하시고 그들을 진멸하시는 힘,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VanGemeren). 또한 '기이한 사적'(* , 팔라)이란 '기적', '놀라운 일들'을 뜻한다(wonders, RSV, NIV). 이는 11절에서는 '기사'(wonders, KJV, NIV; miracles, RSV)로 번역되고 있다.

======78:5
증거를 야곱에게...법도를...정하시고 - '증거'(* , 에두트, 증언)나 '법도'(* , 토라, 율법, 법)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말이다. 전자는율법이 공의와 사랑의 법칙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한다는 의미에서 쓰여진 말로보인다(출 32:15;34:29;신 6:20). 그리고 후자는 율법이 사랑과 공의의 법칙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1절). 한편 본문에서'야곱'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키는데, 이는 야곱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조상의아버지로서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인데서 연유된 듯하며(창 29:31-30:24;32:28;35:10),특히 이스라엘 족속이 열두 지파로 구성된 유기체적 존재 또는 야곱처럼 연약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 하나님께서는 모세 율법을 당시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후손들에게 계속 전하게 함으로써 여호와의 신앙을 존속케 하셨다(신 4:9;6:7;11:19;32:46).

=====78:6
이는 저희로...그 자손에게 일러서 -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대대 손손 하나님 말씀, 즉 율법을 전수하는 것은 그들 생애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였다. 이는 성막이나 성소에서 제사장들에 의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레 10:10, 11;신 31:9-13;말 2:7), 각 가정에서 부모들에 의해 자녀들에게 행해져야 할 일이었다(신 6:7;11:19).


=====78:7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 '소망'의 히브리어 '케셀'(* )은 '허리'(레 3:4), '어리석음'(전 7:25), '확신', '신뢰', '소망'(욥 4:6;31:24) 등의 다양한 뜻으로 번역된다. 본문에서는 맨 마지막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증거'와 '법도'(5절)를 그 후손들에게 전하여 가르치는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언약의 하나님께 신뢰와 소망을 두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언약 신앙을 계속 유지 보존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믿음을 두는 삶은 그들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71:5;딤전 4:10).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 여기에서 '잊지 아니하고'란 단순히 어떤 사실, 사건을 머리 속에 간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어떤 사실, 사건 등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다시 나타낸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본문에서 이 말을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행사, 즉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과 축복, 은총의 행위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더욱 견고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출 12:26, 27;수 4:6, 7). 예수님은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내가..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여 나를 믿으라"(요 14:11)고 하셨다.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 '계명'이란 히브리어로 '미츠와'(* )로서 '차와'(* , 지정하다, 명령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명령', '법령'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 이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로서의 율법을 지킨다는 이상의 의미, 즉 그분의 뜻을 순종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겠다.


=====78:8
패역하여(* , 마라) - 문자적으로는 '쓰다', '반역하다' 등의 뜻이 있다(출 15:23).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열조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거스려 아프게 하고 반역한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 '정직하지'에 해당하는 '쿤'(* )은 '세워지다', '준비되다', '확실하게 되다' 등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의 '정직하지 못하며'란 '(견고하게) 세워지지 않은', '자리잡고 준비되어지지 않은'의 뜻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열조들의 마음이 언약의 하나님께 확고하게 의탁하여 온전한 믿음 가운데 거하지 못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이 말은 37절에서는 '정함이 없으며'란 말로 번역되었다.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 '충성치'란 히브리어로 '아만'(* )으로서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등의 뜻이 있다. 따라서 본문의 '충성치 아니한'이란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신실함 가운데 거하지 아니했음을 암시한다(not faithful, NIV, RSV). 사실 이스라엘 족속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거듭 거역하고 시험했었다(민 14:22).


=====78:9
에브라임 자손 - 에브라임은 야곱(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창 49:1-4) 대신에 장자의 명분을 얻은 요셉(대상 5:1, 2)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첫째 아들 므낫세보다 더 우선적인 축복을 받았다(창 48:17-22). 이런 에브라임 자손은 이후 야곱과 모세의 엄청난 축복을 받고(창 49:22-26;신 33:13-17), 향후 여호수아 시대 때부터 사울 때까지 이스라엘의 대표적 족속으로 거하였다(Allen). 본문에서도 이들은 전체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로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VanGemeren).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스르므로 이후 축복 면에서 유다 족속에게 밀리게 되었다(9-11, 67, 68절).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 본문이 이스라엘 역사의 어느 시점을 말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이스라엘이 블레셋 족속들의 침공을 받고 싸웠을 때 법궤를 빼앗기고 패퇴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amphell, VanGemeren). (2)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게 된 결정적 사건이 되는 길보아 전투의 사건을(삼상 31:1-13) 가리킨다고 한다(Weiser). (3) 에브라임 족속으로 대표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멸망당한 사건을 가리킨다고 한다(Haglund). (4) 에브라임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그 거민들을 진멸시키는 일에 실패한 사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Alexander). 이중 본문의 문맥과 그 내용으로 볼 때 (1)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78:10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 여기서 '하나님의 언약'이란 모세의 시내 산 언약을 가리킨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을 준수할 경우 '내(하나님의)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출 19:5, 6)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피로 제정한 것으로서 절대적인 구속력을 갖는다(출 24:1-11). 더욱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킬 경우에는 축복이요, 거역할 경우에는 저주라는 약속을 하셨었다(레 26:15-20;신 29:9). 또한 언약은 하나님과 피로 맺은 약속인 바 이의 거역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복을 뜻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언약의 거역에 대한 심판은 당연하며 치명적인 것이라 하겠다.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 율법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지켜야 할 언약 규범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율법을 이행하는 것 또한 구속력을 갖는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약 내용으로서 이 율법을 준수할 경우에는 축복, 거역할 경우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언급하셨다(레 26:3-39;신 28:1-66).

=====78:11
여호와의 행하신 것...잊었도다 - '기사'의 히브리어는 '팔라'(* )로서 4절의 '기이한 사적'이란 말과 같다. 그리고 본문은 12-16절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애굽에서 기적을 행하시사 구원하시며 광야에서 갖가지 이적을 행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은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이스라엘이 여호와 신앙에 착념(着念)하는 것을 잊음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쇠진(衰盡)되었음을 암시한다.

=====78:12
애굽 땅 소안 들에서...행하셨으되 -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신 사실에 관한 언급이다(출 7:1-13:22). '소안'은 '저지'(低地)라는 뜻으로서 애굽의 나일 강 삼각주 북동부, 나일 강 동쪽 제2지류 바하르 모에즈(Bahr Moez) 연변의 한 성읍이다. 이 성읍은 애굽의 힉소스 왕조(Hyksos Dynasty, B.C. 1674-1514)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도시로서 당시 애굽의 수도로 존속한 것으로 짐작된다(사 19:11, 13;30:4;겔 30:14). 그리고 이는 후에 라암셋 2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서도 수도로서 존속되었다고 한다(Anderson). 이 도시는 후에는 타니스(Tanis, Thanis)로도 불리웠다 한다(Clark).


=====78:13
물을 무더기같이 서게 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시, 홍해 물을 갈라서 멈추게 하시고 그 물을 통로의 벽처럼 길 양쪽으로 서게 하신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출 15:8;수 3:13, VanGemeren).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상황하에서 홍해를 도하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그들이 하늘의 구름 아래와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세례를 받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고전 10:1, 2).

=====78:14
구름으로...화광(火光)으로 - 이는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05:39;출 13:21;민 9:16, 17). 여기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78: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 '쪼개시고'에 해당하는 '바카'(* )는 13절의 '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같다. 본문의 사건은 출 17:6에서 모세에 의해 반석이 쪼개어지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물을 공급받은 사실을 가리킨다(Anderson). 그리고 이는 영적으로는 신약에서 신령한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사 백성들에게 영적인 음료, 생명수를 마시게 한 사실을 암시한다(고전 10:4)=====78:16
또 반석에서 시내를...흐르게 하셨으나 - 이는 15절의 사건과는 또 달리 민 20:10, 11에 나타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Anderson, Alexander). 당시 모세는 출애굽 제40년, 광야 방황의 38년째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성화에 못 이겨 반석을 두 번 침으로 물을 솟아나게 하여, 백성들과 짐승들로 먹게 하였다. 한편 본문의 '반석'(* , 세라)은 15절의 '반석'(* , 추르)과는 히브리어 단어가 서로 다르나 상호 동의어인 것으로 본다(Anderson).

=====78:17
저희는 계속하여...범죄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질 만한 하나님의 능력(12, 13절), 임재 및 인도하심(13절), 필요의 공급(14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범죄하였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무지함과 완악함을 엿보게 한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 이후 그 안에서 정죄되고 완고하게 되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렘 7:1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롬 7:18) 등의 성구에서 지적하는 존재, 즉 본성적으로 죄를 가진 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 '지존자'란 히브리어로 '옐룐'(* )으로서 직역하면 '가장 높은'의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로서 그분이 모든 존재보다 뛰어나시고 탁월하게 거하심을 가리키며, 특히 대적에 대해서는 그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초월적 능력자로서, 당신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분으로서 거하심을 나타낸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자'(9:2;21:7;46:4;73:11;민 24:16;신 32:8;사 14:14)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한편 본문의 '배반하였도다'의 '마라'(* , 쓰다, 반역하다)는 8절의 '패역하여'란 말과 같다. 결국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이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반역하여 거스르었다는 뜻이다.


=====78:18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 '저희 탐욕대로'(* , 레나페솽)의 기본형 '네페쉬'(* )가 '영혼', '욕망(식욕)'등을 뜻하는 바,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혹은 '그들의 욕망(식욕)을 위하여'란 뜻으로 볼 수 있다(Anderson, Alexander). 특히 본문에서 '영혼'이란 지(知), 정(情), 의(意)를 포함한 인격 자체 또는 인간의 자아를 뜻하므로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의 자아를 위하여'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구하지 아니했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은 자아 중심적인 인생을 간구하되, 하나님을 시험하는 형태로 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필요로 해서 간구한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자아 욕구를 위해 간구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그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 '시험하였으며'에 해당하는 '나사'(* )는 '시험하다'(test), '시도하다'(try)의 뜻이다. 이는 어떤 것을 하기를 시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나,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시기 위해 시험하는 것(26:2;창 22:1) 또는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한다는 뜻(출 17:2, 7;민 14:22)으로 사용된다(Anderson). 본문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한낱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시험하려 했는데, 이는 성경에서 엄하게 금하는 바이다(마 4:7).

=====78:19
하나님이...식탁을 준비하시랴 -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로서 '능력자'란 뜻이며, 히브리인들이 전능하고 위엄 있으신 하나님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이름 중 하나이다(68:19, 20;80:10;창 14:18-22;35:3, 11;49:25). 그런데 본문에서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을 한 것은, 심히 모순된 것으로서 그들의 완악함과 불신의 정도, 시험의 양태를 가히 짐작케 한다. 이스라엘 족속의 이런 태도는 23:5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특히 이 두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회의와 신뢰의 대조적인 태도를 엿보게 해 준다.

=====78:20
저가 반석을...떡을...고기를 예비하시랴 하였도다 - 여기에서 사용된 '반석'의 히브리어 '추르'(* )는 15절의 '반석'과 같은 말이다. '떡'과 '고기'란 '만나'(출 16:3, 31)와 '메추라기'(민 11:4, 31)를 뜻한다. '만나'는 하나님이 호렙 산 반석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공급하시기 전에 베풀어 주셨다(출 16:1-31;17:1, 6). 그런데 본문에서는 반석에서 물을 공급해 주신 후에 '만나'를 주실 수 있느냐라고 묻는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하나님께서 호렙 산 물을 공급하신 이후에도 능히 계속적으로 만나를 베풀어 주실 수 있을 것인가라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의심한 것을 뜻할 수 있다. (2) 본문이 한편의 시인 바, 기자가 어떤 역사적인 연대 순서를 무시하고 시적인 형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혹과 불신을 언급하다 보니 본절처럼 되어진 것이다. 주석가 로린슨(Rawlinson)은 이중에서 (2)를 지지한다. 아무튼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전에 하나님의 초능력적인 이적을 몸소 체험했으면서도 또다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의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전문(前文)의 12-16절에서 갖가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과 임재, 인도하심 등을 경험했으면서도 여전히 계속하여 17절에서 범죄한 유형과 유사하다.


=====78:21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의 불경건한 말을(20절) 들으셨다는 것은 당신의 초월성 및 편재성(偏在性)과 전능성을 엿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근본 영이시므로(요 4:24) 온 천지 어느 곳에나 계시며,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 우주의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다 아시며 모두 감찰하신다(출 16:7-9;민 11:1;12:2).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 본문에서 '야곱'이란 후문의 '이스라엘'과 동의어이며, 특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열두지파로 구성된 유기체적 공동체임을 잘 나타내준다(Anderson). '노가 맹렬하며'(* , 에쉬 니쉐카)는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불이 불붙다'(a fire was kindled, KJV, RSV)의 뜻이다. 여기에서 '불'이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 12:29)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파괴적이고 심판적인 진노를 상징한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 진노를 나타나시되 크게 발하심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 '노'란 히브리어로 '아프'(* )로서 '코', '콧김', '분노'란 뜻이며, 전문의 '노'와는 다른 말이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전문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서 상호 병행 구절이라 할 수 있겠다.

=====78:22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 '믿지'의 히브리어 기본형은 '아만'(* )으로서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이것은 본문에 표현된 믿음이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임을 뜻한다 하겠다. 테이트(Tate)는 이와 관련하여 믿는다는 것은 그 근본적인 사상이 '신뢰하는 것', '확신하는 것', '의뢰하는 것',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것 안으로의 믿음을 갖는 것(to have faith in someone or something)을 뜻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앤더슨(Anderson)은 이에 대하여 '구약의 믿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떤 사상 면에서 표하는 지적 동의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숙연하게 그분의 명령과 약속들을 간직하고 대하는 자세이다'라고 언급하였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의 자세로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다. 앤더슨은 구약의 믿음이 말씀과 언약에 기초하여 신뢰의 자세로써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임을 밝혀주는 구절로서 119:66;창 15:6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런 믿음을 갖지 아니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시험하는 불경을 범하였던 것이다.
그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한 - '의지하지'의 '바타흐'(* )는 '(피난키 위해) 서둘러 가다', '신뢰하다', '의뢰하다' 등의 뜻을 갖는다. 이 말은 전문(前文)의 '믿지'(* , 아만)와는 약간 그 어감이 다르다. '아만'이 하나님께로 들어가 신뢰함으로 하나님과 두터운 관계를 형성한다는 측면을 강조한 것이라면, 본문의 '바타흐'는 하나님께 나아가 의뢰함으로 안전한 구원을 획득한다는 측면에서 언급되어진 것이다(Anderson).


=====78:23
궁창을 명하시며 - '궁창'의 히브리어 '솨하크'(* )는 동사 '솨하크'(* , 잘게 부수다, 가루로 만들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부숴진) 가루', '구름', '궁창'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이는 흔히 창세기에서 쓰여진 '궁창'(* , 라키아, 넓게 펴진 것, 창 1:6-8, 14, 15)과는 다른 말이다. 후자가 넓게 퍼져 덮고 있는 거대한 창공을 뜻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구름이 형성되어 있는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이 두 단어 모두 땅 위의 하늘을 지칭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우주가 하늘과 땅 및 바다(또는 지하)로 형성되었다고 믿었는데, 이 궁창이란 넓은 의미에서는 하늘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었다(욥기 서론,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참조).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궁창에 명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하나님으로서 모든 만물들을 직접 주관하시고 역사하시는 초자연적인 분이심을 잘 나타낸다. 더불어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일을 주장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하기도 한다(33:6;147:18).
하늘 문을 여시고 - '하늘 문'(* , 달티 솨마임, 하늘의 문들, the doors of heaven, KJV, RSV)은 구약 성경에서 본문에 한번 언급되어진다(Anderson). 창 28:17에 '하늘의 문'이라는 말이 있으나, 이는 '솨아라 하솨마임'(* , the gate of heaven, KJV, RSV)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말로 '하늘의 창들'(* , 아르비트 하솨마임, 창 7:11;8:2;왕하 7:2, 19)이라는 표현이 있기도 하다(욥기 서론, '히브리인의 우주관' 참조). 어쨌든 본문 역시 하나님이 이 하늘을 직접 주관하시고 역사하심을 잘 드러내는 시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78:24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 '만나'(* , 만)는 '무엇이냐'란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출 16:15, 31을 참조하라. '비같이 내려'란 '마타르'(* )로서 '비가 내리다'란 뜻이며, 풍족히 흡족하게 내려 주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비는 이 땅의 모든 생물들이 자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며, 자연의 식물들은 이 비를 흡수함으로 생명의 물을 공급받는다. 고대 가나안의 이방인들은 이런 점에서 그들의 우상 바알을 풍요의 신, 비와 바람을 주관하여 곡식을 풍요롭게 하는 신으로 숭배하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바알과 같은 거짓 우상 신이 아닌 참하나님으로서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만나를 풍요롭게 내리신 것이다.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 '양식'의 히브리어 '다간'(* )은 '곡물'(민 18:27;학 1:11), '곡식'(창 27:28;신 7:13;느 5:2) 등의 뜻이다(the grain, NIV, RSV;the corn, KJV). 이것은 만나가 곡식 낟알처럼 작고 둥글며 갓씨같이 생겼기 때문으로 짐작되어진다(출 16:14, 31). 이를 다른 곳에서는 '하늘 양식'(* , 레헴 솨밈, the bread of heaven, KJV, NIV)으로 표현하기도 했다(105:40;출 16:4). 아무튼 여기서 '하늘 양식'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곡식 낟알 같은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신약 성경에서 이는 하늘로부터 인간의 참생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요 6:31-51).

 

=====78:25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 '권세 있는 자'의 히브리어 기본형 '아비르'(* )는 '힘 있는', '힘 있는 자'를 뜻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비림'(* ) 곧 '힘 있는 자들'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를 '천사들'(angels, KJV, NIV, RSV)로 본다(Dahood, Alexander, VanGemeren). 그러나 성경에서 '아비르'(* )란 말은 '힘 있는 사람'(욥 24:22;34:20), '말과 같이 힘 있는 동물'(삿 5:22)을 지칭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 전능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하기도 한다(132:2, 5;사 1:24;49:26;60:16). 한편 본문에 대해 혹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유하고 높은 자들의 상에나 놓여질 수 있는 떡, 즉 가장 좋고 맛있는 떡을 먹은 것을 뜻한다고 하기도 한다(Clark). 그러나 그보다는 천사들이 거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 곧 만나를 먹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겠다.

=====78:26
 저가 동풍으로...남풍을 인도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바람을 일으키사 메추라기를 바다 쪽에서 시내 반도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에게 불려오게 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에 대하여 민 11:31은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라고 표현하였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동풍'과 '남풍'을 '남동풍'으로 보고, 본문에서는 저자가 단지 시적인 이유로 따로 구분해서 기술했다고 하기도 한다(Anderson).

=====78:27
 저희에게 고기를 티끌같이 내리시니 - '고기'란 시내 반도 광야 여행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신 메추라기를 가리킨다(민 11:4, 18, 31, 32). 이 메추라기는 꿩과에 속하는 새로서 다갈색에 흑백의 반점이 있는 철새(migratory birds)이다. 이는 주로 아라비아나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내는데 3-4월이면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지방에서 북쪽 유럽 쪽으로 이동해 날아가며, 9-10월경에는 다시 북쪽 유럽 쪽에서 남쪽 아라비아나 아프리카 지방으로 날아간다 한다(Anderson). 그러므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였던 시내 반도 광야는 이 메추라기들이 통행하는 한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거주 지역으로 떨어지게 하신 것은 하나의 자연적 현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서이다. 한편 본문의 '내리시니'의 히브리어 '마타르'(* )는 24절의 '비같이 내려'에서와 동일한 히브리어이다.
 바다 모래 같은 - 무수한 숫자 또는 많은 양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말이다(창 22:17;32:12).

=====78:28
 그 진중에...거처에 둘리셨도다 - '진중'(* , 마하네)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데 모여 장막을 친 거대한 진영을 뜻하며(출 32:19;33:7;민 2:3, 9, 10), '거처'(* , 미쉬칸)란 이스라엘 족속이 그 진영 가운데 천막을 쳐서 만든 거주지 또는 천막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바로 근처에 메추라기 떼를 떨어지게 하셨다는 뜻으로서 모세는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민 11:31)로 표현하였다.


=====78:29
 하나님이 저희 소욕대로 주셨도다 - '소욕'의 히브리어 '타아와'(* )는 '아와'(* , 바라다, 사모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열망', '욕망'의 뜻을 갖는다. 이 말은 18절의 '탐욕'(* , 네페쉬)의 뜻과 유사하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의 자아 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메추라기를 공급해 주셨음을 뜻한다. 더불어 이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주신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시험했던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당신의 권능을 명백히 보여 주사,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고자 하신 크신 사랑을 엿보게 한다.

=====78:30
 저희가 그 욕심에서...아니하고 - '욕심'의 히브리어 '아와'(* )는 29절의 '소욕'과 같은 말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은 자신들의 욕망 추구와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한 결과에 따라(19, 20절) 하나님이 능력의 증표로서 이적적으로 메추라기를 주셨을 때 자신들의 잘못과 불경건을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와 완악함으로 인해 여전히 욕심 가운데 거하여 심판받았다(31절). 저희 식물이...있을 때에 - 모세는 이에 대하여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민 11:33)라고 묘사하였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메추라기의 주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는 커녕 더욱 자신들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 준다.

=====78:31
 저희 중 살진 자...청년을 쳐 엎드러뜨리셨도다 - '저희 중 살진 자'란 이스라엘 족속 중에 힘이 세고 건장한 자들을 가리킨다(Dahood). 그리고 '청년'에 해당하는 '바후르'(* )는 문자적으로 '택한 자'(the chosen men, KJV,민 11:28)를 뜻하며 여기서 '청년'(전 11:9)이란 말이 유추되었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이 용어가 흔히 힘이 세며 나아가 한창인 젊은 사람들에게 적용되어 진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진멸하심으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어떤 자라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목도케 해 주셨다.


=====78:32
 그럴지라도(* , 베칼 조트) - 직역하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all this, NIV, RSV)의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들과 심판을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 '기사'에 대해서는 11절, '믿지 아니하였으므로'에 대해서는 22절을 각각 참조하라.


=====78:33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 '헛되이'란 히브리어로 '헤벧'(* )로서 '호흡', '수증기', '텅 빔' 등을 뜻하며, 이에서 '공허함', '덧없음', '허무함' 등의 의미가 유출된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을 증거하는 전도서에서는 '헛되다'(전 1:2)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 본문의 '보내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칼라'(* )는 '끝나다', '소모하다', '마치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불신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허송 세월로 방황케 하신 사실을 가리키는 것 같다(민 14:26-35, Anderson, Alexander). 이스라엘 족속은 출애굽 후 수많은 하나님의 이적과 능력을 보았음에도 그분을 믿지 않고 시험함으로 그들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는 심판을 받았다. 저희 해를 두렵게...하셨도다 -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 40년 방황 세월 중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로 인해 온갖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지낸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두렵게'의 히브리어 '베할라'(* )는 '전율', '떪', '공포' 등을 의미하나 레 26:16에서는 '재앙'으로, 사 65:23에서는 '재난' 등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78:34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이며 18절에 언급된 '하나님'과 같은 말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시험하며 불신하였다가 무서운 징벌을 당하자, 다시금 그 능력의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던 것은 목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함이었을 뿐이며 상황이 호전되자 다시금 예전의 죄악을 반복해 나갔다.


=====78:35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 '반석'(* , 추르)은 15절의 '반석'과 같은 말이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이스라엘 족속의 삶 또는 축복의 터전, 근원이 되심을 고백한 말이다.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 - '지존하신 하나님'(* , 엘 엘룐)이란 하나님의 복합 고유 이름이며, 같은 유형으로 '엘 로이'(* ,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13). '엘 솨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창 17:1) 등이 있다. 이는 창 14:18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한편 '구속자'의 히브리어 '가알'(* )은 '무르다', '무르는 자', '복수자' 등의 뜻이 있다. 이는 원래 히브리인 사회에서 어떤 가난한 사람이 종으로 팔리거나 그의 토지가 다른 사람에게 팔렸을 경우, 그를 대신해서 그 종된 자나 토지를 다시 되돌려 속해 주는 친척을 가리킨다(레 25:25, 48, 49). 이 말은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고의적으로 피살된 친척을 대신 복수해 주는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민 35:19, 24, 25). 만약 이 말이 하나님에게 적용될 경우, 이는 당신의 백성들을 압박자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뜻한다(19:14;잠 23:11). 본문의 경우는 제일 후자에 해당한다.

=====78:36
 저희가...그에게 아첨하며 - '아첨하며'의 히브리어 '파타'(* )는 '열다', '속이다', '유혹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의 시련과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피상적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을 찾았던 기만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영역본 KJV, NIV, RSV 등은 이를 '아첨하다'(flatter)로 번역하기도 했다.

=====78:37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 '정함'의 히브리어 '쿤'(* )은 '세워지다', '준비하다', '확실하게 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8절에서는 '정직하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갔으나,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견고하게 서 있지 못하고 죄성으로 인해 들떠 있으며 육신적 소욕에 따라 행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 '성실치'에 해당하는 '아만'(* )은 '세우다', '지탱하다', '신뢰하다', '신실하다'의 뜻으로서 8절에서는 '충성치'란 말로 쓰이기도 했다. 본문에서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신실치' 아니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10절 참조).

=====78:38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 '자비하심'에 해당하는 '라훔'(* )은 '라함'(* , 귀여워하다, 사랑하다, 측은히 여기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인정 많은', '동정심 많은'의 뜻이 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로서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다(103:8;116:5;145:8;출 34:6).
 죄악을 사하사 - '아온'(* , 죄악)이란 '아와'(* , 구부리다, 잘못을 저지르다)에서 유래된 말로 '악', '불의'(iniquity, KJV, RSV)를 뜻한다. 본문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왜곡되이 행한, 사악한 불의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사하사'의 히브리어 '카파르'(* )는 원래 '덮다'를 뜻하며, 이에서 '속죄하다', '용서하다'라는 뜻이 유출되었다. 아마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속죄의 근거 즉 희생 제물의 피나,아니면 특히 본문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이는 모세 같은 중보자의 중보 속죄 기도등에 의해 죄악을 덮어 두고 용서하신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Rawlinson, 출 32:11-14;34:6-9).

=====78:39
저희는 육체뿐이라 -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 나아가서 죄의 결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제한적 존재임을 나타낸다(창 2:7). 이에 대해 다윗은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4)라고 표현한 바 있다.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 - 전문(前文)과 유사한 말로서 인간이 이 세상에 잠시 존재하나 곧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임을 암시한다(사 40:6, 7).

=====78:40
 저희가...그를 반항하며 - '반항하며'의 히브리어 '마라'(* )는 '쓰다', '반역하다'의 의미가 있으며 8절에서는 '패역하여'라는 말로 쓰였다. 본문에서는 특히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 마음을 쓰라리게 한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광야에서 열 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시험하였다(민 14:22).
 그를 슬프시게 함 - 히브리어는 '아차브'(* )로서 '괴롭히다', '비탄케 하다', '슬프게 하다'(grieve, KJV, NIV, RSV)의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性論的)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 족속의 망령된 행동으로 인해 크게 배반감을 느끼신 것을 나타낸다.

=====78:41
출애굽 제1세대들이 죽고 난 후, 그들을 이은 제2세대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거역한 것을 가리킨다. 알렉산더(Alexander)는 이에 대해 "저자는 지금 젊은 세대(즉, 출애굽 제2세대)가 여호수아의 죽음 후(수 24:31) '저희 열조같이'(57절) 행한 것을 보여 주고 있다"라고 주해한다. 그들은 선조들이 출애굽 후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과 같이(18절) 하나님을 시험하는 역사의 전철을 밟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주로 쓰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이다. 이사야는 이를 약 25회 가량 썼으며(사1:4;5:19, 24) 예레미야가 2회(렘 50:29;51:5), 기타 다른 제자가 여러 번 사용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을 다른 모든 피조물과 구별시켜 주는 이름, 즉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달리 자존적(自存的)으로 모두 온전하신 속성을 가지신 하나님을 계시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Alexander).
 격동하였도다 - 이에 해당하는 '타와'(* )는 '구획하다', '긋다', '긁다' 등의 뜻이 있다. 이는 드물게 사람의 이마에 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겔 9:4).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는 의견이 아래와 같이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1) 시리아어의 어원에 따라 '슬프게 하다', '비탄케 하다'(grieve)로 보아야 한다(vexed, NIV, Anderson;provoked, RSV). (2) 이 말의 어원을 모세가 가나안 땅의 경계를 그을 때 사용한 것에서(민 34:7, 8) 엿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제한하다'(limited, KJV, Alexander)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중 (1)을 따를 경우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을 뜻하며, (2)를 따를 경우에는 이스라엘 족속이 감히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한 것을 뜻한다. 이중 어떤 견해를 취하더라도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78:42
 저희가 그의 권능을...아니하며 - '권능'(* , 야드)은 직역하면 '손'(hand, KJV)을 뜻한다. 이는 성경에서 흔히 나타나는 신인 동형동성론적(神人同性論的) 용법으로서 개역 성경 그대로 '권능'이나 '능력'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는 구약 성경에서 모세와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권능(능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자주 사용한 말이기도 하다(출 7:5;신 7:8;겔 1:3;3:14, 22;8:1;37:1). 본문은 이스라엘의 제2세대, 즉 젊은 세대들이 그들의 선조들에 의해 경험되어진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지 않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선조들에 의해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들었을 터인 바, 그 권능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뢰했어야 했다.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 - 현재 출애굽 제2세대들의 선조, 즉 출애굽 제1세대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던 날을 가리킨다(VanGemeren, Tate).

=====78:43
 소안 들 - 12절 참조.
 기사 - 이는 히브리어 '모페트'(* )로서 11, 32절의 '기사'(* , 팔라)와 다르나, 그 의미는 '이적'(출 4:21;대하 32:24), '기사'(출 11:9;렘 32:20), '표적'(신 28:46)으로 유사하다(12절 참조).

=====78:44
 저희의 강(* , 예오레헴)은 직역하면 '저희의 강들'(their rivers, KJV, NIV, RSV)이다. 이는 혹자가 말한 대로 장엄 복수형으로 보아 '그들의 거대한 강'을 의미하는 말로서(Gunkel) 나일 강을 뜻할 수도 있으나, 이보다는 나일 강과 그 지류를 가리킬 수도 있다(Alexander, Anderson). 당시 나일 강에는 자연적으로 그 강에 물을 흘려 보내는 지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공적으로 그 주위 여러 지역에 물을 대기 위해 판 지류도 있었다 한다. 시내(* , 노젤리헴) 역시 '저희의 시내들'(their streams, NIV, RSV)이란 뜻으로 나일 강 외 애굽 각 지역의 개천들을 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애굽 전역의 '물들과 하수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를 피로 변하게 하셨다(출 7:17-25).

=====78:45
 파리 떼를...물게 하시고 - '물게 하시고'의 히브리어 '아칼'(* )은 '먹다', '삼키다'(devoured, KJV, NIv, RSV) 등의 뜻이 있다. 이는 파리떼들이 애굽 사람들의 집과 땅에 가득해서 음식이나 기타 물질들을 먹어 치우고 삼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파리의 재앙은 출애굽 사건 당시 네 번째 재앙으로 애굽에 내려졌다(출 8:20-24). 개구리를...해하게 하셨으며 - '해하게 하셨으며'에 해당하는 '솨하트'(* )는 '부패하다', '망하다', '파괴하다' 등의 뜻이다. 본문에서는 개구리가 애굽 사람들의 집과 침실, 음식 그릇 등에 올라와 그들을 해롭게 한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애굽에 내려진 두 번째 재앙이다(출 8:1-15).

=====78:46
 저희의 토산물을...메뚜기에게 주셨으며 - '황충'의 히브리어 '하실'(* )은 '하살'(* , 먹어 치우다, 소모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흔히 '황충'으로 번역된다(왕상 8:37;대하 6:28;사 33:4;욜 1:4). 이는 메뚜기과의 곤충으로서 약 5cm 정도의 길이이며 풀무치와 비슷하고 떼를 지어 다니며 곡물들을 먹어 치운다. 그리고 '메뚜기'(* , 아르베)는 '라바'(* , 많다, 증가하다)에서 유래된 말로 성경에서 흔히 '메뚜기'로 번역되며 일부에서는 '황충'(105:34;렘 46:23)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본문에서 '황충'이나 '메뚜기'는 같은 종(種)의 곤충으로 언급된 듯하다. 이 재앙은 여덟 번째로 임한 것이다(출 10:4-15).

=====78:47
 우박으로...서리로 죽이셨으며 - 여기서 '뽕나무'(* , 솨캄)는 흔히 '무화과 뽕나무'로 지칭되는데 이 나무는 뽕나무와 비슷하나 그 열매는 무화과와 유사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주로 애굽이나 팔레스틴의 저지 평원이나 요단 평지에서 자라며 그 열매는 무화과 보다 약간 못 하나 일반 서민의 식품으로 사용되었고(암 7:14), 그 나무는 가구나 관 등의 재목으로 쓰였다 한다(왕상 10:27;대상 27:28;사 9:10;암 7:14). 한편 '서리'(* , 하나말)는 구약 성경에서 본문 한 군데에 나타나며(Anderson) 그 어원은 불확실하다. 본문의 우박 재앙은 일곱 번째로 내려졌다(출 9:18-26).

=====78:48
 저희 가축을...번갯불에 붙이셨으며 - 이는 47절의 '우박'과 함께 하늘의 '뇌성'과 '불덩이'로 애굽 땅의 짐승들을 치사 죽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출 9:23, 24). 그러나 혹자는 본문의 '우박'(* , 바라드)을 '온역'(* , 데베르, pestilence, 출 9:3, 15)의 오기로 볼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Anderson). 이에 대한 근거로서 앤더슨(Anderson)은 일부 히브리어 사본과 심마쿠스(Symmachus) 역본을 예로 들며, 이와 함께 본문의 '번갯불'(* , 레쉐프)이 합 3:5에서는 '불덩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온역'과 병행 구절로 쓰여졌음을 증거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주석가 반게메랜(VanGemeren)도 본절의 사건을 출 9:1-7에서 가축들이 질병에 걸린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78:49
 벌하는 사람들(* , 미쉴라하트 말라키 라아임) - 직역하면 '해(害)하는 천사들의 무리'로서 이는 곧 '해를 가하는 천사들의 무리'(a company of destroying angels, RSV)라는 뜻이다. 이 천사들은 아마 하나님이 출애굽 전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에서 애굽의 장자들을 죽이도록 보내신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출 12:23;히 11:28). 이 천사들은 후에 범죄한 다윗(삼하 24:16)에게와 유다를 공격한 앗수르 군대를 진멸하기 위해 히스기야 시대 때(왕하 19:35) 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78:50
 치도하사(* , 예팔레스 나티브) - 직역하면 '그가 길을 평평케 하셨다(또는 예비하셨다)'의 뜻이다(made a way, KJV). 이것은 하나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본문에서는 당신의 분노를 어떠한 거침돌이나 방해물이 없이 주권적 의지대로 내리셨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에 관하여 알렉산더(Alexander)는 "하나님은 그들(애굽 사람들)의 재산이나 가족을 치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고 그들의 생명 자체에로 그의 치심을 확대해 가셨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78:51
 함의 장막 - '함'(* , 함)은 '뜨겁다', '검은 피부'라는 뜻으로서 노아의 둘째 아들의 이름이다(창 6:10). 이는 이후 남아라비아, 에디오피아, 이집트, 붓(렘 46:9) 등의 종족들의 조상이 되었다.
 그 기력의 시작 - 이는 '장자'에 대한 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Alexander). 여기서 '시작'(* , 레쉬트)은 다양하게 번역된다. 즉 '시작'(욥 8:7;잠 8:22;17:14;전 7:8)이란 말로 번역되기도 하나 또한 열매의 '첫 것'(출 23:19), '첫 열매'(겔 20:40), '첫 소산'(민 18:12) 등으로도 번역 된다. 따라서 본문은 '그 기력의 첫 소산'(the first issue of their strength, RSV) 혹은 '맏아들'(the firstfruits of manhood, NIV)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78:52
 자기 백성을 양같이...내시고 - '자기 백성'이란 이스라엘 족속들이 이스라엘 족속들이 아브라함의 언약 이후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존속해 왔음을 암시해 준다(창 17:2-14). 그리고 '양같이'는 일종의 수사학적인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 목자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시사 인도하여 내심을 나타낸다(23:1;28:9;80:1). 특히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 사실을 가리킨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종종 목자와 양떼의 관계에 비유되고 있다(사 40:11;53:6;슥 10:3;요 10:2, 5). 광야에서...지도하셨도다 - '지도하셨도다'에 해당하는 '나하그'(* )는 '몰다', '이끌다', '인도하다'의 뜻이다.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도하(渡河) 전후에 광야에서 인도하셨음을 나타내는 말이다(Alexander).

=====78:53
 저희를...두려움이 없었으나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로 건너가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앞에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는 애굽 군인들이 쫓아오자 처음에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권고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안전히 홍해를 도하하였다(출 14:10-25).

=====78:54
 그 성소의 지경(* , 게불 카데쇼) - 직역하면 '그의 거룩함(또는 거룩한 땅)의 경계'(the border of his holy land, NIV)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경'(* , 게불)이란 말은 '경계'(민 21:13, 15, 24;34:3, 6, 7, 9)란 뜻뿐만 아니라 '영토'(territory) 즉 경계에 의해 둘러싸인 땅을 뜻하기도 한다(삼하 21:5;왕상 1:3, Anderson). 따라서 본문의 말은 '그의 거룩함의 영역'(the territory of his holiness)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VenGemeren). 따라서 일반적으로 본문은 가나안 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언약 이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의 땅, 거룩히 구별하신 땅이다(창 15:7-21;출 3:8;6:8).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 - 여기에서 '오른손'이란 신인 동형 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인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낸다(42절 참조).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는 오른쪽이 힘, 능력 등을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되어지는 바(89:13;118:16;출 15:6, 12), 이는 하나님의 강하신 권능을 뜻한다 하겠다. 그리고 본문의 '산'에 대해 혹자는 산악 지방으로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고 하나(McCullough), 그보다는 일반적으로 가나안 땅에서의 하나님 임재의 처소로 표현되어지는 시온 산을 뜻한다고 본다(2:6;48:2;65:1;84:7;110:2;사 8:18, Anderson, Alexander, VanGemeren, Rawlinson).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당신의 거룩한 땅, 임재의 처소로 인도하시사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며 영광받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78:55
 줄로 너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 '기업'의 히브리어 '나할라'(* )는 '나할'(* , 물려받다, 상속받다)에서 유래된 말로 '상속된 것', '상속 재산', '소유물'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그리고 '분배하시고'의 히브리어 '나팔'(* )은 '떨어지다',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여기서 (주사위를 떨어뜨려 소유물 등을) '나누다', '분배하다'의 의미가 유출된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지파의 종족 수에 비례하게 나누어 주신 것을 암시한다(민 26:52-56;33:53-55). 이것은 기업으로서의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인 바 각 사람에게 은혜가 고루 미치게 함을 뜻한다.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 '그 장막에'(* , 베아할리헴)는 직역하면 '그들의 장막들에'(in their tents, KJV, RSV)의 뜻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족속보다는 가나안 이방 족속들의 장막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Rawlinson, Alexander). 결국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사 그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힘, 능력,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으로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몰아내고 거기서 터전을 잡고 거하게 하셨음을 암시한다.

=====78:56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반항하여 - '지존하신 하나님'이란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엘로힘 엘룐'(* )으로서 35절의 '지존하신 하나님'이란 말과 거의 유사하다. 여기서 '엘로힘'(* )이란 35절의 '엘'(* , 능력, 능력자)의 복수로서 흔히 히브리인 사이에서 전능하신 최고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런 하나님을 이스라엘 족속들이 시험하고 반항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Anderson). 그들은 온 우주에서 유일하시며 최고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였던 것이다. 본문의 '반항하여'(* , 마라)는 '쓰다', '거역하다'의 뜻이다(8, 40절).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하나님을 쓰라리게 하며 거역하였음을 암시해 준다.

=====78:57
 저희 열조같이...빗가서 - '배반하고'(* , 수그)는 '되돌아가다', '물러서다'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가지 않고 오히려 돌이켜 물러서는 것, 헛된 길로 가기 위해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궤사를 향하여'의 히브리어 '바가드'(* )는 '덮다', '남몰래 행동하다', '속이다'등의 뜻이 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은밀히 범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 족속들의 죄악된 행위는 그들의 열조, 즉 출애굽 제1세대들의 완악한 행위를 그대로 본딴 것이었다.알렉산더(Alexander)는 이와 관련하여 언급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의 후손들은 여호수아시대 이후 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더 패역된 길로 나아갔다고 적절히 주해하고있다(41절 참조).


=====78:58
 자기 산당으로 - '산당'의 히브리어 '바마'(* )는 '높은 곳'을 뜻한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곳으로서(민 22:41;33:52) 산이나 높은 구릉 지대에 우상을 섬기기 위해 설치한 장소 또는 집 등을 가리킨다(겔 6:3).


=====78:59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 '미워하사'에 해당하는 '마엔'(* )은 원래 '거절하다'(창 39:8;출 7:14;9:2;사 1:20)의 뜻이다. 특히 이는 단순히 거절하는 내적인 의향뿐만 아니라 그것의 외적인 표현까지도 함축하는 말이다(Alexander).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크게 진노하사 이에 상응하는 징벌의 행동을 취하심을 뜻한다.

=====78:60
 실로의 성막...떠나시고 - '실로'는 그 의미가 불분명한데 그 위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32km 지점, 즉 예루살렘에서 세겜으로 가는 길 동편에 있는 에브라임 지파의 한 성읍이다(수 18:1-10). 이 성읍은 이스라엘 족속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초기에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여호수아 시대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이곳에 성막을 세웠으며(수 18:1), 이스라엘 족속들은 이곳에 모여 매년 절기를 지키기도 했었다(삿 18:31;삼상 1:9, 24;2:14;3:21;4:3, 4).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거역하자 하나님이 이들을 떠나시고 이곳의 언약궤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했으며(삼상 4:5-11), 그 후로 언약궤는 다시 이곳에 안치되지 못했다(삼상 6:21;7:1, 2;삼하 6:2, 11, 17).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운 실로 성막을 떠나심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형식적 신앙보다는 내적인, 내실있는 신앙을 원하시고 계심을 암시한다.

=====78:61
 그 능력...자기 영광 - 이는 모두 당시 실로에 있다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긴 언약궤를 가리킨다(Alexander, Anderson, Tate, VanGemeren). 여기에서 언약궤를 '그 능력'(* , 우조;his strength, KJV;his power, RSV)이라함은 이 언약궤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상징하는 것, 다시 말하면 연약궤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 역사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그리고 언약궤를 '자기 영광'(* , 티페아르토;his glory, KJV, RSV)이라 함은 그 언약궤가 하나님의 높고 존귀하신 영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Alexander). 이 언약궤는 블레셋인과의 전투 와중에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다(삼상 4:1-11).


=====78:62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 '기업'(* , 나할라)은 55절의 '기업'이란 말과 같다. 그러나 본문에서 이는 하나님의 소유 또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란 의미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28:9;33:12;106:5, 40, Rawlinson, Anderson).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족속들에게 진노하셨음을 뜻한다.


=====78: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 여기서 '불'이란 전쟁의 참화를 가리키거나 또는 파괴적인 전쟁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일 수 있다(민 21:28;암 1:4, 7, 10, 12, Alexander, Anderson).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청년들이 (블레셋인들과의) 전쟁에서 비참한 참상을 당한 것을 뜻한다.
 혼인 노래가 없으며(* , 훌랄루 라) - 여기서 '훌랄루'의 기본형인 '할랄'(* )은 '칭찬하다', '자랑하다' 외에 '며느리로 삼다'는 뜻도 지닌다. 본 문맥에서는 '혼인 때에 축가를 부르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도 결혼 예식은 커다란 축제요, 음악과 노래가 곁들여진 잔치였는데, 이 혼인 노래가 불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결혼식과 같은 즐겁고 평화로운 날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아울러 본절 전반절과 연결시켜 보면,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전사(戰士)당함으로 인해 남은 처녀들이 배필을 맞을 수 없게 되었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their maidens were not given to marriage, KJV).


=====78:64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 이스라엘 족속과 블레셋인들과의 전쟁시, 당시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은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삼상 4:11, 17). 저희 과부들은...못하였도다 -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 제사장 비느하스의 아내가 그의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미처 애곡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죽은 사실을 가리킨다(삼상 4:19-22, Tate). (2)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후 남아 있는그 과부들에게도 심한 고통이 뒤따랐기 때문에 미처 남편들의 죽음을 애도할 여유가없었음을 가리킨다(VanGemeren). (3) 죽은 자들의 시체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전쟁터에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애도할 수가 없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중에서는 (1)또는 (2)의 견해가 무난하리라 본다.


=====78:65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 '주'에 해당하는 '아도나이'(* )는 '아돈'(* , 주권자, 통제자, 주인)의 강세형이며, 흔히 '주', '주인'의 뜻으로 번역된다. 이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온 우주의 유일하면서도 절대적인 주권자,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을 지칭한 말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고유 이름 대신 사용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두려워하여(출 20:7;신 5:11) 주로 이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물론 본문은 하나님이 실제로 주무셨다가 일어나신 것을 암시하지는 않는다(121:4;사 40:28). 이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사 보호 또는 구원하시기 위해 의분히 일어나 새로운 역사를 행하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일 뿐이다(35:23;44:23;59:4, 5). 하나님은 이전에는 이스라엘 족속들의 죄로 인해 그들을 심판 가운데 방치하셨으나, 이제는 일어나사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이다.

=====78:66
 그 대적을...욕되게 하시고 -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대적 블레셋인들을 진멸하사 욕되게 하심을 가리킨다. 블레셋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걸쳐 나타나는데,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다윗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으로 볼 수 있다(삼상 17:1-49).


=====78:67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 요셉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장자의 지위를 박탈당하자 그를 대신해서 장자의 명분을 얻은 자였다(대상 5:1, 2). 따라서 그의 후손 특히 그중에서도 에브라임 지파는 이스라엘 내에서 가장 세력있는 지파로 활동해 왔으며(9절), 가나안 정복 당시 하나님의 언약궤도 에브라임 지파 내의 성읍인 실로에 안치해 두게 되었다(60절).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시고 거절하셨던 것이다. 여기서 '싫어 버리시며'의 히브리어 '마엔'(* )은 '거절하다'의 뜻이며 59절의 '미워하사'와 같은 말이다. 한편 혹자는 본문의 '요셉의 장막'이 요셉 지파를 뜻하지 않고 실로의 장막, 즉 에브라임 지파 내에 있는 실로의 장막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Anderson). 에브라임 지파를...아니하시고 - 하나님이 실로를 떠나 버리신 것처럼 에브라임 지파를 거절하시사 더 이상 이스라엘 내에 지도권을 행사하시지 못하게 하셨음을 뜻한다(Anderson).


=====78:68
 유다 지파 -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나 열두 아들 중에서 영적으로 큰 축복을 받은 자이다(창 49:8-12).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후손 가운데서 나시리라는 예언을 받았다(창 49:9). 그의 후손은 출애굽 후 광야 야영 때에도 맨 처음 언급된 선두 지파였으며(민 2:3, 4), 광야 여행 때에는 선봉 지파로서 진행했고(민 10:14), 여호수아의 죽음 후 제1선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면하고 영토를 정복하였다(삿 1:1-21).
 시온 산 - '시온'(* , 치온)은 '요새', '성채'란 뜻이다. 이는 근본 예루살렘의 남동쪽의 조그마한 구릉, 즉 기드온 골짜기와 튀로페온(Tyropeoean) 골짜기 사이의 구릉 지대로서 여부스 족속이 거하였던 요해지(要害地)였다. 이곳을 다윗이 점령하여 다윗 성이라 부르게 되었다(삼하 5:6-9). 그 후 이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안치되고 이스라엘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삼하 6:12-19). 그리고 이 시온은 이후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어진 곳을 포함하여 불리워지게 되었고(48:2;50:2),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읍을 전체적으로 대표하여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아 3:11;사 10:32;렘 4:5, 6;애 4:2;슥 1:17). 이 시온은 영적 의미로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주권자, 통치자로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처소의 의미를 담고 있다(2:6;9:11;50:2;99:2;사 8:18). 따라서 성경에서 거룩한 산으로 묘사되고 있다(2:6;욜 2:1).


=====78:69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 '산의 높음'의 히브리어 '라밈'(* )은 '높음','높은 것들'의 뜻이며 이에 대한 의미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산들이나 언덕들과 같이 높은 곳을 뜻한다(Alexander). (2) 하늘과 같이 높은 곳을 가리킨다(VanGemeren, Anderson). 영역 본들의 경우를 보면, NIV는 the high mountains(높은산들)라고 번역하여 (1)을, RSV는 the high heavens(높은 하늘들)로 번역하여 (2)를지지하고 있다. 특히 (2)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이 말이 본문의 성소가 높은 하늘과 같이 영구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튼 본문은 근본적으로 높음을 강조하여 하나님의 성소가 '실로'에서처럼 사라지는 일이 없이(60절) 견고하게영원히 존속하도록 한 것을 가리킴에 분명하다. 한편 본문의 '성소'란 가시적으로 지어진 솔로몬 성전만을 가리키지는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은 이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 성전, 즉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Alexander).

 

=====78:70
 그 종 다윗을...취하시며 - 이는 다윗이 양치는 목동으로 있었을 때 선택하신 것을 가리킨다(삼상 16:11-13).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다윗을 선택하시되 그의 외적인 능력과 신분의 존귀함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주권과 은혜에 따라 행하신 것임을 보여준다.

 

=====78:71
 그 백성인 야곱...기르게 하셨더니 - 이스라엘 백성을 야곱이라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5, 21절을 참조하라. '기르게 하셨더니'에 해당하는 '라아'(* )는 '(가축을)을 돌보다', '방목하다'의 뜻이며 이에 '다스리다'의 상징적 의미가 유추되었다. 이는 다윗이 전에는 들의 양들을 돌보며 먹였으나, 이제는 목자되신 여호와를 대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며 먹여야 할 위치에 있게 되었음을 잘 나타낸다.


=====78:72
 마음의 성실함으로 - '성실함'의 히브리어 '톰'(* )은 '탐맘'(* , 완성하다, 완전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완전함', '온전함', '흠 없음' 등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르되,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모든 것을 순종하며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행하였음을 시사한다(왕상 9:4).
 그 손의 공교함으로 - '공교함'의 히브리어 '타분'(* )은 '빈'(* , 구별하다, 이해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분별', '이해', '통찰력'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그손으로 통치하되 특히 분별력 있게, 지혜롭게 치리하였음을 나타낸다.

 

 

 

 본 시편은 '역사적 시편'(historical psalm)가운데 첫 번째의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교훈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혜시'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시인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회고(105, 114, 135, 136편)에서 그치지 않고 일종의 역사 철학(aphilosophy of history)을 제공함으로써 앞으로 아스라엘 백성이 마땅히 가져야 헐 하나님과의 지혜로운 관계를 베시하고 있다. 아울러 구약 전체를 포괄하는 이스라엘의 민족사를 함축적으로 요약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통하여 시인은 하나님의 분명한 개입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저한 불순종을 분명히 지적한다. 아울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여전히 계속되며, 철저한 하나님의 경륜에 근거하여 진행되어질 것을 나타낸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어진다.
 1) 이스라엘은 열조의 패역한 전철(前轍)을 다시는 밟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교훈(didactic)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1-8절).
 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그치지 않으셨지만,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멸시하고 다른 길로 나아간다. 진노를 다하였다(9-64절).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양육하셨다(65-72절).
 이러한 전개 과정을 토대로 하여 본문이 주도하는 사상을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선택하시고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출애굽을 단행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둘째, 반면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은 완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시인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에 대한 언급, 즉 이스라엘 왕국을 통차하기 위하여 유다 지파 중에서 다윗 왕을 택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구원 경륜을 찬양하고 있다.
 한편 이 시편이 쓰여진 역사적 상황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으나 마지막 부분인 70-72절을 통해서 볼 때에 아마도 다윗이 죽은 이후에 저술되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서 본 시편을 포로 이전 시기 곧 요시야 왕 통치 시기로 보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1) 솔로몬 성전이 여전히 상조하고 있다(69절).
 2) 다윗 왕권이 여전히 권력을 행사한다는 암시가 있다.
 3) 포로 시기와 관련된 교훈이 없다.
 4) 북 이스라엘의 멸망(B.C.722)에 대한 명확한 서술은 없지만 북왕국에 대한 분명한 진술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명백한 본문상의 증거가 뒷받침되고 있지 않으므로 거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시편은 다윗과 동시대에 살았던 아삽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본 시편의 내용상의 특징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이 상이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즉 어떤 학자들은 본 시편을 지혜시의 성격을 지닌 '찬양시'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어떤 이들은 내용상의 사실들을 강조하여 본 시편을 순전한 '역사 서술시'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다루었듯이 본 시편을 과거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을 찬양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해야 할 지혜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본 시편을 수사학적인 분석(a rhetorical analysis)을 통하여 구조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서언(1-11절)                              |
+-------------------------------+----------------------------------+    
|       제1낭송(recital)        |        제2낭송(recital)          |
+-------------------------------+----------------------------------+   
|     광야 사건들(12-32절)      | 애굽으로부터 가나안까지 (40-64절)|    
+-------------------------------+----------------------------------+    
|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총     |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총       |
|          (12-16절)            |          (40-55절)               |    
|        반역(17-20절)          |       반역(56-58절)              |
|      하나님의 진노와 벌       |     하나님의 진노와 벌           |
|           (21-32절)           |          (59-64절)               |
+-------------------------------+----------------------------------+    
|      결과 (33-39절)           |        결과(65-72절)             |    
+-------------------------------+----------------------------------+    
 이상에서 언급된 구조적 특징을 상고해 볼 때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 자체를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시인은 일종의 '행위의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상이하게 본문의 구조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내적인 측면', 곧 하나님의 선택과 이스라엘의 거부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있다. 이 입장은 위에서 제시한 구조적 특징을 보충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
|     A. 이스라엘의 거부(9-64절)                              |
|        1.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 거부(9-58절)             |
|          a. 역사적 사건들과 그 해석(9-11절)                 |
|          b. 제1낭송(12-39절)                                |
|          c. 제2낭송(40-58절)                                |
|         2. 여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 거부(59-64절)           |
|      B. 하나님의 새로운 선택(65, 66절)                      |
+-------------------------------------------------------------+

 이러한 구조를 참고하여 본문의 내용을 구분해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서론으로서 (1-8절)이곳에서 시인은 백성들을 초대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교육을 통해서 대대로 전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출10:2;신6:4-25). 이 교훈의 목적은 선조들의 완고함이 초래했던 재난을 교훈삼아서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권면이다(6-8절).
 2) 역사적 사실은 부분(9-72절)으로서 에브라임 곧 이스라엘의 범죄에 관한 관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는 여호수아에서 사무엘(9-11절), 그리고 애굽에서의 구원으로부터 다윗 왕국의 건설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12-72절). 이제 이상의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각 단락을 나누어 보고 대략적인 내용과 주도 사상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다.

 1. 교훈의 특성과 목적(78:1-8)
 본 단락은 이 시의 서론 부분으로서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의 특성과 목적에 관하여 개괄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이 소유한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의 구체적 계시를 통하여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신앙이란 매일 매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과거의 신앙 체험은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산 교훈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과 후손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사(罪惡史)를 알려주는 것이다.
 시인은 교사의 입장에서 교훈을 시작한다. 먼저 백성들에게 제공하는 자신의 교훈을 주목해서 경청하도록 요구한다(1절). 시인은 열조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를 회고하려고 한다(2-4절;출13:8,14;신4:9;6: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 증거로써 이스라엘 가운데 '율법'( )을 주셨다(5절). 이제 시인은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수한 역사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므로 시인이 전하는 교훈은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훈이라고 불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아온 것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통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아온 것은 두 가지 방식에 의해서였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율법을 통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행위-출애굽 사건-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특히 십계명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후(출20장;신 6장) 이스라엘의 운명은 하나님의 율법 준수 여하에 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증거'와 '법도'는 창세기에서 할례를 세우시고(창17:10-14) 신명기에서(32:46)최후의 교훈으로 매듭지은,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신 일련의 모든 명령을 의미한다. 동시에역사를 통하여 실제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교훈을 포괄하고 있다(출12:26,27:13:8;신4:9;6:7;11:19;32:46). 이러한 의미에서 율법을 받은 세대만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자손들은 증거와 법도를 알아야 하며(6절) 그 교훈을 바탕으로 하여 언제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7절), 패역한 선조들의 전철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8절).
 한편 본 단락은 길고, 다소 양식화된(stylized) 성격을 띠는 서언으로서 49편의 서언과 비슷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여 시인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를 마치 하나의 수수께끼(riddle)를 풀듯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이 제시하는 교훈의 목적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드러내는 데 있지 않고 그 속에 담긴 내면적인 가르침을 드러내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이 앞으로 전개할 역사적 사실들은 하나의 비유인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일반적인 비유의 사용법에 의지하여 단순한 '우화적'인 서술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교훈적인 역사를 강조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유를 사용할 것임을 암시한다(잠 1:6). 결국 여기서 의미하고 있는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과거의 하나님의 행위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이 시편 저자는 그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이제 뒤이어 나오는 역사적인 교훈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시도한다(21, 22, 33, 56-59절).
 이상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과 기사를 경험하고서도 여전히 범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이처럼 범죄케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고와 행동의 최종적인 근거로 삼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이 보여주신 신비한 일들에 대한 망각(78:9-16)
 앞에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의 목적과 특징을 간략히 서술한 시인은 본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신비한 이적과 기사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먼저 시인은 에브라임의 패역을 열거한다(9절). 그들은 여호수아로부터 사울 왕까지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역할을 한 족속이었다. 여기서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창48:15-20).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는,
 1) 에브라임의 족속의 죄악과 관련된 내용이 문맥상 12,57절에서 이스라엘 전체 열조와 관계하고 있다는 점
 2) 아삽의 시들이 특히 요셈의 부족에 관하여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므로 이스라엘의 대표를 은유적으로 지칭하기 위해서 에브라임을 사용하였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67절에서 다시 등장하는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언급의 의도가 뒤이어 나오는 유다 지파와의 대비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어졌다는 이유로 인하여 9절의 에브라임은 지파에 관해서 서술하려고 의도하지 않았고 전체 이스라엘의 죄상을 에브라임 지파의 구체적인 죄악과 관련하여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적을 망각했다(11절). 은혜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거부하고, 율법 준수도 거역하였다(신29:25;31:20;삿2:11-13;8:33;10:10;왕상19:10, 14)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건너가게 하셨다(13절). 또한 광야에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고(출 14:19, 20;민9:15-23)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게 하셨다(15,16절). 이러한 엄청난 사건조차 잊었다면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기억했겠는가? 이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기적을 잊어버린 이유는,
 1) 하나님의 구원을 중요시하지 않았고
 2) 하나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불신앙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이스라엘 역사 속에 에브라임 족속, 9-11절에서 에브라임 족속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다고 한다. 왜 시인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에브라임과 관련하여 소개하려는 것인가(9,67절)? 사실 에브라임 족속의 선조인 에브라임은 요셉의 작은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의 할아버지 야곱에 의하여서 축복을 소유한 자였다(창48:13-20). 뿐만 아니라 이후 북이스라엘을 형성한 대규모의 주요 족속이었다.
 이렇게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소유한 자들이었으나,
 1)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패배했고(삿1:29)
 2) 다윗이 아닌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추대했으며(삼하2:8-11:26-12:20) 등으로 인하여 많은 오점을 남겼다. 그러므로 에브라임은 남 유다와 대치되는 대표적인 족속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불신앙과 율법에 대한 경시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인은 하나님의 많은 호의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은 망덕하는 에브라임의 자세를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설명하는 데 상징적으로 이용하려 하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 유다에 대한 에브라임의 반역을 부각함으로써 마지막 부분(68-72절)의 유다 지파에 대한 선택을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3.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이스라엘의 불신(78:17-31)
 본 단락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의 열조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사건들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였다고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시험은 욕심에 의한 것(18,29,30절). 불신앙에 의한 것(19,20,22절). 계속적인 범죄(17절)등이라고 기술했다. 이제 본 단락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한다.
 1) 광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림(17-20절):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12-16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계속하여 범죄하였다(17절). 특별히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통하여 그들의 불순종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직접 목도해 온 하나님의 이적을 망각한 채 현실의 고통스러운 상황만을 생각하며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는 단순히 육신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감각적이고 육적인 탐욕(18절)에 근거한 요구였다. 그들의 탐욕은 이제 하나님의 불신하고 마음속으로 반항하는 모습으로까지 확대되어 드러나게 되었다(19절).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고 본능적 욕구를 추구하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인도를 받으면서도 감사보다는 불평을(출16:2,3) 일삼으며,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를 저질렀다(18절).
 2)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21-31절):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하여 맹렬하게 진노하시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심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감사와 찬양을 버리고 도리어 탐욕과 원망을 품는 죄악에 다시 빠졌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 없든지 항상 범죄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철저한 불신앙에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맹렬한 노를 발하신다(21절). 표면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시험한 사실(19,20절)이었으며 내면적으로는 철저한 불신앙(신1:32;히3:18)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22절에서 '믿는다'는 뜻으로 사용된 동사 '아만'( )은 흔히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차원으로 이해하지만, 원래의 의미는 '지속적인 확신'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베풀어주신 이적적인 구원을 보고서도 여전히 믿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의 불신에 대해 철저히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반역으로 이해하신 것이다(22절).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위치에 도달하셨다.
 우리는 23-31절을 통하여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이 본문은 하나님의 행위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irony)을 보여준다. 즉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이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져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19,20절에서 탐욕에 근거한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그대로 응하신다. 즉 광야에서 방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제공하심으로써 불신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해 주신 것이다. "비같이"(24절), "티끌같이"(27절) 풍족하게 내려주심으로 인하여 아스라엘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 하늘로 부터 오는 신령한 음식을 풍족하게 맛보지 못한 자가 없었을 것이다(29-31절). 이 사건은 실제로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주신 은혜의 결과였다(출16:13;민11:31).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은혜로운 일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요구는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불신앙을 드러낸는 것이었으므로, 하나님의 충족한 응답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최대화시킨 일종의 재앙이었다(31절). 그래서 민 11:31-35에서는 메추라기 사건을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해하였다. 시인은 이 사건을 이스라엘의 욕심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 아래에서도 계속 되었으므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석한다(30절).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언약 백성들은 수시로 배역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자비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되는 탐욕(딤전6:9-11;약1:15)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4. 거짓으로 회개함(78:32-39)
 이제 본 단락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response)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철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회개하는 듯 하였으나, 사실상,
 1) 아첨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고(36절)
 2) 불의한 마을을 지녔으며
 3) 하나님과의 언약에 성실하지 못했으므로(37절)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또한 본 단락은 광야 세대의 형편을 통하여 전체 이스라엘의 모든 세대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다실 말하면 죄->징벌->회개->용서와 같은 일련의 상태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였는데, 이 모든 사실 속에서 무엇보다
도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충분히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13-17절), 그 형벌에 대해서도 놀라지 아니하는 (31,32절) 목이 곧은 백성이었으므로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었다(40, 41절, 56-58절), 이제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슬픈 결과가 32절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여전히 죄악을 저지르는 동시에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을 끝까지 신뢰하지 않았다. 이제 사실에 관하여 좀더 부연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32-39절).
 1) 불신의 결과(32,33절):여기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탐꾼들의 보고(報告)를 듣고 두려워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낙심한 죄와 거기에 대한 형벌을 진술하고 있다(민14:11, 18-34). 이스라엘은 불신의 대가로 40년간 광야에서 유랑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하고 강팍해진 마음을 소유한 이스라엘에게(히3:13) 40년간의 광야 기간은 하나님의 심판이며 연단의 과정이었다.
 2) 계속되는 거짓(34-37절):하나님께서 불신의 세대를 광야에서 다 죽게 하시고 그 후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일로 인하여, 잠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회개를 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통회와 자복을 하지 않았고, 단지 입으로만 고백할 뿐이었다(출33:4).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모두 죄악의 결과로 광야 기간 동안죽게 되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염병을 보내어 죽게 하셨는데(민14:12) 모세가 진심으로 회개의 중보 기도를 드렸다(민14:13-19). 34,35절은 바로 이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짓과 아첨을 일삼았다(36절). 단지 일시적인 죽음만을 모면하려는 행위를 반복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던 사실은(34절) 하나님과의 분리됨을 염려했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닥친 징계로 인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 내용이 무었인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로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출19:6).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37절). 언약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참엿하도록 촉구한다(벧후 1:4). 다시 말하면 언약 백성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신실하고 변함이 없는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신10:12;잠3:1;23:26).
 3) 하나님의 여전한 자비로우심 (38,39):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그들의 연약함에 근거하고 있음을 인정하시고, 이스라엘 자손 전부를 진멸하지 않으시고 후손은 보존하여 가나안에 입성하도록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와는 대조적으로 진노를 최대한 억제하시는 동시에 인간으 연약한 상태를 기억하셔서(38, 39절) 노(worth)를 발하지 않으시고 대신 당신의 사랑의 성품을 드러내신다(출34:6,7).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 대해 죄의 결과에 따라서 철저히 진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측은히 여기셨던 의도는 죄를 과소평가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바람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신 까닭이다(39절). 우리는 이상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가 없다면 어떠한 사람도 온전한 삶을 지탱할 능력이 없음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다.

 . '육체'( )의 신학적 의의.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육체의 용례는 세 가지( , , )로 사용되었다. 그 중 본 시편의 39절에서 쓰인 '바사르'( )가 총 269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어졌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은 '육체'라는 용어 자체를 본래적인 문자적(literally)인 의미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수사학적(rhetorical)인 특징을 띤 대유법(代喩法)적 의미로 사용하여 왔다. 그런데 본 단락과 관련하여 살펴볼 때 구약 성경에서는 '육체'라는 용어가 비록 개체적인 인격의 활력(活力)을 나타내는 의미의 용례로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동시에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으로 나오는 경우도 여러 번 있다. 신학적 의미로 볼 때에 인간은 육체이므로 반드시 죽어야 할 조재로 언급된다(창6:3;욥34: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연약함을 아시고 무한한 자비를 베푸신다. 사31:3에서는 약하기 그지없는 육체가 강한 영과 대조적으로 함께 사용되어 나와 있으며, 특히 대하32:8 같은 곳에서는 앗수르 왕 산헤립을 '육신의 팔'로 묘사한 반면,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능력'을 지니고 계신 분으로 묘사한다. 또한 사40:6에서는 인간 곧 모든 육체는 쉽게 시들고 단명(短命)하여 사라져 버리는 풀과 같은 존재로 비유되어 나타나 있다(37:2;90:5;103:15). 그러므로 상기한 바와 같이 39절과 관련된 '육체'의 의미는 단순한 문자적 의미가 아닌 죄악된 본성으로 인한 현실, 곧 영원하신 하나님과는 대조되는 일시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진 것이다.

 5. 애굽에서의 기적 사건을 망각함(78:40-53)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살펴본 후에 시인은 다시 한번 애굽에서 행하신 기적 사건들을 열거함으로써 감사치 아니하는 이스라엘의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진노의 정당성을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애굽에서의 재앙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었으며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을 계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무시해 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에 대해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인은 애굽에서의 기적 사건에 영적 진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원래 사건의 순서와는 약간의 차이가 나도록 서술한다. 이러허 시인은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체험하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죄악을 지적한다(40-42절).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하고 있는 그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친히 열 가지 재앙을 베푸셨음을 강조한다(43-51절). 더 나아가서 자기 백성을 애굽열 구출하여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설명하고 있다.
 1) 계속적인 불신앙(40-42절):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광야 생활을 하도록 만드신 진정한 목적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섬기도록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결국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한 자기성찰(self-reflection)의 계기가 되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그들의 불신앙을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냈다(40절). 이렇게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배도(背道 )로 이끌었던 근원은 바로 감각적인 욕구와 혐오였다. 반대로 "몇 번인고"(40절)하는 외침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인내를 찬양하기 위한 시인의 의도이다. 그러므로 광야 생활은 두 가지 측면, 곧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배신과 계속되는 하나님의 인내가 대조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이제 광야 생활 속에서의 이스라엘의 죄악이 또 다른 측면에서 소개되고 있다(42절).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시험하였다(출17:2,7;신6:16). 이스라엘의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선택하신 행위를 후회하도록 만들정도였다(41절).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광야에서의 생활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시험하기 위한 기간이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시험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목도하고서도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철저히 망각한 자들이었다.
 2) 애굽에서의 기적(43-51절):본 단락에서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은 단순히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시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예외적, 특수적인 인도를 선명하게 묘사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43절에서 시인이 하나님의 기적을 하나의 징조(sign)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65:8). 여기서는 12절에서 제시된 내용이 다시 언급되면서 확대되어진다(43절).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일은 미래에도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기 위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시인은 영적인 진리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 발생했던 역사적 순서와 관계없이 서술하고 있다.
 3) 하나님의 인도(52,53절):본 단락은 하나님의 이적적인 역사 개입이 애굽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발생된다고 설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까지 철저히 간섭하셨다(사49:10;63:14). 이와같이 오늘날 신자들도 동일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는 마치 목자와 양떼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다(52절;사40:11;53:6;슥10:3;요10:2-5). 양떼는 철저히 목자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53절). 그렇지 아니하면 길잃은 양과 같이 광야에서 유리하는 존재가 되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상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긍휼과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과 계속된 긍휼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인간이 비록 변개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 '광야'의 신학적 의의
 1. 하나님이 함께하여 주심:광에에서의 삶은 철저한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인간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도저히 살아가기 불가능할 곳이다(107:4, 5;신1:19;8:15;렘22:6). 더구나 40년간의 유랑 생활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훈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2.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심: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스라엘은 외적인 악조건으로 인하여 순간 순간미다 하나님께 친히 인도하여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가나안에 도달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마치 목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도하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은 갈 길을 잃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52절).
 3. 하나님의 이적으로 도와주심:황폐한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심을 드러내심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의 삶 구석구석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15,16절).
 4. 하니님이 이스라엘을 연단하심: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으로 하여금 거치른 광야 생활을 겪게 하심으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백성으로 훈련되기를 원하셨다(신8:2).
 5. 하나님의 불순종함: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모습은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욕구로 인하여 끊임없이 배도하는 불신앙의 역사였다. 이 사실은 얼마나 인간이 연약한 존재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히3:7-19).
 6. 하나님을 시험함:이스라엘은 광야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심령을 근심케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시하고 시험하려는 교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였다(17-19절).

 6. 가나안에서의 우상숭배(78:54-64)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언급하던 시인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을 기술한다. 출애굽의 목적은 바로 가나안 정착이었다. 그런데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된 이스라엘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경도(傾倒)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죄를 다른 남자와 음행한 여인에 비유하였다(호3:1).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지극히 정당하였던 것이다.
 1)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착(54,55절):본 단락은 가나안 정복을 가리키는 동시에 특별히 시온과 유다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54절에서 '성소의 지경'은 성소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가 아닌 거룩한 땅, 곧 가나안을 갈킨다. 또한 '오른손이 취하신 산'이란 시온 산을 가리킨다(44:3;출15:17). 사실 가나안에서의 핵심은 성소였고(54절) 성소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구체적인 실증이었다. 55절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한 예를 보여준다.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의 삶은 출발부터 하나님의 전적 주권이 행사-가나안 원주민을 내어쫓고, 토지를 분배하신 사실-되었다(55절).
 2) 우상 숭배(56-58절):본 단락은 정복 전쟁 이후 가나안에서 살았던 이스라엘의 초창기 역사를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광야에서 거주하던 조상들의 불신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출애굽 1세대들은 탐욕과 불신(18, 22절)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멸절되었는데(34절), 정착한 후에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선물로 받은 후에도 계속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56절). 사사기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배도->심판->회개
->구원이라는 반복적인 순환 구조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삿2:11-19;3:12;4:1:6:1;10:6-15;13:1). 사사 시대에 이와 같은 상태가 계속 지속된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서 열조와 맺은 언약의 '증거'(56절)인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56절)인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57절)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생활한다(호7:16). 심지어 이스라엘은 십계명을 통하여 분명하게 명시된 올바른 예배 대상과 방법을 무시하며 산당을 짓고, 우상을 숭배하는(58절)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3) 심판의 당위성(59-64절):이처럼 패역한 이스라엘은 바알 숭배의 결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가나안 땅에 최초로 성막이 세워졌던 실로(Shilo)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수18:1)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법궤조차 빼앗기는 상황이 되었다(삼상 4장).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겪은 수난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진노를 보여준다(59절).
 이스라엘은 가낭에 정착하여 '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 사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인데, 특히 사사 시대에는 조각한 우상과 녹여서 만든 우상을 경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많아졌다(58절;삿17:4,13; 18,17,18,31).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헛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시고 징벌하셨다(59절; 레26:30;신32:19;암6:8). 즉 여호수와가 처음으로 회중의 장막을 세운 곳으로서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었던 실로는 불레셋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정복당했다(삼상4:11).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빼앗기게 되었다. 이러한 참담한 패배는 하나님께서 가시적인 임재 장소를 옮기셨으며 또한 실질적으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표시이다. 이스라엘은 법궤를 빼앗긴 전쟁에서 삼만 명이나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삼상 4:10) 전 이스라엘의 기업(heritage)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었다. 모든 이스라엘의 각계 각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철저히 살생되었던 것이다(63, 64절). 특별히 61-64절은 이러한 심판의 의미와 농도(depht)를 잘 설명하고 있다. 참으로 이스라엘은 율법에 나타난 규례대로 하나님만을 섬기는 데 실패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쉬지 않고 죄악을 범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부터 당신의 능력을 거두셨고 이스라엘은 자연히 대적에게 유린되고 말았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선택된 백성의 분리는 곧 죽음과 형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실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여호수아는 최초로 길갈에 진을 치고 거주한 후에 이어서 실로에 진을 쳤다(수14:6;18:1). 여호수와가 특별히 실로를 택한 이유는 분명하게 알수 없으나, 이스라엘은 여기에다 회막을 세우고 회집하였다. 이로써 실로는 중요한 장소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수22: 9,12).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심지로서 실로의 중요성은 계속해서 사사 시대까지 연결되었다. 사사기의 저자는 실로에 있었던 기간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다(삿18:31). 실로에서는 해마다 여호와의 절기가 있었는데 수백명의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기 위해 나왔었다(삿21:19이하). 이렇게 무도(舞蹈)하는 여인들까지 참석하는 연례적인 절기 행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실로에서 어떤 유형의 풍성한 제사 의식이 존재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사사 시대에 실로가 이스라엘의 예배 처소로서의 탁원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비하여 다른 장소들은 여기에 견줄 바가 못된다. 한때나마 벧엘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던 장소로서 부각되기는 하였지만(삿20: 26, 27). 실로는 사무엘 선지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의 종교 생활에서 계속 막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흡니와 비느하스등 두 제사장으로 인하여 타락하여진 실로에서의 제사 의식은 사무엘 시대를 거친 후,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군대와의 싸운에서 패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상실하게 되자, 중요한 의미
를 상실하게 되었다(삼상 4:3, 11, 12). 이때에 실로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정북쪽 놉당으로 피하여 갔었음이 분명하다(삼상 22:11). 실로와 성소가 파괴된 때는 B.C. 1050년 경으로 볼 수 있는데, 여로보암 왕의 아내가 실로에 있는 선지자 아히야의 집을 방문한 사실을 볼때 최소한 B.C.922년까지는 실로에 어떤 유형의 성소가 존재했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왕상 14:2, 4). 이스라엘 자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실로의 성막에서 떠나시고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60, 61절).
이 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시대에까지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실로의 하나님의 성망을 보면서 강력한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곧 예루살렘의 성전이 도적적, 종교적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실로의 성막이 당한 운명과 동일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7:12, 14;26:6, 9). 그런데 실로 성읍에는 바벨론 왕의 예루살렘 총독이었던 그다랴의 시대 후기까지 어느정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렘41:5).

 7.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새출발(78:65-72)
 본 단락에서 시인은 새로운 국면을 소개한다. 즉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또다른 시작이며, 동시에 이 시편의 결과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하심을 보여준다. 실로의 성막에서 떠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을 돌아보시고 사울과 다윗을 일으켜 블레셋을 섬멸하셨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새로운 선택을 단행하심으로써 자신의 언약을 계승하게 만드신다. 즉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지파로 유다 지파(창49:8-12)를 선택하고, 성소로는 시온 산을(132:13-14)지정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할 대리자로써 다윗을 선택하셨다고 선포하고 있다(68-70절). 이러한 사실은 출애굽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다윗을 통해 성취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사11:11-16).
 1) 대적을 물리치신 하나님(65,66절):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내재적 죄악으로 인하여 철저히 대적에게 유린당한 이스라엘을 계속적으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분명히 일어나서 다시 한먼 대적들을 철저하게 섬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대적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유린된 이스라엘에게로 다신 눈을 돌이신다. 그분은 마치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용기를 얻은 자 같이 과감히 이스라엘을 위해 일어나셨다(사42:13;슥10:7). 특별히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을 '자다가 깬 자',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 등으로 묘사한 것은 하나의 은유적 표현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해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금 결정적으로 개입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실로의 파괴 이후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 가운데 거주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방관치 않으시겠다는 각오를 표출하심으로써 새로운 상태를 기대하도록 유도 하신다.
 2) 하나님의 궁극적인 선택(67-72절): 하나님께서는 이제이스라엘 전체의 반역을 대표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남왕국 유다를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중요한 처소였던 북 이스라엘, 곧 에브라임 지파를 거절하시고 유다 지파와 시온 산을 택하셔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 욥바의 장막은 실로 성소로서 에브라임 족속의 경내에 있었다. 실로라는 장소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로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시기에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거듭되는 반역으로 인하여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로를 대신하여 시온을 선택하시고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 것이다. 사실 시온의 선택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이미 가나안 정복 초기부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사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삿 1:1,2).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시온'의 선택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땅 위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신실성을 가시적으로 표출하는 의미를 갖는다(132:13-18).
 이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 왕은 가시적인 시온의 통치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땅위에 하나님의 통치를 시행할 것이다. 이 선택은(68절)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이미 다윗이 사무엘에 의해 기르부음을 받았을 때 이루어졌다(삼상16:1-13). 그 이후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당신의 거처를 시온 산에 정하도록 다윗에게 영감을 주셨다(삼하5:7-9). 그리고 법궤를 옮기도록 명령하셨다(삼하6:12-17). 이러한 법궤의 안치는 예루살렘을 성전의 위치로 선택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이스라엘은 다윗의 통치 하에 영광과 번영을 누렸고, 특히 다윗의 성실한 지도(72절)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섭리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본 달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속 경륜에 따라서 새롭게 인도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은 하나님의 새로운 구속 역사가 전개되는 도구였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성실하신 분이심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나님의 구속은 이스라엘의 극악한 배도에도 상관없이 여전히 진전되고 발전되어 나간다.

 본 시편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의 행위는 사실을 기초로 하여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친다.
 2)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선포는,
 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하나님 백성의 선한 관습으로서
 나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며
 다) 하나님을 최고로 영광그럽게 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삶 속에서 다양한 사실로 다가오는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현 상태를 점검하고 미래를 다짐해야 한다.

 . 야곱과 이스라엘의 관계. 이삭의 육체적인 아들이었던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름을 부여한 인물로서 등장한다. 특히 야곱의 일생은 한마디로 투쟁의 생활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는 항상 자기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위험한 자들과 대면했고, 하나님의 축복하신 자기 기업에 대해 많은 위협을 받았다. 이 사실은 창세기 이외의 성경 기록들이 거의 야곱의 생애에 대한 전체적인 개략을 설명하고 있는 점을 통해서도 명확히 알 수 있다(105:10-23;수24:3,4,32;호12:204,12). 뿐만 아니라 야곱을 은혜의 자식으로 설명함을 볼 때(말1:2;롬9:10-13) 그의 전체 삶이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이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동의어(同意語)로서의 야곱과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시가적(詩歌的) 이해이다. 다시 말하면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족속을 '야곱의 집'(사2:5이하; 8:17;27:9;암3:13;9:8;미2:7), '야곱의 아들들'(왕상18:31;말3:6), '야곱의 씨'(사45:19;렘33:26), '야곱의 총회'(신33:4) 또는 '야곱'(사9:8; 호10:11) 등으로 부른다. 반면에 미 1:5은 북왕국 이스라엘만을 언급하는 것이고, 나 2:2은 남왕국 유다만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본 시편 71절에서의 언급은 역사적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다른 성경 구절을 통하여 증명된다. 사41:21에서는 하나님을 '야곱의 왕'으로, 눅 1:33에서는 이스라엘을 '야곱의 집'으로, 행7:46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이 '야곱의 하나님을 위한 처소'로 소개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