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1
이 시편의 저작 배경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본 시편에도 앞 시편들에서 처럼 탄원시의 요소가 많이 들어 있는 점에서, 다윗이 대적들에 대해 고난당하던시절에 기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표제어 중의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며'라는 말은, '여두둔'이라는 악장(樂長)의 창법에 따라 노래 부르라는 뜻이다(대상 9:16;16:38,4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 '나의 영혼'(* , 나프쉬)은 다윗 자신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만'의 '만'(* , 아크)은 배타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불변화사로서 본 시편에서만 여섯 번 사용되고 있으며(2,4,5.6,9절), '오직' 혹은 '확실히'(진실로)라는 뜻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표현은 불의한 인간은 아무것도아닌데 반해 오직 하나님만 경외의 대상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Anderson). 그리고'잠잠히...바람이여'(* , 두미야)는 '잠잠하다' 혹은 '고요다'를 뜻하는 동사 '둠'(*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잠잠함' 혹은 '침묵'을 뜻한다(22:2;39:2).
또한 '하나님'(* - )은 '하나님께' 혹은 '하나님을 향하여'의뜻이다(Weiser). 따라서 본 문구는 '나의 영혼이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고요하나이다'의 문자적 의미를 갖는다. 이 같은 사실은, 다윗이 조금 전까지 환난으로 인해 극심한마음의 동요 혹은 불안에 빠져있었음을 암시해 준다(Calvin).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적극적으로 모든 것을 내어 맡김으로써 그분의 은혜에 따라 마음의 평강을 얻은 것이다(빌 4:6,7).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 본문은 앞 문구처럼, 다윗이 하나님께 모든것을 의지했던 이유에 해당될 것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원 그 자체라는 사실(2절)에 근거하여 그분께 의지하였던 것이다(35:3; 37:39; 65:5).
=====62:2
오직 저만 나의 반석(盤石)이시요 - '반석'(* , 추르)은 '큰 바위'를 가리키며, 비나 바람에 의해 그 형태가 쉽게 변하는 모래 언덕과 대조된다. 바로 이 같은대조점 때문에, '추르'는 하나님의 불변성(사 26:4)을 상징하는 용어로 흔히 사용된다(출 17:6; 신 32:4; 삼상 2:2). 따라서 본 문구는, 오직 하나님만이 신뢰의 대상이 되실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해 준다.
나의 산성이시니 - 59:9 주석을 참조하라.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비록 일시적인 동요는 있겠지만 완전하게 넘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뜻한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불변하셔서 신뢰의 대상이되시기에 합당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크신 능력으록 붙드실 것이기 때문이다(Calvin).
=====62:3
개역 성경처럼 '넘어지는 담...사람'을 핍박받는 자를 가리킨다고 보는 해도 많다(anderson, Dahood, NIV). 그러나 차라리 '언제까시 한 사람을 박격하려느냐 그를죽이려는 자는 기울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다'로 번역함이 더 자연스러울 것같다(Weiser, Calvin, 박윤선). 그 까닭은, (1) 본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아닌 악인들의 멸망을 강조하고 있으며(9,10절) (2) '기울어지는 울타리 같다'라는 표현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악인들의 비참한 최후에 대한 묘사로서 사용되며(사 30:13)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이라는 문구는 원문상 '너희가 일제히'의 다음에 있지 '사람' 다음에 위치해 있지 않다는 점 등 때문이다(박윤선). 결국 본문은 다윗의대적이 끊임없이 다윗을 위해(危害)하려고 하지만, 필경에는 곧 멸망 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사람(* , 이쉬) - 밭에 정관사가 없으므로, '한 사람'으로 번역될 수 있다.이것은 곧 다윗을 뜻한다. 이 말은 다음의 '일제히'와 날카롭게 대조되어, 수많은 악인들에 둘러싸였던 의인 다윗의 의로움을 잘 시사해 준다. 박격(迫擊)하기를(* , 후트) 구약 성경 중 본절에서만 유일하게 나오는 동사로서 '외치다'의 뜻이며 어떤 사람에게 달려드는 것, 혹은 겁을 주기 위해서 소리지르면서 손을 들고 달려드는 것을 가리킨다(Keil).
=====62:4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 '그 높은 위'는 다윗의 '왕위'(王位)를 가리키며 '떨어뜨리기만' 중 '만'(* , 아크)이 여기서는 악인들의 잔악성을 강조하는데 사용되고 있다(1절). 그리고 '꾀하고'(* , 야아츠)는 '모의하다' 혹은 '결의하다'의 뜻이다(대하 30:23; 렘 49:30).
거짓을 즐겨하니 -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확실히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이 다윗으로부터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위선적이며 불의한 재판을 했던 것을 연상시킨다(삼하 15:3-5; 16:7,8).
=====62:5
본절과 6절에서는 1,2절의 내용이 거의 동일하게 반복된다. 차이점이 있다면 1절의 '구원'이 본절에서 '소망'으로 바뀐 것과 앞에서 보다 시인의 확신이나 위로가 한결 깊어졌다는 점 등이다(Kidner).
=====62:6
2절과 거의 동일한 표현이다.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 본절에는 2절과는 달리 '크게'라는 단어가 없다. 2절에서는 조그마한 일시적 요동의 가능성을 남겨두었으나 이제는 보다 발전하여 그러한조그마한 일시적 요동도 있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 앞의 5,6절이 1,2절과 대칭되듯이, 본절은 3절과 대칭된다. 그러나 본절은 다윗의 비참상을 언급하는 3절과는 달리 사뭇 소망적이며 확신이 넘치는 내용이다. 그런 점에서, 본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5,6절은 그내용상 1,2절과 유사하나 그 내적 분위기에 있어서는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즉1,2절이 평강을 얻으려는 다윗의 노력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5,6절은 그 노력(1절)의결과로서 이미 평강을 얻어 확신에 찬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구원'은모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목숨을 보존하는 것, '영광'은 그 결과 회복될 그의 왕권을뜻할 것이다.
=====62:8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 여기서 '백성들'(* , 암)은 이스라엘 백성전체라기보다는 다만 그때 계속적으로 다윗에게 충성했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 같다(삿 3:18; 왕상 19:21; 왕하 4:42 참조). '시시로'(* , 베칼 에트)는'항상', 보다 구체적으로는 '역경 중에나 순경(順境) 중에도 변함없이'의 뜻이다(살전5:16-18). 또한 '의지하고'(* , 바타흐)는 '믿다' 혹은 '신뢰하다'로도 번역될수 있는 단어(삿 20:36; 사 59:4)로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내어맡기는 것을가리킨다.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 여기서 '토하라'(* , 솨파크)는 '붓다' 혹은 '쏟다'의 뜻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물을 받듯이 마음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모두 내어놓는 것을 가리킨다(박윤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 이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62:9
진실로(* , 아크) - 본 시편의 다른 부분(1,2,4,6절)에서는 '만'으로 번역된단어이다. 여기서도 그 같은 배타적 의미를 살려서 다음에 나오는 '헛되고'라는 단어와 합하여 '헛될 뿐'으로 번역해 볼 수 있다.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 이것은 모든 인간(49:2)이 부패했다는 사실, 그래서 더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이 다른 사람의 신뢰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사실을 말해준다(렘 17:9; 롬 5:12; 엡 2:1). 이것은 영욕(榮辱)이 엇갈리는 삶을 살았던 다윗이 체험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바로 이러한 결론에 따라서, 다윗은 앞 절에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함을 권면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천한 자'(* , 베네 아담)는 문자적으로 다만 '사람의 아들들'의 뜻이다. '아담'은 인간의 연약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므로(민 19:11;23:19; 삿 16:17; 삼상 16:7),개역 성경의 번역은 적절하다.
그리고 '높은 자'(* - , 베네 이쉬)도 문자적으로는 '사람의 아들들'의 뜻일 뿐이다. 그런데 그중 '이쉬'가 '아담'과는 달리강건한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에, 여기서와 같은 한글 개역은 타당하다(창 39:1; 삿 18:11; 왕상 1:42).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 문자적으로는 '그들은 저울에 올리면 다만 함께 입김일 뿐이라'의 뜻이다. 여기서는 앞 문구에서보다 더 직접적으로 인간은결코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한편, '입김'(* , 헤벧)이라는 단어는, 앞 문구에서는 '헛되고'로 번역되었다. 또한 70인역(LXX)은 본 문구를 '그들을저울에 달 때에 거짓되었도다' 저들은 다함께 헛된 것으로 되었도다'라고 번역하였다.
=====62:10
포학을 의지하지 말며 - '포학'(* , 오쉐크)은 속임수, 폭력을 아울러 사용하여 상대를 학대하는 것을 가리킨다(73:8; 호 12:7). 압살롬과 그 지지 세력도 바로이 같은 '포학'을 통하여 권력 장악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 여기의 '재물'은 앞의 것들과는 달리 정직하게 취득된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Calvin). 재물이나 권력은흔히 착취나(73:8; 렘 6:6; 22:17) 속임수 혹은 도적질(레 6:2,4; 겔 22:29)등의 결과로 얻어진다. 그러나 설령 합법적으로, 정직하게 얻은 재물이라 할지라도 신실한 마음을 앗아갈 위험을 항시 내포하고 있다(VanGemeren).
한편, '치심치'(* - ,쉬트 레브)는 '마음을 두다'의 뜻이며, 소망을 두어 그것에 자신의 미래를 전적으로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눅 12:14-21; 딤전 6:7). 이럴 경우 성도들은 필경 자신을 높이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마 6:24; 눅 16:19-25).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한 가지인데 내가 들은 것은 두 가지이다'로 번역함이 옳다(NIV, RSV, Keil, Weiser, C.b.Moll). 이것은,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셨지만 다윗은 그 말씀 속에서 두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다음 문구와 다음 절의 두 가지 내용이 바로 다윗이 깨달은 두 가지 진리이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 (1)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에 그분과 상관없이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며(마 9:29) (2) 따라서 하나님의 뜻과합치되지 않는 일들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임을 뜻한다(Keil).
=====62:12
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고통에서 반드시건져주시리라는 확신을 반영한다. '주'(* , 아도나이)에 대해서는 51:15 주석을 참조하라.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함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 '갚으심이니이다'(* , 솰람)는 의인과 악인에 대한 선악간의 보응을 뜻한다(잠 13:21: 렘 25:14). 그러나 이 문맥이 '주의 인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여기서는 의인에 대한 보상을 뜻함이 분명하다.
본질상 유한하고 상대적인 피조 세계에 미련을 두지 말고 무한자요. 절대자이신 하
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거듭 권고하는 시이다. 시편 분류상으로는 비탄시와 지혜시의
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지만, 하나님을 향한 확신과 신앙 고백이 두드러진다느 점에서
넓은 의미의 '간구와 신앙시'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작시 베경에 대해서 혹자는 압살롬의 반역 당시로 추측하지만 이를 디받침할 만한
근거는 별로 없다. 단지 본문 내용으로 미루어, 다윗이 악행자들의 음모와 공격으로
말미암아 고난당하던 시절에 지은 시임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마치 젖먹이가 엄마 품에 안기듯, 영혼의 참목자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좇아
가는 시인의 담밸하고도 순전한 신앙이 돋보이는 본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
저 1-7절에서 시인은 역경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확신있는 신앙
을 보여준다. 이어 8-10절은 자신의 체험적 신앙에 의거하여 동료 신앙인들에게 하나
님만 의뢰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11,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계시로 인한
시인의 깨달음이 신앙 고백투로 요약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에
담긴 주제들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굳센 믿음이 돋보인다(1, 2, 5, 6, 7절). 특히 본시에서
는 역격에 처한 기자가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기보다는(60:1;61:1참조) 하나님을 의
뢰함으로 평정돠 담대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이처럼 시인이 환난 중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오랜 연단 끝에 어떠
한 상황에서도 당황치 않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반증한다. 물론 그도 처음 환
난을 만났을 때에는 심히 요동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음으로
써 환난에서 구출될 수 있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결국 보다 성숙한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즉, 시인은 초기에는 말씀을 의지하는 듣는 신앙에서, 나중에는
체험까지 겸비된 보는 신앙에 이르게 된 것이다(욥42:5). 다윗은 극한의 시험을 만났
지만 오히려 평화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자신의 힘으로 그역경에서 벗어나
려고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그는 마음의 평정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짐을 스스로 지려고 하니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도움
은 교만한 자에게는 임하지 않으며, 하나님게서는 오직 당시만이 진정한 문제의 해결
자 되심을 믿고, 간구하는 자들을 도웃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문제를 주께 맡기고,
간구하는 자세를 견지했던 시인은 참으로 현명하였던 셈이다.
이러한 내용은, (1) 자신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교만한 자의 문제 해결 태도는 자
신을 결국 멸망케 하는 것이며(왕하 20:12-18) (2)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제사보다, 듣
는 것을 수양의 기름보다 낫게 여기신다는 사실(쌈상 15:22)을 깨닫게 해준다.
둘째로, 시인의 인생의 우매함과 연약함 및 사악성을 강도 높게 지적한다(3, 4, 9,
10절). 이러한 지적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분임을 역설한 내용과 극명하게 대조된
다. 시인은 먼저 인간의 연약성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에 비유한다(3절
f.). 구체적으로 이 표현은 위기에 처한 시인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지만, 보다 넓
게 이해하면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수 있는 인생의 연약함과 유한함을 동시에
나타낸다 하겠다(욥 4:19). 시인이 오직 하나님만 잠잠히 바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인생의 이러한 연약성을 통절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어서 인생의 유약함
에 대한 철저한 자각은, 자신을 해치려고 달려드는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
으로 연결되고 있다(9절). 이는 곧 "천만인(千萬人)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
려워 아니하리이다"(3:6) 고 고백할 수 있었던 사실과 상통한다. 아울러 시인은 많은
인생들이 중요시하는 것도 궁극적 의지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10절). 권력
이나 재물이 현실 세계에서 미치는 영향력이란 실로 대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러나 이러한 힘은 연약하고 비천한 자들을 도우며 또한 공동체 내에 공의와 진실이 통
하게끔 하는 데에 사영되어야 함에도, 그 힘만을 믿고 이기적 탐욕을 충족시키는 도구
로 사용하면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진리이다. 예수께서도 어
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세상적 부귀에 집착하는 자들에게 엄한 경고를 내리신 바 있
다(눅 12:16-21). 또한 시인은 여기서 자신을 괴롭히던 원수들을 책망한다. 우선 저자
는 그 원수들이 심히 잔인하며 악을 행하는 데 그 발이 빠르다는 사실로 인하여 책망
한다(3절ff.). 그리고 그들이 지극히 교활하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책망한다($
절). 이러한 강포함과 이중적 성격은 악행에 몰두하는 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
는 사항이라 할 만항다. 그 당시 다윗은 악인들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을 겪
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다윗을 끝까지 추격하여 제거해버릴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비록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왕이지만, 그 불법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였다.
결국 그들의 다윗에 대한 반역 행위는 곧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 행
위난 마찬가지엿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었던 관계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결
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그러한 교만하고도 사악한 행위는 곧 자신의 무덤을 파
는 일이나 다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훼방하는 그 같은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
회를 주신(롬 2:4) 후에는, 그들이 그래도 회개치 않고 계속 죄악을 범할 경우 결국
그들 머리 위에 쏟아부으시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굳게 의뢰하는 자는 대적들의
음모와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도를 눈동자같이 아끼시는 하나님은
성도들에 대한 공격을 곧 당신께 대한 공격으로 여기시기 때문이다(행 9:4;12:6, 7).
셋째로, 시인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라고 권고한다(8절). 하나
님께 의뢰하는 것이 만복을 받는 길이요, 모든 문제 해결의 원천임을 절실한 체험을
통해 확신하였기에, 시인은 자신의 복된 신앙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이웃과 공동체를 향한 권면은 시인의 신앙적 깊이와 크기를 잘 반영하고 있
다(롬 15:1). 한편, 추측하건대, 다윗이 권면했던 '백성들'중 상당수는 그 당시 하나
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세가들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악인들은
서민들을 수탈하며 짓누름으로써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강화시켜 나갔을 것이다. 이러
한 시대적 상황이 계속되었다고 하면, 일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던 자신
들의 삶의 방식에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백성들은 하
늘의 것보다는 땅의 것에 더 큰 관심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권력과 명예와 재물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부차적이리라는
어릭석은 생각을 갖게 되었을 듯하다(10절).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다윗은 그러한
세상적 삶의 태도가 잘못임을 지적한다. 또한 다윗은 악인들이 일시 득세하기는 하지
만 결국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한다(12절). 악인들의 권세와 재물 등
모든 세속적 가치들까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고 있었던(11절) 그로서는,
악인의 횡포로 인해 일시 동요하던 자들에게 바른 삶의 태도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
던 것이다. 사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쇠잔하여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사 40:6). 많은 권세자들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었지만 결국 얼마 안 되어 사라져 버렸고, 그 권세가 세습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리 길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였다(7절). 그리고 자신에 의해 인도받던 백성들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심어주기 원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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