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시편 05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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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
인자들아(* , 베데 아담) - 히브리 원문상으로는 본절의 제일 끝에 있는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판단하느뇨'의 목적어가 되어야 한다.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 문자적으로는 '너희들은 진실로 공의롭게 말하느냐?'의 뜻이다(NIV). 아마 이는 압살롬 일당이 기만적으로 백성들을 재판했던 사실에 대한 책망으로 보인다.
잠잠하느뇨(* , 엘렘) - 이에 대한 해석은 실로 다양하다. 그것들을 요약 정리해 보면 (1) 맛소라 사본의 독법(讀法)이 맞다고 보고 '침묵하느냐'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Luther, Jay P. Green), (2) '엘림'으로 읽는것이 맞다고
보고 '권력자들'(29:1)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공동 번역, Keil), (3) '울람'으로 읽어야 맞다고 보고 재판하는 곳인 '낭실'(왕상 7:7)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70인역, Jerome), (4) '엘로힘'(* )으로 고쳐 읽어야 맞다고 보고 '신
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Kraus, Weiser), (5) '알롬'으로 읽어야 한다고 보고 재판관들을 가리키는 '인자들아'로 번역해야 하다는 견해(Calvin) 등이 있다. 그러나 본절은, 재판관의 불의한 재판을 책망하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위의 여러 견해 중 (1)과 (5)가 보다 타당성이 있다.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 앞의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의 동의적(同意的)대구이다. 여기서 '판단하느뇨'(* , 솨파트)는 '재판하다'의 뜻이다(출 18:22).


=====58:2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 자신들의 기만적 술책을 공의로운 재판으로 가장하고 있던 사실에 대한 책망이다. 여기서 다윗은, 그들의 마음부터 사악하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이 백성들을 위한다는 구실로 베푸는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죄악된 것임을 강조한다. 땅에서...강포(强暴)를 달아주는도다 - '강포를 달아주는도다'라는 말은, 저울에 달듯이 정확한 재판에 따라 바른 판정을 내린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음을 가리
키는 모순 어법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특히 '강포'(* , 하마스)는 '헐다' 혹은 '학대하다'를 뜻하는 동사 '하마스'(*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잔학 행위를 가리키며(삿 9:24;렘 51:35), '땅에서'는, 그들의 잔학 행위가 은밀한 가운데가
아닌 공공연하게 거침없이 행해졌었음을 암시한다(Calvin). 한편 재판이나 심판을 (저울에) '다는것'으로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은 구약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62:10;욥 31:6;잠 16:2;21:2;24:12;단 5:27;마 7:2).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 이를 어떤 면에서 인간 누구나 원죄를 갖고 태어난다는 전적 부패(total depravity)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구절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 문맥상으로는 인생 일반에게 적용되는 전적
부패의 교리를 나타내기 보다는 죄악의 성향이 매우 강해서 개전(改悛)의 기미마저 찾아보기 힘든 악행자의 부패상을 강조한 말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A. A. Anderson). 한편 '멀어졌음이여' (* ,주르)는 '곁길로 들다'. '(이
방인이나)세속인이 되다', '간음하다'등의 뜻으로서, 본래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어떤 것과 절연(絶緣)한 것을 가리킨다.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 앞의 문구와 동의적 대구(對句)를 형성하고 있다.


=====58:4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 이는 악인들의 사악한 언행 심사(言行心思)에 대한 비유이며, 특히 중상, 거짓 참소, 저주 등과 같은 사악한 말과 관련이 깊다. 여기의 '뱀'(* , 나하쉬)은 '뱀'을 뜻하는 용어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다.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같으니 - 여기의 '독사'(* , 페텐)는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맹독성(猛毒性)의 작은 독사, 곧 '코브라'를 가리킨다. 그리고 '귀를 막은 귀머거리'는 하나님의 공의나 그 가
르침 혹은 기타 진실된 조언이나 충고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악한 뜻만 고집하는 자를 빗댄 표현으로서, '독사'가 술사(術士)에 의해서 쉽게 다루어지지 않는 사실과 관련있는 말이다. 이에 대한 설명 부분이 5절이
다.

=====58:5
술사(* , 멜라하쉼). '속삭이다', '기도하다' 혹은 '마술을 걸다'의 뜻인 동사 '라하쉬'(* )의 분사로서, 마술을 행하거나 그것을 위한 주문을 외는 사람을 가리킨다(전 10:11).
공교한 방술(方術)을 행할지라도 - '방술'(* , 하바림)은 '함께 묶다', '주문을 걸다' 혹은 '매혹하다'라는 뜻의 동사 '하바르'(*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뱀을 길들여 재주를 부리게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뱀을 부리는 것은 전
10:11;사 3:3;렘 8:17 등에서도 언급되고 있는데, 고대 세계에서 이는 단순한 여흥을 돋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신탁(神託)을 받는 방법의 일환으로서도 행해졌다고 한다(A. A. Anderson).


=====58:6
저희 입에서 이를 꺽으소서 - 이것은, 술사들이 뱀을 잡았을 경우, 필요에 따라 돌이나 막대기로 그 뱀의 독니를 뽑아버리는 것을 연상시킨다(Rawlinson). 그런데 뱀에게 있어서 '독니'는 사람에게 치명적 피해를 준다는 점
에서, 독니를 뽑는 일은 곧 뱀으로 하여금 더 이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그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본 문구는, 압살롬 일당이 공의를 빙자하여 백성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해달라는 기도이
다.


=====58:7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 흔적도 없이 신속히 멸절되기를 바라는 간구이다. 아마 시인은 여름에는 메말랐다가 우기(雨期)시에는 급속하게 불어나 맹렬히 흐르는 팔례스틴의 와디(wadi)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욥 6:15f.). 한편 성경에서 '물'은 풍부한 상징적 의미로서 사용되느 다표현이다. 때로는 정결케 하는 것이다(겔 36:25). 저주를 가져다 주는것(민 5:18)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때에는 생명의 필수 요소(사 3:1)나 생명
에 대한 위협(사 43:2)으로 나타나기도 한다(A. a. Anderson).


=====58:8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 여러 번역본들처럼 '앞으로 나아가다가 소멸하영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로 함이 더 타당한 듯 하다(NIV, Weiser, Kraus). '소멸하여 가는 '은 '달팽이'가 태양 볕에 노출됨으로써 그 표면의 점액
이 마르고, 결국에 가서는 그 몸 전체가 녹아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달팽이'는 건조한 기후나 강한 햇빛에 심히 약하다. 그래서 팔레스틴의 '달팽이'는 건조한 계절에는 움츠러들어 그 껍질 밖으로 몸을 드러내지 않는
다(Rawlins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 일당이라는 '달팽이'는 그러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지혜를 무시한 채 껍질에서 나와 태양 빛에 몸을 드러내고 다윗에 대한 모반을 꾀함으로써 '소멸'을 스스로 재촉했던 것이다. 한편
'달팽자'(* , 솨블룰)는 '자라다' 혹은 '흐르다'의 뜻을 갖는 동사 '쇼벧'(* )에서 파생되었다. 달팽이가 이러한 어근에서 파생된 읾을 가데 된 까닭은, 그 표면에 축축하게 항상 점액이 흐르기 때문인 듯하다.
만기(滿期)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 , 네펠 에쉐트)는 문자적으로는 '여자의 유산된 자'이며 '일광을 보지 못함'은 '죽음'을 뜻한다(욥 3:16). 이러한 사산(死産)
에 관한 언급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 대상을 나타낼 때 가끔 나온다(욥 3:16;10:18, 19;전 6:3). 결국 시인은 모반자들이 원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과 같이 그 영향력을 상실해 버리기를 바라고 있다(A. A.
Anderson).

=====58:9
7, 8절에 이어 본절에서는 악인들의 신속한 멸망을 예견하고 있다. 본절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안되었다. (1) '너희 가마가 가시덤불의 불을 느끼기 전에 너희 고기가 생 것이 든지 불붙은 것이든지 저가 그
고기를 회리바람으로 쓸어버리시리로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Keil, Calvin, Cheyne), (2) '너희 가마가 가시나무를 느낄 수 있기 전에 그것이 푸른 것이든지 혹은 불붙고 있는 것이든지 회리바람이 그것을 쓸어
버리리로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Weiser), (3) '그들의 가시나무가 관목으로 자라기 전에 가시덤불이나 잡초처럼 저가 그것들을 쓸어버리시리로다'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Kraus), (4) '너희 가마가 가시나무
의 열을 느끼기 전에, 그것이 푸른 것이든지 혹은 마른 것이든지 간에, 곧 그 사악한 자들이 쓸어버려질 것이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해석(NIV)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해석들도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즉,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악인을 '가시나무'와 '가마에 담겨진 내용물' 중 무엇으로 비유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우리는 첫째, 본절의 '불붙는 것'(* , 하론)이라는 단어가 '가마에 담긴 내용
물' 곧 '고기'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곤란하며, 둘째, 중근동인들은 여행 중에 '가마'를 걸어놓고 '가시나무'를 땔감 삼아 음식을 만들다가 강한 바람 때무에 그 땔감을 날려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점(박 윤선)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여기서 다윗이 '가시나무'를 악인으로 비유하고 있다고 봄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위의 네 가지 해석 중 (1)을 제외한 (2), (3), (4)의 것이 일단 더 타당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3)의 해석은, 맛소
라 본문을 임의로 변개(變改)시키는 등 많은 무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적절치 못하다. 그러므로 (2), (4)의 견해가 무난하다.
가시나무 - 물가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종류로서 불에 잘 붙고 잘타서 급히 음식을 장만할 때 사용되었던 땔감이다.

=====58:10
의인은 악인의 보복당함을...기뻐함이여 - 이는 의인이 마치 피에 굶주린 것처럼 악인의 파멸과 고통 자체를 즐긴다는 뜻이 아니라, 악인에 대한 징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 사실로 인해 기뻐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본문의 '보복'은 차라리 '승리'(triump, LB)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이다.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 이는 대적들에게 승리했음을 선포하기 위한 상징적 행동이다(68:23;사 63:3).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을, 원수들의 선혈이 붉게 물든 홍의(紅依)를 입은 전사(戰士)로 비유한 바 있다(사
63:1-6).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승리는 곧 성도들의 승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본문은 다윗의 신앙적 확신을 반영하고 있다.

=====58:11
악인들의 멸망으로 인한 의인의 기쁨속에는 악인에 대한 개인적 감정 차원보다는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을 즐거워하는 신앙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는 구절이다.
사람의 말이 진실로...하리로다 - 칼빈(Calvin)은 여기의 '사람'을 성도로 굵한시킨다. 인간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을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점에서, 이는 지당한 해석이다. 물론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교도들도 그들에게 어느 정도 남아있는 종교적 능력(전 3:11) 때문에 막연하고 피상적이나마 하나님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출 15:14;수 2:9).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 '갚음'(* , 페리)은 원래 '과일' 혹은 '열매'의 뜻으로서 어떤 원이네 따른 당연스런 결과를 의미한다(104:13;렘 6:19). 따라서 본 문구는 의인들이 그 선한 삶의 자세에 따라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것(사 3:10)을 가리킬 것이다(Calvin). 물론 이것은 간접적으로는, 악인들이 그 행위에 합당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하는 본시는 장르상으로 대
개 '비탄시'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는 단순한 비탄의 정도를 넘어 현실  가
운데 판을 치는 불법과 불의의 세력에 대해 신랄하게 저주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로 부
각되고 있으므로, 장르상 저주시에 포함됨이 더 나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하여  본시가
불법자들의 운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통해 드러나
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속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기자
는 불법자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예리한 눈으로 지적한다(1-5절). 그리고 그들에  대
한 저주가 여섯 가지 비유를 통해 강도 높게 표출되고 있다(6-8절). 그런 다음,  시인
은 그 불의한 자들이 불원간 하나님의 징벌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는 밝히  드러
나게 될 것을 선취적으로 확신한다(9-11절).
  한편 본시는 불법과 악행을 일삼는 악인들, 혹은 보다 좁게는 재판 자리에 앉아  하
나님의 공으리가 어지럽이는 악한 고관(高官)들 일반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더
욱 구체적인 작시 배경을 고려하건대, 우리는 다윗이 압살롬과 그 일당의 불의한 행위
를 보고 본 시편을 저작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압살롬은 다윗에 대한  반역을
본격적으로 도모하기에 앞서,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위한 공작을 벌였었다.  다
시 말해서 왕이 세운 재판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찾아가던 서민들을
붙잡아 세운 다음, 그 재판관 대신 백성의 송사(頌辭)를 해결해주고자 나선 것이다(삼
하 15:1-6). 물론 백성들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일 자체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압살롬
은 우선 자신의 권한밖에 있는 일은 자의에 따라 마음대로 실행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잘못이 있었다. 더우기 그는 백성들을 다윗으로부터 멀어지게끔 하려는 불순한 동기를
갖고 있었다. 또한 그는 그 동기가 잘못되었던 관계로, 백성들의 송사를 올바로  처리
하지 않았다. 즉, 백성들의 인기를 끌 수만 있다면, 그들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을 책망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듣기 좋은 감언이설(甘言利說)을 늘어놓기도  햇을  것이
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압살롬은, 다수 서민들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불의하게도  일부
소수에게 불리한 판결을 일삼기도 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는, 다윗이  백성을  위한
재판관을 세우지 않았다고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함으로써, 다윗을 게으른 왕으로 인식
시키려고 노력하였다(삼하 15:3). 이에 따라 하나님의 공의는 현저히 왜곡되었고,  백
성들은 진리보다는 제사를 즐기는 자들이 되어갔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다윗은, 늦
게나마 공의가 다시 구현될 수 있기를 하나님께 탄원한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압
살롬에게로 돌아섰고, 압살롬의 세력이 크게 확장된 상황에서 다윗이 할 수 있는 유일
한 것은 기도뿐이었다.
  이와 같은 본시의 전반적 내용을 통해 우리는 (1) 백성들이 깨어있지 않을 경우  지
도자들의 권모 술수(權謀術數)에 놀아날 가능성이 크며(마 7:15) (2) 백성들은 지도자
의 옳고 그름을 분별해낼 능력의 함양에 힘써야 하며(마 7:16) (3) 하나님으로부터 인
정받을 수 있는 지도자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기보다 법의  원리대로    공정하게
다스리는 자임(갈 1:10)을 깨닫게 된다.

  1. 불법자들의 실상(58:1-5)
  여기서는 시편 저자가 불법자들 혹은 불의한 재판관이 어떠한 성품의  소유자인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사실이 언급된다. 여기서 저자는, 그들이 공정한 재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선 말한(1절)다음, 그들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보여준
다. 먼저 불의한 재판관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다(2절). 즉, 그들은 겉으로는  공의
를 행한다는 명분(名分)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    위함이었
다. 또한 그들은 불의를 일삼는 악한 행위를 노골적으로 일삼았다(2절). 이것은  악인
들이 자신들의 세력이 커짐으로 인하여 대단히 오만방자했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
라 시인은 불의한 재판관들이 스스로의 죄악을 전혀 다스릴 능력도 없을 정도로  양심
에 화인맞은 자들이었음을 보여준다(3절). 이에 더하여, 기자는 불의한 재판관들이 지
극히 사나운 독사와 같아서 백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들에게 지극히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5절). 한번 물리면 치명상을 주는 맹독성 독사,  그
것도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귀머거리 독사라고 하는 표현은 죄악의 파괴적인 속성
과 위험성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취한 시상(詩想)이라 하겠다. 특히 성경에서  독
사 곧 뱀은 사단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바(창 3:1;계12:9), 여기서 시인은  뿌리
채 죄악에 오염되어 있는 구제 불능의 악인의 모습을(3절)보다 근원적 의미에서  사단
의 역사(役事)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 다윗이 이처럼 불의한 재판관들의 사악성을 하나님께 낱낱이 직고했던  까닭
은 무엇일까? 하나니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해 무지해서였을까? 결코 그렇
지 않다. 하나님은 이 땅의 일들을 낱낱이 감찰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0:2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종들의 간구와 아룀을 당신께 대한 의뢰 행위로 간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 단락을 통하여 (1)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당신의 자녀들과 교제하길  원
하시며(요일 1:3) (2) 신자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그  문
제 해결을 휘해 하나님께 간구해야 함(딤전 2:1, 2)을 깨닫게 된다.

  * 구약 성경에 언급된 뱀들.  오늘날 팔레스틴에는 대략 36종의 뱀이  서식하고  있
다. 그러나 고대 히브리인들은 그중 몇 가지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알고 있었던 뱀들은 어떤 생물학적 분류 방식에 따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히
브리인들에 의해서 히브리어로 표기된 그 뱀들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무슨 뱀인지 규명
하기는 매우 곤란하가. 따라서 본란에서는 팔레스틴에 서식하는 뱀들에 대해 먼저  일
고(一顧)한 후 구약 성경에 나오는 뱀들의 종류를 히브리 원어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팔레스틴의 뱀: 중동에는 길이 약 30cm이하로부터 길이 2cm에 몸통  둘레가  약
16cm되는 크기의 것까지 여러 가지의 뱀이 서식한다. 대부분의 뱀들에는 독이  없지만
약 여섯 종류는 빽빽한 산림 지대까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뱀들은 너무 추울  때와
너무 더울 때에 각각 동면(冬眠)과 하면(夏眠)을 취하며 너무 추운 밤과 더운 낮이 아
닌 아침과 저녁에 주로 활동한다.
  (2) 원어에 따른 종류
  (까) 나하쉬(*      ): 영역본에서 '뱀'(serpent, 혹은 snake)으로 번역됐으며,  모
든 종류의 뱀을 통털어 가리킬 때 사용되는 일반적 명칭이다. 헬라어의 '오피스'(*
    )에 해당된다.
  (다) 사라프(*      ): '강렬함'의  뜻으로서,  영역본에서는  '사나운  뱀'(firery
serpent)이라고 주로 번역되었다. 개역 성경에서는 '불뱀'으로 번역되었다(민 21:8;신
8:15).
  (따) 조할레(*        ): '기는 것들'의 뜻이며 하찮고 저주받은 피조물로서의 뱀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명칭인 듯하다(신32:24). 여기에 해당되는 헬라어 명칭은 '헤르페
톤'(*              )이다(약 3:7).
  (마) 스피폰(*      ): '뿔독사'를 가리키는 듯하다(창 49:17).
  (바) 에프에(*        ): '독사'에 대한 명칭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헬라어  명칭은
'에키드나'(*            )이다.
  (빠) 야크슈브(*       ): '작은 독사'를 가리킨다(140:3). 여기에 해당되는  헬
라어 '아스피스'(*          )이다.
  (싸) 체파(*       ): 팔레스틴 북부와 중부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유독한 뱀이며, 사
악 지방에는 별로 서식하지 않는다. '큰 독사'를 가리킨다.
  (자) 페텐(*       ): '작은 독사'에 대한 일반적 명칭이다. 술사들이 약을 올릴  경
우 목 부위를 부풀게 하는 코브라인 듯하다.
  (짜) 탄닌(*         ):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지팡이가 변해서 된 뱀을 가리킬 때 사
용된 명칭이다(출 7:9). 그런데 이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용'을 가리킬  만큼,
신비한 측면을 강조하는 명칭이다(74:13;사 27:1;렘 51:34).

  2. 불법자들에 대한 저주(58:6-8)
  여기서 기자는 여러 비유를 통하여 악인들에 대한 징벌을 저주의 형식으로 간구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사용된 비유들은 (1) 악인들에 대한 징벌이 철저하여 그들이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지기를 바라는 것(6절) (2) 그 징벌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7, 8절)등 두 가지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비유의 사용은, 당
시 시인의 정신적 고통이 매우 컸음을 나타냄은 물론이고 그것에 못지않게 주께  대한
믿음 또한 대단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당시 압살롬은 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
았으며, 군사의 수효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다
윗 궁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다윗은 그들의 강성함을 크게  염
두에 두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바라는 바를 간절히 아뢰되, 악인들의 완전하고  신속
한 멸절(滅絶)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을 뿐이다. 다윗에게는 그들의 힘이 어는  정도
이냐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원수들의 강성함
여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적들은 비록 입을 벌리고 먹이를
향해 덮쳐드는 젊은 사자 같을지라도, 그리고 폭우로 말미암아 갑자기 불어난 거센 물
결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권능 앞에는 한갖 달팽이에 불과하고 낙태된 아기와 같
을 뿐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은 9절 이하에서 보다 강도 높게 표현된
다.

  3. 하나님의 공의 실현에 대한 확신(58:9-11)
  여기서 기자는, 악한 자들이 결국 머지 않아 멸망 당하며 의인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한다는 사실을 예언적으로 확언한다. 다윗의 이같은 선취적  확신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자신을 포함한 의인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지난 세월 동안에 직접  겪
었던 체험에 근거하였음이 분명하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만 따진다면, 이러한  예언적
확언은 허무 맹랑하게 보였을 것이다. 오히려 압살롬은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었
으나, 반대로 다윗은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믿음의 눈을  소유한
자에게는 악인을 섬멸하기 위해 대열을 갖추고 서있는 천군(天軍)의 병거들이  보이게
마련이었다(왕하 6:17).
  한편 여기서 악인의 멸망에 대한 의인의 반응(10, 11절)은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잇
다. 아무리 자신들을 해하려 하고, 또한 실제로 강포를 행하였던 악인들이었지만,  그
들의 비참한 멸망을 보고 기버하는 것은 잔인한 보복 심리가 표출된 듯이 보인다.  그
러나 여기서 의인들이 악인들의 비참한 최후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상
에서 악한 세력의 한 부분이 제거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공의가 오랜 고대 끝에 드
디어 실현되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인들의 환희에 찬  반응
은 단순히 개인 감정의 표출이 결코 아니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난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실감있게 체험하며, 그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
서 본문과 같은 반응은 악인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악 자체에 대한 것이라 하
겠다. 만일 우리가 주변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죄악들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한다
면, 자신도 모르게 그 죄악에 오염될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서 성도는 죄악에 대해서
는 그 모양이라도 버리는(살전5:22) 과감한 단절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본 단락을 통하여 (1) 신자는 악의 세력이 결국 멸망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그들로 인하여 실족하거나 혹은 낙심해서는 안 되며(73:2) (2) 악의 세력은 미워하되 악인 개개인의 심판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음(요 5:22)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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