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문자적인 뜻은 '고통 중에 도움으로 발견되는 바로 그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도움이 되시는 사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대하 15:4, 15 ; 렘 29:14).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고통의 때에 의지할 만한 도움이되시는 분임을 충분히 입증하셨는데, 이러한 사실은 시편 기자가 취하고 있는 주요한 주제들중의 하나이다(22:19 ; 27:9 ; 40:13 ; 44:26 ; 63:7) 이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미래의 소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46:2
땅이 변하든지 - 이것은 현재의 정돈된 상태로부터 무시무시한 태고 상태의 반복으로의 변화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산이 흔들려 - '산'은 안정적이고 견고한 모든 물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러한 묘사는 공포스러운 장면의 강도를 극대화하고 있다 하겠다(사 24:19).
=====46:3
산이 요동할지라도 - 이 같은 표현이나 이와 유사한 표현은 창조 기사, 혹은 종말론적인 기대를 담은 선지 기사로부터 유래된 것 같다(렘 4:24 ; 나 1:5).
셀라 - 1, 2절과는 달리 본절에는 이 같은 후렴구가 있다. 극단적인 비평가들은 이 사실을 놓고 원래 1, 2절 뒤에도 후렴구가 있었는데 성경을 옮기던 필경사(筆耕師)의 무의식적인 실수에 의해 생략되고 말았다고 주장한다(Anderson). 그러나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을 해결하는 원리는 원문의 인정과 전체 문맥의 고려이다. 필경사가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고 믿고 본 문맥을 볼 때1-3절과 4절의 내용은 상호 대비가 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1-4절은 땅의 혼들림, 파도의 흉용함을 다루고 있는 반면, 4절은 한 시내의 부드럽고 평화로운 흐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상반된 내용을 대비시키기 위하여 저자가 본절에 '셀라'라는 후렴구를 의도적으로 삽입했다고 믿어진다. 성경 원문을 중시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부분의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 같은 견해에 일치를 보이고 있다(Pe-rowne).
=====46:4
한 시내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나하르'(* )로 연중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가리킨다(74:15 ; 107:33). 그런데 실제적으로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에는 이와 같은 물줄기, 곧 강이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늘 온화할뿐만 아니라 방해받지 않고 언제나 물기로 촉촉한 축복된 하나님의 도성을 묘사하기 위한 이미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성소, 그곳은 평화롭고 늘 물기로 촉촉하고 부족함이 없는 곳과 같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행복하고 풍성하고 평화롭고 유쾌한 곳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1:3 ; 36:8 ; 사 32:3 ; 33:21 ; 41:18 ; 계 22:1). 진정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세상으로 부터의 그 어떤 도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만으로 충족해지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마치 가느다란 물줄기와 같이 미약하다고 할지라도 당장 자신들에게 뭔가 엄청난 도움을 안겨줄 것 같은 세상의 힘보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평안과 기쁨을 얻는다(Cavin).
=====46:5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 문자적인 뜻은 '아침의 기점에서 하나님이 도우시리이다'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침에 임한다는 것은 구약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사상이다(5:3 ; 90;14 ; 143:8). 아침에 임하는 하나님의 도움에 대한 기대는 날마다 뗘오르는 태양, 흑암에서 빛으로의 변화, 공의의 집행, 그리고 동틀 무렵의 위대한 구원 사건의 경험(출 14:30 ; 사 37:36)등과 같은 암시적 평행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신적(新的) 도움을 아침에 임하는 무엇으로 진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Anderson).
=====46:6
이방이 훤화(喧樺)하며 왕국이 동(動)하였더니 - 이것은 한마디로 열방들이 파도처럼 요동하고 혼들리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 사용된 용어들은 어떤 군대가 한 나라를 쳐들어가고, 침입을 받은 나라는 그것을 막기 위해 충돌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한편, 어떤 주석가들은 여기서 침입한 군대가 앗수르 군이라고 말하나 분명한 근거는없다. 그 군대의 소속이 어디든지 간에 본 구절이 밝히는 바는 군대의 충돌로 인한 소동, 혼들림이다(사 36:18-20).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 흔히 '뇌성'(18:13 :29:3-9), '번개 빛'(욥 37:4)이라는 표현이 동반되는 이 대목은 신적(神的) 징벌을 상징한다.
땅이 녹았도다 - 모든것이 조용하게 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위험은 사라지고 소동하던 세상은 잠잠해 졌다는 것 등을 말한다.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 혹은 땅과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평정케하시는 능력을 보여주는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된다(33:9 ; 107:25, 29 ; 마 8:26).
=====46:7
만군의 여호와 - 이 호칭은 한나의 입에서 처음 발설된 것으로 사료된다(삼상 1: 11)하나님께서는 모든 세력,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를 창조하셨기에 그분께 순종하는 자는 위대한 왕으로서 갖는 그 능력을 맛볼 수 있다.
이 호칭에 이어 시편 기자는 즉각적으로 또 다른 호칭 야곱의 하나님을 -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언약 관계를 상기시키는 호칭이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근거로 삼아야하는 두개의 지주(支柱)를 상기케 된다. 그 전자(前者)는, 하나님은 만물(우주)을 당신께 복속시킬 만큼의 무한한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사실이며, 후자(後者)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부성적(父性的)사랑을 말씀(언약)과 계시를 통해 드러내신다는 사실이다. 이 두 지주를 연결시켜서 '말씀을 마음속에 든든히 박아 둘 때' 우리의 신앙(믿음)은 모든 대적을 밟고 승리할 수 있다.
=====46:8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 땅을 황무케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본토, 혹은 이방의 땅을 폐허로 만드셨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등을 돌릴 때는 이방의 무력을 통해, 혹은 재앙을 통해 그 땅을 폐허로 만드셨다. 한편, 이와는 달리 이스라엘의 징계 도구로 삼았던 이방이 지나친 포악을 사용할 때는 하나님께서 그 이방 땅을 폐허로 만들기도 하셨다. 후자의 경우 중에서도 특히 수만의 앗수르 군대를 당신의 천사들을 사용하여 불과 하루 저녁에 전멸하신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왕하 19 :35 ; 대하 32:21 ; 사 37:36). 한편, 본절을 이스라엘 역사중의 어떤 사건 하나만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무리가 있다(Barnes). 또한 본절을 조상들이 경험한 이방으로부터의 구원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의식(儀式)의 한 장면으로 보려는 자유주의 학자들의 견해 역시 무리가 있다(Wei-ser).본절의 의도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7절) 그들을 위기 사왕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오직 한분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촉구하는 듯하다.
=====46:9
전쟁을 쉬게 함심이여 - 여기 '쉬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쉬비트'(* )는 '일을 그만두다', '일에서 손을 놓다'를 뜻하 '솨바트'(* )의 분사형인데, 이러한 형태는 행동(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이러한 모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평화의 왕국이 온 땅에 정착될 때까지, 즉 미래 그 어느 시점까지 그 섭리는 계속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소망은 이곳보다도 사 2:4 ; 미 4:3 등에 더욱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한편, 이러한 소망 뒤에 메시야의 평화로운 통치에 대한 기대의 묘사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46:10
너희는 가만히 있어 - '가만히 있다' 의 정확한 의미는 '그만두다', '멈추다'인데, 삼상 15:16의 경우처럼 절대형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은 문자적 의미의 생략형이다. 즉 '너의 손을 약화시켜라', 곧 '너의 노력을 멈추어라'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유일한 재판관 혹은 조정자로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이처럼 만물의 통치자, 재판관으로서 세상의 나라들과 군왕들, 그리고 그 군대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얼마나 초조하고 안달겠는가 !
=====46: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 7절과 동일한 내용이 다시 한번 반복되고있는데 이 말씀은 본 시편의 결론에 해당된다. 이 결론은 본 시편이 저작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그 시대 이후의 하나님을 경외키하면서 사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리고 내용은 하나님만이 그의 백성을 모든 악한 대적들로부터 지켜 보호하시고, 모든 유익들도 그분의 손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이다.
본시는 예루살렘 도성(都城)이 극도의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
로 보전되었음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기치 못했던 방
법으로 시온을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셨다. 시인은 이러한 극적인 구출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시며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반드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지
키실 것을 확신하고 찬양한다.
본시에는 매우 독특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홍해 사건을 노래한 소위 '모세의
노래'(출 15:1-18)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두 시에는 도일하게 하나님의 능력
과 보호가 강조되고(1, 7, 11절; 출 15:2), 혼돈스러운 물을 압도하시는 주의 능력이
부각되며(3, 4절;출 15:4, 5, 8, 10), 하나님의 내주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어 있다(5
절;출 15:17).또한 메시지의 내용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이 모든 원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함으로써 48, 76, 84, 87, 122편과 함께 '시온의 노래'(the
songs of Zion)라고도 불리워진다. 그러므로 이상을 종합해 볼 때 본시는 '모세의 노
래'를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시인이 다른 '시온의 노래'가 불리워지기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본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의 내용에
나타나는 정화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히스기야 왕 시대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이스
라엘을 침공한 시기라고 추정된다(왕하 18:13;19:37). 시인은 국가의 운명이 외적의
침략에 의해 풍전 등화(風前燈火)와 같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놀라운 역사적 개입
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동감 넘치는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시
인은 하나님께서 시온을 극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모든 원수를 궤멸시키심에
대해 전심으로 찬양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시는 일반적으로 '감사와 경배의 시'로 알려져 있다. 본시는 극심한 고
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한 위로와 소망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
고, 패역한 세대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대한 찬양이 주
도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시인은 자신의 구원의 체험을 기초로 하여 압제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 속에서도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감동적으로 묘사
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시인은 자신의 역사적 구원 체험을 다니 개인적 차원에 국한
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보호하심으로 확장시키면서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예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과 성도의 보호하심에 대한 지극한 찬양이 드러나고
있는 본문은 '셀라'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제 각 단락의 내
용을 좀더 구체적이고 심층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보호로 인한 담대함(46:1-3)
본연에서 시인은 극도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성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
의 능력을 바라봄으로써 새로운 용기가 솟아남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하
나님께서 언제나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임을 고백한 후(18:1, 2;94:22;잠
18:10). 이어서 경천동지(驚天動地)하는 우주적 위협을 과장되게 묘사한다. 시인은 성
도에게 임하는 위협에 대해 우주의 붕괴와 관련된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실 이 세상에서 성도가 당하는 핍박과 환난을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파괴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호시 탐탐 기회를 노리
고 있다. 더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을 소유하고 있으며(창 3:8-10),
자신의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시인은 극한적 환난 속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3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구원과 안전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자각함으로
써 인간적 공포를 극복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1절)이라고
고백하면서 현재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감당해 나간다.
이러한 시인의 자세는 세상의 권세나 죽음 앞에서도 언제나 당당하게 생활하는 성도
의 삶의 모본(模本)을 보여준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했
을 때에 자포자기(自暴自棄)하거나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도
우심을 간구하며 승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2. 시온을 향한 하나님의 도움(46:4-7)
하나님이 내재하시는 시온의 안전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본연에는 앞에서 나타난 우
주적 소동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평화와 안식이 드러나고 있다. 시인
은 성소로부터 생명수가 공급되며(4절),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城)은 어떠한 위협 속
에서도 안전하다고 말한다(5절). 그는 하나님께서 만국의 통치자이시며 심판자이심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6절) 하나님께 생각지도 않은 때에 개입하실 것을 신뢰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소를 채우는 '한 시내'(4절)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서 솟아나
오는 생명을 공급하는 물줄기로 이해할 수 있다(36:9;렘 2:13;17:13). 이 시내에서 흘
러 나오는 물은 영원히 갈증을 느끼지 않는 생명수가 될 것이다(요 4:14;7:38). 이러
한 영원한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는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소급(遡及)될 수밖
에 없다(요 7:37, 38).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 더 이상 슬픔과
두려움 가운데 잠기지 않고 기쁨과 소망을 발견하도록 만들어 주실 유일한 분이시다.
시인은 하나님이 내재하시는 예루살렘의 구원을 확신하면서 생명수를 공급하는 생명
의 원천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상징적 요소의 사용은 에스겔(겔 47:1 이하)과 요한
(계 22:1 이하)의 환상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의 성(城)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를 받아 기쁘게 되며(4절) 요동치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예루살렘을 눈
동자 같이 지켜 보호하실 것이다(5절). 예루살렘이 비록 군사력이 열세에 있고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성(城)은 결코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37:35, 36). 시인은 이러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시온의 안전을
보장한다. 국가들이 바다와 같이 흉용하고 왕국은 산들과 같이 지진에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힘이 있어 모든 대적을 물리치실 수 있다. 시인은 이러한 확신을 가
지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고 노
래한다(7, 11절).
3. 궁극적 승리에 대한 확신(46:8-11)
시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 이어지는 본연은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
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으로 확장되고 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기적적으로 예루살렘을
보호하셨음을 강조하고 아무리 강한 대적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완전히 초
토화될 것을 말한다(8절). 이러한 권능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분쟁의 역사를 종식시
키시고 완전한 평화를 정착시키실 것이다(9절). 이러한 환상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의 연료로 사용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과 매우 유사하다(사 2:4;9:5). 이와같은 상황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
코 성취할 수 없고 오직 메시야의 통치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사 32:1-20). 시인
은 이스라엘의 대적을 전멸시키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통하여 메시야가 행하
실 사역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인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름 아닌 이스라엘 백
성과 함께 거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초원자이실 뿐만 아리나 동시에
내재자이신 것이다(사 7:14;8, 10).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언급하면서 시인은 하나
님께서 성도를 온전히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유발시킨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계시어
서 임마누엘이 되신다.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대보다 더욱 완벽하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임으로 자기 중심적 투쟁을 그치고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기다리도록 요청한다(10절f.) 이러한 시인의 태도는 당면한 위협을 해결할 수 있는 유
일한 길이 하나님의 보호임을 확신하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이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인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끝까지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고백한다(출 14:13;대하 20:17-19). 이러한 시인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철저히 인식하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본시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1) 하나님은 우주의 섭리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2)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신회함으로써 평안을 누려야 한다(마 10:28). (3)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한 평화는 불가능하며 오직 메시야의 통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사 3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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