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
넘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하쉬'(* )로 문자적인 뜻은 '용솟움치다','끓다', '끓어오르다'이다. 이것은 본 시편 기자의 마음이 자신이 다루려는 주제의 위대성 때문에 자극되고 고무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은유는 끓고 있는 물, 혹은 그 근원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물의 근원에서 그 이미지를 따온 것 같다(Perowne).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 왕의 신상에 중요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 일을 보고 감동을 받아 창작력을 동원하여 시를 짓겠다는 뜻인데 이러한 표현은 본 시편의 주제를 짐작케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왕의 신상에 중요한 일, 곧 국가적 대사(大事)로는 대표적으로 즉위식, 결혼식, 전쟁 파병식 등이 있는데, 본 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본 시편 저자가 다루는 사건은 왕의 결혼식임이 분명하다(Anderson, Perowne). 그런데 본 시편에 나오는 주인공인 왕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학자들마다 그 견해가 다양하다. 먼저 전통적이며 일반적인 해석은 애굽 왕 바로의 딸과 결혼한 솔로몬 왕 으로 본다. 그러나 혹자는 12절에 언급된 '두로의 딸'이란 표현에 의거하여 여기서 왕비는 애굽인이 아니라 두로 왕 히람의 딸이라고 한다. 한편, 혹자는 8절을 아합의 상아 궁전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본 시의 왕을 이세벧과 결혼한 아합으로 본다(왕상 22:39, Hitzig). 그러나 이 같은 견해와는 달리 복음주의 학자 중 한 사람인 델리취(Delitzsch)는 그 왕을 요람으로 보고 그 왕비는 아달랴로 간주한다. 사실 아달랴의 엄마인 이세벧은 두로 출생으로 이스라엘 왕실에 들어왔던 여자였다. 만일 본 시편의 왕의 왕비를 아달랴로 본다면 10절의 '네 백성과 아비 집을 잊어버릴지어다'라는 표현은 이방인이었던 왕비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자 왕이 그 향수를 잊게끔하는 말로 이해된다. 더군다나 요람 왕의 부친 여호사밧은 무역에 있어서 솔로몬과 갈은 열정을 보였었는데(물론 그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음), 그 사실은 본 시편에 나오는 황금과 상아 궁전'에 대한 아달랴의 아버지였던 아합의 '상아 궁전'에 대한 언급이라는 사실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보여진다(왕상 22:39). 이상에서 살핀 왕의 정체 (正體))를 밝히는 견해 가운데서 델리취(Delitz-sch)의 생각이 가장 바람직한 것 같지만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한편, 본문에 나오는 왕의 칭송에 관한 언급에서 '영영히'(17절)라는 표혐에 적용시킬 분은, 진정 그리스도밖에 없다(벧전1:10-12).
=====45:2
왕은 인생보다 아름다워 - 이에 해당하는 원어를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당신은 인간의 자녀들보다 아름다워, 아름다워'이다. 특히 본절에 나타난 히브리어 '요프야피타'(* )는 자주 사용되지 않는 용어로 최고로 아름다운 것을 뜻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 용어가 인간 왕의 전인적인 완전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주장한다(Anderson). 그러나 본절이 나타내는 질적인 아름다움을 고려할 때 인간을 가리킨다는 견혜보다는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되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묘사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표현의 대상을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겠다.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 후차크 헨베시페토테이카). 이는 문자적으로 '은혜가 당신의 입술에서 흘러 나오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왕이라면 잔혹한 힘(무력)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은혜롭고 권위 있는 말로써 신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이다(Caivin). 그리스도의 입에서 은혜로운 말씀이 쏟아져 나올 때 그것을 듣던 청중들이 기이히 여겼던 사실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눅 4:22). 그리고 이미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에게 학자의 혀를 주시어 그분으로 하여금 연약한 자들을 적적히 위로케 하실 것임을 예언자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바 있다(사 50:4).
=====45:3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 '능한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기보르'(* )'용사', '정복','강력한 힘을 가진 거인'' 등을 뜻하는데, 이러한 자가 칼을 허리에 찬다는 것은 군사적 개념을 함축한 말이다. 참으로 왕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을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열방과 싸워 승리하는 용사이시다.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정복할 용사는 그리스도밖에 없는데, 성경은 용사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묘사하고 있다(고전 15:25, 28등).
=====45:4
위엄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 하도르카 츨라흐). 이는 문자적으로 '위엄 가운데...(말 따위)를 타소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타고' '틔과하소서'도 번역될 수 있는데, 그럴 경우 포진(布陳)한 대적의 전열(戰列)을 무너뜨리는 것,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것, 즉 '전쟁에서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개역 성경은 원문에 없는 '승전하소서'라는 구절을 삽입함으로써 원문의 의미를 충분히 보충해준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 '탄다'는 것은 전차나 전마(戰馬)를 타는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Pero-wen).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 여기서 '왕의 오른손'이란 왕으로서의 어떤 힘이나 왕만이 가짙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신체의 한 부분이 인격화 되었다고 볼 수있다(20:6). 또한 '두려운 일'에 해당하는 원어는 '야레'(* 어는 하나님의 전능적 사역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로써 진리와 의를 위한 싸움에서의 왕의 승리를 암시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가르치리이다'는, 어떤 목적을 위하여 어떤 구체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본 구절은 결국한 왕이 큰 능력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묘사하는 대목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묘사는 역대 이스라엘의 휼릉한 왕들을 연상케도 하나, 궁극적으로는 세상 정복을 위하여 오시는 '메시야'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본절 전반부에 언급된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란 말을 중시해혜 볼 때 그분께서 오셔서 이루실 왕국의 특성을 동시에 엿볼 수도 있겠다. 그 왕국은 빈틈없이 완벽하게 승리를 거둘 능력이 있고, 진리가 그 토대이며, 의가 편만하며, 온유함과 평화를 추구하는 곳일 것이다.
=====45:5
왕의 살이...엎드러지는도다 - (* , 히체이카 쉬누님 아밈 타흐테이카 이블루 벧레브 오이베이 하멜레크). 본절은 각 단어의 배열 상태 때문에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당신의 화살들은 날가롭다. 사람들은 당신 아래 넘어진다. 왕의 대적들의 마음에'이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되는 문장들을 다시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당신의 화살들은 날카롭다(당신의 군사력은 막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선 아래 있다(혹은 당신에게 굴복(복종)한다). 그들(화살들)이 왕의 대적들의가슴에 쏟아졌기 때문이다'이다. 그리고 본절의 하반절은 '왕의 대적들의 마음(용기,사기)은 사라졌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석하든지간에 본절의 핵심적 의미는 변하지 않는데, 그것은 '왕은 승리한다'는 것이다. 한편'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브'(* )를 번역함에 있어서 왕의 화살이 대적을 꽤뚫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해부학적 용어인 '염통'이라는 말을 사용한 개역 성경의 번역은 큰 오류가 없는 것 같다.
=====45:6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 '왕'이라는 호칭이 갑자기 '하나님'으로 바뀌어 혼동케 만든다. 성경에서 통치자들, 왕들 혹은 사사들을 '신'이라고 언급한 구절들이 나온다(출 7:1). 또한 이 용어는 삼상 28:3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한 인간 인격체에게 적용된 바 있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한 인간에 대하여 '신'이란 용어를 적용하는 것을 배격한다. 그런데 칼빈도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며, 본절을 거기에 포함시킨다. 즉, 본 시편 기자가 본절에서 어떤 위대한 왕 그리고 좀더 예시적인 왕국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멀리 본절의 왕에 대한 미래적 인물의 성취를 바라보았는지는 본절을 보아서만은 알아내기 어렵다. 다만 그 완전한 성취, 즉 인간이면서도 왕과 하나님으로서 불리울 인물의 도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히 1:8을 통해 명백히 알 수있다. 그러나 본절을 통해 성육신(Lncarnation)의 신비가 명백히 계시(노출)되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구절을 통해 본 시편 기자가 밝히려고 했던 것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오실 진정한 왕 메시야 개념에 대한 확신과 진정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사실이었던 듯하다.
=====45:7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 앞절(6절)의 '공평한 흘'과 묶어 생각할 때, 여기서의 '정의'는 모든 미덕들 가운데 가장 왕적인 것으로 영원히 존속될 한 왕권과 왕국의 필수적 기초를 가리킨다.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 대체적으로 본 구절은 두 가지 견해로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1) 본 표현을 왕의 대관식 때의 '왕직 수임(受任)'으로 보는 견해와,(2)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월등한 축복을 왕에게 인허(認許)하는 사실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스라엘 왕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름부음 방았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궁극적으로 그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성별되었음, 삼상 10:1 ; 15:17 ; 삼하 12:7 ; 왕하 9:6). 그러나 이와 유사한사례가 가나안이나 힛타이트에서는 있었으나 애굽이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없었다고 한다(Krsus). 그래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앞의 두견해 중에서 혹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두 해석을다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곧 월등한 축복을 받은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23:5 ; 사 61:3).
=====45:8
왕의 모든 옷은...즐겁게 하도다 - 여기서 왕의 결혼식에 바치는 사랑의 노래는 왕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절정에 이르고 있다. 2-7절에서는 왕을 장수로, 통치자 등으로 묘사했는데, 이제는 왕을 결혼식 날의 신랑으로 묘사하고있다. 이것은 계 19:7, 8절 기사와 평행을 이루고있다. 몰약(沒藥). 아라비아에서 서식하는 나무에서 얻었는데 그 나무는 현재 아비시니아(에디오피아)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한다. 이 액은 나무껍질에 칼자국을 네어 채취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얻어진 것은 상업 물품 중의 하나로 간주되어 애굽, 유다뿐 아니라 그리이스 및 로마인들도 아주 귀하게 여겼었다(창 43:11). 에 2:12에는 여성 정결품 및 향수로 사용되었던 물품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고체 혹은 액체로 되어 있는데 값비싼 물건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선물로 여겨졌다.
침향(沈香)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아할림'(* )으로 구약 성경에는 네 번 나온다. 민 24:6에는 '침향목'으로, 본 구절과 잠 7:17 ; 아 4:14에는 '침향'으로 각각 번역되어 있다. 백단향과 같은 나무로부터 추출되는 향기나는 물질로 흔히 향료나 시신(屍身)방부제로 사용된다. 육계(肉桂). 본절 이외에 출 30:23 ; 겔 27:19등에서도 언급된다. 인도 등지에서 산출되며, 그 껍이기가 계피나무와 비슷하나 향기는 멀 난다. 상아궁에서 나오는(* ,민 헤이클레이). 직역하면 '상아궁들로부터'이다. '상아궁'이란 건물 자체는 다른 건물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몇몇 방들과 가구들이 상아로 뒤 조각품들로 장식되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왕상 22:39 ; 암 3:15 ; 6:4). 한편 구약 성경에서 아합의 상아궁에 관해서만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예루살렘 궁에는 상아 장식이 없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솔로몬의 보좌도 상아로 만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왕상 10:18). 한편, '상아궁들' 이라고 복수형으로 표현된 것은 궁궐안의 다양한 흘들에 대한 암시로 보인다.
=====45:9
왕의 귀비 중에는 열왕의 딸이 있으며 - (* , 베노트 믈라킴 베이크로테이카).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왕의 딸들은 당신의 사랑받는 자들 중에 있으며'라는 뜻이다. 한편,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견해는 학자들마다 다르다. 먼저 극단적인 견허로 '왕의 딸들'을 '왕비'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들은 '베노트'(* , 딸들)를 단수로 변성시키는데 그 근거로는 본절 하반절의 '서도다'가 단수로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상반절과 하반절이 평행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는 큰거에 의하여 그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 이 같은 견해에 의하면 '사랑받는 자들'이란 '왕비'의 가문을 이루는 왕족을 가리키는 것이고 본 구절이강조하는 의미는 왕족으로 구성된 가문 출신의 신부인 왕비이다(Gunkel). 그러나 이 같은 견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견해는 맛소라 본분(MT)를 변형시켜 얻은 해석을 토대로 얻어졌기 때문이다. 비록 사본 시대 이후에 나온 많은 관찰을 통해 얻어진 문법(평행법)이 중요할지라도 원본 자체를 변형시킬 만큼의 위력을 부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또 다른 견해로는 본 구절을 신부인 교회나 메시야와의 연합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사랑받는 자들'을 '존귀한 자들' 해석하고 ' 딸들'을 왕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본절이 한 왕이 존귀한 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그리고 있다고 보는데 이 모습은 바로 왕되신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신부로 삼은 존귀한 자들인 성도들과의 연합을 나타낸다고 한다(Barnes ). 이 같은 견해 역시 그 근거가 전혀 없다. 따라서 본시가 소위 '메시야 시'라고 불리는 몇몇 시편들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번절을 메시야와 성도와의 관계라는 측면으로 무리하게 해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겠다. 한편, 바람직한 견해로 받아들여 지는 것은 본 구절을 왕의 후궁들, 왕비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Perowne). 물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일부다처제를 허용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많은 왕비와 후궁들을 두는 것은 강성한 왕국임을 나타내는 방법 중의 하나였다. 이스라엘의 선한 왕들까지도 이러한 관행을 따르곤 했었다. 이와 같이 왕비들과 많은 후궁들을 두는 것이 한 왕권의 강성함을 과시하는 방법이었던 것을 알고 있던 본 시편 저자는 이제 왕의 결혼식에 바치는 노래를 지음에 있어서 그 왕국의 강성함을 칭송하기 위하여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왕후 - 문자적인 뜻은 '배우자인 왕비' 인데 왕비의 어머니가 아닌 '왕비'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며(느 2:6 ; 단 5:2, 23), 갓결혼한 왕비에게 특별히 붙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Perowen).
오빌의 금 - 가장귀한 금을 뜻하는 것 같다(욥 28:16 ; 사 13:12). 한편, 오빌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으나 인디아, 남 아라비아, 서머리랜드(아프리카 동부의 지방 이름) 중의 하나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왕의 우편 - 영예로운 자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한편, 왕의 어머니였던 밧세바도 왕 솔로몬의 우편에 좌정했었음을 성경에서 발견할수 있다(왕상 2:9).
=====45:10
딸이여 - 교훈 서두에 오는 일반적인 동양적 상투어이다. 이렇게 칭한 후 그가 나이든 사람이건, 권위를 지닌 사람이건, 혹은 신적인 위임을 받은 사람이건 간에 교훈자는 아비가 자식을 가르치듯 피교훈자에게 교훈을 시작한다. 지금까지(1-9절) 왕에 대한 묘사를 해왔던 저자는 이제 왕비된 신부에게 권하는 말을 시작하고 있다. 먼저 그는 왕비가 그의 아비의 집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주인인 왕에게 경외의 사랑을 바칠것을 권하고 있다.
=====45:11
왕이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 이것은 '왕으로 하여금 너의 아름다움을 사모케 하라'로도 번역할 수 있는데 그 근거는 여기'사모하다'(* , 이트와우)가 미래형 이지만 한편으로는 명령형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그 결혼이 완성을 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완성을 본다는 것은 법적으로 혼인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와 더불어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저는 너의 주시니 - (* , 키 후아도나이크).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왜냐하면 그는 너의 주인이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키'(* ,왜냐하면)는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본절 상반절을 앞절(10절) 하반부의 종속절(결과절)로 보는 견해는 잘못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준다. 특히 개역 성경의 본절 서두에 '그러하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본절 상반절을 앞절 하반절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원문상 옳지 않다. 따라서 10절의 내용과 상관없이 11절을 독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문적이다. 둘째는 본절 상반절의 왕이 왕비의 아름다움을 사모한다는 사실과 본절 하반절의 후미에 있는 왕비가 왕을 경배해야 할 사실의 근거를 졔공한다는 것이다. 왕비는 왕이 그녀를 사모하도록 애써야 하고 왕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는 그 왕이 바로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이라는 딸은 주종(主從)관계를 강조하는 말이 아니라 한 가정의 질서에 있어서 남편이 아내의 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엡 5:22-24). 한편, 본절에서 '남편'(* , 아돈)으로 번역해야 할 용어를 '주'로 번역한 것은 본시를 메시야 시편으로 해석하려는 의식 때문이었던 것같다(Anderson).
=====45:12
두로의 딸이 예물을 드리고 - 문자적인 뜻은 '두로의 딸, 선물과 함께 '이다. 동사가 생략되었으나 '선물과 함께'라는 단어가 있음을보아 생략된 동사는 '올 것이다'로 보는 것이 무난하겠다. 이 표현은 왕비가 두로로부터 온 여인이라는 것, 즉 왕비의 출신을 밝히는 표현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두로 백성 자신들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낫겠다(Perowne, Anderson).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낼 때 '시온의 딸'(9:14)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바벨론 백성을 나타낼때 '바벨론의 딸'(137:8)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방 나라들이 왕비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들을 가지고 올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백성 부한 자 - (* , 아쉬레이 암). 직역하면 '백성 중의 가장 부요한 자들'이란 말이다. 이와 유사한 문형을 사 29:19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사회 계층의 어떤 특정한 부류를 지칭하는 듯하다.
=====45:13
옷은 금으로 수놓았도다 - 문맥을 고려할 때 이 표현은 왕실 결혼식에서 왕비가 입었던 의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
=====45:14
저가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 9절에서 신부가 이미 왕 우편에 선 것을 묘사한 사실을 고려할 때, 본 시편 기자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본 시를 묘사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5:15
본 구절은 바로 전절(14절)에 기술된 왕비의 친척들과, 친구들, 또는 신하들에 대한 언급임이 분명하다. 기쁨(* , 심하). 이의 문자적인 뜻은 개역 성경에서처럼 '기쁨'이다. 그러나 원문에는 원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충만하고 풍성한 기쁨'으로 번역됨이 원문적이라 하고다.
=====45:16
왕이 저희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 지금까지 왕실 결혼식에 관해 묘사해 온 본 시편 기자는 이제 결혼이라는 주제에 관한 어떤 소망을 피력하고 축하함으로써 결론을 지으려 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한마디로 왕의 후손들이 선왕(先王)보다 잘 될 것이라는 것, 즉 그 후손들은 세계적인 왕들이 될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와 같은 표헌을 통해 본 시편 기자는 성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어 왕 노릇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계 5:10 ; 22:5).
=====45:17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하리로다 - 여기서 '찬송하다'(* , 예호두카)의 문자적인 뜻은 '감사하다'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만민들이 감사를 올리는 왕이 있다면 그 왕은 분명히 그리스도이실 것이다. 그 이유가 구체적이진 않지만 다시 한번 더 본 시편 기자는 영원히 인간의 감사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특이하게 긴 표제와 도입부를 가지고 있는 본시는 기름부음을 받은 강대한 왕의 겨
혼 예식에서 사용하던 축가로서 '사랑의 노래'라고 불리워진다. 본시에는 신랑으로서
의 왕의 능력과 품격에 대한 찬미와 신부의 아름다운 자태가 두드러지게 묘사되고 있
는데, 이것은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와 교회의 여적 관계를 예표한다는 측면에서 구속
사적 중요성을 내포한다. 메시야의 풍모와 통치에 대해 알려주는 본시는 왕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찬미하는 전반부(1-8절)와 신부에 대해 묘사하는 후반부(9-17절)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시인은 그리스도의 완전하 구원과 거룩한 교회의
영광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본시는 일반적으로 '제왕시'(royal psalm), 또는 '메시야 시'(messianic
psalm)로 알려져 있다. 사실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은 여타 열방에서와는 다른 독특한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즉, 왕은 하나님의 선택된 자로서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대리
통치자인데, 언약의 성취와 출애굽의 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삼하 7:23, 24). 그리고 더 나아가 영원한 왕으로서 자신의 백성을 완벽하게 통치하
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내는 예표가 된다. 따라서 본시는 외견상
으로 종교적인 내용과 무관한 왕의 사랑의 노래처럼 보이지만 사실응 그리스도와 교회
의 영광스러운 연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심오한 구속적 노래인 것이다.
이 시편의 배경에 대해서는 아합과 이세벧, 여호람과 아달리야, 솔로몬과 바로의 딸
등의 결혼식으로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게 결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결혼이 메시야의 결혼을 예표하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본시에 나타나고 있는
왕에 대한 묘사는 인간에 대한 것으로 너무 존귀하며,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있게 될
그리스도와 교회의 완전한 연합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6, 7절이 히브리서
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점을 보아서도 확인할 수 있다(히 1:8,
9).
이제 메시야 시편의 중심으로서 메시야 시편의 왕관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본 시편을
몇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 좀더 자세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신랑으로서의 왕에 대한 찬미(45:1-8)
제 1연에서 시인은 머저, 자신의 표현이 억지로 짜내어 아첨하는 말이 결코 아니며
영감을 통해서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으로 흘러나오는 거심을 밝힌 후에, 왕의 인
격과 능력과 통치에 대하여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왕의 여광에
대해 다음과 같의 다양한 각도에서 묘사하고 있다.
(1)인격적 관점(2절): 시인은 먼저 왕의 품성이 모든 사람보다 탁월하다고 말한다.
왕은 하나님의 복을 넘치게 받은 자로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묘사된다. 왕은 고
매한 인격의 소유자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보존하고 잇는 유일한 자이다. 이러
한 품격은 왕이 인간을 구원시키고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맺도록 마느든 중보자로
서는 합당한 이유가 이유가 된다.
(2) 군사적 관점(3-5절): 에기서 왕은 패배하지 않는 위대한 전사(戰士)로 묘사된
다, 왕은 개인적 명성이나 국가적 확장을 위해 싸우지 않고, 오직 진리와 온유와 공의
를 위하여 전쟁을한다. 그는 날카로운 화살과검으로 원수를 완벽하게 제압한다. 이처
럼 완전한 승리를 재위할 수 있는 왕은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인류의 통치자이신 그
리스도께서는 불의와 거짓에 대항하여 싸우시며 항상 승리하신다(요 16:33).
(3) 통치적 관점(6, 7절): 시인은 왕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공평과 정의를 사용
하신다고 찬양한다. 그는 의를 진심으로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죄악을 철저히 미워하
신다. 그는 폭군처럼 난폭하지 않으며 바르고 평등한 법에 의하여 공정한 통치를 시행
한다. 그러므로 그의 보좌는 영원히 안정되고 지속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러한 찬사
를 수납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4) 생활적 관점(8절) ; 시인은 왕이 영원한 기쁨이 내재하는 상아 궁에 거하는데
(왕상22:39;암3:15), 아름다운 인격과 향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왕은 슬픔과
눈물이 전혀 없으며, 즐겁고 기쁜 인생을 만들어 간다. 또한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사
람들에게도 동일한 즐거움을 부여한다. 이러한 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그리스도는 참 기쁨과 소망이 되시며, 그를 믿는 모든 성도를 또한 동일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살전 5:16).
2. 왕의 신부의 영예(45:9-15)
왕으로부터 관심을 돌려 신부의 영광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제2연은 (1) 신부의
단장(9절), (2) 신부에 대한 권고(10, 11절), (3) 결혼식의 모습(12-15절)등으로 구성
되어 잇다.
시인은 여기서 신부의 모습을 매우 아름답게 묘사한다. 신부는 오빌의 금으로 단장
한 결혼 예복을 입고 왕의 우편에 서게 된다(9절). 시인은 신부가 왕 앞으로 인도되게
앞서 그녀에게 훈계를 한다. (1) 네 백성과 아비 집, 즉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옛 생활
과 습관을 잊어버리라. (2) 신랑이 되는 왕만을 사모하고 존경하가. (3) 왕을 주로 알
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라. (4) 남편을 경배하라. 즉, 자신을 포기하고 신부된
자로서의 헌신과 충성을 다하라. 이러한 4중적 요구를 한 후 결혼식 과정이 소개된다.
무리들의 박수 갈채와 환호성 속에서 왕이 먼저 식장에 도착하고, 곧 이어서 왕후인
신부가 들러리들과 함께 왕궁으로 인도되어 왕에게서 나아온다. 이 결혼 예식은 기쁨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우리는 이러한 결혼식을 보면서 메시야와 그의 신부가 되는 교회의 영적이고 순결한
연합을 조망(眺望)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신부는 예수 그리스돌르 믿고 거듭난 유대인
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한다. 신부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진
전가(轉嫁)된 의로 구원을 받았으며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아간다. 교회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후에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한다. 이처럼 순결
한 신부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여 하나로 결합되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며, 성려의 내재를 통하여 영광스러운 존재로 지어져 간다(엡 5:26,
27). 영감을 받은 시인은 이러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인 관계를 왕의 결혼을 통하
여 예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 왕의 나라의 영원성(45:16-17)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선포되고 있는 제3연은 왕의 자손들이 세계의 군왕이
되며 그것을 통하여 왕의 이름이 만민에게 기억되고 존경받을 것임을 말한다. 여기서
시인은 왕의 결혼이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에 의한 결합이 아니라 자식을 통해 이어지
는 영원한 연합임을 강조하고 있다. 왕의 이름은 영세토록 기억되며, 만민을 통해 찬
송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찬사를 수납할 수 있는 대상은 메시야라고 볼 수 있다. 메시야 왕의 이름은
너무 귀하여 만민이 영원토록 기억하고 찬송할 만하다. 인간 세상에 속해 잇는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싫증이 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동의 이름은 언제나 지루하
지 않고 늘 불러도 즐겁고 기쁘다. 세상에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히 찬양받을 자격이
있다.
또한 여기서 언급되고 잇는 왕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
의 자녀들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110:3).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신자들은 왕의 아들로 간주된다. 그리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서 왕의 위치에까지 오를 것이다(계5:10). 이런
의미에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만드시는 그
리스도는 왕 중의 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이신 메시야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사방에서 무수히 일어나 그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대댈로 기억될 것이
며, 모든 나라들이 그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모든 세대를 통해 왕만이 찬양받을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만방에 널리 높여야 한다(사 45:23; 행 2:33;빌
2:9-11;히 1:4).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것은 우리의 유익만을 위해서
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세상에 선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고전
10:31;벧전 2:9).
(2) 교회의 존귀함을 생각하며 더욱 정결해지도록 다듬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
의 신부로서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영광스럽게 지어져 가는 존재이다(엡 5:25, 27).
교회가 세속적 사고를 받아들여 타락하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합당치 못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사단의 세력들이 불경스러운 욕서로
가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려고 공작하고 잇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욱 번창하여
땅에 충만하도록 섭리하실 것이다.
(4)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성격이 고의로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인간
적 정에 이끌리지 말고 모든 일의 처리에 있어서 공평무사(公平無私)해야 할 것이다.
* 결혼의 신학적 의미. 본시는 왕과 왕후의 결혼 예식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
의 영적 연합을 예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 본 강해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좀더
확장하여 결혼이 구속사적 관점에서 어쩐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가를 신. 구약 성경을
통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는 결혼을 하나의 계약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
의 체결된 언약의 의미를 규정하는데 사용하였다. 구약은 결혼의 순수성릉 주장하면서
동시에 이방 종교와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계속 보존할 것을 강조하였
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충길하고도 신실한 신부로서 묘사하였다
(렘 2:32). 이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계약 관계가 인격적 차원임을 구체적으
로 확인해 준다. 이러한 개념은 호세아서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호세아는 남편인
하나님이 그의 아내 이스라엘과의 결혼 관계를 거부하였다고 기록하고 잇다(호 2:2).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불신의 행동을 포기할 때 언제든지 다시 결합할 것임을
말한다. 또한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이스라엘을
기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전한다(사 62:4, 5). 예레미야도 이스라엘의 패역으로 인
하여 임하는 황폐를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렘 7:34;16:9). 결국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구약 성경에는 결혼을 성도와 하나님간
의 인격적 교제와 언약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신약 성경에서도 결혼을 예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설명한
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대해 청중들이 잘 알고 있는 결혼 예식 비
유를 통하여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교훈했다(마 22:1-14; 25:1-12). 세례 요한도 신부
를 취하는 신랑의 행복에 동참하는 신랑 친구의 기쁨과 자기 자신의 환희를 비교하여
설명하였다(요3:29).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고 설명한다(엡 5:23). 또한 신자가 정결한 처녀로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된다고 표현한다(꼬후 11:2). 이처럼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신자의 모습을 신부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지막 때의 환상을 본 예언자는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혼인 잔치가 베풀어진다고 선포했으며, 이것은 승리적 교회의 출현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성경은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구속적 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리스돠 교회의 영적 연합을 예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통찰을 통하여 우리는 결혼이 단순히 인류 보존이나 사회적, 도덕적 행복을 성취하는 수단이 아니라 거룩하고 신성하게 제정된 축복의 원천으로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충만하고 완전한 제도임을 알 수 있다.